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언니? 할 만해?”두 자매는 나란히 전태윤의 차 쪽으로 걸어가며 수다를 떨었다.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전에 어떤 일 했는지 그새 잊었어? 걱정 마. 잘 돼가고 있어.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곧바로 감 잡았어.”인간관계라면... 아직 서로 지낼만한 동료는 찾지 못했다.아마도 면접날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다들 그녀와 노 대표가 아는 사이란 걸 알게 된 듯싶었다. 겉으로는 그녀를 깍듯이 대하지만 뒤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쉬쉬거리며 이상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하예진은 화장실에 갔다가 무심코 동료들이 자신을 의논하는 걸 엿들었다.그래도 출근 첫날이니 차차 좋아질 거로 여겼다.“태윤 씨.”하예진은 차에 탄 후 제부에게 인사했다.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예정을 힐긋 쳐다봤다. 하예진은 제부의 속마음을 바로 알아채고 차에 올라탄 후 곧바로 차 문을 닫았다.하예정은 반대편으로 돌아가기 귀찮아 곧바로 조수석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언니, 우리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밥 다 먹고 언니랑 우빈이 집에 바래다줄게.”“그래.”하예진은 취직한 이후로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가는 길 내내 두 자매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은 운전에 전념하면서도 두 자매의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그는 아내와 처형에게 음식 대접을 하는 거라 인색할 리 만무하여 관성 호텔로 향했다.호텔 매니저는 전태윤이 경호원도 없이 들어오는 걸 보자 전이진의 당부를 떠올리며 냉큼 한쪽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전태윤을 등지고 서 있었다. 괜히 도련님이라고 불렀다가 직업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태윤 씨, 그냥 일반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되는데, 이렇게 비싼 곳으로 올 필요 없어요.”하예진은 제부의 주머니 사정이 조금 걱정됐다.남도 아닌데 이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가 있을까? 대충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전태윤은 두 자매와 함께 룸으로 들어간 후에야 입을 열었다.“예진 씨, 여긴 우리 회사 산하의 호텔이에요. 직원
하예진은 동생에게 눈을 깜빡거렸다. 하예정은 언니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전태윤이 참 괜찮은 사람이니 앞으로 잘 해주라는 당부일 듯싶었다.이 점은 하예정도 인정했다. 전태윤은 가끔 일방적이고 속 좁게 행동하지만 큰일 앞에선 아주 차분하고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그는 수많은 남자들보다 훌륭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부부가 아직 감정 기초도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그녀에게 잘해주고 있었다.하예정은 본인도 전태윤을 잘 챙긴다는 걸 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 식사할 때 끊임없이 남편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전태윤은 입에 기름기가 번지르르했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예정이가 집어준 음식이 이렇게나 맛있었네!’그는 문득 식객당에서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음식을 집어줬던 일이 떠올랐다.‘그때 김진우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겠지? 칫, 고작 한 번이야! 김진우는 예정에게 동생일 뿐이라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절대!’오늘 밤 하예정은 쉴 새 없이 전태윤에게 음식을 집어줬다. 김진우는 단 한 번뿐이었으니 그와 비할 바가 못 된다.김진우가 아무리 하예정을 사랑해도 그건 의미 없는 노릇이었다.현재 그녀의 남편은 전태윤이니까.부부 사이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그녀는 법적으로 전태윤의 배우자였다.‘김진우, 넌 멀리 떨어져 있어.’전태윤은 전혀 김진우를 질투할 필요가 없다. 마땅히 김진우가 그를 질투해야 한다.전태윤은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지난번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음식을 집어준 사건을 철저히 내려놨다.식사 한 끼가 이렇게 뿌듯할 수가!식사를 마친 후 그들 부부는 예진 모자를 집으로 보내고 나란히 쇼핑하러 갔다.결혼한 지도 한참 됐는데 전태윤은 처음 하예정을 데리고 쇼핑에 나섰다. 물론 장 보러 가는 것은 예외였다.밤거리에 인파들로 붐벼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전태윤은 체면을 내려놓고 그녀와 함께 야채 시장도 몇 번 다녔으니 오늘 쇼핑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부부는 인파들 속에서 목적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예정아, 뭐 사
아마도 서명한 계약서 때문에 마음이 찔려서겠지.전태윤은 방법을 생각하여 예정의 손에 있는 그 계약서를 훔쳐 오고 싶었다. 훔친다는 것은 너무 듣기 거북하니 다시 가져오기로 했다. 그래도 명색이 전씨 집안 도련님인데 훔친다는 게 웬 말인가? 일단 제 손에 넣은 후 곧바로 계약서를 없애버릴 작정이었다.전태윤은 끝내 손도 잡지 못한 채 아내와 함께 밤거리를 거닐었다. 게다가 공짜 짐꾼이 되어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하예정은 처음에 아무것도 안 사겠다더니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고 물론 전부 제 돈으로 결제했다.전태윤이 대신 결제하려 했으나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한 탓에 무마됐다.밤 열 시가 다 돼서야 부부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하이힐 안 신었는데도 오래 쇼핑하니 발이 시큰거리네요.”하예정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축 늘어졌다.이에 전태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여자라면 다들 쇼핑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누군가와 함께 쇼핑하길 꺼리는 전태윤은 오히려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그건 그래요. 효진이가 더 잘 돌아다녀요. 걔랑 함께 쇼핑하는 게 두려울 정도라니까요. 동쪽부터 서쪽까지 샅샅이 누빌 정도예요.”심효진의 얘기에 전태윤은 뭔가 떠오른 듯 그녀 옆에 다가가 앉았다.“예정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네 의견을 듣고 싶어.”하예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뭔데 그래요?”여긴 전태윤의 집이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그녀의 의견을 묻는 걸 보니 아마 중요한 일인 듯싶었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효진 씨 댁에서 결혼을 다그친다고 했었지?”“네, 맞아요. 왜요? 남자친구 소개시켜주려고요?”하예정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태윤 씨 회사 동료예요? 효진이 엄마랑 고모는 걔가 부잣집에 시집가길 바라는데 정작 본인이 싫어해요. 재벌가의 삶이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원만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거든요. 효진이 고모가 그해 김씨 집안에 시집가서 엄청 고생한 끝에 겨우 여유
잠시 후 하예정이 말했다.“들어보니까 괜찮은 것 같네요. 효진이가 전에 소개팅했던 남자들보단 괜찮아 보여요. 내일 효진이한테 제대로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태윤 씨, 너무 늦었어요. 난 이만 돌아가서 씻고 잘래요.”하예정은 쇼핑하느라 몸이 노곤했다.전태윤도 함께 일어나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잘 자!”하예정은 그와 인사를 마친 후 방으로 돌아갔다. 쇼핑하면서 사 온 물건들도 정리하기 귀찮았다.‘내일 아침 일어나서 다시 정리하면 돼.’하예정은 미련 없이 곧바로 제 방으로 돌아갔고 전태윤은 선 자리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한참 뒤, 그는 발코니로 걸어가 그네에 앉아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했다.‘이젠 예정이랑 어떻게 지내야 하지?’전태윤은 늦게 자는 것에 익숙해져 11시가 다 돼서야 방으로 돌아갔다.그들 부부는 한집에서 살지만 각방을 쓰고 있었다.그는 하예정의 방에 들어가지 않고 하예정도 그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두 개의 문이 굳게 닫히면 둘은 마치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했다.한편 이는 전태윤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였다.그렇게 고요한 밤이 흘러갔다.다음날 하예정은 늘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그녀는 습관대로 발코니에 걸어가 꽃을 다루었다.발코니에 작은 개미들이 몇 마리 있었는데 허리 숙여 보자 개미들이 나란히 기어간 방향에 화분이 몇 개 더 놓여 있었다.지난번 거실에 왜 개미가 그렇게 많았던지 그녀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화분의 흙 속에 개미 알이 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개미가 된다. 하예정은 발코니의 화분들을 사 온 뒤로 살충제를 한 번도 뿌리지 않았다.평소 꽃에 물을 줄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아 화분 속에 개미가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물을 다 준 후 하예정은 지갑을 챙겨 장 보러 갔다. 식자재도 살 겸 살충제도 사서 화분 속에 뿌릴 생각이었다.‘앞으론 주기적으로 화분에 살충제를 뿌려야겠어. 개미가 판을 치잖아.’하예정은 장 보러 간 지 30분 후에 고기와 야채가 담긴 봉투를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숙희가 눈웃음 지으며 인사를 올렸다.전태윤은 사전에 하예정 앞에서 절대 본인을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태윤 씨라고 호칭을 바꾸라고 명령했었다.“오셨어요, 아주머니. 예정아, 이분이 바로 전에 말했던 숙희 아주머니야.”전태윤이 서둘러 소개를 마친 후 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오는 길에 이미 아주머니를 만나서 자기소개 다 마쳤어요. 아주머니, 얼른 앉으세요. 저는 장 봐온 거 정리해야겠어요.”“사모님, 제가 할게요.”“아주머니.”숙희 아주머니가 난처한 듯 웃으며 전태윤을 힐긋 바라보더니 더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정 씨라고 호칭을 바꿨다.“태윤 씨, 예정 씨, 두 분 아직 아침 안 드셨죠? 제가 얼른 아침 식사를 준비할게요.”하예정이 말리고 싶었지만 숙희가 웃으며 말했다.“예정 씨, 저는 가정부예요. 제가 해야 할 일들은 태윤 씨께서 이미 다 말씀해주셨어요. 오늘부터 정식 출근으로 월급을 정산해주는데 근무 시간에 놀기만 하고 예정 씨에게 일을 떠밀 순 없잖아요.”하예정은 어쩔 수 없이 장 봐온 식자재들을 숙희에게 건넸다. 숙희는 식자재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주머니, 소꼬리 뼈랑 옥수수, 당근, 원두, 그리고 소시지 두 개와 야채는 제가 이따가 가게로 갖고 가서 점심으로 먹어야 할 것들이에요.”숙희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전해졌다.“알겠어요, 예정 씨.”그녀는 곧바로 하예정이 가게로 가져가려는 식자재를 따로 빼놓고 나머지 재료들로 세 사람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하예정은 주방 문 앞에 한참 서서 숙희를 바라봤다. 숙희는 능수능란하고 손놀림도 빠르며 매우 깔끔하여 항상 행주로 싱크대를 닦았다.하예정은 시름 놓고 발코니로 향했다.전태윤도 그녀 따라 발코니로 걸어갔다.“아주머니 매우 꼼꼼하셔.”전태윤은 아내의 손에 든 작은 봉투를 힐긋 바라봤다. 봉투 안에 작은 포장으로 된 물건이 몇 개 들어 있었다.“그건 뭐야?”“개미 약이에요. 이 화분들을 사 온 뒤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서 개미가 생겨났어요. 흙 속에 개미 알이 있
전태윤은 그녀가 와서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한참을 방 안에 있었다.“태윤 씨, 아주머니께서 아침을 다 하셨대요.”하예정은 그의 문 앞에서 노크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한편 그녀는 속으로 구시렁댔다.‘옷 갈아입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려?’전태윤은 평소 무슨 일이든 신속하고 깔끔하게 하는 편이지 종래로 꾸물거리는 성격이 아니었다.아, 참, 꽃다발을 건넬 땐 매우 꾸물거렸다.전태윤이 문을 열고 나왔다.그는 셔츠를 입었지만 단추를 채우지 않았다.문을 열자마자 하예정은 은은하게 비친 그의 탄탄한 근육을 봐버렸다.그녀는 당황해하며 말했다.“태윤 씨, 식사해요.”전태윤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예정은 횡설수설 말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전태윤은 다시 문을 닫고 단추가 풀린 옷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더 많이 풀었어야 했나? 와이프가 침도 흘리지 않네? 흐음...’그는 왠지 일부러 끼 부리며 아내를 유혹하는 듯싶었다.다만 중요한 건 아직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전태윤은 요 이틀 자신이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이상행동을 보이겠는가. 이따가 회사로 돌아가서 소정남에게 용한 점집을 알고 있으면 몇 집 소개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다. 이상한 잡귀를 쫓아버려야 하니까.와이프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꾸물거리던 전태윤은 아내가 노크한 뒤 2분도 채 안 돼 발 빠르게 방에서 나왔다.하예정은 그가 셔츠와 정장 바지만 입고 외투와 넥타이를 걸치지 않은 걸 보더니 또다시 속으로 구시렁댔다.‘태윤 씨 진짜 왜 이러지? 옷 갈아입는 데 한참 걸렸는데 넥타이도 안 한 거야?’“태윤 씨, 예정 씨, 제가 한 음식 어서 맛보세요.”숙희가 다 만든 음식을 들고나와 식탁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부부의 집은 식구가 적어 늘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안 그래도 집안일 거리가 얼마 없었는데 숙희 아주머니까지 오니 하예정은 아예 할 일이 없어졌다. 아주머니의 부름에 그녀는 곧바로 달려왔다.“아주머니, 왜
하예정이 맛있게 먹어주자 숙희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녀도 배가 고파 전태윤을 쳐다보지 않고 마음껏 아침을 먹었다.배불리 먹은 후 숙희 아주머니는 설거지하러 주방으로 들어갔고 하예정은 의자를 당겨 전태윤의 곁으로 다가갔다.전태윤은 순간 고슴도치처럼 온몸의 가시를 뾰족하게 세웠다.그는 이번에 경계한 게 아니라 바짝 긴장해 하고 있었다. 아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당황했다.“태윤 씨, 우리 집에 손님방은 있는데 침대가 없네요. 이따가 우빈이 데려오고 아주머니랑 우빈이를 가게에 보내요. 그리고 우린 아주머니께 침대랑 침대 용품 사드리러 가요. 바닥에 주무시게 할 순 없잖아요.”고슴도치는 그제야 가시를 걷었다.“당신이 이 집 주인이니까 알아서 하면 돼.”전태윤은 오늘 오전 중요한 회의가 있어 그녀와 함께 침대 용품을 사러 갈 시간이 없었다.“저번에 준 2천만 원 거의 다 썼지? 이따가 회사 가서 인터넷 뱅킹으로 지난번 그 카드에 계좌 이체해줄게. 아주머니는 비록 우빈이 돌보는 가정부이긴 하지만 소홀히 할 순 없지. 침대 좋은 거로 사. 돈 아끼지 말고.”“아직 돈 남았어요. 이체 안 해도 충분히 살 돈 돼요. 걱정 말아요. 나 그렇게 가정부 학대하는 사람 아니니까.”생활용 카드에 돈을 입금해준다는 말에 하예정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부부가 냉전할 때 그녀는 기분이 우울하여 쇼핑으로 미친 듯이 카드를 긁었는데 그 카드가 바로 생활용 카드였다. 그때 하예정은 전태윤의 돈을 엄청 많이 썼었다.하여 아주머니의 침대는 본인 돈을 쓰기로 했다.‘저번에 미친 듯이 카드를 긁은 보답이라고 해두지.’그들 부부는 서로 묵묵히 배려했다.하예정은 그에게 공짜로 받으려 하지 않고 그 또한 하예정을 저울질하지 않았다.서로 존중해주며 평화롭게 지냈다.전태윤은 온화한 표정으로 변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짙어 속내를 알아챌 수 없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하예정은 오히려 그가 이렇게 묵묵히 바라보는 모습에 적응됐다.일
생각을 마친 하예정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넥타이를 매는 법을 검색했다.그녀는 재빨리 두 번 본 후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이어서 앞으로 다가가 전태윤의 손에 쥔 넥타이를 들고 한 번 잡아당기더니 그의 목에 걸었다.‘방에 가서 옷 좀 갈아입지. 여자들이 외출 전 메이크업하는 것보다 더 느려. 넥타이도 안 매고 말이야.’숙희 아주머니는 가벼운 걸음으로 밖에 나가 부부를 기다렸다.“내가 아는 남자 중에 쓰레기 같은 형부와 진우 말곤 아무도 정장에 넥타이를 두르지 않아요. 나 한 번도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어서 급하게 인터넷으로 배웠는데 제대로 되겠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꽉 조여도 너그럽게 이해해줘요.”전태윤은 구시렁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경험이 없다는 건 단 한 번도 남자에게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다는 뜻일 텐데.지금 그에게 넥타이를 매주기 위해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해서 배웠다니,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비록 영상을 두 번이나 봤지만 여전히 제대로 매지 못했다. 보기엔 쉬워도 직접 하려니까 너무 어려웠다.애초에 공예품을 만들 때도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았다.“내가 할게.”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직접 넥타이를 맸다. 더 기다리다가 그녀에게 목이 졸려 죽을 수도 있으니까.하예정은 한숨을 돌리더니 얼굴이 또다시 빨개졌다.‘왜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하는 걸까?’이건 마치 어릴 때 다른 애들이 넥타이를 두르는 모습이 예뻐 보여 본인도 직접 해보았지만 매면 맬수록 매듭이 꽉 조여지는 그런 기분이었다.‘진작 혼자 맬 것이지.’하예정이 속으로 투덜거렸다.전에는 그녀가 얼굴 한번 만져도 기겁하며 몸을 피하더니 이젠 넥타이를 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결국 전태윤은 홀로 넥타이를 매고 외투를 입었다. 하예정이 돈 봉투를 챙기고 먼저 나가자 그는 말문이 턱 막혔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먼저 광명 아파트로 향했다. 하예진은 우빈과 함께 집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언니, 나 오늘 좀 늦었지.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