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하예정의 손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당신, 오늘 밤에 참 아름다워. 자, 어서 들어가.”하예정은 소정남에게 고개를 끄덕인 후 전태윤을 따라 회사안으로 들어갔다.소정남이 심씨네 남매를 데리고 들어가려고 했지만, 심서준은 거절했다.“전 이 회사 직원도 아니고, 또 여자도 아녀서 파트너가 될 수 없으니, 들어가지 않을래요. 회사 송년회가 끝나면 누나 데리러 올게요.”소정남은 마음속으로는 은근히 심서준이 따라오지 않길 바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같이 들어가자고 심서준을 요청했다.“이사님, 서준이가 들어가고 싶지 않다는데, 그냥 놔둬요. 서준아, 친구들한테 가서 놀다가 내가 문자 보내면 데리러 와.”소정남이 심서준에게 그렇게 잘해주는 것은 사실 그녀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라고 하예정이 말했었다.하지만 소정남이 동생에게 지나치게 열정적인 것을 보고 소정남이 혹시 게이거나 바이섹슈얼은 아닌지 걱정된 심효진은 둘이 너무 친해지는 것이 싫었다.“누나, 이사님, 저 먼저 갈게요.”심서준은 서둘러 차를 몰고 떠났다.그의 차가 보이지 않자, 소정남은 심효진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안으로 들어가며 속삭였다.“효진 씨, 우리 팔짱이라도 껴야 하는 거 아니에요?”“뭐, 그럴 필요까지 있나요?”“태윤이와 하예정씨도 팔짱을 꼈잖아요, 우리 사이가 가까워 보여야 여직원들이 부러워할 거 아니에요.”이어서 소정남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돈을 더 드릴게요.”심효진이 입을 삐죽거렸다.“마치 내가 돈에 환장한 여자인 것처럼 말씀하시네요.”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녀는 필경은 평범한 사람이고, 속된 인간인지라 세상에서 돈이 가장 좋았다.“심서준 씨를 여자로 변장시켜 내 여자 파트너로 삼으려고 했는데, 효진 씨가 못하게 말렸잖아요. 진짜 여자인 효진 씨가 내 짝으로 되겠다고요.”소정남이 투덜거리자, 심효진은 얼른 그의 한쪽 팔을 끼고 예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주위에서 누구도 그녀를 눈여겨보는 사람이 없자 그녀는 곧 웃음을 거두고는 소정남의 팔을
말문이 막힌 심효진은 한참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소개팅하는 날 제가 몸이 괜찮냐고 물어봤어요? 저는 기억도 안 나요. 당신이 그날 장미꽃 한 송이를 입에 물고 자전거를 타고 지나갔던 것만 기억나요. 그나저나 당신은 성의가 조금도 없어요, 만약 성의가 있다면 소개팅 당일 저에게 당신이 소씨 가문 도련님이라고 말했을 거예요.”만약 그녀가 소정남이 관성의 신비한 가문인 소씨 가문 출신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절대 선을 보지 않았을 것이다.소정남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는 그저 신분을 숨기고 깜짝 결혼한 상사의 흉내를 내려고 한 것뿐이다. 전태윤은 비록 하예정을 속였다고 하지만 오히려 하예정의 인품을 살펴볼 수 있었다. 하예정이 전태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분명 전태윤의 신분과 지위를 탐내지 않을 것이다.나중에 전태윤이 하예정이 떠날까 봐 무서워 신분을 밝히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자신도 전태윤처럼 될까 봐 심효진에게 신분을 밝히려고 했는데 심효진이 미리 알아차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역시 짐작한 대로 심효진은 그를 멀리하면서 그와 사귀려고 하지 않았다.아무 방법이 없어 처남한테 먼저 호감을 사려고 했는데, 상상력이 풍부한 심효진이 뜻밖에도 그가 심서준을 꼬신다고 오해할 줄이야?.“예정 씨한테서 효진 씨가 부잣집에 시집가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듣고, 당신 얼굴도 못 볼까 봐 소개팅 날 신분을 숨긴 거예요. 효진 씨, 그날 소개팅하러 간 건 진심에서 우러나온 거예요, 정말 효진 씨와 연애를 해보고 싶었어요.”“이건 나중에 얘기하죠, 오늘 밤, 저는 돈을 받고 일하는 거예요. 당신이 동생을 건드리지만 않으면 돼요.”그는 훌륭하고 부유한 부잣집 도련님이다. 비록 그녀의 집도 돈이 넉넉하지만, 소씨 가문과의 차이는 엄청나다. 심효진은 고모가 젊었을 때 어려움을 겪던 것을 생각하며, 항상 명문가를 배척해 왔다.그녀의 고모는 지금도 김진우의 사업을 돕기 위해 부잣집 사모님들과 자주 어울린다.어렸을 때부터 그녀의 뒤를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사촌 동생을 생각하며,
“...”전태윤과 다정하게 얘기를 나누며 그들 앞에서 걸어가고 있던 하예정은 소정남과 심효진이 따라오지 않는 것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려보았는데, 그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것을 보고 전태윤에게 말했다.“태윤 씨, 소 이사님과 효진은 관계가 별로 좋은 것 같지 않아요.”전태윤이 친구를 한 번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리 없어, 소 이사는 성격이 아주 좋은 사람이야.”‘성격이 좋다고? 소 이사 성격이 좋다면 이 세상에 성격 나쁜 사람이 없을 거야.’“그들은 신경 쓰지 말고, 우리 어서 갑시다.”팔짱을 끼고 걸어가는 두 사람은 너무 다정해 보였다.“태윤 씨, 대표님 부인도 오시겠죠?”“그건 왜?”“아니, 그저 뵙고 싶어서요, 제가 그분과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어요.”먼저 친분을 쌓아야만 남편을 다루는 테크닉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한발 늦었어. 우리 대표님과 사모님은 당신들이 오기 전에 떠났어. 대표님께선 매년 그가 있으면 모두 즐겁게 놀지 못한다고 발표만 하고 바로 떠나.”이것도 사실이다.여태 전태윤은 발표를 마치면 바로 떠나곤 했다.송년회는 보통 그의 동생들과 소정남이 번갈아 사회를 본다고 했다.“늦었다고요?”하예정은 무척 아쉬워했다.“저와 효진이가 소정남 씨에게 속도를 내라고 계속 재촉해서 7시 30분 전에 당신 회사에 도착했는데도 기회를 놓쳤네요. 혹시 당신이 나에게 준 초대장 시간이 잘못된 거 아니에요? 아니면 대표님께서 가족들 앞에서 발표하시기 싫어서, 가족한테 보내는 초대장 시간이 좀 늦는 건가요?”“그래, 맞아.”초대장에 적힌 시간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고민하던 전태윤은 하예정이 마침 좋은 핑계를 대주자 그걸 바로 써먹었다.“당신은 대표님 부인을 보셨어요?”전태윤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보았는데, 그분은 정말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워. 나타나시자마자 주위가 막 환해지는 것 같았어, 우리 대표님께서도 넋을 잃을 정도로.”“김태희보다 더 예뻐요?”전태윤은 그녀
전태윤이 낮은 소리로 웃었다.“집에 돌아가서 다시 늑대로 변할게.”그는 자기 손등을 살짝 꼬집는 하예정의 손등에 다정하게 입을 맞추었다.그녀가 또 꼬집으려고 하자, 그는 오히려 정색하며 다시는 꼬집지 못하게 그녀를 앞으로 끌고 갔다.전태윤이 하예정을 송년회에 데리고 나타난 것을 본 전씨 그룹 임원들 모두 전혀 놀라는 기색이 없이 하예정에게 공손하게 대했다.오히려 올해 소정남의 여자 파트너가 더 이상 소씨 가문의 여자가 아닌 심효진으로 바뀐 것이 모두를 놀라게 했다.소정남을 사모하는 여직원들은 소정남이 심효진을 소개하는 것을 듣고 이 여자가 소정남이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챘다. 심효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부러움과 질투로 가득 찼다.소 이사님도 좋아하는 여자가 있다니! 전 대표님에 이어서!심효진을 바라보는 그녀들의 눈빛은 질투로 가득 차 있었지만, 소정남이 두려워서 겉으로는 아무도 감히 심효진에게 시비를 거는 사람이 없었다.하예정이 전태윤에게 조용히 말했다.“소 이사님이 당신 회사에서 인기가 많은 것 같군요. 만약 눈빛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효진이는 벌써 그들에게 몇 번이나 죽었는지 모르겠어요.”전태윤이 담담하게 말했다.“소 이사는 지위도 높고, 젊고 멋지고, 돈도 많은 데다 친절하기까지 하니... 비록 입이 좀 가볍고 가십거리를 좋아하긴 하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야.”“...”상사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칭찬인지 그를 깎아내리는 것인지 알 수 없다.“예정 씨, 집에 가고 싶어?”“먼저 가도 돼요?”이것은 회사의 송년회다. 전태윤의 가족으로 참석해서 한 바퀴 돌고 난 하예정은 이곳에 더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비록 모두 그녀한테 공손하게 대했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들과 익숙하지도 않고, 전태윤과 동료들이 회사 일에 대해 말할 때, 또 말참견하지도 못해서 그저 먹고 마시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모두 그녀를 보는 눈빛이 무슨 뜻인지 말할 수 없이 이상했다.아마 그녀가 잘 먹는 걸 보고 먹다 죽은 귀신이 붙은 거라고
“나 아마 출장을 가야 할 것 같아.”하예정은 고개를 들고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며칠만 있으면 휴가인데, 당신 왜 출장을 가는 거예요?”“짧은 출장이야. A시에 갔다가 2, 3일이면 돌아올 수 있어.”전태윤은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이마에 키스했다.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그녀의 예쁜 얼굴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아쉬워?”“언제 떠나요? 짐 싸서 공항까지 바래다드릴게요.”전태윤은 하예정이 이 소식을 듣고 아쉬워할 줄 알았는데, 정말 출장을 간다는 걸 확인한 하예정은 전태윤이 출장 가서 무엇을 하는지 묻지도 않고 신이 나서 짐을 싸서 공항에 데려다주겠다고 한다.전태윤은 심정이 복잡해 났다.이젠 잠자리를 같이 한지도 여러 번이어서 자기에 대한 감정이 달라진 줄 알았다.예전보다는 조금 나아진 것 같긴 하지만 그에게 매달리거나 하지는 않는다.전태윤은 이런 답답함을 안은 채 A시로 날아가 중요한 파트너인 예진 그룹 주인 예준성의 결혼식에 참석했다.예준성과 모연정은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모연정이 쌍둥이를 임신 중이라는 말을 듣고 전태윤은 속으로 무척 부러워했다.예준하의 소개로 만성의 남씨 가문 도련님을 알게 되었는데, 듣자 하니 남씨 도련님도 그와 마찬가지로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자신의 신변 보호를 할 뿐만 아니라 흠모하는 여자들이 달라붙는 것도 막는다고 한다.결혼식 다음 날 전태윤은 예진 리조트에 갔다.전태윤과 가장 익숙한 예준하가 그를 접대했다.집에 들어온 후부터 무슨 걱정거리가 있는 듯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전태윤을 보며 예준하는 먼저 입을 열었다.“전 대표님께서 모처럼 오셨는데, 제가 여기저기 구경시켜 드릴까요?”전태윤은 일찍이 예진 리조트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답다는 말을 들었었다. 그들의 전 씨 저택도 예진 리조트 못지않게 아름답지만, 집주인의 호의를 사양할 수는 없었다.“그럼, 수고 끼칠게요.”예준하가 웃었다.“전 대표님께서 우리 A시에 오셨는데 주인으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죠
전태윤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멀지 않은 곳의 정자를 보더니 그쪽으로 걸어갔다.정자 주변에는 인공설이 많이 깔려있었는데 마치 설경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그는 정자 아래의 바위에 앉아서 주변의 인공설을 쭉 둘러보더니 왠지 싸늘한 기운이 들어 예준하에게 말했다.“인공설 풍경이 매우 아름답네요. 장식 잘하셨어요.”“구정이라 설 느낌을 내봤어요. 우리 리조트에 진짜 눈이 있고 스키장에도 있어요. 스키 타러 가고 싶으시면 제가 함께 가드리죠!”전태윤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저는 북방의 진짜 스키를 즐겨 타는 편이에요.”예준하가 가볍게 웃었다.“저도 그래요. 나중에 시간 내서 북방에 가 눈 구경도 하고 스키도 타요. 북방의 설경을 제대로 만끽하자고요. 전 대표님 혹시 감정 문제 때문에 기분이 우울한 거예요?”예준하는 싱글이지만 워낙 섬세하다 보니 형의 결혼식에서 전태윤의 마음이 딴 데 팔려있다는 걸 바로 알아챘다.전태윤이 카카오 스토리에 부부가 함께한 사진을 올려서 전씨 그룹 사람들이 그가 유부남인 걸 다 알지만 결혼 사실을 완전히 공개한 건 아니다.그가 완전히 공개하지 않으니 예준하도 일부러 모른 척해야만 한다.전태윤은 예준하를 쳐다보며 물었다.“많이 티 나요?”예준하가 미소를 지었다.“대표님을 잘 모르는 분들은 눈치채지 못할 거예요. 대표님은 늘 차갑고 진지한 표정만 지으세요. 걱정거리가 있을 때도 이런 표정을 짓죠. 저를 믿을만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저한테 얘기하셔도 돼요. 단, 제가 무조건 해결한다는 보장은 없어요. 어쨌거나 전 아직 싱글이니까요.”그는 여자친구조차 만나본 적 없다.사춘기 때 앞자리에 앉은 여학생에게 호감을 느꼈지만 졸업 후 서로 다른 대학에 붙었다. 애초엔 자주 연락했지만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생긴 이후로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그 뒤로 수년간 그는 예진 그룹의 관성 계열사를 성실하게 관리하느라 연애 방면으론 별다른 이슈가 없었다. 마음에 확 와닿고 그를 설레게 하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다.예준하는 연애에 대
십여 분 후.예준성이 정자에 나타났다.“안녕하세요, 대표님.”전태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폐 끼쳐드려서 미안해요.”전태윤은 오늘 밤 관성으로 돌아가야 하기에 뻔뻔함도 무릅쓰고 예준성과 약속을 잡았다.예준성이 웃으며 대답했다.“별말씀을요, 전 대표님. 어서 앉으세요.”그는 전태윤을 자리에 앉힌 후 동생에게 분부해 집사더러 디저트와 차를 가져오라고 했다.“저한테 어떤 점을 묻고 싶으셨죠? 편하게 말씀하세요.”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에 난처한 기운이 살짝 감돌았다.“예 대표님, 실은 제 개인적인 문제로 대표님께 조언을 구하고 싶었어요. 저나 예 대표님이나 모두 초고속 결혼을 했잖아요.”예준성은 아직 그가 초고속 결혼한 사실을 모른다.예준하가 집에 돌아와 얘기하지 않았으니까.전태윤의 말을 들은 예준성은 아주 의외라는 눈길로 그를 쳐다봤다.전태윤처럼 차갑고 냉랭한 남자도 초고속 결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란 듯싶었다.“초고속 결혼은 하신 지 얼마나 됐어요? 부인분은 사랑하게 되셨나요?”예준성의 마음속에 이미 답안이 있었다.전태윤이 만약 마음이 안 움직였다면 이렇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굳이 그의 신혼 둘째 날에 찾아올 일도 없다.“초고속 결혼한 지는 3개월 됐어요. 아내가 저희 할머니를 구해줘서 생명의 은인이 됐어요. 제 가족들은 아내에게 몹시 감격스러워했고 감사의 뜻도 표했어요. 저희 할머니가 아내를 너무 좋아하세요. 아마 우리 세대에 여자가 없어서 그런가 봐요.”전태윤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을 이었다.“우리 집 상황도 예 대표님네 집안과 거의 비슷해요. 양기가 차 넘친다고 할 수 있죠. 전에는 아내를 본 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했는데 할머니를 구해주니 매우 고마웠어요. 다만 얼마 안 지나 사태의 흐름이 변하더라고요. 할머니가 늘 제 앞에서 아내의 좋은 말만 하는 거예요. 우리 집안의 며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전태윤은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할머니가 종일 잔소리하시던 장면을 되새기며 계속 말을 이었다.“저희 아홉 형
“초고속 결혼한 뒤 두 분은 어떻게 지내셨어요?”예준성이 오지랖 넓게 물었다.그와 모연정도 초고속 결혼을 했지만 둘은 결혼 전에 이미 11년 동안 알고 지낸 사이라 옛친구나 다름없다.게다가 예준성은 오래전부터 그녀를 찜해뒀는데 모연정의 나이가 어리다 보니 티 내지 않으려고 제 감정을 꾹 눌렀다. 그러다가 어느덧 모연정이 가족들에게 모질게 결혼을 재촉받아 집에도 감히 돌아갈 수 없을 지경이 되었고 그녀는 마지못해 예준성을 남자친구로 속이며 함께 집에 갔다.예준성은 이 기회를 포착하고 모연정을 속여 계약 결혼을 진짜로 만들어버렸다.그와 모연정은 오래된 지인의 초고속 결혼이다 보니 전태윤과 하예정처럼 아예 낯선 이의 결혼과는 별개였다.하여 예준성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그에게 물었다.“결혼 전에 할머니께 분명히 말씀해뒀어요. 결혼하는 건 되지만 그 뒤로 제가 어떻게 아내를 대하든 그건 오롯이 제 일이니 할머니는 일절 참견하지 말라고 했어요. 저는 일단 제 정체를 숨기고 일상적인 생활을 통해 아내의 성품을 지켜보고 싶었어요. 할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자가 맞는지 알아보고 싶었거든요. 맨 처음 서로를 알아갈 땐... 우리 둘 다 적응하지 못했어요.”초고속 결혼한 초기에 전태윤은 자꾸만 본인에게 아내가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하예정도 남편이 있다는 게 적응되지 않았다.둘은 사소한 마찰도 생겼지만 소통하며 해결해나갔다.“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서 태윤 씨는 서서히 아내분의 존재에 익숙해져갔고 호감도 생기셨죠? 익숙해진다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거라니까요.”사람들은 늘 정들어버리면 서로를 잃을까 봐 두려워한다.전태윤이 머리를 끄덕였다.“우린 지금 감정이 무르익어가는 단계에요. 인정해요, 저는 이미 아내를 사랑하게 됐어요.”애초에 절대 아내에게 마음이 흔들리지 않겠다던 그는 본인이 했던 말을 전부 번복하고 있다.“제가 고민인 건 이젠 저의 진짜 신분을 솔직하게 고백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제가 먼저 다가가 전부 털어놓으면 아내가 홧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