전태윤과 전이진은 동시에 속으로 구시렁댔다.‘할머니는 자신 없는 일은 안 하셔.’전태윤은 와이프의 손에서 여운초의 사진을 건네받고 전이진에게 돌려주며 또다시 그를 째려봤다.“형, 형수님, 저 먼저 갈게요. 두 분 계속 얘기 나누세요. 형, 배불리 많이 먹어야 해!”삐돌이!형수님이 분명 두 형제가 충분히 함께 먹을 양이라고 했는데 큰형이 기어코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그는 마지못해 핑계를 둘러대며 자리를 떠났다. 형이 쪼잔해서 그를 못 먹게 한다는 걸 절대 형수님께 들켜선 안 된다.전이진이 떠난 후 사무실에 그들 부부만 남았다.“예정아, 넌 밥 먹었어?”“다 먹고 나서 도시락 싸 왔죠.”하예정은 절대 굶을 리가 없다.전태윤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려 하자 그녀가 젓가락으로 가볍게 내리쳤다.“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요.”하예정은 그에게 젓가락을 건넸다.“얼른 먹어요. 이따가 다 식으면 결국 또 위 버려요.”전태윤은 젓가락을 건네받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여보, 그럼 나 먹는다?”“얼른 먹어요.”전태윤은 사양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예정아, 오늘 몸은 좀 어때? 배 아프지 않아?”“아니요. 당신이 끓여준 대추차를 마시니 이번엔 전혀 복통이 없어요.”전태윤이 알겠다며 대답한 후 떠보듯이 물었다.“예정아, 우리 시간 되면 처형네 집에 가서 네 짐을 다 가져올까?”“나 언니 집에 짐이 얼마 없어요. 갈아입을 옷 몇 벌 뿐이니 안 가져와도 돼요. 그냥 거기 놔둘래요. 언니 집에 가서 지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가도 되잖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답했다.“그래. 내가 새 옷 몇 벌 더 사줄게.”“사지 말아요. 옷이랑 신발, 드레스를 사느라 모아둔 적금이 거의 다 거덜 났어요. 내 옷장은 이미 새 옷으로 꽉 찼다고요.”그녀는 이모와 함께 사교활동에 많이 참가해야 한다.이모와 성소현 두 모녀의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새 옷을 엄청 많이 샀다.이모는 그녀가 인제
전태윤은 배불리 먹은 후 하예정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대충 한마디 물었다.저번에 성기현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그들 부부가 결혼한 지 몇 년이 됐는데 아직 아이가 없다고 하더니 어느덧 유청하가 임신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이 대체 언제 임신할지 궁금했다.사실 그는 아이가 급한 게 아니라 아이를 만드는 그 과정을 즐길 뿐이다.오랫동안 솔로로 지냈으니 온몸의 세포가 요동치고 하예정을 갖고 싶어 피가 들끓는다.다만 아쉽게도 당분간 또 스님으로 지내야 한다.그는 하예정의 손을 높이 들고 다친 손가락이 거의 회복된 걸 확인하더니 고개 숙여 부드럽게 그녀의 다친 손가락에 키스했다.그의 잘못으로 하예정이 다쳤으니까.“언니한테 말했더니 언니가 영양제를 사주겠대요. 경험자라 나보다 아는 게 많아요. 언니가 다 사면 우리 함께 새언니 뵈러 가요.”유청하가 임신하자 하예정은 진심으로 사촌 새언니를 대신해 기뻤다.“그래 그럼. 처형 영양제 사는데 쓴 돈 내가 보내줄게.”하예정이 머리를 끄덕였다.“예정아.”“할 얘기 있으면 해요.”“그냥 불러보고 싶었어.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전태윤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가녀린 몸이 그의 품에 쏙 안겼다.“예정아, 넌 모를 거야. 널 찾아가지 못한 그 며칠 동안 내가 널 얼마나 미치도록 그리워했는지.”하예정은 그의 품에 나른하게 기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리움을 호소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전태윤이 힘들어할 때 실은 그녀도 무척 힘들었다.물론 그와 비기면 훨씬 나은 편이다.“다들 식사하는 틈에 푹 쉬고 있어요. 머리가 맑아야 오후에 계속 막중한 업무를 처리하죠.”“나랑 함께 쉬어주면 안 돼?”하예정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끝내 머리를 끄덕였다.전태윤은 기쁜 마음에 곧장 그녀를 안고 휴식실로 들어갔다.부부가 다시 애틋함을 되찾았을 때 하예진은 한창 가게에서 아들에게 밥을 먹이다가 전씨 어르신을 맞이했다.“할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하예진은 그릇을 내려놓고 자
어르신이 하예진에게 말했다.“너희 두 자매는 우리 집안 명예를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는 법을 몰라. 네가 만약 나보고 그 녀석들 몇 명 불러와서 가게 분위기를 띄워달라고 하면 장사 무조건 대박 날 텐데.”전씨 일가의 아홉 도련님이 여기서 토스트를 먹는 것 자체가 살아있는 간판이다.하지만 하예진은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다.“할머니, 우린 본인 노력으로 해내고 싶어요. 우리 이모도 늘 도와주시겠다고 하는데 제가 거절했어요. 이렇게 되면 예정이가 부담이 더 클 거예요. 할머니, 식사는 하셨어요? 누추하지만 함께 드실래요?”하예진은 아들을 먹이느라 본인은 아직이었다.할머니도 사양하지 않았다.“내가 무슨 고생인들 못 겪어봤겠니? 전혀 누추하지 않아. 너희랑 함께 먹어야 인간미가 넘쳐서 좋지.”종일 고급 음식만 먹다가 담백한 야채로 입맛을 바꾸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하예진은 직접 만든 음식을 들고나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 저 그냥 우빈이랑 먹을 생각에 음식을 하나밖에 안 했어요.”계란말이라, 할머니는 그녀에게 다정하게 말했다.“이 할미가 어떤 사람인지 네가 모르는 것도 아니잖아. 음식 탓할 거면 일부러 밥때에 오지 않았을 거야.”할머니는 스스로 가서 밥을 펐다.하예진은 사소한 일에 구애받지 않는 사돈 할머니의 성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할머니가 괜찮으시다니 그녀도 더는 미안해할 이유가 없었다.세 사람은 나란히 밥상에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고 가게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우빈아, 삼촌이 뭐 사 왔게... 할머니?”노동명은 또 주우빈에게 풍차를 하나 사 왔다. 그는 풍차를 들고 우빈이를 부르며 가게 안으로 들어왔는데 전씨 할머니를 보자 대뜸 걸음을 멈추고 왠지 모르게 마음이 찔려 쪼르르 내빼려 했다.“동명아, 이 할미가 널 잡아먹는다던? 왜 날 보자마자 줄행랑이야?”노동명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며 헤벌쭉 웃었다.“잡아먹는다니 무슨 그런 험한 말씀을 하세요. 할머니는 저에게 부처님이세요. 아까는 휴대폰을 차에
할머니도 배불리 드시고는 수저를 내려놓았다.노동명은 인정한다는 듯이 대답했다.“맞아요, 우빈이 엄청 똑똑해요.”“그런데 왜 계속 풍차만 사와? 사 올 거면 다른 재미난 장난감을 사 와야지 줄곧 풍차만 주니까 애가 지루해하잖아. 오죽하면 네 풍차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밥만 먹을까.”전태윤의 친구들은 전부 전태윤과 같은 성격이다.다만 소정남은 예외였다. 그의 언변은 전호영에 버금가는 수준이다.할머니는 아직 노동명이 하예진에게 딴마음을 품은 것인지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우빈의 환심을 사려고 엄청 노력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노동명은 우빈이가 그를 아빠라고 불렀으면 하는 바람인 듯싶다.할머니의 생각을 읽었다면 노동명은 말문이 턱 막힐 것이다.‘저는 그저 단순히 우빈이가 좋을 뿐이에요...’노동명이 머쓱해하며 말했다.“제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어서 애들이 무슨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저번에 우빈이한테 풍차를 선물했더니 애가 엄청 좋아하며 저한테 안기기까지 했어요. 그때부터 우빈이가 풍차 좋아하는 걸 알고 계속 풍차만 사 왔어요.”“...”할머니는 꽉 막힌 노동명이 너무 답답했다.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옛친구 노씨 어르신이 의심될 지경이었다. 노동명 같은 답답한 손주 녀석들 때문에 화나서 세상을 떠난 게 아닐까 싶기도 했다.여태껏 제 집안의 아홉 손주 녀석이 골때리고 속 썩인다고 생각했는데 노동명과 비하니 다들 그보다 훨씬 똑똑해 보였다.비교는 금물이라더니, 남는 건 상처뿐인가?하예진은 머쓱해하는 노동명을 보자 재빨리 아들의 손을 잡고 그에게서 풍차를 건네받으며 활짝 웃었다.“우빈이는 여전히 풍차 노는 걸 좋아해요. 고마워요, 대표님.”그녀는 우빈이더러 얼른 삼촌한테 고맙다고 말하라고 다그쳤다.주우빈은 밥 한 그릇 깨끗이 비운 후 식탁에 내려놓고 티슈를 뽑아 입 주변에 묻은 기름을 닦았다. 아이는 그제야 엄마 손에서 노동명이 사 온 풍차를 챙겨가며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고마워요, 동명 삼촌.”노동명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
어르신은 노동명이 본인 손자가 아닌 게 천만다행이었다.장손을 생각하니 어르신은 묵묵히 한숨을 내쉬었다.사람은 끼리끼리 모인다더니 노동명과 전태윤이 절친한 사이라는 것은 두 사람이 많은 점이 닮았다는 걸 설명한다.노동명은 집사와 함께 수도세와 전기세를 확인한 후 전화를 끊고 하예진에게 답했다.“액수가 정확해.”그는 지갑을 꺼내 방금 받은 집세를 쑤셔 넣으며 그녀에게 말했다.“다음부턴 카카오 페이로 집사한테 보내면 돼. 아니면 나한테 이체해도 되고. 내가 집사한테 연락해서 노트 잘하라고 할게.”하예진은 고개를 끄덕인 후 그에게 설명했다.“저번 달에 카카오 페이로 이체했는데 이번엔 은행카드에 문제가 생겨서 ATM기기로 현찰을 꺼내는 수밖에 없었어요. 인테리어 비용을 다 내고 집세 낼 돈이 남아서 현금으로 준 거예요.”그녀는 카카오 페이에 묶은 카드에 큰돈을 저축하지 않는다. 평소 생활 지출만 부담하니까. 큰돈은 전부 따로 적금하고 있다.“가게에 내가 더 도울 건 없어?”하예진이 재빨리 대답했다.“다 마무리했어요. 오픈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어요.”“전단지 같은 건 이미 돌렸고?”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전단지 돌릴 거 없어요. 오랫동안 인테리어를 하느라 오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다 봤을 거예요. 이젠 간판도 걸었으니 무슨 가게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죠.”그녀는 이 근처의 회사나 공장 직원들을 끌어들일 목적이다. 거리가 너무 멀면 끌어오고 싶어도 다소 힘들다.경쟁력이 너무 크니까.이 거리에 토스트 가게가 이미 너무 많다.그녀의 가게가 이 거리를 휩쓸어 버리길 바랄 뿐이다.그녀는 모든 희망을 이 가게에 걸었다.노동명은 아무 말도 없었다.그는 가게를 한 바퀴 돌고 자리에 앉으려 했는데 할머니가 계속 빤히 쳐다보시니 왠지 마음이 찔렸다. 대체 그가 뭘 잘못했길래 전씨 할머니가 줄곧 노려보는 걸까? 그리고 그는 왜 또 마음이 찔리는 걸까?“볼일 봐, 난 이만 갈게. 오픈 날에 또 응원하러 올게.”노동명은 결국 오래 남지 못했다.
“할머니, 저 먼저 갈게요.”노동명은 허리 숙여 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머니께 인사드린 후 자리를 떠났다.노동명은 차를 몰고 떠났고 하예진은 카운터에 돌아가 가게 장부와 계산기를 꺼내더니 가게를 임대하고 인테리어 하기까지 지출이 얼마나 되는지 계산기를 두드렸다.할머니는 괜한 생각을 한 것만 같았다.하예진은 노동명에게 전혀 호감이 없다.다만 할머니는 여전히 그녀 맞은편에 앉아 떠보듯이 물었다.“예진아, 너 앞으로 계획이 어떻게 돼?”“이 ‘하루 토스트’가 체인점을 가득 내서 전국에 널리 퍼졌으면 좋겠어요.”“창업도 중요하지만 네 사생활은? 설이 지나도 너 고작 31살이야. 아직 어린 나이인데 정말 더 생각 없어? 내가 애초에 한 말 아직 유효해. 너만 원한다면 이 할미가 일편단심이고 능력도 좋은 훌륭한 남자를 소개해 줄게. 두 번째 결혼은 무조건 초혼보다 행복할 거야. 네 전남편보다 백 배는 더 잘 살아서 그 인간 평생 후회하게 해야지.”하예진이 웃으며 답했다.“할머니는 손주가 아홉 명이라 맏이와 막내 말고 다들 결혼 적령기죠. 그 손주들도 아직 싱글인데 언제 저까지 챙길 겨를이 있겠어요?”할머니는 우빈을 끌어와 품에 앉히며 미소 지었다.“난 이젠 나이가 들어 딱히 할 일이 없어. 걔네들도 내게 효도하느라 아무 일도 못 하게 해. 너무 심심하다 보니 애들 혼사나 신경 쓸 뿐이야. 오전에 금방 사진 두 장 구해서 이진이한테 줬어. 호영이랑 이진이더러 내가 준 사진의 여자를 목표로 1년 안에 무조건 결혼해야 한다고 다그쳤지.”“25살 아래는 급할 거 없어. 비록 손주가 아홉 명이지만 여섯째까지 25살을 초과했고 뒤에 세 명은 아직 어려서 때가 아니야. 남자는 여자보다 늦게 성숙해서 나이가 든 후에 결혼해야 가정을 책임질 수 있어.”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하면 아직 철부지라 가정을 책임질 능력이 안 된다.“여섯째도 올해 설이 지나서야 만 25살이 됐어. 걔는 아직 안 급해. 둘째, 셋째를 해결한 후 넷째 다섯째 차례야. 지금 넷째, 다섯째
하예진과 노동명은... 함께할 가능성이 아주 희박하다.하예진도 재벌가에 시집갈 마음이 없고 그들 자매 모두 큰 야심이 없다.어르신은 곧장 마음을 접었다.하예진의 가게에서 나온 노동명은 노씨 그룹에 돌아가 대표 사무실로 들어간 후 소파에 벌러덩 누워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지금은 점심시간이라 회사도 매우 조용했다.그가 전태윤에게 물었다.「쉬는 데 방해돼?」전태윤은 겨우 아내를 달래 회사에서 함께 낮잠을 자고 있는데 노동명의 문자에 잠이 확 깼다.하도 절친이니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었다면 전파를 타고 가서 한 대 칠 수도 있다.하예정은 아직 안 깼다. 그는 아내에게 가볍게 입맞춤한 후 휴대폰을 들고 살금살금 휴식실을 나가서 노동명처럼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무슨 일 있어?」노동명은 친구의 답장을 보고는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두 글자만 보냈다.「아니.」전태윤은 울화가 치밀었다.그는 곧장 노동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를 받자마자 험한 욕설이 노동명의 귀를 때렸다.“너 전태윤 맞아? 뭔 욕을 이렇게 찰지게 해. 내가 아는 전태윤 아닌 것 같아!”“네가 노동명인 걸 다행으로 여겨. 아니면 진작 한바탕 두들겨 팼어. 나라고 쉬운 줄 알아? 건강을 바쳐서 예정의 용서를 구했다고. 드디어 집에 돌아와서 함께 사는데, 내게 사랑의 도시락도 싸주면서 위병을 치료해 주는데, 넌 왜 아무 일도 없으면서 문자를 하고 난리야? 단잠이 다 깼잖아! 넌 욕 먹어도 싸!”노동명은 배시시 웃었다.“화해했네! 그럼 나중에 함께 밥 먹자. 너 요즘 저기압이라 감히 밥 먹자는 말도 못 했어. 네가 또 술 마실까 봐.”노동명을 한바탕 욕한 후 전태윤은 화가 많이 가라앉았다.“무슨 일인데, 빨리 말해. 네가 아무 일 없이 점심시간에 문자를 보낼 리가 없잖아.”전태윤이 매일 점심 휴식해야 한다는 걸 모르는 이가 없다.“진짜 아무 일 없어. 그냥 회사 돌아오는 길에 너희 처형네 토스트 가게에 들러서 가게도 구경할 겸 우빈이한테 풍차도 사줬어. 거기 너희
“성기현이 이미 손 썼을지도 몰라.”두 집안은 이웃이라 성기현이 장씨 일가의 별장을 사서 담벼락만 무너뜨리면 서로 이어져 성씨 일가 별장의 면적도 넓힌다.성씨 일가에 돈이 모자란 것도 아니니 성기현이 살 마음만 있다면 누가 그의 것을 뺏겠는가?“관심 있으면 지금 바로 알아봐 줄게. 잠깐만 기다려.”노동명은 친구를 깨운 게 미안해 좋은 일을 해줘서 갚으려고 이 얘기를 꺼냈다.그는 다른 휴대폰으로 딴 사람에게 물은 후 곧바로 답장을 얻었는데 누군가가 벌써 장씨 일가 별장을 사 갔다고 한다.노동명은 그자가 성기현일 줄 알았는데 여쭤보니 누군지는 몰라도 성기현은 아니라고 했다. 성기현도 그 별장을 사서 제집 구역을 넓히려고 했지만, 한발 늦어서 딴 사람에게 뺏겼다.장씨 일가 별장이 중고 별장인 건 사실이지만 땅 면적이 워낙 커 다들 땅 면적을 노리고 있다. 별장 건물은 아까 노동명의 말처럼 풍수를 살짝 바꾸고 리모델링하거나 다 무너뜨리고 재건축하면 그뿐이다.장씨 가문이 망해서 누군가는 분명 그 집안 풍수가 나쁘다고 싫어할 것이다.풍수라는 건 똑같은 구조여도 어떤 사람은 입주해서 부도나고 또 어떤 사람은 승승장구하니 싸잡아서 결론을 내릴 순 없다.비즈니스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더 중시하는 편이다.노동명이 절친에게 답장했다.「역시 네 말대로 뜨거운 감자였어. 성기현조차 못 차지했다니까. 그전에 딴 사람이 사 갔대.」「그게 누군데?」누가 이렇게 미친 추진력을 선보인단 말인가.「아직은 몰라. 나중에 알게 되겠지.」전태윤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집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여태껏 구매한 집들은 모두 풍수지리가 좋아서 만사형통할 것이다.게다가 그의 집은 풍수지리 운수 기간이 비교적 길어 운수가 짧고 쇠운에 다다를 때 또다시 사람을 불러 구도를 바꾸고 새 운수를 시작한다.풍수는 돌고 돈다는 말, 바로 이 뜻인 듯싶다. 모든 풍수 패턴에는 운수 연한이 있다.“태윤아, 계속 자. 방해 안 할게.”노동명은 더 이상 그와 이어갈 화젯거리
발 없는 말이 천리 가는 법, 모든 여자의 이상형인 고씨 가문의 주인, 고씨 그룹의 대표가 여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소문이 금세 강성 상류사회에 퍼졌다.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놀라 턱이 빠질 지경이였다.심지어 병원에서 정화의 병간호를 하고 있던 이 가주도 이 소문을 듣고 깜짝 놀랐다.병실 침대 옆에 앉아 있던 그녀는 갑자기 실소를 터뜨리며 말했다.“그런 거였군, 역시 그런 거였어.”갑자기 웃음을 터뜨리며 혼자 중얼중얼하는 아내를 보며 정화는 영문을 몰라 당황해했다.정화는 거세함으로써 수십 년간 해왔던 결혼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고 또 자신의 오랜 희생과 맞바꾼 정가네 재부를 지킬 수 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다. 단지 아내 곁을 지키는 일만 남았을 뿐.하지만 그도 알고 있었다. 비록 수술을 했어도 두 사람의 결혼생활에 생긴 틈은 결국 완벽히 봉합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내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자신의 실체를 아이들에게 까발리지 않고 체면을 지켜준 것이었다.하지만 그녀가 기분이 나쁘면 언제든지 그와 등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니 병상에 누워 있다고 할지라도 여전히 마음을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여보, 무슨 일 있어?”정화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상상도 못 할 빅 뉴스가 있어.”이 가주는 남편의 모습을 보며 웃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십 년이나 늙어 보이는 데다가 이제 남자구실도 못 하는 정화를 바라보자니 이 가주는 깨 고소했다.그녀는 내색하지 않고 남편에게 물었다.“당신이 좋아하는 그 불여우가 고현에게 대시해도 왜 아무런 결과가 없는 줄 알아?”정화는 표정이 굳어지더니 해명에 바빴다.“여보, 나랑 윤정이는 정말 아무 사이 아니야. 사람들이 모함한 거라니까. 그날 밤, 우리 집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는지 여보도 잘 알잖아. 게다가 다들 잘 아는 사람들이고. 윤정이는 내가 딸처럼 생각하는 아이야.”정화는 바람둥이가 분명했다. 바람을 피운 전적도 있고 또 항상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지만 윤정이한테까지
오늘 밤 약속 자리에는 원래 고현이 참석해야 했지만,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오지 못하는 바람에 고빈이 나서서 약속 자리에 참석하게 되었다.고빈은 고현의 쌍둥이 동생으로 여러 방면에서도 매우 훌륭하지만, 고현과 비교하면 능력이 좀 떨어졌다.“제 형이 문제가 생긴 게 아니라 우리 형이 문제를 만드신 거예요. 그리고 그 문제가 저를 찾아온 거죠.”고빈의 말이 끝나자마자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 그는 또 사람들에게 말했다.“또 전화가 왔네요. 왜 우리 부모님께 전화하지 않는지 모르겠어요. 저한테 전화를 걸어 뭐 하려는 건지. 저와 저의 형은 20년 넘게 형제로 살긴 살았지만, 함께 잠을 자 본 적도 없고 함께 샤워도 해보지 못했는데 제가 어떻게 우리 형이 남자인지 여자인지 알겠어요. 저는 어렸을 때부터 형이라고 불렀는데...”고진호 부부가 고빈에게 사실 고현이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었을 때 고빈은 이미 성인으로 되었다.하지만 고빈은 확인한 적 없었다.고진호 부부가 고현이 여자라고 하니 고빈도 그녀가 여자인 줄로만 알았다.‘우리 부모님이 날 속인 건 아니겠지?’“고 대표님은 대체 여자예요? 남자예요?”고빈은 해명했다.“우리 형이 오늘 밤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참석했는데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했네요. 저에게 우리 형이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은 것이 아니냐고 질문하셨는데 우리 형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은 것이 분명해요. 호영 씨도 예전에 우리 형을 위해 치마를 입은 적 있거든요. 두 사람이 똑같은 행동을 한 것으로 보면 정말 한 가족답네요.”고빈은 말을 마치고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진미리가 휴대전화를 꺼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고진호의 핸드폰에도 전화를 걸었지만 역시 꺼져있었다.“어쩐지 저에게 전화가 오더라니, 우리 부모님께서 전화를 꺼놓으신 거였군요. 이미 예상하셨을 거예요.”또 다른 전화가 걸려오자 고빈은 바로 전화를 끊고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버렸다.전화가 터질 것만 같았다.고빈은 전화를 바지 주
“고... 고 대표님, 지금 고 대표님이 여자라고 하신 거죠?”송씨 가문의 딸 송은하는 말을 더듬으며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고현과 송은하는 서로를 쳐다보았다.송은하는 그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아 이 모든 것이 거짓말이라고 고현이 제발 말해줬으면 했다.비록 송은하는 고현을 짝사랑하고 고현의 대답도 받지 못해 단념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현이 남자이기를 바라고 있었다.적어도 자신의 안목이 문제가 없음을 증명하고 싶었다.만약 고현이 정말로 여자라면 송은하의 안목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될 것이고 따라서 고현을 남자로 착각해서 짝사랑하게 된 셈이다.송은하는 생각만 해도 어이가 없었다.그녀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전부 침착할 수 없었다.고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저는 여자예요. 믿지 마실지는 여러분 몫이지만요.”그녀는 더 설명하려 애쓰지 않았다.전호영 때문만 아니라면 고현은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설명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고현은 심지어 전호영의 손을 잡고 높이 들어 모두에게 말했다.“저와 호영 씨는 모두 정상적인 사람이에요. 호영 씨도 게이가 아니고 저도 게이가 아니에요!”많은 사람은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어르신, 제가 아는 지인을 봤는데 얼른 가서 인사드리고 올게요.”고현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소화할 시간을 주려고 했다. 그녀는 익숙히 아는 대표님을 보더니 몸을 일으켜 전호영과 함께 그 대표님께 인사하러 갔다.다만 고현이 인사하러 가는 그 대표도 그녀가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더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고현도 설명하기 귀찮아 태연한 모습으로 모두에게 인사하고 사업에 관해 얘기하고 있었다.예전에 고현은 연회에 참석할 때 다른 사람이 준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전호영과 함께한 뒤로 마시기 시작했다.전호영과 함께라면 하늘이 무너져도 고현은 걱정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 누구에게도 고현을 모함할 기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오늘 밤 사람들은 이 연회를
과연 사실일까?고현은 원래 여자였는데 남자 분장하며 살았다고? 아니면 지금 남자인데도 치마를 입고 여자 행세를 하고 있단 말인가!모두가 고현 때문에 의문을 품었으나 아무도 감히 다가가서 물어보지 못했다.어떤 사람들은 고씨 가문과 사이가 매우 가까웠기에 고진호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고진호 부부는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놓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송국호의 안내로 별장 안으로 들어온 고현은 우아하게 자리에 앉았다.송국호의 며느리 김지윤은 고현을 몇 번이고 쳐다보면서 몇 번이나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전부 배속으로 삼켰다.김지윤과 진미리는 함께 쇼핑도 하고 식사도 해본 사이라 꽤 친한 사이였다.“저한테 하시고 싶은 말 있으면 하셔도 돼요.”고현은 김지윤이 계속 자신을 뚫어지라 쳐다보면서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도 말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먼저 입을 열었다.송국호도 그의 며느리 김지윤을 바라보았다.김지윤은 쑥스러워하며 말을 건넸다.“드레스가 너무 예쁜 것 같아서 그래요. 전 대표님께서 선물하신 건가요? 어디서 제작하신 거예요? 저도 맞추러 가야겠어요.”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제가 선물한 치마가 아니라고 고 아주머니께서 사준 거예요.”전호영이 고현에게 치마를 선물해봤지만, 그녀는 받지 않았다. 그 뒤로 고현이 겨우 전호영에게 치마를 한 번 입어 보이긴 했지만, 그 치마들을 여전히 받지 않았다.고현이 받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에 전호영도 그녀에게 치마를 선물하지 않았다.고현은 오늘 밤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할 계획도 전호영에게 알려주지 않았다. 만약 전호영이 알았더라면 그는 고현에게 더 예쁜 치마 몇 벌을 미리 선물했을지도 모른다.오늘 밤 고현이 입은 이 드레스는 예쁘긴 한데 등도 드러내놓지 않고 너무 보수적이었다. 다른 재벌가 딸들은 어깨나 등을 드러내놓는 드레스를 입었다.김지윤이 되물었다.“고씨 사모님께서 구매한 거라고요?”그녀는 고현이 입은 드레스가 전호영이 선물한 거로 알고 있었다.송씨 가문의 사람들도 남들처럼 고현이
송씨 가문의 어르신 송국호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하지만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아갔다.고현과 전호영은 이미 한 쌍의 커플로 되었다. 그들이 동성애자일지라도 두 가문의 어르신들 모두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좋게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뭔 소용 있으랴!그 또한 두 사람의 자유였다.고현이 여자 분장하든 전호영이 여자로 분장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였다.“전 대표님. 고 대표님.”별장 주인의 성씨는 송 씨로서 이름은 국호였다 그는 팔순이 넘었지만 정정하시고 강성 업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송씨 가문은 업계에서도 명망이 꽤 높은 가문이다. 따라서 송씨 가문의 연회에 고현도 체면을 세워 주어 참석했다.“어르신.”두 사람 모두 예의 바르게 송국호에게 안부를 물었다.송국호는 웃으며 맞이했다.“고 대표님. 전 대표님. 안으로 들어오세요.”그는 두 사람을 별장 안으로 초대하면서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송국호만큼 좋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고현을 가끔씩 힐끗 쳐다보았다.그들은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이 남성 옷을 입은 것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고현은 도도하지만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평소 도도한 모습 때문에 그녀의 특유한 부드러움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여자로 변장하니, 마치 고현의 본래 모습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고현이 여자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현이 여자로 변장했지만, 그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사람을 매혹하는 것도 여전했다.전호영은 고현의 손을 잡고 송국호의 안내로 화려한 별장 안으로 향했다.정원에 서 있던 사람들 전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전호영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이때 어떤 재벌가 딸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저분이 정말 고 대표님이라고요? 내 눈이 멀어진 게 아니죠? 여자로 분장하시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고현이 남자로 분장하는 것이 얼마나 성공적이고 인상 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운전기사와 경호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은 고현은 분명 남자인데 전호영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으니 전호영을 위해 여자로 분장한다고 생각했다.그들은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면, 다들 그들이 눈이 멀었다고 하지 않겠는가?그들이 8년을 따라다니던 대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눈이 먼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경호원들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고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고현은 자신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여 모두를 놀라게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들 그녀가 전호영을 위해 여자 분장을 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아마도 머리를 길러야 할 것 같다고 여겼다.그녀의 긴 머리가 허리에 닿을 때면 사람들은 분명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아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로 변장하기 위해 긴 머리를 기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휴. 어차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고현은 늘 여의치 않았다.어쨌든 그녀가 여자라는 진실을 말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의 몫이었다.연회가 열리는 별장에 도착하자 별장의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별장의 대문도 활짝 열려있었다.그리고 사람들이 별장 정문 앞에서 손님들의 주차를 도와주고 있었다.별장 안에는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러 오신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현마저 체면을 살려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면 오늘 저녁 연회가 엄청나게 크고 호화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모두 강성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며 연회를 주최한 주인도 강성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그런 신분이 아니라면 고현도 체면을 새우 주지 않을 것이다.고현이 자주 타던 그 마이바흐 차는 강성 상류사회 사람들도 익숙히 잘 알고 있다.고현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입구에 있는 사람이 급히 마중 나와 운전 기사에게 별장 안에 주차 공간이 있으니
진미리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전화기가 꺼져도 찾아올 수 있잖아요. 우리가 낳은 사람이 원래 딸이잖아요.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미리는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꺼버렸다.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는 강성 상류층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고현의 경호원들과 고씨 가문의 노동자들도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씨 가문의 집사는 수없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삼켜버렸다.경호원들도 멍한 정신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후,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하지만 경호원들이 전호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불만인 것으로 보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마 전호영이 고현을 비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현에게 여자 행세를 시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호영 이 나쁜 놈이 고현을 괴롭혀도 너무 괴롭힌다고 속으로 욕했을 것이다.하지만 고현과 전호영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느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 경호원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경호원들은 고현은 이미 전호영에게 속아 넘어가 진정한 게이로 되었다고 여겼다.너무 아쉬웠다!고현처럼 훌륭한 회사 대표가 전씨 가문의 전호영에 의해 삐뚤어졌으니 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 일인가!전호영은 신사처럼 고현을 위해 차 문을 열어 그녀가 차에 올라타도록 부축했다. 고현이 부축하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전호영은 부축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경호원들은 눈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정말 전호영을 한바탕 때리고 싶었다.도도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고현은 전호영으로 인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되도록 망가지고 있었다.그나저나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으니 경국지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고현은 성격이 냉담했기에 여자로 변장하면 고귀하고 도도하게 보였다.그녀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경호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호영 씨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호영
고현은 전호영의 팔짱을 끼고 핸드폰을 넣은 가방을 들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우리 출발해요.”“경호원들과 함께 가시겠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건데요?”분명히 그녀는 고현이지만 오늘 밤 여자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이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야만 경호원들의 낯익은 얼굴을 통해서라도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고 꽃에 물을 주고 있던 고진호 부부는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현이 여전히 자신이 고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딸의 짧은 단발머리를 보자 진미리는 결국 한숨을 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가발을 그렇게 많이 샀는데 하나도 착용하지 않는다니... 휴.”진미리는 다시 고현의 발을 보았다. 고현의 치맛자락이 좀 길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걸을 때 무슨 신발을 신고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고현이 여전히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열었다가도 바로 삼켜버렸다.어쨌든 연회에 참석할 사람은 고현일 텐데, 다른 사람이 비웃어도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미래의 사위도 개의치 않은데 진미리가 아무리 걱정해도 뭔 소용 있으랴!진미리는 못 본 척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아저씨, 아주머니.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전호영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고현은 오늘 밤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려고 했다. 그녀는 더는 사람들이 전호영이 동성애자라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이 싫었다.그녀는 그를 위해 치마를 입으려 했다!전호영은 드디어 고현이 그를 위해 여자의 신분을 드러내게 되는 날을 기다려 왔다.전호영이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그는 헤벌쭉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그래, 다녀와.”고진호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