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 여자예요?”그는 사진에 있는 잘생긴 남자를 가리켰다.“그녀와 그의 남동생은 쌍둥이인데, 남매가 똑같이 생겼어. 가족들이 어려서부터 그녀를 남자아이처럼 키운 탓에 외부 사람들은 그녀를 집안의 장손이자 적손이라고 오해하고 있다.”“할머니께선 어떻게 여자인 걸 아셨어요?”허초의 일은 전이진도 들은 적이 있고, 사진도 본 적이 있다. 찬찬히 살펴보지 않으면 허초는 남자처럼 보이지만, 일부러 남자로 꾸민 것은 아니었고 중성적인 차림새를 하고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 사진 속 훈남은 허초와 달리 남자아이로 키워졌고, 일부러 남자 차림새를 하고 있었다. 짙은 눈썹과 날카로운 눈매며, 큰 키에 양복 차림은 누가 봐도 남자로 여길 것이다.전이진이 사진을 뒤집으니 사진 뒤에 상대방의 기본 자료가 있었다.고현, 28세. 현재 고 씨 그룹 회장의 ‘장남’으로서 그룹의 대표직을 맡고 있으며 고 회장의 깊은 신임을 받고 있다. 말수가 적고 말한 대로 하는 행동파이며 골프와 승마를 좋아한다. “할머니, 이게 다예요?”“맞아, 이 정도 자료면 충분하다. 그녀의 성이 무엇이고, 이름이 무엇이며, 몇 살이고, 어디에 사는지만 알면 된다. 더 많은걸 알고 싶으면 직접 알아보거라.”할머니는 그에게서 고현의 사진을 가져오며 말했다.“이건 셋째를 위해 준비한 거다. 고현은 과묵하고 행동파여서 너한테는 어울리지 않고 말솜씨가 좋은 셋째에게 적합하다. 만약 그가 고현과 결혼하게 된다면 앞으로 부부가 재미있게 살 수 있을 거다.”“...할머니, 저도 말을 잘하는데요.”“셋째를 이길 수 있니?”전이진은 말문이 막혔다. 그들 형제 중 셋째의 말솜씨가 제일 좋다.“왜, 고현한테 관심이 있는거냐?”“그건 아니고요... 셋째를 위해 준비한 거라니 다른 사람이 누군지 볼게요.”그는 그제야 다른 사진을 열심히 들여다보았다.한 여자는 얼굴을 거의 가리는 선글라스를 끼고 있어서 눈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리지 않았다. 원래 얼굴이 작은 사람인데 큰 선글라스에 가려 얼굴이 더 작아
“없다. 당분간 너와 셋째의 상대만 골랐어. 나머진 아직 급하지 않다.”“아홉째가 아직 미성년이고, 여덟째가 갓 스무 살이 된 외에, 모두 결혼 나이를 넘었어요. 공정하게 그들도 모두 장가보내셔야죠. 손주며느리가 많아야 증손을 안을 확률이 높아져요.”“난 예정이가 증손녀를 낳아주길 바라고 있다. 그 무당이 말하기를, 예정이는 첫애를 딸을 낳을 팔자라고 했어.”“할머니께서 언제부터 이렇게 미신을 믿으셨어요?”“너 형이 예정이를 정말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다. 그것은 선조 님께서 남기신 현학 지식이니 잘 배운 거면 믿을 수 있다.”전 씨 할머니는 말을 마치고 일어섰다.“너를 방애하지 않을게. 난 예진의 가게에 가보겠다. 오랫동안 우빈이를 보지 못해서 너무 보고 싶구나. 예진의 가게도 개업했겠지?”“형수한테서 말씀 못 들었어요.”“너 형과 형수는 사이가 오랫동안 틀어졌는데, 네가 형도 모르는 일을 형수한테서 들었다면 말이 되겠니?.”전이진은 한참 동안 멍해졌다. 할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곰곰이 생각한 후에야 할머니의 말뜻을 이해했다.형님의 성격에 형님이 모르는 일을 자기가 알고 있다면, 형님이 자기를 어떻게 노려볼지 안 봐도 뻔하다.여자도 질투하는 형이니 그들은 더 말할 것도 없겠지.전 씨 할머니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예정이 회사에 도착했다.그녀는 바쁜 전태윤이 점심을 거를까 봐 미리 점심을 준비해서 왔다.하예정이 차를 전 씨 그룹 입구에 주차하자 그녀를 본 당직 경비원은 날듯이 기뻤다.곧바로 회사 문을 열고 하예정의 차를 들여보낸 다음 얼른 안쪽으로 내선 전화를 걸어 프런트가 전화를 받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사모님께서 오셨습니다.”요즘 대표님께서 심기가 불편하여 회사 전체가 아우성을 치는 것은 바로 사모님 때문이다.오늘, 사모님께서 오셨으니, 그들의 고달픈 생활은 곧 끝날 것이다.물론 보안 부문은 대표님한테 시달리지는 않았지만, 모두가 사모님께서 봄바람처럼 전 씨 그룹
“사모님.”“사모님.”프런트 데스크에 있던 두 직원은 하예정이 들어오자 미소 지으며 깍듯이 인사했다.하예정도 가볍게 웃었다. 프런트 직원은 늘 그녀에게 상냥했다.그중 한 명은 데스크에서 나와 하예정을 데리고 엘리베이터 입구로 가면서 그녀가 들고 있는 도시락통을 힐긋 보았다.“태윤 씨가 요즘 위가 불편해서 도시락 싸 왔어요. 곧 퇴근하죠?”하예정은 일찍 도착했다.프런트 직원이 관심 조로 물었다.“대표님이 위가 불편하시다고요? 그럼 몸조리 잘하셔야겠네요.”대표님은 요즘 매일 일만 하시고 제때 식사를 하지 않았다. 대부분 조 비서가 음식을 포장해서 회사로 가져오는데 그조차도 일이 너무 바빠서 끼니를 거르기가 일쑤였다.이러니 위가 안 아플 수 있나?“네, 이제 곧 퇴근이에요.”프런트 직원이 대답했다.프런트 직원은 하예정을 데리고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간 후 버튼을 누르고 공손하게 그녀를 안으로 모셨다. 하예정은 도시락통을 두 개 들고 엘리베이터에 타서 프런트 직원에게 활짝 웃으며 인사한 후 홀로 맨 위층에 올라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조 비서의 활짝 웃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하예정은 환하게 웃는 얼굴을 마주한 순간 흠칫 머뭇거리더니 조 비서를 몇 번 더 흘겨보며 생각했다.‘이 남자 웃으니까 치아만 보이고 눈이 다 사라졌잖아.’“안녕하세요, 사모님. 저는 전 대표님의 비서 조우진이에요.”“안녕하세요.”하예정도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대표님 지금 시간 되시나요? 저 들어가도 될까요? 방해가 되는 건 아니겠죠?”조 비서가 눈웃음을 지으며 답했다.“그럴 리가요. 노크하고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모님.”그는 대표님께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다만 부대표님이 안에 계십니다.”조 비서가 미리 알려주었다.전이진은 큰형을 찾아와 할머니가 결혼을 다그치는 걸 하소연하고 있었다. 달랑 사진 한 장 주면서 상대가 어떻게 생겼는지, 몇 살인지, 지금 하는 일은 무엇인지 딱 여기까지만 알뿐 다른 건 전혀 모르니
“예정아, 오면 온다고 말을 하지. 내가 내려가서 마중할 텐데.”전태윤은 아내의 손에 든 도시락통을 얼른 건네받았다. 그녀가 조금이라도 힘들까 봐 재빨리 도시락을 책상에 올려놓고 다시 그녀 손을 꼭 잡고는 소파에 가서 앉았다.그는 뜨거운 눈빛으로 하예정을 쳐다봤다.전이진은 한심한 표정으로 큰형을 바라봤다. 만약 눈알을 파서 형수님 몸에 붙일 수만 있다면 큰형은 아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내가 태윤 씨 회사 처음 오는 것도 아닌데 뭘 마중 나와요. 도시락 싸 왔으니까 식기 전에 얼른 먹어요. 매일 제때 밥 먹어야 위병이 나아요.”전태윤이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고마워, 여보.”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방긋 웃는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으며 덩달아 웃었다.“태윤 씨 회사에서 오늘 보너스라도 줬어요? 차에서 내려서부터 보는 사람마다 눈웃음을 짓고 있는데 다들 진심으로 우러나온 그런 미소였어요.”전이진이 웃으며 한마디 끼어들었다.“형수님이 오신 건 보너스 받는 것보다 훨씬 기쁜 일이에요.”전태윤은 동생을 노려봤다.와이프가 도시락을 챙겨왔는데 동생이란 놈은 왜 저렇게 눈치도 없이 서 있기만 하는 건지, 얼른 꺼졌으면 하는 바람이었다!“도련님, 도시락통 이리 가져다주실래요? 제가 음식을 많이 담아와서 두 분 함께 먹어도 충분해요.”전이진은 재빨리 책상 위의 도시락통을 들고 소파 쪽으로 갔다. 그는 자리에 앉아 탁자에 도시락을 내려놓고 뚜껑을 열려고 하는데 전태윤이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순간 전이진은 동작을 멈췄다.전태윤은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에 짙은 눈길로 동생을 한껏 째려봤다.형의 따가운 시선에 전이진은 불편해서 죽을 지경이었다.“형, 그러니까 그게, 형수님이 얼마나 맛있는 음식을 해왔는지 내가 대신 봐주려고 뚜껑을 연 거야.”형의 따가운 시선에도 전이진은 꿋꿋이 도시락 뚜껑을 열고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맨 위의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순간 그는 형수님의 음식 솜씨에 감탄을 연발했다.“냄새만 맡아도 벌써 군침 돌아.”전이진은 도
그랬던 그가 지금 사진을 보려고 하는 이유는 하예정이 바로 옆에 있기 때문이다.새로운 가십거리가 생겼는데 아내에게 보여주고 들려줘야 하지 않겠는가.전이진도 바로 눈치챘다. 큰형은 지금 그와 호영의 혼사를 가십거리로 삼아 형수님께 들려주려는 속셈이다.큰형은 형수님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 동생들까지 팔아버렸다.전이진은 사진 두 장을 건네며 속으로 못난 자신을 비웃었다. 큰형은 지금 그를 팔아버리며 형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데 순순히 협조나 하고 있다니.만약 이후에 연애하다가 트러블이 생겨서 큰형과 형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 이들 부부가 조건 없이 그를 돕길 바랄 뿐이다.‘퉤퉤,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내 연애는 틀림없이 순조로울 거야. 초고속 결혼도 아니고 비밀 결혼도 아니고 신분을 숨기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니 분명 순조로울 거라고.’“무슨 사진인데요?”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의 관심을 끌어모았다.전태윤은 보물이라도 내놓듯이 사진 두 장을 선뜻 건네며 설명했다.“글쎄 할머니가 우리 손주들의 혼사 때문에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모른다니까. 저번에 사방으로 돌아다니셨잖아. 그거 다 이진이랑 호영이한테 어울리는 신붓감을 찾아주려고 그러신 거야.”전호영은 전씨 일가 셋째 도련님이자 전태윤의 셋째 삼촌네 장남이다. 현재 전씨 그룹 산하의 모든 호텔 업계를 책임지고 있고 뛰어난 언변에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다.하예정은 전씨 일가 남자들에 대한 인상이 매우 깊었다. 다들 하나같이 잘생겼으니까.그녀는 사진을 보면서 말했다.“할머니도 그냥 있기 지루해서 도련님들 혼사를 신경 쓰시는 거예요. 도련님들 조건으로 결혼할 마음만 있다면 여자들이 줄지어 시집오고 싶어 할 텐데 말이죠.”다만 이 집안의 훌륭한 남자들은 확실히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다.작년에 그녀와 전태윤이 초고속 결혼할 때 전태윤은 서른 살이고 전이진은 형보다 한 살 어려서 지금은 곧 서른이 돼간다. 일반인들은 이 나이에 이미 아빠가 다 되었다.“할머니는 이진 도련님이랑 호영 도련님에
전이진은 호영의 키가 190인 걸 생각하며 그제야 할머니의 결정을 이해했다.그는 180도 채 안 되는 고작 176이라 고현과 함께 서면 그녀의 키가 훨씬 더 크다.아홉 형제 중에서 셋째가 키가 제일 크다.“아무리 남장을 해도 들키기 마련이죠. 여자는 목젖이 선명하지 않잖아요.”하예정은 고현의 사진을 빤히 쳐다보며 문득 이 여자에게 호기심이 생겼다. 대체 왜 20년 넘게 남장을 하고 지냈을까?“예정아, 목젖은 가짜로도 만들 수 있어.”“...”그녀는 여전히 식견이 너무 적었다.“허초는 또 누구예요?”하예정이 궁금해하며 물었다.이에 전태윤이 적극적으로 설명해 주었다.“A시 허씨 그룹의 대표야. 이분은 좀 짠해. 여동생 한 명 빼고 가족들이 전부 죽었어. 그래서 마지못해 가업을 물려받은 거야. 여태껏 모진 고생을 하며 살아왔을 거야. 수수한 외모에 수년간 중성적인 차림이라 그냥 보면 남자 같아. 이젠 두 자매가 모두 결혼했고 허초도 여성미가 물씬 풍겨. 아 그리고 허초랑 결혼한 남자는 A시 갑부 집안 큰 사모님의 큰 오빠야. A시 갑부 집안의 큰 도련님 예준성은 예준하의 친형이지. 준하는 전에 너도 봤지? 예씨 일가의 다섯째 도련님 말이야. 그 집안의 스토리는 내가 나중에 시간 나면 상세하게 알려줄게. 마찬가지로 드라마틱한 스토리야. 우리 전씨 그룹과 예진 그룹은, 예진 그룹이 바로 예씨 일가의 가족기업이야. 우리 두 그룹은 깊은 협력 관계라 이제 시간 내서 너 데리고 한번 만나 뵈러 A시에 가야겠다.”두 그룹은 서로 다른 도시에 있지만 깊은 협력 관계를 맺고 있다. 전태윤은 한때 하예정의 일로 예준성에게 찾아가 조언까지 구했다. 비록 생각했던 것보다 효과가 좋지 않지만 적어도 전태윤은 용기 내어 정체를 밝히고 한동안 모진 비바람을 견뎠다. 그리고 현재 비 온 뒤 무지개가 활짝 핀 것만 같았다.전태윤은 예준성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나중에 하예정을 데리고 A시의 예진 리조트에 가기로 했다. 그녀에게 예씨 일가 사모님 모연정을 소개해 주면 인맥이
전태윤과 전이진은 동시에 속으로 구시렁댔다.‘할머니는 자신 없는 일은 안 하셔.’전태윤은 와이프의 손에서 여운초의 사진을 건네받고 전이진에게 돌려주며 또다시 그를 째려봤다.“형, 형수님, 저 먼저 갈게요. 두 분 계속 얘기 나누세요. 형, 배불리 많이 먹어야 해!”삐돌이!형수님이 분명 두 형제가 충분히 함께 먹을 양이라고 했는데 큰형이 기어코 그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았다!그는 마지못해 핑계를 둘러대며 자리를 떠났다. 형이 쪼잔해서 그를 못 먹게 한다는 걸 절대 형수님께 들켜선 안 된다.전이진이 떠난 후 사무실에 그들 부부만 남았다.“예정아, 넌 밥 먹었어?”“다 먹고 나서 도시락 싸 왔죠.”하예정은 절대 굶을 리가 없다.전태윤이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으려 하자 그녀가 젓가락으로 가볍게 내리쳤다.“대체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손으로 음식을 집어 먹어요.”하예정은 그에게 젓가락을 건넸다.“얼른 먹어요. 이따가 다 식으면 결국 또 위 버려요.”전태윤은 젓가락을 건네받고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봤다.“여보, 그럼 나 먹는다?”“얼른 먹어요.”전태윤은 사양하지 않고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예정아, 오늘 몸은 좀 어때? 배 아프지 않아?”“아니요. 당신이 끓여준 대추차를 마시니 이번엔 전혀 복통이 없어요.”전태윤이 알겠다며 대답한 후 떠보듯이 물었다.“예정아, 우리 시간 되면 처형네 집에 가서 네 짐을 다 가져올까?”“나 언니 집에 짐이 얼마 없어요. 갈아입을 옷 몇 벌 뿐이니 안 가져와도 돼요. 그냥 거기 놔둘래요. 언니 집에 가서 지내고 싶을 때 아무 때나 가도 되잖아요.”전태윤이 웃으며 답했다.“그래. 내가 새 옷 몇 벌 더 사줄게.”“사지 말아요. 옷이랑 신발, 드레스를 사느라 모아둔 적금이 거의 다 거덜 났어요. 내 옷장은 이미 새 옷으로 꽉 찼다고요.”그녀는 이모와 함께 사교활동에 많이 참가해야 한다.이모와 성소현 두 모녀의 까다로운 눈높이에 맞춰 그녀는 어쩔 수 없이 새 옷을 엄청 많이 샀다.이모는 그녀가 인제
전태윤은 배불리 먹은 후 하예정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대충 한마디 물었다.저번에 성기현을 만날 때까지만 해도 그들 부부가 결혼한 지 몇 년이 됐는데 아직 아이가 없다고 하더니 어느덧 유청하가 임신했다.전태윤은 하예정이 대체 언제 임신할지 궁금했다.사실 그는 아이가 급한 게 아니라 아이를 만드는 그 과정을 즐길 뿐이다.오랫동안 솔로로 지냈으니 온몸의 세포가 요동치고 하예정을 갖고 싶어 피가 들끓는다.다만 아쉽게도 당분간 또 스님으로 지내야 한다.그는 하예정의 손을 높이 들고 다친 손가락이 거의 회복된 걸 확인하더니 고개 숙여 부드럽게 그녀의 다친 손가락에 키스했다.그의 잘못으로 하예정이 다쳤으니까.“언니한테 말했더니 언니가 영양제를 사주겠대요. 경험자라 나보다 아는 게 많아요. 언니가 다 사면 우리 함께 새언니 뵈러 가요.”유청하가 임신하자 하예정은 진심으로 사촌 새언니를 대신해 기뻤다.“그래 그럼. 처형 영양제 사는데 쓴 돈 내가 보내줄게.”하예정이 머리를 끄덕였다.“예정아.”“할 얘기 있으면 해요.”“그냥 불러보고 싶었어. 네 목소리 듣고 싶어서.”전태윤은 두 팔을 벌려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 가녀린 몸이 그의 품에 쏙 안겼다.“예정아, 넌 모를 거야. 널 찾아가지 못한 그 며칠 동안 내가 널 얼마나 미치도록 그리워했는지.”하예정은 그의 품에 나른하게 기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리움을 호소하는 그의 얘기를 들어주었다.전태윤이 힘들어할 때 실은 그녀도 무척 힘들었다.물론 그와 비기면 훨씬 나은 편이다.“다들 식사하는 틈에 푹 쉬고 있어요. 머리가 맑아야 오후에 계속 막중한 업무를 처리하죠.”“나랑 함께 쉬어주면 안 돼?”하예정은 그의 품에서 고개를 들고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끝내 머리를 끄덕였다.전태윤은 기쁜 마음에 곧장 그녀를 안고 휴식실로 들어갔다.부부가 다시 애틋함을 되찾았을 때 하예진은 한창 가게에서 아들에게 밥을 먹이다가 전씨 어르신을 맞이했다.“할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세요?”하예진은 그릇을 내려놓고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