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빈은 노동명의 손을 피하며 침대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엄마를 찾았다. 하지만 엄마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더욱 심하게 울었다.“우빈아, 울지 마, 아저씨가 사탕 줄게.”노동명이 그를 달랬다.“싫어요, 엄마 보고 싶어요.”“그럼, 아저씨가 바람개비 사줄까?”“바람개비도 싫어요, 엄마!!!”아이를 달래는 경험이 없는 노동명은 아무리 애를 써도 주우빈을 달랠 수 없었다.그는 휴대폰을 꺼내 주우빈에게 건네며 달래보았다.“제발 울지 마, 자, 아저씨 휴대폰 가지고 놀아, 애니메이션 볼래?”주우빈은 손으로 그의 휴대폰을 밀쳤다.“싫어요!”머리가 아파 난 노동명은 머리카락을 움켜쥐었다.“요즘 애들은 휴대폰만 쥐어주면 다 되던데...”다만 주우빈에게는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하긴, 너무 어린 주우빈은 휴대폰을 사용하기에 적합하진 않지.그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노동명은 자기가 휴대폰으로 아이를 달래는 모습을 하예진에게 들킬까 봐 얼른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었다.그것은 남의 아이를 잘못 가르치는 것이다.멀리서부터 아들의 울음소리를 들은 하예진은 빠른 걸음으로 위층으로 올라가 얼른 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갔다.“엄마!”주우빈은 엄마가 돌아오자 울면서 달려갔다.하예진은 허리를 굽혀 주우빈을 안고 휴지로 눈물을 닦아주었다.“우빈아, 엄마 왔으니 울지 마.”그녀는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랬다.“울지 마. 엄마는 일이 있어 잠깐 나갔다 온 거지 우빈이를 버린 것이 아니야. 옆에 노 아저씨가 계시는데, 뭐가 무서워.”‘아저씨가 무서운 거야!’노동명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예진 씨, 우빈이가 깨어나 날 보더니 엄마를 부르며 우는데, 어떤 방법으로도 달랠 수가 없었어요.”그는 정말 아이를 달래는 경험이 없었다.“우빈이는 깨나서 내가 보이지 않으면 울어요, 예정이가 옆에 있으면 좀 괜찮은데, 다른 사람들은 절대 달랠 수가 없어요. 애 아빠조차도 달래지 못해요.”물론 주형인은 아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거의 없었다
“고마워할 필요 없어. 태윤이네 부부가 걱정된 것뿐이야.”노동명은 하예진이 오해할까 봐 솔직하게 말했다.“태윤이네 부부를 보러 갔었지? 어떻게 됐어?”노동명이 걱정되듯 묻자 하예진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노 대표님은 전태윤과 오랫동안 알고 지냈을뿐만 아니라 사이좋은 친구이기도 하죠? 간단히 비즈니스가 오가는 관계가 아니었네요. 노 대표님까지도 전태윤을 도와 거짓말로 우리를 속인 거네요.”“태윤이의 성격이 어떤지는 예진 씨가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잖아. 그는 지금 예정 씨를 남겨두기만 하면 일이 해결될 거라고 고집하고 있어. 예정 씨가 그의 별장에서 나오려고 해도 나오지 못하게 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엔 태윤인 이미 거의 지쳤고 예정 씨도 약간 포기한 것 같아.”노동명은 뭔가 친구를 위해 좋은 말을 하고 싶었지만, 막상 말하려 해도 또 무슨 말을 할 수 있을지 생각이 안 났다. 생각해낼 수 있는 좋은 말들은 이미 입에 침이 마르도록 수없이 했고 하예진에게서 물도 적지 않게 얻어 마셨다.“지금은 태윤이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이 변하지 않을 거야.”노동명은 전태윤의 그 못된 성격을 떠올리며 한숨을 쉬었다.“태윤에게 며칠만 시간을 더 줘. 태윤이는 분명히 생각을 바로잡을 거야. 예정 씨를 그의 곁에 붙잡아 두면 둘수록 관계가 더 나빠질 거라는 걸 알아차릴 거야.”자신처럼 사랑이라곤 티끌만치도 모르는 사람도 아는 도리를 전태윤이 계속 모를 리는 없을 것이다.노동명은 시간을 보더니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 씨, 나 먼저 가볼게, 나중에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문 앞까지 바래다 드릴게요.”노동명은 하예진의 배웅을 거절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아들을 안고 노동명을 아래층으로 바래다주었다.“우빈아, 아저씨 간다.”노동명은 귀여운 주우빈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 주우빈이 그의 손을 밀어내기 전에 그는 손을 뗐다. 주우빈이 화난 눈으로 쏘아보자, 노동명은 웃으며 차에 올라 재빨리 차를 몰고 떠났다.노동명의 차가 보이지 않자
하지만 주형인 부부는 신혼 축하도 미처 하지 못하고 사장님의 전화에 다시 회사로 돌아가 일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그리고 그는 전 대표의 와이프에 관한 인터뷰를 보았다.하예정의 남편 전태윤이 전씨 그룹 대표라는 것을 본 그는 처음엔 아닐 거라 마음속으로 부정했지만 결국 사실이었다.서현주는 이 소식을 알았을 때 질투심에 미칠 지경이었다. 하예진이 한순간에 대표 와이프가 된 사실에 질투가 났다. 지난번에 이경혜가 하예진 자매의 친이모라는 것을 알고 난 후에도 서현주는 질투했었다. 그녀가 오후 내내 질투로 가득 찬 심정으로 있는 것이 주형인을 매우 불쾌하게 했다.‘하예정이 전씨 집안의 큰 도련님과 결혼한 것은 하예정의 일인데, 현주가 이렇게 질투하는 걸 보면 설마 나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예진아!”주형인은 드디어 말을 이었다. 하지만 입에서 나온 말은 질책하는 말뿐이었다. “방금 그 남자가 노 대표야? 노 대표가 당신 집에서 나오던데 뭘 했어? 그 사람 당신한테 구애하고 있는 거야?”하예진은 최근에 살이 많이 빠졌다. 날씬하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혼 전에 비해 많이 예뻐졌다.“어쩐지 지금 살을 이렇게 빨리 뺀다고 했어. 살을 빼서 예뻐지면 당신 여동생처럼 운명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 거야? 전에 부부였던 걸 봐서 내가 진심으로 말해주는데, 주제넘게 굴지 마. 노 대표는 네가 감히 넘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 재혼하고 싶은 생각이라면, 영감한테 시집가도 다행인 거야. 나처럼 이혼하고도 젊고 예쁜 여자랑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아?”하예진의 표정은 차가워졌다.“나와 노 대표가 어떤 관계든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당신이 뭔데? 내 일에 참견할 자격이라도 있어? 그래, 당신 참 대단해. 이혼해서도 젊고 예쁜 여자랑 결혼해 집에 데리고 갈 수 있어서. 그렇게 대단하면 집에 가서 당신의 젊고 예쁜 새 와이프를 찾을 것이지 왜 낼 찾아온 거야? 설마 서현주랑 결혼하고 나서야 그 여자가 나보다 못하다는 걸 알고 후회하는 건 아니지?”주형인은
하예진은 전 남편을 차갑게 바라보며 말했다.“예정이는 당신 일에 참견할 시간이 없어. 당신 일이 잘 안 풀리는 건 당신 능력에 문제가 있는 거야. 무슨 일이든 남에게 덮어씌우지 말고 자기 몸에서 원인을 찾아.”하예정도 자기가 전씨 집안 큰 도련님의 와이프라는 것을 이제야 알았으니, 신분을 이용해서 주형인에게 손을 쓸 시간이 없었다.“예정이가 아니라면 전태윤일 거야, 예정이가 전태윤을 시켜서 나와 서현주의 일을 꼬이게 한 게 분명해.”주형인의 눈에는 원한으로 가득했다.그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예진과 이혼하자마자 일이 잘 안 풀리기 시작해 매일 사장에게 욕을 먹기 일쑤였다. 이번 달 보너스는 바닥이 나서 기본급만 받게 되어 회사에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게 되었다.지금 회사 전체가 그가 언제 떠날지 기다리고 있다.만약 누군가가 일부러 뒤에서 손을 쓴 것이 아니라면, 처음부터 업적이 괜찮았던 그가 갑자기 지금처럼 바닥을 칠 수는 없었을 것이다.‘어쩌면 정말 예정이가 아닐지도 몰라, 이제야 전태윤이 전씨 집안의 도련님이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하지만 전태윤이 조금도 손을 쓰지 않았다고 한 것을 주형인은 믿지 않았다.‘전태윤이 나에게 손을 쓴 것은 하예진을 위해서였을 거야. 하예진은 처음부터 예감이 들었던 걸까? 아니면 뭔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일까? 본인이 다시는 나에게 복수하지 않겠다고 한 걸 보니...'주형인은 자신이 이혼할 때 이 점들을 생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전태윤이 당신에게 손을 쓰고 있다고 생각되면 전태윤한테 가서 따져. 당신은 자기가 무슨 중요한 인물이라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전태윤이 어떤 신분인데, 당신 같은 사람한테 신경을 쓴다고 생각해? 당신을 혼낼 방법을 생각하는 것조차 다 시간 낭비야. 분명 당신 능력에 문제가 생긴 거야. 매일 그 서현주와 연애질하느라 바쁘니 일에 차질이 생길 게 뻔하잖아.”주형인은 그 말에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전태윤은 전씨 집안의 큰 도련님이야. 내 일을 망치는 데에는 전화 한 통이면 돼
서현주는 그가 접대하러 가면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그에게 운전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는 하였지만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일깨워 주지는 않았다.이렇게 둘을 비교해 보니 주형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현주는 아직 어려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이니 이제 차츰 좋아질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주형인은 하예진이 세를 들어 사는 건물을 한참 더 쳐다보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 그는 일부러 꽃집에 들러 꽃다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그가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분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보였고 아버지와 서현주는 거실에 없었다.그의 누나의 가족들은 아이들이 개학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 부부는 모두 실직한 상태라 그에게 일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었다.하지만 주형인 자신도 지금 일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그들 부부의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을까? 누나는 그가 서현주와 같이 있은 후로부터 재수가 옴 붙었다고 말하며, 누구든 서현주와 엮이기만 하면 재수 없게 변한다고 불평했다.그러고는 하예진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예진은 뚱뚱하고 좀 못생겼긴 했지만, 남편의 기운을 좋게 해준다고 말했다. 주형인이 그녀와 결혼하고나서부터 그의 사업도 점점 잘 되고 운도 좋아져 오늘날과 같은 재산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잔소리를 해댔다.주서인이 그에게 불평할 때면 목소리가 아주 컸는데, 서현주가 들을까 봐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서현주는 그것에 화가 나서 주서인과 한바탕 크게 싸운 후 주서인네 가족을 집에서 쫓아냈다.서현주는 주서인네 가족이 떠나지 않으면 집세의 절반과 식비 등을 더치페이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서인을 화나게 했다.주형인은 누나와 서현주가 싸웠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혼신의 힘을 다해 중간에서 말렸고, 누나에게 돈을 주고 나서야 겨우 달래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게 했다.그는 서현주를 달래야 했을 뿐만 아니라 서씨 집안과 예물 문제로 계속 흥정해야 했다.서씨 집안
“넌 와이프 생각만 하고 이 어미는 까마득히 잊은 거야? 예전에 넌 이렇지 않았어, 넌 그 여우에게 홀리워서 이 엄마를 버리려 하는 거야. 아이고, 내 팔자야.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을까, 어떻게 이런 여우를 며느리로 데려왔을까. 예진아, 참 후회되는구나, 이 시어미가 잘못했어. 그래도 네가 더 나아, 요리도 할 줄 알고, 집안일도 할 줄 알고, 나한테도 잘해주고 남편 운도 돋구어주고... 네가 있을 때 형인이의 일이 잘되고 재운도 좋아서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었는데.”김은희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네가 떠난 후부터 형인이는 일도 잘 안되고 수입도 안 좋고 서인이네도 실직당하고, 나 같은 노인네는 매일 괴롭힘을 당해... 아이고,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몰라.”김은희는 통곡하면서 아들의 불효를 비난하며 하예진이 있을 때 잘 지냈던 가족생활을 그리워했다.김은희뿐만 아니라 주서인도 후회하고 있었다.비교가 없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고, 예전에는 그저 하예진이 쓸모없다고만 생각되어 주형인과 갈라지기만 고대했는데, 주형인이 서현주와 함께하고 난 후로부터 서현주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주형인의 도발에도 서현주는 호되게 반박하곤 했다.심지어 김은희가 주서인 편에 서서 말을 할 때면 서현주는 김은희에게 앞으로 딸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노후를 보내라고 소리치곤 했다.‘힘이 있을 때는 자기 딸만 거들어 주고, 정작 자기 며느리는 상관하지도 않고, 심지어 집에 좋은 것이 있으면 딸에게 보태주더니... 이젠 힘이 없으니,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노후를 돌보게 하려 하다니, 꿈도 꾸지 마!'만약 시부모가 계속 이렇게 자신을 대접해주지 않고 딸만 도와준다면, 서현주는 주형인이 자기 부모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자기는 시부모가 낳은 친자식이 아니니 그들의 뒷바라지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하였다.주경진과 김은희는 이 말을 들은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쓰러질 뻔했다.“엄마, 그만 해. 밖에서 일하는 것
“엄마도 예진이한테 가서 자꾸 하소연하지 마. 집안 허물은 밖에 소문내지 않는 거야. 엄만 이 연세 먹고도 몰라? 그러면 예진이가 엄마를 불쌍해한다고 생각해? 오히려 깨고소할 뿐이지.”주형인은 마음속 불만을 단숨에 털어놓았다.김은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엄마, 잘 생각해 봐.”주형인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너 어디 가는데?”아들이 나가려는 것을 보고 김은희가 물었다.“엄마는 내가 와이프에게 줄 꽃을 밟아 망가뜨렸잖아, 나가 하나 더 사오려고.”“...”주형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다시 돌아온 후 엄마가 여전히 소파에 앉아 흐느끼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난 주형인은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아서 새로 사 온 꽃다발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서현주는 한창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그가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현주는 휴대폰을 놓고 침대에서 뛰어내려 맨발로 주형인을 맞이했다.“여보, 오셨어요?”서현주는 사실 방금 방문 앞에서 주형인이 거실에서 시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을 엿들었다.남편이 자기편인 것이 기뻤다.“여보, 이 꽃다발은 당신한테 주는 거야, 오늘은 우리 신혼 첫날이잖아.”그는 또 장신구 함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금반지를 꺼냈다.“이건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서현주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는 손을 내밀며 주형인더러 자기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달라고 부탁하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신혼집도 꾸며야 할 텐데 돈 좀 아껴 써요, 우리 엄마 아빠한텐... 우린 뷔페 값만 드리면 돼요. 예물은 그저 성의로 조금만 드리면 되고요.”서현주는 마음을 재빨리 바꾸었다.주형인의 말대로, 부모님께 드리는 예물은 두 오빠한테로 돌아갈 것이다.주형인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는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예물을 요구하던지, 모두 승낙하라고 주형인을 설득했었다.하지만 혼인 신고서를 받고 부부가 되고 나니 주형인의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서현주의 말에 주형인은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했다.“여보, 이해해 줘서 고마워.”“우린 부부잖아요. 난 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가 하예진과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요.”하예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주형인은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현주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한편, 산 정상의 별장.하예정은 밖에서 발이 부르틀 정도로 돌아다니다가 지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전태윤은 그저 묵묵히 그녀 뒤를 따랐다.그가 그녀와 얘기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한마디만 했다.“사기꾼, 나한테서 떨어져요, 지금 당신이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떳떳하지 못한 전태윤은 묵묵히 그녀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하예정의 휴대폰은 이미 충전되어 있었다.충전기를 뽑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자 부재중 전화와 카톡 메시지,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사기꾼, 충전기는 여기 둘 테니 와서 가져가요.”하예정은 차갑게 한마디 던지고는 테이블 위에 충전기를 올려놓고 휴대폰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예정아...”전태윤은 가련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올라갔다.하지만 하예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하예정은 그들 부부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객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예정아,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어? 내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어?”전태윤은 문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는 그녀의 냉담함과 소외감을 견딜 수 없었고, 그녀가 입만 열면 자기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며 저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전태윤은 정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소정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면 그때 다시 알려주겠다고 한다.하예정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부재중전화를 확인했는데, 심효진 외에도 전씨 가문에서 온 전화가 있었다.카톡 메시지에도 전씨 가문에서 보낸 메시지가 가득했는데 안 봐도 전태윤을 위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뻔했다.‘무슨 할 말이 있다고, 온 가족이 날 속이고선...’
전호영의 전화를 받은 고현은 잠시 멈추고 쉴 수 있는 핑계를 주었다.고현은 자신의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자태를 감시하고 있는 진미리에게 말했다.“엄마, 호영 씨 전화예요.”“그래.”고현은 소파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와 앉았고 그녀의 걸음걸이 자태를 보던 진미리는 눈살을 찌푸리며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따라왔다.남자의 분장에 익숙해진 고현이 치마로 갈아입고 하이힐을 신으면 진미리의 요구대로 잘 걸을 수 없었다. 재벌가 딸들의 우아한 자태로 걷는다는 것은 하늘을 오르는 것보다 더 어려웠다.고현은 하이힐을 신고 삐뚤삐뚤 걸어 다녔다.어쨌든 진미리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고 걷는 모습이 매우 못마땅했다.고현은 소파에 앉자마자 바로 하이힐을 벗어 던졌다.진미리는 고현의 상황을 살피지도 않은 채 하늘을 찌르는 듯한 굽 높은 신발을 신고 걷는 연습을 시켰다. 비록 연회에 참석할 때 신을 하이힐은 그렇게 높지 않지만 말이다.고현은 내심 불만이었다.하지만 진미리는 굽 높은 신발로 연습을 해야 연회 때 신어야 할 하이힐을 쉽게 신을 수 있다고 했다.“호영 씨.”고현은 부드럽게 전호영을 불렀다. 그녀는 지금처럼 전호영의 전화를 기다린 적이 없었고 또한 이렇게 부드러운 말투로 전호영의 이름을 부른 적도 없었다.그녀는 성격이 차가운 편이라 전호영을 사랑하게 되더라도 그에게 부드럽게 대하지 않을뿐더러 다른 여자들처럼 애교도 부리지 않았다.가끔 고현이 전호영과 이야기할 때 약간의 웃음을 띠면서 말을 건네기만 해도 전호영은 며칠 동안 행복하게 지낼 수 있었다.“오후에 회사에 돌아가지 않았어요. 반나절을 쉬려고 우리 부모님 집으로 왔어요.”고현의 부드러움은 전호영이라는 이름을 부를 때만 사용됐고 다시 입을 열어 말했을 때는 말투가 정상으로 돌아갔다.전호영이 물었다.“괜찮으세요? 어디 아픈 건 아니죠?”그녀는 워커홀릭이라 결혼하기 전의 전태윤처럼 평일에 쉬는 일이 거의 없었다. 주말이 되어 집에서 쉰다 해도 사실 업무를 처리하기 위함이었다.고현은 가끔
임원들은 고빈의 주위에는 적어도 여성 지인들이 많아 그녀들과 만나면서 먹고 놀 수 있다지만, 고현은 그야말로 전호영에 의해 망가졌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아주 훌륭하고 관성의 제일 갑부인 전씨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뭐가 소용 있겠는가!동성연애는 국내 사람들이 여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데...“상상력이 풍부하시네요. 고빈 씨에게 드리는 꽃이 아니거든요. 고현 씨는 회사에 없어요? 나가셨어요?”전호영이 물었다.고빈은 손이 전호영에 의해 뿌리쳐졌지만, 화도 내지 않고 일부러 전호영에게 말했다.“우리 형에게 매달리더니 너무 심하게 매달린 건 아닌가 봐요? 우리 형이 어디로 갔는지도 모르다니. 우리 형이 오후에 회사에 돌아오지도 않았어요. 모르셨어요?”전호영은 정말 몰랐다.그는 고현이 오늘 저녁에 그녀와 함께 연회에 참석해야 한다는 사실밖에 몰랐다.오늘 밤 두 사람이 참석하는 연회는 강성에 있는 한 재벌가의 저택에서 열리기 때문에 전호영은 일을 마치자마자 서둘러 달려왔다.그는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바로 왔다.전호영은 매일 양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에 갈아입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그는 선천적으로 잘생긴 외모로 옷을 대충 입어도 쉽게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곤 했다.“호영 씨 표정을 보니 우리 형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은 모양이네요. 하하! 우리 형을 반년 넘게 귀찮게 하여 동성애자로 만들더니 결국 우리 형의 마음을 완전히 움직이지는 못했네요.”고빈은 동정 어린 표정으로 전호영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시간이 없어서 잔소리 그만할게요.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그럼 저는 이만.”고빈은 전호영을 뒤로 한 채 임원들과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자리를 떠났다.전호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꿋꿋하게 프런트 데스크로 돌아와 아직 퇴근하지 않은 직원에게 물었다.“고 대표님께서 오늘 오후 정말로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어요?”“네, 오후에 돌아오지 않으셨어요.”전호영이 다시 물었다.“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안 하셨어요? 사업 때문에 나가신 거예요?”전
하예진은 말을 잇지 못하고 살며시 노동명을 안아주었다.잠시 후 노동명은 그녀를 가볍게 밀어내며 부드럽게 말했다.“돌아가서 쉬어.”“잘 자요. 동명 씨도 내일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두 사람은 서로 인사한 뒤 하예진은 노동명의 방을 나섰다. 노동명은 휠체어를 타고 그녀를 현관문 밖으로 나와 그녀가 옆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문을 닫았다.밤새 두 사람 사이에는 아무 말도 오고 가지 않았다.다음 날 노동명은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진의 배웅을 받으며 차를 타고 하루 호텔을 떠났다.하예진은 공항까지 따라가지 않고 노동명을 차에 태우고 호텔 입구에 서서 그를 배웅했다.공항까지 배웅하면 더 아쉬울 것 같았다.노동명이 타고 있던 차가 보이지 않게 되자 하예진은 그제야 경호원들과 함께 전호영이 안배해 준 차를 향해 걸어갔다.노동명이 관성으로 돌아갔으니 그녀도 계속 일을 해야 했다.바쁠 때는 시간이 유난히 빨리 지난다.날이 조금 전에 밝은 것 같았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또 저녁이 되었다.전호영은 고현이 오후에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그는 평소처럼 저녁 무렵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가서 고현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그리고 같이 밥 먹으러 가려고 했다.고현은 사업이 무척 바빠서 전호영에게 줄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았다.매일 식사 시간이 바로 그와 고현이 정을 쌓을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그의 차는 고씨 그룹에 들어가서 늘 주차하던 곳에 멈춰 섰고 전호영은 조수석에서 꽃다발을 안아 들고 차에서 내렸다.전호영은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밖으로 나가는 고빈을 만났다. 고빈은 회사 임원 몇 명과 함께 걸으면서 얘기를 나누었다.전호영을 본 고현 일행은 멈추어 섰다.“회사엔 왜 왔어요?”고빈이 입을 열자마자 물었다.전호영은 그 물음에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제가 왜 당신 회사에 올 수 없어요?”전호영은 매일 고씨 그룹으로 왔다.그럼 전호영을 쫓아내기라도 하겠다는 의미인가!고빈이 감히 그를 쫓아낸
“응, 내일 돌아가려고. 예진이도 너무 바빠서 영향 줄까 봐 그래. 관성으로 돌아가서 우빈이도 돌봐야 예진이가 걱정하지 않지. 내가 강성으로 돌아가서 나와 우빈을 위해 강산을 다스려야 되거든. 하하!”노동명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옆에서 듣고 있던 하예진이 말했다.“나중에 빚이 쌓일까 봐 두렵네요.”노동명이 되물었다.“뭐가 두려워? 수십 조의 빚만 아니라면 다 갚아줄 수 있어. 넌 마음 놓고 가서 일해.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텨줄 테니까. 파산될 걱정은 하지 마.”수십 조의 빚이라고?하예진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현재 하예진의 상황으로 놓고 보면 수억 원의 빚만 져도 그녀는 너무 걱정되어 흰머리가 나올 것 같았다.전태윤은 또 음성메시지를 보내왔다.“우리 처형에게 너 같은 후원자가 있으니 반드시 강성에서 성공할 거야.”노동명은 하예진에게 전태윤의 음성메시지를 들려주며 말했다.“들어봐, 태윤이가 너를 엄청나게 믿고 있어.”“항상 저를 이렇게 믿어주시는데 제가 더 열심히 해야 기대에 부응할 수 있겠네요.”“너도 혼자 견디지 말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나에게 도움을 청해. 내가 다리를 다쳤지만 머리가 다친 건 아니거든. 나도 너 대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어.”하예진은 노동명이 다리를 다쳤다는 둥 머리를 다쳤다는 둥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싫어했다.“동명 씨의 다리는 좋아질 거예요. 저는 그런 말 듣기 싫어요. 앞으로 절대로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동명 씨가 다리 나아지면 저랑 결혼도 하셔야죠.”노동명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가 그런 말을 해 주니 내 다리도 분명 나아질 거야.”하예진은 얼굴이 붉어지더니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너무 오래 얘기하지 마세요. 일찍 쉬어요. 저도 방에 가서 쉴게요. 내일 또 회사 일로 많이 뛰어다녀야 하거든요.”“응, 가. 잘 자.”노동명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키며 그녀에게 굿나잇 키스를 해달라고 암시했다.하예진은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더니 노동명의 칼자국이 있는 얼굴에 입을 맞추
“형인 씨 마음속엔 아직 네가 있을지도 몰라.”노동명이 말했다.그는 오히려 주형인이 우빈 앞에서 그의 험담을 하는 것을 개의치 않았다.주형인이 험담하면 할수록 우빈은 그를 싫어할 것이고 오히려 노동명과 우빈의 정이 더 깊어져만 갈 테니까.노동명은 마침내 우빈이 주씨 집에서 돌아올 때마다 그에게 무척 잘해준 이유를 알게 되었다.우빈도 미안했던 모양이다.주형인이 그의 험담을 했기 때문이다.“형인 씨는 저에 대한 사랑이 사라진 지 오래되었을 거예요. 저를 사랑했다면 저를 배신하고 상처를 주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고 주씨 집안 가족들이 저를 괴롭히도록 내버려 두지도 않았을 거예요. 남자가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어떻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있겠어요?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긴다 해도 어떻게든 해결하려고 노력했을 텐데. 어떻게 시어머니와 그의 누나가 저를 비난하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겠어요?”“그 사람은 마음이 편치 않았을 뿐이에요. 제가 처음에 말했던 것처럼 만약 형인 씨와 서현주 씨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내고 그렇게 많은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행복하게 살면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기를 기다렸을 텐데. 제가 죽든 살든 상관했겠어요? 우빈에 대한 감정조차 옅어졌을걸요. 그들만의 아기가 생기면 우빈에 대한 감정이 워낙 깊지 않은데다 감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다고...”노동명은 아무 말도 하지 않더니 문득 화제를 돌렸다.“맞아. 그런 기분 나쁘게 하는 사람과 일들을 생각하지 말자. 나 내일 관성으로 돌아갈 거야. 예진아, 나랑 같이 가서 새 옷 몇 벌 사 오자. 우빈에게 줄 장난감도 좀 골라줘. 내가 매번 선물한 장난감을 녀석이 좋아하지 않는 것 같더라고.”하예진도 전남편 얘기를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도 진작에 태연하게 모든 것을 받아들였지만 노동명 앞에서 전남편 얘기를 꺼내면 노동명이 질투할까 봐 걱정했다.교통사고를 당한 후 노동명도 많이 연약해졌다.주로 다리 장애로 자신감을 잃은 노동명은 마음이 매우 약해졌다.노동명
하예진이 물었다.“예정이에게 없고 저한테 있는 게 뭐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동명 씨가 재활을 꾸준히 하시고 제가 관성에 없을 때 자신을 돌보고 시간이 나면 우빈을 돌봐 주세요. 우빈이도 동명 씨를 보러 자주 갈 거예요. 녀석이 지금 자기 아빠보다 동명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노동명은 의기양양하면서 말했다.“그건 내가 우빈에게 진심으로 대해서 그래. 우빈이 친아빠는 늘 우빈이 앞에서 내 험담만 하거든. 우빈이는 똑똑하니까 누가 좋고 누가 나쁜지 잘 알고 있어. 우빈이 친아빠가 내 험담을 하면 할수록 자기 친아빠를 더 싫어할걸.”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았다.주형인에 관한 얘기가 언급되자 하예진의 표정은 여전히 변함이 없었다.그때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뭘 봐요? 내가 아직도 그 남자를 신경 쓰는 줄 알았어요? 그 사람은 단지 우빈이 아빠일 뿐이에요. 제가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하는 줄 알았죠? 그 사람을 언급하면 제 기분이 가라앉을 줄 알았어요?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데, 제가 어떻게 아직도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겠어요? 제가 아직도 사랑했다면 애초에 이혼하지도 않았을 거예요. 마음이 찢어진 이상 최대한 빨리 이혼하는 것도 좋은 일이죠.”주형인도 약속한 대로 그와 그의 가족들은 더는 하예진의 생활을 방해하지 않았다. 두 사람 사이의 유일한 연관성은 우빈 뿐이었다.그러나 주형인은 하예진과 노동명이 함께 있는 모습을 태연자약하게 지켜보지 못했다.그는 또 노동명이 친아버지인 자신보다 더 나은 계부로 될까 봐 두려운 마음에 우빈 앞에서 노동명의 험담을 했다.우빈이 아직 노동명을 두려워할 때,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을 나쁜 사람이라고 말했지만, 우빈은 노동명을 대신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기도 했다.오늘날 우빈과 노동명의 사이가 매우 좋으니 더 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주형인 부자가 만날 때마다 주형인은 우빈 앞에서 노동명이 폐인으로 되었기에 하예진과 함께 한다면서 그녀의 발목을 잡는 거나 다름없다면서 노동명의 험담했다.또
모두 웃기 시작했다.전호영은 노동명과 하예진이 돌아오면 요리들이 올라오게끔 미리 준비해 놓았다.그들은 유쾌하게 저녁 식사를 했다.식사 후 고현은 곧 자리를 떠나 고성 호텔로 박 대표를 만나러 갔다.다행히도 하루 호텔과 고성 호텔은 가까웠다. 두 호텔은 길을 건너면 바로 볼 수 있다.그러나 아무리 가까워도 전호영은 고현을 배웅해 주겠다고 고집했다.하예진은 노동명을 밀고 호텔을 나와 호텔 근처 거리를 거닐며 강성의 밤거리를 구경시켜 주었다.“기분은 좀 나아졌어?”노동명이 뒤에 있는 하예진에게 물었다.하예진은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네, 많이 나아졌어요. 앞으로 저에게 닥칠 일들이 지금보다 더 가혹할 거에요. 만약 이번 일조차 직면할 수 없다면 제가 강성에 있을 필요도 없이 관성으로 돌아가 계속 저의 레스토랑을 돌보는 게 나을걸요.”그렇게 하면 이경혜의 바람과 기대를 저버리게 될 것이다.노동명은 고개를 돌려 그녀에게 말했다.“다행이네. 이렇게 오래 돌아다녔는데 뭐 사고 싶은 거 없어? 원하는 게 있으면 내가 선물로 사줄게.”하예진은 웃으면서 대답했다.“제가 사면 돼요. 선물할 필요 없어요.”“난 지금 네 남자 친구거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함께할 남자라고. 나도 너에게 선물을 준 적 없는데. 사실 우리 집 객실이 하나 있는데 그 안에는 여자들이 좋아하는 여러 선물로 가득 차 있거든. 전부 내가 너에게 준비한 선물들이야. 어떤 것은 너에게 선물했지만 네가 받지 않은 물건들이고 어떤 것은 내가 너에게 미처 선물하지 못한 것도 들어있어. 네가 받지 않으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먼저 그 방에 넣어두었거든. 앞으로 우리가 한 가족으로 되면 그 물건들은 어차피 너의 것으로 될 테니까. 네가 가지지 않으면 우리 집안의 돈이 낭비되는 거나 다름없을 텐데. 너도 우리 가정의 돈이 낭비되는 게 싫지?”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과거에 그녀는 노동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재혼하고 싶지 않고 돈만 벌고, 사업을 일으켜 우빈을 잘 키워
전호영은 더는 묻지 않았다.엘리베이터가 두 사람을 1층으로 안내했다.전호영은 엘리베이터에서 고현에게 뽀뽀하고 싶어도 기회가 없었다.그는 고씨 그룹에서 고현에게 체면을 세워 주어야 했다. 어쨌든 고현은 고씨 그룹의 대표님이니까.전호영이 차를 몰고 고현과 함께 고씨 그룹을 떠났고 고현의 운전기사와 경호원들도 두 사람 뒤를 따랐다.식사를 마치고 나면 고현은 또 박 대표와 약속이 있었다.전호영은 그들이 하루 호텔에 도착했을 때 하예진과 노동명은 아직 호텔에 돌아오지 않았다.하예진 일행은 약 30분 뒤에야 호텔로 돌아왔다.하예진은 어두운 얼굴로 노동명을 호텔로 밀고 들어갔다. 노동명은 계속 고개를 돌려 말을 걸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못 듣는 체했다.노동명은 그녀가 기분이 좋지 않은 이유를 알고 있었다.위로의 말을 아무리 많이 해도 하예진의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고 노동명도 더는 위로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스스로 마음을 다스려야 했다.위층으로 올라가 전호영이 안배해 준 식사하는 룸에 도착해서야 하예진의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동명이 형.”전호영은 하예진이 노동명을 밀고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급히 일어나 하예진을 도우려고 했다.“호영 씨, 동명 씨가 혼자 몇 걸음 걸을 수 있어요.”하예진은 전호영의 도움 없이 노동명의 휠체어를 식탁 앞에 세웠고 노동명은 스스로 일어나 두 걸음 걷다가 다시 탁자 앞에 있는 걸상에 앉았다.고현도 일어섰다. 그녀는 예의 바르게 두 사람과 인사를 했다.“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오래 기다리게 했네요.”하예진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강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돌아왔다.“괜찮아요. 저희도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언니, 일은 다 처리했어요?”모두 자리에 앉은 후 고현은 두 사람에게 각각 따뜻한 차 한 잔을 따라주며 관심 있게 하예진에게 물었다.“다 처리했어요.”하예진이 대답했다.“잘됐네요. 노 대표님, 내일 돌아가시려고요?”고현은 나지막이 물었다.노동명이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예진이 보러 온 것뿐이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