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런 상황은 처음 봤어요. 그들은 딸을 시집보내려는 것이 아니라 딸을 파는 것 같았어요. 우리 집에서 그렇게 많은 예물을 뜯어냈으면 어떻게든 이천만 원 정도의 혼수는 줘야 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들이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새 이불 몇 채에 스쿠터 한 대를 혼수로 보내겠다고 하더군요. 정말이지 당신 언니보다도 못해요. 당신 언니는 그나마 이천만 원 을 내고 집이라도 장식했고, 그때 예정 씨는 겨우 사회에 나왔지만, 언니가 형인과 결혼할 때, 당신도 돈을 다 털어 가구를 마련해준 걸 혼수로 쳤잖아요. 서현주는 지금 자기 돈은 한 푼도 내지 않고, 형인의 돈밖에 쓸 줄 몰라요.”하예정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언니가 서현주보다 나아도 주형인은 여전히 바람을 피웠는데 뭘. 주씨 집안은 서현주 같은 사람이 와서 혼쭐을 내줘야 해. 쓰레기 같은 주씨 집안에 더 쓰레기인 서씨 집안이라, 이후의 다채로운 생활이 참 기대되네.’하예진은 아예 그들의 집 근처로 이사하여 매일 두 집안이 싸우는 것을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서씨 집안에서는 또 결혼식을 크게 벌일 것을 요구하는 거예요. 이제 서현주 그쪽의 모든 친척이 축하하러 오면 우리 주씨 집안은 그들에게 고급 호텔을 마련해 주고, 그 사람들의 왕복 교통비와 각종 소비도 책임지래요.”김은희는 말할수록 화가 났다.“이게 어디 아내를 얻는 거예요? 모르고 보면 조상을 모시는 줄 알겠어요. 하예정 씨, 내가 정말 잘못했어요. 당신 언니에게 우빈을 위해서라도 형인과 재혼하라고 설득해 줘요.”김은희는 하예진에게 들리지 않게 작은 목소리로 애원했다.하예정은 그런 김은희를 비꼬듯 말했다.“당신 아들은 더이상 당신 말 안 듣죠? 이젠 서현주 씨가 집안의 주인이니, 서현주 씨 마음대로 할 수밖에 없겠네요. 시어머니로서 이젠 입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좋겠네요. 아니면 앞으로 집에 못 들어가게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뭐 재혼이요? 우리 언니와 형인의 재혼은 해가 서쪽에서 뜨지 않는 한, 불가
김은희를 쫓아낸 후 하예정은 언니에게 말했다.“언니, 이제 저 사람 다시 오면 들여보내지 말고, 의자를 문 앞에 놓고, 차를 한 컵 따르고 과자 한 접시를 준비한 후, 거기 앉아서 차를 마시며 과자를 먹고 있어. 저 사람 잔소리를 들으면서 말이야. 좋은 구경거리가 될 거야.”전태윤의 말에 따르면, 김은희가 주우빈를 빼앗아가는 것만 아니면 찾아와서 뭐라고 말하던 듣기만 하면 되었다. 듣노라면 주형인과 서현주가 어떻게 사는지도 알게 될 거라고.“상대도 하기 싫어.”하예진은 시어머니를 상대하고 싶지 않았다.하루가 멀다하게 그녀를 찾아와서 하소연하는 김은희가 어떤 마음으로 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지금 주씨 집안이 난장판이 되었다는 사실을 하예진에게 숨겨야 마땅할 텐데, 오히려 집안의 이야기를 모조리 알려주고 있다. 혹시 하예진이 마음을 돌리기라도 할 것으로 생각하는 건지...‘웃기고 있네.’“예정아, 뭘 끓이고 있어? 타는 냄새가 나.”“아! 깜빡 잊었어!”하예정은 재빨리 부엌으로 달려갔지만, 냄비는 이미 타버렸다.‘이게 다 김은희 때문이야!’하예정은 요리를 다시 할 수밖에 없었다.그녀는 언니 집에 늦게까지 있다가 발렌시아 아파트로 돌아와 전태윤이 오기를 기다렸다.이런 평범한 날을 며칠간 보낸 후 드디어 전씨 그룹 회사 송년회의 날이 다가왔다.전태윤이 하예정에게 준 초청장에 쓰인 시작 시각은 저녁 7시 30분이었다.실제로 송년회가 시작되는 시간은 저녁 7시였지만 7시부터 7시 30분까지 전태윤은 회사의 대표로서 연설해야 했다. 전태윤은 아내를 놀라게 하지 않도록 신분을 속이기 위해 애를 썼다.7시가 되자 심효진 남매가 발렌시아 아파트에 도착했다.“난 네가 소 이사의 요청을 거절한 줄 알았어.”하예정은 문을 열고 심효진 남매를 방으로 들여보냈다. 하예정은 심효진이 자기처럼 아름다운 드레스에 정교한 지갑을 들고 발에는 아름다운 하이힐을 신은 것을 보고 심효진에게 농담으로 한마디 했다.심효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가 준 액수에 너무
심서준과 심효진은 약간 닮았을 뿐만 아니라 두 남매의 비주얼은 매우 좋았다. 심서준은 아직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마치 고등학생처럼 보였다.“설마, 처음에 다들 전 대표가 남자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었는데 지금은 아내가 있잖아.”심효진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이사님은 내 동생에게 너무 친절하단 말이야. 정말 아낀다니까. 심지어 그가 가장 아끼는 스포츠카도 내 동생에게 빌려줬다고. 너도 알잖아, 남자는 차와 와이프를 가장 아끼는걸. 아무래도 이사님이 내 동생에게 흑심을 품은 것 같아. 부탁이니까 잘 알아봐 줘. 만약 그가 정말 게이라면, 앞으로 서준에게 접근도 하지 못하게 할 거야.”“...너 진짜 모르는 거야? 소 이사님의 진짜 목표가 너라고는 생각 안 해 봤어?”소정남은 사실 심서준에게 잘 보여서 도움을 청할 목적이었다.심서준을 저녁 식사에 초대하면, 심효진이 걱정돼서 같이 따라올 것이 뻔했다.하예정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심효진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평소 소설을 그렇게 많이 읽었으면서... 남주가 여주를 쫓는 방법은 다 거기에서 거긴데 그걸 아직도 못 알아차리고 있어.”심효진은 입을 벌리고 반박하려 하다가 절친이 한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됐다.띠리링!하예정과 심효정의 휴대전화가 거의 동시에 울렸고 하예정이 먼저 전화를 받았다.“태윤 씨, 저 지금 출발해요. 아마 10분 후면 회사에 도착할 수 있을 거예요. 회사 입구에서 기다려요.”심효진은 전화기 너머의 소정남에게 말했다.“이사님,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돈을 받고 도망치지는 않아요. 오늘 밤 저 심효진이 있는 한, 회사의 여직원들은 이사님의 손가락 하나도 건드리지 못할 거예요!”“효진 씨 답네요.”역시 그가 많은 돈을 써서 요청한 파트너다웠다.“기사님을 불러 데리러 갈게요.”소정남은 친절하게 말했다.“괜찮아요, 심서준한테 저와 예정이를 데려다 달라고 했어요. 이사님은 회사의 송년회가 끝난 후에 저를 데려다주면 돼요.”소정남은 웃으며 말했다.“심효진 씨는
“관성에 있는 사람들 모두 그 얘기를 하고 있다니까. 다들 그 전씨 집안 사모님의 정체를 알고 싶어 해. 사모님이 어떻게 전 대표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말이야.”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다들 아마 사모님에게서 남자의 마음을 확실히 잡는 법을 배우고 싶어서 그러는 걸 거야. 전 대표, 공략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유명하잖아. 사모님이 그런 전 대표를 정복할 수 있다는 건 실력이 대단하다는 걸 의미하는 거지. 사모님에게서 그 테크닉을 배운다면 얼마나 좋겠어. 예정아, 특히 네 남편은 외모가 너무 화려하단 말이야. 밖에서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을 거야. 만약 네 남편이 하루 종일 차가운 얼굴을 하고 다니지만 않았다면, 아마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매일 널 집적거릴걸. 그러니까 사모님에게서 테크닉을 잘 배워서 네 남편이 평생 너만을 사랑하고 바람을 피우지 않도록 해야 해.”“...네말도 일리가 있네. 자기 남자는 자기가 지키는 게 맞아. 그렇지만 문제는 사모님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거야.”“우리가 일찍 도착하면 볼 수 있을 거야. 이사님을 따라가기만 하면, 사모님과 만나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을 거야.”하예정은 가슴이 두근거렸다.감정이 없었을 때는 전태윤이 바람을 피우든 말든 그녀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가 바람을 피우기만 하면 두 사람은 바로 부부 관계를 끝낼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감정이 생기고 부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하예정은 전태윤이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만약 사모님께서 남편을 다루는 테크닉을 전수 해주신다면 반드시 열심히 공부해서 전태윤을 손에 잡고 말 것이다.“그럼 서준아, 더 빨리 갈 수 있어? 만약 늦게 도착하면 언제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올지 몰라.”심효진의 말에 마음이 끌린 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심서준을 재촉하기 시작했다.심서준은 아직 젊었고 여자 친구가 없었다. 그렇지만 두 누나가 남편을 다루는 테크닉에 대해 말하는 것을 듣고, 마음속으로 수십 번 생각했다.‘앞으로 여자 친구를 찾을 때 두 누나처럼
전태윤은 하예정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당신, 오늘 밤에 참 아름다워. 자, 어서 들어가.”하예정은 소정남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전태윤을 따라 회사안으로 들어갔다.소정남이 심씨네 남매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심서준은 거절했다.“전 이 회사 직원도 아니고, 또 여자도 아녀서 파트너가 될 수 없으니, 들어가지 않을래요. 회사 송년회가 끝나면 누나 데리러 올게요.”소정남은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심서준이 따라오지 않길 바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같이 들어가자고 심서준을 요청했다.“이사님, 서준이가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데, 그냥 놔둬요. 서준아, 친구들한테 가서 놀다가 내가 문자 보내면 데리러 와.”소정남이 심서준에게 그렇게 잘해주는 것은 사실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하예정이 말했었다.하지만 소정남이 동생에게 지나치게 열정적인 것을 보고 소정남이 혹시 게이거나 바이섹슈얼은 아닌지 걱정된 심효진은 둘이 너무 친해지는 것이 싫었다.“누나, 이사님, 저 먼저 갈게요.”심서준은 서둘러 차를 몰고 떠났다.그의 차가 보이지 않자, 소정남은 심효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가며 속삭였다.“효진 씨, 우리 팔짱이라도 껴야 하는 거 아니에요?”“뭐, 그럴 필요까지 있나요?”“태윤이와 하예정씨도 팔짱을 꼈잖아요, 우리 사이가 가까워 보여야 여직원들이 부러워할 거 아니에요.”이어서 소정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돈을 더 드릴게요.”심효진이 입을 삐죽거렸다.“마치 내가 돈에 환장한 여자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필경은 평범한 사람이고, 속된 인간인지라 세상에서 돈이 가장 좋았다.“심서준 씨를 여자로 변장시켜 내 여자 파트너로 삼으려고 했는데, 효진 씨가 못하게 말렸잖아요. 진짜 여자인 효진 씨가 내 짝으로 되겠다고요.”소정남이 투덜거리자, 심효진은 얼른 그의 한쪽 팔을 끼고 예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누구도 그녀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자 그녀는 곧 웃음을 거두고는 소정남의 팔을
말문이 막힌 심효진은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소개팅하는 날 제가 몸이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기억도 안 나요. 당신이 그날 장미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던 것만 기억나요. 그나저나 당신은 성의가 조금도 없어요, 만약 성의가 있다면 소개팅 당일 저에게 당신이 소씨 가문 도련님이라고 말했을 거예요.”만약 그녀가 소정남이 관성의 신비한 가문인 소씨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선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소정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저 신분을 숨기고 깜짝 결혼한 상사의 흉내를 내려고 한 것뿐이다. 전태윤은 비록 하예정을 속였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예정의 인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예정이 전태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분명 전태윤의 신분과 지위를 탐내지 않을 것이다.나중에 전태윤이 하예정이 떠날까 봐 무서워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전태윤처럼 될까 봐 심효진에게 신분을 밝히려고 했는데 심효진이 미리 알아차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역시 짐작한 대로 심효진은 그를 멀리하면서 그와 사귀려고 하지 않았다.아무 방법이 없어 처남한테 먼저 호감을 사려고 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심효진이 뜻밖에도 그가 심서준을 꼬신다고 오해할 줄이야?.“예정 씨한테서 효진 씨가 부잣집에 시집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당신 얼굴도 못 볼까 봐 소개팅 날 신분을 숨긴 거예요. 효진 씨, 그날 소개팅하러 간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예요, 정말 효진 씨와 연애를 해보고 싶었어요.”“이건 나중에 얘기하죠, 오늘 밤, 저는 돈을 받고 일하는 거예요. 당신이 동생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요.”그는 훌륭하고 부유한 부잣집 도련님이다. 비록 그녀의 집도 돈이 넉넉하지만, 소씨 가문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심효진은 고모가 젊었을 때 어려움을 겪던 것을 생각하며, 항상 명문가를 배척해 왔다.그녀의 고모는 지금도 김진우의 사업을 돕기 위해 부잣집 사모님들과 자주 어울린다.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사촌 동생을 생각하며,
“...”전태윤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그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하예정은 소정남과 심효진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그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소 이사님과 효진은 관계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요.”전태윤이 친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리 없어, 소 이사는 성격이 아주 좋은 사람이야.”‘성격이 좋다고? 소 이사 성격이 좋다면 이 세상에 성격 나쁜 사람이 없을 거야.’“그들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어서 갑시다.”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두 사람은 너무 다정해 보였다.“태윤 씨, 대표님 부인도 오시겠죠?”“그건 왜?”“아니, 그저 뵙고 싶어서요, 제가 그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먼저 친분을 쌓아야만 남편을 다루는 테크닉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한발 늦었어. 우리 대표님과 사모님은 당신들이 오기 전에 떠났어. 대표님께선 매년 그가 있으면 모두 즐겁게 놀지 못한다고 발표만 하고 바로 떠나.”이것도 사실이다.여태 전태윤은 발표를 마치면 바로 떠나곤 했다.송년회는 보통 그의 동생들과 소정남이 번갈아 사회를 본다고 했다.“늦었다고요?”하예정은 무척 아쉬워했다.“저와 효진이가 소정남 씨에게 속도를 내라고 계속 재촉해서 7시 30분 전에 당신 회사에 도착했는데도 기회를 놓쳤네요. 혹시 당신이 나에게 준 초대장 시간이 잘못된 거 아니에요? 아니면 대표님께서 가족들 앞에서 발표하시기 싫어서, 가족한테 보내는 초대장 시간이 좀 늦는 건가요?”“그래, 맞아.”초대장에 적힌 시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던 전태윤은 하예정이 마침 좋은 핑계를 대주자 그걸 바로 써먹었다.“당신은 대표님 부인을 보셨어요?”전태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보았는데, 그분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워. 나타나시자마자 주위가 막 환해지는 것 같았어, 우리 대표님께서도 넋을 잃을 정도로.”“김태희보다 더 예뻐요?”전태윤은 그녀
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집에 돌아가서 다시 늑대로 변할게.”그는 자기 손등을 살짝 꼬집는 하예정의 손등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그녀가 또 꼬집으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정색하며 다시는 꼬집지 못하게 그녀를 앞으로 끌고 갔다.전태윤이 하예정을 송년회에 데리고 나타난 것을 본 전씨 그룹 임원들 모두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하예정에게 공손하게 대했다.오히려 올해 소정남의 여자 파트너가 더 이상 소씨 가문의 여자가 아닌 심효진으로 바뀐 것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소정남을 사모하는 여직원들은 소정남이 심효진을 소개하는 것을 듣고 이 여자가 소정남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심효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부러움과 질투로 가득 찼다.소 이사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니! 전 대표님에 이어서!심효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소정남이 두려워서 겉으로는 아무도 감히 심효진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하예정이 전태윤에게 조용히 말했다.“소 이사님이 당신 회사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군요.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효진이는 벌써 그들에게 몇 번이나 죽었는지 모르겠어요.”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소 이사는 지위도 높고, 젊고 멋지고, 돈도 많은 데다 친절하기까지 하니... 비록 입이 좀 가볍고 가십거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야.”“...”상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칭찬인지 그를 깎아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예정 씨, 집에 가고 싶어?”“먼저 가도 돼요?”이것은 회사의 송년회다. 전태윤의 가족으로 참석해서 한 바퀴 돌고 난 하예정은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비록 모두 그녀한테 공손하게 대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익숙하지도 않고, 전태윤과 동료들이 회사 일에 대해 말할 때, 또 말참견하지도 못해서 그저 먹고 마시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그녀를 보는 눈빛이 무슨 뜻인지 말할 수 없이 이상했다.아마 그녀가 잘 먹는 걸 보고 먹다 죽은 귀신이 붙은 거라고
“엄마.”고현은 진미리의 전화를 받았다.“현아, 퇴근했어?”“네, 막 퇴근하려고 그래요. 왜 그러세요?”“드레스 말고도 평소에 입을 옷도 몇 벌 더 사줄까?”고현은 생각하지도 않고 바로 거절했다.“필요 없어요.”고현은 단지 내일 저녁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여 사람들에게 그녀가 사실 여자라는 것을 알려주어 전호영이 동성애자가 아닌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뿐이다. 사람들이 더는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보게 하고 싶지 않았다.다들 전호영이 고현을 삐뚤어지게 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항상 색안경을 끼고 전호영을 바라보았으나 고현은 정상적인 남자라고 여겼다.진미리는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필요 없어? 여자 신분을 회복하려고 하는 거 아니었어? 내일 저녁에만 드레스 입고 계속 남자 옷을 입고 다니려고?”“네. 원래대로 다니려고요.”고현은 이제 그녀의 가짜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하지만 그녀는 약간 태평공주기 때문에 가슴 근육을 사용하지 않고 양복을 입어도 남자처럼 보였다.진미리는 계속해서 설득했다.“신분을 드러내기로 했는데 왜 또 남자 행세를 하려고 해? 얼마나 힘들어.”“엄마, 그건 제 습관이에요. 20년 동안의 습관을 단번에 고칠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엄마, 저의 요구대로 사주세요. 앞으로 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걱정하지 마세요. 걱정하시려면 엄마 아드님 걱정 좀 하세요.”“빈이 그 자식은 걱정해도 소용없어. 그럼 엄마는 네 요구대로 드레스를 사줄게. 그리고 평소 입을 옷도 몇 벌 사 갈게. 옷장에 넣어두었다가 입고 싶을 때 꺼내서 입어.”“알겠어요.”“그래. 넌 퇴근해. 난 네 아빠랑 밥 좀 먹어야겠어. 네 아빠가 오랜만에 쇼핑하니 너무 힘들대. 먼저 밥 먹고 나서 다시 옷 보러 돌아다닐게.”진미리는 전화를 끊었다.고지호가 곁에 물었다.“현이가 싫대?”고진호 부부는 고현의 도도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옷들을 많이 봤다.“현이가 싫다고 해도 우리가 집으로 사가서 현이 옷장에 넣어두
전호영은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아니에요. 제가 고현 씨에게 꽃다발을 반년 넘게 보냈지만, 당신은 돈을 낭비한다면서 표정 한 번 변하지 않더니만 갑자기 이렇게 반응이 달라지니 놀라서 그러죠. 고현 씨가 제 꽃다발을 좋아한다고 하니 저도 기분이 너무 좋네요.”고현은 그를 한참 동안 바라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는 몸을 일으켜 책상을 에돌아 꽃다발을 꽃병에 꽂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서서 보면서 말했다.“너무 예쁘네요. 이 꽃병에 마침 꽉 찼네요.”“그럼요. 저의 마음이니까요.”고현은 다시 돌아서서 책상을 치우기 시작했다. 그녀는 출근하기 전에도 책상 위가 깨끗해야 했고 퇴근할 때도 책상 위가 정연해야 했다.“가요. 밥 먹으러 가요. 예진 언니랑 노 대표님께서 오래 기다리게 해서는 안 돼요.”전호영은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으며 말했다.“제가 왔을 때 동명 형에게 전화했는데 예진 누나랑 지금 돌아오는 길이래요. 조금 먼 거리에 있어서 저희보다 조금 늦게 호텔에 돌아올 것 같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지금은 퇴근 시간대라 길이 막히기 쉽거든요.”두 사람은 함께 사무실을 나섰다.고현은 남 비서에게 지시했다.“박 대표님께 미팅이 한 시간 늦어진다고 전해주세요.”“알겠습니다.”비서는 고현이 박 대표와의 미팅을 취소하는 줄 알았다. 다행히 박 대표와 미리 말을 해 놓았다.전호영은 고현에게 물었다.“저녁에도 또 일 보려고요?”고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보았다. 전호영은 곧 그녀의 눈빛의 뜻을 알고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저도 사실 매우 바쁘거든요.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놀부가 아니라고요.”전호영에게는 미래의 아내에게 구애하는 일도 큰일이었다.그는 매일 고현을 쫓아다니느라 정신없이 바빴다. 정말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호영 씨는 제가 본 사람 중 가장 한가한 사람이에요. 전씨 할머니도 호영 씨보다 더 바쁘실걸요.”전호영은 걸어가면서 말을 이었다.“그건 그래요. 저는 우리 할머니에 비하면 덜 바쁘죠. 우리 어
저녁 무렵, 전호영은 그가 자주 사용하는 마이바흐를 몰고 제때 고씨 그룹에 들어섰다.고씨 그룹 건물 입구에서 차를 멈추었다.그는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렸다.양복 차림의 전호영은 언제나 그랬듯 늘 멋졌다.“전 대표님.”그는 꽃다발을 안고 걸어 들어갔고 모두 그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안부를 물었다.전호영이 지나가자 그 직원들은 웃음을 거두어들였다.전호영은 고씨 그룹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를 싫어하는지 잘 알고 있다.그의 신분이 높지 않았다면 그 직원들은 가짜 웃음조차 그에게 주기 싫었을 것이다.‘휴, 현이 씨가 여전히 여성 신분을 폭로하기 싫은 거로 보면 아무래도 내 노력이 너무 부족했나 싶다...’전호영은 계속 동성애자라는 누명을 쓰며 강성의 젊은 여성들의 증오와 미움을 견뎌야 했다.그러나 전호영은 곧 다시 마음을 가다듬었다.그는 고현을 따르기로 한 그날부터 단단히 마음 먹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그는 아내를 쫓아다닐 거라고 다짐했다.이렇게 하면 사실 좋은 점도 있다. 바로 고현이 원래 여자였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진정한 연적이 없다는 점이다.그리고 여자 연적들에 대해서도 두려울 게 뭐가 있는가!고현의 여자 신분이 드러나게 되면 그 여자들의 마음은 아마 단번에 무너질 것이다.전호영은 그렇게 기분 좋게 엘리베이터에 들어가 꼭대기 층으로 올라갔다.엘리베이터에서 나온 전호영은 남 비서의 도움으로 문을 열고는 그녀에게 서프라이즈를 주려고 살금살금 들어갔다.“나가세요! 노크 다시 하고 들어와요!”고현의 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전호영은 멈칫했다.고현의 청력이 정말 대단했다.“현이 씨...”고현은 고개를 들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전호영은 즉시 항복했다.“네네네, 나가겠나이다. 노크하고 다시 들어오겠나이다.”서프라이즈를 해주고 싶었지만, 고현은 문 여는 소리를 듣더니 다시 노크하고 들어오라고 했다.전호영은 어쩔 수 없이 사무실에서 나갔다.남 비서는 그가 들어가자마자 다시 나오는 모습을 보고 무
“그래, 일 봐. 엄마가 지금 네 아빠 불러서 함께 드레스랑 하이힐을 사러 갈게.”진미리는 기쁜 마음으로 전화를 끊었다.귓가에서 휴대전화를 떼자마자 진미리가 소리쳤다.“여보! 여보!”고진호가 밖에서 대답했다.“왜 그래?”고진호가 곧 밖에서 뛰어 들어왔다.“무슨 일이에요? 너무 큰 소리로 외쳐서 허둥지둥 달려왔는데.”“가요. 당장 옷 갈아입고 나가서 치마 좀 사요. 제가 직접 우리 딸을 위해 드레스를 골라줘야겠어요. 드디어 예쁜 치마를 사서 우리 딸을 예쁘게 꾸밀 수 있게 됐어요.”고진호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우리 현이가 그렇게 말했다고요? 너무 좋은 일이네요. 그럼, 사람 시켜 패션 디자인 사진을 가져오게 해요. 문 나설 필요 없이 사진만 고르면 되잖아요. 우리 현이가 입을 건데 당연히 가장 좋은 옷을 주문해서 제작해야죠.”“그러기엔 너무 늦었어요. 내일 저녁에 입을 드레스라서 시간이 안 돼요. 저한테도 드레스가 많지만, 중년 드레스라서 젊은이가 입기에는 어울리지 않아요. 우리 백화점에 가서 먼저 현물을 사고 나중에 천천히 주문 제작해요.”고진호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우리 현이가 치마를 입고 싶어 하다니... 호영이에게 미리 웨딩드레스를 맞추라고 알려줘야 겠어요. 그럼 곧 결혼할 수도 있겠네요. 우리도 큰 걱정거리를 해결할 수 있겠네요.”그리고 나서 고진호 부부는 집중적으로 매일 시시덕거리고 껄렁껄렁한 고빈을 혼내줄 수 있을 것이다.서른이 다 되어가는 고빈 주위에는 예쁜 미인들이 많지만 여자 친구는 단 한 명도 없었다.장녀 고현이 있기 때문에 진미리 부부는 잠시 고현의 인생 대사에 몰두하고 있었다.고현의 일이 곧 결실을 보게 되면 이번에는 고빈의 차례로 될 것이다.두 아이는 같은 해, 같은 달, 같은 시각에 태어났다.“내일 저녁 현이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참석하는 일은 당분간 호영에게 알리지 마세요. 제 생각에는 현이도 갑자기 치마를 입고 여성 신분을 모두에게 알리려는 것을 호영이가 모르는 것 같더라고요.”진미리는
“엄마, 사실 나도 좀 망설여져요.”고현의 말을 들은 진미리는 황급히 말을 이었다.“망설일 필요 없어. 너 원래 여자이고 원래 치마 입어도 되는 신분이야. 네가 20년 이상 남자 옷을 입었으니 진작 여자 옷을 입었어야 했어. 호영이도 네가 드레스를 입고 연회에 함께 참석하는 것을 알면 얼마나 기뻐하겠어. 그때 가서 다들 네가 여자라는 걸 알게 될 거고 너희 둘이 게이라고 수군대지도 않을 테고. 사실 사람들이 나한테 네가 그토록 훌륭한데 호영 때문에 삐뚤어진다는 말을 했거든. 네가 정상인데 호영 때문에 게이로 되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난 사실을 그들에게 진실을 알려주고 싶었어. 그런데 넌 여자 신분을 되찾고 싶어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늘 참고 있었지. 그리고 그런 말 하는 사람들을 멀리할 수밖에 없었어.”진미리 부부도 사실 큰 스트레스를 이겨내고 있었다.다른 사람의 말들은 고진호 부부가 무시하고 멀리하면 그뿐이지만 친척과 친구들이 와서 설득할 때면 그들은 정말 어쩔 수 없었다.진미리는 결국 고현이 이제 성인이 되었으니 딸이 행복하면 그뿐이라면서 딸의 의사를 존중해 주겠다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었다.이 때문에 그 친척들은 몇 년 지나면 고현이 후회할 것이라고 화를 내면서 진미리가 고현을 그대로 내버려 두면 고빈도 따라서 게이로 될 것이고 따라서 손주를 안고 싶어 해도 기회가 없을 거라는 심한 말을 내뱉기도 했다.이는 진미리를 화나게 했지만 그렇다고 또 어쩔 수도 없었다.“엄마가 좀 이따가 드레스 몇 벌 골라줄게. 네 취향대로 골라봐. 액세서리는 새것으로 살래? 엄마가 몇 벌 골라줄까? 하이힐도 몇 켤게 사줄게. 다 신어 봐.”고현이 대답했다.“엄마가 결정해 주시면 돼요. 제가 내일 오후에 쉬니 집으로 돌아가서 드레스와 하이힐을 신어 볼게요. 하이힐을 신어 본 경험이 없으니 걷는 연습도 해야겠어요. 아니면 추태를 보일지도 모르니까요.”진미리가 웃으며 대답했다.“하긴, 걷는 연습을 좀 해야겠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도
전호영은 눈치채지 못했다. 고현도 일부러 그에게 명백하게 알려주지 않았다.내일 저녁에 그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강성 전체 사람들도 분명 충격받을 것이다.고현은 이미 전호영에 대한 감정을 깨달았기 때문에 이변이 없다면 2년 안에 전호영에게 시집갈 것이다.그녀는 전호영을 사랑하기 때문에 더는 그가 동성애라자라는 누명을 쓰게 하고 싶지 않았다.전호영은 게이가 아니라 정상적인 남자였다.고현이 모든 사람을 속인 것이다.고현은 전호영을 위해 정정당당하게 여자로 되고 싶어 했다.그 또한 기뻐할 것이다.고현의 형상이 너무 남자다웠기 때문에 그녀가 아무리 여성 옷을 입고 연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사람들은 그녀가 전호영의 마음을 사기 위해 여자 행세를 하는 것으로 여길 것이라는 점을 고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전호영도 그녀를 기쁘게 하려고 여자로 분장한 적 있다.당시 고씨 그룹 직원들은 여자 분장을 한 전호영이 매우 눈에 익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의 자매인 줄 알았지만 전씨 가문에는 딸이 없고 전호영에게도 자매가 없었다는 것을 반응한 사람들은 그제야 전호영이 분장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그날 그 사실은 고씨 그룹에서 아주 큰 가십거리로 소문이 자자했다.전호영과 통화를 마친 고현은 진미리에게 전화를 걸었다.진미리가 전화를 받았지만 고현은 주저하며 말을 하지 않았다.“현아, 왜 그래?”고현이 여전히 말을 하지 않자 진미리는 놀라워하며 고현에게 무슨 사고라도 난 줄 알았다.고현은 어려서부터 철이 들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했다.“엄마, 시간 있어요? ”“있지. 난 언제나 시간 있지. 왜? 내가 뭐 도울 거라도 있어? 말해봐. 내가 다 해줄게.”고현이 먼저 도움을 청하는 일이라면 분명 큰일일 것이다.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낸 진미리는 관심 있게 물었다.“생리 왔어? 배 아파?”고현은 때때로 생리통을 앓곤 한다.진미리는 한동안 몰래 고현에게 한약을 지어주면서 그녀를 돌보았다.“아니요. 엄마. 저 내일 저녁 연회
“호영 씨.”고현이 기분이 좋은 듯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하자, 휴대폰 너머에 있던 전호영도 덩달아 신이 나서 웃었다.“현이 씨, 뭐 좋은 일이 있나요? 제 이름을 부르면서까지 웃음기가 묻어나네요. 현이 씨를 오랫동안 알고 지냈지만, 이런 경우가 흔치 않은데.”고현이 전호영에게 감정이 있다고는 하나 성격이 워낙 무뚝뚝하다 보니 전호영을 대하는 태도는 항상 차가웠다.“제가 기분이 나빴으면 좋겠어요?”“그럴 리가요. 당연히 현이 씨가 날마다 즐겁고 행복하면 좋죠. 그렇지만 현이 씨는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보니 하루 종일 웃지도 않잖아요. 시시덕거리는 고빈을 볼 때마다 테이프로 그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에요.”그가 사랑했던 여자는 고씨 그룹을 위해 매일 쉬지 않고 일하지만, 고빈은 틈만 나면 여자들을 만나느라 바빴다.그렇다고 해서 고빈이 결혼할 생각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고현이 웃으며 말했다.“얼른 가서 그 입 틀어막지 않고 뭐 해요? 솔직히 말해서 아무 근심 걱정 없는 그의 모습을 볼 때면 가끔 부럽기는 해요.”자신이 맏이기 때문에 동생을 대신해 모든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그녀의 머릿속에 꽉 박혀있었다.줄곧 남장하고 있었지만, 여자로 살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무거운 책임감을 안고 있다고는 하지만 동생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것만으로 그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전호영이 나타난 후부터 고현은 점차 동생이 부러워지기 시작했다.물론 동생에게 말했던 것처럼 고씨 그룹이 언젠가는 동생의 손에 넘어갈 것을 생각하고 가끔 동생에게 일을 맡기곤 했었지만.평생을 이렇게 버틴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란 것을 그녀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기대하고 의지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전호영이 딱 그런 존재였다.“나중 가면 현이 씨 동생이 현이 씨를 부러워할 것이니 동생을 부러워할 필요가 없어요. 현이 씨가 회사 일을 조금씩 그에게 맡긴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예요. 아니면 저처럼 호
자신을 찾아온 사람이 이윤미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고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으로 내려온 후, 이윤미가 자신의 비서에게 말했다.“먼저 회사에 가 있어요. 요즘 가주가 시간 없다고 하니 제가 집안일 처리하러 집에 가야겠어요.”그녀의 어머니는 여전히 병원에서 아버지를 돌보고 있었다.이씨 가문에 일이 생겼다는 사실을 그녀의 비서 외에 회사 사람들은 다 모르고 있었다.이윤미만 회사에 나오고 가주와 그녀의 오빠들은 회사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만 회사 사람들은 알고 있었다.이 대표가 비록 능력이 부족한 이 부대표를 못마땅하게 여긴다고 해도 어찌 됐든 자기 친딸이니 무슨 일을 저지른다 해도 이 대표가 뒷수습을 다 할 것으로 회사 사람들은 뒤에서 수군거렸다.이윤미가 이 대표의 자리를 물려받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은 온갖 망발을 늘어놓으며 그녀를 헐뜯기에 바빴다.그렇지만 이윤미는 가만있지 않았다.중요한 직위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설치고 다니는 사람들을 그녀는 직접 해고하여 이씨 그룹에서 쫓아냈다.그리고 직위가 높은 사람들은 강등시키거나 급여를 깎았다.게다가 해고된 사람들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블랙리스트에 올린 탓에 그들은 복지와 소득 면에서 이씨 그룹에 한참 미치지도 못하는 작은 회사만 전전해야 했다.조금의 손해를 볼지언정 이윤미는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다.이씨 그룹에서 쫓겨난 직원들을 보며 다른 직원들은 공포감을 느꼈다.모두가 부를 추구하고 부양해야 할 가족들이 있기 때문에 일자리를 잃을 수 없었다.누가 대표직에 오르든지 간에 모두 이씨 가문의 출신일 것이니 승급을 못 할 바에는 이씨 가문의 암투에 직원들은 끼어들 필요가 없었다.어차피 대우는 변하지 않으니 오히려 정직하게 일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몰랐다.그렇게 한다면 해고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상사에게 더 주목받을 수도 있었다.“알았어요.”택시비를 보상해 주겠다며 말한 뒤 이윤미는 비서를 택시에 앉혀 보내고 자신은 차를 몰고 집으로 돌
그들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었다.“고 대표님, 저는 회사의 프로젝트 협력에 대해 논의하러 왔어요. 방안을 가져왔으니 한번 보도록 하세요.”이윤미는 말하면서 자신 비서의 손에서 서류를 건네받은 뒤 두 손으로 고현에게 건넸다.고현은 서류를 받아 들고 자세히 훑어보기 시작했다.한참 후에 다 훑어본 서류를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말을 꺼냈다.“윤미 씨의 방안이 괜찮아 보이지만 이씨 그룹의 실력이 부족해서 별로 협력하고 싶지 않네요.”고현은 직설적으로 말했다.협력업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이윤미의 개인 회사와 협력하려 했던 것은 그냥 단순히 이윤미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했던 것이었다.하예진의 회사도 설립되고 나면 고씨 그룹과 협력할 예정이었다.이윤미가 호탕하게 웃었다.“고 대표님, 우리 이씨 그룹이 귀사에 비해 조금 못하단 걸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우리 이씨 그룹도 강성에서 백 년을 이어온 명문가라서 뿌리가 깊어요. 저도 일부 프로젝트를 책임졌으니 어느 정도 발언권이 있어요. 고 대표님이 저와 협력한다면 서로 윈윈할 수 있을 거예요. 당연히 대표님의 발목을 잡는 일은 없을 거고요.”이윤미와 그녀의 비서는 협상에 진전이 없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고현에게 잘 보이려고 최선을 다했다.이씨 그룹을 아무리 추켜세워도 고현이 마음을 바꾸지 않자, 이윤미가 말했다.“고 대표님, 협력하지 않더라도 저와의 인연은 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이번에 비록 우리 이씨 그룹이 대표님의 눈에 들지 못했지만, 나중에는 협력할 기회가 생길지도 몰라요.”고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게 될 거예요.”이씨 가문이 권력에서 물러난다면 가능성이 있었다.이씨 그룹의 권력을 쥐고 있는 이씨 가문이 고씨 그룹과의 협력을 이용해 힘을 키우는 것이 두려워 고현은 협력하기 싫었던 것이었다.만약 이씨 그룹의 세력이 커진다면 하예진의 앞날이 더욱 험난해질 것 같았다.이윤미가 웃으며 말했다.“우리 이씨 그룹이 열심히 노력해서 하루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