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은 쏜살같이 달려 김씨 별장에 도착했다. 주차한 후 먼저 하예정에게 30분 뒤에 갈 테니까 가게에서 기다리라고 문자를 보냈다.그러자 하예정이 알겠다는 이모티콘을 보냈다.심미란은 마침 외출하려던 참이었다. 매일 저녁 마작을 하지 않으면 파티에 참석하거나 남편의 술자리에 동행하곤 했다.문 앞에 세워진 아들의 차에서 조카가 내리는 걸 본 심미란은 의아해하다가 이내 다정하게 웃었다.“효진아, 어떻게 진우랑 같이 왔어?”그러고는 뒤따라 내리는 아들에게 말했다.“네 아빠가 네가 퇴근하자마자 안 보인다고 하더라. 진우야, 아빠 요즘 해야 할 일이 많으셔. 그러니까 아빠 많이 도와서 걱정 좀 덜어드려.”남편이 말하길 전에는 김씨 그룹 계열사와 전씨 그룹이 거래가 많았었는데 요즘은 어찌 된 영문인지 전씨 그룹에서 일방적으로 협력을 중단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한창 준비하고 있는 몇몇 프로젝트 중에서 두 프로젝트가 계약 직전까지 진행됐지만 결국 전씨 그룹에 빼앗기고 말았다.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뺏고 빼앗기는 건 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전씨 그룹이 먼저 협력을 중단하는 것도 모자라 대놓고 프로젝트까지 빼앗아갔다는 건 김씨 그룹을 겨냥한다는 걸 대놓고 통보하는 거나 다름없었다.김씨 그룹과 전씨 그룹의 협력이 그리 깊진 않았는데 주요하게 업무가 달라서였다. 하지만 전씨 그룹에서 외부에 보낸 메시지에 김씨 그룹은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김씨 그룹이 전씨 그룹의 심기를 건드린 건 아닌지 다들 궁금해했다.전씨 그룹에 도전장을 내밀 수 있는 기업은 성씨 그룹밖에 없다. 성씨 그룹은 기반이 탄탄하고 후계자도 대단한 사람이라 전태윤과 견주어볼 만했다. 그런데 성씨 그룹과도 비교가 안 되는 김씨 그룹이 전씨 그룹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건 자멸하겠다는 뜻이 아닌가?내기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벌써 몰래 내기를 시작했다. 김씨 그룹이 전씨 그룹과 적대시하면 몇 년을 버틸 수 있는가 하는 내기였다.심미란은 남편이 외부의 여러 추측에 대응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전씨 그룹과
“고모부는 아직 안 들어왔어요?”“저녁 약속이 있어서 아마 12시 전에는 안 들어올 거야.”김진우에게 대학교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다. 겨울 방학이라 친구들과 여행 갔는데 구정 전에 돌아온다고 한다.하여 집 안에 그들 말고 아무도 없었다. 심미란과 심효진이 소파에 앉았고 김진우는 두 사람 옆에 앉아 긴장한 얼굴로 어머니를 쳐다보았다.“효진아, 할 얘기가 뭐야?”“고모, 일단 이 얘기부터 할게요. 이 일은 예정이 잘못이 아니니까 듣고 나서 화가 나시더라도 아들한테만 화내셔야 해요. 절대 예정이한테 화풀이해서는 안 돼요.”심효진은 하예정을 지키려고 고모에게 사전 주의를 주었다.“혹시라도 고모가 예정이한테 화풀이한다면 앞으로 다시는 고모 집에 오지 않을 거예요.”심미란이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대체 뭔데 이리 심각해? 고모가 왜 예정이한테 화를 내? 예정이랑 너 십몇 년 지기 친구이고 고모도 예정이 크는 걸 봐왔어. 속이 깊은 아이라서 예뻐해도 모자랄 판에 화를 내다니. 어서 얘기해 봐. 대체 무슨 일이야? 진우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예정이 얘기까지 나와?”심효진이 얘기하려던 그때 김진우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는 어머니를 보며 진지하게 얘기했다.“엄마, 나 예정 누나 사랑해. 짝사랑한 지 몇 년이나 됐어. 그런데 효진 누나가 자꾸 반대해. 엄마도 나랑 예정 누나를 허락하지 않는다면서. 엄마 예정 누나 예뻐한다고 했잖아. 그럼 나랑 예정 누나 허락해줄 수 있어?”그의 말에 심미란의 얼굴에 머금고 있던 미소가 점점 굳어졌다. 심미란이 먼저 고개를 돌려 조카에게 물었다.“효진아, 예정이 결혼한 거 아니었어?”“결혼했어요. 그리고 초고속 결혼한 남편이랑 지금 사이도 엄청 좋아요. 진우의 고백을 거절했는데도 진우는 포기하지 않아요.”심미란이 고개를 돌려 아들을 쳐다보았다. 김진우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그런데 그때 심미란이 아들의 따귀를 때리려 했지만 그만 어깨에 빗맞고 말았다. 어찌나 세게 내리쳤는지 김진우가 중심을 잃고 소파
“고모, 진우 차를 타고 온 바람에 제 차는 두고 왔어요. 기사님한테 저 좀 가게까지 데려다 달라고 해주세요.”심미란은 차오르는 분노를 가라앉히고 도우미를 불렀다. 그러고는 도우미더러 운전기사에게 얘기하여 심효진을 데려다주라고 했다.심효진이 떠난 후 심미란은 또 한 번 아들의 뺨을 때리며 욕설을 퍼부었다.“김진우, 엄마가 화가 나서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예정이가 너보다 세 살 많고 가정 배경도 안 좋은데 너 눈이 삐었어? 예정이를 좋아하게?”“엄마, 엄마도 예정이 누나 좋아한 거 아니었어? 세 살 많으면 어때? 서른 살 많은 것도 아닌데. 그리고 예정 누나 가정 배경이 뭐가 안 좋아? 불법을 저지른 것도 없고 조상들도 평범한 농민 출신에 법을 어긴 짓을 한 적이 없는 청렴한 집안이야.”심미란은 너무도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엄마가 걔를 예뻐한 건 효진이 친구니까 조카처럼 생각한 거야. 너랑 무슨 상관이라고. 네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걸 엄마가 알았더라면 절대 못 만나게 했어. 김진우, 당장 그 마음 접어. 예정이가 결혼하지 않았더라도 엄마는 두 사람 허락 못 해. 예정이 본가 식구들이 하나같이 다 진상이야. 그런 집안이랑 사돈을 맺으면 평생 재수 없어. 예정이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셨지만 애가 바른 애라는 건 엄마도 알아. 하지만 너랑 어울리지 않아. 넌 김씨 가문의 도련님이고 이 집안의 후계자야. 앞으로 너의 짝은 반드시 재벌 집 딸이어야만 해.”“예정이가 너한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어? 아무것도 못 줘. 네가 아무 배경 없는 여자랑 결혼하는 거 엄마는 절대 허락 안 해. 네가 예정이랑 결혼하고 그 집 친척들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가 모른 척한다고 해도 우리 사돈이라는 명분으로 밖에서 온갖 파렴치한 짓을 하고 다닐 거야. 그러면 우리 김씨 가문의 명성에도 안 좋아.”김진우가 말했다.“엄마, 나 예정 누나 사랑해. 예정 누나한테 바라는 것도 없고 도움을 받을 생각도 없어. 예정 누나가 본가 친척들이랑 관계가 안 좋다는 거
어떤 일은 굳이 겪지 않아도 잘 알고 있다.의지할 데가 없는 하예정과 달리 그의 어머니는 김씨 가문의 사모님이다. 김씨 가문은 하예정에 비해 돈도 있고 권력도 있다. 만약 심미란이 마음먹고 하예정을 못살게 군다면 하예정은 아마 버티지 못하고 관성을 떠나야만 할 것이다.“노력이 아니라 반드시 접어야 해, 반드시!”심미란이 명령조로 말했다. 평소에도 말한 대로 이행하는 그녀는 바로 두 경호원을 불렀다.“지금부터 진우를 24시간 따라다녀. 관성 중학교 문 앞에 가기만 하면 바로 나한테 보고해.”김진우의 낯빛이 어둡기 그지없었다.그 시각, 김씨 가문의 운전기사가 심효진을 가게까지 데려다주었다.하예정은 가게 문 앞의 진열대를 전부 가게 안으로 옮긴 후 공예품 재료와 공구도 정리했다. 그리고 냉장고 안의 남은 채소와 간식 등도 전부 봉투에 담아 집에 가져갈 준비를 했다.내일부터 가게 문을 열지 않고 구정이 지나 학생들이 개학하면 다시 열 생각이었다.“예정아, 다 정리했어?”“응. 이 물건들은 일단 네 차에 실을까? 아니면 내일 다시 와서 가져갈까?”“내 차에 둬. 이따가 널 집에 데려다줄 때 다 갖고 가.”하예정은 심효진의 차에 물건을 실으며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술 마시러 가는데 날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어? 음주 운전이면 네 차 못 타.”“대리운전 불러야지.”하예정은 문득 강일구가 떠올랐다.“강일구 씨 대리 운전기사야. 우리 남편도 그 사람이 꽤 믿음직스럽다고 하더라고. 이따가 다 마시고 강일구 씨한테 전화해서 대리운전을 해달라고 할게.”심효진이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대리운전을 해줄 사람 이미 찾았어.”“누군데?”“내 동생 불렀어. 지누 바에서 기다리라고 했거든. 걔 알코올 알레르기 있어서 술 못 마셔. 그리고 내 친남동생이라서 우리가 인사불성이 될 정도로 취해도 걱정할 필요 없어. 우리 여자끼리 술집에 가서 술 좀 마시는 건 괜찮지만 그래도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 해. 취하면 사고 나기 쉽거든.”사실 심효진도 술집은 별로
하예정에게 ‘삐돌이’라는 별명이 붙여진 전태윤은 사무실에서 몇 시간이나 자고 나서야 깨어났다. 눈을 떠보니 두꺼운 외투를 덮고 있었는데 누군가 덮어준 모양이다. 그는 외투를 옆으로 밀어내고는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밤 9시네.”전태윤이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렇게나 오래 잘 줄은 생각지 못했다.테이블 위에 보온 도시락이 놓여있었는데 계열사 대표가 사 온 저녁이었다. 아무래도 그가 너무 곤히 자서 깨우지 않고 그냥 놓고 간 모양이다. 그가 덮고 있었던 두꺼운 외투도 계열사 대표가 덮어준 듯싶다.전태윤은 자세를 고쳐잡고 몇 분 동안 멍하니 앉아있다가 몸을 일으켰다. 정신을 차리려고 먼저 화장실에 가서 찬물로 세수했다. 그러고는 몇 분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테이블 앞에 다시 앉은 그는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밥과 반찬에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었다.그는 식사하며 휴대 전화를 꺼내 카카오톡을 확인했다. 임원들이 보낸 일에 관한 문자 말고도 남동생들이 보낸 문자도 있었다.모든 문자를 확인한 전태윤의 눈빛이 어두웠다. 하예정의 문자가 단 한 통도 없었기 때문이다. 숙희 아주머니는 분명 하예정의 화가 풀렸다고 했었는데.지금 이 시각 가게에서 공예품을 만들 거나 언니네 집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내가 누군지도 기억 못 하는 건 아니겠지...’전태윤은 가슴이 답답하기만 했다.카카오톡을 나오자 다른 메시지가 와 있어 무심결에 클릭했는데 숙희 아주머니가 보낸 문자였다. 숙희 아주머니가 오후에 보냈지만 너무 깊이 자는 바람에 알림 소리를 듣지 못했다.「도련님, 사모님이랑 효진 씨 저녁에 술 마시러 술집 간대요.」짧은 문자 한 줄이었지만 전태윤의 낯빛이 확 굳어졌다. 그는 식사도 채 하지 않고 바로 숙희 아주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연결음이 한참 울리고 나서야 숙희 아주머니가 전화를 받았다.“도련님, 밖에 쓰레기를 버리고 오겠다고 핑계 대고 나와서 도련님 전화를 받았어요.”숙희 아주머니가 말을 이었다.“도련님, 왜
말문이 막힌 소정남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두 사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사이도 점점 가까워지면서 애정행각도 서슴지 않더니 갑자기 싸웠다고? 어쩐지 형수님이 술집에 간다더라니, 다 너 때문이었구나.”전태윤이 말했다.“일단 두 사람 지금 어느 술집인지, 언제 갔는지, 취했는지부터 알아봐 줘. 알아내면 바로 나한테 연락하고.”“알았어. 지금 당장 알아볼게.”소정남은 전화를 끊자마자 두 사람이 어느 술집으로 갔는지 알아보라고 부하들에게 분부했다.소정남의 연락을 기다리는 동시에 전태윤은 전용기 스태프에게 연락하여 분부했다.“지금 당장 돌아갈 준비를 해요. 십여 분 후에 관성으로 돌아갈 겁니다.”출장 갈 때 공항까지 바래다주겠다는 하예정을 거절한 건 먼저 회사로 가봐야 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또 하나는 티켓을 끊지 않아서였다. 왜냐하면 늘 전용기를 타고 출장을 다녔기 때문이다.전태윤의 연락을 받은 스태프들은 재빨리 준비에 돌입했다. 전태윤은 모든 준비를 마친 후 하예정에게 전화하기 시작했다.그 시각 하예정은 심효진, 그리고 심효진의 남동생 심서준과 함께 술집에서 한창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술을 마실 수 없었던 심서준은 옆에 가만히 앉아 연거푸 술을 들이켜는 두 누나를 바라만 보았다. 특히 예정 누나는 물을 마시듯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심서준이 참다못해 하예정을 말렸다.“예정 누나, 너무 많이 마시지 마. 얼굴이 빨갛게 된 것 좀 봐. 누나 주량이 별로지? 더 마셨다간 취해.”그러자 하예정이 히죽 웃었다.“술에 취하면 온갖 걱정을 잊을 수 있잖아. 오늘 밤 제대로 취해서 전태윤이 누군지조차 잊고 싶어.”심서준이 심효진을 쳐다보자 그녀는 동생의 어깨를 토닥였다.“예정이가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누나도 오늘 예정이랑 끝까지 달릴 거니까 넌 그냥 옆에서 보기만 해. 말릴 필요 없어. 내일 숙취 때문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도 그건 얘 일이야. 아무도 얘한테 술로 기분 풀라고 한 사람 없어.”심서준은 말을 잇지 못했다. 하예정이 절친의 어깨에 손을
전태윤이 더는 걸지 않고 포기하려던 그때 다행히 소정남의 연락을 받았다.“정남아, 두 사람 지금 어느 술집이래?”전태윤이 전화를 받자마자 다급하게 물었다. 다급한 그의 목소리에 소정남이 기회를 놓칠세라 바로 장난쳤다.“아주 급해 죽겠지? 당장이라도 돌아오고 싶지?”“소정남!”지금 이 상황에 장난을 치다니.전태윤은 너무 조급한 나머지 당장 하늘을 날아서라도 관성에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소정남이 헤벌쭉 웃으며 말했다.“아주 흔치 않은 일이잖아. 형수님 말고는 널 이토록 조급하게 할 사람이 없어.”전태윤은 늘 끄트머리에 가서야 조금이나마 표정 변화가 있었다. 그가 조급해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정말 거의 없다.“지금 지누 바에 있고 30분 전에 도착했어. 효진 씨 말고도 효진 씨 친남동생도 같이 있어.”그의 말에 전태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효진 씨 동생 몇 살이야?”‘효진 씨한테 뭔 동생이 이렇게나 많아?’사촌 동생인 김진우는 심효진과 하예정이 절친인 바람에 하예정을 알게 되었고 사랑하기까지 했다. 전태윤은 연적이 또 한 명 나타날까 걱정되었다.“효진 씨보다 서너 살 정도 어릴걸? 아무튼 성인이야. 효진 씨 남동생이 몇 살인 건 알아서 뭐 하게? 그건 내가 알아야 하는 거 아니야? 미래 처남이 될지도 모르는 동생한테 잘해줘야 하니까. 아, 알았다. 김진우 때문에 그러는 거지? 그래서 효진 씨 동생이라면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지?”전태윤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넌 연적이 없어서 내 기분 몰라.”소정남은 어이가 없었다.“무슨 말을 그렇게 해...”그는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몰라 망설였다.“지누 바 사장이 소지훈 씨 아니야?”술집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섞여 있는 곳이라 복잡했지만 소식을 빨리 알아내기엔 그만한 데가 없었다.“응. 형 명의로 된 거라서 형수님이 거기서 술을 마시고 있다는 걸 더 빨리 알아냈어. 내가 대충 계산해봤는데 지금쯤 아마 대여섯 잔은 마셨을 거야. 형수님 주량은 어때? 많이
“아직은 너무 멀쩡해서 두 잔 더 마셔도 안 취해.”“그만 마셔. 그냥 두어 잔 정도 마시러 왔잖아. 많이 마시면 몸 상해.”하예정이 그녀를 그윽하게 쳐다보았다. 심효진은 잠깐 침묵하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동생에게 하예정을 잘 지켜보라고 했다.잠시 후 심효진은 펜과 종이 몇 장, 그리고 술 한잔을 들고 돌아왔다.“이 잔만 마시고 그만 마셔. 그림이나 그리게 종이 몇 장 가져왔어.”“누나, 예정이 누나 취했는데 그림 그릴 수 있어?”하예정은 자신이 멀쩡하다고 얘기했지만 사실은 이미 취한 상태였다.심효진은 남동생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펜과 종이를 하예정에게 건넸다. 펜과 종이를 받아든 하예정은 술도 마시지 않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먼저 새알 하나를 그렸다.심서준은 아무 말 없이 멍하니 쳐다보았다.취하고 나서 새알을 그리는 것쯤은 쉬웠다. 그도 쉽게 그릴 수 있을 것 같았다.하예정은 새알 하나를 그린 후 계속하여 호수를 그렸다. 호수 면에 특별히 동그라미를 많이 그렸는데 호수 바닥까지 동그라미가 가득했다. 마지막에는 호수 앞의 빈자리에 사람과 개를 그렸다.그 모습에 심서준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누나, 예정이 누나 술만 마시면 그림 그리기 좋아해?”심효진이 고개를 끄덕였다.“욕하고 싶지만 욕이 안 나올 때 펜과 종이를 주면 그림으로 풀거든. 한참 그리고 나면 기분이 풀려.”심서준은 말문이 막혀버렸다.‘정말 별난 사람이 다 있어.’심효진이 하예정을 이해하길래 망정이지, 그라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하예정은 모든 정신을 집중하여 인물을 그렸다. 심효진은 굳이 가까이 가서 보지 않아도 전태윤을 그리고 있다는 걸 알았다. 심서준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하예정의 그림을 빤히 들여다보았다.전태윤의 상반신을 그린 하예정은 빤히 살펴보다가 심장 쪽에 심장 하나를 그렸다. 하지만 너무도 작아 잘 보이지 않았다.그녀는 펜을 내려놓고 새 술잔을 들고 마시며 자신의 작품을 감상했다. 이번에 드디어 비슷하게 그린 것 같다. 전에는
이윤미는 제법 잘 꾸민 정군호가 젊어 보이면서도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다. 이윤미는 정군호가 이은화보다 십여 세 어린 여자를 껴안은 여자 사진을 보더니 혼자 중얼거렸다.“영감님이 젊었을 때는 보기 드문 미남이었겠네. 지금도 나이가 들었지만 잘 차려입으니 너무 잘생겼군.”어쩐지 이은화가 매우 엄격하게 다스리더라니.밖에서 아들이 준 돈으로 여자와 바람을 핀 사실을 이은화가 알아버린다면 이은화는 어떤 느낌일까?같은 시간, 관성.관성 호텔에서 서원 리조트로 돌아온 하예정은 방으로 돌아가 잠을 잤다.하예정은 여전히 너무 졸렸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방으로 돌아갔다.하예정이 방에 들어가 바로 침대에 올라가서 자려는 모습을 본 전태윤은 침대에 다가가 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졸리면 차에서 자도 되는데. 집에 도착하면 내가 안아서 침대에 눕혀줄 텐데.”“겨우 버티며 왔어요. 여보, 나 좀 잘게. 당신도 잘래요? 안 자면 서재에 가서 책 좀 보시겠어요?”전태윤은 그녀를 부드럽게 바라보며 말했다.“얼른 자. 난 안 졸려.”하예정은 눈을 감더니 이내 잠이 들었다.하예정이 몇 분 만에 달콤하게 잠든 것을 보고 전태윤은 몸을 숙여 그녀의 이마에 뽀뽀해 주었다. 그리고 손을 하예정의 평평한 아랫배에 올려놓으며 그녀의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였다.“예정아, 수고했어.”전태윤은 그 자리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다시 몸을 일으켜 침에서 나와 작은 서재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들이 놓여 있었다. 그 책들은 임신에 관한 지식 책이었다. 전태윤은 이미 다 읽었지만 여러 번 반복해서 읽었다.전태윤은 책 한 권의 내용을 모두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이 임신하기 전에 전태윤은 임신에 관한 지식에 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러나 하예정이 임신한 후에는 비록 많은 사람이 전태윤을 도와 함께 하예정을 돌봤지만, 그는 여전히 직접 아내를 돌보고 싶었다.그리고 서점으로 달려가 임신과 관련된 책들을 많이 사고는 소정남을 찾아가 소정남이 산 책들이 자신이 산 책과 비슷한 것을
이윤정은 전호영을 언급할 때 마다 이를 악물면서 전호영이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고현을 빼앗아 갔다면서 욕설을 퍼부었다.“윤미 씨 아버지께서 바람난 일을 전호영 도련님께 맡겨보는 건 어떠세요? 전호영 도련님은 안팎으로 이씨 가문을 괴롭히거든요.”이씨 가문 사람들에게는 전호영이 적수나 다름없다.이씨 가문과 이경혜 자매의 관계, 그리고 이윤미가 관성 쪽에 대한 태도를 생각하던 방윤림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방윤림은 아마도 이윤미가 관성 쪽의 사람들과 적수가 되지는 않을 것 같다고 여겼다.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조사하려고 했다.방윤림은 만약 전임 가주가 이은화의 손에 죽었다는 증거가 나오기만 하면 이윤미가 더는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되지 않을 것이며 또한 이씨 가문을 떠나 그녀의 작은 세계로 돌아가리라 추측했다.아니, 그녀가 반드시 원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고 확신했다.이윤미는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연약한 사람이 아니다.사실, 이씨 가문에 돌아가기 전에 이윤미는 이미 사업에 성공한 젊은 여자였다. 이윤미의 양부모가 늘 그녀의 피를 빨아들이려는 생각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회사의 대표라는 사실을 계속 숨기고 있었다.이윤미는 사람들이 그녀를 연약하고 무능한 사람인 줄로 알게 하여 이씨 가문의 후계자가 이윤정일 수도 있으리라 추측하게 했다.그러나 이씨 가문의 철칙은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일이다.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기도 했고 또한 이윤정의 능력도 훌륭하지 못했다. 그러나 이윤정이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그녀가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닌 것이 밝혀진 이상 이씨 가문을 이어받을 자격을 잃게 될 것이다.이윤미가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요. 호영 씨도 이 사실을 알아 버린 이상 모른 체 하지 않을 거예요. 호영 씨는 원래 이씨 가문이 잘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끼어들지 않아도 스스로 그 사실을 터뜨릴 겁니다.”“우리가 아무런 수를 쓰지 않아도 증거가 호영 씨의 손에 있는 이상 가만히 있지
아무튼, 그 여자가 어느 우두머리의 내연녀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정군호도 몰랐을 것이다. 아니면 그런 사람의 내연녀를 건드리지는 않았을 것이다.영상과 사진을 본 이윤미는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냥 놔둬요. 제 카카오톡 기록도 삭제할 거예요. 제가 만약 저장해 두면 우리 어머니께서 돌아와서 저를 의심하게 되면서 제 휴대전화를 볼 수도 있으니까요.]방윤림이 회답했다.[제가 이미 저장했습니다. 윤미 씨는 식사하셨어요?”[먹고 있어요. 배달시켰거든요.]방윤림은 눈살을 찌푸렸다.[자꾸 배달 음식을 시키지 마세요. 회사에 식당도 있는데... 정 시간이 안 되면 미리 말씀해 주세요. 앞으로 제가 매일 요리를 해서 가져다드리겠습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낸 메시지를 보며 마음이 따뜻해졌다.이씨 가문에 돌아온 뒤로 이윤미는 고군분투했다. 아무도 그녀를 관심해 주지 않았다.이은화조차도 진정으로 이윤미와 한마음이 아니었다.이은화는 이윤미 혼자만의 어머니가 아니었고 오빠와 이윤정이 어머니이기도 했다.이윤정은 이은화의 앞에서 자연스럽게 애교를 부릴 수 있었지만, 이윤미는 그런 애교를 부릴 수 없었다.다행히도 방윤림이 이윤미의 곁으로 와주었다.이윤미는 방윤림이 그녀의 곁에 있는 의미를 깨달은 뒤로 그에 대한 믿음이 가족보다 더 깊어졌고 방윤림 또한 그녀를 많이 도와줬다.방윤림이 처음 이윤미의 곁에 왔을 때 이윤미에게 앞으로 누구든 이윤미의 곁은 떠날 수 있겠지만, 방윤림만은 이윤미를 떠나지 않겠다고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방윤림이 이윤미 곁으로 파견된 그 순간부터 그는 죽지 않는 한 이윤미에게 충성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만약 방윤림이 죽는다고 해도 누군가가 재빨리 그를 대신할 것이기 때문에 이윤미의 곁에는 늘 충성을 다 하는 심복이 따라다닐 것이다.방윤림은 모든 것을 할 줄 아는 진정한 능력자였다.물론 요리 실력도 훌륭하기 때문에 그가 한 요리는 매우 맛있었다.이윤미는 타자속도가 너무 늦다고 느껴 음성통화를 걸었다.
고현은 전호영의 옷을 잡아당겼다.전호영은 그녀를 따라 걸으며 말을 했다.“이 대표님도 언제쯤이면 돌아오실지... 정말 이씨 가문의 이 재미있는 연극을 보고 싶네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을 이었다.“설령 이 대표님이 남편이 밖에서 바람피우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더라고 밖에서 소란을 피우지 않고 정군호 씨를 데리고 가서 문을 닫고 난리 칠 거예요. 호영 씨가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예요.”전호영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건넸다.“이윤미 씨가 있잖아요. 이윤미 씨가 이씨 가문 겉면의 평화를 깨뜨렸는데 윤미 씨의 아버지 스캔들을 숨길 수 있겠어요? 저는 믿지 못하겠어요. 윤미 씨도 쉽지 않은 사람이에요. 이씨 가문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기회를 보면서 이씨 가문의 도련님들을 한꺼번에 정리할 생각일 거예요.”“그 문제 덩이 사람들만 없다면 이씨 그룹에서 윤미 씨의 지위는 더 확고해질 수 있잖아요. 역시 이 대표님 친딸답네요. 자신의 가족들을 이토록 모질게 다루다니.”고현은 한참 말을 하지 않았다.그리고는 이윤미를 대신해 몇 마디 했다.“윤미 씨는 이씨 가문 여자들의 독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래도 이 대표님과는 조금 달라요. 제가 장담하건대 윤미 씨는 윤미 씨의 오빠들을 최대한 이씨 그룹에서 쫓아내지 않을 거예요. 그들이 이씨 그룹에서 파벌을 만드는 것을 방지하고 사적으로 이득을 챙기는 것을 방지할 뿐이죠. 이 대표님처럼 가족들을 해치지는 않을 거예요.”전호영은 고현이 이윤미를 마음에 들어 하는 것을 보더니 더는 이윤미에 관한 나쁜 얘기를 이어가지 않고 화제를 바꾸었다.전호영 일행은 호텔에 들어간 뒤 전호영의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 프레지던트 스위트룸으로 갔다. 그 안에는 뷔페가 있었기 때문에 고현은 그녀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다 먹을 수 있었다.전호영은 정군호가 내연녀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알고 싶어 몰래 사람을 시켜 정군호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게 했다.그리고 정군호가 내연녀를 데리고 룸에 들어가면 그들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