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주의 말에 주형인은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했다.“여보, 이해해 줘서 고마워.”“우린 부부잖아요. 난 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가 하예진과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요.”하예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주형인은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현주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한편, 산 정상의 별장.하예정은 밖에서 발이 부르틀 정도로 돌아다니다가 지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전태윤은 그저 묵묵히 그녀 뒤를 따랐다.그가 그녀와 얘기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한마디만 했다.“사기꾼, 나한테서 떨어져요, 지금 당신이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떳떳하지 못한 전태윤은 묵묵히 그녀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하예정의 휴대폰은 이미 충전되어 있었다.충전기를 뽑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자 부재중 전화와 카톡 메시지,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사기꾼, 충전기는 여기 둘 테니 와서 가져가요.”하예정은 차갑게 한마디 던지고는 테이블 위에 충전기를 올려놓고 휴대폰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예정아...”전태윤은 가련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올라갔다.하지만 하예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하예정은 그들 부부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객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예정아,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어? 내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어?”전태윤은 문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는 그녀의 냉담함과 소외감을 견딜 수 없었고, 그녀가 입만 열면 자기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며 저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전태윤은 정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소정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면 그때 다시 알려주겠다고 한다.하예정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부재중전화를 확인했는데, 심효진 외에도 전씨 가문에서 온 전화가 있었다.카톡 메시지에도 전씨 가문에서 보낸 메시지가 가득했는데 안 봐도 전태윤을 위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뻔했다.‘무슨 할 말이 있다고, 온 가족이 날 속이고선...’
그녀는 전태윤뿐만 아니라 전 씨 일가족 모두에게 화가 나 있다.하예정은 먼저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정아.”심효진은 바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너 지금 어때? 낮에 휴대폰이 계속 꺼져있던데... 내가 수백 번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꺼져있었어. 저녁에 겨우 전화가 걸리던데 전화를 안 받고...”하예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서 자동으로 꺼졌어, 그래서 전화도 할 수가 없었고. 나중에 사기꾼의 충전기를 빌려서 배터리를 충전했어.”사기꾼...그녀의 말 속의 분노를 느낀 심효진은 그녀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당연히 화가 나겠지, 남편에게 그렇게 오래 속히웠으니...“아, 그랬구나, 놀랐잖아! 넌 괜찮아?”하예정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괜찮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괜찮지 않아, 나 너무 힘들어, 효진아. 지금 난 자유를 잃었어, 그 사기꾼이 날 별장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게 해. 언니가 나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아.”“...그 사람 너무하긴 해, 글쎄 널 기절시켰다고 소 이사님한테 전화하더라.”이 일을 언급하자 하예정은 화가 치밀었다.“분명히 그 사람 잘못인데 내가 화를 내면 안 돼? 날 기절시키다니, 목이 부러지는 것 같았어! 내가 왜 이런 남자랑 결혼했지? 다 할머니 때문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날 속이고 계셨어. 만약 먼저 신분을 밝혔다면, 나는 차라리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언니 앞에서 연기를 하면 했지, 절대 그 사람이랑 초고속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야.”하예정은 분노에 차서 말을 이었다.“그들 가족 모두가 거짓말쟁이이야. 나는 당분간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 그리고... 집안 차이도 너무 커 이혼하고 싶어, 그의 재산 한 푼도 안 가지겠다고 이혼 합의서도 이미 다 작성했어! 하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고, 이혼 합의서까지 다 찢어버렸어.”하예정이 이혼 합의서를 쓴 이유는, 하나는 속히
“소와 돼지는 시골에 가야 살 수 있어, 너무 머니 일단 사지 말고 닭과 오리만 큰 거로 사. 새벽에 우는 수탉을 많이 사, 시끄러워 죽게!”“알았어, 이 일은 나한테 맡겨!”전태윤의 별장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는 어떻게 나올지...“근데 예정아, 태윤 씨가... 아니, 그 사기꾼이 타협할까? 게다가 다른 별장도 많이 가지고 있을 텐데 널 다른 별장으로 옮길지도 모르잖아.”하예정은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튼 날 괴롭히면, 나도 똑같이 괴롭힐 거야.”“너희 둘 지금 원수 같아 보여.”하예정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소 이사님께 전태윤 씨를 말리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나보고 너를 설득하라는 거야, 전태윤 씨가 너를 속인 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거라고. 혹시 네가 갑부 전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는 여자는 아닐지 걱정되어 신분을 숨기고 너의 인품을 관찰하려 했대. 이사님은 전태윤 씨 쪽 사람이니 당연히 그를 위해 좋은 말을 하겠지... 하지만 난 네 절친이잖아,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무조건 네 편이야!”잠자코 있던 하예정이 입을 열었다.“처음에 그가 신분을 속인 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 둘의 감정이 깊어진 후에도 날 속인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심지어 그 사람이 정말 날 사랑하는지도 의심스러워, 이것도 날 속이는 건지 누가 알아? 그 사람은 하는 말마다 전부 다 거짓말이야. 그리고 소현 언니와의 일도 그래, 소현 언니가 우리 둘이 부부인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이건 네 탓이 아니지, 네가 그 사람 신분을 알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소현 언니도 우리 앞에서 전씨 그룹 큰 도련님이라고만 했지, 전태윤 씨라고 한 적이 없잖아. 누가 그 도련님이 네 남편인 줄 알았겠어?”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소현 언니가 돌아와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행히 너희들 이제 사촌 자매가 되었으니, 좀 괜찮아지겠지?”하예정은 친형제도 반목할 수 있는데, 사촌 자매가 뭐 대수라고
“여보.”문을 여니, 조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평소 늘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억지웃음을 지으니 가식적으로 보였다.“여보,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어.”전태윤은 두 손으로 옷을 받쳐서 들고 있었는데, 한 벌은 잠옷이고, 또 한 벌은 내일 입을 옷이었다.“내가 방안까지 가져다줄까?”하예정은 옷을 받아 들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를 들여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전태윤은 떠나지 않고 문어구에 서서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그녀가 다시 문을 열 거로 생각했다.과연, 2분도 안 되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허리를 펴고 잘생긴 얼굴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문을 여는 순간, 부드럽게 말했다.“여보,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편하게 말해, 오늘은 내가 다 서비스해 줄 테니.”“옷 서너 벌과 다른 생활용품도 더 가져다줘요.”“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가져다줄게.”빠른 걸음으로 돌아서 간 전태윤은 조금 지나 물건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여보, 뭐가 빠졌는지 한번 확인해 봐, 내가 바로 가져다줄 테니.”얼추 살펴본 하예정은 다시 뒤로 물러서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여보”전태윤은 한쪽 다리를 문 안에 들여놓고 몸으로 그녀가 문을 닫지 못하도록 막으며 손을 비비며 애원했다.“여보, 비록 봄이라지만 요 며칠 날씨가 추워. 이 방에 보일러도 없는데, 당신 혼자 자면 추울 거야. 내가 당신의 보일러가 돼줄까? 절대 허튼짓하지 않을게.”하예정은 뻔뻔한 전태윤의 말에 어이없어 웃음을 지었다.이 사기꾼한테 이런 모습도 있다니...“여보, 제발 나란 보일러를 들여보내 줘. 봐, 방이 이렇게 큰데 당신이 창문을 닫아도 몹시 추울 거야. 지금 바로 이 보일러가 필요할 때잖아.”“필요 없어요! 당신 그 다리 치워요! 안 그러면 내가 닫는 문에 다리가 부러져도 상관 못 해요. 그럼 나도 당신을 버릴 이유가 생겨서 좋네요.”“여보!”“여보라고
전태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예정아, 나도 모든 걸 속인 건 아니야. 어떤 말은 진심이었어. 널 사랑한다는 말은 무조건 진심이야.”“그래요, 사랑하겠죠. 날 속이는 걸 사랑할 뿐이죠. 비켜요! 안 비키면 다리를 확 부러트릴라!”하예정이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후 문을 확 닫았다.전태윤은 감히 고육지책을 쓰지 못하고 얌전히 발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하예정이 방문을 안으로 잠그는 걸 덩그러니 지켜보았다.그는 한참 후에야 제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는 싱글 소파를 들고 다시 하예정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이불까지 챙겨와 소파에 앉아서 문을 막고 자려고 했다.그가 잠든 후에 하예정이 몰래 빠져나가서 담벼락을 뛰어넘을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은 진짜 그럴 생각이 있었다.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몰래 문 쪽에 다가와 가볍게 문을 열었는데 전태윤이 글쎄 소파에 앉아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곧장 문을 닫았다.“사기꾼! 이 사기꾼아, 어떻게 문까지 막을 수 있어.”하예정은 그를 수만 번도 더 욕했지만 결국 아무 가망 없이 순순히 침대로 돌아갔다.기분이 상한 탓인지 그녀는 줄곧 악몽만 꿨다. 꿈에서 밤새도록 전태윤과 싸웠는데 다음날 깨났을 때 그녀조차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어 손으로 쓱 만져보았더니 눈물이 흥건했다.밤새 다투는 꿈을 꾸다 보니 아마도 꼬박 운 듯싶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밤새 문 앞을 막고 있던 전태윤도 깨나서 방문을 두드렸지만 하예정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문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결국 소파를 들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띠리링...”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액정을 힐긋 보더니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정남아, 좋은 방법 생각해놨어? 얼른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해야 예정이가 용서해줄까? 인제 그만 냉전 하고 싶단 말이야.”소정남이 물었다.“나 지금 전화 끊어도 돼?”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태윤아, 너희 부부 지
전태윤은 그를 이곳에 오게 할 수 없다.성기현은 아직 그가 하예정의 인신 자유를 제한하고 있다는 걸 모른다. 아마 그녀가 성기현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을 하지 못한 듯싶다. 만약 성기현이 집에 오면 바로 알아버린다.전태윤은 딴 사람들이 전혀 안중에 없다.다만 성기현 모자는 경시하면 안 된다.이경혜는 하예정의 이모이자 그녀의 친정 어르신이다.하여 하예정을 대신해 앞장설 자격과 이유가 충분하다.“알았어, 그렇게 전할게.”소정남은 얼른 전화를 끊었다. 자칫 머뭇거리다가 전태윤이 또다시 그에게 방법을 구할까 봐...정작 그의 제안은 들어주지도 않으면서 대체 어쩌라는 건지!전태윤은 곧바로 별장을 나섰다. 그는 장씨 아저씨에게 하예정의 아침을 꼭 챙기라고 했다.게다가 경호팀 절반을 별장에 남겨두었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에 하예정이 도망칠까 봐 경호원들에게 문단속을 단단히 시켰다.40분 후.전씨 그룹, 대표 사무실.전태윤과 성기현은 거의 나란히 사무실에 들어섰다.전태윤은 곧게 본인 책상 앞으로 다가가 검은색 의자에 앉았고 성기현도 뒤따라오며 제멋대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조 비서가 두 사람에게 각각 온수 한 잔씩 따라왔고 투명인간처럼 바로 물러갔다.두 명의 대표는 전부 험상궂은 얼굴이었고 소정남마저 감히 구경하러 오지 못했으니 조 비서는 더더욱 남아있을 엄두가 안 났다.“전 대표, 내가 한 말 귓등으로 흘렸어요? 소현이가 아직 전 대표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는데 예정이한테 싹 다 털어놓은 거예요? 다들 소현이 생각은 전혀 안 하나요? 내일이면 곧 돌아와요. 가장 친한 친구가 라이벌이 되어 자신이 제일 사랑한 남자를 빼앗아간 사실을 알게 된다면 소현이는 아마 미쳐버릴 거라고요.”성기현은 너무 화나서 거침없이 말을 내뱉었다.전태윤이 신분을 밝힌 후 하예정이 어떤 반응이었는지 아직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성기현은 그녀에게 연락해보려고 했지만 배터리가 다 되어 휴대폰이 꺼진 상태였다. 그는 하예정이 기자들에게 방해받고 싶지 않아 일부
한참 후, 성기현이 물었다.“예정이는 전 대표의 신분을 알고 어떤 반응이던가요? 도통 전화를 받지 않네요. 계속 꺼진 상태에요.”전태윤이 비난 조로 말했다.“역시 뒤늦게 찾은 사촌 동생이다 보니 신경을 덜 쓰는군요. 예정의 휴대폰은 어젯밤부터 통화 가능했어요. 계속 꺼진 상태라고 하는데 과연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어요? 예정이가 무슨 반응인지 성 대표한테 알려줘야 해요? 그건 나랑 예정이 사이의 일이지 당신들이랑 무관해요.”이경혜가 하예정의 이모라고 해도 다들 금방 친척관계인 걸 확인했으니 그다지 정이 깊지 않다.전태윤은 오직 하예진만이 그를 질책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성씨 일가의 사람들은 아직 그럴 자격이 없다.성기현은 말문이 막혀서 또 한참 침묵하다가 겨우 말했다.“전 대표, 오늘 이렇게 찾아와서 번거롭게 굴었네요. 내가 한 말도 조금 이기적이었어요. 그저 소현의 기분만 고려했지 예정의 기분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어요. 전 대표는 나보다 예정이에 대해 더 잘 알 테니 걔가 어떤 성격인지도 알고 있겠죠. 전 대표의 신분을 알게 된 후 예정이가 만약 달갑게 받아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만약 화를 낸다고 해도 걔를 원망하지 말고 생각을 할 시간을 좀 줘요. 난 비록 예정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도 쭉 밝은 성격으로 살아온 건 예정이가 아주 강한 사람이란 걸 말해주잖아요. 인생의 풍파를 늘 웃어넘기잖아요. 그러니까 전 대표가 거짓말한 것도 예정이는 꼭 태연하게 마주할 거예요.”성기현이 하예정을 위해 말해주자 전태윤은 오히려 침묵했다.그가 아무 말 없으니 성기현도 입을 다물었고 사무실 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전태윤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성기현에게 물었다.“그해, 성 대표 아내가 성 대표에게 구애하는 걸 포기했을 때, 어떻게 아내분 마음을 되돌려서 계속 사랑하게 했나요?”성기현이 두 눈을 껌뻑였다. 전태윤은 지금 그에게 경험을 묻는 걸까? “진심은 꼭 통한다고 봐요. 아내가 애초
“만약 두 달 전이라면 나도 예정 씨가 쿨하게 이혼하고 뒤도 안 돌아볼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쉽게 이혼하지 못할 걸. 감정이라는 게 어찌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어.”소정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지랖 넓게 물었다.“예정 씨 임신은 했어?”전태윤이 답했다.“아직이야...”둘은 피임조치도 안 취했고 전태윤도 애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종무소식이었다.아직 아이와 인연이 닿지 않은 듯싶다.“아이가 없으니 오직 너 스스로 해결해야겠네. 태윤아, 넌 어리석은 게 아니야. 일이 발생하고 지금까지 네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단지 너의 본능적인 반응이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네가 만약 예정 씨였다면 감쪽같이 속은 후 감금을 당하고 기절까지 했는데 너라면 무슨 기분일 것 같아? 지금은 네가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골치 아파할 때가 아니야. 이 문제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문제야. 중요한 건 네가 잘못을 저지른 후 일련의 행위가 예정 씨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거야. 이혼이 두려워서 감금하면 예정 씨가 생각이 바뀔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의 갈등만 점점 더 격화될 뿐이야.”“예정 씨 그만 풀어주고 떨어져서 며칠 지내. 너희 부부 지금 마음을 식힐 필요가 있어. 너도 차분하게 잘 생각해봐. 이후에 어떻게 해야 예정 씨가 다시 널 믿어줄지. 이번에 거짓말한 일로 예정 씨는 너에 대한 신뢰가 전부 깨졌을 거야. 예정 씨도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네가 그간 잘해줬던 것들과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추억들이 생각날 거야. 그리고 매번 예정 씨가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네가 옆에 있어 주고 묵묵히 도와줬어. 이것들도 다 너희 부부가 쌓아온 추억들이야.”“네가 잘해준 것들을 되새길 때 그때 너도 다시 분발해서 깨졌던 믿음을 조금씩 쌓아 올리란 말이야. 그러면서 슬슬 화해하는 거 아닐까? 너 계속 예정 씨를 감금하면 예정 씨도 온통 너의 단점들만 되뇌고 너에게 속았다는 사실만 곱씹을 거야. 그러면 네가 잘해줬던 일들은 아예 생각도 안 날
“아버지, 만약 윤정이가 끝내 떠나지 않겠다고 하면 어쩌죠?”거의 삼십 년을 이윤정과 남매로 지내왔기에 정일범은 그녀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는 이윤정이 쉽게 떠나지 않을 것이라 짐작했다. 그럴 만도 한 게 그녀는 아직도 어머니의 용서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게다가 지금 이윤정에게는 수입원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더러 강성을 떠나라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가란 말인가?물론 이윤정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생계를 이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평생 안락한 환경에서 자라며 콧대를 높여왔다. 그런 그녀가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잠시 침묵하던 정군호가 입을 열었다.“더 이상 강성에 머물게 하지 말고 최대한 설득해서 보내도록 해.”“알겠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윤정이를 찾아보고, 찾으면 몰래 돈을 쥐여주고 강성을 떠나게 하죠.”“아버지, 이젠 좀 쉬세요. 저도 좀 피곤해서 잠깐 쉬려고요.”정일범이 말했다.“그래, 밖의 소파에서 눈 좀 붙이렴.”정군호는 그래도 아들을 생각하는 듯했다. 정군호는 아들의 피곤한 얼굴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거실 소파에서 편히 쉬라고 권했다.그리고 정군호도 곧 잠에 빠져들었다.관성은 어느덧 오후 세 시 반이 되었다. 하예정이 심효진에게 말했다.“효진아, 나 우빈이 데리러 유치원 좀 갔다 올게.”심효진이 가볍게 답했다.“그래, 다녀와. 우빈이 데리고 바로 집에 가. 여기서는 사람들이 도와줄 거니까 굳이 다시 오지 않아도 돼.”심효진은 친구가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이는 게 마음에 걸렸다.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응, 우빈이 데리고 큰이모 집에 들를 거야. 아기도 보고.”겸사겸사 아기도 볼 수 있었다.우빈은 아기 보는 걸 참 좋아했다.매번 아기를 보고 나면, 그 작은 생명은 언제 나와서 자신과 함께 놀 수 있을지 묻곤 했다.그러면서 자신의 많은 장난감들을 아기한테 주겠다고 말하기도 했다.하예정은 두 명의 경호원과 함께 서점을 나섰다. 떠나기 전, 심
비록 하예진과 고현이 위층에 올라가지 않았다고 해도 전호영이 위층에 올라갔기 때문에 분명 그 일을 그녀들에게 알려주었을 것이다.정군호가 입을 열었다.“하예진은 네 큰이모의 후손이야. 분명 가주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돌아온 사람이지. 하예진은 반드시 우리 이씨 가문의 이런 일들을 남에게 알려줄 거야. 우리 가문을 망신시켜 경쟁자를 하나라도 줄이려고. 윤정은 비록 내 친딸은 아니지만, 어릴 때부터 우리 집에서 자라온 아이야. 2년 전, 윤정이가 우리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을 때만 해도 20여 년 동안의 감정도 있고 하니 네 엄마가 윤정이를 가주 자리에 앉혀 놓을 기회가 있었을 텐데. 지금 와서 보니 그런 기회가 이제 없을 것 같아.”정일범이 말을 건넸다.“아빠, 우리 형제들에게도 기회가 있을까요? 우리가 바람을 피우다 발견된 후로 엄마는 윤미를 더욱 중히 여기세요. 이제 윤미 곁에 방 비서가 배정되었으니 방 비서의 도움으로 윤미가 이씨 가문에서 자리를 잘 잡고 있어요. 하여 우리도 중심 세력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고요. 윤미는 우리에게 잘해주지 않거든요. 윤미의 마음속에서 저의 지위는 아마 매우 낮을걸요. 저도 윤미를 동생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점을 인정해요. 윤미가 정말로 가주 자리에 앉게 된다면 우리는 더 잘 지내지 못할 거예요.”정군호가 말을 이었다.“윤미가 가주 자리에 앉게 되는 것이 하예진이 그룹을 이어받는 것보다는 나아. 하예진은 네 큰이모의 후손이야. 사람들이 네 엄마가 큰이모를 죽였다고 말하고 있어. 하예진이 이번에 강성으로 온 이유도 가주 자리를 빼앗으려는 것 외에도 진실을 조사하고 복수하려고 왔을 거야. 그런데 윤미는 너의 친동생이잖아. 너희들이 큰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한 여기에서 무사히 살아갈 수는 있을걸.”정군호는 한숨을 쉬며 계속해서 말했다.“이씨 가문의 규정이라 어쩔 수도 없어. 이씨 가문을 아들에게 물려주는 것이 아닌 딸에게 물려주는 규정이 대대로 지켜왔거든. 너희들이 엄마 뱃속에서 이씨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으니
정군호는 이윤미를 바라보며 말했다.“윤미야, 일범도 왔으니 얼른 가봐. 요즘 네 엄마가 기분이 안 좋으셔서 회사에 돌아가지도 않으시고 집안일도 신경 쓰지 않으셨어. 너도 힘들 테니 얼른 가서 쉬어.”정일범도 맞장구쳤다.“그래, 윤미야. 내가 여기서 아빠랑 같이 있으면 돼.”이윤미도 더는 이곳에 머물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정군호와 부녀간의 정이 없었다.이윤미가 만약 정군호의 친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 늙은 영감을 만나기도 싫었을 것이다.“오빠, 그럼 난 가볼게. 무슨 일 있으면 다시 전화 줘.”“알았어. 차 조심하고.”정일범은 한 마디 당부하면서 이윤미와 방윤림을 배웅했다.두 사람이 멀리 떠난 뒤에야 정일범은 몸을 돌려 정군호에게 말했다.“아빠, 윤미와 방 비서가 돌아갔어요.”정군호가 다시 말을 건넸다.“2분 후에 다시 한번 둘러봐.”정일범은 정군호가 이윤정에 관해 묻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몇 분 후, 정일범은 밖으로 나가 병실 근처를 모두 둘러본 후, 이윤미와 방윤림이 모두 떠났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병실로 돌아왔다.“아빠, 정말 갔어요. 몸은 좀 어때요? 엄마가 뭘 하셨는데요?”정일범은 문을 열고 병실로 들어가면서 정군호에게 말했다.정일범은 병상 앞에 앉으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아빠에 관해 아무것도 묻지 말라고 해서 우리는 아빠가 다친 것 외 얼마나 심하게 다치셨는지 몰랐어요.”정일범은 정구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지만 어디가 아픈지 전혀 찾지 못했다.팔다리는 멀쩡하고, 얼굴의 손바닥 자국은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다만 정신 상태가 조금 나빴을 뿐이다.정군호는 정일범에 자신이 내시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지 않고 가벼운 말만 꺼냈다.“내 몸이 좀 불편해서 며칠 입원했는데 회복도 잘 되어서 며칠 후면 퇴원할 수 있을 거야. 네 엄마가 그 당시 너무 화가 나서 나에게 잔인한 행동을 하신 것뿐이야. 내가 다치자 네 엄마도 무척 가슴 아파하셨어. 날 병원에 데려다주고 직접 밥도 먹여 주면서 잘
이윤미에 대한 방윤림의 마음을 이윤미는 전혀 몰랐다.알 필요도 없을 것이다. 이윤미가 그를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야만 방윤림도 그의 마음을 드러낼 것이다.어릴 때부터 받은 교육 덕분에 방윤림은 어떻게 사랑을 표현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묵묵히 이윤미를 돌보고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만약 이윤미가 나중에 다른 남자랑 결혼한다고 해도, 방윤림은 진심으로 그들의 행복을 축복할 것이고 여전히 이윤미의 가장 강력하고 신뢰할 수 있는 특별 비서로 일할 것이다.앞으로 이윤미가 한 아이의 어머니로 되면 방윤림은 그 작은 주인마저 돌봐줄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번 생에 그는 이윤미의 사람이었다.그의 생명이 끝날 때까지 이윤미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네.”이윤미는 정일범일 것으로 추측했지만 가서 문을 열어주지 않고 그가 직접 들어오게 했다.문을 밀고 들어온 사람은 역시 정일범이었다.그는 한 손에 꽃다발을 들고 다른 손에 과일 바구니를 들고 들어왔는데 이윤미와 방윤림이 병실 안방이 아닌 거실에 있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미야, 아빠는?”이윤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침대에서 누워 계시는 데 주무셨을 거예요.”정일범은 방윤림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고는 꽃다발과 과일 바구니를 든 채로 안으로 걸어갔다.이윤미도 따라 들어갔다.정군호는 침대에 누워 휴대전화로 영상을 보고 있었다. 소리가 꽤 크게 켜 놓은 것으로 보면 이윤미와 방윤림의 대화를 듣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들리지도 않았다.이윤미와 방윤림이 말하는 소리가 크지 않았다. 정군호는 결국 70대 노인이었기에 청력에 다소 문제가 있어서 조금 전에 이윤미와 방윤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들을 수 없었다. 들리지 않을 거면 차라리 동영상 볼륨을 크게 틀어놓고 재미있게 보는 것이 낫겠다 싶었다.정일범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나서야 정군호는 휴대전화 볼륨을 조금 낮추며 아들에게 말했다.“일범아, 진짜로 왔구나.”정일범은 과일 바
이윤미는 갑자기 고개를 돌려 방윤림을 쳐다보며, 작은 소리로 방윤림에게 물었다“방 비서, 혹시 좋아하는 사람 있으세요?”방윤림은 이은화가 이윤미에게 배정해준 사람이었다. 이은화는 이윤미에게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머문 순간부터 방윤림을 믿을 수 있고 그 또한 절대로 배신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윤미가 앞으로 이씨 가문의 가주가 되지 못하더라도 방윤림은 그녀와 평생 함께할 것이며 다시는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이다.이윤미는 여러 번 방윤림을 시험한 뒤에야 방윤림을 믿기로 했다.역시 방윤림은 특별 비서직을 맡기 위해 특별히 양성된 사람답게 정말 못 하는 것이 없었다.아주 유능한 사람이었다.이윤미는 이씨 그룹이 점점 못해지고 있지만, 선조들이 세운 훈련 기지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훈련 기지의 책임자가 어디서 이렇게 대단한 아이를 찾아 기지로 데려와서 조금씩 유능한 비서로 양성했는지 모른다.문무를 겸비했을 뿐만 아니라 비주얼도 아주 훌륭했다.방윤림은 비록 전씨 가문의 도련님들과 비교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잘생긴 남자라고 칭찬받을 만큼 멋지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온 지 2년이나 되었지만, 이씨 가문의 비서를 양성하는 훈련 기지가 어디에 있는지 아직도 알아내지 못했다.그녀는 이은화에게 물었지만, 이은화는 그녀에게 훈련 기지가 어디인지 알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다만 그 훈련 기지를 담당하는 사람은 이씨 가문에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사람들이고 가문의 사람들과 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지만,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만 알면 된다고 했다.전심전력으로 역대 가주들을 위해 최고의 특별 비서를 양성했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재무 보고서를 보았지만, 교육 기지에 돈을 썼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었다.하지만 매년 이씨 가문에서는 큰돈이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었지만, 돈의 행방을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누군가가 단 한 번도 의문을 제기한 적 없었다.이윤미는 그 돈이 바로 훈련 기지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데 지급되리라 추측했다.훈련 기지도 자급
한참을 울다가 이윤정은 그제야 울음을 그치고 일어섰다. 그녀는 40만 원을 세어보더니 더도 말고 딱 40만 원이었다.과거에는 40만 원은 그녀의 눈에는 돈에 속하지도 않았다.그러나 지금 40만 원이라는 돈은 이윤미의 한 달 숙박비와 식비일 수도 있다.지금의 이윤정은 관성의 여운별도 더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여운별은 비록 용태호에게 이용당하고 있었지만 적어도 친동생 여천우가 매달 그녀에게 생활비를 주기 때문에 굶지는 않았다.그러나 이윤정이 더 이상 의지할 곳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강성을 떠나는 것이 달갑지 않았다.이윤정은 돌아가서 그녀의 세 형수에게 복수하리라 다짐했다.정군호 형제는 정군호의 유전자를 이어받아 밖에서 내연녀를 두기 좋아했다.이윤정은 그들의 취향을 잘 알고 있었고 그들의 성질도 잘 알고 있었다. 정일범 형제 또한 이윤정에 대한 정도 깊었기 때문에 그녀가 조금만 꼬드겨도 금세 넘어올 것이다.그들 형제가 전부 이윤정에게 빠져들게 해서 세 형수님이 죽도록 화나게 하고 싶었다.어차피 이윤정의 몸은 이제 깨끗하지 않으니까.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정일범 형제와도 혈연관계가 없었다.그들이 이윤정에게 돈을 주고 그녀를 내연녀로 삼기만 하면 그뿐이었다. 그러면 조윤 일행도 기가 막혀 죽을 지경일 것이다.이윤정은 될 대로 되라고 중얼거리면서 병원을 떠났다.고급 병실의 거실 창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이윤미는 이윤정이 이은화를 쫓아다니며 해명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윤정은 큰 소리로 울며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이은화가 경호원에게 이윤정 손에 돈을 좀 쥐여주라고 하고 자리를 떠난 모습을 본 이윤미는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저 모습을 보니 아마 포기하지 않은 모양이에요.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요.”이윤미 옆에 서 있는 방윤림이 이윤미의 반응을 살피며 조용히 말했다.이윤미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지만, 그의 말에 동의했다.“윤정이는 지금 유일하게 잡을 수 있는 건 바로 세 오빠일 거
“엄마, 누가 저와 아버지를 해쳤는지 알아요. 세 형수님이에요. 그 술은 큰오빠가 방에서 아버지께 가져다드린 술인데 큰오빠가 그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분명 형수님들일 거예요. 엄마!”이은화가 차에 올랐다.이윤정이 앞으로 덤벼들었지만 차 문도 만질 수 없었다.운전기사가 차를 몰기 전에 이은화는 창문을 눌러 경호원들에게 이윤정을 풀어주고 이윤정이 가까이 오도록 지시했다.이윤정은 웃음 지으며 경호원을 물리치고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엄마, 저 믿으시는 거죠? 제가 말한 것은 모두 사실이에요. 엄마는 계속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느라 아직 조사할 시간이 없으셨겠지만, 집으로 돌아가셔서 조사하기만 하면 금방 진실이 밝혀질 거예요.”이은화는 이윤정을 바라보며 대답했다.“너와 군호 씨가 남의 계략에 빠졌다는 사실을 나도 알아.”이윤정이 더욱 기뻐했다.이은화의 아이큐로 모를 리가 없었으니까.“하지만 뭐? 너희 두 사람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될 수는 없잖아.”이윤정의 희망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다.“엄마.”이윤정의 눈시울이 바로 붉어졌다.그녀는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이윤정의 처음은 한 영감탱이에게 빼앗겨버리고 말았다.“넌 내 딸이 아니야. 네 몸에는 우리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도 않고 정씨 집안의 피도 없어. 넌 나와 군호 씨 딸이 아니거든.”“하지만, 저는 엄마와 아빠가 키운 딸인걸요. 한때 저를 소중한 보물로 여기면서 저를 아끼고 사랑해 주셨잖아요.”이은화는 피식 웃었다.“그건 우리가 네 친아버지한테 속았기 때문이야. 원망하려면 네 친아버지를 원망해. 날 원망하면 안 되지. 넌 시종 우리 가문의 딸이 아니었다. 일범이는 내 친아들이고 일범의 아내도 내 며느리야. 너의 형수님들이 널 모함했는데, 그래서 뭐? 나에게는 핏줄이 가장 중요해.”이은화는 이윤정의 창백한 얼굴을 무시하고 경호원에게 분부했다.“얘한테 돈 40만 원 줘서 보내. 얼른 가자!”이은화도 속으로 화가 났지만, 조윤과 이윤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그
정군호는 이윤미가 자신과 얘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채고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말을 이었다.“영화도 좀 보고 쉬어야겠어.”이윤미는 아버지를 눕히고 싶어 했고 방윤림이 그녀의 뜻을 알아듣고 대신 정군호를 눕혀 주었다.“아버지, 저와 방 비서는 거실에 있을게요. 무슨 일이 있으면 불러주세요. 이따가 큰오빠도 오실 거에요.”정군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네 오빠가 왜 와? 네가 날 이틀 동안 돌보겠다고 하지 않았어? 왜 돌보기 싫어서 그래?”“큰오빠도 아버지 아들인데 아버지께서 입원하셨는데 오빠가 와서 돌보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제가 돌보기 싫은 것과 상관없는 것 같은데요. 아버지는 저 혼자만의 아버지가 아니잖아요.”정군호는 목이 메어 잠시 할 말을 잃었다.“네 오빠는 출근하시잖아.”“저도 출근해야죠. 제가 큰오빠보다 더 바빠요.”정군호가 또 무슨 말을 하려 하자 이윤미는 이은화를 내세우며 계속해서 말했다.“엄마가 저 보고 병원으로 와서 아빠와 좀 이야기도 나누라고 했어요. 한 시간 뒤에 오빠가 오신다고 하셨고요.”정군호는 이은화의 계획이라는 말을 듣고는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군호는 이윤정의 정황을 묻고 싶었지만 감히 이윤미에게 묻지 못했다.이윤정은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그녀는 지금 입원 병동 입구 근처에 숨어 대문을 바라보며 이은화를 기다리고 있었다.드디어 이은화가 나타났다!이은화가 경호원들과 함께 입원 병동을 나서자 이윤정은 재빨리 나타나 쏜살같이 달려갔다.이은화 곁의 경호원들도 만만한 실력이 아니었기에 이윤정이 다가오기도 전에 먼저 발을 내밀었다.다행히 이윤정은 반응이 빨라 경호원이 날린 발차기를 재빨리 피했다.“엄마, 나야. 윤정이.”이윤정은 큰소리로 외쳤다.이윤정이라는 말을 들은 경호원들은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지만, 여전히 이윤정을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게 했다.“엄마, 엄마!”이은화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고 계속 걸어가자 이윤정은 소리를 지르며 따라갔다.“엄마, 제 말 좀 들어주세요. 엄마,
이윤미가 입을 열었다.“삼촌들의 삶은 여전히 행복하게 살고 계세요.”이윤미는 정군호가 정씨 집안의 미래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의 미래를 위해서, 그리고 이은화의 복수 수단을 두려워했던 정군호는 스스로 그 부분을 잘라 혼인 생활을 지키기로 했다. 앞으로 같은 침대에 있더라도 아무 짓도 못 하는 점에 대해 정군호도 받아들였다.조심했어야 했는데.“그럼 됐어. 윤미야, 비록 넌 네 엄마의 이씨 성을 따르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 정씨 집안의 피가 흐르고 있거든. 앞으로 정씨 집안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절대로 수수방관해서는 안 돼. 네 삼촌과 고모들도 너에게 잘 대해 주시잖아.”이윤미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분들도 지금 그들만의 일자리가 있잖아요. 그분들이 열심히 일하고 안전하게 지내시기만 한다면 생활이 나쁘지 않을 거예요. 만약 급한 일이 생기면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드려야죠.”만약 이윤미가 도울 수 없는 일이라면 예외가 없을 것이다.정군호도 이윤미의 말뜻을 알아챘다.이윤미는 이은화처럼 매우 냉정하고 정씨 집안 사람들과 감정이 없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정씨 집안에 가장 정이 깊은 사람이 바로 이윤정이였다.이윤정은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정군호는 부드럽게 웃었다.“성실하게 생활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이셔. 그리고 저의 사촌 형제들도 전부 성실한 사람들이지.”성실하거나 말거나 이윤미가 관여할 바는 아니지만, 그들이 이씨 가문의 명목으로 함부로 행동하면 절대로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다.이윤미는 남들이 그녀를 바둑판의 바둑알로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아버지, 저도 알아요.”정군호는 이윤미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방윤림을 힐끗 쳐다보았다. 정군호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였고 그의 모습을 본 이윤미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버지, 하시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하세요. 우리가 친부녀 사이인데 못할 말이 어디 있겠어요?”“윤미야, 사실 네 엄마 마음속에도 한 남자가 들어있어. 다만 그 남자가 자취를 감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