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테이블을 거두고 행주를 깨끗이 씻은 후 손들 씻고 돌아서서 두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싸며 웃었다.“당신이 배우고 싶으면 배우고, 배우기 싫으면 그만둬. 난 상관 안 해.”하예정은 그의 손을 잡고 베란다로 가서 그의 어깨에 기대어 바깥의 고층 빌딩을 바라보았다.“맞은편 빌딩 창문에 불빛이 얼마 안 남았네요. 모두 설 쇠러 고향에 돌아갔나 바요.”“내일 아침 우리도 돌아간다고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할머니께서 진작 사람을 시켜 방을 치워놓으셨대.”전태윤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서로 머리를 기대고 앉아있는 이 시각이 더없이 달콤하고 따듯했다.“예정아, 우리 전씨 고택은 매우 낡았으니 꺼리지 마.”“얼마만큼 낡았는데요? 흙벽돌 기와집인가요? 아니면 초가집이에요?”전태윤은 웃었다.“그 정도는 아니야. 조상께서 남기신 오래된 집이어서 비록 매년 보수하고 있지만, 낡아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어. 그리고 우리는 대가족이 함께 살고 있다고 예전에 당신에게 말했었던 것 같은데...”“고택이 얼마나 큰가요?”“우리 집 조상들은 꽤 오래전부터 장사를 시작하여 약간의 재물이 있었고, 집은 면적이 꽤 넓어 그때 당시에 놓고 말하면 호화 저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어. 비록 집집이 따로 있지만, 서로 연결되어 모두 하나의 대문을 통해 출입하고 있어.”“그렇게 오래 되였는데도 아직 사람이 살 수 있는걸 보면 정말 든든하게 지은거네요.”전태윤은 가볍게 웃었다.“우리가 따로 집을 지을 돈이 없어서 조상들이 남긴 오래된 집에서 모여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아?”할아버지, 할머니 세대부터 그들은 진짜 고택을 떠나 지금의 서원 리조트를 세웠다. 젊은 세대에겐 서원 리조트도 고택에 속했다. 형제들은 모두 자기 소유의 별장에 살고 있어 명절이 되여야만 비로소 리조트로 돌아가곤 했다.“별장도 한 채 있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전액으로 샀는데, 어떻게 집을 지을 돈이 없겠어요? 위 세대분들이 옛것을 그리워하셔서 고택에서 살고 계신 거겠죠.”전태윤이
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도 일깨워 주었다.“당신도 옷을 더 입어요. 감기에 걸리면 매일 한약으로 시중 들어드릴 테니.”“당신이 매일 지켜보는데, 내가 어떻게 감히 아플 수 있겠어?”그 며칠 동안 먹은 한약은 그를 평생 두렵게 한다.하예정에게 옷을 가져다주려고 방에서 나오던 전태윤은 그녀의 핸드폰 벨이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하예정은 핸드폰을 꺼내 한참을 들여다보더니 비로소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누구세요?”그녀가 이렇게 묻는 것을 듣고 전태윤은 낯선 번호라는 것을 알아챘다.전화 저편의 사람은 바로 말하지 않았다.“누구세요?”하예정이 다시 물었다.“누나, 나야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하예정은 안색이 변하면서 곧 전화를 끊으려고 했다.“누나, 끊지 마, 방해하지 않을게, 만나지도 않을 테니 그저 얘기만 좀 해. 누나, 나 미칠 것 같아.”김진우는 하예정에게 전화를 끊지 말라고 애원했다.그는 어머니가 정말 하예정에게 보복할까 봐 비록 그녀가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전화마저 어머니에게 도청당하고 있어 서점에 가서 하예정을 볼 엄두도 못 냈고, 전화도 하지 못 했다. 이 한 통의 전화를 걸려고 그는 거금을 들여 자신을 감시하는 경호원을 매수하였고, 상대방의 휴대전화를 빌려 하예정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다.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바로 전화를 끊어 버렸다.김진우가 오랫동안 그녀 앞에 나타나지 않고, 전화도 하지 않은 건 심효진의 공로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젠 김진우가 자기를 포기하고 새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전화할 줄은 몰랐다.“누구 전화인데?”전태윤은 그녀의 안색이 좋지 않고, 상대편에게 누구세요라고 묻는 것 외에는 다른 말을 하지 않자 조금 궁금해 났다.그는 옷을 그녀의 어깨에 걸쳐주면서 다시 물었다.“스팸 전화야?”“김진우예요.”전태윤은 눈살을 찌푸렸다.김진우가 아직도 포기하지 않은 건가?김 대표는 진작부터 두 회사의 합작이 끊긴 일에 대해 이야기하려
심효진과 소정남의 사이가 끝나지 않도록 그 사랑에 길을 열어줘야 했다.“그 사람은 당신이 결혼한 것도 알고 있고, 우리 부부 사이가 좋다는 것도 알고 있으면서 항상 당신에게 매달리고 있어. 그런데도 당신은 둘 사이엔 남매의 정만 있다고 했잖아. 내가 질투 때문에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면, 당신은 아마도 그가 당신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을 거야.”전태윤은 시샘하는 표정을 지으며 하예정의 이마를 쿡 찔렀다.하예정은 찔린 곳을 만지작거리며 억울한 듯 말했다.“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서 줄곧 사촌 동생으로 여겼는데, 날 좋아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내 잘못 아니에요. 난 먼저 진우를 건드린 적이 없어요.”하예정은 그의 팔짱을 끼고 함께 집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은 할머니께서 안목이 높으셔서 당신한테 좋은 와이프를 골라줬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게 아닌가요?”전태윤은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맞아. 할머니는 안목이 높으셔서 나한테 아주 좋은 와이프를 골라주셨지.”“당연하죠, 내가 바로 당신의 그 좋은 와이프예요. 나니까 당신의 이런 고약한 성격을 받아줄 수 있는 거죠. 다른 여자라면 진작에 당신과 싸웠을 거예요.”전태윤은 마음속으로 다른 여자라면, 그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사랑하는 마누라님, 그럼 날 계속 너그럽게 대해 줘요. 우리 인생의 길은 아직 멀고 멀었으니 난 100살, 당신은 95살이 될 때까지 앞으로 적어도 70년은 나를 포용해야 해요.”하예정은 그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당신은 100살까지인데 난 왜 5년이나 적어요?”“내가 당신보다 다섯 살 많으니 내가 100살이면 당신은 95살이야. 우리 부부는 살아도 같이 살고 죽어도 함께 죽어야 해.”“...”‘이 이기적인 남자 같으니라고. 날 100살까지 살게 하고 자기는 105살까지 살아도 되잖아! 그럼, 우리 부부는 둘 다 백 세 노인이 되는데 말이야.’하지만 95세까지 살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80세까지 살아도 인생을
전태윤이 덤덤하게 물었다.“난 이젠 그 여자가 기억도 안 나. 내 앞에 다시 나타나지도 않았잖아.”“기억 안 난다고요?”“내가 기억해야 해? 좋아하지도 않는데 뭣 하러 그래? 내가 기억했다가 너 질투하면 어떡해? 너야말로 나랑 평생 함께할 사람이야. 난 너만 기억하면 돼. 다른 여자들은 내게 스치는 인연일 뿐이야. 눈앞에서 지나가도 얼굴조차 기억할 수 없어.”전태윤은 여색에 관심이 없고 한없이 매정할 따름이다.이번 생에 하예정 말고는 좋아하는 여자가 더 없다.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나 화 안 내고 질투 안 하니까 경계할 필요 없어요.”“진짜 경계한 거 아니고 전부 진심이야. 가족 말고 가슴에 새겨둔 자가 너 하나뿐이라니까. 다른 사람은 아예 신경도 안 써.”“우리 그럼 퉁 쳐요. 김진우가 날 짝사랑한대도, 태윤 씨를 짝사랑하는 사람도 있잖아요.”전태윤은 김진우가 성소현보다 박력이 없어 쿨하게 내려놓지 못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결국 입가에 맴도는 그 한마디를 삼켜버렸다.김진우는 아직 어려서 사랑을 너무 중히 여기는 듯싶다.게다가 하예정을 수년간 짝사랑해왔기에 단시간에 내려놓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부부는 서로 손을 맞잡고 거리를 산책했다. 하예정의 말처럼 지금의 거리는 전처럼 북적거리지 않았고 차량과 인파가 훨씬 줄어들었다.그들 부부를 제외하고도 거리를 산책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다들 한적한 틈을 타 식후 산책을 했다.부부는 산책하며 얘기를 나눴다. 별의별 얘기를 다 나누었지만 대부분 하예정이 말하고 전태윤은 옆에서 들어주었다.둘은 한 시간 가까이 산책한 후에야 집으로 돌아갔다.전태윤은 하예정이 샤워하는 사이에 발코니에 숨어 소정남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가 연결되자 전태윤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분부했다.“정남아, 김 대표한테 연락해서 관성 호텔에서 기다리라고 해. 내가 밤늦게 나갈 테니 할 얘기가 있다고 전해.”“설 후에 보기로 한 거 아니야?”소정남이 물었다.전태윤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가 또다시 질문을 이어갔다.“김진
하예정이 침대에서 일어나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나 영화 봐야겠어요.”전태윤은 그녀의 휴대폰을 가져가더니 서재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가져와 그녀 손에 쥐여주었다.“책 봐. 책 보면 바로 잠 올 거야.”하예정은 책을 건네받고 제목을 보더니 두 눈을 깜빡거렸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어떻게 이런 책을...”그녀는 첫 장을 펼쳤다.전태윤은 그녀의 휴대폰을 침대 머리맡에 내려놓고 몸 돌려 책 내용을 확인하더니 식겁하며 바로 뺏어왔다. 그는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내가 잘못 가져왔어. 잠깐만 기다려, 잡지 가져다줄게.”그는 말하면서 책을 안고 부랴부랴 자리를 떠났다.하예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박장대소했다.“태윤 씨 알고 보니 이런 사람이었어요.”전태윤은 얼굴이 빨개지고 귓불까지 달아올랐다.그 책은 몇 년 전에 소정남이 선물한 건데 한 번도 본 적은 없고 버리기도 아까워 그냥 서재에 보관해두었다.그러다가 하예정에게 감정이 생기면서 몰래 펼쳐봤는데 감히 그녀에게 알리진 못했다.몇 분 뒤 전태윤은 텅 빈 손으로 침대 옆에 돌아왔다.하예정이 일부러 웃으며 물었다.“잡지 준다면서요?”전태윤은 이글거리는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너무나도 익숙한 늑대 같은 그의 눈빛에 하예정은 웃음기를 거두고 황급히 이불을 덮으며 그를 등지고 누웠다.“나 잘래요. 이미 잠들었어요. 나랑 말 걸지 말아요. 만약 대꾸해도 그건 잠꼬대에요, 몽유병이라고요.”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그는 침대 옆에 앉아서 살짝 긴장해 하는 하예정을 바라보더니 뒤에서 그녀를 꼭 끌어안고 귓가에 다정하게 속삭였다.“그래, 자. 오늘 밤엔 너 안 건드린다고 약속했으니 한 말은 꼭 지킬게. 푹 쉬어 예정아.”그의 대답을 들은 하예정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다시 돌아누워 그와 눈을 마주쳤다. 전태윤의 눈빛은 여전히 불타올랐고 이에 하예정은 참지 못한 채 그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태윤 씨 나한테 숨기는 거 있네요. 말하기 싫으면 나도 안 물어볼게요. 언젠가 말
“태윤 씨 정말 사기꾼이에요?”하예정이 전태윤에게 물었다.전태윤은 그녀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끝내 대답하지 않았다.“태윤 씨 정말 사기꾼이냐고요?”하예정은 언성을 높이며 한 번 더 질문한 후에야 잠에서 깼다.그녀는 잠에서 깬 후에도 한참 넋 놓고 있다가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꿈이었네. 대체 무슨 꿈을 꾼 거야.”고개를 돌려보니 늘 옆에서 일부러 그녀를 재워주던 전태윤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일찍 자라고 다그치더니 뭔가 숨기는 게 있었네. 태윤 씨 때문에 그런 악몽을 꿨잖아.”하예정은 휴대폰을 가져와 시간을 확인하더니 또다시 잠들었다.이번엔 아무 꿈도 꾸지 않고 달콤하게 잤다.관성 호텔.김 대표는 1층 로비에 앉아 전태윤을 기다렸다.그는 갑작스럽게 소정남의 연락을 받고 관성 호텔에 왔다. 전태윤이 시간을 짜내서 그를 만나려 한다는 말에 한달음에 달려왔다.관성 호텔에서 두 시간이나 기다렸지만 전태윤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럼에도 김 대표는 불편한 기색 없이 여전히 소파에 앉아 그를 기다렸다.김종헌은 아내와 함께 관성 호텔에 왔다.심미란은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호텔 밖을 내다봤다. 전태윤의 고급 경호 차량이 보이지 않자 그녀는 다시 돌아와 남편 곁에 앉으며 물었다.“여보, 전 대표님 정말 올까요?”“소 이사가 말했으니 무조건 올 거야. 전 대표는 신용을 아주 중요시하는 분이야. 여기서 만나기로 했으면 반드시 찾아올거야. 좀 더 기다려 봐. 만약 임시로 생각이 바뀌어도 꼭 우리한테 알려주실 거야. 여기서 밤새 기다리게 하지 않을 거라고.”전씨 그룹이 김씨 그룹에 위협을 줬지만 김종헌은 여전히 전태윤의 성품을 믿었다.심미란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우리가 비즈니스 업계에서 전 대표님한테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겠어요. 저번에 연회에 참석하셨을 때 진우랑 인사도 하셨는데 고작 2, 3개월 사이에 갑자기 협력을 중단하고 우리 장사까지 가로채잖아요. 여보, 혹시 누군가가 이간질하는 거 아닐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압적으로 아들을 단속하여 더이상 하예정을 찾아가 집착하지 못하게 했다.김진우는 지금 매우 고통스럽겠지만 시간이 지나고 이 아픔에서 벗어나면 더는 억지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시간은 상처를 낫게 해주는 가장 좋은 약이니까.“대체 무슨 일인데?”김종헌은 평소 업무가 바빠 아들이 하예정을 좋아하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심미란도 본인이 충분히 아들을 컨트롤할 수 있다고 생각해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는데 김진우가 좀처럼 마음을 접지 못했다.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대답했다.“당신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겼어요.”김종헌은 하찮다는 표정으로 말했다.“다 큰 성인이 좋아하는 여자가 생긴 게 뭐? 남들은 열몇 살부터 연애한다는데 진우는 줄곧 아무 말도 없어서 괜히 애가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 좋아하는 여자가 누구야? 집안 조건이 별로인가 봐? 그렇지 않으면 당신이 말리는 이유가 없겠는데.”심미란이 방금 한 말에 김종헌은 바로 알아챘다. 그녀는 지금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가 썩 내키지 않았다.심미란은 또다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당신도 아는 여자애예요. 심지어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냈어요.”김종헌이 물었다.“내가 십여 년 동안 알고 지냈다고? 진우는 평소에 효진이랑 자주 함께 있는데... 그 자식 설마 제 사촌 누나를 좋아한 건 아니지? 망할 놈, 공부했다는 녀석이 근친결혼은 안 된다는 걸 몰라?”“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진우는 효진이를 좋아한 게 아니라 효진의 절친 예정이를 좋아해요.”김종헌은 멍하니 넋을 놓았다.심미란은 계속 말을 이었다.“예정이가 결혼해서 유부녀가 되지 않았더라도, 아직 싱글이라고 해도 진우랑은 안 어울려요.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이고 예정이는 또 어떤 출신인데요? 걔한테 이경혜라는 이모가 있다고 해도 그건 단지 이모 조카 사이일 뿐 아무 소용 없어요.”이경혜도 친딸이 있으니까.“게다가 예정이는 진우를 안 좋아해요. 줄곧 남동생으로 여겼는데 진우가 저를 짝사랑한다는 걸
전태윤은 곧게 호텔 맨 위층의 로얄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몇 분 후, 김종헌 부부도 그제야 경호팀의 안내 하에 노크하고 방에 들어갔다.전태윤은 그들에게 앉으라고 청했다.“고마워요, 대표님.”부부는 고마움을 표하고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자리에 앉은 후에도 둘은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으니까.전태윤이 왜 갑자기 만나자고 했는지 도통 알 길이 없었다.전태윤은 이 일로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아 바로 본론에 들어갔다.“김 대표, 오늘 여기로 불러온 이유는 댁 아드님을 잘 단속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예요. 더는 우리 와이프한테 집착하지 말라고 해주세요.”김종헌 부부는 돌연 낯빛이 어두워졌다.심미란은 말까지 더듬었다.“대표님,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아요! 우리 진우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요. 걔가 무슨 엄두로 대표님 아내분을 집착하겠어요?”전씨 사모님의 신분은 타이틀만으로도 위압감이 넘치는데 누가 감히 그녀를 넘본다는 말인가?김종헌도 말했다.“맞아요. 우리 진우 확실히 좋아하는 사람 있어요. 걔는 절대 그럴 리가... 저기요 대표님, 실례지만 아내분이 누구신지 여쭤봐도 될까요?”전태윤의 기혼 사실은 상류층 사람들과 전씨 그룹 직원들만 알고 있다.다만 상류층 사람들은 그의 아내가 누구인지는 모른다.김종헌은 일단 제 아들 진우가 전씨 그룹 사모님을 집착할 배짱이 없다고 여겼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아직 전씨 그룹 사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진우가 좋아하는 사람은 하예정이었다. 김종헌은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심미란도 뒤늦게 반응하며 놀라움과 충격에 휩싸인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하예정이 전태윤의 아내란 말인가?이럴 수가!전태윤은 특별한 날에 하예정에게 제 신분을 솔직하게 밝히기로 계획하고 있어 김종헌 부부에게 이 사실을 알려도 무방했다.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대답했다.“심미란 씨가 우리 아내 예정이랑 아주 잘 아는 사이죠.”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이었다!심미란의 낯빛이 확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