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아, 사람 시켜서 저 녀석한테 생강차를 끓여주라고 해. 태윤이가 매워 죽게 생강을 많이 넣어.”어르신이 방에서 나오며 밖에 있는 며느리에게 분부했다.장소민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도우미에게 생강차를 끓이라고 했다.고부가 나란히 수영장 앞에 왔을 때 전태윤은 여전히 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전태윤.”할머니가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전태윤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할머니를 힐끗 보더니 계속 앞으로 헤엄쳐갔다. 수영장 가장자리로 헤엄쳐간 후 그는 물속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할머니는 수영장을 에돌아 그의 앞에 다가가더니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기 앉아서 뭐해? 얼른 방에 들어가.”“할머니, 나 머리 좀 식히고 싶어요.”어르신이 그를 질책했다.“머리 식히려거든 문 잠그고 방 안에 있어도 돼. 아무도 널 방해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머리를 식혀. 왜 굳이 물속에 뛰어드는 건데?”“나름 효과 있더라고요.”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니 머리가 맑아지고 복잡했던 마음도 훨씬 편해졌어요.”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진정이 됐으면 어서 옷 입고 방에 돌아가. 여기 오래 앉아있으면 감기 걸려.”전태윤은 입술을 앙다물었다.장소민이 그의 외투를 가져와 몸에 걸쳐주며 말했다.“너 감기 걸리기만 해봐, 엄마가 바로 예정이 찾아가서 따질 거야. 걔가 널 아프게 했어.”“엄마가 과연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올까요?”전태윤은 엄마가 하예정을 찾아가 따지는 걸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장소민은 말만 독하게 할 뿐 정작 너무 지독한 일은 하지 못한다.장소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엄마는 제 새끼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어.”어르신도 말했다.“태윤아, 일단 방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나랑 얘기하자.”전태윤은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비난 조로 말했다.“난 또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어야 쾌유할 줄 알았죠.”그가 돌아올 때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미리 숨어 계신다는 걸 눈치챘다. 할머니가 늘 해오던 수법은 바로 아픈 척
옷을 갈아입은 후 엄마의 감시하에 그는 생강차를 마셨는데 너무 매워서 미간을 확 구겼다.“엄마, 생강을 왜 이렇게 많이 넣었어요. 매워 죽겠네.”“너희 할머니가 생강 많이 넣어서 체내의 한기를 빼라고 했어. 생강차 마시기 싫으면 앞으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던가.”전태윤이 그릇을 내려놓았다.“엄마, 난 진짜 마음 식히려고 그랬어요. 일부러 어리석은 짓을 한 게 아니라고요.”“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서 지금은 충분히 진정했지? 어서 할머니 찾아가서 얘기 나눠. 할머니야말로 제일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장본인이셔. 네 할머니만 아니었어도 넌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거야.”장소민은 시어머니에게 불만이 조금 남아있었다.전태윤은 매우 훌륭해서 장가 못 갈 걱정이 없는데 어르신이 한사코 그더러 자신을 구한 생명의 은인과 결혼하라고 다그쳤다.애초에 다들 감격에 겨워 하예정에게 정중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일절 거절했다.그 뒤로 어르신과 하예정이 사이좋게 지냈고 하예정은 어르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장소민은 사석에서 남편에게 구시렁대기도 했다. 하예정이 혹시 할머니의 신분을 알고 더 많은 것을 탐내느라 그들이 주는 거액의 보상금을 거절한 게 아닐까?장소민의 남편은 일단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자고 했다.보다 보니 하예정이 어느덧 그의 며느리가 되었다.하예정은 할머니의 정체를 아예 몰랐고 전태윤과 혼인 신고할 때도 그가 전씨 그룹 대표라는 걸 몰랐다. 장소민은 나중에 이 일들을 알게 됐다. 만약 몰랐다면 그녀는 진짜 하예정이 가식녀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그 이후에는 부부가 서로를 깍듯하게 대하고 비록 한방에서 지내도 교류가 아주 드물며 잘 때 역시 따로 잔다고 했다. 심지어 전태윤은 계약서를 작성하여 하예정에게 서명하라고 했다.계약서 내용이 무엇인지 장소민은 몰랐다.하지만 제 아들은 절대 스스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계약서는 분명 하예정에 관한 단속 사항이 더 많을 것이다.언제부터인지 아
장소민도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하예정은 그녀의 아들에게 시집올 때 확실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서러웠을까.“예물과 결혼식은 후에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어.”전태윤도 후에 다 해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항상 그녀를 속상하게 한다.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엄마, 난 가서 할머니랑 얘기 나눌 테니까 엄마도 그만 할머니를 원망해요. 이건 어쩌면 내 인생에 반드시 겪을 고초인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한 고초 말이에요.”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인생이 너무 잘 풀렸다. 단 한 번도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하늘이 그런 그가 눈에 거슬려 사랑의 좌절을 느껴보라고 한 듯싶다.“태윤아, 엄마는 그래도 널 일깨워줘야겠어. 네 신분은 이미 예정의 주위 사람들에게 들통났을 거야. 고향의 인간쓰레기 같은 친척들과 걔네 언니네 전남편 한 가족 모두 끈질기게 집착할지도 몰라. 너 절대 예정이를 봐서 그 사람들 도와주면 안 돼. 그 인간들은 흡혈귀라 한번 주면 분명 또 더 달라고 찾아와. 앞으로 네게 빨대 꽂고 등골을 빼먹을 인간들이야. 그들이 예정이한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네가 도움을 줘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들 예정이 자매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어. 엄마는 못 봐주겠어. 대체 그게 무슨 친척이야, 이웃보다도 못하면서. 그런 인간들을 도울 걸 생각하면 속 터질 것 같아.”전태윤이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엄마, 난 예정의 태도를 보면서 처사해요. 예정이도 그들과 화해하지 않겠다는데 내가 왜 도와줘야 하죠? 다들 지금 매사가 안 풀리는 것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처형의 전남편 가족은 말 그대로 전남편인데 무슨 연관이 더 있겠어요? 설마 주형인이 뻔뻔스럽게 달려와서 본인이 내 형부라고 할까 봐요?!”장소민이 말했다.“네가 다 생각이 있으면 됐어. 예정이는 그래도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바로 애증이 분명해.”하예정은 동정심이 차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일부 네티즌들이 윤리, 도덕의 틀을 차
전태윤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진정하게 혼자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태윤아, 네가 예정이를 친정에 가 머물 수 있도록 손을 놓아준 게 할미는 매우 기쁘구나. 예전처럼 예정이를 강제로 붙잡아 두지 않고 자유를 줄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전태윤의 안색은 여전히 침울했다.“할미는 이틀 후에 다시 예정이를 찾아가련다. 널 위해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도 예정에게 사과해야겠어, 그 애를 가장 먼저 속인 사람이 이 할미잖아.”전태윤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두 사람은 마찬가지인 셈이다.“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할머니 생각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전태윤이 되물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손을 뻗어 전태윤의 얼굴을 어루만지다 그만 참지 못하고 그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네 머리로 한번 천천히 생각하고 깨달아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포용하여야 하는 거야. 네 엄마는 나와 네 할아버지에 대해 불평하였다. 모든 걸 가르쳐줬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우리가 그걸 깨달았을 때, 넌 이미 어른이 되었지... 네 할아버지는 저세상으로 떠나갈 때까지도 널 걱정했다.”“...”“네 혼사가 걱정되었던 거지. 넌 성격이 냉담하고 차가워 소년 시절에 널 사모하는 여자애가 그렇게 많았어도 말 걸기도 싫어했지. 어른이 된 후엔, 매일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3미터 이내에 가족 이외의 젊은 여성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고... 네 할아버지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그땐 이미 병으로 더 이상 너를 돌볼 힘이 없어 떠나기 전에 이 할미한테 부탁한거야.”“...”“사실 할미도 그때 예정이를 알게 된 후 너희 둘 몰래 사주팔자를 가지고 가 부부의 인연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다 인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너와 예정이를 결혼시킨 거야.
할머니는 그의 어깨를 토닥였다.“힘내! 할미는 마음속으로 너를 지지하마!”“할머니, 진심으로 지지하시는 거 맞아요?”할머니는 눈빛을 반짝이며 되물었다.“당연하지, 내가 언제 진심이 아닐 때가 있었냐?”“제가 예전에 절대 예정이를 먼저 찾는 일이 없을 거라고 말한적이...”“그 말은 네가 다시 꺼내지 않았으면 할미는 진작 잊었어. 그나저나, 네가 입 밖에 낸 말을 번복한 지가 한두 번이냐? 그러니 또 한 번 번복하는 일을 하여도 괜찮을 거야! 신경 쓸 필요 없어!”“...”‘정말 내 친할머니 맞아...’할머니와 얘기를 나누며, 할머니께서 자신이 몰랐던 예전의 일들을 꺼내시는 걸 들으며 그는 할머니가 왜 계속 자신과 하예정을 결혼시키려 했는지 이해가 되었다.첫째는 할아버지의 임종 전의 부탁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 이름도 모르는 무당 때문이었다.물론 지금의 전태윤은 그 무당이 고마울 따름이었다.만약 그가 하예정과 사랑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그 무당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다른 한편.언니를 따라 전태윤의 별장을 떠난 하예정은 먼저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갔다. 그녀는 자신의 물건들을 모두 정리하여 가져갈지 생각하다가, 결국 갈아 입을 옷 몇 벌만 챙겨 언니의 월세방으로 갔다.집에 있는 애완동물들은 데려가지 않고 숙희 아주머니한테 전화하여 전태윤이 선물한 것이니 그에게 도로 돌려주라고 부탁했다.숙희 아주머니가 애완동물들을 안고 전태윤을 찾아가자, 그는 잘 먹어 포동포동한 애완동물들을 보며 잠시 침묵에 잠겼다.“...예정이가 잠시 돌볼 시간이 없다고 하니 아주머니가 대신 돌봐줘요. 아주머니는 얘네들과 함께 있은 시간이 오래되니, 예정이가 돌아오기 전까지 쭉 돌봐주세요. 그리고 베란다에 있는 화초들도 대신 잘 보살펴 줘요. 예정이가 가장 좋아하던 거예요.”숙희 아주머니는 공손하게 답했다.아주머니가 애완동물들을 데리고 떠나는 모습을 보며 전태윤이 참지 못하고 한마디 덧붙였다.“그리고 봄이 너무 많이 먹이지 말아요, 지금은 살이 쪄 찐빵 같
“아빠.”주우빈의 부른 소리에 주형인은 두어 걸음 다가가 아들을 안아 들고 놀아주다가 하예진이 스쿠터를 세워놓은 걸 보고 다시 말을 이었다.“당신 할아버지가 당신의 사촌 몇 명을 데리고 회사에 나를 찾아왔어.”하예진은 눈살을 찌푸렸다.“당신은 왜 찾아갔대?”그녀는 이미 주형인과 이혼했고, 듣자 하니 이혼할 때, 할아버지는 전 시어머니에게서 몇백만을 뜯어냈다고 한다.전 시어머니가 나중에 그 돈을 돌려받았을지...아마 돌려받지 못했을 것이다.돈이 이미 할아버지의 호주머니에 들어간 이상 다시 돌려받기 어려울 것이다.할아버지도 시어머니도 모두 뻔뻔한 사람인지라 둘이 붙으면 아주 가관일 텐데, 그걸 보지 못한 것이 하예진은 못내 아쉬웠다.“예정 씨가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의 와이프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온 거야. 그러다 예정 씨가 보이지 않자, 가게로 찾아갔다가 가게 문도 닫혀있자 곧장 발렌시아 아파트로 찾아갔는데 아파트엔 들어갈 수 없어 전화를 걸었고, 전화도 받지 않아 나를 찾아온 거지. 원래는 당신을 찾아가려다 당신이 어디 사는지 몰라 결국 우리 회사로 찾아온 거래.”이 일로 주형인은 하마터면 서현주에게 오해받을 뻔했고 안간힘을 다 써 겨우 그녀를 달랬다.서현주는 주형인이 하예진과 연락하는 걸 제일 싫어했다.“그래서 내가 여기 산다고 말한 거야?”주형인은 하예진의 살뜰한 보살핌에 아주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들의 얼굴을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아니, 알려주지 않았어. 그저 이혼 후에 연락이 끊겨 당신이 어디에 세 들어 사는지 모른다고만 했어.”그 사람들이 찾아오면 분명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주형인은 하예진이 그 사람들의 시달림을 받는 것은 상관없었지만, 그들이 아들의 삶에 영향을 미칠까 봐 두려웠다.“당신의 두 사촌 오빠를 조심해, 그들은 아는 사람이 많아 조만간 당신의 주소를 알게 될 거야. 만약 그들이 찾아와 소란을 피우면 우빈이가 놀라지 않게 우리 집에 잠시 보내.”주형인과 서현주는 함께 있은 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서현주가 아직 임신하지 않자, 주형인은 자신과 주우빈의 부자 관계가 점점 멀어질까 봐 걱정됐다.특히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마음속으론 노동명이 하예진을 좋아할 리가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아들이 나중에 다른 남자를 아빠라고 부를까 봐 걱정됐다.그래서 기회를 찾아 주우빈을 곁에 두고 한동안 같이 지내며 부자간의 정을 키우고 싶었다.그리고 주우빈과 서현주가 함께 지내며 정을 쌓길 바랐다. 만약 서현주가 정말 아이를 낳지 못하고, 하예진이 다시 시집가게 된다면, 주우빈의 양육권을 쟁취해서 집으로 데려올 생각도 했다.어쨌든 주우빈은 주씨 가문의 핏줄이고 절대 다른 사람을 아빠로 불러서는 안 된다.“내가 이미 이혼한 걸 알고 있는데 나한테 매달리기나 하겠어? 설사 날 찾아온대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우빈이는 당신들과 친하지도 않고, 당신은 신혼인데, 지금 우빈이를 집에 데려가면 서현주가 어떻게 생각하겠어?”“...”“난 당신이 우빈이를 집으로 데려가는 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그리고 당신 부모님과 서현주는 갈등이 심하다고 들었는데, 혹시라도 우빈이가 당신 집에 간다면 당신 부모님은 우빈이만 예뻐하겠지! 난 서현주가 자극받아 우빈이를 해할까 봐 두려워. 우리 이혼할 때 약속한 것들, 당신이 지켜줬으면 좋겠어.”“내 앞에서 이혼할 때 약속했던 것들 언급하지도 마.”주형인은 이혼 후 일이 순조롭게 풀리지 않아 보너스를 잃었을 뿐만 아니라 쥐꼬리만한 월급만 받으며 살고 있다. 제휴거래처에서 유진 테크와 협력하지 않으려 하여 부수입도 끊긴 상황이다. 다행히 예전에 돈을 많이 벌어 개인 예금을 2억 넘게 보유하고 있어 직장을 잃더라도 당분간은 그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주형인은 자신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미치도록 미웠다.돈줄을 끊는 것은 부모를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하는데, 이 일은 하예정이 전태윤을 시켜 한 것이 틀림없다고 그는 믿었다.그 목적은 하예진을 위해 화풀이를 하는 것일 테니 하예진이 한 것과 다름없고, 주형인이 하예
“보고 싶었어요.”주우빈은 하예정의 목을 껴안고 얼굴에 여러 번 뽀뽀했는데, 하예정은 우빈이가 귀여워 미칠 지경이었다.“언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나는 진작에 저녁 다 차렸는데.”하예정은 조카를 껴안고 언니에게 물었다.“인테리어 기사님이 일을 늦게 끝내 이제야 돌아온 거야. 언니가 돌아와서 너한테 밥을 해주려고 했는데, 네가 이미 밥을 다 차려놓았을 줄이야.”“언니, 난 그냥 마음에 상처만 입었을 뿐이지 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언니가 밥해주는 게 어딨어?”하예진은 다가와 동생이 그린 그림을 보았는데, 그것은 비녀였다.“네가 기분 나빠서 그런지 그림도 잘 안됐네, 일단 그리지 마.”하예정은 동생을 도와 화판을 치웠다.“나가서 신선한 공기라도 마시지 그랬어?”“움직이기 싫어서 하루 종일 잤어.”“내일은 밖에 나가서 산책이라도 해봐. 매일 집에만 있으면 기분만 더 나빠져.”“내일은 가게에 갈 거야. 설 전에 들어온 주문을 처리해야겠어...”학생들은 다음 주 월요일에야 개학한다.오늘은 금요일이니 그녀는 주말 이틀을 틈타서 가게에서 밀린 일들을 처리할 행각이었다.뭔가 할 일이 있어 주의를 분산시키면 전태윤이 그녀를 속인 일이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다.생각하지 않으면 화도 나지 않을 것이고, 화가 안 나면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그래, 알았어.”하예정은 동생이 가게로 나가는 것을 막을 생각이 없었다.“방금 아래층에서 주형인을 만났는데, 일부러 나를 찾으와 할아버지가 가족들을 데리고 시내로 들어왔다고 알려줬어.”그러자 하예정은 눈살을 찌푸렸다.“여기 와서 뭐 하려고? 태윤 씨 신분을 알고 돈을 떼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건 아니겠지?”“그들처럼 뻔뻔한 사람들은 당연히 그렇게 생각하고도 남지.”그 사람들은 얼굴이 두껍고 뻔뻔하기 짝이 없어, 아무리 어이없는 일이라도 하고 남을 것이다.“그들이 생각한다고 될 일이야? 능력이 있으면 태윤 씨를 직접 찾아가라고 해!”하예정은 고향 친척들과 관계가 몹시 나쁘다.“정말 제부를 찾아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