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진 리조트에서 나온 후 전태윤은 A시에 더 머무르지 않고 당일로 비행기를 타고 관성에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그는 하예정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생각이었다.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예준성의 말을 되새겼다.예준성은 그에게 아내 앞에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제안했다.성소현의 기분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성소현이 전태윤을 사랑하는 건 그녀의 일일 뿐 전태윤이 먼저 다가가 유혹한 것도 아니니까.만약 성소현의 기분을 고려하며 성기현이 말했던 것처럼 성소현이 그에 대한 감정을 모두 내려놓은 후에야 하예정에게 진짜 신분을 털어놓는다면, 그게 대체 언제가 된단 말인가?게다가 전태윤은 애초에 성소현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는데 왜 성기현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그리고 또 한 가지, 하예정과 성소현이 이 일로 사이가 틀어질지 걱정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니까.하예정의 기분이 좋을 때, 아주 특별한 날을 골라서 이색적인 방식으로 그녀에게 정체를 알리리라 다짐했다...“일구야.”전태윤이 낮은 목소리로 강일구를 불렀다.“네, 도련님.”강일구가 깍듯이 대답하며 도련님의 지시를 기다렸다.“넌 어떤 날이 특별한 날인 것 같아?”강일구의 얼굴에 물음표가 생겨났다.특별한 날?어떻게 특별해야 하는 걸까?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떠보듯이 물었다.“실례지만 도련님, 어떤 방면으로 특별한 날 말씀이십니까?”“그게 그러니까 연인에게 있어서 어떤 날이 특별한 날이야? 쉽게 기억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는 날 말이야.”강일구는 도련님이 지금 사모님 생각을 하신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그거야 당연히 결혼기념일이거나 상대방의 생일 혹은 발렌타인데이죠. 연인들에게 모두 뜻깊은 날이잖아요.”강일구는 곧바로 한마디 덧붙였다.“제가 아직 여자친구가 없어서 경험이 없는지라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전태윤이 그를 힐긋 노려봤다.“지금 나보고 여자친구를 소개해달라는 거야?”강일구가 황급
강일구가 일깨워줬다.그도 그럴 것이 도련님은 아예 사모님이 안중에 없어 사모님의 성함조차 그들이 먼저 기억하고 때때로 도련님께 알려준다.그런데 결혼기념일을 기억할 리가 있겠는가?그는 도련님이 전혀 로맨틱한 남자가 아니라고 여겼다.“확실해? 10월 10일 맞아?”“네, 정확히 10월 10일입니다. 제가 기억해요.”전태윤은 애써 기억을 되짚으며 머리를 끄덕였다.“가서 혼인신고서 보면 알아.”강일구는 도련님이 올 때보다 기분이 훨씬 좋은 것 같아 과감하게 한마디 더 물었다.“도련님, 혹시 사모님께 서프라이즈 해주시려고요?”“그럼 너한테 해줄까?”강일구가 대답했다.“만약 그래 주신다면 제게 남은 건 쇼킹 그 자체일 뿐입니다.”전태윤이 노려보자 강일구는 감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예정은 전태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못 받았다. 그녀는 한창 언니와 함께 마트 쇼핑을 하며 설 연휴를 보낼 주전부리를 골랐다.전태윤은 설에 그녀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시댁에 가져갈 설 명절 선물도 눈여겨보았다.어르신들께 드릴 명절 선물이니까 잘 골라야 한다.“다들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어. 그냥 전에 언니가 인간쓰레기 주형인네 부모한테 준비했던 거로 해드리면 되겠지? 그리고 용돈도 푸짐하게 드리면 될 것 같아.”하예정은 언니와 십여 년을 함께 지내며 언니와 주형인이 서로 알아가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까지 전부 지켜봤다. 하여 언니가 결혼 후 시댁에 어떤 명절 선물을 준비해갔던지 잘 알고 있다.하예진이 대답했다.“그래도 돼.”그녀는 왕년에 주형인 부모와 주서인에게 푸짐한 설 명절 선물을 드렸었다.주형인은 그녀에게 인색해도 제 가족한테는 큰손이 따로 없었다.하예진이 선물을 적게 준비했다고 바로 욕설을 퍼붓는 인간이 주형인이다.“아빠, 아빠.”쇼핑카트에 앉아 있던 주우빈이 갑자기 신이 나서 소리쳤다.“엄마, 아빠.”주우빈은 주형인을 부르더니 고개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며 작은 손으로 제 아빠를 가리켰다.주형인은 우
주형인의 말을 들은 서현주가 대답했다.“누가 아들 안지 말래요? 형인 씨 혼자 가지 말라고요. 그렇게 가고 싶으면 나랑 같이 가요.”그녀는 말하면서 다정하게 주형인의 팔짱을 꼈다.주형인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녀의 이마를 살짝 내리쳤다.“으이그, 질투쟁이. 난 예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한 거야. 엄마랑 누나가 함부로 내뱉는 말 곧이곧대로 듣지 마. 난 절대 예진이랑 재결합 안 해.”엄마와 누나는 하예진에게 돈 많은 이모가 생기니 왠지 주형인의 미래에 큰 도움을 줄 것만 같았다.주형인도 유진 테크를 계속 다닐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사장이 먼저 그를 해고하고 복리를 정지하기 전까지 절대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게다가 리베이트 액수를 더 늘려 회사를 떠나기 전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서현주와 결혼식을 올리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니까.그리고 하예진에게 부자 이모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이모는 아직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진 않았다. 하예진은 현재 가게를 임대하여 토스트 가게를 운영할 계획인데 여태껏 쓴 돈은 두 사람이 이혼하기 전, 주형인이 나눠준 돈이다.하예진의 이모는 일전 한 푼 도와주지 않았다.친척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어디까지나 친척일 뿐 그녀에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부모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그 자식은 빈털터리일 뿐이다.결국 본인이 돈을 벌어야 한다.하예정 자매는 서현주가 다정하게 주형인의 팔짱을 끼고, 주형인이 카트를 밀면서 이리로 오는 걸 보더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서현주는 지금 주권을 선언하는 것일까?주형인 같은 인간쓰레기는 서현주만이 보물로 여길 것이다.“아빠.”주우빈은 아빠를 보자 신이 나서 또 큰소리로 외쳤다.하예진은 살짝 이해되지 않았다. 이혼하기 전까지 주우빈은 주형인에게 지금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는데 이혼한 뒤로 아빠를 만날 때마다 신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만남이 드물어지니 아빠가 문득 보고 싶은 것일까?주형인은 자신의 쇼핑카트가 하예진 자매의 쇼핑카트와 거의 마주칠 뻔
“이봐요, 주형인 씨, 뭔가 오해했나 본데 이건 제 시댁에 가져갈 선물들이에요. 언니가 산 거 아니라고요.”하예정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그리고 설사 우리 언니가 설 명절 선물을 준비한다고 해도 그쪽 돈을 쓴 것도 아니니 제발 그 입 좀 닥쳐줄래요?”언니더러 우빈의 양육비 지출 리스트를 작성하라니, 역시나 답이 없는 인간쓰레기였다!이런 인간쓰레기를 김은희는 대체 무슨 낯짝으로 언니를 찾아와 재결합하길 권유한 걸까? 뻔뻔함이 하늘을 치솟을 일이다. 만천하에 남자라곤 그녀 아들 한 명뿐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웃기고 있네!’“네 물건이라고? 너는 시댁에 무슨 선물을 이렇게나 많이 사 가는데?”주형인이 의외라는 듯이 물었다.그는 하예진 자매가 성씨 일가를 위해 설 명절 선물을 준비하는 줄로 여겼는데 알고 보니 하예정이 시댁을 위해 준비한 선물들이었다.‘예정이가 꽤 통이 크네. 그런데 얘가 무슨 돈으로 이 물건들을 다 산대? 설마 제 언니한테 손 내미는 거 아니야?’“내가 얼마나 많이 준비하든 내 마음이지 그쪽 알 바는 아니죠! 부럽고 질투 나면 옆에 있는 여자한테 한번 말해봐요. 나처럼 통쾌하게 시댁에 돈 쓰고 시댁 친척들에게도 두툼한 용돈을 드리라고 말해보던가요.”주형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서현주를 쳐다봤다.서현주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그녀는 몇 년 동안 일해서 돈을 좀 모으긴 했지만 부모, 형제에게 감히 말도 꺼내지 못했다. 부모님이 아시면 갖은 수단으로 돈을 갈취해 그녀의 두 오빠에게 쓸 게 뻔하니까.부모, 형제에게도 돈을 아끼는 그녀가 어찌 주형인의 가족에게 달갑게 돈을 쓰겠는가.“난 아직 오빠랑 결혼하지 않아서 주씨 집안의 며느리가 아니에요.”서현주는 시댁을 위해 설 명절 선물을 사드리고 싶지 않아 주형인과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고 선을 그었다.하예진은 주형인을 힐긋 쳐다보며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을 지었다.“애초에 우리가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매년 설마다 당신 부모와 누나에게 두둑한 선물을 준비했었지. 그때마다 당
이에 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듣자 하니 두 사람 회사 일이 순탄치 않다던데 조만간 실업하게 될 판에 월급 카드를 바치면 뭐해? 빈껍데기일 뿐인데 자랑할 가치가 있나? 난 저 인간과 이혼 전에 더치페이한 건 사실이지만 이혼할 때 내게 2억 원을 나눠줬어. 저 인간 해고돼도 우리 두 모자에게 아무런 영향을 못 끼쳐.”서현주는 말을 잇지 못했다.주형인이 미간을 찌푸리며 그녀에게 쏘아붙였다.“누가 우릴 해고해? 우리 둘 다 회사에서 엄청 중용해.”하예정이 말을 이었다.“그쪽 엄마가 말했어요. 하루가 멀다 하게 우리 언니를 찾아와서 그쪽이 여우 년에게 홀렸다고 하소연하면서 서현주는 집안 말아먹는 년이라고 얼마나 분풀이를 하시는지. 그쪽이 힘들게 번 돈도 헤프게 써대고 게다가 서현주 씨 부모가 딸을 시집보내는 게 아니라 아예 팔아치우는 거라며 온 가족이 인간쓰레기라고 맹비난했어요.”서현주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주형인도 서현주가 요구한 예물 액수가 너무 높아 한순간 말을 잇지 못했다.그의 현재 재력으로 서현주가 원하는 금액을 충분히 줄 수 있지만 액수가 너무 크다 보니 썩 주고 싶지 않았다.게다가 집안 인테리어까지 직접 해야 하고 결혼식도 치러야 하니 예식장 비용이며 뷔페 비용까지 돈 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이 와중에 서씨 집안에 예물로 1억 3천이나 주는 건 실로 아까울 따름이었다.김은희의 말처럼 1억 3천이면 선녀라도 얻겠다는데 서현주가 과연 선녀일까?그들은 또 서현주가 성품이 덜됐다고 비난했다. 서현주는 애초에 주형인이 가정이 있고 아들이 있다는 걸 다 알면서도 그를 유혹하려 했으니 말이다. 아무리 주형인이 먼저 그녀를 좋아했다고 하지만 손뼉도 마주쳐야 박수 소리가 난다.서현주가 그에게 사심이 없었다면 진작 사표를 내고 그를 멀리 떠나갔을 것이다.김은희는 주형인에게 서현주가 천한 년이라고 욕했다. 아무리 예쁘게 생겼어도 천한 건 바뀔 수 없으니 하예진과 절대 비할 바가 못 된다고 했다.“언니, 나 아직 사야 할 물건이 너무 많아.
“엄마가 말만 모질게 하시는 걸 당신도 잘 알잖아. 꼭 어른한테 따져야만겠어? 그리고 예물에 관한 일도 솔직히 말해서 나도 너희 집사람들이 너무 많이 요구한다고 생각해. 내가 1억 넘게 준 예물을 혼수로 가져오면 모를까... 절반이라도 혼수에 보탠다면 소원이 없겠어. 그런데 너희 부모님들이 뭐라 그랬어? 혼수는 스쿠터랑 이불 몇 개뿐이라잖아. 그게 얼마나 한다고, 기껏해야 200만 원도 안되겠다. 너희 부모님이 오신 날, 두 분이 사적으로 하신 얘기를 내가 몰래 들었어. 예물로 1억 3천 가까이 주면 그중 1억을 네 두 오빠가 반씩 나누어 가진다며? 시골에 있는 집을 인테리어하고 남은 돈으로 자가용 차까지 산다고 했지. 남은 1200만 원은 너희 부모님이 쓰실 거래. 네 혼수로 마련한 돈은 고작 120만 원이랬어.”주형인은 그 당시 서현주의 부모가 1억 3천 가까운 예물을 어떻게 쓸지 의논하는 걸 들을 때 화가 나서 사색이 되었다.그는 총재산 4억 가운데 2억 너머 하예진에게 나눠줬고 남은 1억 몇천만 원에 요즘 받은 리베이트와 공급업체에 몰래 받은 뇌물까지 더해 재산이 2억 가까이 되는 건 사실이다.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서현주가 막무가내로 제안한 조건을 들어줄 순 없다.서현주도 내심 부모님이 지나쳤다고 생각했다.예물은 그녀에게 주는 돈인데 정작 부모님은 두 오빠의 집 인테리어 비용과 자차 마련에 쓰려고 한다. 그녀를 위해 준비한 혼수는 이불 몇 개와 스쿠터 한 대였다. 서현주는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평소에는 온 가족이 그녀를 무척 아끼는 것 같았지만 결혼을 앞두니 본모습이 고스란히 드러났다.말로만 딸을 사랑한다고 할 뿐 그녀를 이용해 두 아들을 도와 삶의 질을 올려주려고 했다.다만 주형인이 원망을 늘려놓으니 그녀는 또 마지못해 제 부모를 옹호해야 했다.“우리 부모님은 날 힘들게 키우고 학교까지 보내느라 적잖은 돈을 썼어요. 인제 와서 예물로 부모님이 키워준 은혜에 보답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에요? 돈은 부모님께 드릴 테니 어떻게 쓰는지는 그분들이
주형인이 계속 말을 이었다.“집문서에도 네 이름 추가할게. 이 집 네 몫도 있어. 인테리어 잘하면 우리가 누리는 거잖아. 그 돈 네 오빠들 주면 집 예쁘게 꾸며서 본인 아내들과 누리는 것밖에 안 된다니까.”서현주는 속으로 주형인의 말에 공감했지만 끝까지 시치미뗐다.“예물 비용을 1억 3천 가까이에서 3760만 원으로 깎는 게 어디 있어요? 오빠는 날 헐값에 아내로 들일 생각이었어요? 처음엔 꿀 발린 말로 날 어르고 달래면서 부잣집 사모님들의 삶을 살 수 있게 해준다더니 이게 뭐냐고요?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약속해놓고 예물이 고작 3760만 원이라고요? 이게 바로 오빠가 말한 성대한 결혼 약속이었어요?”주형인이 참지 못하고 말을 내뱉었다.“관성에서 대부분 잘 산다는 사람들도 결혼식 예물을 몇백만 원밖에 안 해. 몇십만 원 하는 집안도 대다수야. 관성 사람들은 딸을 시집보낼 때 오롯이 딸의 행복만 바라. 돈 같은 건 절대 노리지 않는다고, 딸과 사위가 결혼 후에 잘 사는 거야말로 최고의 행복 아니겠어?”관성 시골 출신의 하예진이 주형인에게 시집갈 때 하씨 집안에서 예물로 6000만 원을 요구했는데 하예진이 앞장서서 주형인을 말렸다. 하씨 집안 사람들은 예물을 받을 자격이 없다면서 주형인더러 돈을 주지 말라고 했다.그런데 서현주의 가족들은 예물로 1억3천 가까이 요구하고 있으니 거의 딸을 팔아치우는 격이다.“우리 마을에서 어느 집 딸이 시집갈 때 여자 쪽에서 입을 열기도 전에 신랑이 선뜻 현찰로 수천만 원의 예물을 건넸어요. 게다가 집 한 채에 2억 원 대의 고급 외제 차까지 선물했다니까요.”아마 그 집에서 딸을 너무 성대하게 시집보낸 게 탈인 듯싶다. 서현주의 가족은 주형인의 수입도 높고 도시에 집도 있으며 부모님이 맞벌이 부부라 정년퇴직하여 퇴직금도 두둑하게 받았을 터라 집안 조건이 좋다고 생각하여 예물을 더 많이 요구한다.서현주도 성대하게 시집보내면 후에 고향에 돌아가도 위상이 높을 것이다.주형인이 되물었다.“그분은 재벌 2세에게 시
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제부는 원래 좋은 남자야. 주형인 같은 인간들과 비교하지도 마.”그녀는 쇼핑카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카트가 꽉 찼는데 더 사려고? 일단 이 물건들 먼저 집에 가져가고 더 모자란 거 있으면 다시 와서 살까?”너무 많이 사면 두 자매가 집까지 올려가는 것도 무리이다.숙희 아주머니는 하예정이 구정 휴가를 내준 덕에 설 쇠러 본가로 내려갔다.숙희 아주머니는 이곳에 온 뒤로 그녀들을 적잖게 도와줬다. 하예정이 아주머니께 보너스로 돈 봉투를 두둑하게 드렸고 하예진도 설을 잘 보내시라며 돈 봉투를 드렸다.전태윤까지 보너스 상금과 설 용돈까지 드리다 보니 아주머니는 싱글벙글 웃으며 집에 돌아가 즐거운 설 연휴를 보내기로 했다.도련님을 위하는 일이라면 절대 홀시할 수 없다.사모님과 예진 씨도 모두 착한 분들이시다.숙희 아주머니뿐만 아니라 지금 이 순간까지 전태윤의 옆을 지키는 강일구도 보너스가 두 배로 늘어났고 연말 상여금과 설 용돈까지 두둑이 챙길 수 있다.그는 도련님이 중용하는 경호원이고 사모님에게도 무한 신뢰를 받는 사람이니까.“그래.”하예정은 다 고른 주전부리를 카트에 놓고 언니와 함께 계산대로 걸어갔다.아쉽게도 두 자매는 계산할 때 또다시 쓰레기 남녀와 마주쳤는데 다행히 두 자매가 그들 앞에 줄을 섰다.주형인은 서현주에게 감정이 있다 보니 그녀의 협박을 받고 되돌아가 겨우 달랜 후에야 카트에 설 명절 선물을 가득 채우고 계산대로 갔다. 주형인 가족과 서현주 가족을 위해 물건을 한가득 담자 서현주도 화가 풀려 더는 그와 투정 부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또다시 화해하고 처음처럼 사이가 좋아졌다.하예진 자매가 계산대에 물건을 올리고 종업원이 하나씩 바코드를 찍으니 화면 속 금액이 점점 더 불어났다. 주형인은 화면을 뚫어지라 쳐다보며 하예진이 돈을 내는 게 아니라고 해도 한때 처제였던 하예정이 돈을 너무 헤프게 쓴다고 생각했다.‘무슨 물건을 저렇게 많이 사?’전에 주형인의 집에서 지낼 때 하예정은 집안일을 거의
소지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참, 제가 두 박스의 물건을 배송했는데 받으셨나요? 제가 배송 기록을 확인해보니 오늘 받아보실 수 있다고 하던데.”소지훈은 관성의 특산품을 많이 샀다. 그중 정수호 부부의 영양제도 들어있었다.물론 수신자는 정윤하의 이름으로 적어놓았다.정윤하는 그의 운명적인 여신이기 때문에 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그리고 먼 곳에서 왔는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다.정윤하가 대답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 오후에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택배가 있으면 아마 집에 배송될 거에요. 우리 엄마가 종일 집에 있으니까 택배를 받으실 거예요. 지훈 씨, 무슨 물건을 보냈어요? 너무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관성의 특산품들이에요.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가서 준비한 특산품이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제가 좀 더 사서 이틀 전에 택배로 보냈거든요. 그럼 오늘 제가 도착하면 택배도 도착할 수 있잖아요.”“저의 부모님은 윤하 씨가 제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저를 호되게 꾸지람하셨어요. 감사할 줄 모른다면서요. 은혜는 항상 몇 배로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요.”정윤하도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저에게 보답했는걸요. 지난번에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시합에 갔을 때 제가 돈 한 푼도 낼 필요 없이 우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나가서 재미있는 것도 놀게 해줬잖아요. 그리고 특별히 저를 전 대표님 결혼식에 데려간 것도 모두 저에 대한 보답이세요.”“그래도 부족하죠. 보답은 많이 해야 해요.”몸으로 보답을 허락해 주면 더 좋지만 말이다.“지훈 씨 부모님들 너무 놓은 분들이시네요.”정윤하는 소균성 부부를 만났는데 너무 열정적이고 자상한 느낌을 받아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소균성 부부의 소질은 매우 좋고 말씨도 매우 부드러웠다. 최민주가 자신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본 정윤하는 최민주가 그녀를
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아저씨 싸움 실력이 너무 좋기 때문에 경호원이 필요 없다고 봐요. 그날 밤은 제가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제가 그날 밤 아저씨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아저씨 실력으로도 충분히 그 나쁜 사람들은 해결하셨을 거예요. 제가 너무 빨리 참견해서 오히려 아저씨 실력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진 거죠. 저도 아저씨의 실력을 볼 기회가 줄어든 거죠.”그러자 소지훈은 재빨리 말했다.“제가 무술 할 줄 아는 건 맞지만 윤하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아요. 그날 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저 혼자서는 분명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윤하 씨만큼 대단하지 않아요.”“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지만 저는 거의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가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외출하는 편이죠. 하지만 제가 고용한 경호원들은 몸집이 커서 다른 사람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정도뿐이지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단지 몇몇 건달들을 상대할 수 있을 실력이에요.”“만약 전업적인 사람들을 만난다면 전혀 상대되지 않을걸요. 게다가 지난번과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는 윤하 씨와 같은 진정한 고수가 필요해요.”소지훈은 자기 경호원들이 쓸모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고 있었다.어차피 소지훈의 부하들이 곁에 없기 때문에 그가 뭐라고 해도 부하들이 변명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모두 소지훈의 눈앞에 있다고 해도 감히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소지훈은 운명적인 여신에게 구애하기 위해 그의 경호원들을 정윤하에게 매를 맞고 경찰서까지 끌려가게 했다.그들은 지금은 회복해서 퇴원했지만, 앞으로는 정윤하가 알아볼까 봐 그녀를 피해 다녀야 했다.정윤하가 말했다.“관성의 안전 상황은 이미 매우 좋다고 봐요. 지난번처럼 사고는 조사해 보셨어요? 누군가 일부러 아저씨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린 것 같아요.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평소에 경호원이 필요 없는데 경호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소지훈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어르신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잔소리도 많아요. 아버지들도 다 똑같으니 저의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저의 아버지를 보면 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실까 봐 쥐가 고양이를 만난 듯 숨어다녀요.”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소지훈은 차를 운전하려고 했는데 정윤하가 직접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하 씨가 운전하려고요?”“네, 제가 운전할게요. 아저씨가 길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제 차가 평범한 차라서 아저씨가 차를 몰 때 습관이 안 될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차 기술도 좋아서 괜찮을 거예요.”소지훈은 차를 에돌아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했다.“저는 어떠한 차도 다 몰아봤어요. 예전에 돈을 벌지 못했을 때 자전거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도 다 타봤어요. 지금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저의 체면 때문에 몰고 다니는 것뿐이죠.”소지훈은 저번에 정윤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차가 아직도 차 대출을 갚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그는 진짜 신분을 말했기 때문에 더는 정윤하를 속이기 어려웠다.정윤하는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는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니 외출할 때는 반드시 좋은 차를 운전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와 오빠도 외출할 때 좋은 차를 운전하시거든요. 그러나 평소에는 2000만 원대 되는 차를 몰고 다니세요. 제가 지금 운전하고 있는 이 차는 2400만 원밖에 안 돼요. 물론 제 지갑이 넉넉하지 않아 더 비싼 차를 구매할 수 없지만요.”정윤하의 적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합 도장에서 몇 년 동안 일하여 번 돈으로 차를 샀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지난번에 학생들을 데리고 관성에 가서 무술 대회에 참가했을 때 정윤하는 사비를 털어 관성 호텔에 주숙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작은 선물도 많이 샀다.하여 얼마 되지 않은 적금도 거의 다 써버렸다.정윤하는 지금 다시 저축하여 몇 년 후에 집을 한 채 사서 대출하
정윤하가 웃으며 캐리어를 들어주려고 하자 소지훈은 그녀가 도와주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내 캐리어에는 옷 몇 벌만 들어있어서 무겁지 않아요. 도와줄 필요 없어요. 게다가 저도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어떻게 윤하 씨를 제 캐리어를 들게 할 수 있겠어요?”“멀리서 오셨으니 손님이시잖아요. 소시지 두 개도 남겼는데 아저씨께서 매운 거 싫어하시니 제가 안 매운 거 남겨놨어요. 제 소시지는 매운 고춧가루를 넣었는데 엄청 매워요.”소지훈은 그녀가 건네준 소시지 두 개가 들어있는 작은 봉지를 건네받아 하나를 꺼내 한입 물었다.정윤하는 그녀가 산 다른 간식들을 모두 소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소지훈이 그 봉지를 받을 때 정윤하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 아직 다 먹지 않은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소지훈은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소지훈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정윤하는 그를 대신해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의 캐리어를 끌도록 놔두었다.정윤하는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걸었고 소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그렇게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정윤하가 가지고 있던 소시지를 다 먹자 소지훈이 또 다른 간식을 건네주었다.주차장으로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그 간식들을 다 먹었다.정윤하는 입에 기름기를 가득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지훈을 도와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다.“정말 잘 먹었어요. 평소에는 우리 엄마가 밖에서 파는 간식 같은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거든요. 위생적이지 못하다면서요. 아주 가끔 먹어도 자꾸 잔소리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간식들이 정말 맛있거든요.”“가끔 한두 번은 괜찮아요. 자주 먹지 않으면 되는데. 정말로 좋아하면 식자재를 사서 직접 만들어서 드세요. 그러면 최소한 위생과 안전은 보장할 수 있잖아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제 요리 솜씨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께서 그런 간식들을 맛있게 잘하세요. 그런데 간식들을 해주기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