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눈물이 두 볼을 타고 내려오는 걸 본 하예정은 재빨리 휴지를 건네며 사과했다.“아주머니, 미안해요.”“예정아.”이경혜가 그녀의 손을 잡고 울먹였다.“미안한 건 나야. 아주머니가 능력이 부족해서 지금까지 너희들을 찾지 못했어. 만약 진작 찾았더라면 너희 엄마도 아직 살아있었을 텐데.”만약 여동생을 찾았다면 시내로 데려왔을 것이다. 그러면 시골 도로에서 부부가 교통사고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아직 유전자 검사를 하기 전이지만 이경혜의 말을 들은 하예정도 코끝이 찡하면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엄마가 아직 살아계신다면 얼마나 좋을까?’“엄마, 울지 말아요. 아빠가 저한테 엄마 울리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어요. 어제도 종일 우셨잖아요.”성소현은 하예정이 건넨 휴지를 받고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며 위로했다.“엄마, 먼저 예정 씨랑 유전자 검사하러 가요. 만약 정말 혈육 관계라면 예정 씨랑 예진 언니가 있잖아요.”이경혜가 눈물을 쓱 닦으며 말했다.“엄마가 감정이 컨트롤 안 돼서 그래.”그때 이경혜 자매의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 어린 나이인 그녀는 여동생을 키울 능력이 안 되어 어쩔 수 없이 여동생과 헤어져야만 했다.그렇게 한 번의 이별이 50년이나 지속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겨우 소식을 찾았나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이미 하늘나라에 갔다.아무리 강한 이경혜라고 해도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다.‘하늘도 참 무심하시지.’성소현과 하예정은 겨우 이경혜를 다독였다. 하예정은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의견을 물은 후 이경혜와 함께 유전자 검사를 하기로 했다.“가게는 내가 보고 있을게요.”성소현이 자진해서 나섰다. 하예정은 차 키를 챙기고 카운터를 지나며 말했다.“그냥 가게 문 닫는 게 좋겠어요. 이따가 식사 한 끼 대접할게요.”문득 자신이 만든 공예품 생각이 난 그녀는 다시 돌아와 완성한 공예품 몇 개를 이경혜에게 선물했다.“아주머니, 이건 제가 직접 만든 거예요. 값비싼 건 아니지만 제 마음이니
유전자 검사 센터로 가는 길, 전태윤이 하예정에게 천만 원을 보냈다. 그녀가 받지 않을까 봐 문자까지 보냈다.“예정아, 이 돈 받지 않으면 날 남편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길 거야. 남편은 원래 아내한테 쓰라고 돈을 버는 거야.”그가 보낸 문자를 확인한 하예정이 배시시 웃었다.‘태윤 씨 이젠 이런 말도 할 줄 아네?’그녀는 전태윤이 보낸 돈을 받기로 했다. 검사 센터에 도착한 그녀는 이경혜와 함께 피를 뽑았다.하예정은 남편이 준 돈으로 이경혜 모녀와 5성급 호텔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관성의 5성급 호텔 중에서 하예정이 가장 익숙한 호텔은 관성 호텔이었다.관성 호텔은 전씨 그룹 산하의 호텔이고 전씨 그룹과 성씨 그룹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은 라이벌 관계였다. 이경혜 모녀와 관성 호텔에 도착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떠올린 하예정이 미안한 얼굴로 이경혜에게 말했다.“아주머니, 다른 데로 갈까요?”이경혜는 하예정의 뜻을 알아채고는 피식 웃었다.“괜찮아, 예전에 회사에 다닐 때도 여기서 바이어랑 일 얘기하곤 했어.”그러면서 딸에게 눈짓했다. 눈치 빠른 성소현은 엄마의 뜻을 단번에 알아채고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엄마, 그런 우연이 어디 있어요? 만난다고 해도 뭐 어때요?”전태윤이 결혼반지를 낀 걸 본 순간부터 성소현은 가슴이 찢어질 듯이 아팠지만 그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 애를 썼다.성소현의 새언니는 이 세상에 널린 게 남자라서 성소현이 전태윤처럼 훌륭하고 그녀만을 사랑하는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장담했다.두 모녀가 개의치 않아 하자 하예정은 마음 놓고 함께 들어갔다.호텔 매니저는 하예정을 알아봤지만 감히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친절하게 안내만 할 뿐이었다. 세 사람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난 후 호텔 매니저는 돌아서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고 엘리베이터를 보며 중얼거렸다.“방금 사모님 옆에 있던 두 분이 이경혜 씨와 성소현 씨 아니야?”낯이 익은 게 이경혜 모녀 같았다.‘내가 잘못 본 거 아니겠지? 사모님 지금 성씨 가문 사람들이랑 같이 있잖
“그래요, 알았어요. 그만 일 보세요.”전이진은 재빨리 일행을 따라가 형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형, 권 매니저님이 그러는데 형수님께서 몇 분 전에 이경혜 모녀랑 VIP 지존룸으로 들어갔대.”VIP 지존룸은 관성 호텔의 가장 고급스러운 VIP 룸인데 웬만한 사람은 지존룸을 택할 생각조차 감히 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늘은 이경혜에게 식사를 대접하는 거라 지존룸을 택하는 건 당연했다.“알았어.”전태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라곤 없었다.“마주치진 않을 거야.”전태윤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평소 바이어에게는 맨 꼭대기 층의 로열 스위트룸에서 식사 대접을 한다. 지존룸과 층도 다른 데다가 전용 엘리베이터도 있어 그와 동행한 호텔 손님 말고는 누구도 그 엘리베이터에 탈 수 없었다.두 부부가 엘리베이터 문 앞에서 딱 마주치지 않는 이상 만나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자신만만해하는 전태윤의 모습에 전이진도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어차피 가난한 척하는 사람도 형이고 형수님에게 딱 걸려서 정체를 들킨다고 해도 그건 형의 일이지 그와는 상관이 없었다.다행히 전태윤 일행은 하예정 일행과 마주치진 않았지만 전태윤이 엘리베이터에 탈 때 다른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던 주형인과 서현주가 그를 보았다.주형인이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라고 잠깐 생각하던 그때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아직 엘리베이터에 타지 않은 경호원들은 주형인이 문 앞에서 힐끔거리는 걸 발견하고는 일제히 주형인을 노려보았다.그 모습에 잔뜩 겁먹은 주형인은 재빨리 서현주를 끌고 호텔을 나섰다.“형인 씨, 방금 뭘 그렇게 뚫어져라 봤어요?”“방금 그 남자들 전씨 가문 도련님의 경호원들 아니야?”주형인이 서현주에게 물었다.“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요? 전씨 가문 도련님을 만날 기회도 없었는데 경호원을 알 리가 있겠어요?”전씨 가문 도련님의 경호원을 단번에 알아보는 사람이라면 전씨 가문 도련님을 자주 만난다는 것을 뜻한다. 서현주는 자신이 그 행운아이길 바랐지만 아쉽게도 그녀는 아니었다.그녀는 명
“하예정 남편이 전씨 집안과 연관이 있었더라면 우리 둘을 가만뒀겠어요? 진작 전씨 가문 도련님의 권력과 힘으로 우리한테 복수했겠죠.”자신이 저지른 일을 생각하던 주형인은 서현주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여 더는 마음에 담아두지 않았다.전씨 가문 도련님이 누구인가? 하예정이 여러 번 환생한다고 해도 전씨 가문 사모님이 될 팔자가 없을 것이다.두 사람이 애정행각을 하며 호텔을 나서던 그때 호텔 문 앞에서 하예진과 딱 마주쳤다.주우빈이 잠든 후에 주우빈을 숙희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나온 거라 홀로 주형인과 서현주를 기다렸다. 이곳에 찾아온 것도 전태윤이 건넨 자료와 증거를 토대로 주형인이 서현주와 관성 호텔에 자주 온다는 걸 분석해낸 것이었다.주형인은 그와 결혼하여 아이를 낳고 집안일은 물론이고 그의 부모와 누나네 가족까지 챙긴 그녀에게 돈도 벌지 못하면서 펑펑 쓰기나 하고 집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고 늘 그녀를 질타했다.그리고 고작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도 하예정의 도움을 받는다면서 먹는 것밖에 모르는 무능력한 사람이라고 했었다. 비록 두 사람은 이미 감정이 틀어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왔지만 이 생각만 하면 하예진은 여전히 마음이 쓰라렸다.많이 먹지 않으면 모유가 부족하게 되고 주형인은 또 그녀에게 아들을 굶겨 죽일 거냐고 한 소리 했다. 주우빈은 첫돌이 지나서야 모유 수유를 끊었다.그는 조강지처인 그녀에게만 구두쇠였다. 가끔 기분이 좋을 때 외식하긴 했지만 기껏해야 포장마차나 갔다. 포장마차에서 아무리 배불리 먹어도 얼마 되지 않았다.하지만 서현주와는 관성 호텔에 자주 다녔다. 서현주에게는 한없이 다정한 남자였고 선물 공세도 멈추지 않았다. 그야말로 공주 모시듯 서현주를 예뻐했다.하예진을 본 서현주는 보란 듯이 주형인의 팔짱을 끼며 도발했다. 일부러 한 도발이니 못 볼 리가 없었다.주형인은 잠깐 멈칫하더니 서현주와 함께 하예진에게 다가가 싸늘하게 물었다.“여긴 왜 왔어? 우빈이는? 우빈이 너무 놀라서 너랑 안 떨어지려 한다고 했잖아.
서현주는 주형인을 잡아당기며 물었다.“저 여자랑 무슨 얘기를 더 해요?”“내가 준 이혼 합의서를 동의하지 않았어. 아무래도 이혼 얘기를 하려는 거겠지.”이혼 소송을 하려면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주우빈이 당한 일 때문에 하예진은 한시도 기다리기 싫었다.주형인은 서현주와 함께 차 쪽으로 걸어갔다. 차에 올라탄 그는 걱정스럽게 서현주의 볼을 어루만졌다.“아파?”“형인 씨는 아파요?”주형인은 자신의 얼굴을 만지며 대답했다.“아파. 우빈이 일 때문에 화가 많이 났나 봐. 뺨 한 대 정도는 화풀이로 맞아줄 수 있어.”서현주도 따귀 맞은 얼굴을 어루만졌다.“형인 씨, 저쪽에서 하루라도 빨리 이혼하길 원하니까 위자료를 더 적게 줘도 될 것 같아요. 그냥 맨몸으로 내쫓으면 더 좋고요. 싫다고 하면 이혼 소송하라고 해요. 한번 끝까지 가보죠, 뭐.”주형인이 고개를 끄덕였다.“일단 따라가서 무슨 얘기하는지 들어보자.”두 사람은 하예진이 하루빨리 이혼하길 원한다고 생각하여 맨몸으로 내쫓을 수 있을 거라고 여겼다. 그녀가 빈털터리로 내쫓기는 모습을 상상하던 서현주는 뺨 맞은 볼을 만지며 입꼬리를 씩 올렸다.하예진은 한 밀크티 가게에서 불륜 남녀와 얘기를 나누기로 했다. 그녀가 자리를 잡고 주스 한 잔을 주문하고 나니 서현주가 주형인의 팔짱을 끼고 가게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은 일부러 애정행각을 벌이며 그녀를 자극했다.그 모습을 본 하예진은 코웃음을 쳤다. 오히려 서현주에게 고마울 지경이었다. 그녀 덕분에 주형인의 못된 본성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이런 남자라면 기꺼이 서현주에게 양보할 수 있었다.두 사람이 가까이 다가와 보니 테이블 위에 노란 서류 봉투가 놓여있었다. 주형인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아무렇지 않은 척 자리에 앉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이게 뭐야?”하예진은 노란 서류 봉투를 주형인에게 건넸다. 주형인은 사인한 이혼 합의서인 줄 알았지만 서류 봉투가 무거운 걸 발견하고는 절대 이혼 합의서일 리가 없다고 확신했다. 서현주
“내가 어떻게 이 자료들을 구했는지는 신경 쓰지 마. 네가 리베이트 받은 일을 너희 대표님께 알리면 어떻게 될까? 계속 유진 테크에 남아서 사장직을 맡을 것 같아?”하예정은 주형인이 리베이트를 받은 증거를 다 보여주지 말고 일단 말로만 겁주라고 언니한테 얘기했었다.하예진은 아무런 단서도 없이 주형인을 겁줄 수 없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전태윤의 친구가 수집한 증거 자료들을 전부 한 부씩 복사했다.주형인이 미쳐 날뛴다고 해도 그녀는 증거 자료를 계속 더 복사할 수 있다.그의 약점을 잡고 밥줄을 위협해야만 그나마 고개를 숙이고 아내와 이혼 상의를 잘할 것이다.그녀는 전태윤이 소정남에게 유진 테크에 대한 전면적인 압박을 시작하라고 지시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주형인과 서현주를 기다리는 것은 직장에서 잘리는 일뿐이다.주형인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그는 하예진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하예진은 전에 유진 테크에서 근무하며 재무 총괄 담당 직까지 올라갔었다. 당시 그녀는 주형인보다 훨씬 뛰어났다.주형인은 자신이 하예진보다 못하다는 압박감에 자존심이 타격을 입어 그녀에게 청혼했었다.두 사람은 알고 지낸 지 십여 년이 됐고 연애도 몇 년 동안 한지라 하예진은 늘 서로의 감정이 두텁다고 여겼었다.그녀도 결혼할 준비를 하고 있어 주형인이 청혼했을 때 흔쾌히 허락했고 결혼 준비를 하면서도 주형인과 시댁 모두 그녀의 요구를 들어주었다.주형인은 전보다도 더 자상해졌고 드디어 결혼 후 하예진을 사직시키고 집에서 임신 준비나 하게 했다.그녀가 임신에 성공했을 때 주형인도 아이를 향한 기대감이 무척 컸었다. 한편 회사에서도 하예진과 비교당할 일이 없어져 스트레스가 줄어들 뿐만 아니라 대표님에게 점점 잘 보여 승진도 하고 연봉도 올랐다.하여 오늘의 사장직까지 오른 것이다.다만 하예진은 그의 아내, 주우빈의 엄마로 거듭나 종일 아이를 돌보며 가정에만 충실하다 보니 예전 동료들과도 연락이 뜸해지고 점차 사회와 단절되었다.수유 기간에는 아들을 위해
다만 살이 찐 이후로 모든 게 무너졌다.아름다웠던 미모가 주형인의 손에서 전부 망가졌다.“예진아, 그래서 넌 무슨 생각인데?”주형인이 목소리를 가다듬고 그녀에게 물었다.“원하는 걸 말해봐. 최대한 들어주도록 노력할게. 헤어질 땐 좋게 헤어지자. 이 물건들 원본 파일 전부 나한테 줘.”지금 그는 자산이 4억 가까이 된다.하예진과 이혼 상의가 잘되지 않아 그녀가 소송이라도 걸면 증거까지 갖고 있기에 그녀에게 매우 유리해진다. 열세에 처한 주형인은 법원의 정상 판결대로 재산의 절반을 하예진에게 나눠줘야 한다.게다가 그녀가 주형인이 리베이트를 받은 증거 자료를 그의 대표님한테 넘긴다면 해고까진 몰라도 사장직에선 틀림없이 물러나야 할 것이다.바이어의 리베이트를 받은 것 자체가 죄질이 상당하고 바이어를 도와 회사에 손해 가는 짓을 저질렀으니 위에서 조사하면 바로 들통나게 된다. 회사 대표가 홧김에 그를 해고하고 그의 만행을 널리 퍼뜨린다면 추후에 재취업하는 것도 곤란해질 듯싶다.이는 앞날이 걸린 문제였다.주형인은 자신의 앞날과 이익을 위해서 지금 이 순간, 하예진이 아무리 미워도 고개를 숙이고 이혼 상의를 잘해야만 한다.“당신 명의로 된 모든 재산, 나도 너무 많이 탐내진 않아. 딱 절반으로 갈라. 그건 내가 받아 마땅한 거야. 집과 차는 안 가질게. 그 대신 내게 따로 보상금을 줘.”하예진이 조건을 제시했다.“집 인테리어 비용도 사양할게. 내 돈으로 한 인테리어 내가 직접 거둬올 거야.”주형인이 이혼을 허락하고 이혼 절차를 밟는 순간 그녀는 사람을 보내 그 집 인테리어를 전부 무너뜨릴 생각이었다. 벽재까지 전부 부숴버리고 애초에 그가 이 집을 샀을 때의 모습으로 되돌려놓겠다고 다짐했다.“우빈의 양육권은 내가 가져. 당신은 달마다 양육비 60만 원만 내면 돼. 지금 수입으로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거 다 알아. 우빈이는 당신 아들이기도 해. 이 요구 들어줄 수 있겠지? 우빈이가 18살이 되면 그땐 양육비를 안 줘도 돼. 우빈이 만나는 횟수도
주형인은 한참 침묵하다가 말을 이었다.“예진아, 내가 재산을 너에게 나눠주면 너 정말 그 증거 자료들 나 돌려줄 거야? 우리 대표님께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맹세할 수 있어?”“내가 받아야 할 부분만 받는다면 절대 널 향한 그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아. 약속해.”다만 하예정과 전태윤이 어떻게 나올지는 그녀도 장담하지 못한다.주형인은 또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재산분할 조건은 네 뜻대로 해줄게. 하지만 우빈의 양육권은 너 못 줘. 우빈이는 우리 주씨 가문의 혈육이야. 엄마, 아빠가 우빈이를 엄청 중히 여긴다고. 나 절대 아이 양육권만큼은 포기할 수 없어.”주형인은 양육권까지 그녀에게 뺏겼다가 집에 돌아가서 부모님께 욕바가지를 들을까 두려웠다.게다가 어찌 됐든 우빈이는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하예진은 마시다 남긴 주스를 그의 얼굴에 뿌렸다.“주형인, 뻔뻔스럽게 지금 나랑 우빈의 양육권을 뺏으려 해? 주씨 가문의 혈육? 네 부모님이 우빈이를 중히 여겨? 그 사람들 우빈이를 어떻게 대했는지 몰라서 물어? 애가 아직도 툭하면 울어. 얼굴에 멍 자국도 없어지지 않았어. 대체 너희 집안은 아이한테 얼마나 더 상처를 줘야 만족해? 우빈이가 너희 가족들한테 괴롭힘을 당해서 죽어야 만족하겠어?”주형인은 갑작스러운 주스 세례에 더없이 초라해졌다.그녀의 행동에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를 것 같았다.옆에 있던 서현주가 재빨리 티슈로 그의 얼굴에 묻은 주스를 닦아주더니 하예진을 째려봤다.“서로 좋게 얘기하자더니 왜 주스를 뿌려? 양복까지 더러워졌잖아. 인제 어떡할래? 당신이 배상할 수 있어?”“이봐 서현주 씨, 아직도 상황파악이 안 돼?”하예진이 비난 조로 쏘아붙였다.“나랑 주형인 이혼 절차 밟기 전까진 이 사람 아직 내 법적 남편이야. 이 사람 것이 곧 내 것이라고. 대체 네가 무슨 자격으로 나한테 배상을 요구해? 네가 뭐라도 된 것 같아?”서현주는 화가 나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현주야.”주형인이 다정하게 말했다.“나
그 뒤로 이윤미가 그녀의 오빠들과 내연녀들이 함께 있는 것을 보고는 차마 몇 명의 형수님들이 속고 있는 모습을 보다 못해 형수님들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 후로 이윤미의 오빠들과 형수님들이 말다툼하기 시작했다.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고현은 이윤미가 잘했다고 생각했다.바람을 피운 사람이 자기 오빠라고 감싸면서 오빠들을 도와 형수님들을 속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보면 자기 남편이 바람피운 사실을 모든 사람이 다 알지만, 본인만 모른다면 얼마나 괴롭겠는가!이때 전호영이 검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정군호 씨가 그렇게 멍청하지 않을걸요. 이 대표님께서 돌아오신다면 정군호 씨는 틀림없이 나가서 바람피우지 않을 거란 말이에요. 하지만 우리가 이 대표님을 도와야 한다고 봐요. 못 봤으면 그만이지만 우리가 현장을 목격했잖아요. 이 대표님을 만나면 알려줘야 해요. 어쨌든 우리 형수님의 이모시기 때문에 우리 형수님의 친척이나 다름없죠. 안 그래요?”고현은 전호영을 꾸지람했다.“호영 씨도 정말 나쁘네요. 이씨 가문에서 난리가 났으면 좋겠죠? 그런데 저도 호영 씨를 지지할 거에요. 이러고 보니 저도 좋은 사람은 아닌가 봐요.”“아니에요.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들이죠. 정군호 씨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보세요. 정군호 씨가 잘못한 것을 우리가 바로잡아준 거죠. 이 대표님을 위한 것이지 모함하거나 억울하게 만든 것은 아니잖아요.”“저처럼 일편단심인 남자는 정군호 씨의 이런 행동이 너무 부끄러워요. 만약 집안의 아내가 싫으면 이혼할 것이지... 이혼하기는 싫고 또 밖에서 예쁜 여자들이랑 놀고는 싶고... 두 마리 토끼는 다 잡을 수 없는 법이죠. 하늘 아래 어떻게 그런 좋은 일이 있겠어요?”전호영은 정군호가 젊은 여자와 바람을 피우는 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하루 호텔도 카메라가 있었기에 정군호가 내연녀를 껴안고 호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꼭 찍혔을 것이다.전호영이 정군호에게 누명을 씌운 것이 아니었다.“이 대표님이 그토록 기가 센데
“저는 배려심이 깊은 신사에요.”고현은 웃으면서 그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리면서 전호영의 신사다운 행동을 그대로 받아들였다.하지만 전호영이 고현의 손을 잡고 함께 호텔로 들어가려고 하자 고현은 거절했다.전호영의 안색은 이내 어두워졌다.사람들 앞에서 그녀는 시종 전호영과 연인처럼 행동하려 하지 않았다.고현이 말한 것처럼 그녀는 전호영을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두 사람이 앞으로나란히 몇 걸음 걷더니 고현이 갑자기 멈추었다.“왜 그러세요?”전호영이 물었다.‘설마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만났나?’전호영은 앞을 보았지만, 그녀를 짝사랑하는 여자들을 보지 못했다.“정군호 씨예요.”고현은 낮은 목소리로 한 사람의 이름을 말한 뒤 전호영을 잡아당겨 차 뒤로 숨었다. 그녀의 경호원 팀은 고현이 위험한 줄로 알고 본능적으로 최대한 빨리 고현의 앞으로 돌진하며 위험을 막으려고 했다.“얼른 숨으세요. 저를 막지 마시고!”고현은 나지막이 경호원 팀에게 말했다.고현이 누군가의 가십거리를 보고 싶어 했던 모양이다.고현은 선글라스를 끼고 검은 옷을 입은 늙은 남자를 가리켰다. 그 늙은 남자는 천가 같은 얼굴과 매력적인 몸매를 가진 여자를 껴안고 있었다.그 여성의 곁을 지나가는 남자라면 모두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몇 번 더 쳐다보았다.“저 남자는 이윤미의 친아버지이자 이 대표님의 남편인 정군호 씨예요. 그 옆에 있는 여자는 저도 잘 몰라요. 놀랍게도 밖에서 내연녀를 만나고 있었네요. 만약 이 대표님께 들킨다면 정말 정군호 씨를 죽여놓을지도 몰라요.”이은화의 남편이라는 말을 들은 전호영은 즉시 휴대전화를 꺼내 정군호와 내연녀의 동영상을 찍었다.그리고 말했다.“이 대표님은 우리 큰형의 결혼식에 가신 뒤로 계속 관성에 남아계시거든요. 아마도 정군호 씨는 이 대표님이 없는 틈을 타 바람을 피우고 있는 모양이네요”고현도 말을 이었다.“이 대표님께서 남편을 너무 엄격하게 단속하니까 정군호 씨도 아마 진짜로 바람 피우지는 못할 거에요. 기껏해야 지
고현은 사실 그대로 대답했다.“저는 어른이 된 후로 여행을 갈 시간이 없었어요. 바빠서 미치겠는데 언제 시간을 내서 놀러 가겠어요? 하지만 출장 다니면서 많은 곳은 가봤어요.”“신혼여행은 어디 가고 싶어요?”전호영이 그녀에게 물었다.고현이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말을 이었다.“저는 물이 맑고 공기가 좋은 산을 좋아해요. 조용하거든요.”“제가 잘 연구해서 산 좋고 물이 맑은 조용한 곳을 찾아볼게요. 한 달 동안 머물면서 우리 둘만의 세상을 잘살아 봐야죠.”알고 보니 고현은 산과 물이 있는 아름다운 곳을 좋아했다.전씨 가문의 서원 리조트가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이 있는 곳이고 평소에도 매우 조용한 곳이었다.“서원 리조트를 좋아해요?”“좋아하죠.그럼 서원 리조트에서 신혼여행을 즐기려고요?”전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그건 아니고요. 그곳은 우리 미래의 집이고 신혼여행은 당연히 딴 곳으로 가야죠.”이때 고현이 자신을 스스로 비웃으며 말했다.“제가 지금 시집갈지 말지 고민하고 있는데 벌써 신혼여행에 관한 문제를 고민하고 있네요. 호영 씨와 함께하면 쉽게 호영 씨 의도대로 따라간단 말이죠. 저의 총명함과 자제력 모두 호영 씨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도 없다니까요.”“현이 씨가 아직도 이 일을 고민하고 있다니. 제가 아직도 부족한가요?”전호영은 자신이 고현을 오랫동안 쫓아다녔다고 느꼈다. 그는 모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고현을 대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에게 시집을 갈지 말지를 고민하고 있다.하여 전호영은 자신이 충분히 노력하지 못했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어떤 방면에서 잘하지 못했는지 알고 싶었다.“아니에요. 충분히 잘하셨어요. 우리 데이트도 별로 안 하고 평소에도 일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아직 결혼까지 할 정도로 감정이 깊지 않은 것 같아요. 사람들의 말처럼 하루 못 보면 일 년을 못 본 것 같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저는 몰라요. 그런 감정을 못 느낀다는 건 제가 호영 씨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는 뜻인 것 같아요. 어
경호원 팀은 그들의 전 대표님이 전호영에게 떠밀려 마이바흐 차에 들어가는 모습을 버젓이 보고만 있었다. 그리고 그 차는 곧 고씨 그룹을 빠져나왔다.고빈이 중얼거렸다.“호영 씨는 정말 내가 본 형부 중 가장 오만방자한 형부였어. 처남인 나에게 조금도 아부하지 않고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다니.”고빈은 중얼중얼하긴 했지만, 두 사람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들을 따라가지 않았다.만약 고빈이 정말 친형이 있다면 그는 전호영이 그의 친형을 해치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꼭 따라갔을 것이다.하지만 그의 친형은 사실 여자였다. 그의 누나 고현은 시집가야 하는 여자였다. 전호영은 그의 누나와 어울리는 남자였기 때문에, 또 전호영이 고빈의 부모님께 고빈이 너무 방해한다고 고자질하면 안 되었기에 고빈은 더는 따라가지 않았다.지금 고씨 가문에서 전호영은 고현 남매보다 체면이 훨씬 섰다.“고빈 씨가 안 따라왔죠?”전호영은 차를 몰면서 조수석에 앉은 고현에게 물었다.고현은 돌아볼 필요도 없이 이내 말을 이었다.“고빈이는 입만 살아서 그렇지 정말 따라오지는 않을 거예요. 호영 씨가 우리 부모님 앞에서 고빈의 고자질할까 봐 두려웠기 때문이죠. 고빈은 저보다 10분 먼저 태어났지만 지금 정해진 여자친구가 없거든요.”“저도 호영 씨랑 짝을 지으니 저희 부모님의 눈길도 자연스레 고빈의 몸으로 옮겨졌어요. 호영 씨가 제 동생의 고자질하면 저희 부모님은 그를 욕하다가 결국 결혼 재촉 문제로 돌아가거든요. 제 동생은 결혼 재촉을 엄청 무서워하거든요.”고빈이 마음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고정된 여자친구를 찾지 못한 일에 관해 고현도 마음이 조급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에게는 전호영이 있었지만, 고빈의 짝은 아직 어디에 있는지...예전에는 고현은 고빈과 이윤미를 맞세워주려고 했지만, 고빈은 이윤미가 재미없다고 느꼈고 이윤미 또한 고빈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지금 이윤미 곁에 방윤림이 있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었다.“저도 항상 고빈 씨의 고자질하고 싶지 않아요.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