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테이블을 거두고 행주를 깨끗이 씻은 후 손들 씻고 돌아서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웃었다.“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기 싫으면 그만둬. 난 상관 안 해.”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고 베란다로 가서 그의 어깨에 기대어 바깥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빌딩 창문에 불빛이 얼마 안 남았네요. 모두 설 쇠러 고향에 돌아갔나 바요.”“내일 아침 우리도 돌아간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진작 사람을 시켜 방을 치워놓으셨대.”전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로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는 이 시각이 더없이 달콤하고 따듯했다.“예정아, 우리 전씨 고택은 매우 낡았으니 꺼리지 마.”“얼마만큼 낡았는데요? 흙벽돌 기와집인가요? 아니면 초가집이에요?”전태윤은 웃었다.“그 정도는 아니야. 조상께서 남기신 오래된 집이어서 비록 매년 보수하고 있지만, 낡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우리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고 예전에 당신에게 말했었던 것 같은데...”“고택이 얼마나 큰가요?”“우리 집 조상들은 꽤 오래전부터 장사를 시작하여 약간의 재물이 있었고, 집은 면적이 꽤 넓어 그때 당시에 놓고 말하면 호화 저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어. 비록 집집이 따로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모두 하나의 대문을 통해 출입하고 있어.”“그렇게 오래 되였는데도 아직 사람이 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든든하게 지은거네요.”전태윤은 가볍게 웃었다.“우리가 따로 집을 지을 돈이 없어서 조상들이 남긴 오래된 집에서 모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부터 그들은 진짜 고택을 떠나 지금의 서원 리조트를 세웠다. 젊은 세대에겐 서원 리조트도 고택에 속했다. 형제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별장에 살고 있어 명절이 되여야만 비로소 리조트로 돌아가곤 했다.“별장도 한 채 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전액으로 샀는데, 어떻게 집을 지을 돈이 없겠어요? 위 세대분들이 옛것을 그리워하셔서 고택에서 살고 계신 거겠죠.”전태윤이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도 일깨워 주었다.“당신도 옷을 더 입어요. 감기에 걸리면 매일 한약으로 시중 들어드릴 테니.”“당신이 매일 지켜보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아플 수 있겠어?”그 며칠 동안 먹은 한약은 그를 평생 두렵게 한다.하예정에게 옷을 가져다주려고 방에서 나오던 전태윤은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비로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녀가 이렇게 묻는 것을 듣고 전태윤은 낯선 번호라는 것을 알아챘다.전화 저편의 사람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누구세요?”하예정이 다시 물었다.“누나,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예정은 안색이 변하면서 곧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누나, 끊지 마, 방해하지 않을게, 만나지도 않을 테니 그저 얘기만 좀 해. 누나, 나 미칠 것 같아.”김진우는 하예정에게 전화를 끊지 말라고 애원했다.그는 어머니가 정말 하예정에게 보복할까 봐 비록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전화마저 어머니에게 도청당하고 있어 서점에 가서 하예정을 볼 엄두도 못 냈고, 전화도 하지 못 했다. 이 한 통의 전화를 걸려고 그는 거금을 들여 자신을 감시하는 경호원을 매수하였고, 상대방의 휴대전화를 빌려 하예정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김진우가 오랫동안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은 건 심효진의 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젠 김진우가 자기를 포기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전화할 줄은 몰랐다.“누구 전화인데?”전태윤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고, 상대편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자 조금 궁금해 났다.그는 옷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다시 물었다.“스팸 전화야?”“김진우예요.”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김진우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김 대표는 진작부터 두 회사의 합작이 끊긴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심효진과 소정남의 사이가 끝나지 않도록 그 사랑에 길을 열어줘야 했다.“그 사람은 당신이 결혼한 것도 알고 있고, 우리 부부 사이가 좋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항상 당신에게 매달리고 있어. 그런데도 당신은 둘 사이엔 남매의 정만 있다고 했잖아. 내가 질투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야.”전태윤은 시샘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예정의 이마를 쿡 찔렀다.하예정은 찔린 곳을 만지작거리며 억울한 듯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서 줄곧 사촌 동생으로 여겼는데, 날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내 잘못 아니에요. 난 먼저 진우를 건드린 적이 없어요.”하예정은 그의 팔짱을 끼고 함께 집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할머니께서 안목이 높으셔서 당신한테 좋은 와이프를 골라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닌가요?”전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맞아. 할머니는 안목이 높으셔서 나한테 아주 좋은 와이프를 골라주셨지.”“당연하죠, 내가 바로 당신의 그 좋은 와이프예요. 나니까 당신의 이런 고약한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거죠. 다른 여자라면 진작에 당신과 싸웠을 거예요.”전태윤은 마음속으로 다른 여자라면,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사랑하는 마누라님, 그럼 날 계속 너그럽게 대해 줘요. 우리 인생의 길은 아직 멀고 멀었으니 난 100살, 당신은 95살이 될 때까지 앞으로 적어도 70년은 나를 포용해야 해요.”하예정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당신은 100살까지인데 난 왜 5년이나 적어요?”“내가 당신보다 다섯 살 많으니 내가 100살이면 당신은 95살이야. 우리 부부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해.”“...”‘이 이기적인 남자 같으니라고. 날 100살까지 살게 하고 자기는 105살까지 살아도 되잖아! 그럼, 우리 부부는 둘 다 백 세 노인이 되는데 말이야.’하지만 95세까지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80세까지 살아도 인생을
전태윤이 덤덤하게 물었다.“난 이젠 그 여자가 기억도 안 나.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도 않았잖아.”“기억 안 난다고요?”“내가 기억해야 해? 좋아하지도 않는데 뭣 하러 그래? 내가 기억했다가 너 질투하면 어떡해? 너야말로 나랑 평생 함께할 사람이야. 난 너만 기억하면 돼. 다른 여자들은 내게 스치는 인연일 뿐이야. 눈앞에서 지나가도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어.”전태윤은 여색에 관심이 없고 한없이 매정할 따름이다.이번 생에 하예정 말고는 좋아하는 여자가 더 없다.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나 화 안 내고 질투 안 하니까 경계할 필요 없어요.”“진짜 경계한 거 아니고 전부 진심이야. 가족 말고 가슴에 새겨둔 자가 너 하나뿐이라니까. 다른 사람은 아예 신경도 안 써.”“우리 그럼 퉁 쳐요. 김진우가 날 짝사랑한대도, 태윤 씨를 짝사랑하는 사람도 있잖아요.”전태윤은 김진우가 성소현보다 박력이 없어 쿨하게 내려놓지 못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결국 입가에 맴도는 그 한마디를 삼켜버렸다.김진우는 아직 어려서 사랑을 너무 중히 여기는 듯싶다.게다가 하예정을 수년간 짝사랑해왔기에 단시간에 내려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부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거리를 산책했다. 하예정의 말처럼 지금의 거리는 전처럼 북적거리지 않았고 차량과 인파가 훨씬 줄어들었다.그들 부부를 제외하고도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한적한 틈을 타 식후 산책을 했다.부부는 산책하며 얘기를 나눴다. 별의별 얘기를 다 나누었지만 대부분 하예정이 말하고 전태윤은 옆에서 들어주었다.둘은 한 시간 가까이 산책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샤워하는 사이에 발코니에 숨어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전태윤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부했다.“정남아, 김 대표한테 연락해서 관성 호텔에서 기다리라고 해. 내가 밤늦게 나갈 테니 할 얘기가 있다고 전해.”“설 후에 보기로 한 거 아니야?”소정남이 물었다.전태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또다시 질문을 이어갔다.“김진
하예정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나 영화 봐야겠어요.”전태윤은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서재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가져와 그녀 손에 쥐여주었다.“책 봐. 책 보면 바로 잠 올 거야.”하예정은 책을 건네받고 제목을 보더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어떻게 이런 책을...”그녀는 첫 장을 펼쳤다.전태윤은 그녀의 휴대폰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고 몸 돌려 책 내용을 확인하더니 식겁하며 바로 뺏어왔다. 그는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가 잘못 가져왔어. 잠깐만 기다려, 잡지 가져다줄게.”그는 말하면서 책을 안고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다.하예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박장대소했다.“태윤 씨 알고 보니 이런 사람이었어요.”전태윤은 얼굴이 빨개지고 귓불까지 달아올랐다.그 책은 몇 년 전에 소정남이 선물한 건데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버리기도 아까워 그냥 서재에 보관해두었다.그러다가 하예정에게 감정이 생기면서 몰래 펼쳐봤는데 감히 그녀에게 알리진 못했다.몇 분 뒤 전태윤은 텅 빈 손으로 침대 옆에 돌아왔다.하예정이 일부러 웃으며 물었다.“잡지 준다면서요?”전태윤은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너무나도 익숙한 늑대 같은 그의 눈빛에 하예정은 웃음기를 거두고 황급히 이불을 덮으며 그를 등지고 누웠다.“나 잘래요. 이미 잠들었어요. 나랑 말 걸지 말아요. 만약 대꾸해도 그건 잠꼬대에요, 몽유병이라고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서 살짝 긴장해 하는 하예정을 바라보더니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그래, 자. 오늘 밤엔 너 안 건드린다고 약속했으니 한 말은 꼭 지킬게. 푹 쉬어 예정아.”그의 대답을 들은 하예정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다시 돌아누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전태윤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올랐고 이에 하예정은 참지 못한 채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태윤 씨 나한테 숨기는 거 있네요. 말하기 싫으면 나도 안 물어볼게요. 언젠가 말
“태윤 씨 정말 사기꾼이에요?”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물었다.전태윤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태윤 씨 정말 사기꾼이냐고요?”하예정은 언성을 높이며 한 번 더 질문한 후에야 잠에서 깼다.그녀는 잠에서 깬 후에도 한참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꿈이었네.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고개를 돌려보니 늘 옆에서 일부러 그녀를 재워주던 전태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일찍 자라고 다그치더니 뭔가 숨기는 게 있었네. 태윤 씨 때문에 그런 악몽을 꿨잖아.”하예정은 휴대폰을 가져와 시간을 확인하더니 또다시 잠들었다.이번엔 아무 꿈도 꾸지 않고 달콤하게 잤다.관성 호텔.김 대표는 1층 로비에 앉아 전태윤을 기다렸다.그는 갑작스럽게 소정남의 연락을 받고 관성 호텔에 왔다. 전태윤이 시간을 짜내서 그를 만나려 한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관성 호텔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전태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불편한 기색 없이 여전히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김종헌은 아내와 함께 관성 호텔에 왔다.심미란은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밖을 내다봤다. 전태윤의 고급 경호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다시 돌아와 남편 곁에 앉으며 물었다.“여보, 전 대표님 정말 올까요?”“소 이사가 말했으니 무조건 올 거야. 전 대표는 신용을 아주 중요시하는 분이야.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면 반드시 찾아올거야. 좀 더 기다려 봐. 만약 임시로 생각이 바뀌어도 꼭 우리한테 알려주실 거야. 여기서 밤새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라고.”전씨 그룹이 김씨 그룹에 위협을 줬지만 김종헌은 여전히 전태윤의 성품을 믿었다.심미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우리가 비즈니스 업계에서 전 대표님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요. 저번에 연회에 참석하셨을 때 진우랑 인사도 하셨는데 고작 2, 3개월 사이에 갑자기 협력을 중단하고 우리 장사까지 가로채잖아요. 여보, 혹시 누군가가 이간질하는 거 아닐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압적으로 아들을 단속하여 더이상 하예정을 찾아가 집착하지 못하게 했다.김진우는 지금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아픔에서 벗어나면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상처를 낫게 해주는 가장 좋은 약이니까.“대체 무슨 일인데?”김종헌은 평소 업무가 바빠 아들이 하예정을 좋아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심미란도 본인이 충분히 아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김진우가 좀처럼 마음을 접지 못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당신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김종헌은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다 큰 성인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게 뭐? 남들은 열몇 살부터 연애한다는데 진우는 줄곧 아무 말도 없어서 괜히 애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 좋아하는 여자가 누구야? 집안 조건이 별로인가 봐?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말리는 이유가 없겠는데.”심미란이 방금 한 말에 김종헌은 바로 알아챘다. 그녀는 지금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썩 내키지 않았다.심미란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당신도 아는 여자애예요. 심지어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냈어요.”김종헌이 물었다.“내가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냈다고? 진우는 평소에 효진이랑 자주 함께 있는데... 그 자식 설마 제 사촌 누나를 좋아한 건 아니지? 망할 놈, 공부했다는 녀석이 근친결혼은 안 된다는 걸 몰라?”“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진우는 효진이를 좋아한 게 아니라 효진의 절친 예정이를 좋아해요.”김종헌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심미란은 계속 말을 이었다.“예정이가 결혼해서 유부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아직 싱글이라고 해도 진우랑은 안 어울려요.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이고 예정이는 또 어떤 출신인데요? 걔한테 이경혜라는 이모가 있다고 해도 그건 단지 이모 조카 사이일 뿐 아무 소용 없어요.”이경혜도 친딸이 있으니까.“게다가 예정이는 진우를 안 좋아해요. 줄곧 남동생으로 여겼는데 진우가 저를 짝사랑한다는 걸
전태윤은 곧게 호텔 맨 위층의 로얄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몇 분 후, 김종헌 부부도 그제야 경호팀의 안내 하에 노크하고 방에 들어갔다.전태윤은 그들에게 앉으라고 청했다.“고마워요, 대표님.”부부는 고마움을 표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후에도 둘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전태윤이 왜 갑자기 만나자고 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전태윤은 이 일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김 대표, 오늘 여기로 불러온 이유는 댁 아드님을 잘 단속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더는 우리 와이프한테 집착하지 말라고 해주세요.”김종헌 부부는 돌연 낯빛이 어두워졌다.심미란은 말까지 더듬었다.“대표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우리 진우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걔가 무슨 엄두로 대표님 아내분을 집착하겠어요?”전씨 사모님의 신분은 타이틀만으로도 위압감이 넘치는데 누가 감히 그녀를 넘본다는 말인가?김종헌도 말했다.“맞아요. 우리 진우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걔는 절대 그럴 리가... 저기요 대표님, 실례지만 아내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전태윤의 기혼 사실은 상류층 사람들과 전씨 그룹 직원들만 알고 있다.다만 상류층 사람들은 그의 아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김종헌은 일단 제 아들 진우가 전씨 그룹 사모님을 집착할 배짱이 없다고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전씨 그룹 사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진우가 좋아하는 사람은 하예정이었다. 김종헌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심미란도 뒤늦게 반응하며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하예정이 전태윤의 아내란 말인가?이럴 수가!전태윤은 특별한 날에 하예정에게 제 신분을 솔직하게 밝히기로 계획하고 있어 김종헌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무방했다.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심미란 씨가 우리 아내 예정이랑 아주 잘 아는 사이죠.”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이었다!심미란의 낯빛이 확 돌
소지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참, 제가 두 박스의 물건을 배송했는데 받으셨나요? 제가 배송 기록을 확인해보니 오늘 받아보실 수 있다고 하던데.”소지훈은 관성의 특산품을 많이 샀다. 그중 정수호 부부의 영양제도 들어있었다.물론 수신자는 정윤하의 이름으로 적어놓았다.정윤하는 그의 운명적인 여신이기 때문에 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그리고 먼 곳에서 왔는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다.정윤하가 대답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 오후에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택배가 있으면 아마 집에 배송될 거에요. 우리 엄마가 종일 집에 있으니까 택배를 받으실 거예요. 지훈 씨, 무슨 물건을 보냈어요? 너무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관성의 특산품들이에요.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가서 준비한 특산품이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제가 좀 더 사서 이틀 전에 택배로 보냈거든요. 그럼 오늘 제가 도착하면 택배도 도착할 수 있잖아요.”“저의 부모님은 윤하 씨가 제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저를 호되게 꾸지람하셨어요. 감사할 줄 모른다면서요. 은혜는 항상 몇 배로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요.”정윤하도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저에게 보답했는걸요. 지난번에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시합에 갔을 때 제가 돈 한 푼도 낼 필요 없이 우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나가서 재미있는 것도 놀게 해줬잖아요. 그리고 특별히 저를 전 대표님 결혼식에 데려간 것도 모두 저에 대한 보답이세요.”“그래도 부족하죠. 보답은 많이 해야 해요.”몸으로 보답을 허락해 주면 더 좋지만 말이다.“지훈 씨 부모님들 너무 놓은 분들이시네요.”정윤하는 소균성 부부를 만났는데 너무 열정적이고 자상한 느낌을 받아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소균성 부부의 소질은 매우 좋고 말씨도 매우 부드러웠다. 최민주가 자신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본 정윤하는 최민주가 그녀를
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아저씨 싸움 실력이 너무 좋기 때문에 경호원이 필요 없다고 봐요. 그날 밤은 제가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제가 그날 밤 아저씨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아저씨 실력으로도 충분히 그 나쁜 사람들은 해결하셨을 거예요. 제가 너무 빨리 참견해서 오히려 아저씨 실력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진 거죠. 저도 아저씨의 실력을 볼 기회가 줄어든 거죠.”그러자 소지훈은 재빨리 말했다.“제가 무술 할 줄 아는 건 맞지만 윤하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아요. 그날 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저 혼자서는 분명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윤하 씨만큼 대단하지 않아요.”“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지만 저는 거의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가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외출하는 편이죠. 하지만 제가 고용한 경호원들은 몸집이 커서 다른 사람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정도뿐이지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단지 몇몇 건달들을 상대할 수 있을 실력이에요.”“만약 전업적인 사람들을 만난다면 전혀 상대되지 않을걸요. 게다가 지난번과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는 윤하 씨와 같은 진정한 고수가 필요해요.”소지훈은 자기 경호원들이 쓸모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고 있었다.어차피 소지훈의 부하들이 곁에 없기 때문에 그가 뭐라고 해도 부하들이 변명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모두 소지훈의 눈앞에 있다고 해도 감히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소지훈은 운명적인 여신에게 구애하기 위해 그의 경호원들을 정윤하에게 매를 맞고 경찰서까지 끌려가게 했다.그들은 지금은 회복해서 퇴원했지만, 앞으로는 정윤하가 알아볼까 봐 그녀를 피해 다녀야 했다.정윤하가 말했다.“관성의 안전 상황은 이미 매우 좋다고 봐요. 지난번처럼 사고는 조사해 보셨어요? 누군가 일부러 아저씨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린 것 같아요.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평소에 경호원이 필요 없는데 경호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소지훈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어르신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잔소리도 많아요. 아버지들도 다 똑같으니 저의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저의 아버지를 보면 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실까 봐 쥐가 고양이를 만난 듯 숨어다녀요.”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소지훈은 차를 운전하려고 했는데 정윤하가 직접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하 씨가 운전하려고요?”“네, 제가 운전할게요. 아저씨가 길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제 차가 평범한 차라서 아저씨가 차를 몰 때 습관이 안 될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차 기술도 좋아서 괜찮을 거예요.”소지훈은 차를 에돌아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했다.“저는 어떠한 차도 다 몰아봤어요. 예전에 돈을 벌지 못했을 때 자전거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도 다 타봤어요. 지금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저의 체면 때문에 몰고 다니는 것뿐이죠.”소지훈은 저번에 정윤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차가 아직도 차 대출을 갚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그는 진짜 신분을 말했기 때문에 더는 정윤하를 속이기 어려웠다.정윤하는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는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니 외출할 때는 반드시 좋은 차를 운전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와 오빠도 외출할 때 좋은 차를 운전하시거든요. 그러나 평소에는 2000만 원대 되는 차를 몰고 다니세요. 제가 지금 운전하고 있는 이 차는 2400만 원밖에 안 돼요. 물론 제 지갑이 넉넉하지 않아 더 비싼 차를 구매할 수 없지만요.”정윤하의 적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합 도장에서 몇 년 동안 일하여 번 돈으로 차를 샀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지난번에 학생들을 데리고 관성에 가서 무술 대회에 참가했을 때 정윤하는 사비를 털어 관성 호텔에 주숙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작은 선물도 많이 샀다.하여 얼마 되지 않은 적금도 거의 다 써버렸다.정윤하는 지금 다시 저축하여 몇 년 후에 집을 한 채 사서 대출하
정윤하가 웃으며 캐리어를 들어주려고 하자 소지훈은 그녀가 도와주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내 캐리어에는 옷 몇 벌만 들어있어서 무겁지 않아요. 도와줄 필요 없어요. 게다가 저도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어떻게 윤하 씨를 제 캐리어를 들게 할 수 있겠어요?”“멀리서 오셨으니 손님이시잖아요. 소시지 두 개도 남겼는데 아저씨께서 매운 거 싫어하시니 제가 안 매운 거 남겨놨어요. 제 소시지는 매운 고춧가루를 넣었는데 엄청 매워요.”소지훈은 그녀가 건네준 소시지 두 개가 들어있는 작은 봉지를 건네받아 하나를 꺼내 한입 물었다.정윤하는 그녀가 산 다른 간식들을 모두 소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소지훈이 그 봉지를 받을 때 정윤하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 아직 다 먹지 않은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소지훈은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소지훈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정윤하는 그를 대신해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의 캐리어를 끌도록 놔두었다.정윤하는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걸었고 소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그렇게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정윤하가 가지고 있던 소시지를 다 먹자 소지훈이 또 다른 간식을 건네주었다.주차장으로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그 간식들을 다 먹었다.정윤하는 입에 기름기를 가득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지훈을 도와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다.“정말 잘 먹었어요. 평소에는 우리 엄마가 밖에서 파는 간식 같은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거든요. 위생적이지 못하다면서요. 아주 가끔 먹어도 자꾸 잔소리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간식들이 정말 맛있거든요.”“가끔 한두 번은 괜찮아요. 자주 먹지 않으면 되는데. 정말로 좋아하면 식자재를 사서 직접 만들어서 드세요. 그러면 최소한 위생과 안전은 보장할 수 있잖아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제 요리 솜씨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께서 그런 간식들을 맛있게 잘하세요. 그런데 간식들을 해주기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