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윤은 일반 SUV를 타고 관성중학교를 떠나 늘 가던 곳에 도착한 후 경호원에게 이 차를 맡기고는 그의 전용 롤스로이스에 올라탔다.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박 집사에게 전화해 어린이 안전 의자를 보내오라고 분부했다.성소현은 또다시 그의 회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가는 길을 막진 않았다.그녀는 묵묵히 제자리에 서서 그의 전용차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성소현은 전태윤을 향한 마음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오늘이 마지막이야. 앞으론 더이상 보러 오지 말자.’전태윤이 낀 반지가 기혼이 아니라 그녀를 마음 접게 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그땐 아마 또다시 그에게 대시할 것이다.전씨 그룹의 대문은 전태윤의 전용차가 회사로 들어가자 곧바로 굳게 닫혔다.성소현은 롤스로이스가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도 한참 서 있다가 쓸쓸하게 제 차로 돌아갔다.그녀는 또 한참 넋 놓고 있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시동을 걸더니 갑자기 속도를 올려 도로를 질주했다.성소현은 기분이 나쁠 때마다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2시간 후, 그녀의 차가 하예정의 가게 앞에 도착했다.인기척을 들은 심효진이 안에서 나오자 성소현도 마침 차에서 내렸다. 심효진은 반갑게 웃으며 그녀를 맞아주었다.“어머, 소현 씨.”성소현은 2시간 쇼핑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심효진을 본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효진 씨, 마침 잘 왔네요. 이것 좀 도와줘요. 물건을 너무 많이 사서 뒷좌석이 꽉 찼어요. 물건 좀 옮겨줄래요?”심효진이 그녀의 차를 힐긋 보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소현 씨,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눈에 보이는 대로 다 샀어요. 뭐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먹고 놀고 입고, 그냥 다 들어있을 거예요.”성소현은 한바탕 화끈하게 쇼핑했다.심효진이 하예정을 불러오자 그녀도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어서 성소현의 리드 하에 세 여자는 차 안의 모든 물건을 가게로 옮겼다.“장난감은 우빈이 거예요.”성소현은 다른 물건은 몰라도 장난감은 기
“그러니까 나 구해주는 셈 치고 얼른 받아요.”성소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들에게 부탁했다.성씨 일가는 돈이 엄청 많지만 그녀의 엄마는 보육원에서 자라 재벌가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어도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성소현의 엄마는 돈 낭비를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하예정이 속으로 구시렁댔다.‘역시 돈이 많으니까 제멋대로야!’심효진도 자신이 평소 돈을 많이 쓰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진정한 재벌가의 고명딸 성소현과는 아예 비할 바가 못 됐다.“예정 씨, 이분은?”성소현이 숙희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예정에게 물었다.“우빈이 돌봐주시는 가정부예요. 나랑 효진이가 가끔 바쁠 때 우빈이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해서요. 그래야 우리 둘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거든요.”아이를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책임감이 우선 순이었다.하예정은 우빈이만큼은 엄청 신경을 써주었다.“그건 그래요.”성소현은 숙희 아주머니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하예정이 관심 조로 그녀에게 물었다.“소현 씨 오늘 왜 기분 나빴어요?”“편하게 말 놔도 돼요. 목표가 사라지니까 기분도 가라앉더라고요.”성소현은 하예정이 따라준 물을 두어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가 글쎄 결혼반지를 꼈더라고요.”“네?”하예정이 화들짝 놀랐다.숙희 아주머니도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 아침 도련님과 사모님은 모두 반지를 끼지 않았다.심효진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분 결혼하셨어요? 왜 전혀 들은 바가 없죠? 그분 신분에 결혼식을 올리면 관성 전체가 떠들썩해지겠는데요. 언론사 기자들도 서로 앞다투어 기사를 다룰 거라고요.”성소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속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결혼했단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낀 건 확실해요. 너무 눈부셔서 절대 잘못 봤을 리가 없어요.”“아니 그건...”하예정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성소현이 전 대표님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하예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그녀도 성소현을 항상 응원해주고 아이디어
하예정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다독였다.“소현 씨는 참 괜찮은 여자예요. 소현 씨 남자가 아니면 쿨하게 포기하고 다음 행복을 찾아 나서야죠.”성소현은 입술을 앙다물고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꾹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나만 원한다면 남자들은 항상 줄지어 있어요. 굳이 임자 있는 남자를 뺏고 싶진 않아요!”심효진도 한마디 곁들였다.“혼자 지내도 얼마나 자유롭고 편한데요.”그녀는 아직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 적이 없어 성소현의 아픔을 이해하기 어려웠다.성소현은 그녀를 보더니 뭔가 생각난 듯 빨개진 눈시울로 웃음을 터트렸다.“효진 씨가 도 사모님 연회에서 드러누운 일이 우리 관성의 상류층에서 소문이 쫙 퍼졌어요. 그땐 효진 씨가 만취해서 그런 거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고의 맞죠? 가족들이 그렇게 결혼을 다그친다면서요?”심효진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지금은 한결 조용해졌어요. 엄마랑 고모가 더는 함께 모여 날 어느 재벌 2세에게 시집 보낼지 수군거리지 않는다니까요.”성소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효진 씨 그 방법 대박이네요. 고모님은 아마 사모님들 앞에서 다시는 효진 씨 얘기를 꺼내지 않으실 거예요. 전에 엄마랑 함께 연회에 참석했을 때 효진 씨 고모님과 얘기를 나눈 적 있는데 아들 따님 얘기 말곤 종일 효진 씨를 칭찬했어요.”“다행히 내가 물을 엎질러버렸죠.”심효진은 그날 밤 일을 떠올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아 참, 깜빡할 뻔했어. 효진아, 너 소개팅 나갈래? 우리 남편 회사 동료분인데 나이도 남편이랑 비슷하고 엄청 잘생겼대. 연봉도 높고 집안 조건도 좋아.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연애할 시간이 없었대.”심효진이 물었다.“너희 부부 지금 나한테 선 자리 마련해주는 거야?”“나한테 얼핏 얘기했는데 남자분 조건이 괜찮은 것 같아. 너 만나볼 의향 있으면 남편더러 약속 잡으라고 할게. 싫으면 내가 대신 거절하면 돼.”심효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친구 부부가 처음 마련해준 소개팅이고
그녀의 오빠가 성씨 그룹을 인수하기 전부터 엄마의 위상이 아빠보다 높았다. 회사 임원 층은 그녀의 어머니를 더 중히 여겼다.이로써 성소현의 어머니가 성씨 그룹에서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맞아요, 나도 소현 씨랑 같은 생각이에요.”심효진과 성소현은 서로 공감했다.심효진의 엄마와 고모가 바로 그녀가 재벌가에 시집가서 전세 역전하길 바라고 있었다.하예정이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난 조건이 비슷한 남자를 찾았잖아요. 재벌가는 꿈도 꾸지 않아요.”전태윤의 월급이 그녀보다 좀 더 높지만 둘은 모두 상사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라 서로 같은 수준이었다.“뭐 그렇다면 너희 남편한테 얘기해서 약속 잡아줘, 예정아. 동료분 한번 만나봐야겠어. 누가 알아, 진짜 인연이 될지.”“좋아.”절친한 친구를 위해 반쪽을 찾아줄 수 있다면 하예정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다.숙희 아주머니는 세 사람이 결혼에 관해 이야기하는 걸 엿들으며 성소현의 관점에 매우 동의했다.성소현은 그녀들과 함께 있을 때 전혀 틀을 차리지 않고 사이좋게 지냈다. 숙희 아주머니는 세간에서 성소현에 대한 오해가 매우 깊다고 생각됐다.그리고 또 한편으로 하예정이 걱정스러웠다.성소현은 하예정이 바로 전씨 그룹 대표님의 아내라는 걸 전혀 몰랐고 하예정 본인조차 모르고 있었다. 세상에 비밀은 없으니 조만간 들통나게 될 터인데 그때 가서 이 둘의 관계가 어떻게 변할까?원수가 되어 서로 등지는 건 아닐까?여기까지 생각한 숙희 아주머니는 도련님이 조금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오랫동안 자신의 신분을 숨긴 것일까?신분을 숨기고 하예정의 성품을 지켜본다 해도 2개월이 거의 다 돼가는데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한 걸까?숙희 아주머니는 생각만 할 뿐 감히 말을 내뱉지 못했다.“카톡, 카톡...”이때 하예정의 카톡이 울렸다.클릭해보니 전태윤한테서 온 문자였다.생활용 카드에 300만 원을 보냈다는 내용이었다. 이번에 상여금으로 600만 원을 받았는데 절반은 그녀에게 주
“뭘 그렇게 해맑게 웃어? 남편한테서 온 문자구나?”심효진이 장난치듯 물었다.하예정과 전태윤의 사이가 점점 더 돈독해지자 심효진은 더할 나위 없이 기뻤다. 두 사람이 하루빨리 결혼식을 올렸으면 하는 바람이었다.“우리 집 손님방에 아직 침대가 없거든. 남편이 마침 요 며칠 상여금을 받아서 내게 300만 원 입금해줬어. 침대도 사고 옷장이랑 침대 용품도 사라고 했어. 아주머니, 이따가 점심 먹고 우빈이가 낮잠 자면 나랑 함께 쇼핑하러 가요. 아주머니가 쓰실 물건들이니 직접 고르세요.”숙희 아주머니가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뭐든 다 돼요. 지낼 곳만 있으면 되죠 뭘.”“그럼 안 되죠. 반드시 편하게 지내셔야 해요. 사장님이 직접 돈을 주며 물건을 사라고 하는데 아낄 필요가 있나요. 우리 함께 좋은 거로 골라봐요.”하예정은 숙희 아주머니가 일을 잘하면 장기간 함께 지내기로 했다. 아주머니를 가족으로 생각하며 뭐든 잘해주고 싶었다.그녀는 시계를 들여다보며 성소현에게 물었다.“소현 씨, 이따가 함께 밥 먹을래요?”성소현은 이젠 더는 관성 호텔에 찾아가 전태윤을 지켜볼 일도 없고 집에도 돌아가고 싶지 않아 곧바로 대답했다.“그래요, 그럼.”하예정은 숙희 아주머니에게 식사를 1인분 더 준비하라고 했다.“알았어요, 예정 씨. 지금 바로 음식 준비할게요.”하예정은 신나게 장난감을 노는 조카를 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그러세요. 우빈이는 제가 돌볼게요.”숙희 아주머니는 주방으로 들어가 재빨리 전태윤에게 문자를 보냈다.「도련님, 성소현 씨가 오셨는데 사모님께서 함께 남아 점심 먹자고 하셨어요. 소현 씨도 허락하셨고요.」전태윤은 회의를 마치고 하예정에게 계좌 이체한 후 중요한 서류 몇 부를 처리했다. 그는 이제 막 정리를 마치고 또 미리 퇴근하여 와이프와 함께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숙희 아주머니가 때마침 문자를 보냈다.전태윤은 순간 몸에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열이 식었다.“성소현, 참 지긋지긋해.”그에게 집착하지 않으니 이젠
전태윤은 어안이 벙벙했다.“할머니도 참... 너무 멀리 가셨어요. 할머니 아드님들한테 말씀하세요. 노력해서 손녀 좀 안게 해달라고 말이에요. 아마 그게 더 빠를 거예요.”어르신은 웃으며 그를 나무랐다.“네 할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우리더러 노력해서 딸아이 낳는 게 더 빠르다고 할 셈이냐? 너희 아빠, 엄마랑 삼촌 숙모는 이미 중년인데 낳긴 뭘 낳아? 젊었을 때 딸을 낳지 못했으니 이젠 손녀라도 기대해봐야지 않겠어?”“셋째 삼촌과 숙모는 이제 고작 40대예요. 노력하면 낳을 수 있을 거예요.”얼떨결에 언급된 셋째 삼촌 부부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조카가 한심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것이다!“지금 바빠?”“할머니랑 통화 중이죠.”“이것 봐, 말하는 말투가 전혀 귀엽지 않잖아. 안 바쁘지? 안 바쁘면 할미가 회사로 찾아갈게. 우리 손주랑 함께 쇼핑해야겠어.”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할머니, 나 아직 근무 중이에요.”“회사가 너 없다고 망하는 건 아니잖니? 할미도 다 널 위해서 함께 쇼핑하는 거란다. 여자랑 함께 쇼핑도 할 줄 알아야 나중에 예정이랑 같이 다니지. 경험 쌓을 좋은 기회니까 소중히 여겨.”전태윤이 입술을 삐죽거리며 대답했다.“이진이랑 함께 쇼핑하세요. 저는 점심 약속이 있어요.”“미룬 거 아니었어?”전태윤이 잠시 뜸 들이다가 대답했다.“와이프랑 함께 못 먹으니 제 약속 마저 챙겨야죠.”“하하, 녀석, 너도 이런 날이 있네! 애초에 이 할미가 뭐랬어?”전태윤은 말문이 막혔다.“알았어, 그럼 네 볼일 봐. 난 셋째랑 함께 쇼핑하러 갈 거야. 너희 형제 중에 그래도 셋째가 제일 낫다니까. 걔랑 함께 있으면 심심할 새가 없어.”말을 마친 어르신은 전화를 끊었다.‘그래도 전화한 보람이 있네. 태윤이가 마음을 조금 연 모양이야. 그 녀석의 평생 행복을 위해서 내 속이 재가 다 되었어. 흰머리가 가득 났잖아.’전태윤은 휴대폰을 잠시 들여다보다가 결국 하예정에게 문자를 보냈다. 점심에 바이어와 약속이 잡혀 가게로 가지 못한다고
김은희는 주서인네 셋째를 끌고 곧바로 안으로 들어왔다. 주서인은 직장으로 돌아간 모양인지 함께 따라오지 않았다.“우빈아, 정한이 왔어.”김은희는 외손자의 손을 잡고 걸어오며 주우빈을 불렀다.“예정 씨, 효진 씨.”그녀는 웃으며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는 물건을 정리하는 모습을 힐긋 쳐다봤다.곧이어 성소현에게 시선이 쏠렸다.성소현은 우빈을 품에 안고 물었다.“우빈아, 저분 누구야?”하예정이 허리를 펴고 담담하게 말했다.“아주머니가 여긴 어쩐 일이시죠?”이어서 성소현에게 소개했다.“이분은 우리 언니 시어머님이세요. 우빈의 친할머니고요.”하예정은 친할머니라는 단어를 거듭 강조했다.성소현은 정한의 손을 꼭 잡은 김은희를 보다가 다시 고개 숙여 우빈을 쳐다봤다. 우빈은 할머니께 인사만 할 뿐 그다지 가까워 보이지 않았다.보아하니 하예정의 언니와 시어머니의 관계가 썩 좋지 않은 듯싶었다.“우빈이가 평소 놀아줄 친구가 없어서 오늘 이렇게 정한이 데려왔어요.”김은희는 장난감 두 박스에 두 눈을 반짝이는 정한이를 보자 얼른 손을 놓아주며 가서 놀라고 했다.“내 장난감이야.”아이는 제 물건을 지키는 법이었다.주우빈도 마찬가지였다.정한은 평소 우빈의 물건을 뺏는 게 습관 되었고 안 주면 때리기까지 했다. 우빈이가 울면 정한의 엄마는 남자아이가 울긴 왜 우냐고, 정한 형이 장난감 뺏는 것도 아니고 놀다가 돌려준다면서 훈계를 놓았다.주우빈은 고모의 말을 썩 믿지 않았다.나이가 어려 말이 서툴지만 정한 형이 매번 돌아갈 때마다 그의 장난감을 가져갔고 더는 돌려주지 않았다. 가끔 장난감을 고장 내기까지 했다.주우빈은 성소현의 품에서 내려와 정한이 장난감을 놀지 못하게 마구 밀쳤다.“우빈아, 형 밀치면 안 돼. 장난감이 이렇게 많은데 함께 놀아야지.”김은희는 우빈이가 정한을 밀치자 본능적으로 정한을 보호하며 우빈을 내팽개쳤다.이 행동을 본 세 여인은 울화가 치밀었다.가장 가까이 있던 성소현이 벌떡 일어나 김은희의 손에서 우빈이를 당겨왔다. 그
하예정이 차갑게 되물었다.“정한이가 누구죠? 나랑 뭔 상관인데요? 우빈이는 내 외조카예요. 외조카를 서운하게 만들면서까지 딴 아이를 달래줄 순 없죠. 우빈이가 뭘 잘못했나요? 잘못 가르친 건 아주머니예요. 정한이가 평소에도 우빈이 괴롭히고 때리고 장난감을 빼앗아 집까지 가져갔잖아요. 외할머니가 돼서 대체 뭘 하셨나요? 아니면 혹시 그냥 이딴 식으로 가르친 건가요? 아주머니, 정한이는 외손자이고 우빈이는 친손자라서 이렇게 편애해요? 정말 너무하시네요!”김은희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곧이어 반박에 나섰다.“예정 씨, 정한이는 아직 어린애예요. 그리고 우빈이는 장난감도 많은데 정한이가 좀 놀면 어때요? 우빈아, 정한 형이 울잖아. 장난감 좀 형한테 나눠줘.”우빈이가 머뭇거렸다.성소현은 그런 우빈에게 말했다.“우빈아, 주기 싫으면 주지 마. 쟤가 울고 싶거든 실컷 울라고 해. 바닥도 깨끗이 닦고 얼마나 좋아. 그냥 발버둥 치게 놔둬. 그럼 예정 이모도 바닥 청소할 필요가 없잖아.”우빈이 낮은 목소리로 속삭였다.“형 나빠요.”정한은 그에게 나쁜 인상을 안겨주었다.“형 나쁘면 함께 놀지 마. 이봐요, 아줌마, 그 댁 외손자 데리고 나가줄래요? 내 친구 가게가 작아서 애 데리고 밖에 나가서 실컷 뒹굴게 하세요.”하예정은 조카를 억울하게 만들면서 다른 아이의 요구를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성소현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녀는 줄곧 제멋대로였고 감히 따져 묻는 자에겐 서슴없이 싸대기를 날린다.“정한이 착하지, 얼른 일어나. 우린 그깟 장난감 필요 없어. 외할머니가 데리고 나가서 더 많이 사줄게.”김은희는 하예정과 성소현의 말에 화가 잔뜩 치밀었고 바닥을 나뒹구는 외손자가 가슴 아파 쪼그리고 앉아서 아이를 달랬다.“싫어요, 난 우빈이 장난감 가질래요!”정한은 예쁘게 자란 탓에 한사코 우빈의 장난감을 욕심냈다.“정한이 착하지, 우빈이 장난감 하나도 재미없어. 외할머니가 재밌는 장난감 더 많이 사줄게.”“싫어요, 싫다고요. 나 우빈이 장난감 가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