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 후, 성기현이 물었다.“예정이는 전 대표의 신분을 알고 어떤 반응이던가요? 도통 전화를 받지 않네요. 계속 꺼진 상태에요.”전태윤이 비난 조로 말했다.“역시 뒤늦게 찾은 사촌 동생이다 보니 신경을 덜 쓰는군요. 예정의 휴대폰은 어젯밤부터 통화 가능했어요. 계속 꺼진 상태라고 하는데 과연 전화를 몇 통이나 걸었어요? 예정이가 무슨 반응인지 성 대표한테 알려줘야 해요? 그건 나랑 예정이 사이의 일이지 당신들이랑 무관해요.”이경혜가 하예정의 이모라고 해도 다들 금방 친척관계인 걸 확인했으니 그다지 정이 깊지 않다.전태윤은 오직 하예진만이 그를 질책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다.성씨 일가의 사람들은 아직 그럴 자격이 없다.성기현은 말문이 막혀서 또 한참 침묵하다가 겨우 말했다.“전 대표, 오늘 이렇게 찾아와서 번거롭게 굴었네요. 내가 한 말도 조금 이기적이었어요. 그저 소현의 기분만 고려했지 예정의 기분은 미처 고려하지 못했어요. 전 대표는 나보다 예정이에 대해 더 잘 알 테니 걔가 어떤 성격인지도 알고 있겠죠. 전 대표의 신분을 알게 된 후 예정이가 만약 달갑게 받아들인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고 만약 화를 낸다고 해도 걔를 원망하지 말고 생각을 할 시간을 좀 줘요. 난 비록 예정이에 대해 잘 모르지만 어릴 때 부모를 여의고도 쭉 밝은 성격으로 살아온 건 예정이가 아주 강한 사람이란 걸 말해주잖아요. 인생의 풍파를 늘 웃어넘기잖아요. 그러니까 전 대표가 거짓말한 것도 예정이는 꼭 태연하게 마주할 거예요.”성기현이 하예정을 위해 말해주자 전태윤은 오히려 침묵했다.그가 아무 말 없으니 성기현도 입을 다물었고 사무실 안에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전태윤이 갑자기 낮은 목소리로 성기현에게 물었다.“그해, 성 대표 아내가 성 대표에게 구애하는 걸 포기했을 때, 어떻게 아내분 마음을 되돌려서 계속 사랑하게 했나요?”성기현이 두 눈을 껌뻑였다. 전태윤은 지금 그에게 경험을 묻는 걸까? “진심은 꼭 통한다고 봐요. 아내가 애초
“만약 두 달 전이라면 나도 예정 씨가 쿨하게 이혼하고 뒤도 안 돌아볼 거라고 생각해.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쉽게 이혼하지 못할 걸. 감정이라는 게 어찌 그리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어.”소정남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지랖 넓게 물었다.“예정 씨 임신은 했어?”전태윤이 답했다.“아직이야...”둘은 피임조치도 안 취했고 전태윤도 애 만들려고 열심히 노력했지만 종무소식이었다.아직 아이와 인연이 닿지 않은 듯싶다.“아이가 없으니 오직 너 스스로 해결해야겠네. 태윤아, 넌 어리석은 게 아니야. 일이 발생하고 지금까지 네가 했던 일련의 행동들은 단지 너의 본능적인 반응이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네가 만약 예정 씨였다면 감쪽같이 속은 후 감금을 당하고 기절까지 했는데 너라면 무슨 기분일 것 같아? 지금은 네가 거짓말을 한 것 때문에 골치 아파할 때가 아니야. 이 문제는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문제야. 중요한 건 네가 잘못을 저지른 후 일련의 행위가 예정 씨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거야. 이혼이 두려워서 감금하면 예정 씨가 생각이 바뀔 것 같아? 두 사람 사이의 갈등만 점점 더 격화될 뿐이야.”“예정 씨 그만 풀어주고 떨어져서 며칠 지내. 너희 부부 지금 마음을 식힐 필요가 있어. 너도 차분하게 잘 생각해봐. 이후에 어떻게 해야 예정 씨가 다시 널 믿어줄지. 이번에 거짓말한 일로 예정 씨는 너에 대한 신뢰가 전부 깨졌을 거야. 예정 씨도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야 네가 그간 잘해줬던 것들과 두 사람이 함께 쌓아온 추억들이 생각날 거야. 그리고 매번 예정 씨가 어려운 일에 부딪혔을 때 네가 옆에 있어 주고 묵묵히 도와줬어. 이것들도 다 너희 부부가 쌓아온 추억들이야.”“네가 잘해준 것들을 되새길 때 그때 너도 다시 분발해서 깨졌던 믿음을 조금씩 쌓아 올리란 말이야. 그러면서 슬슬 화해하는 거 아닐까? 너 계속 예정 씨를 감금하면 예정 씨도 온통 너의 단점들만 되뇌고 너에게 속았다는 사실만 곱씹을 거야. 그러면 네가 잘해줬던 일들은 아예 생각도 안 날
“예정 씨가 지금 이혼을 언급해도 전혀 불안할 것 없어. 두 사람 아직 실천에 옮기지도 않았잖아. 고작 이혼합의서를 쓴 것뿐인데 뭐가 두려워? 이혼절차를 밟지 않는 한 두 사람 충분히 되돌아설 여지가 있어. 네가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달렸지. 한번 잘 생각해봐. 난 나가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거울 좀 봐봐, 고작 하루 사이에 예전의 카리스마를 전부 잃고 의기소침해졌잖아. 보는 내가 다 속상해. 어휴, 너 차라리 날 사랑하지 그랬어. 그랬더라면 난 절대 널 이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을 텐데.”전태윤이 책상 위의 물건을 집어 들고 소정남에게 내던졌다. 그는 어이가 없어 실소를 터트리며 질책했다.“난 여자를 좋아하니까 작작 꼬드겨. 효진 씨가 너 이러는 거 알면 바로 마음 접을걸.”그가 웃자 소정남이 말했다.“웃는 걸 보니 나도 마음이 놓이네.”소정남은 나가서 전태윤이 먹을 음식을 사 왔다.전태윤은 마음이 따뜻해졌다.소정남이라는 친구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하고 뿌듯했다.사무실에 홀로 남은 전태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가더니 저 멀리에 있는 고층건물을 바라보았다.한 걸음 물러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했거늘 정말 그가 너무 꽉 잡고 있었던 걸까?뒤로 두어 걸음 물러서면 바로 해결될까?전태윤은 소정남과 처형이 했던 말을 곰곰이 되새기더니 자신의 행동이 정말 하예정과의 관계만 악화시키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처형이든 심효진이든, 또 혹은 소정남이든 전부 똑같은 말만 했다. 하예정은 절대 문제를 회피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지 지금 마음을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고 말이다.처형은 그가 모래알을 꽉 잡듯이 하예정을 잡고 있는데 세게 잡을수록 모래는 더 빨리 새어나간다고 했다.그를 타일렀던 사람들은 전부 그가 지나치게 일방적이란 걸 암묵적으로 일깨워줬다.“띠리링...”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장씨 아저씨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전태윤은 하예정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황급히 전화를 받았다.“도련님, 사모님 친구분 심효진 씨가 오셨어요..
전태윤은 조 비서가 안고 있는 서류 뭉치를 보면서 분부했다.“전이진한테 보내서 처리하라고 해. 만약 결정을 못 내리겠으면 걔더러 할머니를 찾아가라고 전해. 그리고 나 요즘 회사에 자주 못 나오니까 걔한테도 말해. 전이진도 전씨 가문의 남자이니 마땅히 날 위해 전씨 그룹의 중임을 분담할 의무가 있어.”조 비서가 알겠다며 머리를 끄덕였다.대표님은 수중의 업무를 내려놓고 오롯이 사모님께 전념하려는 걸까?전태윤은 비서에게 분부한 후 엘리베이터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몇 분 후, 그는 전용차를 타고 전씨 그룹을 떠났다.그 시각 조 비서도 부대표 사무실 문을 두드리고 안에 들어가 전태윤이 한 말을 모조리 전이진에게 전했다.전이진은 조 비서가 안고 있는 한 뭉치 서류를 보더니 표정이 확 굳었다.“여기 놓고 가. 다 처리하면 가지러 오라고 다시 통지할게.”“고마워요, 부대표님. 아 그리고 대표님께서 요즘 회사에 자주 못 나오시고 부대표님도 전씨 가문의 남자이니 마땅히 대표님을 위해 전씨 그룹의 중임을 분담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전이진이 이해한다는 듯이 대답했다.“알았어. 가서 볼일 봐.”그는 일찌감치 예감이 들었다.큰형은 형수님의 마음을 되돌리기 위해 회사의 중임을 그에게 맡길 게 뻔하다.아홉 형제 중에서 전태윤과 전이진만 회사의 핵심 인물이다. 다른 남동생들은 계열사를 책임지거나 호텔 운영을 책임지고 또 일부는 아예 가족 기업에서 근무하지 않고 스타트업에 뛰어들었다.전태윤이 여유가 없으면 전이진이 나서야 한다.게다가 그는 아직 솔로이니까!듣기로 할머니가 최근에 그와 어울리는 여자친구를 사방으로 물색하고 있다고 한다...전이진은 몸이 움찔거렸다. 큰형이 사랑의 늪에 빠지더니 이성까지 잃었다. 그는 쭉 이렇게 솔로로 지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만약 그 언젠가 정말 결혼하게 된다면 전이진은 상대에게 자신의 진짜 신분을 솔직하게 밝히리라 다짐했다. 절대 큰형처럼 신분을 숨기지 않을 것이다.전태윤의 일은 전씨 일가의 형제들에게 큰 깨우침을 줬다.
전태윤의 눈가에 슬픔이 스쳤지만 어제처럼 격하게 반응하진 않았다.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예정아, 정말 저 동물들을 키우고 싶어? 그럼 내가 장씨 아저씨더러 길을 안내해서 너랑 효진 씨를 데리고 우리 집 과수원들을 구경시켜줄게. 닭을 키우기 적합한 곳이 있으면 바로 거기서 키워. 네가 직접 돌보고 싶으면 직접 돌보고 그게 아니면 도우미들이 돌봐줘도 돼.”하예정이 미간을 찌푸렸다.“구정 때 당신 본가에서 보냈는데 과수원을 전혀 못 봤어요.”“서원 리조트 옆에 산이 몇 개 있는데 과수를 많이 심었어. 그게 바로 과수원이야. 거긴 우리 집안의 대저택이라 매년 구정 때마다 거기서 보내.”시댁에 뜬금없이 리조트가 하나 생겨도 하예정은 더이상 놀랄 것 없었다.갑부니까.모든 분야로 돈만 벌 수 있다면 그들은 전부 섭렵할 것이다.“날 이 별장에서 내보내려고요?”하예정은 뒤늦게 전태윤의 말에서 요점을 포착했다.전태윤은 그녀를 바라보았고 그녀도 마주 봤다. 부부가 서로 마주 본 순간 하예정은 그제야 전태윤도 요 이틀 얼마나 수척해졌는지 알아챘다. 그녀가 힘든 만큼 그도 똑같이 괴로웠다.“예정아, 미안하단 말을 수없이 해왔지만 그래도 여전히 사과하고 싶어. 널 그렇게 오랫동안 속이지 말아야 했어. 나에 대한 믿음이 다 깨졌잖아. 지금 당장 날 용서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는 건 바라지도 않아. 단지 나한테 한 번만 더 기회를 줘. 내가 그 믿음을 다시 쌓아 올릴 수 있게. 그리고 쉽게 이혼 얘기를 꺼내지 말아 줄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너무 아파.”진짜 이혼할 지경에 이르지 않는 한 말다툼하고 감정이 격해질 때 이혼 얘기를 꺼내면 상대의 마음에 비수를 꽂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정은 한참 침묵한 후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나 지금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내가 한 말과 행동에 가끔 후회하기도 해요... 태윤 씨, 나 인제 더는 태윤 씨랑 할 얘기 없으니까 제발 여기서 나가게 해줘요. 돌아가서 마음을 좀 진정하고 싶어요. 우리 결혼 생
앞으로 계속 감금당할 거란 생각에 그녀는 미쳐버릴 것 같았다.다행히 전태윤이 이 상황을 이해하고 그녀에게 자유를 돌려주었다.“이모부.”주우빈은 이모에게 안길 때 이모부를 보더니 신이 나서 두 팔을 벌리며 안아달라고 했다.전태윤은 아이의 요구를 만족하며 바로 안아주었다.“높게 들어줘요, 이모부. 더 높게.”전태윤이 웃으며 주우빈을 높이 들었다. 아이는 신이 나서 깔깔대며 웃었다.“이 트럭은...”하예진이 묻기도 전에 전태윤이 덥석 가로챘다.“처형, 예정이가 직접 키운 닭을 잡아먹고 싶다길래 효진 씨가 대신 이 닭들을 사 왔어요. 지금 막 장씨 아저씨한테 길을 안내해서 예정이를 데리고 우리 집 과수원으로 가볼 참이었어요. 이 닭들을 과수원에 넣어 키우면 어떨지 고민하고 있었거든요.”하예진은 동생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뜬금없이 웬 닭을 키워?”하예정이 말했다.“이미 사 왔으니 어디 둘 곳은 있어야잖아...”하예진은 동생과 제부를 번갈아 보더니 동생이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 그런데 잠깐, 그녀는 뭔가 놓친 듯싶었다.좀 전에 전태윤은 집사더러 길을 안내하여 하예정을 데리고 과수원으로 가보라고 했는데, 이는 예정이한테 자유를 돌려준 건가?“태윤 씨, 난 안 갈래요. 장씨 아저씨보고 기사와 함께 과수원으로 가라고 하면 돼요. 언니가 마침 왔으니 난 언니네랑 돌아갈게요.”전태윤이 자상하게 대답했다.“그래, 너 하고 싶은대로 해.”그는 아무 의견이 없었다.하예정은 그의 품에서 우빈이를 안아오며 언니와 심효진에게 말했다.“언니, 효진아, 가자 인제.”“응, 그래.”심효진과 하예진은 가면서 고개 돌려 전태윤을 쳐다봤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차 쪽으로 걸어가 문을 열고 우빈을 안에 태웠다. 그녀도 이제 막 타려고 할 때 전태윤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예정아.”세 여자는 순간 바짝 긴장했다. 특히 하예정은 본능적으로 전태윤이 번복했을 거란 생각이 들어 빨리 도망쳐야겠다고 황급히 차 문을 열었다. 하지만
전태윤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번복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니었다.하예진이 재빨리 말했다.“제부, 걱정 말아요. 요 며칠 제가 쭉 예정이를 지킬게요. 운전도 안 되고 술도 많이 못 마시게 할게요!”그녀는 또 한마디 더 보탰다.“얘가 진짜 술 먹고 싶다 그러면 집에서 맥주 두 병 마시게 할게요. 바에는 두 번 다시 안 보내요.”“네, 처형, 그럼 요 며칠은 처형한테 잘 부탁드릴게요.”전태윤은 또다시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처형 집에 며칠 머무르다가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데리러 갈게. 만약 나랑 함께 있기 싫다면 넌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가고 난 여기서 지낼게.”하예정은 그를 한참 지켜보다가 말했다.“잘 있어요.”곧이어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제부, 몸 잘 챙겨요. 예정이는 내가 잘 보살필게요. 제부가 예정이를 데리러 올 때 통통하게 살을 찌워놓을게요.”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이 언니가 지금 날 돼지도 사육할 기세네?’하예진은 제부에게 당부한 뒤 차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전태윤은 차가 멀어져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았다.“효진 씨.”심효진도 막 떠나려 할 때 전태윤이 그녀를 불렀다.“하실 말씀 있으시면 얼른 분부하세요, 대표님.”심효진이 공손하게 말했다.전태윤은 바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어제 내가 예정이를 위해 준비한 발렌타인 선물 중 하나에요. 새 차인데 예정의 차 앞부분이 훼손됐으니 효진 씨가 나 대신 새 차 키를 예정이에게 보내줄래요?”한편 심효진은 차 키를 받지 않았다.“태윤 씨는 본인한테 자신이 없어요. 아니면 예정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가요? 오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요! 앞으로 예정의 손에 직접 선물을 쥐여줄 기회가 많고 많은데 왜 굳이 저를 통해서 전해주려고 해요?”전태윤은 입술을 앙다물고 손을 거두어들였다.“고마워요, 효진 씨. 후에 직접 예정이한테 줄게요. 저기 혹시 예정의 앞에서 나 대신
장씨 아저씨가 공손하게 대답하더니 또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도련님, 밖에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우니 집 안으로 들어가세요. 오늘 일어나서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죠?”전태윤은 꿈쩍하지 않은 채 장씨 아저씨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굶어서 쓰러지면 예정이가 돌아올까요?”장씨 아저씨는 말문이 막혔다.전태윤은 이런 자신이 우스웠다.“그냥 한번 물어본 거예요. 내 몸 갖고 장난치지 않아요. 예정이랑 아이도 낳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아야죠. 백발이 되는 그날까지 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어요.”장씨 아저씨가 얼른 말했다.“사모님은 끼니를 꼭꼭 챙겨 드세요. 저는 사모님의 이런 마음가짐이 참 바람직하다고 봐요.”전태윤이 일부러 굶어서 쓰러졌는데 만에 하나 사모님이 모질게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도련님만 굶어 죽는 게 아닌가?“예정이는... 날 사랑하는 마음이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깊지 않아요.”그래서 그녀는 좀 더 모질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일구야.”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강일구를 불렀다.강일구는 곧바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차 대기해. 리조트에 가서 며칠 지낼 거야.”“네.”강일구는 서둘러 기사에게 통지했다.몇 분 후 전태윤의 럭셔리 차량이 이 큰 별장을 떠나서 살기등등한 기세로 서원 리조트에 돌아갔다.리조트의 중심 정원 홀에서 할머니가 한창 도우미가 끓여온 커피를 건네받았다.장소민이 시어머니께 말했다.“어머님은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원래 잠도 잘 못 주무시는데 커피까지 드시면 잠이 더 안 와요.”“커피는 내 수면에 영향 주지 않아. 진정 영향을 주는 건 태윤이네 부부야.”할머니는 커피 두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정신 좀 차리고 어떻게 도울지 생각해봐야겠어.”장소민이 말했다.“어머님,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더 간섭하시려고요? 그들 부부가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시죠. 태윤이랑 예정이가 지금 이렇게 된 건 어머님이 간섭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항상 예정이가 태윤이랑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