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희는 하예진에게 재벌가에 시집간 이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아들의 이혼을 끝까지 뜯어말렸을 텐데.만약 이혼하지 않고 처가의 도움으로 성씨 그룹에 들어갔더라면 수입도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어쩌면 연봉이 20억이 넘을지도 모른다.그녀는 다시 하예진과 재결합하라고 아들에게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당했고 서현주도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그 후로 김은희는 대놓고 얘기하는 대신 손자를 이용할 계획이었다.주형인이 주우빈을 자주 데려오고 또 데려다준다면 하예진과 자주 마주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알고 지낸 지 12년이나 되고 두 사람 사이에 아들도 있어 서로 마음이 진정되면 재결합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엄마, 우빈이 보고 싶으면 누나한테 예정이 가게에 데려다 달라고 하면 되잖아. 굳이 우빈이를 데리고 올 필요 없어. 데려와봤자 애를 잘 달래지도 못하면서. 애가 또 놀라면 큰일이야.”주형인은 그녀의 꿍꿍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하예진의 이모가 이경혜라는 사실을 듣고 주형인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하예진과 이혼한 건 후회하지 않았다. 그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여자는 서현주니까.그는 서현주와 남은 인생을 함께 보내고 싶었다. 하여 구정 후인 밸런타인데이에 구청에 가서 혼인신고부터 하고 나중에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었다. 그는 서현주에게 꼭 말한 대로 할 거라고 약속했었다.“엄마, 나 지금 바빠. 할 얘기 있으면 이따가 퇴근하고 다시 해.”더는 어머니의 잔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던 주형인은 그녀가 잔소리하기 전에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고개를 들자마자 서현주의 낯빛이 어두운 걸 보고는 재빨리 서현주를 잡아당겨 허벅지에 앉혔다.“현주야, 엄마가 뭐라 하든 신경 쓰지 마. 무슨 일이 있어도 내 마음은 변하지 않아.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너고 결혼할 여자는 너야. 엄마가 아니라.”“하예진한테 돈 많은 이모가 있다는 소리를 듣고 형인 씨 어머님이랑 누나 지금 다 후회하고 있죠? 걔는 정말 무슨 복이래요
그녀는 언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평소와 같은 여동생의 모습에 하예진도 조금 마음이 놓였다.“제부가 너한테 잘해주는 걸 봐서는 그런 작은 일로 너랑 싸울 사람은 아니야. 싸우지 않았다니 언니도 마음이 놓여.”하예정이 속으로 중얼거렸다.‘고작 그런 작은 일로 나랑 싸우는 게 태윤 씨야.’종일 연락도 없는 사람에게 그녀도 먼저 말을 걸고 싶진 않았다. 하예정은 자신에게 아무 잘못이 없다고 생각했다.부부가 처음 냉전했을 때 아무런 느낌도 없었지만 지난번에 김진우가 그녀에게 고백하는 걸 들켰을 땐 당황함을 감추지 못하고 다짜고짜 회사로 쫓아가 그에게 설명했었다.그리고 지금은 너무도 속상했다. 아무래도 감정이 생겨서 그런 모양이다.“예정아, 우빈이 내가 데리고 갈게. 나 가게 차리기로 했어. 가서 계획서 쓰려고.”“알았어. 숙희 아주머니랑 같이 가. 그래야 우빈이 언니한테 떼를 안 쓰지.”하예진은 동생의 호의를 거절하지 않았다.익숙한 환경에서 주우빈은 장난이 심하여 누군가 옆에서 돌봐야 했다.사실 숙희 아주머니는 하예정과 심효진이 저녁에 술 먹으러 간다는 소리를 듣고 어느 술집으로 가는지 궁금하여 남고 싶었다. 그런데 하예진네 집으로 가라고 하니 그대로 따르는 수밖에 없었다. 혹시라도 하예정이 의심하면 안 되니까.“아주머니가 운전해서 언니랑 우빈이 데려다줘요.”하예정이 차 키를 숙희 아주머니에게 건넸다.“전 이따가 효진 씨 차 타면 돼요.”‘아니, 잠깐, 이따가 술집 가서 술을 마시면 효진이도 운전 못 하는데.’“알았어요.”숙희 아주머니는 차 키를 받고 하예진 모자와 함께 서점을 나섰다.하예진의 월세방에 도착한 후 숙희 아주머니는 화장실에 간다는 핑계로 전태윤에게 몰래 문자했다.「도련님, 사모님이랑 효진 씨 저녁에 술 마시러 술집 간대요.」엊저녁 밤을 새운 전태윤은 오전까지 버텼지만 오후에는 버티지 못하고 의자에 기대 잠을 잤다.숙희 아주머니가 보낸 문자를 받긴 했지만 깊이 잠든 바람에 문자 알림 소리를 듣지 못하여 답장
“예정아, 넌 나가지 말고 여기 있어. 내가 해결할게.”심효진은 한마디 말을 남기고는 쏜살같이 서점 문 앞으로 달려가 김진우를 잡아당기더니 밖으로 끌어냈다.“누나.”김진우는 맥 한번 쓰지 못하고 사촌 누나에게 질질 끌려갔다. 멈추려고 애를 썼지만 심효진은 온 힘을 다해 그를 차 앞까지 끌어냈다.“차 문 열어.”심효진이 차가운 얼굴로 명령하듯 말했다. 그녀를 쳐다보는 김진우의 얼굴에 불만이 가득했다.“누나.”“차 문 열라고!”심효진이 다시 한번 진지하게 명령했다. 김진우보다 키가 훨씬 작았지만 기세만큼은 전혀 뒤지지 않았다. 그녀의 기에 짓눌린 김진우는 저도 모르게 차 문을 열었다.심효진은 차 문을 잡고 김진우를 가차 없이 밀어 넣었다.“난 누나 찾으러 온 거야. 예정 누나가 아니라.”심효진은 김진우를 억지로 조수석에 태운 후 안전벨트까지 매주었다.“제대로 앉아. 내리지 말고!”심효진은 조수석 차 문을 닫은 후 운전석에 탔다. 동작이 어찌나 깔끔하고 빠른지 아주 물 흐르듯이 단숨에 이루어졌다. 하예정이 가게에서 나왔을 때 심효진은 이미 차에 시동을 걸고 김진우와 가버렸다.하예정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김진우에게 여러 번이나 얘기했었지만 또 그녀를 찾으러 왔다. 이러다가 가게까지 옮겨야 하나? 심효진과의 사이가 틀어지게 만들려는 작정인가? 다행히 내일부터 학생들이 방학이라 가게에 나올 필요가 없이 집에서 공예품을 만들면 되었다.하예정은 이내 시선을 거두고 다시 정리에 몰두했다. 가게 문 앞에 놓인 진열대를 일일이 가게 안으로 옮겼다.심효진은 미친 듯이 차를 몰고 달렸다. 김진우가 여러 번이고 불렀지만 그녀는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누나.”김진우도 살짝 화를 내기 시작했다.“지금 어디 가는 거야? 얘기하고 있잖아, 왜 대꾸도 안 해? 예정 누나를 더는 사랑해선 안 된다고 해서 사촌 누나를 만나러 와도 안 돼?”“예정이가 가게에 있을 땐 오지 마.”심효진이 고개를 돌려 그를 째려보았다.“진우야, 예정이가 가게를 옮기길 원해? 아니
어릴 적부터 챙겨주고 지켜주어 사촌 누나와 정이 깊었다. 그에게 사랑하는 여자가 생겼으니 평소 같으면 많은 도움을 주었을 테지만 이번에는 응원하기는커녕 한사코 반대하고 뜯어말리는 것도 모자라 욕까지 했다.가뜩이나 사랑하는 하예정이 그에게 관심이 없어 속상한데 정이 깊은 사촌 누나의 응원까지 받지 못하니 더욱 절망에 빠졌다.“일이 잘 안 풀려서 하소연하고 싶으면 나한테 전화해도 되고 우리 집에 와도 되잖아. 내일 주말이라 가게 문 안 열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으면 내일 종일 시간 줄 테니까 마음껏 해. 그리고 너 일이 잘 풀릴 리가 있겠어? 정신이 딴 데 팔렸는데? 너 맨날 예정이한테 매달릴 궁리만 하잖아. 누나가 몇 번이나 얘기했어, 예정이는 유부녀라고. 걔는 너한테 그 어떤 마음도 없는데 이렇게 자꾸 매달려봤자 무슨 소용이야? 오히려 전에 쌓였던 정까지 다 떨어질 거야. 너 때문에 부부가 두 번이나 싸웠어. 넌 아무렇지 않겠지만 누나는 예정이한테 미안해.”김진우는 고개를 돌려 유리창 밖의 풍경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네온사인이 눈이 부시게 반짝였다.곧 구정이라 고향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는 사람도 많았고 돌아가지 않는 사람도 많았다.“누나, 나도 내가 통제가 안 돼. 이러면 안 된다는 것도 알고 남들이 예정 누나 가정에 끼어든 불륜남이라고도 하겠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거 못 참겠어. 말 섞지 않고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해, 난. 예정 누나랑 알고 지낸 지 십 년이 넘는데 내가 끼어들면 불륜남이라니... 불륜남은 전태윤이지. 누나랑 안 지 몇 개월이나 됐다고 대체 그 사람이 뭔데 누나를 빼앗아가냐고!”심효진은 운전만 하지 않았더라면 당장이라도 김진우를 수돗가로 끌고 가 차가운 물에 담가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알고 지낸 시간이 길든 짧든 사랑은 인연이야. 너랑 예정이는 인연이 없어. 설령 평생 알고 지낸다 해도 안 돼. 전태윤 씨가 없었더라도 너랑 예정이는 불가능해. 왜 그걸 아직도 모르고 자꾸 매달리는 건데? 예정이는 널 사랑하지 않아.
심효진은 쏜살같이 달려 김씨 별장에 도착했다. 주차한 후 먼저 하예정에게 30분 뒤에 갈 테니까 가게에서 기다리라고 문자를 보냈다.그러자 하예정이 알겠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심미란은 마침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매일 저녁 마작을 하지 않으면 파티에 참석하거나 남편의 술자리에 동행하곤 했다.문 앞에 세워진 아들의 차에서 조카가 내리는 걸 본 심미란은 의아해하다가 이내 다정하게 웃었다.“효진아, 어떻게 진우랑 같이 왔어?”그러고는 뒤따라 내리는 아들에게 말했다.“네 아빠가 네가 퇴근하자마자 안 보인다고 하더라. 진우야, 아빠 요즘 해야 할 일이 많으셔. 그러니까 아빠 많이 도와서 걱정 좀 덜어드려.”남편이 말하길 전에는 김씨 그룹 계열사와 전씨 그룹이 거래가 많았었는데 요즘은 어찌 된 영문인지 전씨 그룹에서 일방적으로 협력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창 준비하고 있는 몇몇 프로젝트 중에서 두 프로젝트가 계약 직전까지 진행됐지만 결국 전씨 그룹에 빼앗기고 말았다.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뺏고 빼앗기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씨 그룹이 먼저 협력을 중단하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프로젝트까지 빼앗아갔다는 건 김씨 그룹을 겨냥한다는 걸 대놓고 통보하는 거나 다름없었다.김씨 그룹과 전씨 그룹의 협력이 그리 깊진 않았는데 주요하게 업무가 달라서였다. 하지만 전씨 그룹에서 외부에 보낸 메시지에 김씨 그룹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김씨 그룹이 전씨 그룹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지 다들 궁금해했다.전씨 그룹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기업은 성씨 그룹밖에 없다. 성씨 그룹은 기반이 탄탄하고 후계자도 대단한 사람이라 전태윤과 견주어볼 만했다. 그런데 성씨 그룹과도 비교가 안 되는 김씨 그룹이 전씨 그룹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건 자멸하겠다는 뜻이 아닌가?내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몰래 내기를 시작했다. 김씨 그룹이 전씨 그룹과 적대시하면 몇 년을 버틸 수 있는가 하는 내기였다.심미란은 남편이 외부의 여러 추측에 대응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씨 그룹과
“고모부는 아직 안 들어왔어요?”“저녁 약속이 있어서 아마 12시 전에는 안 들어올 거야.”김진우에게 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다. 겨울 방학이라 친구들과 여행 갔는데 구정 전에 돌아온다고 한다.하여 집 안에 그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심미란과 심효진이 소파에 앉았고 김진우는 두 사람 옆에 앉아 긴장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효진아, 할 얘기가 뭐야?”“고모, 일단 이 얘기부터 할게요. 이 일은 예정이 잘못이 아니니까 듣고 나서 화가 나시더라도 아들한테만 화내셔야 해요. 절대 예정이한테 화풀이해서는 안 돼요.”심효진은 하예정을 지키려고 고모에게 사전 주의를 주었다.“혹시라도 고모가 예정이한테 화풀이한다면 앞으로 다시는 고모 집에 오지 않을 거예요.”심미란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대체 뭔데 이리 심각해? 고모가 왜 예정이한테 화를 내? 예정이랑 너 십몇 년 지기 친구이고 고모도 예정이 크는 걸 봐왔어. 속이 깊은 아이라서 예뻐해도 모자랄 판에 화를 내다니. 어서 얘기해 봐. 대체 무슨 일이야? 진우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예정이 얘기까지 나와?”심효진이 얘기하려던 그때 김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는 어머니를 보며 진지하게 얘기했다.“엄마, 나 예정 누나 사랑해. 짝사랑한 지 몇 년이나 됐어. 그런데 효진 누나가 자꾸 반대해. 엄마도 나랑 예정 누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엄마 예정 누나 예뻐한다고 했잖아. 그럼 나랑 예정 누나 허락해줄 수 있어?”그의 말에 심미란의 얼굴에 머금고 있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 심미란이 먼저 고개를 돌려 조카에게 물었다.“효진아, 예정이 결혼한 거 아니었어?”“결혼했어요. 그리고 초고속 결혼한 남편이랑 지금 사이도 엄청 좋아요. 진우의 고백을 거절했는데도 진우는 포기하지 않아요.”심미란이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보았다. 김진우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그런데 그때 심미란이 아들의 따귀를 때리려 했지만 그만 어깨에 빗맞고 말았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김진우가 중심을 잃고 소파
“고모, 진우 차를 타고 온 바람에 제 차는 두고 왔어요. 기사님한테 저 좀 가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주세요.”심미란은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도우미를 불렀다. 그러고는 도우미더러 운전기사에게 얘기하여 심효진을 데려다주라고 했다.심효진이 떠난 후 심미란은 또 한 번 아들의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부었다.“김진우, 엄마가 화가 나서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예정이가 너보다 세 살 많고 가정 배경도 안 좋은데 너 눈이 삐었어? 예정이를 좋아하게?”“엄마, 엄마도 예정이 누나 좋아한 거 아니었어? 세 살 많으면 어때? 서른 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예정 누나 가정 배경이 뭐가 안 좋아? 불법을 저지른 것도 없고 조상들도 평범한 농민 출신에 법을 어긴 짓을 한 적이 없는 청렴한 집안이야.”심미란은 너무도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엄마가 걔를 예뻐한 건 효진이 친구니까 조카처럼 생각한 거야.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았더라면 절대 못 만나게 했어. 김진우, 당장 그 마음 접어. 예정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엄마는 두 사람 허락 못 해. 예정이 본가 식구들이 하나같이 다 진상이야. 그런 집안이랑 사돈을 맺으면 평생 재수 없어. 예정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애가 바른 애라는 건 엄마도 알아. 하지만 너랑 어울리지 않아. 넌 김씨 가문의 도련님이고 이 집안의 후계자야. 앞으로 너의 짝은 반드시 재벌 집 딸이어야만 해.”“예정이가 너한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어? 아무것도 못 줘. 네가 아무 배경 없는 여자랑 결혼하는 거 엄마는 절대 허락 안 해. 네가 예정이랑 결혼하고 그 집 친척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모른 척한다고 해도 우리 사돈이라는 명분으로 밖에서 온갖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닐 거야. 그러면 우리 김씨 가문의 명성에도 안 좋아.”김진우가 말했다.“엄마, 나 예정 누나 사랑해. 예정 누나한테 바라는 것도 없고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어. 예정 누나가 본가 친척들이랑 관계가 안 좋다는 거
어떤 일은 굳이 겪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의지할 데가 없는 하예정과 달리 그의 어머니는 김씨 가문의 사모님이다. 김씨 가문은 하예정에 비해 돈도 있고 권력도 있다. 만약 심미란이 마음먹고 하예정을 못살게 군다면 하예정은 아마 버티지 못하고 관성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노력이 아니라 반드시 접어야 해, 반드시!”심미란이 명령조로 말했다. 평소에도 말한 대로 이행하는 그녀는 바로 두 경호원을 불렀다.“지금부터 진우를 24시간 따라다녀. 관성 중학교 문 앞에 가기만 하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김진우의 낯빛이 어둡기 그지없었다.그 시각, 김씨 가문의 운전기사가 심효진을 가게까지 데려다주었다.하예정은 가게 문 앞의 진열대를 전부 가게 안으로 옮긴 후 공예품 재료와 공구도 정리했다. 그리고 냉장고 안의 남은 채소와 간식 등도 전부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갈 준비를 했다.내일부터 가게 문을 열지 않고 구정이 지나 학생들이 개학하면 다시 열 생각이었다.“예정아, 다 정리했어?”“응. 이 물건들은 일단 네 차에 실을까? 아니면 내일 다시 와서 가져갈까?”“내 차에 둬. 이따가 널 집에 데려다줄 때 다 갖고 가.”하예정은 심효진의 차에 물건을 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술 마시러 가는데 날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음주 운전이면 네 차 못 타.”“대리운전 불러야지.”하예정은 문득 강일구가 떠올랐다.“강일구 씨 대리 운전기사야. 우리 남편도 그 사람이 꽤 믿음직스럽다고 하더라고. 이따가 다 마시고 강일구 씨한테 전화해서 대리운전을 해달라고 할게.”심효진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대리운전을 해줄 사람 이미 찾았어.”“누군데?”“내 동생 불렀어. 지누 바에서 기다리라고 했거든. 걔 알코올 알레르기 있어서 술 못 마셔. 그리고 내 친남동생이라서 우리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도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여자끼리 술집에 가서 술 좀 마시는 건 괜찮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해. 취하면 사고 나기 쉽거든.”사실 심효진도 술집은 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