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은 굳이 쳐다보지 않아도 상대가 누군지 알 것 같았다. 너무도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그녀의 진상 시누이 주서인이었다.김은희는 딸과 함께 노씨 그룹으로 찾아왔다. 점심시간에 하예진은 회사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한 후 사무실 책상에 엎드려 잠깐 눈을 붙였다. 그리고 오후에 계속 일한 바람에 회사를 나간 적이 없었다.두 모녀는 하는 수 없이 회사 문 앞에서 그녀가 나오길 온 오후 기다렸다. 오랜 기다림으로 이미 분노가 극에 달했다.회사에서 나온 하예진을 본 순간 주서인은 옆으로 지나가는 사람이 많든 적든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 바람에 수많은 이들의 이목이 그들에게 쏠렸고 어떤 이는 가던 길까지 멈추고 구경했다.하예진이 비록 재무팀의 사원이긴 하지만 노 대표가 직접 채용한 사람이라 회사 내에서 꽤 이름이 있었다.재무 총괄 담당자마저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불안해했다. 하예진이 예전에 재무 총괄 담당자 경력이 있다는 소리에 상사로서 경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노 대표가 직접 채용한 직원이라 더더욱 경계했고 눈엣가시로 여겼다. 대놓고 하예진을 내쫓을 수 없어 몰래 손을 쓰기도 했다. 재무팀 사람에게서 듣기로 하예진의 상사가 그녀를 내쫓으려고 함정을 파놓은 적이 몇 번 있었다고 한다.다행히 전에 일한 경험이 있어 상사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지 않고 피했다.“여긴 왜 왔어요?”하예진은 하는 수 없이 발걸음을 멈췄다. 전 시어머니와 전 시누이가 가지 못하게 그녀 앞을 막아섰다.“왜 왔냐고?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잘 알 거 아니야. 감히 내 동생 집을 다 망가뜨려? 당장 물어내! 인테리어 비용 물어내지 않으면 소송할 거야!”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던 주서인은 구경꾼들이 점점 늘어나자 일부러 더 소리를 높여 하예진이 했었던 일을 얘기했다.“이 여자 당신들 회사 다니는 하예진이라고 해요. 나의 전 동서인데 얼마나 모진 사람인지 몰라요. 결혼 후에 일전 한 푼도 벌지 못했으면서 이혼할 때 내 동생한테 2억 원
누군가 참지 못하고 주서인에게 반박했다.“그러니까 말이에요. 자기도 여자면서 예진 씨를 뭐라 하네요. 예진 씨, 아주 잘했어요. 우린 예진 씨 편이에요!”“저런 진상 시누이가 있으면 남편이 바람피우지 않아도 이혼해야죠. 저런 진상이랑은 멀리할수록 좋아요.”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을 나무라자 주서인은 너무도 화가 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이게 다 하예진 때문에 창피를 당한 것이라 생각했다.그녀는 홧김에 스쿠터를 잡고 있는 하예진을 세게 밀었다. 가뜩이나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 잡고 있기도 힘든데 주서인이 확 민 바람에 그만 중심을 잃고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돈 물어내. 네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 돈을 받고 입을 싹 다물었어. 할아버지 빚도 손녀인 네가 갚아. 당장 엄마한테 돌려줘.”주서인은 하예진을 바닥에 넘어뜨리고도 분이 안 풀렸는지 가방으로 하예진을 냅다 내리치면서 발로 걷어차기도 했다.하예진은 스쿠터를 버리고 일어서더니 주서인의 가방을 거칠게 빼앗은 후 미친 듯이 주서인을 가격했다.그동안 그녀는 주서인에 대한 원한이 쌓인 게 많았다. 원래는 이혼한 후 역겨운 주씨 가문 사람들을 잊고 자신만의 삶을 살아가려 했지만 주서인은 트집을 잡으며 물고 늘어졌다. 사납게 몰아붙이면 다 되는 줄 아나?지난번에 하예진과 주서인이 한바탕 붙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주서인이 처참한 패배를 당했다. 지금 두 사람이 또 싸운다면 김은희는 당연히 딸을 도울 것이다. 두 모녀가 힘을 합쳐 하예진을 괴롭히고 있었다.“신고해요, 신고!”누군가가 소리쳤다.“경비원, 얼른 가서 말리지 않고 뭐 해요. 저 두 여자가 우리 회사까지 와서 난리를 치잖아요.”어떤 이가 경비원에게 말리라고 하자 경비원들이 우르르 달려왔다.주씨 가문 두 모녀는 마치 미치광이처럼 눈에 뵈는 게 없이 말리는 경호원들을 물고 뜯고 차버렸다. 경호원이 하예진을 잡아당긴 틈에 주서인이 발길질을 했다.그 바람에 하예진과 경호원이 바닥에 넘어졌는데 하예진이 경비원을 깔고 넘어졌다. 경비원이 거친 숨을 몰
노동명이 잔뜩 굳은 얼굴로 물었다.“무슨 일이야?”주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하예진에게 달려들려 하자 노동명이 그녀를 확 밀쳤다. 주서인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서야 겨우 중심을 잡았다.정신 차린 그녀가 고개를 들어보니 훤칠한 한 남자가 잔뜩 굳은 얼굴로 하예진 앞에 서 있는 것이었다.남자 얼굴의 칼자국이 어찌나 무섭게 생겼는지 조금만 더 쳐다봤다간 자다가 악몽이라도 꿀 것만 같았다.겁이 덜컥 난 주서인은 더는 하예진에게 달려들지 못했다.김은희는 재빨리 딸의 옆으로 달려갔다. 두 모녀의 행색이 초라하기 그지없었고 물론 하예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들뿐만 아니라 싸움을 말린 몇몇 경호원과 여직원들도 너덜너덜해졌다. 여자 셋이 싸우는데 아무리 뜯어말려도 말릴 수가 없었으니 말이다.“당신은 누구야?”주서인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노동명에게 물었다.“난 이 회사 대표야. 당신들은 누군데 감히 내 회사에서 내 직원을 괴롭히는 거야?”노동명은 다시 고개를 돌려 하예진의 초라한 모습을 보았다. 머리는 잔뜩 헝클어졌고 옷은 먼지투성이였는데 조금 전 주서인과 바닥에서 뒹굴다가 그렇게 되었다. 그리고 손등과 목, 얼굴에도 긁힌 상처가 생겼고 심한 데는 피까지 살짝 나고 있었다.“신고해.”노동명이 동행한 비서에게 분부했다.“이미 신고했습니다, 대표님.”이 회사의 대표라는 소리에 주씨 가문 두 모녀는 살짝 움찔했지만 주서인은 여전히 물러서지 않고 강경하게 말했다.“당신이 이 회사 대표야? 잘됐네, 그럼 당신이 누가 옳은지 그른지 판단해 봐. 하예진의 할아버지가 우리 엄마한테서 1200만 원을 뜯어갔는데 돌려주지 않으려 해. 그러니 하예진한테서 받아내야지, 안 그래? 예진이가 내 동생이랑 이혼하면서 재산을 나눠 가진 건 그렇다 쳐도 내 동생이 결혼 전에 산 집의 인테리어는 왜 부숴?”그러자 노동명의 얼굴이 잔뜩 구겨졌다.“예진이 할아버지가 당신들 돈을 뜯어 갔으면 신고하면 그만이지, 그게 예진이랑 무슨 상관이야? 예진이랑 가족들 상황이 어떤지 실시간 검색어에도
두 모녀가 도망치려던 그때 경찰이 도착했다.“저 사람들 잡아!”노동명의 분부에 사람들이 우르르 달려가 두 모녀의 앞을 가로막았다.“대표님이 신고하셨습니까? 무슨 일인데요? 엄청 시끌벅적했었던 모양이네요.”파출소 경찰들도 노동명을 알고 있었다.하긴, 노씨 가문의 넷째 도련님이 전에 껌 좀 씹어봤었지.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사업에 뛰어들면서 고작 몇 년 사이에 노씨 그룹을 관성의 대기업 중 하나로 성장시켰고 몸값이 수조 원까지 높아졌다. 하여 이 일대에 노동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니, 관성의 상업계에 노동명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저 사람들이 회사 앞에서 우리 직원을 이 꼴로 만들어버렸어요.”노동명은 경찰에게 하예진의 너덜너덜해진 모습을 보여주려고 잡아당겼다. 그녀의 모습에 경찰들은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여자들끼리 싸웠는데 저렇게 됐다고?’그들은 너덜너덜해진 하예진과 주씨 가문 모녀를 번갈아 보았다. 김은희의 상태는 그나마 양호했다. 나이가 있어 밀쳐버린 것 외에는 별로 손을 대지 않았고 주서인만 냅다 내리쳤다. 그 바람에 주서인의 꼴이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이기고 졌는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하지만 경찰은 결과가 어떻든지 옳고 그름만 따졌다.“경찰관님, 이건 우리 집안일이에요. 이 여자는 저의 동서인데 별것도 아닌 일 때문에 갈등이 좀 있어서요.”주서인이 황급히 해명했다. 만에 하나 구속이라도 되어 회사에서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일자리를 잃을지도 모른다.요즘 회사에서 일이 잘 풀리진 않았지만 그래도 그만두기에는 아까운 일자리였다.“저는 얘 시어머니예요. 정말 집안일 때문에 잠깐 싸웠을 뿐이에요. 경찰관님, 제발 믿어주세요.”지금 이 순간 김은희도 겁에 질린 건 마찬가지였다. 혹시라도 경찰에 잡혀갈까 너무도 두려웠다.구정을 보내려고 도시로 왔는데 결국 경찰서에서 설을 보냈다는 소식이 고향에 전해지기라도 한다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닌단 말인가.“전 이미 이혼해서 이 사람들
하예정은 인파 속을 비집고 들어오자마자 하예진을 불렀다.“언니.”주우빈도 엄마를 불렀다.주서인 모녀와 언니의 초라한 모습을 본 순간 하예정은 단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챘다. 화가 부글부글 끓어오른 그녀는 주우빈을 언니에게 맡기고는 옷소매를 걷어 올리며 당장이라도 그들을 쥐어 패버릴 기세로 다가갔다.“예정아.”그때 이경혜가 언니를 대신해 화풀이하려는 하예정을 말렸다.“예정아, 경찰관님한테 맡겨.”이미 신고한 마당에 경찰이 보는 앞에서 사람을 때리는 건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못했다.“아저씨, 사모님.”성문철네 부부를 본 노동명은 의아했지만 그래도 다가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 부부도 노동명의 인사에 답했다.이경혜가 그에게 물었다.“노 대표, 이게 다 무슨 일이야?”노동명이 대답했다.“사모님, 경찰서에 가서 제대로 들어보시죠.”그러고는 경찰에게 말했다.“경찰관님, 우리 회사 직원은 피해자입니다. 남편이랑 이혼했는데도 전 시댁 식구들이 찾아와서 행패를 부린 걸 보면 이혼 전에는 얼마나 괴롭혔겠어요. 어쩌면 가정 폭력을 당했을지도 몰라요. 경찰관님들께서 이 일을 철저히 조사해주셨으면 좋겠어요.”노동명이 합의할 의사가 없자 경찰은 그들 모두 경찰서로 데려갔다. 노동명과 이경혜 가족도 당연히 따라나섰다.언니를 차에 태우고 경찰서로 가던 길에 자초지종을 듣게 된 하예정이 불같이 화를 냈다.“그 집안사람들은 정말 인간쓰레기만도 못해.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아주 그냥 쥐어 패버렸을 텐데. 언니, 그 사람들이랑 합의하지 말고 그냥 구치소에 처넣어버려.”하예진이 아들을 끌어안고 이를 꽉 깨물었다.“절대 합의 안 해.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껏 괴롭혀야지! 할아버지가 뜯어간 돈을 왜 나한테서 받아내려고 그래.”하예정이 말했다.“언니 그 시어머니가 바보 멍청이였지. 할아버지한테 찾아갈 생각을 다 하다니. 그리고 할아버지도 참 대단해. 어떻게 그 많은 돈을 요구할 수 있어? 언니가 결국 주형인이랑 이혼하니까 돈을 준 게 아까워서 할아버지한
이경혜가 싸늘하게 말했다.“내 조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선 사과 한마디면 다야? 우린 당신들 사과 안 받아. 사람을 괴롭혀도 정도껏 해야지.”그러고는 경찰에게 말했다.“경찰관님, 우린 합의할 생각 없으니까 절차대로 처리해주세요. 하지만 배상금은 받아낼 겁니다.”주씨 가문 모녀는 구치소에 들어가고 벌금도 내야 할 뿐만 아니라 하예진의 치료비와 정신적 피해 보상금까지 물어내야 했다. 그렇게나 많은 사람 앞에서 하예진을 폭행하고 욕한 것도 모자라 명성까지 더럽혔으니 정신적 피해 보상금을 물어내야 하는 건 당연했다.하예진이 이경혜의 조카라는 소리에 노동명도 휘둥그레진 두 눈으로 이경혜를 쳐다보았다. 김은희도 어리둥절한 얼굴로 이경혜에게 물었다.“예진이 이모라고요? 예진이한테 언제 당신 같은 이모가 있었는데요?”하예진의 삼촌은 친조카가 아니라고 15년 전에 두 자매와 연을 끊었다.하예진이 주형인과 결혼할 때 친정 식구라곤 여동생인 하예정밖에 없었고 하씨 가문 사람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하씨 가문에서 예물 6천만 원을 요구했었는데 하예진이 중간에서 그들에게 예물을 주지 말라고 말렸었다. 그 후로 하예진은 친정 식구들과 더는 연락하지 않았다.주씨 가문 모녀는 하예진에게 여동생 말고 기댈 친정이 없다는 걸 알고 지금까지 그렇게 업신여겼던 것이었다.그런데 지금 부잣집 사모님이 갑자기 나타나 하예진의 이모라고 한다. 김은희는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이 사모님이 진짜로 하예진의 친정 식구인지 확인하려 했다.‘뭐지? 예전에 예진이한테서 들은 적이 없는데? 예진이 삼촌 집은 분명 빈털터리였어.’이경혜는 김은희를 째려보더니 하예진의 손을 잡고는 그녀의 얼굴에 생긴 상처를 보듬어주며 마음 아파했다.“예진아, 나랑 예정이 유전자 검사 결과 나왔어. 우리 혈연관계가 있었어. 너희 둘은 내 여동생 경희의 딸이고 난 너희들 이모야. 내 조카를 이 지경으로 만들어놓고 미안하다면 다야?”주씨 가문 모녀를 째려보는 이경혜의 눈빛이 사납기 그지없었다.“이따가 병
“엄마.”주형인이 들어왔을 때 김은희가 마침 의자에서 떨어져 바닥에 쓰러졌다. 그가 재빨리 다가가 부축했지만 김은희는 여전히 자세를 다잡지 못하고 두 다리만 벌벌 떨었다.“엄마, 왜 그래?”주형인이 의자를 잡아당겨 오며 어머니를 앉혔다.김은희는 복잡한 눈빛으로 하예진을 쳐다봤고 주서인도 입이 쩍 벌어진 채 점점 사색이 되어갔다.“아줌마, 괜찮으세요?”주형인과 함께 온 서현주도 관심 조로 한마디 건네고는 하예진을 쳐다봤다. 실은 그녀에게 이혼했다고 이렇게까지 전 시어머니를 몰아붙일 필요가 있냐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성소현을 본 순간 잘못 본 줄 알고 두 눈을 의심했다.서현주는 이경혜 일행을 잘 모르지만 성소현이 전태윤에게 적극적으로 구애한 일이 하도 유명하여 실시간검색어까지 오르다 보니 바로 알아볼 수 있었다.그때 서현주는 성소현이니까 전태윤에게 대시할 자격이 있는 거라고 무척 부러워했었다.“성소현 씨 맞으세요?”서현주가 떠보듯이 물었다.성소현은 턱을 치켜세우고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누구시죠?”“어머, 진짜 소현 씨네요. 저는 서현주라고 해요. 유진 테크에서 주 사장님 비서로 일하고 있어요.”서현주가 흥분하며 명함 한 장 꺼내 성소현에게 건넸다.성소현은 거들떠보지도 않은 채 짜증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쪽이 바로 예진 언니 가정을 파탄시킨 내연녀였군요. 명함 치워요, 난 인간다운 자의 명함만 받아요. 여우 년의 명함은 너무 역겨우니까 얼른 저리 치워요!”서현주는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여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명함을 거둬들였다.주형인은 아무 말 없는 엄마와 누나, 그리고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하예진 자매를 보더니 방금 서로 싸웠다는 걸 눈치챘다. 보아하니 엄마와 누나가 먼저 손을 댄 듯싶으니 그는 얼른 하예진에게 사과했다.“예진아, 미안해. 엄마랑 누나가 무슨 잘못을 저질렀든 내가 이렇게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나중에 따끔하게 혼낼 테니까 두 번 다시 널 찾아와 귀찮게 굴지 않을 거야. 예진아, 우빈이 봐
주형인이 이제 막 어머니를 부축하자 누나가 또다시 무릎을 꿇었다. 그는 누나까지 잡아당기느라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그러게 하예진을 찾아가 소란을 피우지 말랬더니 가족들이 한사코 말을 안 듣고 이 사달을 벌였다.‘진짜 바람 잘 날 없어. 나 좀 두 날이라도 그냥 내버려 둘 순 없어? 머리가 터질 것 같다고!’주형인은 업무가 잘 풀리지 않아 정신없이 돌아치다가 수중의 일을 전부 내려놓고 이리로 달려왔으니 상사의 낯빛도 한없이 어두워지고 말았다.가족들이 계속 이런 식으로 소란을 피운다면 그가 2억 원을 하예진에게 주며 간신히 지킨 직장도 조만간 잃을 듯싶었다.주우빈은 이 광경에 많이 놀란 듯 두 손으로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고 할머니와 고모를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아이는 마침 노동명을 쳐다보고 있었다.노동명은 하예진 뒤에 서 있었고 주우빈이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터라 고개를 살짝 드니 노동명이 보였다.노동명은 주우빈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가 성격이 거친 것 같아도 실은 아이들을 무척 좋아했다.씩씩하고 똘망똘망한 주우빈의 모습이 실로 귀여울 따름이었다.노동명이 손 내밀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 하자 화들짝 놀란 아이가 비명을 질렀다.“엄마, 엄마.”하예진은 아이를 달래다가 허공에 뻘쭘하게 떠 있는 노동명의 손을 발견했다.“난 그저 아이가 너무 귀엽길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했는데 얘가 날 무서워하네.”노동명은 난감한 얼굴로 손을 거두어들이며 그녀에게 해명했다.하예진은 아이를 달래며 말했다.“우빈아, 이분은 노동명 삼촌이야. 삼촌은 나쁜 사람 아니니까 겁내지 마.”주우빈은 여전히 무서워하며 노동명을 보지 않으려고 하예정에게 불쑥 손 내밀며 말했다.“이모, 안아줘요, 안아주세요.”하예정이 얼른 아이를 안아갔다.옆에 있던 하예진은 미안한 표정으로 노동명에게 말했다.“대표님, 우빈이가 저번에 너무 크게 놀라서 그래요. 낯선 사람만 보면 이렇게 두려워하네요.”노동명은 어린아이와 따질 성격이 아니었다.“괜찮아. 내가 아이를 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