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남은 한창 소씨 가문 가주의 아들인 소지훈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촌지간이지만 우애가 아주 깊었다.그때 검은 옷차림의 한 남자가 두 사람 앞으로 다가오더니 예를 갖춰 말했다.“도련님들, 전씨 가문의 도련님께서 오셨습니다.”“얼른 안으로 모셔요.”남자는 공손한 태도로 알겠다고 한 뒤 나가버렸다. 소정남이 테이블 위에 놓인 노란색 서류 봉투를 가리켰다.“태윤이 물건 가지러 왔네.”“직접 왔다는 건 날 만나러 온 거겠지.”소지훈은 도우미에게 차와 과일을 좀 가져오라고 했다. 그는 자주 집안의 힘을 동원하여 소정남을 도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전태윤을 도와준 것이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마음속으로 알고 있었던 전태윤은 직접 감사의 인사를 전하려고 했다.“태윤이 진작 형을 만나고 싶어 했어. 그런데 형이 너무 바빠서 집에 자주 없는 바람에 기회가 없었어.”“태윤이는 네 친구니까 내 친구나 다름없어. 친구 사이에 서로 도우면서 사는 거지 뭐. 그렇게 예의 차릴 필요 없어. 네가 전씨 그룹에서 너의 가치를 증명해서 형이 얼마나 기쁜지 몰라.”소지훈은 소정남의 어깨를 두드렸다.“계속 열심히 해. 그런데 너무 일만 하지 말고 네 혼사도 생각해야지. 작은어머니가 네가 나이도 많은데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고 맨날 뭐라 하셔.”“형은 나보다 나이가 많잖아. 형도 여자친구가 없는데 내가 급할 게 뭐가 있겠어?”소지훈이 잠깐 멈칫했다.“방금 한 얘기 그냥 못 들은 걸로 해.”조금 전 나갔던 검은 옷 남자가 전태윤을 데리고 들어왔다. 전태윤의 경호원들은 전태윤이 준비한 선물을 안으로 들여놓은 후 조용히 밖에서 대기했다.“전태윤.”소정남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그를 불렀다. 소지훈도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다른 인사는 하지 않았다. 전태윤이 그들 앞으로 다가와서 소정남이 정식으로 소개를 마친 후에야 두 사람은 서로 악수하며 인사했다.“지훈 씨의 존함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태윤 씨도 명성이 자자하시더군요.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네요.
“따르릉...”소지훈의 휴대 전화가 울렸다. 전화를 받은 그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태윤 씨, 미안해서 어쩌죠?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일어나야 할 것 같아요.”전태윤도 황급히 일어났다.“정남아, 형 대신 태윤 씨한테 잘 대접해.”소지훈은 동생에게 당부한 후 바로 저택을 나섰다.소지훈도 없는데 그 저택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전태윤은 소정남과 함께 소정남의 집으로 향했다. 그의 집에 가자 소정남의 어머니는 혼기가 꽉 찬 아들이 아직 여자친구도 없다면서 온 저녁 전태윤에게 하소연했다.전태윤은 겨우 그 집에서 나오며 소정남에게 말했다.“다음에 어머님이 집에 계시면 나한테 집에 가자고 하지 마.”그러자 소정남이 피식 웃었다.“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효진 씨랑 소개팅한 건 어떻게 됐어? 가족들한테 얘기 안 했어?”“지훈 형만 알고 있고 다른 가족들은 몰라. 아직 친해지지도 못했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찾아가면 효진 씨가 얼마나 놀라겠어.”전태윤이 동정 어린 눈빛으로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마음에 들면 노력해봐. 이참에 솔로 탈출하면 좋잖아.”“솔로 탈출하면 또 애나 낳으라고 닦달하실 거야. 애 하나 낳으면 둘째 셋째를 낳으라고 할 게 뻔해. 어른들은 항상 다그치시잖아.”소정남은 그에게 여자친구가 생기면 부모님이 조용해지실 거라고 전혀 믿지 않았다. 전태윤을 보면 모르겠는가? 전태윤이 할머니의 말씀을 듣고 하예정과 결혼한 후에도 할머니는 빨리 아이를 낳으라고 다그치시는 것을.“효진 씨 내 스타일이긴 한데 성격이 너무 직설적이야. 가끔 너무 직설적으로 얘기해서 뭐라 해야 할지 모르겠다니까.”사실 이건 다 문제가 아니었다. 왜냐하면 소정남은 심효진 같은 이런 성격의 여자를 좋아하니까.“그럼 네가 더 적극적으로 하면 되지.”소정남과 심효진이 서로를 마음에 들어 했다는 사실에 전태윤은 너무도 뿌듯했고 직접 주선해준 보람을 느꼈다.소정남은 그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소정남의 배웅을 받으며 전태윤은 경호원들
하예정은 내심 흐뭇했지만 결국 그의 뜻을 거절했다.전태윤이 무언가 얘기하려고 할 때 그녀는 한 손에 꽃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 그의 목을 꼭 껴안으며 고개를 숙이게 했다. 하예정은 남편에게 바짝 다가가 나지막이 속삭였다.“남자가 꽃을 너무 자주 사면 못 써요. 그러다 바람날라.”말을 마친 그녀는 전태윤의 가슴을 툭 내리쳤다. 말인즉슨 절대 바람피우지 말라는 뜻이었다.전태윤은 어안이 벙벙했다.‘이런 말도 있었어? 나중에 소남정에게 물어봐야겠네.’하예정이 그의 차에 올라탄 후 전태윤도 운전석에 돌아가 시동을 걸며 그녀에게 물었다.“우빈이는 좀 어때?”“아직 부기가 다 안 빠졌어요. 어젯밤엔 열이 나서 밤새 울더니 오늘 아침에 드디어 열도 내리고 아이도 울다 지쳐 예진 언니 품에 안겨서 잠들었어요.”우빈의 얘기에 홀가분했던 그녀의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태윤 씨.”하예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에게 말했다.“만약에, 정말 만약에 우리도 아이가 생기면 무슨 일이 있든, 우리 둘 사이가 어떻게 변하든 절대 아이한테는 상처 주지 말아요. 약속할 수 있죠?”전태윤은 급브레이크를 밟고 고개를 홱 돌린 채 그녀를 쳐다봤다.부부는 진지한 눈빛으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전태윤은 그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그의 일상 속에 그녀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깊게 스며들어 있었다.하예정도 사랑한다고 말한 적이 없지만 그에게 기대는 마음이 점점 더 커졌다.부부는 서로 잘 알았다. 둘은 이미 서로의 세계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것을.전태윤은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가볍게 어루만지더니 몸을 좀 더 기울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녀가 지그시 눈 감은 순간, 이마, 얼굴, 그리고 입술까지 가볍게 키스했다.“예정아, 네가 날 진심으로 대하면 난 반드시 더 깊은 사랑으로 보답할 거야. 내 마음이 작아서 네가 입주하면 다른 사람은 더이상 용납하지 못해. 우리의 관계는 변하지 않아. 만약 아이가 생긴다면... 그건 우리의 생명의 연속이겠지. 내가 다치는 한이
전태윤은 주차한 뒤 주형인이 재산을 빼돌린 증거가 생각나 이제 막 하차하려는 하예정을 불러세웠다.“친구한테 부탁해서 주형인이 재산 빼돌린 일이 있는지 조사해보았는데 생각보다 일을 효율적으로 하더라고. 어젯밤에 바로 모든 증거를 내게 보내왔어. 저 뒷좌석에 노란 서류 봉투에 들어있어.”“친구분 참 대단하네요. 이렇게 빨리 증거를 수집하다니.”하예정은 그의 친구에게 감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호기심이 생겼다. 언젠가 꼭 한번 만나 뵙고 싶었다.그녀는 증거를 수집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거로 여겼었다. 어쨌거나 주형인이 인제 와서 재산을 빼돌린 게 아니라 진작 시작했으니까.다만 하루 사이에 증거를 모두 수집하다니.“태윤 씨 친구분 탐정 사무소 같은 거 꾸려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 실력을 아껴두기엔 너무 애석하잖아요.”하예정은 조수석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고 노란 서류 봉투를 챙겼다.“걔 가족 중에 정보 탐색만 전문적으로 하는 분이 있어서 인맥도 넓고 무언가 맡기면 효율이 엄청 높아.”소씨 일가의 정보망이 매우 넓고 관성이 또 소씨 일가의 본거지다 보니 이 도시에서 일어난 일들은 거의 그 집안을 숨길 수가 없다. 소씨 일가가 마음만 먹으면 관성에서 알아내지 못할 일이 없다.다만 그 비용이 매우 높다 보니 일반인들은 감히 선뜻 소씨 일가에 부탁을 청하지 못한다.“그런 분들은 늘 소설에서나 볼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현실에도 이렇게 어마어마한 집안이 존재하네요.”하예정은 서류 봉투를 챙긴 후 전태윤이 선물한 꽃다발을 차에 내려놓았다.전태윤이 빤히 쳐다보자 그녀가 해명했다.“예진 언니 지금 기분이 최악이라 언니 앞에서 당신 자랑하고 싶지 않아서요.”그녀는 가까이 다가가 전태윤의 볼에 입 맞추며 미소 지었다.“태윤 씨가 꽃 선물한 거 나만 알고 있으면 돼요.”남편 자랑할 기회는 아직 많이 남아있으니까 굳이 지금 티 내고 싶지 않았다.전태윤은 이해한다는 듯이 대답했다.“자매 사이가 엄청 좋아 보여.”“십여 년을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어요. 언니
“아주머니, 언니랑 우빈이가 겨우 잠들었으니 일단 깨우지 마세요. 죽 끓여서 나중에 깨나면 먹게 해요.”숙희 아주머니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세 사람이 아침 식사를 마친 후 하예정은 정신 좀 차리려고 커피 믹스를 한 잔 풀었다.숙희 아주머니가 먼저 주방을 나서자 전태윤이 그 틈을 타 와이프의 손을 덥석 잡았다.“예정아.”그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넌 집에서 쉬고 있어. 내가 다녀오면 돼.”하예정은 그의 손을 꼭 잡아주며 다정하게 말했다.“나 괜찮아요. 커피 한 잔 마시면 버틸 수 있어요. 임씨 가문에 가면 싸워야 할지도 몰라요. 싸움은 당신이 나보다 못해요. 아마 당신 동생들도 말싸움으론 주서인 감당하지 못할걸요.”그들은 지적인 사람들이라 당연히 말싸움에 능하지 못할 것이다.“난 우빈이 이모예요. 애가 그 인간들한테 괴롭힘을 당해 이 지경이 됐으니 반드시 찾아가서 따져 물을 거예요. 어젠 우빈이가 쓰러져서 아이만 돌보다 보니 그 인간들 상대할 겨를이 없었어요. 이젠 우빈이도 조금 호전됐으니 그 집 찾아가서 꼬치꼬치 캐물어야죠.”전태윤의 그윽한 눈빛에 하예정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태윤 씨, 자꾸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지 말아요. 자꾸만 날 유혹하는 것 같잖아요. 심장이 쿵쾅대고 허튼 생각하게 된단 말이에요. 마음 같아선 확 덮쳐서 당신 잡아먹고 싶어요.”전태윤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띠리링...”이때 그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전이진한테서 걸려온 전화였다.전화를 받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전이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형, 우리 지금 XX고속도로 톨게이트에서 대기하고 있어.”“알았어. 지금 바로 갈게.”전태윤은 전화를 끊은 후 하예정에게 말했다.“다들 어제 그곳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대.”하예정은 남은 커피를 두세 입에 대충 들이마시고는 숙희 아주머니에게 몇 마디 당부한 후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는 길에서 그녀는 성소현의 전화를 받았다.“예정 씨, 내가 보낸 사진 받았죠? 보니까 어때요? 익숙한
하예정이 조마조마해 하고 있을 때 성소현이 불쑥 말을 꺼냈다. 그녀는 의외로 차분한 목소리로 하예정에게 물었다.“예정 씨, 엄마가 점심이면 집에 도착할 거예요. 나 예정 씨네 가서 우빈이 한번 데려와도 될까요?”성소현은 이모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사진을 봐도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그저 하예정의 말대로 아이들은 어릴 때 다 귀여운 듯싶었다.만약 주우빈이 이모와 닮았다면, 아주 조금이라도 닮은 구석이 있다면 성소현은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를 데려와 엄마에게 한번 보여주고 싶었다.성소현은 애초에 하예정을 처음 봤을 때도 이상하게 자꾸 그녀와 친해지고 싶었다.주우빈을 처음 봤을 때도 아이가 너무 예뻤다.만약 주우빈이 이모의 후손이라면 성소현도 왜 아이를 처음 봤을 때 그토록 귀여웠는지 해석이 될 것 같았다.우빈이 또래의 아이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유독 주우빈만 그토록 귀여웠고 마음 같아서는 당장 뺏어와 제 조카로 만들고 싶었다. 주우빈에게 장난감을 사줄 때도 그녀는 전혀 망설임 없이 아이에게 장난감 공장이라도 열어줄 기세로 어마어마하게 사줬었다.하예정에게도 같은 마음이었다.성소현은 상류층에 머물러있다 보니 주변에 항상 아양을 떠는 사람들이 끊이지 않았는데 전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26살인 그녀는 너무 까다로운 탓에 진짜 친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적었다.하지만 하예정을 처음 만났을 때 마치 옛친구와 만난 것처럼 친숙함을 느꼈고 하예정의 출신, 조건을 전부 마다한 채 그녀와 친구를 맺고 싶었다.하예정이 그녀를 위해 전씨 일가의 도련님을 사로잡도록 팁을 알려준 것 때문만은 아니었다.진심으로 하예정이 마음에 들었고 친구로 지내고 싶었다.“소현 씨, 그건 안 될 것 같아요. 우빈이 지금 상황이 좀 안 좋거든요.”성소현은 순간 가슴이 움찔거려 잔뜩 긴장한 채로 물었다.“우빈이 무슨 일 있어요?”하예정은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털어놓았다.“우리 언니가 지금 남편과 이혼 중이잖아요. 주씨 집안에서 언니가 방심한 틈을 타 우빈
“네, 집안이 대가족이에요. 소현 씨, 마음만 받을게요. 너무 고마워요.”성소현은 하예정의 남편 쪽에서 사람들을 불러와 도와준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예정 씨, 남편분이랑 초고속 결혼이라고 했죠? 인제 보니 꽤 괜찮은 분 같네요. 이런 일 생겼을 때 적어도 선뜻 나서서 도와주잖아요.”하예진의 남편은 12년이나 알고 지냈지만 초고속 결혼한 하예정의 남편과 비할 바가 못 된다!“그래요, 그럼 난 이번엔 안 갈게요. 하지만 다음에 또 이런 일 생기면 꼭 나한테 얘기해야 해요. 안 그러면 날 친구로 안 여기는 거라고 삐질 거예요. 예정 씨 언니네 집 주소 보내줘요. 가서 우빈이 좀 봐야겠어요.”하예정은 이번 요구엔 거절하지 않았다.통화를 마친 후 그녀는 곧바로 성소현에게 예진의 집 주소를 보내주었다.전태윤은 둘의 통화 내용을 유의 깊게 엿들었다.성소현이 사람을 불러오겠다고 할 때 그는 핸들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성소현이 오면 그의 신분은 바로 들통나 버린다.이렇게 갑자기 들통나서는 안 된다. 하예정이 아무런 마음의 준비가 안 되었는데, 게다가 부부의 감정이 아직 견고해지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들켜버리면 하예정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할 것이다.다행히 아내가 성소현의 호의를 거절했다.전태윤은 성소현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지만 그녀가 하예정을 향한 마음만은 진심이란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성소현의 성격과 지위로 그녀는 무슨 일이든 참지 않고 제멋대로 굴 수 있다.전태윤은 일부러 무심한 척 질문을 건넸다.“성소현 씨야?”“네, 소현 씨 어머님이랑 이모님의 어릴 때 사진을 보내줬는데 처음엔 얼핏 봐서 아무 느낌도 없었어요. 하지만 나중에 자세히 들여다보니 문득 이모님과 우빈이가 많이 닮은 것 같더라고요.”전태윤은 그녀의 말에 식겁하여 하마터면 앞차를 들이받을 뻔했다.그가 갑자기 브레이크를 밟자 하예정의 몸도 앞으로 쏠렸다.“운전 천천히 해요. 내가 할까요?”하예정이 말했다.“운전은 꼭 천천히 해야 해요. 침착해서 나쁠 것 하나 없어
또 어쩌면 성소현이 이모가 어른이 된 모습을 상상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하예정은 임씨 일가에 다녀온 이후에 곧장 이모님의 어른이 된 모습을 그려보기로 했다. 정말 언니랑 닮았을지 그녀도 몹시 궁금했으니까!“그러니까 지금 우리 장모님이 소현 씨 이모님이란 말이야?”전태윤은 어이가 없었다.‘이럴 수가! 말도 안 돼!’이렇게 기막힌 일이 그의 아내한테 벌어지다니!심지어 성소현은 한때 그에게 공개적으로 고백하며 적극 구애했고 하예정도 그녈 위해 전태윤을 사로잡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내줬다.만약 전태윤이 결혼반지를 낀 모습을 성소현에게 보여주지 않았더라면 그녀는 아마 지금도 매일 같이 집착하며 귀찮게 굴 것이다.성소현을 따끔하게 혼내주려 했는데 뜻밖에도 그녀와 하예정이 절친한 사이가 돼버려 이젠 더는 어쩔 수 없었다.진심으로 하예정을 챙겨주는 사람이니 전태윤도 더욱 각별히 대할 수밖에 없다.하씨 일가의 인간쓰레기들은 요즘 들어 매우 잠잠해졌다. 더는 하예정을 찾아와 귀찮게 굴지 않았다. 만약 그랬더라면 전태윤과 성소현, 두 사람 모두 선뜻 도와 나섰을 것이다.하씨 일가의 사람들은 하예정의 배후에 있는 조력자가 전태윤이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 다들 성소현인 줄 알고 그녀의 신분에 지레 겁을 먹어 잠시 잠잠해졌을 뿐이다.“나도 확신할 순 없어요. 엄마가 돌아가신 지 15년이 다 돼가는데 만약 정말 그렇다면...”하예정은 성소현의 엄마가 수십 년 동안 여동생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진작 사망했다는 걸 알게 되면 타격이 얼마나 클지 내심 걱정됐다.그리고 본인 엄마도 떠올리니 너무 가슴 아팠다.“설마 진짜겠어요?”하예정은 기분이 확 가라앉았다.“소현 씨 어머님은 줄곧 여동생을 찾았어요. 우리 엄마는 살아계실 때 가족에 관한 얘기를 한 적이 없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아마도 가족을 찾고 싶어 했을 거예요. 전에 우리한테 말했거든요. 대체 친부모한테 버림받은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에게 납치당해 팔려간 것인지 말이에요!”전태윤이 침묵했다.만약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