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의 말에 다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가 번복할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니었다.하예진이 재빨리 말했다.“제부, 걱정 말아요. 요 며칠 제가 쭉 예정이를 지킬게요. 운전도 안 되고 술도 많이 못 마시게 할게요!”그녀는 또 한마디 더 보탰다.“얘가 진짜 술 먹고 싶다 그러면 집에서 맥주 두 병 마시게 할게요. 바에는 두 번 다시 안 보내요.”“네, 처형, 그럼 요 며칠은 처형한테 잘 부탁드릴게요.”전태윤은 또다시 하예정에게 말했다.“예정아, 처형 집에 며칠 머무르다가 집에 돌아오고 싶으면 언제든지 얘기해. 내가 데리러 갈게. 만약 나랑 함께 있기 싫다면 넌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가고 난 여기서 지낼게.”하예정은 그를 한참 지켜보다가 말했다.“잘 있어요.”곧이어 그녀는 차에 올라탔다.“제부, 몸 잘 챙겨요. 예정이는 내가 잘 보살필게요. 제부가 예정이를 데리러 올 때 통통하게 살을 찌워놓을게요.”하예정은 말을 잇지 못했다.‘이 언니가 지금 날 돼지도 사육할 기세네?’하예진은 제부에게 당부한 뒤 차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며 그에게 손을 흔들었다. 전태윤은 차가 멀어져갈 때까지 묵묵히 지켜보았다.“효진 씨.”심효진도 막 떠나려 할 때 전태윤이 그녀를 불렀다.“하실 말씀 있으시면 얼른 분부하세요, 대표님.”심효진이 공손하게 말했다.전태윤은 바지 주머니에서 차 키를 꺼내 그녀에게 건넸다.“이건 어제 내가 예정이를 위해 준비한 발렌타인 선물 중 하나에요. 새 차인데 예정의 차 앞부분이 훼손됐으니 효진 씨가 나 대신 새 차 키를 예정이에게 보내줄래요?”한편 심효진은 차 키를 받지 않았다.“태윤 씨는 본인한테 자신이 없어요. 아니면 예정이에 대한 사랑이 부족한가요? 오늘 이별은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고요! 앞으로 예정의 손에 직접 선물을 쥐여줄 기회가 많고 많은데 왜 굳이 저를 통해서 전해주려고 해요?”전태윤은 입술을 앙다물고 손을 거두어들였다.“고마워요, 효진 씨. 후에 직접 예정이한테 줄게요. 저기 혹시 예정의 앞에서 나 대신
장씨 아저씨가 공손하게 대답하더니 또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도련님, 밖에 바람이 많이 불고 추우니 집 안으로 들어가세요. 오늘 일어나서부터 아무것도 못 드셨죠?”전태윤은 꿈쩍하지 않은 채 장씨 아저씨에게 물었다.“만약 내가 굶어서 쓰러지면 예정이가 돌아올까요?”장씨 아저씨는 말문이 막혔다.전태윤은 이런 자신이 우스웠다.“그냥 한번 물어본 거예요. 내 몸 갖고 장난치지 않아요. 예정이랑 아이도 낳고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살아야죠. 백발이 되는 그날까지 살지 못한다면 얼마나 아쉽겠어요.”장씨 아저씨가 얼른 말했다.“사모님은 끼니를 꼭꼭 챙겨 드세요. 저는 사모님의 이런 마음가짐이 참 바람직하다고 봐요.”전태윤이 일부러 굶어서 쓰러졌는데 만에 하나 사모님이 모질게 돌아오지 않으면 결국 도련님만 굶어 죽는 게 아닌가?“예정이는... 날 사랑하는 마음이 내가 그녀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깊지 않아요.”그래서 그녀는 좀 더 모질게 마음먹을 수 있었다.“일구야.”전태윤이 목소리를 내리깔고 강일구를 불렀다.강일구는 곧바로 종종걸음으로 달려왔다.“차 대기해. 리조트에 가서 며칠 지낼 거야.”“네.”강일구는 서둘러 기사에게 통지했다.몇 분 후 전태윤의 럭셔리 차량이 이 큰 별장을 떠나서 살기등등한 기세로 서원 리조트에 돌아갔다.리조트의 중심 정원 홀에서 할머니가 한창 도우미가 끓여온 커피를 건네받았다.장소민이 시어머니께 말했다.“어머님은 이젠 연세도 있으시고 원래 잠도 잘 못 주무시는데 커피까지 드시면 잠이 더 안 와요.”“커피는 내 수면에 영향 주지 않아. 진정 영향을 주는 건 태윤이네 부부야.”할머니는 커피 두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정신 좀 차리고 어떻게 도울지 생각해봐야겠어.”장소민이 말했다.“어머님, 일이 이 지경이 됐는데도 더 간섭하시려고요? 그들 부부가 알아서 해결하게 놔두시죠. 태윤이랑 예정이가 지금 이렇게 된 건 어머님이 간섭했기 때문이에요. 저는 항상 예정이가 태윤이랑 같은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
어르신은 목이 메어 허탈하게 말했다.“그건 타고난 성격이니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어.”어르신이 또다시 혼잣말을 이었다.“우여곡절이 있어야 서로를 더 소중히 여기게 돼.”장소민은 말문이 막혔다.이때 도우미가 한 명 들어왔다.“어르신, 사모님, 큰 도련님이 돌아오셨어요.”할머니는 화들짝 놀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날렵한 동작이 할머니의 연세를 무색하게 했다.“소민아, 난 방에 가서 누우련다. 태윤이가 나에 대해 묻거든 걔네 부부 일로 걱정에 휩싸여 몸져누웠다고 하거라.”장소민이 말했다.“그럼 태윤이가 어머님을 병원에 실어갈 거예요. 저는 분명 미리 말했어요. 그때 가서 저를 탓하면 안 돼요, 어머님.”“화장터로 보내지만 않으면 돼.”할머니는 가장 빠른 속도로 제 방에 돌아가 침대에 누워 아픈 척했다.한참 누워 있었지만 노크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할머니는 속으로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설마 이 녀석이 너무 화나서 할머니가 ‘몸져누웠다’라는 데도 신경 쓰지 않는 걸까?아이고, 인기척이라도 해줄 것이지.언제까지 이렇게 누워있을 수도 없는 노릇인 것을, 몰래 가서 손주 녀석이 뭘 하는지 훔쳐봐야 하는 걸까?전태윤은 대체 뭘 하고 있을까?그는 돌아온 후 방안에 할머니가 안 보이자 두말없이 나가버렸다.장소민이 재빨리 쫓아가 그의 뒤에서 관심 조로 물었다.“태윤아, 너 괜찮은 거지?”전태윤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괜찮아요, 엄마.”“안색이 안 좋아 보여. 제대로 쉬지 못했어? 예정이는?”“처형이랑 함께 나갔어요.”장소민은 흠칫 놀라서 걸음을 멈추다가 아들이 또 멀리 가버리자 재빨리 뒤쫓아가며 물었다.“나가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말 그대로 나갔다는 뜻이에요.”전태윤은 결국 야외 수영장 앞에서 멈춰 섰다.이어서 그는 외투를 벗기 시작했다.“너 미쳤어? 지금 이 날씨에 수영하면 감기 걸려!”장소민은 더 따져 물을 겨를 없이 얼른 달려가 아들을 제지했다. 이 추운 날에 수영장에 뛰어드는 건 빙어로 되는
“엄마.”전태윤은 지금 똑바로 설명하지 않으면 엄마가 진짜 그에게 재벌 집 딸들과 선 자리를 마련하여 오해를 불러올 것 같았다.그는 목소리를 내리깔고 말했다.“예정이가 처형과 함께 나갔다는 건 친정에 돌아가 한동안 지내면서 마음을 식힌다는 뜻이에요.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게 아니라고요. 나도 걔가 안 돌아오는 건 용납할 수 없어요.”하예정을 풀어주고 그녀가 처형을 따라가는 걸 허락하는 일이 전태윤에게 얼마나 어려운 결정인지 하늘은 알고 있겠지!“나도 마음을 식혀야 하는데 좀처럼 진정이 안 돼서 수영장이라도 뛰어들려고 했어요. 그럼 혹시 차분해질 수 있겠는지... 엄마, 난 전혀 고육지책을 쓸 의향이 없어요.”장소민이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물었다.“너희 두 사람 아직 이혼 안 했어?”“엄마는 내가 이혼하길 무지 바라시네요?”“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해. 엄마는 늘 너희 두 사람이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어. 너희 둘은 사교 영역이 달라서 예정이가 비집고 들어가기도 힘들 거야. 지금은 이해할 수도 없고 체감할 수도 없겠지만 화해하고 난 후에 예정이를 데리고 사업 미팅에 가거나 여러가지 연회, 자선단체 등 행사에 참석할 때면 바로 느끼게 될 거야. 넌 괜찮겠지. 남들이 널 비웃는 걸 천연덕스럽게 받아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예정이는 달라. 상류층 사모님들의 사교 모임에는 벼락부자의 아내들도 끼어들기 힘든데 예정이는 오죽할까. 따돌림을 당하고 인정받지 못하고 갖은 야유와 비난만 받을 거야”장소민은 평생 재벌가에서 지내다 보니 평소 사귀는 사람들도 전부 그녀와 지위가 비슷한 사모님들이다. 자신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에겐 왕왕 가볍게 고개만 끄덕일 뿐 상대를 자신의 사교 영역에 들이는 건 불가능하다.그녀의 시어머니처럼 전혀 틀을 차리지 않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하지만 네가 예정이를 사랑하고 엄마도 너희 둘이 이혼하는 걸 원치 않아. 이혼하고 너 평생 솔로로 지낼까 봐 두려워. 세상에 어느 엄마가 제 아들이 독신으로 사는 걸 원하겠어? 게다가 이렇게 훌
“소민아, 사람 시켜서 저 녀석한테 생강차를 끓여주라고 해. 태윤이가 매워 죽게 생강을 많이 넣어.”어르신이 방에서 나오며 밖에 있는 며느리에게 분부했다.장소민은 머리를 끄덕이고는 도우미에게 생강차를 끓이라고 했다.고부가 나란히 수영장 앞에 왔을 때 전태윤은 여전히 물고기처럼 물속을 헤엄치고 있었다.“전태윤.”할머니가 무게감 있는 목소리로 외쳤다.전태윤은 머리를 갸웃거리며 할머니를 힐끗 보더니 계속 앞으로 헤엄쳐갔다. 수영장 가장자리로 헤엄쳐간 후 그는 물속에서 나와 자리에 앉았다.할머니는 수영장을 에돌아 그의 앞에 다가가더니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여기 앉아서 뭐해? 얼른 방에 들어가.”“할머니, 나 머리 좀 식히고 싶어요.”어르신이 그를 질책했다.“머리 식히려거든 문 잠그고 방 안에 있어도 돼. 아무도 널 방해하지 않을 테니 마음껏 머리를 식혀. 왜 굳이 물속에 뛰어드는 건데?”“나름 효과 있더라고요.”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차가운 물에 몸을 담그니 머리가 맑아지고 복잡했던 마음도 훨씬 편해졌어요.”그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진정이 됐으면 어서 옷 입고 방에 돌아가. 여기 오래 앉아있으면 감기 걸려.”전태윤은 입술을 앙다물었다.장소민이 그의 외투를 가져와 몸에 걸쳐주며 말했다.“너 감기 걸리기만 해봐, 엄마가 바로 예정이 찾아가서 따질 거야. 걔가 널 아프게 했어.”“엄마가 과연 그렇게 막무가내로 나올까요?”전태윤은 엄마가 하예정을 찾아가 따지는 걸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장소민은 말만 독하게 할 뿐 정작 너무 지독한 일은 하지 못한다.장소민은 침을 꼴깍 삼켰다.“엄마는 제 새끼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어.”어르신도 말했다.“태윤아, 일단 방에 가서 옷부터 갈아입고 나랑 얘기하자.”전태윤은 할머니를 올려다보며 비난 조로 말했다.“난 또 할머니가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있어야 쾌유할 줄 알았죠.”그가 돌아올 때 할머니가 보이지 않자 미리 숨어 계신다는 걸 눈치챘다. 할머니가 늘 해오던 수법은 바로 아픈 척
옷을 갈아입은 후 엄마의 감시하에 그는 생강차를 마셨는데 너무 매워서 미간을 확 구겼다.“엄마, 생강을 왜 이렇게 많이 넣었어요. 매워 죽겠네.”“너희 할머니가 생강 많이 넣어서 체내의 한기를 빼라고 했어. 생강차 마시기 싫으면 앞으로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던가.”전태윤이 그릇을 내려놓았다.“엄마, 난 진짜 마음 식히려고 그랬어요. 일부러 어리석은 짓을 한 게 아니라고요.”“알았어, 알았다고. 그래서 지금은 충분히 진정했지? 어서 할머니 찾아가서 얘기 나눠. 할머니야말로 제일 처음 이 일을 시작한 장본인이셔. 네 할머니만 아니었어도 넌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거야.”장소민은 시어머니에게 불만이 조금 남아있었다.전태윤은 매우 훌륭해서 장가 못 갈 걱정이 없는데 어르신이 한사코 그더러 자신을 구한 생명의 은인과 결혼하라고 다그쳤다.애초에 다들 감격에 겨워 하예정에게 정중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그녀가 일절 거절했다.그 뒤로 어르신과 하예정이 사이좋게 지냈고 하예정은 어르신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장소민은 사석에서 남편에게 구시렁대기도 했다. 하예정이 혹시 할머니의 신분을 알고 더 많은 것을 탐내느라 그들이 주는 거액의 보상금을 거절한 게 아닐까?장소민의 남편은 일단 일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자고 했다.보다 보니 하예정이 어느덧 그의 며느리가 되었다.하예정은 할머니의 정체를 아예 몰랐고 전태윤과 혼인 신고할 때도 그가 전씨 그룹 대표라는 걸 몰랐다. 장소민은 나중에 이 일들을 알게 됐다. 만약 몰랐다면 그녀는 진짜 하예정이 가식녀라고 오해했을지도 모른다.그 이후에는 부부가 서로를 깍듯하게 대하고 비록 한방에서 지내도 교류가 아주 드물며 잘 때 역시 따로 잔다고 했다. 심지어 전태윤은 계약서를 작성하여 하예정에게 서명하라고 했다.계약서 내용이 무엇인지 장소민은 몰랐다.하지만 제 아들은 절대 스스로 손해 보는 일을 하지 않는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 계약서는 분명 하예정에 관한 단속 사항이 더 많을 것이다.언제부터인지 아
장소민도 생각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일생에 한 번뿐인 결혼인데 하예정은 그녀의 아들에게 시집올 때 확실히 아무것도 얻지 못했다. 그 아이는 얼마나 서러웠을까.“예물과 결혼식은 후에 얼마든지 보충할 수 있어.”전태윤도 후에 다 해줄 수 있다는 걸 알지만 그는 항상 그녀를 속상하게 한다.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엄마, 난 가서 할머니랑 얘기 나눌 테니까 엄마도 그만 할머니를 원망해요. 이건 어쩌면 내 인생에 반드시 겪을 고초인 것 같아요. 사랑에 관한 고초 말이에요.”그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인생이 너무 잘 풀렸다. 단 한 번도 좌절을 겪어본 적이 없다.하늘이 그런 그가 눈에 거슬려 사랑의 좌절을 느껴보라고 한 듯싶다.“태윤아, 엄마는 그래도 널 일깨워줘야겠어. 네 신분은 이미 예정의 주위 사람들에게 들통났을 거야. 고향의 인간쓰레기 같은 친척들과 걔네 언니네 전남편 한 가족 모두 끈질기게 집착할지도 몰라. 너 절대 예정이를 봐서 그 사람들 도와주면 안 돼. 그 인간들은 흡혈귀라 한번 주면 분명 또 더 달라고 찾아와. 앞으로 네게 빨대 꽂고 등골을 빼먹을 인간들이야. 그들이 예정이한테 조금이라도 잘해줬다면 네가 도움을 줘도 그러려니 하겠지만 다들 예정이 자매한테 너무 못되게 굴었어. 엄마는 못 봐주겠어. 대체 그게 무슨 친척이야, 이웃보다도 못하면서. 그런 인간들을 도울 걸 생각하면 속 터질 것 같아.”전태윤이 침울한 얼굴로 대답했다.“엄마, 난 예정의 태도를 보면서 처사해요. 예정이도 그들과 화해하지 않겠다는데 내가 왜 도와줘야 하죠? 다들 지금 매사가 안 풀리는 것도 내가 그렇게 만들었어요. 처형의 전남편 가족은 말 그대로 전남편인데 무슨 연관이 더 있겠어요? 설마 주형인이 뻔뻔스럽게 달려와서 본인이 내 형부라고 할까 봐요?!”장소민이 말했다.“네가 다 생각이 있으면 됐어. 예정이는 그래도 딱 하나 마음에 드는 게 있는데 바로 애증이 분명해.”하예정은 동정심이 차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일부 네티즌들이 윤리, 도덕의 틀을 차
전태윤은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진정하게 혼자 놔두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적어도 지금은 방해하지 않는 게 좋겠어요.”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태윤아, 네가 예정이를 친정에 가 머물 수 있도록 손을 놓아준 게 할미는 매우 기쁘구나. 예전처럼 예정이를 강제로 붙잡아 두지 않고 자유를 줄줄 안다는 것은 좋은 일이야.”전태윤의 안색은 여전히 침울했다.“할미는 이틀 후에 다시 예정이를 찾아가련다. 널 위해 사정하는 것이 아니라, 할머니도 예정에게 사과해야겠어, 그 애를 가장 먼저 속인 사람이 이 할미잖아.”전태윤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고 두 사람은 마찬가지인 셈이다.“너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할머니 생각엔 제가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전태윤이 되물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손을 뻗어 전태윤의 얼굴을 어루만지다 그만 참지 못하고 그의 머리를 쿡쿡 찔렀다.“네 머리로 한번 천천히 생각하고 깨달아봐.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단순히 사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녀를 이해하고, 신뢰하고, 그녀의 모든 것을 포용하여야 하는 거야. 네 엄마는 나와 네 할아버지에 대해 불평하였다. 모든 걸 가르쳐줬으면서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우리가 그걸 깨달았을 때, 넌 이미 어른이 되었지... 네 할아버지는 저세상으로 떠나갈 때까지도 널 걱정했다.”“...”“네 혼사가 걱정되었던 거지. 넌 성격이 냉담하고 차가워 소년 시절에 널 사모하는 여자애가 그렇게 많았어도 말 걸기도 싫어했지. 어른이 된 후엔, 매일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며 3미터 이내에 가족 이외의 젊은 여성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하였고... 네 할아버지는 걱정이 가득했지만, 그땐 이미 병으로 더 이상 너를 돌볼 힘이 없어 떠나기 전에 이 할미한테 부탁한거야.”“...”“사실 할미도 그때 예정이를 알게 된 후 너희 둘 몰래 사주팔자를 가지고 가 부부의 인연이 있는지 물어봤다. 그러다 인연이 있다는 말을 듣고 어떻게든 너와 예정이를 결혼시킨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