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 각자의 경호원들도 말없이 묵묵히 뒤따라갔는데, 만약 걷는 소리까지 들리지 않으면 한밤중에 한 무리의 귀신을 본 것처럼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도 했다.엘리베이터에 들어가기 전에 성기현이 멈춰 섰다.“전 대표”성기현이 입을 열자, 전태윤이 그를 쳐다보았다.성기현은 바로 말을 잇지 않고 한참 지나서야 다시 입을 열었다.“자꾸 우리 쪽 비즈니스를 뺏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그쪽이 다른 사람과 계약을 맺기 전에 그들에게도 번복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사람들은 계약을 맺고도 해소하는 경우가 있어요. 비즈니스란 원래 이런 거니 내가 성 대표의 비즈니스를 빼앗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단지 성씨 그룹의 실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고객이 우리 전씨 그룹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죠. 비즈니스는 비즈니스고 인정은 인정이니 양보하라는 말은 삼가는 게 좋을 거예요.”“...참 대단하시네요.”전태윤은 여전히 담담하게 말을 받아들였다.“제가 대단한 게 하루 이틀도 하니고... 하지만 그쪽은 결혼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아이가 없는 건 혹시 몸이 편찮기라도? 우리 마누라를 봐서라도 실력 있는 의사를 소개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만...”“누가 몸이 편찮다는 거예요? 우리 부부는 그저 아이 없는 행복한 생활을 몇 년 더 누리려 했을 뿐이니 관심 꺼주시면 고맙겠네요.”성기현은 전태윤의 말에 기가 찼지만, 실제로 전태윤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그 둘 중 한쪽이 문제가 있거나 양쪽이 모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럼 전 먼저 가보겠으니 배웅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강일구가 엘리베이터 열림 버튼을 누르자 전태윤은 말을 한마디 남기고는 먼저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엘리베이터 앞에 남겨진 성기현은 잠시 후에야 반응하며 화를 냈다.“누가 배웅한다는 거야? 나도 집에 가는 길이라고!”전용 엘리베이터를 전태윤에게 빼앗겼으니, 성기현은 잠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그는 집에 돌아가면 아내와 함께 아이를 가질지에 대해 의논하려 생각
이 이른 아침에 누가 온 거지?하예정은 아래층으로 내려간 후 집 키를 찾아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멀리 한 사람이 별장 입구에 서서 양손에 비닐봉지 두 개를 들고 있는 것이 보였는데 배달원 같았다.“예정 씨, 좋은 아침입니다.”권 매니저는 빙그레 웃으며 인사했다.“권 매니저였군요, 좋은 아침이에요.”하예정은 관성 호텔의 호텔 매니저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권 매니저는 손에 봉지를 들고 웃으며 말했다.“전태윤 씨가 어젯밤에 저에게 전화로 아침 식사를 주문하셨어요. 이 시간쯤에 배달해 달라고 하셔서 일찍 아침에 예정 씨를 찾아온 거예요.”하예정은 거의 밤새 전태윤과 함께 있었지만, 그가 언제 권 매니저에게 아침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지도 몰랐다.그가 자주 관성 호텔에서 아침을 주문하였는데, 전씨 그룹에서 일을 하고 있기에 관성 호텔에서 소비할 때 할인을 받을 수 있다지만, 그래도 항상 관성 호텔에 주문하는 것은 좋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었다.하예정은 겉으로는 웃으며 마당의 문을 열고 권 매니저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 후 아침밥을 건네받았다.“권 매니저님, 모두 얼마예요? 제가 계산해 드릴게요.”전태윤은 이 별장은 계약금만 낸 거라 매달 대출금을 갚아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설령 또 돈을 모았다고 해도 발렌시아 아파트의 집을 샀으니, 아마 지금은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을 것이다.‘이런 상황에 돈을 아낄 줄도 모르고, 아침까지도 관성 호텔 사람을 시켜서 보내다니... 예전에는 항상 내가 아침 시장에 가서 포장해 오거나 직접 요리하여 먹었는데...’“전태윤 씨가 계산할 겁니다.”권 매니저는 감히 하예정에게 돈을 계산하라고 할 엄두가 안 났다.“전태윤 씨와 저는 부부이자 가족이에요. 그 사람 돈은 제 돈이기도 하니, 제가 계산해도 같은 거예요. 권 매니저님, 우리 꽤 오래 알고 지낸 사이잖아요. 그러니까 얼마인지 알려주시면 그대로 드릴게요. 제가 계산하는 거니 너무 많이 할인해 주지 않으셔도 돼요.”권 매니저는 하예정이 돈을 계산하겠
지금은 아직 아이가 없으니 비교적 자유롭게 살고 있지만 이제 아이가 생기면 지출이 더 많아질 것이고,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돈이 많이 드는 일은 없다. 그러니 아이는 돈을 삼키는 기계라고 부르기도 한다.“저에게도 수입이 있어요. 이 작은 집을 위해 함께 책임을 지는 건 당연한 거니 앞으로 일부분의 지출은 제가 부담할게요. 당신은 돈을 아껴뒀다가 주택 대출금을 미리 갚을 수 있다면 갚아요. 그러면 더 마음이 놓이잖아요.”그녀는 주택 대출금을 갚는 것을 돕겠다고 제안하지는 않았다.이 별장은 전태윤의 혼전 재산에 속하고, 예전의 언니와 주형인처럼 주택 대출도 그가 전부터 항상 갚고 있는 것이기에 그녀는 대출금을 갚는 것을 돕겠다고 제안하지는 않았다.비록 지금 그녀가 전태윤과 진정한 부부가 되어 달콤한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언니의 옛길을 걷는 것을 되도록 피하고 싶었다. 이건 전태윤의 집이고, 그녀는 욕심을 내지도 않을 것이며, 주택 대출금을 갚는 것을 돕지도 않을 것이다.혹시라도 부부의 인연이 깊지 않아 장차 이혼하게 된다면, 재산 분할로 인해 또 다투게 될 것이 분명하니 차라리 지금 확실히 구분해 놓는 것이 나았다.전태윤은 그녀의 어깨에 턱을 걸치고는 부드럽게 말했다.“여보, 주택구매용 대출을 갚는 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 지금은 예금이 그리 많지 않지만, 아직 감당할 수 있어. 게다가 이제 곧 새해잖아? 회사에서 연말 보너스를 줄 거야, 나 같은 임원 층은 그 액수가 절대 적지 않을 거야. 그때 결혼할 때도 말했잖아. 당신과 결혼한다는 건 충분히 먹여 살릴 수 있다는 뜻이라고. 절대로 더치페이 같은 걸 하지 않을 거야. 이 별장도 비록 아직은 돈을 갚고 있지만, 내가 선불로 많이 지불했기 때문에 매달 갚아야 하는 주택 대출금이 버거울 정도로 많은 건 아니야. 내 연봉이 몇억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하예정은 그녀를 안고 있는 큰 손을 몸에서 떼어내더니 돌아서서 그를 마주 보며 말했다.“마음속으로 어느 정도 파악이 있으면 돼요.”그는
“며칠 후에 우리 회사에서 송년회를 열 예정이야. 그때쯤 초대장을 가지고 와서 당신에게 줄 테니 그날 밤 당신 예복을 갈아입고 있어. 내가 데리러 와도 되고, 아니면 당신 혼자 차를 몰고 가도 돼.”“당신네 회사에서 송년회를 하는데 제가 뭐 하러 가요? 당신 회사 직원도 아니고...”하예정은 그 어떤 회의에도 참여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설사 참가하더라도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해 가곤 하였다.하지만 전태윤과 함께라면, 심효진의 말처럼 마음껏 먹을 수 없을 것이고, 차라리 심효진을 불러서 같이 훠궈를 먹는 게 나았다.“회사 송년회는 가족과 동반할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은 다 가족을 데려왔는데 나만 안 데려가는 건 좀 이상하잖아.”하예정은 어이가 없어 그를 바라보았다.“그날 밤에는 회사에서 일을 도와야 하니 내가 당신을 데리러 갈 때까지 기다리면 좀 늦을 거야. 일이 끝나야 시간을 내서 당신을 데리러 갈 수 있거든.”“그래요, 그럼, 그날 전에 다시 저한테 말해줘요. 저 혼자 갈 수 있으니 서둘러 돌아올 필요 없어요. 제가 혼자 뻔뻔하게 회사 안으로 뛰어들 수는 없으니 회사 앞까지 나 데리러 오면 돼요.”전태윤은 마음을 놓은 듯 말했다.“알았어. 그때 아마 심효진 씨도 참석할 거야. 소 이사는 비록 여자친구가 없지만 심효진 씨에 대한 인상이 좋아 파트너로 초대할 것 같아.”예전의 송년회에서 전태윤은 항상 말을 마친 후 바로 현장을 떠나곤 했는데 만약 그가 먼저 떠나가지 않으면, 회사 사람들은 모두 즐겁게 놀 수가 없었다.반면 소정남은 분위기를 띄우는데 능한 사람이라, 보통 송년회가 끝날 때까지 회사 사람들과 함께 즐기곤 했고 많은 여직원은 송년회를 계기로 소정남과 파트너가 되기를 원했으며, 내심 소정남이 그녀들의 장점을 발견하고 좋아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소정남은 비록 전태윤보다 온화하고 말을 잘하는 타입이라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지만, 여직원들에게 번갈아 가며 애정 공격을 받고 싶지는 않았고, 후에는 회사 송년회가 되면 돈을 써서 가문
노동명이 앞으로 다가가 그 장난감 풍차를 주우빈에게 건네주었지만, 주우빈은 받지 않았다.“노 대표님, 우빈이는 장난감이 많아요.”“장난감을 사주려고 한 게 아니야. 그냥 장난감 가게를 지나다가 가게 앞에 이 풍차가 돌아가는게 예뻐 보여 우빈이가 좋아할 것 같아서... 요즘 바람도 많이 불고 있으니 하나 샀을 뿐이야.”주우빈에게 풍차를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면 그는 들어오지도 않았을 것이다.노동명은 풍차를 하예진에게 건네주며 말했다.“우빈이 대신 가지고 있어.”하예진은 장난감 풍차는 너무 비싼 물건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건네받았고 다시 그 풍차를 주우빈에게 넘겨주었는데 주우빈은 그제야 받아가졌다.“...우빈이은 항상 나를 무서워하네. 내가 풍차를 줄 때는 받지도 않더니 당신이 주니 바로 받잖아.”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저는 우빈의 엄마예요. 10개월을 임신하여 낳았고 태어난 후에도 계속 데리고 다녔으니 저랑 친하지 않으면 누구랑 친하겠어요?”노동명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말을 잘못했어.”그는 가게 안을 둘러보더니 하예진에게 물었다.“당신은 매일 여기에 와서 뭘 바쁘게 하는 거지?”가게 안을 깨끗하게 치우긴 했으나, 설 후에 다시 장식을 시작하면 또 엉망진창으로 될 것이 뻔했다.“인테리어 자재를 사곤 해요. 이것저것 하다 보면 하루가 빨리 지나가니 알차게 느껴져요.”솔직히 말해 그저 시간을 때우는 것이었다.노동명은 그저 가볍게 응하고는 시선을 하예진에게로 옮기며 농담하는 말투로 말했다.“지금 당신의 체중 감량 속도는 내가 처음에 당신에게 5바퀴를 뛰라고 한 것보다 더 빠른 것 같아.”“전 지금도 매일 달리기를 견지하고 있어요. 식단을 조절하며 고당과 고지방은 되도록 먹지 않고 끼니마다 너무 배부르게 먹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이렇게 견지하니 체중이 빠지기 시작하네요. 이혼한 이후로 지금까지 10킬로나 빠진걸요.”노동명은 살이 많이 빠진 하예진을 보며 조금 더 보기 좋아졌다고 생각됐다.‘그녀의
노동명은 비록 얼굴은 손상되었지만, 많은 재부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이든 김은희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딸과 함께 노씨 그룹에 가서 하예진을 기다릴 때, 노씨 그룹의 사무실 건물을 오후 내내 마주 본적이 있는데 주형인의 말로는 노씨 그룹은 관성에서도 꽤 큰 그룹 중 하나이며 아들이 다니는 회사보다 훨씬 낫고, 또 주형인은 자기 능력으로는 노씨 그룹의 고급 직원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하예진이 노씨 그룹에 입사할 수 있다는 사실은 주형인을 초조하게 했고, 그녀가 다시 직장에 복귀하기만 하면 여전히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다. 다행히 지금은 이혼했으니, 앞으로 아내에게 실력으로 밀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서현주는 비서로서 그에게 의지하며 그의 남자의 자존심을 만족시켜 줄 수 있었다.김은희를 알아본 노동명도 멈춰 서서 그녀를 노려보며 차갑게 물었다.“뭘 하러 온 거지?”그는 가게 안의 하예진 모자를 한 번 쳐다보고는 김은희에게 경고했다.“이 가게는 내가 하예진에게 세를 준 것이니 감히 여기서 행패를 부리면, 나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돈을 조금 갚는다고 될 일이 아니란 건 그쪽도 잘 알고 있겠지.”“당신은 또 뭐 하러 온 거야? 내 며느리한테 구애하고 싶은 거야?”“이 거리의 가게 절반이 내 것이고, 나는 하예진의 집주인인데 내가 여기에 와서 무엇 을 하든 당신과 무슨 상관이지? 하예정은 이미 당신의 아들과 이혼한 걸로 기억하는데, 왜, 아직 제삼자를 본처의 위치에 못 앉혔나 보군. 빨리 가서 결혼하라고 재촉이나 해, 얼른 새 며느리를 얻을 수 있게 말이야. 하예진은 이젠 당신네 집안과는 관계가 없으니, 며느리라는 말은 삼가는 게 좋겠어.”김은희는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아직 아들을 서현주와 결혼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아들은 말을 듣지 않고 이미 결혼 날짜와 혼인신고를 할 날짜까지 정해 놓았다.서현주의 가족들도 오늘 고향에서 올라와 상견례를 제안하며 두 사람의 결혼에 대해 논의하자고 하였다. 김은희는 서씨 가족이 온
“우빈아. 이것 봐, 할머니가 장난감 사 왔어.”김은희는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활짝 웃으며 가방에서 장난감 차를 꺼냈다.“할머니.”어른들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는 주우빈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아빠를 곧잘 부른다.하예진은 주씨 집안에 원망과 원한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혼하고 나서 더는 마음에 두지 않기로 했고, 주씨 집안이 먼저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는다면, 그녀도 전남편 가족을 평온한 마음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주형인이 주우빈의 친아버지인 건 사실이니 하예진은 한 번도 주우빈 앞에서 주형인의 가족을 욕한 적이 없었다.하예진이 주우빈을 내려놓자, 김은희는 쭈그리고 앉아 주우빈한테 장난감 차를 건네주면서 아이의 손에 들고 있던 노동명이 사준 풍차를 빼앗으려고 했다.노동명이 주우빈의 호감을 사는 것을 통해 하예진에게 점수를 따려는 짓이라고 생각한 그녀는 위기감을 느꼈다.이혼하고 아이를 데리고 사는 여자에게 있어, 남자를 고르는 가장 중요한 조건은 바로 남자가 자신의 아이를 받아주는 것, 잘 대해주는 것이었다.주우빈은 주씨 집안의 손자이니 절대 노동명을 아버지로 부르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내 풍차 돌려줘요.”장난감 차를 많이 가지고 있는 주우빈은 할머니가 준 장난감 차는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아저씨가 사준 멋진 풍차가 더 좋았다.“이 풍차가 뭐가 멋있다고, 할머니가 너를 데리고 가서 더 크고 멋진 새 풍차를 사줄게. 이 풍차는 던지는 게 어때?”김은희가 풍차를 빼앗으려고 하자 주우빈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입을 삐죽거렸다.결국 김은희는 속으로 노동명이 뻔뻔하게도 작은 풍차 하나로 자기의 소중한 손자를 매수했다고 욕하면서 빼앗는 것을 포기하였고 주우빈을 안고 일어나며 물었다.“아까 그 사람, 네 전 회사 대표이지? 너를 따라다니는 거야?”하예진이 담담하게 말했다.“풍차는 대표님이 지나가는 길에 들러서 준거예요, 무슨 이상한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게다가, 이건 제 사적인 일이니, 아줌마와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에요
“결혼식도 관성 호텔에서 하겠다고 하지, 돈이 얼마나 많이 들겠어? 결혼 비용도 다 우리더러 부담하라고 하니 이게 며느리를 데려오는 건지, 공주마마를 모셔오는 건지...”하예진은 행주로 식탁을 닦으면서 김은희가 무슨 말을 하든지 한마디도 참견하지 않았다.전 시어머니가 이러쿵저러쿵 불평하는 이유는 그저 돈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만약 서현주가 예전의 멍청한 그녀처럼 자기 돈으로 신혼집을 꾸미고, 예장도 요구하지 않았다면 전 시어머니는 아마 주형인은 이혼해도 훨씬 더 젊고 예쁜 아내를 얻을 수 있다고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했을 것이고, 반면 못생기고 뚱뚱한 그녀는 주형인을 떠나면 누구도 원하는 남자가 없을 거라고 비꼬았을 것이다.“예진아, 돈 아끼느라 너무 적게 먹는 거 아니니? 이 어미가 보기에 너 살이 많이 빠진 것 같구나.”“전 이미 당신 아들과 이혼했으니 아줌만 이젠 제 어머니가 아니에요. 다시는 제 앞에서 어머니라고 하지 마세요.”하예진은 김은희가 시어머니라고 자칭하자 더는 참을 수 없었다.김은희는 멋쩍게 웃었다.“이미 습관 되어 당분간 말을 바꾸기가 어려울 것 같아. 우리 형인이가 나눠준 돈이면 은행 이자만으로도 푼푼하게 먹고 살 수 있을 테니 너무 아끼느라 하지 말아. 너 살이 빠진 걸 바라, 쯧쯧... 다행이도 우빈이는 살이 좀 올랐네. 이젠 안고 있으면 무거워. 그런데 예진아, 이 가게는 네 이모가 꾸려준 거니? 네 이모는 큰 부자이니 이 정도는 식은 죽 먹기일 거야.”김은희가 오늘 온 이유는 첫째는 정말 손자가 보고 싶었고, 둘째는 다시 하예진에게 잘 보이고 싶었고, 셋째는 성씨 가문 사모님이 하예진 자매에게 어느 정도까지 도움을 주었는지 알고 싶어서였다. 만약 아들이 하예진과 재혼하면 이득을 볼 수 있을지 알고 싶었다.주형인은 요즘 누가 계속 뒤에서 그를 헐뜯는 바람에 대표님의 눈 밖에 났다. 그는 거의 매일 혼나고 있어 업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하다고 불평하고 있다. 주형인은 결혼 전에 이직하고 이제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면 다시
“이씨 가문을 잘 꾸려나가려면 젊은 세대에게 의존해야죠. 우리 가문의 젊은 세대들도 능력만 있으면 모두 중히 여겨야 하는 거죠. 숙모님들, 맞죠?”이씨 가문의 셋째 삼촌 이지후는 야망이 있지만 이제 분투할 정력이 없었다. 그들이 노리는 것은 다만 그들의 후손의 앞날일 뿐이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승낙한 거나 다름없다.하예진이 방금 한 말은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가 하예진 쪽으로 돌아간다면, 가문의 젊은 세대들은 능력만 있다면 모두 적당한 자리에서 빛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라는 의미이다.하예진은 자신이 사람을 포용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려준 셈이다.두 사모님이 눈을 마주치며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씨 가문의 넷째 숙모 김연희가 입을 열었다.“맞아요. 역시 전임 가주의 후손답네요. 전임 가주가 이씨 가문을 다스릴 때 우리 이씨 가문은 강성에서 그 누구도 얕볼 수 없는 존재였죠.”그러나 요즘은 사람들이 이씨 가문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전임 가주 이은숙이 여전히 이씨 가문을 운영했을 때 김연희와 최순자는 아직 이씨 가문으로 시집오지 않았다. 당시 그녀들의 나이는 6세에서 12세 사이였고 가문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다.그러나 그녀들의 남편들은 어느 정도 기억에 남을 것이다. 적어도 학창시절에 이씨 가문 사람이라고 하면 아무도 괴롭히지 못했다.그 후, 가문의 어르신들 이야기를 통해 자주 듣게 되었다.전임 가주 이은숙의 인간 됨됨이나 일 처리 방면에서는 매우 훌륭했지만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 낳은 탓으로 급격히 건강이 나빠져 하루가 멀다고 병으로 앓게 되어 이은화에게 기회가 주어지게 된 것이다.“그리고 두 숙모분께서도 안전에 대해 걱정할 필요 없어요. 이씨 가문에서 떠벌리며 다니지 않는 한 강성에서의 안전은 제가 보장해 드릴 수 있어요.”자기 분수를 지키면서 무슨 일을 하든 너무 날뛰지 않고 눈에 띄게 행동하지 않으면 죽지는 않을 것이다.그러나 만약 그들이 너무 눈에 띄게 행동한다면 하예진이 보호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감히 협력하지
몇 분 후, 방에서 하예진을 기다리고 있던 전호영은 예진이 도착하자 바로 나와서 문을 열었다.“예진 누나.”“고마워요, 호영 씨.”“우리 사이에 무슨, 천천히 얘기 나눠요, 저는 일 보러 나가볼게요.”방을 나온 전호영은 하예진을 방으로 들여보내고는 일구를 포함한 경호원들에게 아무도 못 들어가게 단단히 지키고 있으라고 지시했다.펜트하우스가 출입이 통제되긴 하나 경각심을 높여서 나쁠 것은 없었다.일구와 다른 경호원들은 전호영의 말에 깍듯이 응했고 전호영은 자리를 떴다.하예진이 방으로 들어가자 두 숙모님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그녀들을 위한 과자와 과일들이 놓여 있었고 따뜻한 물도 준비해져 있었다.“예진 씨.”하예진이 들어오자 두 숙모는 소파에서 일어나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고 인사했다.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했으니 두 사람은 이제 본모습을 보일 때가 된 것이다.두 분은 나이가 있는 분들이셨지만 보양을 잘한 덕분에 겉보기에는 훨씬 젊어 보였다.“두 분 앉아계세요.”하예진은 차를 내와 찻잔에 부으면서 말했다. “차를 마시면 정신도 맑아지고 좋더라고요.”“우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차를 별로 안 마셔요. 차를 마시면 저녁에 잠이 안 오더라고요.”셋째 숙모가 웃으면서 답했다.하예진은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간식을 권했지만 두 분은 사양했다.“두 분께서 저한테 하실 말씀이 있다고요?”하예진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두 분과 친분이 있는 사이도 아니니 다룰 얘깃거리도 별로 없었다.“예진 씨가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씀하라고 우리 그이가 그러더군요. 우리 두 집안이 기꺼이 힘을 합쳐 도와드리겠다고 전해달라고 했어요.”셋째 숙모가 입을 열자 넷째 숙모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속으로는 하예진 앞에서 이 가주에 대해 불평하고 싶었지만 집을 나설 때 남편이 그러지 말라고 그녀에게 신신당부했기에 꾹 참고 있었다. 그저 두 집안의 의사를 전달하고 다른 말은 하지 말라고 얘기했다.하예진은 관성의 대표로 이곳에 왔기 때문에
하루 호텔은 안전 레벨이 아주 높은 곳으로 그곳에 가면 숙모님들이 마음을 좀 더 내려 놓을 수가 있었다.이에 하예진도 동의를 표하였다.“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제가 방을 예약 해놓을게요.”그녀는 뒤돌아서서 휴대폰을 꺼내어 전호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루 호텔에서 제일 안전한 방이 어느 방이에요? 누가 엿듣거나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는 곳으로 빌리려고요.”전호영은 일 초의 고민도 없이 답했다.“그야 무조건 펜트하우스에 있는 스위트룸이죠. 지금 제가 묵고 있어요, 누나가 필요하다면 제가 빌려드릴게요.”“고마워요, 이씨네 숙모님 두 분이 먼저 가실 거예요, 믿을만한 사람을 시켜서 조용히 두 분을 방까지 모셔드리도록 해줘요. 카메라에 찍히지 않게 주의해 주시고요.”전호영이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안배할게요. 두 분 호텔로 이동하시게 하세요, 거의 도착할 때 저희 쪽에 연락 주시면 돼요.”그러고는 하예진에게 번호 하나를 알려주었다.“누나, 조금 있다가 이 번호로 연락 주시면 돼요, 펜트하우스까지 에스코트해 줄 거예요. 저도 조금 있다가 바로 돌아갈게요.”현재 그 방은 전호영이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그 방문을 열 수가 없었기에 호영이 호텔로 돌아오는 수밖에 없었다.“부탁드릴게요.”“별말씀을요.”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고마워요, 하던 일 계속 해요, 제가 두 분께 말해놓을게요. 여기서 호텔까지 가려면 약 20분 정도 걸릴거에요. 저는 30분 뒤쯤에 도착할 것 같아요.”“알겠어요.”통화를 마친 예진은 두 숙모한테 다가가 말했다.“제가 이미 말해놓았으니 두 분께서 지금 그쪽으로 출발하시면 되세요. 거의 도착할 즈음 이 번호에 전화하시면 그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에요. 그분들이 두 분을 방까지 에스코트해 주실 거예요.”하예진은 전호영이 알려주었던 번호를 셋째 숙모한테 말해주었다.“먼저 가 계시면 돼요. 저는 십 분 뒤에 바로 출발할게요.”“그래요.”두 분은 낮은 목소리로 대답하고 나서 지체없이 바로 출발했다.
“그 분들이랑은 어떻게 되는 사이신지?”하예진이 물었다.두 사람은 자신들의 남편 정체를 말한 후 하예진의 반응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그녀가 침묵하자 두 사람은 하예진이 자신의 남편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서둘러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넷째 숙모고 이분이 셋째에요.”하예진은 그녀들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오실 때 뒤따르는 사람이 없었나요?”“없어요, 뒤처리를 도와주는 사람이 있으니 예진씨는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하예진은 미소를 지었다. “저야 아무 걱정이 없지만 두 분께서 저를 찾아온 일이 이 가주님의 귀에 들어가 두 분께서 불리해질까 봐 걱정이에요.”하예진은 원래부터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었으니 이씨 가족 사람들과 접촉하는 건 너무나도 당연했다. 오히려 아무 접촉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씨 집안 사람들이 그녀를 먼저 찾아왔다면 이 가주가 그 사실을 알고 응징할 수도 있기에 그 후과를 스스로 감당해야 했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약간의 두려움이 보였지만 이내 다시 물었다.“예진 씨, 잠깐 따로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좋아요, 저는 아무 때나 괜찮아요. 어디서 얘기할까요? 장소를 알려주시면 제가 곧 갈게요. 함께 이동하면 눈에 뜨일 수 있으니까 따로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하예진의 말에 그 두 사람의 안위를 걱정해 주는 마음이 담겨 있어 두 사람은 마음이 놓였다.두 사람의 남편들은 집에서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며칠 동안 마음을 졸이며 지냈다. 이 가주는 그들을 비롯한 직계가 아닌 가족들에게 아주 인색하고 발전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능력이 출중한 사람은 오히려 이 가주의 억압을 받아 두각을 드러낼 수가 없었다.두 가족은 몰래 모여 이틀 동안이나 상의를 했고 결국에는 하예진 라인에 서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예진이 이길 것이라고 배팅을 한 것이다. 만약 하예진이 이긴다면 그들이 하예진을 처음부터 지지해 온 사람들로서 앞으로의 발전이 나쁘
하예진은 경계심에 차 물었다.“날 스토킹하기라도 하는 건가?”그녀는 단지 공장을 보러 왔을 뿐 오래 머물지 않을 텐데 이씨 집안 사람들이 여기까지 와서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한다니, 그녀가 이씨 집안을 노리고 있는 것처럼 그들도 그녀를 노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이곳 강성에 온 목적은 하나뿐,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밝히고 이씨 집안을 장악하는 것이다.이는 큰 이모가 그녀에게 맡긴 중대한 임무였다.곧 하예진은 이 상황을 받아들였다. 오히려 이씨 집안에서 아무런 경계가 없다면 더 이상한 것이었다.“내가 나가 볼게.”그녀는 아마도 이씨 집안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의 부인이겠거니 생각했다.그날, 만찬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남녀 반반이었고 예진은 일구랑 함께 참석했었기에 만찬에 참석한 사람이라면 일구는 얼굴이 익을 것이었다.예진은 경호원과 함께 나갔다.공장 입구에 차 한 대가 세워져 있었고 차에 앉은 사람들은 내리지 않았다. 하예진이 나오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자가 창문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그녀는 마스크와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아마도 남들이 그녀들의 정체를 알아채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다.하예진은 그녀들이 누구인지 몰랐지만 강성 시민 중에는 그녀들을 알아볼 사람이 많았다.하예진이 다가가자 한 분이 눈웃음을 보이며 인사를 건네왔다.“예진 씨, 잠깐 얘기 나눌 수 있을까요?’예진은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누구신지? 얘기를 나누려면 누구신지 알아야죠”그들은 예진이랑 같이 따라 나온 사람들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여전히 마스크를 벗지 않았다.그때 조수석에 앉아 있던 여성분이 말을 건넸다.“혹시 이씨네 셋째 큰아버지랑 넷째 큰아버지를 기억하시나요?”그 두 사람은 이 가주랑 동년배지만 직계가 아니고 데릴사위도 아니기에 자신들의 성을 계속 유지하고 있었다.엄격히 말하면 셋째 큰아버지는 이 가주의 집안 동생이고 이 가주는 시집을 가는 것이 아니라 데릴사위를 들이기 때문에 그녀의 자식들은 그를 삼촌이라고 부르지 않고
“여보, 나도 이십몇 년 간의 남매 정을 생각해서 도와준 거야. 갈 데도 없고 돈도 없는데 불쌍하잖아. 당신이 싫다면 내가 내보낼게.”정일범은 아내 조윤이 엄마한테 이를까 봐 겁이 났다.외도 사실이 들통난 후 윤정이가 오빠들을 도와줬기에 조윤은 윤정이를 무척이나 미워했다.윤정의 처지가 딱하게 된 지금, 조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녀에게 더욱 심하게 굴 것이 뻔했다.하지만 조윤 탓을 할 수가 없었다. 반병 남짓 남았던 술을 아버지에게 갖다준 사람이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조윤은 차갑게 쏘아붙였다.“지금 당장 내보내요. 이후에도 연락하지 말고요, 그 애는 당신들의 동생이 아니잖아요. 당신들의 동생은 윤미라고요. 그 애 친아빠 때문에 당신들이랑 윤미가 이십 년이나 떨어져 살았는데 당연히 그 사람들을 싫어해야 하는거 아니에요? 윤미가 그 집에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그 사람들이 윤미한테 어떻게 했는지 생각해 봐요. 일범씨, 당신도 딸을 가진 아빠잖아요. 우리 딸이 다른 집에 바뀌어 가서 학대를 당했다고 생각해 봐요, 어떨 거 같아요?”정일범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곧 하인 부부에게 지시했다. “가서 윤정의 짐을 모두 정리해서 줘. 지금 당장 나가라고 해, 다시는 여기에 나타나지 말고.”윤미의 둘째 형수랑 셋째 형수도 자기 남편에게 눈치를 주었다.두 남자는 와이프한테 찰싹 붙어 실실 웃어대며 낮은 목소리로 다시는 윤정이를 집에 들이지 않겠다고 사과했다.윤정이는 절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그녀는 이제 진짜 끝장이라고 생각했다.오빠들도 도와주지 않고 일전한 푼도 없는 상황에 어떡하지?이제 진짜로 친엄마한테로 돌아가야 하는 건가? 형편이 나쁘지 않다고 하더라고 시골과 도시는 비교할 대상이 아니었다.어릴 적부터 좋은 환경에서 곱게 자란 그녀가 시골로 돌아가 생활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지만 지금으로써는 그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다. 돌아가지 않으면 클럽에서 일을 하는 수밖에 없었기
이윤정은 조윤을 노려보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조윤은 이윤정에게 더는 해명하지 않고 그 사실을 이윤정에게 알려준 다음 두 동서에게 걱정스레 말했다.“가요. 우리 들어가요. 밖이 추워 죽겠어요.”조윤은 몸을 돌려 뒤따라 나오는 김숙자에게 지시했다.“앞으로 제 동의 없이 이 천한 X을 우리 별장 안에 들여보내지 마세요. 일범 씨가 다시 감히 윤정이를 여기로 끌어들인다면 우리 어머님의 노여움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한 번 물어 보세요.”이윤정은 넋을 잃고 주저앉아버렸다.얼마 후 정일범 형제가 도착했다.그들은 땅바닥에 앉아 때로는 울고 때로는 웃는 이윤정을 보았다.그녀의 얼굴은 손가락 자국들로 가득했고 빨갛게 부어올랐다. 그리고 입가에는 핏자국이 있었으며 머리는 헝클어진 채로 옷도 너무 얇게 입어 입술이 퍼렇게 변해 제정신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정일범은 무척 가슴 아팠다.“윤정아.“세 형제는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구경꾼들은 조윤이 자리를 뜨자마자 흩어졌다.물론 이윤정에 대한 소문은 곧 강성에서 널리 퍼졌다.정일범은 양복 외투를 벗어 이윤정의 몸에 걸쳐주었고 그의 두 동생은 이윤정을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오빠.”이윤정은 정신을 차리더니 정일범의 품에 안겨 펑펑 울었다.“형수님, 형수님들이 나를 이렇게 때렸어.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오빠들이 바람피울 때 오빠 편을 들었다고 지금 내가 초라해진 틈을 타서 나에게 복수하는 거야. 내가 여기 있는 걸 아는 사람은 분명 이윤미일 거야. 이윤미와 형수님들이 연합해서 나를 상대하는 거라고. 오빠, 나와 아빠는 단지 오빠가 준 술 반병을 마신 것뿐인데 그렇게... 오빠가 나와 아빠를 함정에 빠뜨릴 리가 없잖아. 그럼 분명 형수님이 우리 술에 약을 탔을 거야.”정일범은 다급하게 이윤정의 말을 끊었다.“윤정아. 이런 일은 함부로 말하면 안 돼. 증거가 없으면 함부로 말하지 마. 엄마는 아직도 화가 안 풀리셨거든.”정일범도 조윤이 이윤정을 함정에 빠뜨린 사실을 알고 있다.지금 이윤정은 이
“넌 내 남편의 친동생이 아니야. 혈연이라고는 조금도 없어. 내 남편이 널 여기로 데려와 살면서도 나한테 한마디도 안 했어. 첩을 이 별장에 몰래 감춘 게 아니면 뭔데! 이 별장은 우리 어머님께서 우리에게 사주신 신혼 별장이고 부동산 소유증 위에도 내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나도 알 권리가 있어. 둘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나한테 말을 안 했어? 내 남편이 몰래 여기로 널 데려온 것으로 보면 너희 두 사람이 그렇고 그런 사이 아니야?”조윤은 이윤정이 이씨 가문에서 쫓겨난 이유를 감히 말하지 못하는 것을 알고 이윤정에게 죄를 덮어씌웠다.이윤정은 입이 열 개라도 해명하지 못할 것이다.그녀는 억울하다고 누군가의 음모에 말려든 것이라고 울부짖을 뿐 감히 다른 말은 내뱉지 못했다.이런 모습은 오히려 사람들이 조윤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하게 했고 이윤정을 보는 눈빛에는 혐오와 비난이 물들게만 했다.어떤 사람들은 이씨 가문의 예전 집사였던 이윤정의 친아버지가 나쁜 심보로 딸을 바꾸는 바람에 진정한 이씨 가문의 후계자인 이윤미가 고생하고 구박받으면서 자랐다고 여겼다. 하여 그 집사의 근본적인 인성부터 나쁘다고 비난했고 따라서 이윤정도 그 집사의 핏줄을 이어받아 아무리 이씨 가문에서 자랐다고 해도 환경과 상관없이 그 유전자가 나쁘다고 수군댔다.뿌리에서부터 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이윤정은 악랄한 표정으로 과거 그녀의 비위를 맞추던 조윤 일행을 노려보며 소리쳤다.“이제 만족해? 당신들은 날 무너뜨리고 싶어서 날 당신들의 계략에 빠지게 한 거지? 당신들이 진범이지?”사건이 일어난 뒤로 이윤정은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약을 타서 자신을 모함한 사람이 바로 조윤 일행이라고 추측했다.정군호의 술은 정일범이 준 술이고 가져왔을 때 이미 반병밖에 남지 않았다.그럼 정일범이 아니라면 분명 조윤일 것이다.조윤은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윤정아,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울어도 소리쳐도 아무런 소용도 없으니 엄청 화나지? 얼마 전에 우리에게 어떻게 대했는지 기억 안
예전에는 우아하고 오만하던 이씨 가문의 후계자였던 이윤정은 지금은 의지할 곳 없는 불쌍한 강아지처럼 어디로 가나 사람들에게 쫓겨나고 욕만 먹었다.“윤정이는요?“조윤이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뒤 정원에서 그네에 앉아 계세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저대로 한참을 앉아 계세요.”김숙자가 말을 마치기 무섭게 조윤 일행은 기세등등하게 뒤 정원으로 걸어갔다.김숙자는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하다가 재빨리 집 안으로 들어가 남편에게 알렸다. 그녀의 남편도 정일범에게 알릴지 말지 고민했다.결국, 두 사람은 정일범에게 전화를 걸었다.“큰 도련님, 큰사모님께서 둘째 사모님과 셋째 사모님과 함께 여기로 와서 다짜고짜 둘째 아가씨가 여기에 머물고 계시는지 물어보셨어요. 지금은 뒤 정원으로 둘째 아가씨 찾으러 가셨는데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겠어요. 큰 도련님, 얼른 돌아오세요.”정일범은 눈살을 찌푸리며 되물었다.“어떻게 아셨대요? 지금 바로 돌아갈게요.”조윤은 지금 이윤정을 무척 원망하고 있어서 과거의 감정이 사라진 지 오래다. 만약 정일범이 지금 돌아가지 않으면 이윤정은 아마 조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김여희와 박수아도 현장에 있었기 때문에 정일범은 두 남동생도 불러 함께 별장에 갔다.김숙자 부부는 정일범과의 통화를 마친 뒤로 밖으로 나갔는데 이윤정의 울부짖음과 욕설 소리를 들었다. 물론 욕설 퍼붓는 사람들은 조윤 일행이었다.김숙자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서둘러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대로 달려갔다.조윤 일행과 이윤정의 소리가 너무 컸는지 이웃들은 울음소리를 듣고 고개를 내밀었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밖으로 걸어 나왔다. 걷다 보니 결국 정일범 별장 입구까지 도착하게 되었다. 역시 남의 가십거리를 궁금해하는 것이 바로 사람의 본성인가 보다.이윤정이 아무리 오만하고 조윤 일행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고 해도 그녀들의 상대가 아니었다. 결국, 이윤정은 조윤에게 머리채까지 잡혀 비참하게 뒤 정원으로부터 앞 정원까지 끌려갔다.아파 죽을 지경이다!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