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어떻게 이 자료들을 구했는지는 신경 쓰지 마. 네가 리베이트 받은 일을 너희 대표님께 알리면 어떻게 될까? 계속 유진 테크에 남아서 사장직을 맡을 것 같아?”하예정은 주형인이 리베이트를 받은 증거를 다 보여주지 말고 일단 말로만 겁주라고 언니한테 얘기했었다.하예진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주형인을 겁줄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전태윤의 친구가 수집한 증거 자료들을 전부 한 부씩 복사했다.주형인이 미쳐 날뛴다고 해도 그녀는 증거 자료를 계속 더 복사할 수 있다.그의 약점을 잡고 밥줄을 위협해야만 그나마 고개를 숙이고 아내와 이혼 상의를 잘할 것이다.그녀는 전태윤이 소정남에게 유진 테크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주형인과 서현주를 기다리는 것은 직장에서 잘리는 일뿐이다.주형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그는 하예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하예진은 전에 유진 테크에서 근무하며 재무 총괄 담당 직까지 올라갔었다. 당시 그녀는 주형인보다 훨씬 뛰어났다.주형인은 자신이 하예진보다 못하다는 압박감에 자존심이 타격을 입어 그녀에게 청혼했었다.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십여 년이 됐고 연애도 몇 년 동안 한지라 하예진은 늘 서로의 감정이 두텁다고 여겼었다.그녀도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어 주형인이 청혼했을 때 흔쾌히 허락했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주형인과 시댁 모두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주형인은 전보다도 더 자상해졌고 드디어 결혼 후 하예진을 사직시키고 집에서 임신 준비나 하게 했다.그녀가 임신에 성공했을 때 주형인도 아이를 향한 기대감이 무척 컸었다. 한편 회사에서도 하예진과 비교당할 일이 없어져 스트레스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대표님에게 점점 잘 보여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올랐다.하여 오늘의 사장직까지 오른 것이다.다만 하예진은 그의 아내, 주우빈의 엄마로 거듭나 종일 아이를 돌보며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예전 동료들과도 연락이 뜸해지고 점차 사회와 단절되었다.수유 기간에는 아들을 위해
다만 살이 찐 이후로 모든 게 무너졌다.아름다웠던 미모가 주형인의 손에서 전부 망가졌다.“예진아, 그래서 넌 무슨 생각인데?”주형인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녀에게 물었다.“원하는 걸 말해봐. 최대한 들어주도록 노력할게. 헤어질 땐 좋게 헤어지자. 이 물건들 원본 파일 전부 나한테 줘.”지금 그는 자산이 4억 가까이 된다.하예진과 이혼 상의가 잘되지 않아 그녀가 소송이라도 걸면 증거까지 갖고 있기에 그녀에게 매우 유리해진다. 열세에 처한 주형인은 법원의 정상 판결대로 재산의 절반을 하예진에게 나눠줘야 한다.게다가 그녀가 주형인이 리베이트를 받은 증거 자료를 그의 대표님한테 넘긴다면 해고까진 몰라도 사장직에선 틀림없이 물러나야 할 것이다.바이어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 자체가 죄질이 상당하고 바이어를 도와 회사에 손해 가는 짓을 저질렀으니 위에서 조사하면 바로 들통나게 된다. 회사 대표가 홧김에 그를 해고하고 그의 만행을 널리 퍼뜨린다면 추후에 재취업하는 것도 곤란해질 듯싶다.이는 앞날이 걸린 문제였다.주형인은 자신의 앞날과 이익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 하예진이 아무리 미워도 고개를 숙이고 이혼 상의를 잘해야만 한다.“당신 명의로 된 모든 재산, 나도 너무 많이 탐내진 않아. 딱 절반으로 갈라. 그건 내가 받아 마땅한 거야. 집과 차는 안 가질게. 그 대신 내게 따로 보상금을 줘.”하예진이 조건을 제시했다.“집 인테리어 비용도 사양할게. 내 돈으로 한 인테리어 내가 직접 거둬올 거야.”주형인이 이혼을 허락하고 이혼 절차를 밟는 순간 그녀는 사람을 보내 그 집 인테리어를 전부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벽재까지 전부 부숴버리고 애초에 그가 이 집을 샀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려놓겠다고 다짐했다.“우빈의 양육권은 내가 가져. 당신은 달마다 양육비 60만 원만 내면 돼. 지금 수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거 다 알아. 우빈이는 당신 아들이기도 해. 이 요구 들어줄 수 있겠지? 우빈이가 18살이 되면 그땐 양육비를 안 줘도 돼. 우빈이 만나는 횟수도
주형인은 한참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예진아, 내가 재산을 너에게 나눠주면 너 정말 그 증거 자료들 나 돌려줄 거야? 우리 대표님께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어?”“내가 받아야 할 부분만 받는다면 절대 널 향한 그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아. 약속해.”다만 하예정과 전태윤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녀도 장담하지 못한다.주형인은 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재산분할 조건은 네 뜻대로 해줄게. 하지만 우빈의 양육권은 너 못 줘. 우빈이는 우리 주씨 가문의 혈육이야. 엄마, 아빠가 우빈이를 엄청 중히 여긴다고. 나 절대 아이 양육권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주형인은 양육권까지 그녀에게 뺏겼다가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욕바가지를 들을까 두려웠다.게다가 어찌 됐든 우빈이는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하예진은 마시다 남긴 주스를 그의 얼굴에 뿌렸다.“주형인, 뻔뻔스럽게 지금 나랑 우빈의 양육권을 뺏으려 해? 주씨 가문의 혈육? 네 부모님이 우빈이를 중히 여겨? 그 사람들 우빈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몰라서 물어? 애가 아직도 툭하면 울어. 얼굴에 멍 자국도 없어지지 않았어. 대체 너희 집안은 아이한테 얼마나 더 상처를 줘야 만족해? 우빈이가 너희 가족들한테 괴롭힘을 당해서 죽어야 만족하겠어?”주형인은 갑작스러운 주스 세례에 더없이 초라해졌다.그녀의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옆에 있던 서현주가 재빨리 티슈로 그의 얼굴에 묻은 주스를 닦아주더니 하예진을 째려봤다.“서로 좋게 얘기하자더니 왜 주스를 뿌려? 양복까지 더러워졌잖아. 인제 어떡할래? 당신이 배상할 수 있어?”“이봐 서현주 씨,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하예진이 비난 조로 쏘아붙였다.“나랑 주형인 이혼 절차 밟기 전까진 이 사람 아직 내 법적 남편이야. 이 사람 것이 곧 내 것이라고. 대체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배상을 요구해?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서현주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현주야.”주형인이 다정하게 말했다.“나
주형인은 여전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밖에 나갔다가 하예진이 서현주에게 손이라도 댈까 봐 너무 걱정됐다.하예진은 그날 밤 두 남녀가 호텔에서 불륜을 저지르는 장면을 목격하고 서현주를 한바탕 두들겨 팼었다. 주형인은 그 일이 있고 난 뒤 다시 되새겨봐도 다리가 벌벌 떨렸다.이때 하예진이 차갑게 쏘아붙였다.“저 여자를 때리면 내 손만 더러워져. 걱정하지 마, 지금 모습 그대로 남겨둘게.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아.”“예진아, 이건 우리 둘 사이의 일인데 내가 들으면 안 돼?”주형인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물었다.하예진은 그의 가정폭력에 맞설 때 칼을 들고 거리 끝까지 쫓아갈 기세였다. 주형인은 그때 철저히 느꼈다. 하예진은 자극을 받으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이건 조강지처와 내연녀의 담판이야. 너 같은 인간쓰레기는 썩 꺼져줄래?”주형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그는 하예진을 힐긋 노려보다가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을 나섰다.주형인이 나간 후 서현주는 머리를 뒤로 넘기며 하예진에게 물었다.“말해봐,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건데? 하예진, 형인 씨는 지금 날 사랑하고 있어. 더 험한 꼴을 겪기 전에 내 말 듣고 얼른 형인 씨랑 이혼해.”“그건 걱정 마.”하예진이 담담하게 말했다.“나 너랑 주형인 뺏을 생각 없어.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이라 애써도 소용없고 또 그럴 가치도 없어.”주형인 없이 못 사는 하예진이 아니었으니, 그가 사라져도 내일의 태양이 뜨기 마련이다.“서현주 너는 나보다 나이도 어리고 결혼도 못 해본 채 주형인을 만나고 있어. 30개월 된 아이의 새엄마가 되고는 싶어?”서현주는 표정이 확 굳어지다가 한참 후에야 겨우 말을 이었다.“우빈이는 아주 귀여워. 아이랑 잘 지내보도록 노력할 거야. 형인 씨를 봐서라도 우빈이 키울 수 있어.”“너무 무리할 필요 없어. 주형인이 자리에 없으니 네 진짜 생각을 절대 모를 거야.”하예진이 비난 조로 쏘아붙였다.“새엄마는 참으로 하기 힘들어. 네가 진심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서현주, 내가 형인이랑 이혼하면 너도 곧 결혼할 거야. 두 사람 아직 젊으니까 얼마 못 가 아이가 생기겠지. 그렇게 되면 주형인은 오로지 네 애만 이뻐할 수 없어. 부성애를 우빈이한테도 절반 나눠줘야 하거든. 너 감당할 수 있겠어? 설사 주형인이 우빈이를 부모님 댁에 보낸다 해도 그 집 부모님들이 우빈이가 안쓰러워 더 감싸고 돌 거야. 제 아들더러 우빈이한테 신경 더 쓰라고 다그치겠지. 그럼 네 아이는 차별 대우를 받게 되는 거야. 네 자식이 그런 서운함을 겪는 꼴 지켜볼 수 있겠어?”“만약 우빈의 양육권을 나에게 주면 주형인은 달마다 양육비 60만 원만 내면 돼. 다른 건 그 인간이 일절 간섭 안 해도 돼. 십여 년씩 우빈이 보러 안 와도 나 뭐라 안 해. 그렇게 되면 너랑 네 아이한테 미치는 영향도 최소화할 수 있어. 넌 종일 나랑 주형인의 아이를 마주하지 않아도 되잖아. 우빈이를 볼 때마다 나랑 주형인의 과거가 떠오르겠지. 난 그 사람과 알고 지낸 지 12년 됐고 연애 7년에 결혼한 지 3년이 됐어. 네가 함께한 시간보다 훨씬 길어. 정말 하나도 신경 안 쓰여? 우빈의 양육권 나한테 넘기면 우빈이는 종일 네 눈 밑에서 뛰어다니지 않아. 어쩌면 주형인도 처음엔 애 보러 오다가 네가 임신한 후에는 슬슬 그 아이에게 관심이 쏠릴 거야. 네 아이는 온전한 부성애를 누릴 수 있겠는데 설레지 않아?”“그 인간 돈도 잘 벌어서 앞으로 번 돈은 전부 너랑 네 아이한테 쓸 거야. 얼마나 좋아? 우빈이가 만 18세가 되면 주형인은 더이상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아도 돼. 그럼 너희들도 많은 돈을 아낄 수가 있겠지. 지금 아들 한 번 장가보내는 데 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지 너도 알지? 집도 마련하고 차도 마련하고 예식장도 다 예약해야 하니 이것만 해도 어마어마한 액수야. 우빈이가 주형인을 따라가면 아마 아들 결혼 시키려고 집과 차를 장만해주려고 애쓸걸. 그건 즉 네 아들의 이익을 나눠 가지는 셈이잖아.”서현주는 한참 침묵한 후 하예진에게 물었다.“나한테 바라는 게 뭐
하예진이 웃으며 대답했다.“그 인간 아직 너한테 푹 빠져 있어서 네 말이라면 들을 거야. 지금 가서 얘기해봐. 우빈의 양육권만 포기하겠다면 바로 회사에 반차 내고 우리 오후 시간을 이용해서 이혼 절차 모두 마무리해. 하루라도 빨리 싱글이 돼야 너도 얼른 시집가서 유진 테크 사장님 부인으로 거듭날 거 아니야. 유진 테크는 동종 업계에서 나름대로 잘 나가. 전망도 좋고 규모도 꽤 괜찮거든. 네가 사장 부인이 되면 회사에서 남들보다 한 수 위에 올라서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그 인간 앞으로 네 사람이라 돈을 얼마나 많이 벌어오든 너 마음껏 쓸 수 있어. 둘이서 남 눈치 보며 몰래 피해 다니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함께 있으란 말이야. 이 세상 어느 여자나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당당하게 함께 있고 싶어 할 거야.”“주형인은 이제 막 서른 살인데 커리어가 높이 쌓였어. 일적으로 성과도 이루고 사업이 잘되는 편이라 너 그 인간 놓치면 아마 더 나은 사람 못 만날걸. 서현주, 너랑 주형인의 행복을 위해서 이젠 네가 나설 차례야.”서현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럼 넌 가게 사장님께 노트북 잠시 빌려서 이혼 합의서 작성해. 이따가 두 사람 서명하고 지장까지 찍은 후 바로 가정법원에 가서 이혼 절차 밟아. 난 지금 나가서 형인 씨더러 우빈의 양육권 포기하라고 설득할게.”“그래, 그렇게 할 순 있지만 재산분할부터 하고 내 계좌에 입금된 후에야 가정법원에 갈 수 있어. 두 사람 또다시 번복할지 누가 알아?”하예진은 바보가 아니다.주형인에게 단념한 후 그녀는 한 발짝도 양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늘 손해를 입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서현주는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는데 어느덧 오후 두 시가 다 되었다.속도를 다그쳐야 두 사람이 오늘 오후에 이혼 절차를 마무리 지을 수 있다.“여기서 잠깐 기다려. 아니, 일단 가게 사장님한테 노트북 빌려서 이혼 합의서를 프린트해놔. 나 지금 바로 주형인 설득하러 갈게.”서현주는 주형인과 하예진의 이혼이 지긋지긋
주형인은 밖에서 기다리며 줄곧 가게 안을 지켜봤다. 하예진이 갑자기 대노하며 서현주를 때릴까 봐 가슴을 졸였다.그러던 중 서현주가 걸어 나오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주형인은 얼른 앞으로 다가갔다.“현주야, 그 여자 너한테 손댔어?”서현주가 얼굴을 어루만지며 대답했다.“좀 전에 뺨을 친 것 말곤 형인 씨가 나가고 더 손대지 않았어요.”주형인도 하예진에게 뺨을 한 대 얻어맞았다.그는 속상한 표정으로 말했다.“현주야, 앞으론 그 여자 두 번 다시 너에게 손대지 못하게 할게.”그가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너랑 무슨 얘기 했어?”서현주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둘은 인파가 붐비는 길옆에 서 있었지만 그들을 신경 쓰는 사람은 딱히 없었다.서현주는 관심 어린 주형인의 눈빛을 쳐다보며 되물었다.“형인 씨는 날 속상하게 만들고 싶지 않죠?”“당연하지. 나 예진이랑 이혼하는 것도 다 널 속상하게 하지 않기 위해서잖아!”주형인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현주야, 그 여자가 널 욕했어? 내가 들어가서 따져 물을게.”“아니요.”서현주는 이제 곧 가게로 들어가는 주형인을 잡아당기며 가볍게 말했다.“형인 씨, 난 우빈의 새엄마 안 하고 싶어요.”주형인이 고개 돌려 그녀를 쳐다봤다.“우빈이 귀엽다며? 아이가 엄청 사랑스럽다고 했잖아, 나랑 함께 우빈이 키우기로 했잖아.”주형인은 언성이 살짝 높아져 사람들의 이목을 끌까 봐 곧장 소리를 낮췄다.“현주야, 나도 알아. 결혼도 못 해본 네가 새엄마가 되는 건 나도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우빈이는 내 아들이고 우리 가문의 핏줄이라 반드시 주씨 일가에 남아있어야 해. 걱정 마. 이혼하면 우빈이를 본가에 보내서 엄마, 아빠더러 키우라고 할 거야. 우리 부모님들도 다 허락하셨어. 절대 우리 둘에게 영향 끼치지 않아. 우린 여전히 달콤한 신혼생활을 즐기면 돼.”서현주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내가 아이를 못 낳을 거라고 생각해요? 나도 내 자식이 생길 거예요. 그때 되면 당연히 제 새끼가 더 예쁘고 편애하게 되
여기까지 말한 서현주는 입을 삐죽거렸다.“아무튼 우빈이가 내 아이와 함께 아빠의 사랑을 나눠 가지는 거 싫어요.”그리고 주형인이 앞으로 번 돈의 절반을 우빈에게 쓰는 것도 싫었다.주형인의 수입은 전부 그녀와 그녀의 아이한테만 썼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우빈이는 하예진의 친아들이에요. 분명 최선을 다해 아이를 교육하고 아이의 성장에도 더 많은 도움이 될 거라고요. 만약 우빈이가 당신 부모님들 밑에서 자란다면 애를 제대로 교육할 것 같아요?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자를 지나치게 예뻐해요. 물론 당신이 만약 아무것도 성사하지 못한 우빈이를 보고 싶다면 내가 했던 말도 없던 거로 해요. 난 단지 우빈이가 하예진과 함께 있으면 당신한테 더 좋을 것 같아서 그래요. 일도 바쁜데 언제 아이를 교육하겠어요? 아이는 낳았다고 해서 다가 아니에요. 애 교육에 엄청 많은 심혈을 기울여야 해요. 우빈이가 제대로 못 크면 사람들이 당신을 질책하고 내게도 삿대질을 할 거예요. 악독한 새엄마가 있으니 친아빠도 매정하게 변했다고 말이에요. 난 지금 당신과 함께 있는 것도 충분히 서러운데 계속 더 속상하게 만들 셈이에요?”서현주의 말을 들은 주형인은 한참 망설이다가 대답했다.“엄마, 아빠한테 약속했어. 우빈의 양육권을 반드시 가져오겠다고 말이야.”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하고 돌아가면 부모님을 마주할 면목이 없다.“우빈이는 당신 아들이지 당신 부모님의 아들이 아니에요. 얼마든지 본인이 결정할 수 있다고요. 아이의 양육권을 포기했다고 해서 우빈이가 두 분 손자가 아닌 것도 아니잖아요? 두 분 여전히 우빈이 만날 수 있고 아이도 계속 두 분을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를 거예요.”주형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는 확실히 아이를 돌볼 시간이 없었다.서현주도 하예진처럼 결혼하고 나서 사직하고 가정주부가 되는 건 원치 않았다. 부모님 댁에 아이를 보내면 부모의 사랑을 못 받아 우빈의 성장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주형인은 아들을 별로 챙기진 못했지만 어찌 됐든 그의 아들이기에 아빠로서 아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