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여 분 후.예준성이 정자에 나타났다.“안녕하세요, 대표님.”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폐 끼쳐드려서 미안해요.”전태윤은 오늘 밤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뻔뻔함도 무릅쓰고 예준성과 약속을 잡았다.예준성이 웃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전 대표님. 어서 앉으세요.”그는 전태윤을 자리에 앉힌 후 동생에게 분부해 집사더러 디저트와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저한테 어떤 점을 묻고 싶으셨죠? 편하게 말씀하세요.”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에 난처한 기운이 살짝 감돌았다.“예 대표님, 실은 제 개인적인 문제로 대표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저나 예 대표님이나 모두 초고속 결혼을 했잖아요.”예준성은 아직 그가 초고속 결혼한 사실을 모른다.예준하가 집에 돌아와 얘기하지 않았으니까.전태윤의 말을 들은 예준성은 아주 의외라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전태윤처럼 차갑고 냉랭한 남자도 초고속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란 듯싶었다.“초고속 결혼은 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부인분은 사랑하게 되셨나요?”예준성의 마음속에 이미 답안이 있었다.전태윤이 만약 마음이 안 움직였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굳이 그의 신혼 둘째 날에 찾아올 일도 없다.“초고속 결혼한 지는 3개월 됐어요. 아내가 저희 할머니를 구해줘서 생명의 은인이 됐어요. 제 가족들은 아내에게 몹시 감격스러워했고 감사의 뜻도 표했어요. 저희 할머니가 아내를 너무 좋아하세요. 아마 우리 세대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우리 집 상황도 예 대표님네 집안과 거의 비슷해요. 양기가 차 넘친다고 할 수 있죠. 전에는 아내를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할머니를 구해주니 매우 고마웠어요. 다만 얼마 안 지나 사태의 흐름이 변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늘 제 앞에서 아내의 좋은 말만 하는 거예요. 우리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전태윤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할머니가 종일 잔소리하시던 장면을 되새기며 계속 말을 이었다.“저희 아홉 형
“초고속 결혼한 뒤 두 분은 어떻게 지내셨어요?”예준성이 오지랖 넓게 물었다.그와 모연정도 초고속 결혼을 했지만 둘은 결혼 전에 이미 11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옛친구나 다름없다.게다가 예준성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찜해뒀는데 모연정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티 내지 않으려고 제 감정을 꾹 눌렀다. 그러다가 어느덧 모연정이 가족들에게 모질게 결혼을 재촉받아 집에도 감히 돌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그녀는 마지못해 예준성을 남자친구로 속이며 함께 집에 갔다.예준성은 이 기회를 포착하고 모연정을 속여 계약 결혼을 진짜로 만들어버렸다.그와 모연정은 오래된 지인의 초고속 결혼이다 보니 전태윤과 하예정처럼 아예 낯선 이의 결혼과는 별개였다.하여 예준성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결혼 전에 할머니께 분명히 말씀해뒀어요. 결혼하는 건 되지만 그 뒤로 제가 어떻게 아내를 대하든 그건 오롯이 제 일이니 할머니는 일절 참견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일단 제 정체를 숨기고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 아내의 성품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자가 맞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맨 처음 서로를 알아갈 땐... 우리 둘 다 적응하지 못했어요.”초고속 결혼한 초기에 전태윤은 자꾸만 본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하예정도 남편이 있다는 게 적응되지 않았다.둘은 사소한 마찰도 생겼지만 소통하며 해결해나갔다.“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태윤 씨는 서서히 아내분의 존재에 익숙해져갔고 호감도 생기셨죠?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라니까요.”사람들은 늘 정들어버리면 서로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전태윤이 머리를 끄덕였다.“우린 지금 감정이 무르익어가는 단계에요. 인정해요, 저는 이미 아내를 사랑하게 됐어요.”애초에 절대 아내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다던 그는 본인이 했던 말을 전부 번복하고 있다.“제가 고민인 건 이젠 저의 진짜 신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 전부 털어놓으면 아내가 홧김
“예 대표님은 유경험자다 보니 조언을 구하고 싶어요. 애초에 대표님은 어떻게 부인분께 신분을 밝혔어요? 부인분은 대표님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후 무슨 반응이었어요? 대표님은 또 어떻게 처사하셨기에 부인분이 온전히 대표님을 받아들이고 외부의 간섭을 전혀 안 받으신 거죠?”예준성은 전태윤이 무엇을 고민하는지 드디어 알아챘다.그는 아내에게 진짜 신분을 밝혔다가 아내가 여론의 막중한 타격을 입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게다가 성소현의 문제까지, 이는 실로 까다로운 일이다.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성소현이 질투심에 눈이 멀어 자매 사이가 틀어지고 서로 등지게 될 것이다.그렇게 되면 전태윤과 하예정의 감정에도 영향을 준다.예준성은 찻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후 말했다.“저는 태윤 씨랑 상황이 조금 달라요. 물론 애초에 제가 초고속 결혼을 계획했지만 저는 이미 아내를 11년 동안 짝사랑해서 기회를 포착하자마자 아내를 속이고 혼인신고를 마쳤죠. 원칙적으로 저희도 초고속 결혼인 건 맞지만 서로 11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옛 지인의 결혼이라고 할 수 있죠. 연정이는 그때 저에 대해 잘 몰랐지만 저는 그 누구보다 아내를 잘 알았고 의도가 너무 확고했어요. 태윤 씨네 부부야말로 진정한 낯선 이의 초고속 결혼이죠. 아무런 감정 기초가 없고 결혼 초기에 태윤 씨는 아내분께 경계심을 가득 세웠겠네요. 뭐 설마 계약서까지 쓴 건 아니죠?”전태윤의 얼굴에 난감한 기색이 스쳤다.역시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답게 계약서를 쓴 일까지 알아채다니...그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제가 아내를 오해했고 긴 시간 경계하며 사느라 계약서를 쓴 것도 사실이에요. 내용은 전부 아내에 대한 구속이었고요... 아내에게 유리한 조건은 단 하나, 이 결혼 관계가 해지되면 지금 사는 집과 차를 청춘 배상금으로 아내에게 주겠다고 약속했어요.”예준성이 물었다.“그 계약서 아직도 갖고 계세요? 저랑 연정이도 처음에 계약서를 작성했는데 제가 폐기 처리했어요. 얼마나 힘겹게 얻은 아내인데 제가 뭣
“솔직하게 털어놓으시는 게 아내분이 딴 사람에게 듣는 것보단 나을 겁니다.”예준성은 감회가 깊었다.애초에 그가 먼저 모연정에게 제 신분을 고백했다면 모연정도 그렇게까지 격렬하게 반응하진 않았을 것이다.예준성이 그녀를 완전히 신뢰하기에 솔직하게 털어놓는 거라고 믿었을 것이다.하지만 선우가 그녀 앞에서 폭로해버렸으니 순간 그녀는 예준성이 자신을 믿지 않고 경계한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장모님도 두 사람이 현실적으로 차이가 너무 크다면서 모연정이 예씨 일가에 시집가서 괴로움을 받을까 봐 이 결혼을 극구 반대했다.“태윤 씨가 먼저 말하는 건 아내분을 신뢰한다는 걸 의미해요. 다른 사람에게 들으면 태윤 씨 아내분은 더 화날 거예요. 온 세상이 다 아는 걸 본인만 모르니 태윤 씨에게 감쪽같이 속았다고 여기실 거예요. 태윤 씨가 본인을 전혀 신뢰하지도 않고 경계만 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아내분이 투정 부린다고 얼마나 가겠어요?”전태윤은 하예정이 한성격한다는 걸 떠올리며 살짝 겁에 질린 듯 대답했다.“제가 떠보듯이 물어봤는데 어떤 상황에서 날 떠나겠냐고 하니 바람피우고, 가정폭력을 행사하고, 수없이 거짓말을 해대면 그땐 이혼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처음엔 딱 한 번 거짓말했는데 나중엔 그 거짓말을 덮으려고 수없이 많은 거짓말로 둘러댔어요. 저는 예정이를 수없이 속였어요. 준성 씨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도 출장 간다고 속였어요...”예준성이 말했다.“아무튼 저는 태윤 씨가 먼저 이 모든 걸 솔직하게 고백하는 게 낫다고 봐요. 태윤 씨 아내분이 무슨 반응을 할지는 저도 가늠할 수 없지만 말이에요. 우리가 초고속 결혼한 건 맞지만 사실은 의미가 다르잖아요. 태윤 씨, 모 아니면 도라고 눈 딱 감고 부딪히세요.”전태윤이 침묵했다.“돌아가서 곰곰이 생각해보시고 기회를 봐가며 좋은 날을 골라서 남다른 방법으로 고백해보아요.”전태윤은 고민하다가 예준성에게 감사의 뜻을 표했다.“조언 너무 고마워요, 준성 씨. 곰곰이 생각해볼게요.”예준성도 가볍게 웃었다.“사람 마음은
셋째 예준영과 다섯째 예준하는 현재 어르신들이 가장 애태우는 대상이다.한 명은 셋째이고 다른 한 명은 다섯째이지만 배다른 형제라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난다.보통 사람들과 비하면 예준하도 노총각 행렬에 들어설 지경이다. 그와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들은 어느덧 두 아이의 아빠이기도 하니까.전태윤이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저도 준하 씨를 위해 소개팅을 해주고 싶은데 알고 있는 젊은 여성이 워낙 적어서 도움이 못 되네요. 아내한테 한번 말해볼게요. 아니면 할머니께 말씀드려도 돼요. 할머니는 아직도 제 동생들을 위해 선 자리를 알아보고 있으니 준하 씨에게 어울리는 여자분 한 명 소개해달라고 부탁해볼게요!”예준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전씨 일가의 어르신을 뵌 적이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젊은 세대와 거리낌 없이 지내고 그의 할머니보다 생각이 많이 깨어있다고 하신다.전태윤이 하예정과 초고속 결혼한 것도 전부 어르신의 공로이다.“그럼 할머님께 꼭 좀 부탁드릴게요.”예준성도 전태윤에게 소개팅을 부탁하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전태윤과 남정윤은 같은 부류의 남자이다. 그들은 젊은 여자와 가까이하는 걸 꺼리다 보니 본인의 인생 대사를 다른 사람이 신경 써줘야 한다.전태윤의 할머니가 도와주시면 성공 확률이 매우 높을 것이다. 어쨌거나 할머니는 연장자이시고 사람 보는 안목이 뛰어나시니 예준하에게 좋은 짝을 찾아줄 수 있을 듯싶었다.“저희 할머니가 흔쾌히 찾아주실 겁니다.”어르신은 선 자리를 주선하는 일을 가장 좋아하신다.예준하가 말했다.“형, 내 의견 따윈 묻지도 않아?”“나중에 소개팅 약속 잡거든 그때 다시 알려줄게.”예준하는 말문이 턱 막혔다.예준성이 결혼하기 전에는 온 가족이 결혼을 다그칠 때 맏형으로서 동생들을 막아주었다. 어차피 큰형도 미혼이니 아래에 있는 동생들은 마음껏 지내도 된다.다만 큰형이 결혼하고 나니 동생들을 막아주지 않을뿐더러 어른들과 함께 그들의 결혼을 다그치고 있었다.‘할 수 있으면 준영 형을 다그치
예진 리조트에서 나온 후 전태윤은 A시에 더 머무르지 않고 당일로 비행기를 타고 관성에 돌아갔다. 돌아가기 전, 그는 하예정에게 미리 알리지 않았는데 그녀에게 서프라이즈를 해줄 생각이었다.돌아가는 길에서 그는 예준성의 말을 되새겼다.예준성은 그에게 아내 앞에서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제안했다.성소현의 기분은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성소현이 전태윤을 사랑하는 건 그녀의 일일 뿐 전태윤이 먼저 다가가 유혹한 것도 아니니까.만약 성소현의 기분을 고려하며 성기현이 말했던 것처럼 성소현이 그에 대한 감정을 모두 내려놓은 후에야 하예정에게 진짜 신분을 털어놓는다면, 그게 대체 언제가 된단 말인가?게다가 전태윤은 애초에 성소현을 마음에 두지도 않았는데 왜 성기현의 말을 따라야 하는가?그리고 또 한 가지, 하예정과 성소현이 이 일로 사이가 틀어질지 걱정하는 건 아무 의미 없다. 언젠가는 마주해야 할 일이니까.하예정의 기분이 좋을 때, 아주 특별한 날을 골라서 이색적인 방식으로 그녀에게 정체를 알리리라 다짐했다...“일구야.”전태윤이 낮은 목소리로 강일구를 불렀다.“네, 도련님.”강일구가 깍듯이 대답하며 도련님의 지시를 기다렸다.“넌 어떤 날이 특별한 날인 것 같아?”강일구의 얼굴에 물음표가 생겨났다.특별한 날?어떻게 특별해야 하는 걸까?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떠보듯이 물었다.“실례지만 도련님, 어떤 방면으로 특별한 날 말씀이십니까?”“그게 그러니까 연인에게 있어서 어떤 날이 특별한 날이야? 쉽게 기억할 수도 있고 상대방을 즐겁게 해줄 수도 있는 날 말이야.”강일구는 도련님이 지금 사모님 생각을 하신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그거야 당연히 결혼기념일이거나 상대방의 생일 혹은 발렌타인데이죠. 연인들에게 모두 뜻깊은 날이잖아요.”강일구는 곧바로 한마디 덧붙였다.“제가 아직 여자친구가 없어서 경험이 없는지라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네요.”전태윤이 그를 힐긋 노려봤다.“지금 나보고 여자친구를 소개해달라는 거야?”강일구가 황급
강일구가 일깨워줬다.그도 그럴 것이 도련님은 아예 사모님이 안중에 없어 사모님의 성함조차 그들이 먼저 기억하고 때때로 도련님께 알려준다.그런데 결혼기념일을 기억할 리가 있겠는가?그는 도련님이 전혀 로맨틱한 남자가 아니라고 여겼다.“확실해? 10월 10일 맞아?”“네, 정확히 10월 10일입니다. 제가 기억해요.”전태윤은 애써 기억을 되짚으며 머리를 끄덕였다.“가서 혼인신고서 보면 알아.”강일구는 도련님이 올 때보다 기분이 훨씬 좋은 것 같아 과감하게 한마디 더 물었다.“도련님, 혹시 사모님께 서프라이즈 해주시려고요?”“그럼 너한테 해줄까?”강일구가 대답했다.“만약 그래 주신다면 제게 남은 건 쇼킹 그 자체일 뿐입니다.”전태윤이 노려보자 강일구는 감히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하예정은 전태윤이 돌아온다는 소식을 못 받았다. 그녀는 한창 언니와 함께 마트 쇼핑을 하며 설 연휴를 보낼 주전부리를 골랐다.전태윤은 설에 그녀를 데리고 본가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그녀는 시댁에 가져갈 설 명절 선물도 눈여겨보았다.어르신들께 드릴 명절 선물이니까 잘 골라야 한다.“다들 뭘 좋아하시는지 모르겠어. 그냥 전에 언니가 인간쓰레기 주형인네 부모한테 준비했던 거로 해드리면 되겠지? 그리고 용돈도 푸짐하게 드리면 될 것 같아.”하예정은 언니와 십여 년을 함께 지내며 언니와 주형인이 서로 알아가고 사랑에 빠지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것까지 전부 지켜봤다. 하여 언니가 결혼 후 시댁에 어떤 명절 선물을 준비해갔던지 잘 알고 있다.하예진이 대답했다.“그래도 돼.”그녀는 왕년에 주형인 부모와 주서인에게 푸짐한 설 명절 선물을 드렸었다.주형인은 그녀에게 인색해도 제 가족한테는 큰손이 따로 없었다.하예진이 선물을 적게 준비했다고 바로 욕설을 퍼붓는 인간이 주형인이다.“아빠, 아빠.”쇼핑카트에 앉아 있던 주우빈이 갑자기 신이 나서 소리쳤다.“엄마, 아빠.”주우빈은 주형인을 부르더니 고개 돌려 하예진을 바라보며 작은 손으로 제 아빠를 가리켰다.주형인은 우
주형인의 말을 들은 서현주가 대답했다.“누가 아들 안지 말래요? 형인 씨 혼자 가지 말라고요. 그렇게 가고 싶으면 나랑 같이 가요.”그녀는 말하면서 다정하게 주형인의 팔짱을 꼈다.주형인은 실소를 터트리며 그녀의 이마를 살짝 내리쳤다.“으이그, 질투쟁이. 난 예진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이혼한 거야. 엄마랑 누나가 함부로 내뱉는 말 곧이곧대로 듣지 마. 난 절대 예진이랑 재결합 안 해.”엄마와 누나는 하예진에게 돈 많은 이모가 생기니 왠지 주형인의 미래에 큰 도움을 줄 것만 같았다.주형인도 유진 테크를 계속 다닐 수 없다는 걸 인정하지만 사장이 먼저 그를 해고하고 복리를 정지하기 전까지 절대 나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게다가 리베이트 액수를 더 늘려 회사를 떠나기 전에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었다.서현주와 결혼식을 올리려면 엄청난 돈이 필요하니까.그리고 하예진에게 부자 이모가 생겼다고는 하지만 그녀의 이모는 아직 그녀에게 큰 도움을 주진 않았다. 하예진은 현재 가게를 임대하여 토스트 가게를 운영할 계획인데 여태껏 쓴 돈은 두 사람이 이혼하기 전, 주형인이 나눠준 돈이다.하예진의 이모는 일전 한 푼 도와주지 않았다.친척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어디까지나 친척일 뿐 그녀에게 돈을 주지는 않는다.부모도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식에게 물려주지 않으면 그 자식은 빈털터리일 뿐이다.결국 본인이 돈을 벌어야 한다.하예정 자매는 서현주가 다정하게 주형인의 팔짱을 끼고, 주형인이 카트를 밀면서 이리로 오는 걸 보더니 실소가 새어 나왔다.서현주는 지금 주권을 선언하는 것일까?주형인 같은 인간쓰레기는 서현주만이 보물로 여길 것이다.“아빠.”주우빈은 아빠를 보자 신이 나서 또 큰소리로 외쳤다.하예진은 살짝 이해되지 않았다. 이혼하기 전까지 주우빈은 주형인에게 지금처럼 열정적이지 않았는데 이혼한 뒤로 아빠를 만날 때마다 신이 나서 죽을 지경이다.만남이 드물어지니 아빠가 문득 보고 싶은 것일까?주형인은 자신의 쇼핑카트가 하예진 자매의 쇼핑카트와 거의 마주칠 뻔
소지훈이 웃으면서 말했다.“언제든지 연락해주세요. 참, 제가 두 박스의 물건을 배송했는데 받으셨나요? 제가 배송 기록을 확인해보니 오늘 받아보실 수 있다고 하던데.”소지훈은 관성의 특산품을 많이 샀다. 그중 정수호 부부의 영양제도 들어있었다.물론 수신자는 정윤하의 이름으로 적어놓았다.정윤하는 그의 운명적인 여신이기 때문에 정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잘 보여야 했다.그리고 먼 곳에서 왔는데 빈손으로 올 수는 없었다.정윤하가 대답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 오후에 공항으로 왔기 때문에 택배가 있으면 아마 집에 배송될 거에요. 우리 엄마가 종일 집에 있으니까 택배를 받으실 거예요. 지훈 씨, 무슨 물건을 보냈어요? 너무 돈을 낭비하지 마세요.”“관성의 특산품들이에요. 지난번에 너무 급하게 가서 준비한 특산품이 많지 않았어요. 이번에 제가 좀 더 사서 이틀 전에 택배로 보냈거든요. 그럼 오늘 제가 도착하면 택배도 도착할 수 있잖아요.”“저의 부모님은 윤하 씨가 제 목숨을 구해줬다는 것을 알고도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저를 호되게 꾸지람하셨어요. 감사할 줄 모른다면서요. 은혜는 항상 몇 배로 갚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어요. 제가 감사할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 아니거든요.”정윤하도 웃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나쁜 사람이 아니에요. 이미 저에게 보답했는걸요. 지난번에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시합에 갔을 때 제가 돈 한 푼도 낼 필요 없이 우리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시고 나가서 재미있는 것도 놀게 해줬잖아요. 그리고 특별히 저를 전 대표님 결혼식에 데려간 것도 모두 저에 대한 보답이세요.”“그래도 부족하죠. 보답은 많이 해야 해요.”몸으로 보답을 허락해 주면 더 좋지만 말이다.“지훈 씨 부모님들 너무 놓은 분들이시네요.”정윤하는 소균성 부부를 만났는데 너무 열정적이고 자상한 느낌을 받아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 매우 좋았다.소균성 부부의 소질은 매우 좋고 말씨도 매우 부드러웠다. 최민주가 자신의 손을 잡고 빙그레 웃는 모습을 본 정윤하는 최민주가 그녀를
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아저씨 싸움 실력이 너무 좋기 때문에 경호원이 필요 없다고 봐요. 그날 밤은 제가 너무 빨리 움직였어요. 제가 그날 밤 아저씨를 구하지 않았더라도 아저씨 실력으로도 충분히 그 나쁜 사람들은 해결하셨을 거예요. 제가 너무 빨리 참견해서 오히려 아저씨 실력이 드러날 기회가 없어진 거죠. 저도 아저씨의 실력을 볼 기회가 줄어든 거죠.”그러자 소지훈은 재빨리 말했다.“제가 무술 할 줄 아는 건 맞지만 윤하 씨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하지 않아요. 그날 밤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들어 저 혼자서는 분명 그들의 상대가 되지 못했을 거에요. 제가 윤하 씨만큼 대단하지 않아요.”“우리 집에도 경호원이 있지만 저는 거의 데리고 다니지 않아요. 가끔 경호원 두 명을 데리고 외출하는 편이죠. 하지만 제가 고용한 경호원들은 몸집이 커서 다른 사람의 기세를 꺾을 수 있는 정도뿐이지 실력은 그다지 좋지 않아요. 단지 몇몇 건달들을 상대할 수 있을 실력이에요.”“만약 전업적인 사람들을 만난다면 전혀 상대되지 않을걸요. 게다가 지난번과 같은 상황을 만나게 된다면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에서는 윤하 씨와 같은 진정한 고수가 필요해요.”소지훈은 자기 경호원들이 쓸모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정말 애를 쓰고 있었다.어차피 소지훈의 부하들이 곁에 없기 때문에 그가 뭐라고 해도 부하들이 변명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그들이 모두 소지훈의 눈앞에 있다고 해도 감히 변명할 수 없을 것이다.소지훈은 운명적인 여신에게 구애하기 위해 그의 경호원들을 정윤하에게 매를 맞고 경찰서까지 끌려가게 했다.그들은 지금은 회복해서 퇴원했지만, 앞으로는 정윤하가 알아볼까 봐 그녀를 피해 다녀야 했다.정윤하가 말했다.“관성의 안전 상황은 이미 매우 좋다고 봐요. 지난번처럼 사고는 조사해 보셨어요? 누군가 일부러 아저씨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노린 것 같아요. 이런 일은 매일 일어나지 않을 거예요. 평소에 경호원이 필요 없는데 경호원을 많이 고용할 필요가
소지훈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어르신들이 다 그런 것 같아요. 저의 어머니와 아버지도 잔소리도 많아요. 아버지들도 다 똑같으니 저의 어머니는 더 말할 것도 없어요. 저는 지금도 저의 아버지를 보면 저에게 잔소리를 늘어놓으실까 봐 쥐가 고양이를 만난 듯 숨어다녀요.”두 사람이 차에 올라탔다.소지훈은 차를 운전하려고 했는데 정윤하가 직접 운전석에 앉는 모습을 보더니 그녀에게 물었다.“윤하 씨가 운전하려고요?”“네, 제가 운전할게요. 아저씨가 길도 익숙하지 않을 텐데. 제 차가 평범한 차라서 아저씨가 차를 몰 때 습관이 안 될 거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제 차 기술도 좋아서 괜찮을 거예요.”소지훈은 차를 에돌아 조수석에 타고 안전벨트를 매면서 말했다.“저는 어떠한 차도 다 몰아봤어요. 예전에 돈을 벌지 못했을 때 자전거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도 다 타봤어요. 지금 비싼 차를 몰고 다니는 것은 저의 체면 때문에 몰고 다니는 것뿐이죠.”소지훈은 저번에 정윤하에게 진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면 자신의 차가 아직도 차 대출을 갚지 못했다고 말했을 것이다.그는 진짜 신분을 말했기 때문에 더는 정윤하를 속이기 어려웠다.정윤하는 이해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아저씨는 지금 회사의 대표님이니 외출할 때는 반드시 좋은 차를 운전해야 해요. 우리 아버지와 오빠도 외출할 때 좋은 차를 운전하시거든요. 그러나 평소에는 2000만 원대 되는 차를 몰고 다니세요. 제가 지금 운전하고 있는 이 차는 2400만 원밖에 안 돼요. 물론 제 지갑이 넉넉하지 않아 더 비싼 차를 구매할 수 없지만요.”정윤하의 적금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합 도장에서 몇 년 동안 일하여 번 돈으로 차를 샀기에 얼마 남지 않았다.지난번에 학생들을 데리고 관성에 가서 무술 대회에 참가했을 때 정윤하는 사비를 털어 관성 호텔에 주숙했고 아이들을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작은 선물도 많이 샀다.하여 얼마 되지 않은 적금도 거의 다 써버렸다.정윤하는 지금 다시 저축하여 몇 년 후에 집을 한 채 사서 대출하
정윤하가 웃으며 캐리어를 들어주려고 하자 소지훈은 그녀가 도와주지 못하게 막으며 말했다.“내 캐리어에는 옷 몇 벌만 들어있어서 무겁지 않아요. 도와줄 필요 없어요. 게다가 저도 다 큰 성인 남자인데 어떻게 윤하 씨를 제 캐리어를 들게 할 수 있겠어요?”“멀리서 오셨으니 손님이시잖아요. 소시지 두 개도 남겼는데 아저씨께서 매운 거 싫어하시니 제가 안 매운 거 남겨놨어요. 제 소시지는 매운 고춧가루를 넣었는데 엄청 매워요.”소지훈은 그녀가 건네준 소시지 두 개가 들어있는 작은 봉지를 건네받아 하나를 꺼내 한입 물었다.정윤하는 그녀가 산 다른 간식들을 모두 소지훈에게 건네주었다. 소지훈이 그 봉지를 받을 때 정윤하는 한 손으로 캐리어를 당기고 다른 한 손으로 아직 다 먹지 않은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소지훈은 그녀의 아름다운 뒷모습을 보고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웃었다. 소지훈이 필요 없다고 하는데도 정윤하는 그를 대신해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의 캐리어를 끌도록 놔두었다.정윤하는 캐리어를 끌고 앞장서서 걸었고 소지훈은 그녀의 뒤를 따랐다.두 사람은 그렇게 소시지를 먹으면서 걸어갔다.정윤하가 가지고 있던 소시지를 다 먹자 소지훈이 또 다른 간식을 건네주었다.주차장으로 도착한 두 사람은 이미 그 간식들을 다 먹었다.정윤하는 입에 기름기를 가득 머금고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소지훈을 도와 캐리어를 차 트렁크에 넣으며 말했다.“정말 잘 먹었어요. 평소에는 우리 엄마가 밖에서 파는 간식 같은 것들을 먹지 못하게 하거든요. 위생적이지 못하다면서요. 아주 가끔 먹어도 자꾸 잔소리하세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간식들이 정말 맛있거든요.”“가끔 한두 번은 괜찮아요. 자주 먹지 않으면 되는데. 정말로 좋아하면 식자재를 사서 직접 만들어서 드세요. 그러면 최소한 위생과 안전은 보장할 수 있잖아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제 요리 솜씨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우리 엄마께서 그런 간식들을 맛있게 잘하세요. 그런데 간식들을 해주기
정윤하는 흔쾌히 대답했다.“좋아요. 우리 엄마한테 저녁에 밥 좀 더 하시라고 부탁할게요. 아저씨가 우리 엄마가 하신 요리를 좋아하신다는 소식을 들으면 우리 엄마가 매우 기뻐하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며 말했다.“아주머니가 만든 요리들이 정말 맛있어요.”“오늘 저녁에 많이 드세요. 아저씨, 저 먼저 운동 좀 하고 이따가 공항으로 마중하러 갈게요. 저녁에 봐요.”“그래요. 저도 이제 비행 모드로 전환해야 해요. 저녁에 봐요.”소지훈은 작별 인사를 하면서도 통화를 끊는 것을 매우 아쉬워했다. 그는 정윤하 쪽에서 전화를 끊은 후에야 휴대전화를 귓가에서 뗐다.소지훈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은 정윤하의 사진 이였다. 정윤하가 전태윤 부부의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의 사진을 몇 장 찍어 그녀에게 보내주면서 자신의 휴대전화에도 보관해 두었다. 그리고 정윤하의 사진을 그의 휴대전화 배경 화면 사진으로 설정했다.휴대전화를 켜면 정윤하를 바로 볼 수 있었다.정윤하의 안색은 환했고 미소가 밝고 청춘의 활력이 넘쳐 소지훈은 그녀를 보면 볼수록 더 좋아졌다.비행기가 관성을 떠나 연성 공항에 착륙하기까지 이미 몇 시간이나 흘렀다.비행기가 안전하게 착륙하자 소지훈은 이내 휴대전화의 비행모드를 정상상태로 돌려놓았다.그러자 그의 휴대전화에는 끊임없이 메시지가 들어오고 있었다. 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자신이 공항 출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메시지를 보냈던 것이다.소지훈은 정윤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정윤하가 바로 받았다.“아저씨, 도착했죠? 저도 방금 도착해서 공항 출구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제가 큰 종이에 글씨로 이름을 적어놓았어요. 아저씨가 나오시면 아저씨 성함이 한눈에 보이실 거예요.”소지훈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알았어요. 지금 비행기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어요. 캐리어를 가지러 갔다가 금방 나갈게요.”“괜찮아요. 기다릴게요. 뭐라도 좀 드셨어요? 집에 가는 길에 드실 간식 좀 사드릴게요. 집으로 가는 길에 좀 드세요. 공항은 우리 집에서 좀 멀거
전태윤은 피식 웃었다.“우리 소 대표님도 이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줄은 몰랐네요.”“제가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요. 뭘.”전태윤은 크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네네, 소 대표님은 높은 분이 아니십니다. 제 신분으로도 소 대표님을 만나고 싶어도 줄을 서야 하는데. 저와 정남이가 절친이 아니었다면 아마 돈을 많이 내놓는다고 해도 소 대표님을 만나지 못할걸요.”소지훈이 말했다.“제가 너무 바빠서 그래요. 전 대표님도 아시다시피 우리와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바쁘잖아요.”“제가 간단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일이 아니라서 그래요. 그럼 일단 연성에 가셔서 윤하 씨를 만나세요. 제가 먼저 정남에게 연락할게요.”소지훈이 대답했다.“무슨 일이 있으시면 정남이한테 말씀하세요. 두 분이 친구라서 말하기 더 편할 거에요. 그리고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저한테 연락하지 마세요.”처음 사랑을 맛본 소지훈은 한창 뜨거운 열정으로 정윤하를 따르고 있었다.게다가 소지훈 부모님도 매일 그에게 결혼 재촉을 했다. 정윤하가 다른 남자들이 가로채 갈까 봐 늘 소지훈더러 연성으로 가서 정윤하에게 구애하라고 재촉하셨다.정윤하는 소지훈의 운명적인 여신이었다. 그가 정상적인 남자가 될 수 있을지는 모두 정윤하에게 달려 있었기에 정윤하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의 부모는 너무 급한 나머지 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고백하지 않았다고 투덜거리며 아들 대신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싶었다.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를 만난 뒤로 급하게 고백하면 그녀가 놀라게 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두 사람이 알게 된 시간이 아직 짧기에 좀 더 익숙해진 뒤로 고백하려고 했다.정이 깊어지면 모든 일이 쉽게 풀리기 마련이다.소지훈은 이번에 연성에 가서 기회를 보면서 정윤하에게 고백하려 했고 또 정씨 가족들 앞에서 잘 보이고 싶었다.소지훈이 가장 걱정하는 것은 자신이 정윤하보다 10살 많은 나이가 많다는 점이다. 만약 세는 나이로 계산하면 11살이나 더 많았다.“알겠어요. 알겠어요. 하
전태윤이 말했다.“모든 이 대표님은 실력이 훌륭하고 충실한 특별 비서를 두었기 때문에 분명히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거야. 만약 그 특별 비서가 살아있다면 찾아서 현임 이 대표님의 죄를 밝힐 수 있을 텐데. 만약 그 틀별 비서도 죽었다면 이 일은 정말 조사하기 어려울 거야. 40~50년이나 지났으니까. 이따가 소 대표님께 전화해서 전임 이 대표님의 비서가 누구인지, 그 사람이 아직 살아있는지, 살아있다면 어디에 있는지 알아봐 달라고 부탁해볼게.”소씨 가문도 증거를 수집하기 어려울 것이다.전호영이 말을 이었다.“그건 내가 알아볼 수 있어. 내가 고진호 씨를 조사해 보는 게 더 편리할 거야.”사실 이씨 가문의 어르신들을 찾아가서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었겠지만, 그들을 찾아가면 이은화가 눈치채기 쉬웠다.어쩌면 전임 이 대표의 비서가 죽지 않았을 수도 있었고, 현재 이은화도 그 비서를 찾고 있을 수도 있었다.“그래. 그럼 소식이 있으면 나한테 알려줘.”“알았어. 둘째 형이 혼인 신고를 했다니, 부러워 죽겠어. 나와 이진 형이 동시에 할머니께서 주신 사진을 받았는데 이진이 형은 혼인 신고까지 했는데 난 아직도 고현 씨 뒤를 쫓아다니고 있다니. 휴.”진지한 이야기를 마친 전호영은 전태윤과 잡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어쨌든 전호영과 전태윤 모두 할일도 없이 한가하기 때문에 두 사람은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누가 반년 동안이나 아무 짓도 하지 말라고 했어? 그러니까 이진이 보다 늦지. 내가 보기엔 고현 씨도 너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너도 얼른 더 노력해서 내년에 결혼해야지. 이런 일은 나한테 말하지 말고 네 일은 네가 알아서 해. 난 좀 쉬어야겠어.”전태윤은 전호영의 하소연이 듣기 싫었는지 이내 통화를 끊었다.애초에 전호영은 고현이 남자같이 생겼다고 무척 싫어했기 때문에 일부러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강성으로 가서 고현의 여자 신분을 폭로하려고 했다.전태윤이 전화를 끊어도 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고 혼자 중얼거렸다.“자기만 행
“형, 통화하기 편해?”전호영은 고현을 호텔 밖으로 배웅하고 그의 사무실로 돌아온 뒤로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얼른 말해. 무슨 일인지.”전호영이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형한테 보낸 사진과 동영상은 이 대표님 남편이 바람을 피운 증거들이야.”전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전호영이 계속해서 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이 대표님의 남편 정군호 씨인데 젊었을 때는 멋있었는데 재주가 없어서 이 대표님 남편으로 되었거든. 이씨 가문에서는 사장님이라고 불리웠지만 사실 존중 받지 못하고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야 했어. 이 대표님도 남편을 엄격하게 관리했기에 매달 생활비를 주지 않고 매일 용돈 10만 정도만 주었어.”“이전에 바람을 피우려다가 이은화에게 혼이 난 뒤로 감히 바람을 피우고 싶어도 피우지 못했어. 이번에 이 대표님이 관성에 가서 형 결혼식에 참석한 뒤로 관성에 보름이나 머물게 되었는데 정군호 씨가 그 틈을 타 바람을 피울 기회를 얻었던 거야. 이 대표님이 아신다면 분명 한바탕 소란을 피울 거야.”“요즘 이씨 가문도 난장판이야. 이씨 가문의 아들들이 밖에서 내연녀를 두었는데 윤미 씨가 그 사실들을 폭로하는 바람에 지금 아들과 며느리들이 한창 떠들썩하게 지내고 있거든. 만약 이 대표님과 정군호 씨 일까지 폭로된다면 더욱 혼란스러워질 거야. 형, 형수님께 말씀드려봐. 무슨 계획 있으신지. 지금 이 틈을 타서 폭로할 수도 있으니까.”전태윤이 나지막이 물었다.“정군호 씨가 이 대표님의 남편이란 말이지?”“그럼, 고현 씨가 알려줬거든. 난 정군호 씨가 누군지도 몰랐어. 고현 씨가 강성의 토박이라 이씨 가문과 접촉할 기회가 많아서 정군호 씨를 알아봤거든. 고현 씨가 연회에 참석할 때 정군호 씨와 이 대표님이 함께 온 것을 봤대. 틀림없을 거야.”“이씨 가문의 그 이윤미 씨도 좀 재미있는 사람 같아. 이윤미 씨도 어느정도 수단은 있지만 그래도 도덕은 있는 편이네. 아쉽게도 이 대표님과 같은 사람을 어머니로 두었지.”이윤미가 이씨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