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윤 씨가 회사에 없다고요? 오늘 돌아온 거 아니에요?”하예정은 믿지 않았다.그가 회사에 오지 않았다면 어디로 간 걸까?하예정은 전태윤이 인터뷰를 하던 호화로운 사무실 배경을 떠올렸다.그녀는 여러 번 전 씨 회사에 왔었지만, 전태윤은 매번 그녀를 자기의 진짜 사무실로 데려가지 않았고 자기도 다른 사람들과 같이 칸막이 사무실에서 일한다고 그녀를 속였다.전이진의 사무실에 부이사 사무실이라고 적혀 있던 생각도 났다.그들 일가는 모두 짜고 그녀를 속인 거다!전태윤에게 그렇게 오랫동안 속히웠다는 생각이 든 하예정의 얼굴색은 몹시 어두웠다.“하예정 씨, 전 대표님께선 아직 회사로 돌아오시지 않았어요. 무슨 일 있으세요? 직접 전화라도 드려보시겠어요?” 프런트가 하예정에게 시원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며 물었다. 급하게 뛰어오느라 목이 마른 하예정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그럼, 소 이사님은 계시죠? 제가 뵙겠다고 전해주세요.”‘뭐, 소 의사한테 빌붙어야 회사에서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다고? 누굴 속이려고? 분명 이사님이 태윤 씨한테 잘 보이려고 애쓰고 있을 건데!’소정남이 전 대표의 가장 유력한 조력자라면 바로 전태윤의 조력자가 아닌가, 그는 분명 처음부터 끝까지 전태윤의 기혼 사실을 알고 있는 거다.두 명의 프런트는 눈길을 주고 받으며 하예정이 지금 찾아온 목적을 짐작했다.“제가 대신하여 소 이사님께 여쭤볼게요, 지금 이사님께서 시간이 있으신지 .”한 프런트는 즉시 소정남의 비서한테 내선 전화를 걸었고, 다른 프런트는 하예정에게 전태윤한테 전화하라고 제안했다.그녀의 핸드폰이 계속 울렸지만, 그녀는 전화를 받을 마음이 없었다. 나중에 울리지 않자, 그녀는 아마 배터리가 다 된 거로 생각했다.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핸드폰을 충전하기도 전에 그녀는 전태윤이 전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엄청난 분노에 휩싸인 그녀가 서점을 뛰쳐나가, 미친 듯이 차를 몰고 회사에 왔지만, 전태윤이 회사에 없다는 대답뿐이다.전태윤을 만나지 못하더
방금 심효진으로부터 전화가 왔는데, 오던 도중 스쿠터의 배터리가 다 닳아서 그걸 끌고 되돌아가기도, 앞으로 계속하여 가기도 너무 멀어, 소정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심효진이 소정남에게 도움을 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녀가 그에게 데리러 오라고 한 것은, 주로 소정남과 함께 친구를 위로하고 싶어서였다.그렇지 않으면 동생을 불러 그를 데리러 오라고 했지! 소정남더러 오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소정남은 심효진을 데리러 가려던 계획을 접고 하예정에게 자리를 권했다.“무얼 마실래요?”“필요 없어요, 몇 마디만 물을게요. 태윤 씨가 갑부 전씨 가문의 큰 도련님 맞죠? 당신의 직속 상사이고요?”소정남은 잠자코 있다가 물었다.“인터뷰를 보신 건가요?”“네, 그래요. 여태껏 저를 속이다니! 전 그 사람이 태윤 씨라고 도저히 믿을 수 없어요!”소정남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그녀의 얼굴을 보며 묵묵히 마음속으로 전태윤을 대신하여 기도했다.전태윤의 이번 결혼 위기는 당분간 해결되지 않을 것 같았다.‘꼴 좋다, 누가 신분을 속이라고 했어?’소정남은 갑자기 자신이 일찍이 심효진에게 자기 신분을 알린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비록 힘들게 구애하고 있지만 적어도 전태윤처럼 결혼 위기에 직면할 필요는 없다.까딱하면 하예정이 정말 전태윤과 이혼할지도 모른다.이 두 사람은 절대 갈라지면 안 된다.소정남은 전태윤을 잘 알고 있다. 전태윤은 원래 천성적으로 매정하고 쌀쌀맞은 사람이라, 그가 사랑에 빠지리라고는 누구도 생각 못 했다. 그는 자기의 마음을 움직인 하예정을 제외하고는 평생 다른 여인을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그녀를 잃을까 봐 두려운 전태윤은 지금까지 속여오다가 오늘에서야 사실을 공개했다.공개조차도 그는 하예정에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대중에게 먼저 공개하는 방법을 택했다.만약 심효진이 전태윤의 신분에 의심을 품지 않았더라면 하예정은 아마도 제일 마지막에야 알게 되었을 것이다.하예정이 전태윤을 떠나면 그는 미쳐버릴 것이다, 그가 미쳐버리면
“하예정 씨, 태윤이가 왜 신분을 숨겼든 간에, 당신에 대한 그의 감정은 진짜이고, 사랑도 진짜예요. 그 점은 의심할 필요가 없어요.”하예정은 손으로 촉촉해지는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소 이사님, 대답 고마워요. 폐를 끼쳤어요. 이만 가볼게요.”이미 확인한 그녀는 더는 그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소정남은 그녀를 만류하지 않고 일어서서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했다.“하예정 씨가 지금 충격받고 화 난 것도 알고 있고 태윤이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을 했다는 것도 알지만 그도 정말 그럴 만한 고충이 있어요. 좀 진정하고 나면 그에게 해명할 기회를 줘봐요. 어쨌든 당신들은 부부잖아요!”하예정의 얼굴빛이 무서울 정도로 어두웠다.직접 하예정을 아래층까지 데려다주고, 그녀와 함께 사무실 건물을 나선 소정남은 차를 가지러 갔다.“형수님.”지금 돌아오는 길이니 형수를 붙잡아 두라고 도움을 청하는 형님의 전화를 받은 전이진이 사무실 건물 입구 한쪽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먹장구름처럼 어두운 하예정의 얼굴을 보고 전이진은 스트레스가 몰려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그 시각 회사에 있는 게 잘못이었다. 형님이 서둘러 오고 있지만 먼 곳의 물로는 가까운 곳의 불을 끌 수가 없으니, 동생인 그가 먼저 나서서 형수를 붙잡아 둘 수밖에.형님은 형수가 회사를 나서면 자기를 떠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까 봐 무서워하고 있다.하예정은 지금 전씨 식구들을 보기만 해도 화가 나 그들과 말을 섞기 싫어서 전이진을 피해 걸어가려 했다.손으로 그녀를 잡아당기려던 전이진은 감히 손으로 잡아당기지 못하고,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두 팔을 벌려 하예정을 막았다.“형수님, 가지 마세요, 지금 형님께서 오고 있어요. 곧 도착할 거예요.”하예정이 그를 차갑게 바라보았다.순간 전이진은 형수의 싸늘한 눈빛이 형님을 닮았다고 느꼈다.부부가 오래되면 서로 닮는다고, 형수도 형님을 닮아가는 건가?“전이진 씨, 아니 둘째 도련님, 비켜주세요!”하예정이 자기를 부르는 호칭을 들은 전이진이
노동명이 하예진을 전씨 그룹에 데려올 때까지 말이다.스쿠터에 배터리가 없어 길가에 서 있는 심효진을 만난 노동명이 심효진도 함께 태우고 왔다. 스쿠터는 자물쇠를 잠가 길가에 남겨두었고, 우선 하예정부터 달랠 생각이었다.“예정아.”하예진과 심효진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하예정에게 달려갔다.하예진은 아들마저 내버려 두고 말이다.그 덕에 노동명은 마침내 소원대로 주우빈을 안을 수 있엇다.엄마가 자신의 존재도 잊고 노동명 아저씨 차에 자기를 내버려 둔 채 달려가는 바람에 꼬맹이는 어쩔 수 없이 아저씨한테 안겼다. 그는 아저씨가 자기를 차에서 안아내려줄 줄 알았는데, 정작 차에서 내린 후에도 그 손을 놓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이모에게 다가갔다.하예정은 소정남과 전이진 때문에 전씨 그룹을 떠날 수 없었고 몸도 지쳤다.언니를 본 순간 서러움이 북받친 하예정은 언니 품에 와락 안겼다.“언니.”언니 품에 안긴 하예정은 억울함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언니 여기 있어.”가슴 아파 난 하예진이 하예정을 꼭 끌어안았다.몇 분 동안 울던 하예정이 언니의 품에서 벗어나며 말했다.“언니, 집에 가고 싶어, 태윤 씨 집 말고 언니 집에.”하예진이 눈물을 닦아 주며 부드럽게 말했다.“그래, 집에 가자.”하예정의 손을 잡던 하예진은 그제야 노동명에게 안겨 있는 주우빈을 발견하고 급히 그의 품에서 주우빈을 받아안고 고맙다고 인사를 건넸다.“제가 우빈이를 안을게요.”심효진의 말에 하예진은 심효진에게 주우빈을 넘겨주었다.“형수님!”전이진은 다시 한번 하예정 자매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러고는 하예진에게 말했다.“예진 누나, 형님이 지금 회사로 오고 있어요, 형수님과 형님의 일은 그들 둘에게 맡겨 해결하게 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하예진이 차갑게 말했다.“둘째 도련님, 예정이는 지금 당신 형과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으니까 비켜줘요. 당신들 전씨 가문과, 우린 감히 엮이고 싶지 않아요!”그녀는 여동생을 데리고 전이진을 피해 앞으로 걸어갔다.초조해진 전이진이
하예정의 마음은 점점 차가워졌다.그가 평소에 운전하는 그 현대 SUV는 그가 일부러 그녀를 속이기 위해 산 거겠지?그가 다닐 때면 지금처럼 호송 차량과 경호원 팀이 따라다니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도련님이 다니는 방식이겠지!전태윤은 차에서 내린 후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자매 앞에 다가간 전태윤은 미안한 표정으로 먼저 하예진에게 말했다.“처형, 제가 잘못한 거 알아요, 예정이랑 단둘이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하예진이 동생을 바라보자 하예정이 차갑게 말했다.“우리가 더 할 얘기가 남았나요? 당신께선 높으신 전씨 가문 도련님이신데, 저 같은 소시민이 어찌 감이 넘볼 수가 있겠어요? 당신과 말할 자격도 없지요.”“예정아.”전태윤은 손을 뻗어 언니를 잡고 떠나려는 그녀를 잡아당겼다.하예진이 손을 떼고 동생에게 말했다.“예정아, 태윤 씨랑 얘기 좀 해봐. 어쨌든, 그에게 해명할 기회는 줘야 하지 않겠어?”하예정이 전태윤의 손을 뿌리치려 했지만, 전태윤이 그 손을 놓을 리 없었다.갑자기 화가 난 하예정은 미친 사람처럼 그를 때렸다.그녀의 분노를 묵묵히 참던 전태윤은 그녀가 지치자, 그녀를 품에 꼭 껴안았다.이런 결과가 두려워서 고백하지 못하고 있던 전태윤은 예준성의 조언을 듣고 나서야 용기를 내어 모든 것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다.“전태윤, 이 망나니 사기꾼! 이거 놔!”전태윤은 그녀를 꼭 껴안은 채, 그녀가 그를 욕하도록 내버려 두었다. 심지어 그녀에게 물려 통증이 느껴져도 여전히 그 손을 놓지 않았다.손을 놓으면 그녀가 그를 떠날까 봐 두려웠다.“예정아, 미안해, 미안해.”전태윤은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되뇌었다.그녀를 그렇게 오랫동안 속인 그는 정말 그녀에게 미안했다.그가 된감기에 걸렸을 때, 그녀에게 어떤 상황에서 그를 떠나는지 물었는데, 그녀는 만약 그가 가정폭력을 휘두르고, 바람을 피우고, 그녀를 수없이 속인다면 그를 떠났을 것이라고 말했다.그녀는 또한 진짜 떠날 때는 말도 없이 떠들지도 않고 조용히 떠날 거라고 했다
산 정상 별장에 돌아간 후 전태윤은 하예정을 안고 차에서 내리려 했다.“나 혼자 내릴게요. 안을 필요 없어요. 더는 날 터치하지도 말아요!”하예정은 포옹하려는 그를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녀는 전태윤이 더는 건드리지 말기를 바랐다.결국 남편을 매정하게 밀친 후 그녀 스스로 차에서 내렸다.이때 장씨 아저씨가 집안에서 걸어 나왔다.그는 하예정을 보자 매우 의외라는 표정을 짓더니 금세 스스럼없이 인사했다.“사모님.”이에 하예정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저는 당신들의 사모님이 아니에요. 제가 어찌 감히 전태윤 도련님을 넘보겠어요!”그녀는 비난하는 어조로 날카롭게 쏘아붙였다.하예정은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고개를 홱 돌리고 전태윤에게 말했다.“이래놓고 뭐? 혼자 산다고요? 태윤 씨는 이젠 밥 먹듯이 거짓말을 하네요. 어쩜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뻔뻔스럽게 날 속여요?”그의 연기가 너무 완벽하다 보니 단순한 하예정은 감쪽같이 속았다.‘다 내가 멍청해서 그래. 태윤 씨가 몇천만 원짜리 SUV를 타고 다니고 별장이 아닌 아파트에 사니 진짜 일반 직장인인 줄 알았어. 전에 나한테 자신이 만약 갑부라면 믿겠냐고 물은 적 있지? 그땐 아예 안 믿는다고 했어. 갑부는 돈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테고 난 연예인 뺨치는 미모를 지닌 것도 아니니 재벌 집 도련님이 나랑 결혼할 리가 없잖아!’애초에 초고속 결혼을 할 때 절친 심효진도 그녀에게 장난치듯 물었지만 하예정은 단호하게 부인했다. 재벌 집 도련님이 길거리에 널린 것도 아닌데 초고속 결혼으로 만날 확률이 얼마나 되겠냐면서, 효진에게 로맨스 소설 좀 그만 보라고 다그쳤었다.하지만 결국 하예정만 뒤통수를 맞은 상황이 돼버렸다.전태윤은 입을 꾹 다물고 그녀를 묵묵히 바라볼 뿐 아무 말도 없었다.하예정을 속인 건 사실이니 그도 딱히 반박할 수 없었다.하예정은 그를 날카롭게 째려보더니 장씨 아저씨를 스쳐지나 홀로 별장에 들어섰다.“도련님, 사모님께서 아시게 된 후 몹시 화나셨나 봅니다!”
하예정은 자리에서 일어나 곧게 주방으로 들어갔다.전태윤은 집안에 들어오며 마침 주방으로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봤다.그는 하예정을 묵묵히 지켜봤다.하예정은 요리할 줄 몰라서 라면에 달걀 한 개를 넣고 끓인 후 냄비 채로 들고 나왔다.전태윤을 본 그녀는 힐긋 째려보더니 공기 취급하며 식탁 앞에 앉아서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전태윤은 그녀가 홧김에 단식이라도 할까 봐 걱정했는데 라면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복잡해졌다.그도 식탁 앞에 앉아서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예정아...”“입 닥쳐요! 밥맛 떨어지니까!”아내가 으름장을 놓자 전태윤 도련님은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그는 지금 잘못을 저지른 입장이니 땅이 꺼지도록 머리를 숙여야 한다.그녀가 먹는 모습에 전태윤도 배가 고팠다.하지만 감히 자리를 비우지 못했다. 자리를 비운 사이로 그녀가 도망이라도 칠까 봐 배고픔을 꾹 참고 라면 먹는 그녀의 모습을 묵묵히 지켜봤다. 하예정은 라면 한 그릇 뚝딱 비우고 수저를 들더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예정아, 나 줘. 설거지 내가 할게.”전태윤은 얼른 그녀의 손에서 냄비를 뺏어왔다.하예정도 딱히 거부하지 않았다. 그가 설거지하겠다고 하니 냄비를 식탁에 내려놓고 주방을 나섰다.그녀가 밖에 나가지 않고 소파에 앉아 있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전태윤도 시름 놓고 설거지하러 갔다.그는 가장 빠른 속도로 설거지를 끝내고 그녀에게 과일까지 씻어서 조각으로 잘라 접시에 담아왔다.“여보.”“여보라고 부르지 말아요!”“예정아.”전태윤은 곧바로 호칭을 바꿨다.아내의 분노가 극에 달했으니 모든 걸 아내에게 맞춰야 한다.“과일 좀 먹어.”전태윤은 조각으로 자른 과일 그릇을 하예정 앞에 내려놓았다.“당신한테 배신당한 것만 생각하면 기가 차서 배가 저절로 부른데 과일이 넘어가겠어요?!”전태윤은 과일 그릇을 내려놓으려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탁자 앞으로 가져갔다.하예정은 라면 한 그릇 뚝딱 비웠으니 당연히 배부를 것이다.“미안해, 예정아
“난 애초에 태윤 씨가 재벌 집 도련님인 줄도 몰랐어요! 내가 뭘 노렸는데요? 우리가 처음 싸웠을 때 나도 바라는 게 있다고 똑똑히 말했었죠. 태윤 씨에게 집이 있으니 집 구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고, 태윤 씨가 성숙하고 듬직한 데다가 안정적인 직업을 갖고 있어 우리 언니가 만족하고 마음 놓을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했잖아요.”전태윤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나도 알아. 넌 처형을 안심시키기 위해 나랑 결혼한 거지 절대 내 돈을 노리거나 신분을 노린 건 아니야. 내가 오해했어. 다 내 잘못이야. 미안해, 예정아. 날 때려도 좋고 욕해도 좋아. 내가 한 잘못이니 무슨 처벌이든 달갑게 받을게.”전태윤은 끝까지 억울하단 말 한마디 없었다.하예정이 그를 째려봤다.“처음엔 너의 성품을 보려고 신분을 숨겼었어. 할머니가 한사코 너랑 결혼하라고 하니 네가 과연 내 평생을 바칠 가치가 있을지 알고 싶었어. 그래서 내 정체를 숨기고 일반인처럼 위장하며 너랑 함께 지냈었어. 지내다 보니 네가 참 좋은 사람이란 걸 알게 됐고 서서히 널 사랑하게 됐어.”전태윤이 하예정의 손을 잡으려 했으나 그녀가 매정하게 뿌리쳤다.“미안해, 예정아.”하예정은 그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참 후에야 말을 꺼냈다.“처음엔 날 떠보기 위해서였고 나중에는요? 무려 4개월 동안 속였어요. 4개월 내내 나란 사람을 의심한 거예요? 인제야 내 성품을 인정하게 됐냐고요?!”“나중엔 감히 너한테 고백할 엄두가 안 났어. 네가 진실을 알게 된 후 날 떠날까 봐 너무 두려웠어. 난 널 잃고 싶지 않아.”전태윤이 다시 한번 손을 잡으려 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매정하게 뿌리쳤다. 하지만 이번엔 그가 터프하게 그녀의 손을 확 잡아당겨 입가에 가져가더니 손등에 가볍게 키스했다.전태윤은 짙은 눈빛으로 그녀를 지그시 바라봤다. 그의 눈가에 자상함과 미안함이 골고루 섞여 있었다.“예정아, 난 진짜 두려웠어. 여태껏 살아오면서 널 사랑하게 된 이후로 처음 그런 두려움을 느꼈어. 널 잃을까 봐 두렵고 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