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아, 네가 결심을 내렸으니 이 언니가 목숨을 걸고 너를 보좌할게. 너와 함께 우리 엄마를 모시고 연기하러 갈게. 그런 자리는 바로 연기하는 자리 아니겠어?”이경혜는 정말 이 골칫덩이 딸 때문에 화병이 날 것 같았다.하예정이 웃었다.“언니도 사업하는 것을 배우기로 결심했으니 참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아요.”“소현이가 너의 절반만 생각해도 난 더 바랄 것 없겠는데.”이경혜는 딸을 두고 어쩔 방법이 없었다. 물론 딸에게는 충분한 자본이 있기 때문에 남에게 잘 보일 필요 없이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있다.“전 소현 언니의 이런 솔직함이 좋아요.”성소현은 의기양양해서 턱을 치켜들며 엄마에게 말했다.“엄마, 보세요, 엄마는 예정이가 나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지만, 예정이는 또 내가 낫다고 생각해요.”“넌, 누가 조금만 칭찬하면 하늘 높은 줄 모르니, 원.”세 사람이 웃고 떠드는 소리와 주우빈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섞인 방은 즐거움으로 가득 찼다.잠시 후, 도우미 한 명이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사모님, 식사 준비되었습니다.”이경혜는 응하고 나서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식사하고 나서 위층으로 올라가 소현의 드레스 좀 입어보아라. 어떤 스타일이 맞는지 보자. 내가 드레스 몇 벌 맞춰줄게. 오후엔 머리하러 가고. 네가 전 대표의 생활방식에 적응하기로 결심했으니, 무조건 변해야 한다. 네가 배우려고 하는 것들은 너의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거야. 예의범절은 내가 천천히 가르쳐 줄게. 넌 똑똑한 아이니까 한번 가르치면 될 거라고 믿어.”하예정은 이모의 지시에 따랐다.이모의 길을 복제할 수는 없지만, 자신을 더 훌륭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면 적어도 전태윤의 발목을 잡지 않을 수 있다.“우빈아, 밥 먹으러 가자.”이경혜가 주우빈을 안았다. 그녀는 여동생이 어렸을 때랑 많이 닮은 주우빈을 정말 예뻐했다. 만약 우빈이가 치마를 입으면 동생이랑 더 닮았을 텐데.“엄마, 새언니는 집에 없어?”“요즘 몸이 안 좋아서 병원에 보이러 갔어
이경혜는 조카딸을 바라보며 말했다.“전 대표를 알고부터 그가 우리 집에 온 건 처음이다.”하예정은 주우빈에게 음식을 집어주며 담담하게 말했다.“뭔가 찔리는 게 있는가 보죠.”“여기까지 온 걸 보니 그런 것 같구나. 이모도 그 자식이 너를 속인 건 화가 났지만, 그가 너에 대한 진심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네가 전 대표를 알게 된 건 몇 개월이지만, 내가 그를 알게 된 건 10여 년이니 너보다 그에 대해 더 잘 알지.”전씨 가문에서 아이들을 매우 엄밀히 보호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성인이 되어 상업계에 진출하기 전까지 외부에서는 그들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며, 그들은 일반 가정의 아이들과 다름없는 매우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그래서 이경혜가 전태윤을 실제로 알게 된 시간이 10여 년이라고 말한 것이다.당시 전태윤은 이미 전씨 그룹에 들어가 경험을 쌓았고, 그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의해 상업계의 성대한 연회에 참석하면서부터 정식으로 모습을 드러냈다.그가 전씨 그룹을 인수한 후, 까탈스러운 성격 때문에 그에게 호감을 가진 수많은 젊은 아가씨들을 막으려고 곁에 늘 덩치 큰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닌다는 것, 전씨 가문 큰 도련님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것뿐이다.이경혜는 전태윤을 20살부터 30살이 넘은 지금까지 지켜봤지만, 그는 정말 스캔들을 일으킨 적이 없었다.전씨 그룹 산하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도 있고, 계약한 연예인들이 매우 많다. 많은 여성 모델이 운 좋게도 전태윤을 만나서, 어떻게든 전태윤과의 스캔들을 퍼뜨리려고 해도 기회를 주지 않는다. 수단이 좀만 과격하면 아예 연예계에서 매장해 버린다.앞날을 망친 전례를 보고는 누구도 감히 전태윤을 건드리는 연예인이 없었다.관성 상류사회의 명문가 아가씨 중에 전태윤을 짝사랑하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성소현도 몇 년 전 전태윤에게 첫눈에 반해 수년간 짝사랑에 빠졌고, 한때 사랑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생각을 하다가 끝내 내려놓지 못하고 용감하게 고백하며 공개적으로 대시한 것이었다. 관성의 수많은 명
성소현은 전태윤이 오는 것이 전혀 신경 쓰이지 않는 듯 밥을 먹고 있었다.엄마가 자신을 쳐다보자, 그녀는 고개를 들고 말했다.“엄마, 나를 봐서 뭘 해요. 조카사위가 온 거지 엄마 사위가 온 것도 아닌데. 엄마 사위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으니, 저를 몇 년 더 먹여 살려야 해요.”“네가 시집가기 싫으면 엄마가 평생 먹여 살릴게.”“믿고 싶지 않아요, 난 올해 스물일곱 살이니 반올림하면 서른 살이에요. 난 엄마가 효진이 엄마처럼 내가 좋다고 쫓아다니는 남자만 있으면, 나를 시집보내지 못해 안달하실까 봐 걱정돼요.”효진이 엄마가 바로 그러지 않았는가?물론, 소정남은 아주 훌륭하고 말주변도 좋아서 심씨 가족을 완전히 자기편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하루빨리 효진이와 결혼 신고하게 하는 일만 남았다.“엄마, 조카사위가 보고 싶으면 빨리 들어와 식사를 같이하자고 하고, 싫으면 내가 나가서 쫓아낼게요, 나를 사촌 처형이라고 부르면 봐줄 수도 있는데.”“...”결국, 하예정이 나갔다.처음으로 성씨 저택을 방문하는 전태윤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오지 않고 강일구만 데리고 조용히 왔다.전태윤은 차 안에서 기다리지 않고 차에서 내려 별장 입구에 서서 기다렸다.도우미가 들어가서 통보한 지 한참 지나도 아무도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조금도 불쾌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강일구와 운전기사는 전태윤이 사 온 선물을 들고 옆에 서서 같이 기다렸다.라이벌 관계로 몇 년 동안 서로 대치하다가 갑자기 친척 관계가 되었으니, 전태윤이든 성기현이든 서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들이 일을 크게 벌이려면, 다소 서로를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전태윤이 비록 예전에 친척은 친척일 뿐이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라고 냉정하게 말했지만, 많은 사람은 전태윤과 성씨 그룹의 관계가 과거처럼 긴장하지 않고 전씨 그룹이 성씨 그룹에 숨 돌릴 틈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물론, 만약 성씨 그룹이 전씨 그룹을 이용해서 이득을 챙기려고 한다면, 전씨 그룹은 조금도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어쨌든, 두
“타이밍 잘 골라 오셨네요. 마침 밥 먹으려던 참이에요.”하예정은 전태윤을 도와 별장의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전태윤은 뻔뻔스럽게 응했다.“응, 나도 밥 얻어먹으러 온 거야.”“참... 오시느라 수고하셨어요!”그가 자신을 위해 성씨 가문까지 찾아온 것을 보며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도 완전히 화가 풀린 건 아니지만, 그가 자신을 위해 변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전태윤은 깊은 눈빛으로 하예정을 바라보며 말했다.“당신이 신경 쓰는 사람이라면 나도 무조건 존경할게. 어떤 곳이든지 그곳에 당신만 있다면, 난 아무것도 두려울 게 없어.”“우리 이모 집을 그렇게 무섭게 형용하지 말아요, 이모는 아주 좋은 분이에요. 아 맞다, 소현 언니도 지금 집에 있어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한마디 주의를 주었다.그녀는 전태윤이 성소현에게 아무런 관심도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태윤의 말에 의하면 자신은 성소현의 감정을 받아들인 적이 없고, 아무런 약속도 한 적이 없다고 한다. 성소현이 전태윤을 좋아하고 추구하는 것은 그녀의 개인적인 행동이고 자유이지 그와는 무관하다.하예정은 전태윤이 어색해할까 봐 먼저 귀띔한 것이다.“알았어.”전태윤은 성소현이 집에 있다고 해서 집에 들어갈 엄두를 못 낼 사람이 아니었다.그는 하예정과 나란히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이모는 뭘 좋아하셔?”“나도 이모가 뭘 좋아하시는지 몰라서 보양식을 대충 사 왔어요.”하예정은 강일구와 기사가 들고 있는 물건을 흘끗 보더니 말했다.“이모는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을 거예요. 그러니 당신은 예의만 차리면 돼요.”전태윤은 웃으며 말했다.“당신이 친정 식구로 생각하는 연장자는 이모뿐이잖아, 처음 찾아뵐 때 최선을 다하는 게 좋을 거로 생각해.”하예정는 고향 친척들에 대해 원한을 품고 있다.고향 친척들도 하예정을 귀찮게 하고 발목만 잡을 뿐이다.며칠 전 하영감이 아들과 손자들을 데리고 하예정을 찾아와 돈을 요구하다 거절당한 후로부터 그 사람들은 뻔뻔하고 파렴치
꼬마 녀석은 얼굴에 밥알이 가득했고 테이블에도 밥알을 가득 떨어뜨렸다. 이경혜 모녀는 그의 독립성을 키워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간여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잘하지 못하더라도, 손을 많이 쓰면 방금 능숙해져 점차 잘할 수 있을 것이다.이제 몇 달 후면 주우빈은 만 3세가 되니 스스로 밥을 먹게 해야 한다.전태윤은 주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은 후, 이경혜한테 인사했다.“이모님.”성씨 가문 사모님은 응하고 온화한 목소리로 전태윤을 맞이했다.“왔어? 어서 와서 식사해.”도우미들이 진작에 전태윤에게 그릇과 젓가락을 준비했다.전태윤은 이경혜한테 인사를 한 후, 예전처럼 자신을 반기지 않고 밥만 열심히 먹고 있는 성소현를 보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누님, 안녕하세요!”“풉! 콜록콜록.”성소현은 밥알을 내뿜더니 사레에 걸려 기침했다.성소현 바로 옆에 앉아 있던 이경혜는 딸에게 급히 국그릇을 건네주며 말했다.“국물 좀 마셔.”성소현은 그 국을 받아 몇 모금 들이켜고 나서야 기침을 멈추었다.그녀는 자신이 내뿜는 밥알을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이렇게 추태를 부린 적이 처음이니 말이다.특히 맞은편에 앉아 환하고 큰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주우빈을 보며 얼굴이 더 빨개졌다.사촌 이모가 내뿜은 밥알이 자신의 작은 그릇에 들어가기라도 할까 봐 심지어 통통한 손으로 막기까지 하고 있다.“전태윤 씨! 당신 때문에 나 정말 죽을 뻔했어요!”성소현 앞에 있는 몇 가지 요리는 모두 버리게 되었고, 도우미들은 서둘러 그 요리들을 치우고는 요리사에게 몇 가지 요리를 더 하라고 했다.아무래도 전씨 가문의 도련님이 오셨으니.비록 하씨 자매는 성씨 가문의 외가 친척이지만 아무도 감히 얕잡아 보지 못한다. 존귀한 신분을 지닌 전씨 가문의 도련님은 더 말할 것도 없다.도우미들이 테이블을 깨끗이 닦고 나서야 성소현의 상기된 얼굴이 회복되었다.전태윤은 태연하게 하예정의 옆자리에 앉으며 말했다.“사촌 처형이 저번에 그랬잖아요. 예정이는 한 살 많은 당신을 언니라고 부르고 있으니
이경혜는 딸을 보며 웃으며 말했다.“아마도 우빈이는 네 향수 냄새가 싫은가 봐. 자, 얼른 밥이나 먹어. 세 살짜리 아이와 다투지 말고.”성소현이 팔을 들고 직접 맡아보니 향수 냄새가 약간 나는 것 같았다.꼬마 녀석은 이것이 향수 냄새인지도 모르니 다른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악취가 난다고 오해할 수도 있다.“그럼, 이제 향수 안 쓸래요, 돈도 절약하고 좋죠 뭐.”하예정도 웃으며 말했다.“우빈이가 아직 어려서 아무 소리나 막 한거니 마음에 두지 말아요.”“어린애가 한 말이라서 진심인 거야.”성소현은 주우빈이 한 말이 마음에 걸렸다.특히 그녀는 꼬마 녀석을 그렇게나 좋아하고 있는데 정작 꼬마 녀석은 냄새가 난다면서 싫어하니...“자, 이제 밥 먹자.”이경혜는 웃으며 딸아이를 지켜보았다. 그녀는 이제 나이도 들고 하여 향수보다 자연스러운 것을 더욱 좋아하지만, 아직 어린 딸은 향수를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다.“따로 준비한 거 없이 다 흔히 먹는 가정식 요리들인데 입에 맞을는지 모르겠어.”이경혜는 전태윤에게 친절하게 말했다.요리사가 준비한 것은 가정식 요리가 맞았다. 그중 야채들은 집 마당에서 직접 재배한 것이다.전태윤이 바로 말을 받았다.“저는 가리는 거 없이 뭐든 다 잘 먹어요.”그의 말에 이경혜 모녀는 마음속으로 투덜거렸다.‘헐... 편식하지 않는다고?’한때 전태윤을 짝사랑했던 성소현은 그의 취향을 낱낱이 알고 있다. 전태윤은 결벽증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입도 까다로웠다.그는 자신이 음식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그것은 그 자리에 하예정도 있기 때문이다.식사할 때 전태윤은 사랑하는 와이프를 유심히 지켜보며 가끔 도와 음식을 집어주었고,주우빈이 쳐다보자 꼬마 녀석에게도 음식을 집어주었다.덕분에 배부르게 먹고 마신 주우빈은 이경혜를 향해 말했다.“이모할머니, 음식이 아주 맛있어요. 우리 엄마와 이모가 요리한 것만큼 맛있어요.”“그럼, 우리 우빈이 앞으로 이모할머니네 집에 자주 와서 밥 먹어, 알았지?”주우빈은 고개를 끄덕이
전태윤은 비록 마음속으로 하예정이 현 상태를 유지하며 바쁘지 않게, 즐겁게 지내기를 바랐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하예정이 그로 인해 열심히 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마음 아프기만 했다.하지만 그더러 손을 놓으라고 하면, 그는 또 불가능했다.그는 평소에 가끔 연회에 참석하는데 보통은 모습을 드러내고 곧 떠나가곤 한다. 전씨 집안의 여성들도 연회에 얼굴을 내밀기만 하면 모두가 아첨하고 떠받들기만 하였지 절대 천대를 받는 일은 없었다.그러나 한 가지 무시할 수 없는 점이 있는데, 바로 그의 어머니와 숙모들은 모두 명문가 출신이라는 것이다.그들은 전씨 가문과 맞먹는 가문에서 자라왔다.하예정의 처지를 생각하자 전태윤은 점차 그녀의 고집을 이해하게 되었다.전태윤이 슬며시 하예정의 손을 잡자, 그녀는 이모 앞에서 그의 체면을 세워줘야 한다고 생각하며 그 손을 뿌리치지 않았다.전태윤은 아무 말 없이 하예정의 손을 꼭 잡고 있기만 했다.한참 후 일이 바쁜 그는 먼저 회사로 떠날 수밖에 없었고, 하예정은 주우빈을 데리고 그를 밖에까지 배웅해 줬다.와이프와 몇 마디라도 더 하고 싶었던 전태윤은 느릿느릿 걸었다.“내가 당신에 대한 이해가 아직 부족한 것 같아. 당신을 더 잘 이해하도록 노력할게.”전태윤은 온화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난 이런 당신이 너무 가슴 아파. 만약 힘들고 적응하기 어렵다고 생각되면 언제더라도 포기하고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 어떤 연회에도 참석하지 않아도 돼, 하지만 난 절대 당신이 없으면 안 돼. 당신은 나의 와이프로서 누구의 눈치를 보며 살 필요가 없어.”“아무도 나한테 눈치를 주려 하지 않아요, 다만 당신의 발목을 잡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에요.”전태윤은 걸음을 멈추더니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관성에서 내 명성도 그리 좋은 건 아니야, 하지만 내가 언제 그런 것들을 신경 썼어? 내 와이프는 어떤 출신이든 간에 나만 좋다 하면 되는 거야, 다른 사람들은 우리 집안일에 참견할 자격이 없어.”
“그럼 먼저 가볼게.”그는 아쉬운 모습으로 성씨 별장을 떠나 하예정의 눈에서 사라졌다.주우빈은 이모부가 꼬집은 곳을 만지작거리며 하예정에게 물었다.“이모, 이모부는 왜 날 들러리라 불러요? 나는 주우빈이지 들러리라 부르지 않아요.”하예정은 그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며 부드럽게 말했다.“그건 이모부가 우빈이랑 장난치느라 한 말이야. 우리 우빈이는 들러리가 아니라 회복제야.”하예정과 전태윤이 만날 때 만약 주우빈이 옆에 있으면 둘은 저도 모르게 자신의 성질을 자제하며 충돌을 피하려 하게 되는데 이는 부부의 감정과 신뢰 회복에 도움이 된다.그들은 아이의 심신 건강을 아주 중요시하기에 주우빈이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그들의 회복제가 될 수 있었다.“우빈이는 그저 우빈이예요!”“알았어, 알았어. 우빈이 맞아. 우빈이고 말고.”주우빈은 그제야 만족했다.그는 들러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회복제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단지 자신의 이름은 주우빈이고, 다들 자신을 우빈이라고 부른다는 것밖에 모르고 있다.집에 돌아오자, 이경혜는 하예정을 보고 자신을 따라 위층에 있는 성소현의 라커룸으로 오라 했는데 거기엔 성소현의 옷으로 가득 차 있었다.“넌 소현이랑 키와 몸무게가 비슷하니 먼저 소현이의 옷을 입어봐. 이모가 어떤 옷이 너한테 어울리는지 봐야겠어. 네가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우아함을 돋보일 수 있는 옷으로 골라줄게.”하예정이 저도 모르게 성소현을 쳐다보자, 성소현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넌 그냥 우리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면 돼. 우리 자매 아니야? 마음에 드는 게 있으면 그냥 가져다 입어. 그리고 여기 있는 대부분 옷은 살 때는 마음에 들어서 샀는데 정작 사 온 후엔 여기다가 걸어놓고 한 번도 입어본 적이 없어. 네가 나를 도와 분담해 주면 난 고마울 따름이지 뭐. 그럼 새 옷 살 구실도 생겼잖아.”하예정은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성소현은 누군가를 좋아하면 간이라고 꺼내주려 하는 성격이며 부잣집 아가씨티는 조금도 없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
송씨 가문의 어르신 송국호도 멍하니 서 있기만 했다.하지만 그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변함없는 표정으로 앞으로 나아갔다.고현과 전호영은 이미 한 쌍의 커플로 되었다. 그들이 동성애자일지라도 두 가문의 어르신들 모두 의견이 없었기 때문에 외부 사람들이 좋게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뭔 소용 있으랴!그 또한 두 사람의 자유였다.고현이 여자 분장하든 전호영이 여자로 분장하든 그건 그들의 자유였다.“전 대표님. 고 대표님.”별장 주인의 성씨는 송 씨로서 이름은 국호였다 그는 팔순이 넘었지만 정정하시고 강성 업계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었다.송씨 가문은 업계에서도 명망이 꽤 높은 가문이다. 따라서 송씨 가문의 연회에 고현도 체면을 세워 주어 참석했다.“어르신.”두 사람 모두 예의 바르게 송국호에게 안부를 물었다.송국호는 웃으며 맞이했다.“고 대표님. 전 대표님. 안으로 들어오세요.”그는 두 사람을 별장 안으로 초대하면서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송씨 가문의 사람들은 송국호만큼 좋은 정신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에 고현을 가끔씩 힐끗 쳐다보았다.그들은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이 남성 옷을 입은 것보다 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다. 고현은 도도하지만 부드러운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평소 도도한 모습 때문에 그녀의 특유한 부드러움을 가리고 있었던 것이다.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여자로 변장하니, 마치 고현의 본래 모습인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심지어 고현이 여자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고현이 여자로 변장했지만, 그 분위기는 여전히 차가웠고 사람을 매혹하는 것도 여전했다.전호영은 고현의 손을 잡고 송국호의 안내로 화려한 별장 안으로 향했다.정원에 서 있던 사람들 전부 두 사람을 쳐다보고 있었다.전호영 일행이 집 안으로 들어갔을 때야 사람들은 정신을 차렸다.이때 어떤 재벌가 딸이 눈을 비비며 말했다.“저분이 정말 고 대표님이라고요? 내 눈이 멀어진 게 아니죠? 여자로 분장하시니 더 아름다워 보이는
고현이 남자로 분장하는 것이 얼마나 성공적이고 인상 깊은지 알 수 있을 것이다.운전기사와 경호원들은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은 고현은 분명 남자인데 전호영과 동성연애를 하고 있으니 전호영을 위해 여자로 분장한다고 생각했다.그들은 보기 싫어도 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면, 다들 그들이 눈이 멀었다고 하지 않겠는가?그들이 8년을 따라다니던 대표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는 눈이 먼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다.경호원들이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고현은 울지도 웃지도 못했다.고현은 자신이 여자 신분을 회복하여 모두를 놀라게 할 것으로 생각했지만 다들 그녀가 전호영을 위해 여자 분장을 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아마도 머리를 길러야 할 것 같다고 여겼다.그녀의 긴 머리가 허리에 닿을 때면 사람들은 분명 그녀가 여자라는 것을 믿을 것이다..아니다. 나중에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을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여자로 변장하기 위해 긴 머리를 기른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휴. 어차피 남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고현은 늘 여의치 않았다.어쨌든 그녀가 여자라는 진실을 말했으니 믿거나 말거나 사람들의 몫이었다.연회가 열리는 별장에 도착하자 별장의 주위에는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로 가득 차 있었고 별장의 대문도 활짝 열려있었다.그리고 사람들이 별장 정문 앞에서 손님들의 주차를 도와주고 있었다.별장 안에는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러 오신 손님을 접대하는 사람도 있었다.고현마저 체면을 살려 연회에 참석하는 것으로 보면 오늘 저녁 연회가 엄청나게 크고 호화롭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연회에 참석하는 사람들도 모두 강성의 명망 있는 사람들이며 연회를 주최한 주인도 강성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그런 신분이 아니라면 고현도 체면을 새우 주지 않을 것이다.고현이 자주 타던 그 마이바흐 차는 강성 상류사회 사람들도 익숙히 잘 알고 있다.고현의 차가 다가오는 것을 보더니 입구에 있는 사람이 급히 마중 나와 운전 기사에게 별장 안에 주차 공간이 있으니
진미리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전화기가 꺼져도 찾아올 수 있잖아요. 우리가 낳은 사람이 원래 딸이잖아요. 두려울 게 뭐가 있어요.”말은 이렇게 했지만, 진미리는 결국 휴대전화를 꺼내 전원을 꺼버렸다.오늘 밤 연회에 참석하는 강성 상류층 사람들이 얼마나 놀랄지는 말할 것도 없고 고현의 경호원들과 고씨 가문의 노동자들도 고현이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씨 가문의 집사는 수없이 말을 하려고 했지만 결국 삼켜버렸다.경호원들도 멍한 정신 상태에서 정신을 차린 후, 무언가 말을 하고 싶었지만 결국 아무도 감히 말을 꺼내지 못했다.하지만 경호원들이 전호영을 바라보는 눈빛이 매우 불만인 것으로 보면 그들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아마 전호영이 고현을 비뚤게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고현에게 여자 행세를 시켰다고 생각할 것이다. 전호영 이 나쁜 놈이 고현을 괴롭혀도 너무 괴롭힌다고 속으로 욕했을 것이다.하지만 고현과 전호영이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느 사랑하는 연인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 경호원들은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경호원들은 고현은 이미 전호영에게 속아 넘어가 진정한 게이로 되었다고 여겼다.너무 아쉬웠다!고현처럼 훌륭한 회사 대표가 전씨 가문의 전호영에 의해 삐뚤어졌으니 이 얼마나 해를 끼치는 일인가!전호영은 신사처럼 고현을 위해 차 문을 열어 그녀가 차에 올라타도록 부축했다. 고현이 부축하지 않아도 된다는데도 전호영은 부축해야 한다고 고집했다.경호원들은 눈이 망가질 것만 같았다. 정말 전호영을 한바탕 때리고 싶었다.도도하고 카리스마가 넘쳤던 고현은 전호영으로 인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안 되도록 망가지고 있었다.그나저나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으니 경국지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너무 아름다워 눈을 뗄 수조차 없었다.고현은 성격이 냉담했기에 여자로 변장하면 고귀하고 도도하게 보였다.그녀가 차에 올라타자마자 경호원들에게 나지막이 말했다.“호영 씨를 그렇게 노려보지 마세요. 마음속으로 호영
고현은 전호영의 팔짱을 끼고 핸드폰을 넣은 가방을 들며 전호영에게 말했다.“호영 씨, 우리 출발해요.”“경호원들과 함께 가시겠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당연하죠. 아니면 제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증명할건데요?”분명히 그녀는 고현이지만 오늘 밤 여자 신분으로 연회에 참석하기 때문에 아마 많은 사람이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을 것이다.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나타나야만 경호원들의 낯익은 얼굴을 통해서라도 그녀가 고현이라는 사실을 믿을 것이다.두 사람은 팔짱을 끼고 밖으로 나갔고 꽃에 물을 주고 있던 고진호 부부는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현이 여전히 자신이 고른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딸의 짧은 단발머리를 보자 진미리는 결국 한숨을 쉬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가발을 그렇게 많이 샀는데 하나도 착용하지 않는다니... 휴.”진미리는 다시 고현의 발을 보았다. 고현의 치맛자락이 좀 길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걸을 때 무슨 신발을 신고 있는지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고현이 여전히 구두를 신고 있는 것을 본 진미리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입을 열었다가도 바로 삼켜버렸다.어쨌든 연회에 참석할 사람은 고현일 텐데, 다른 사람이 비웃어도 두려울 게 뭐가 있겠는가!미래의 사위도 개의치 않은데 진미리가 아무리 걱정해도 뭔 소용 있으랴!진미리는 못 본 척하며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아저씨, 아주머니. 그럼 우리 먼저 가볼게요.”전호영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고 고현은 오늘 밤 치마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려고 했다. 그녀는 더는 사람들이 전호영이 동성애자라고 뒤에서 비난하는 것이 싫었다.그녀는 그를 위해 치마를 입으려 했다!전호영은 드디어 고현이 그를 위해 여자의 신분을 드러내게 되는 날을 기다려 왔다.전호영이 기분 나쁠 리가 없었다.그는 헤벌쭉 입이 찢어질 정도로 웃었다.“그래, 다녀와.”고진호는 웃으며 말을 건넸다.두 사람이 지나가는 것을
고현이 입을 열었다.“호영 씨는 너무 뻔뻔스럽네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제가 뻔뻔스럽지 않았다면 고현 씨의 마음을 훔치지 못했을걸요. 우리 큰형을 따라 배웠거든요. 우리 형이 형수님에게 구애한 적 없지만 뻔뻔스럽게 자신의 미래 아내를 쫓아다녀야 한다고 저에게 말했거든요. 우리 큰형도 옛날에 체면을 중요시하게 여겼지만, 우리 형수님과 지내면서 점점 뻔뻔스럽게 되었어요.”전태윤 부부가 금방 결혼했을 때 많은 갈등이 있었고 냉전도 자주 했었다.전호영은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감히 더 깊이 알아보지 못했을 뿐이다.때로는 전태윤 부부가 싸움이 심해질 때면 전씨 할머니까지 나서야 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님께서 호영 씨가 자신을 뻔뻔하다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아마 호영 씨는 이 세상에서 없어질지도 몰라요.”고현은 전씨 가문의 형제들이 맏형 전태윤을 유난히 존중했고 또 가장 두려워한다고 전해 들었다.전태윤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여전히 차갑고 도도한 모습이지만 하예정 앞에서는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전씨 가문은 형제들은 서원 리조트에서 함께 산 덕분에 사촌 형제지간일지라도 정이 아주 깊었다.따라서 맏형 전태윤의 지위도 높았고 그의 형제들도 그를 잘 따랐다.“큰형이 지금 여기에 없는데요 뭐. 그리고 제가 한 말도 사실인걸요. 우리 형도 형수님이 생긴 뒤로 뻔뻔해졌거든요. 우리도 따라 한 것뿐이에요.”고현은 여전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가 뻔뻔한 사실을 남에게 밀지 마세요. 그만하고 우리 얼른 가요. 호영 씨, 네가 오늘 제가 드레스 입고 하이힐을 신는다면 남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제가 비웃음을 당해도 괜찮겠어요?”전호영은 그녀가 벗은 하이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제가 뭘 더 신경 쓰겠어요? 제가 언제 다른 사람이 비웃을까 봐 두려워했었나요? 저는 남들 시선이 두렵지 않고 제가 하고 싶은 대로 사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시선이 신경 쓰였다면 오늘 같은 달콤함도 없었을 거예요.”전호영은 다른 사
사실 전호영은 차를 세울 때 고현이 평소에 자주 타는 그 마이바흐 차를 보았다.“집 안에 있어. 들어가 봐.”진미리는 물건을 들여 집 안으로 들어가려다 다시 전호영의 손에 물건을 전호영 손에 쥐여주었다.“난 꽃에 물을 좀 주고 들어갈게. 날도 어두워질 것 같으니 먼저 들어가 봐.”전호영은 자주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왔고 진작에 고씨 가문을 그의 두 번째 집으로 생각했다.전호영은 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들어서자 그는 한 여자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들고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을 보았다.그 여자는 고현과 정말 똑같이 생겼다.만약 고현이 치마를 입고 가발을 쓴다면 저렇게 예쁠 것이다.고현은 원래 긴 가발을 쓰고 싶지 않았지만, 전호영이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재빨리 가발을 쓰고 앉아 있었다.전호영이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알고 싶었다.그녀는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은 적 있었다.당시 고현은 그날이 전호영 앞에서 치마를 입는 유일한 날이라고 생각했었다.그러나 고현은 지금 또 치마를 입고 있다.그녀는 전호영을 위해 한 번이고 두 번이고 늘 그녀의 원칙을 깨뜨렸다.아니, 눈앞의 여자가 바로 그의 고현이었다.전호영은 씩 웃었다.그는 다가가더니 먼저 손에 들고 있던 가방들을 내려놓고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네주며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여신님, 이 꽃다발을 당신에게 드릴게요.”고현의 시선은 꽃다발에 가려져 더는 휴대전화를 쳐다보지 못했다. 그녀는 휴대전화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전호영을 올려다보며 빙그레 웃는 그의 얼굴을 보며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서프라이즈도 해주고 싶었는데, 호영 씨 표정을 보니 놀라지 않은 것 같네요.”“현이 씨가 저를 위해 치마를 한 번 갈아입었을 때 제가 재빨리 현이 씨 도도한 모습을 기억해 버렸죠. 평생 잊지 못할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꽃다발을 받기를 기다렸다가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그녀를 진지하게 바라보며 물었다.“준비되었다고 했는데 정말 이렇게 나가려고요? ”고현은 지금 드레스를 입고 가발을 착용
잠시 후, 진미리가 말했다.“됐어. 나도 상관 안 할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엄마는 몇 년 더 살고 싶어.”“엄마, 저는 효녀거든요.”진미리가 입을 열었다.“난 네가 불효녀라고 말 한 적 없어. 네가 여자 신분을 회복하는 일에 엄마가 더는 신경 쓰지 않겠다는 말이야. 더 관여하면 내가 열 받아서 죽을 것 같아. 내가 몇 년을 더 살아서 네가 결혼하고 자식까지 낳는 것을 보려면 너의 일에 관여하지 않는 게 좋겠어. 네가 여자로 살든 남자로 살든 네가 개의치 않는데 나도 더는 상관하지 않을래. 내가 진작에 상관하지 말았어야 했어.”말을 마친 진미리는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다.“엄마, 어디 가세요?”“엄마 바람 좀 쐬면서 기분 전환 좀 할게. 네 아빠한테 잔소리 좀 해야겠어.”고진호는 밖에서 꽃들에 물을 주고 있었다.그러자 고현이 말을 건넸다.“그럼 나가서 아빠에게 몇 마디 잔소리하고 오세요. 잔소리하시고 나면 그래도 제가 가장 좋다고 생각하실걸요.”진미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꽃에 물을 주던 고진호는 진미리가 나오는 것을 보더니 물었다.“현이가 연습 잘하고 있어요?”“휴, 말도 마세요. 지금에야 와서 가르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 오후 몇 시간 만에 20년이 넘는 습관을 고치려고 하니 너무 어려워요.”고진호가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그럴 줄 알았어요. 됐어요. 내버려 둬요. 현이가 행복하기만 하면 현이가 어떤 신분으로 살아가든 상관없잖아요.”갑자기 고현이 여자라는 일이 드러나게 되면 아마 강성 전체가 뒤흔들릴지도 모른다.전화 폭격을 당할 장면을 미리 생각한 고진호도 미리 전원을 끄려고 계획했다.“현이가 드레스는 입고 싶지만, 하이힐 대신 구두를 신겠대요. 휴... 진작 알았다면 애당초 현이가 소란 피울 때 반대했야 했는데. 벌써 20년이 흘러 멀쩡한 딸이 아들로 변하게 되다니...”“현이가 입고 싶은 대로 입게 놔둬요.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대상은 현이지, 우리가 아니잖아요.”고진호는 고현이
“걱정하지 마세요. 준비하고 계세요. 저랑 함께 연회에 가요.”고현이 말을 이었다.“그럼 집에서 기다릴게요.”“좀 이따가 봐요.”그는 고현이 왜 반나절 휴가를 냈는지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전호영은 먼저 서둘러 고씨 가문의 저택으로 간 다음 다시 얘기하려고 했다.전호영과의 통화를 마친 고현은 휴대전화를 내려놓으려다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진미리를 보더니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어 전호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척했다.“메시지 보내는 척 하지 마.”진미리는 일어나서 걸어가더니 손을 뻗어 고현의 휴대전화를 가져다가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엄마, 저는 핸드폰에서 벗어날 수 없어요. 회사에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저를 찾아야 하거든요.”고현은 다시 휴대전화를 방패막이로 삼고 싶어 했다.“회사 일 전부 고빈에게 맡겼잖아. 고빈이가 처리하게 놔둬. 빈이가 오늘 저녁 연회에 참석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빈이는 너보다 어리지 않아. 너보다 겨우 10분 정도 어릴 뿐이야. 게다가 남자로서 빈이는 당연히 그 무거운 짐을 짊어져야 해. 남존여비라고 당연히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해야지.”고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엄마, 그 생각은 너무 보수적이에요.”“남들에게는 보수적인 사상일지 모르지만, 우리 집에서는 남자가 무거운 짐을 지게 하고 딸이 가볍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 우리 집안의 규칙이야.”진미리는 고현 옆에 앉았다.고현은 진미리와 논쟁하려 하지 않고 바로 머리를 수그렸다.“네네, 우리 엄마는 가장 예뻐요. 우리 엄마가 하신 모든 말은 다 정확해요.”진미리는 고현을 노려보고 있었다.“엄마, 또 왜요? 오후 내내 저를 노려보신 횟수가 지난 20여 년을 합친 것보다 더 많아요.”진미리는 딸의 허벅지를 툭툭 치며 꾸지람했다.“똑바로 앉아! 사나이처럼 앉지 마. 넌 지금 우리 가문의 딸이야. 고씨 가문의 아들이 아닌 딸이라고! 그리고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지 마. 어느 집 딸이 자리에 앉자마자 하이힐을 벗는 것을 봤어?”고현은 투덜댔다.“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