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때 언니? 할 만해?”두 자매는 나란히 전태윤의 차 쪽으로 걸어가며 수다를 떨었다.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내가 전에 어떤 일 했는지 그새 잊었어? 걱정 마. 잘 돼가고 있어. 처음에 적응하기 어려웠는데 곧바로 감 잡았어.”인간관계라면... 아직 서로 지낼만한 동료는 찾지 못했다.아마도 면접날 한바탕 소란을 피운 후 다들 그녀와 노 대표가 아는 사이란 걸 알게 된 듯싶었다. 겉으로는 그녀를 깍듯이 대하지만 뒤에서는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하여 쉬쉬거리며 이상한 눈길로 그녀를 쳐다보았다.하예진은 화장실에 갔다가 무심코 동료들이 자신을 의논하는 걸 엿들었다.그래도 출근 첫날이니 차차 좋아질 거로 여겼다.“태윤 씨.”하예진은 차에 탄 후 제부에게 인사했다.전태윤은 고개를 끄덕이며 하예정을 힐긋 쳐다봤다. 하예진은 제부의 속마음을 바로 알아채고 차에 올라탄 후 곧바로 차 문을 닫았다.하예정은 반대편으로 돌아가기 귀찮아 곧바로 조수석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언니, 우리 일단 밥 먹으러 가자. 밥 다 먹고 언니랑 우빈이 집에 바래다줄게.”“그래.”하예진은 취직한 이후로 기분이 많이 좋아진 것 같았다.가는 길 내내 두 자매는 쉴 새 없이 수다를 떨었다.전태윤은 운전에 전념하면서도 두 자매의 대화를 모두 엿들었다.그는 아내와 처형에게 음식 대접을 하는 거라 인색할 리 만무하여 관성 호텔로 향했다.호텔 매니저는 전태윤이 경호원도 없이 들어오는 걸 보자 전이진의 당부를 떠올리며 냉큼 한쪽 옆으로 걸어갔다. 그는 전태윤을 등지고 서 있었다. 괜히 도련님이라고 불렀다가 직업이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태윤 씨, 그냥 일반 레스토랑에서 먹으면 되는데, 이렇게 비싼 곳으로 올 필요 없어요.”하예진은 제부의 주머니 사정이 조금 걱정됐다.남도 아닌데 이렇게 격식을 차릴 필요가 있을까? 대충 길거리 음식을 먹어도 그녀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전태윤은 두 자매와 함께 룸으로 들어간 후에야 입을 열었다.“예진 씨, 여긴 우리 회사 산하의 호텔이에요. 직원
하예진은 동생에게 눈을 깜빡거렸다. 하예정은 언니의 뜻을 바로 알아챘다.전태윤이 참 괜찮은 사람이니 앞으로 잘 해주라는 당부일 듯싶었다.이 점은 하예정도 인정했다. 전태윤은 가끔 일방적이고 속 좁게 행동하지만 큰일 앞에선 아주 차분하고 일사불란하게 처리한다. 그는 수많은 남자들보다 훌륭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그들 부부가 아직 감정 기초도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그녀에게 잘해주고 있었다.하예정은 본인도 전태윤을 잘 챙긴다는 걸 언니에게 보여주기 위해 식사할 때 끊임없이 남편에게 음식을 집어주었다.전태윤은 입에 기름기가 번지르르했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예정이가 집어준 음식이 이렇게나 맛있었네!’그는 문득 식객당에서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음식을 집어줬던 일이 떠올랐다.‘그때 김진우도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겠지? 칫, 고작 한 번이야! 김진우는 예정에게 동생일 뿐이라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야 절대!’오늘 밤 하예정은 쉴 새 없이 전태윤에게 음식을 집어줬다. 김진우는 단 한 번뿐이었으니 그와 비할 바가 못 된다.김진우가 아무리 하예정을 사랑해도 그건 의미 없는 노릇이었다.현재 그녀의 남편은 전태윤이니까.부부 사이의 감정이 어떻든 적어도 그녀는 법적으로 전태윤의 배우자였다.‘김진우, 넌 멀리 떨어져 있어.’전태윤은 전혀 김진우를 질투할 필요가 없다. 마땅히 김진우가 그를 질투해야 한다.전태윤은 이렇게 자기합리화를 하며 지난번 하예정이 김진우에게 음식을 집어준 사건을 철저히 내려놨다.식사 한 끼가 이렇게 뿌듯할 수가!식사를 마친 후 그들 부부는 예진 모자를 집으로 보내고 나란히 쇼핑하러 갔다.결혼한 지도 한참 됐는데 전태윤은 처음 하예정을 데리고 쇼핑에 나섰다. 물론 장 보러 가는 것은 예외였다.밤거리에 인파들로 붐벼 떠들썩하기 그지없었다.전태윤은 체면을 내려놓고 그녀와 함께 야채 시장도 몇 번 다녔으니 오늘 쇼핑은 더 고민할 것도 없었다.부부는 인파들 속에서 목적 없이 거리를 돌아다녔다.“예정아, 뭐 사
아마도 서명한 계약서 때문에 마음이 찔려서겠지.전태윤은 방법을 생각하여 예정의 손에 있는 그 계약서를 훔쳐 오고 싶었다. 훔친다는 것은 너무 듣기 거북하니 다시 가져오기로 했다. 그래도 명색이 전씨 집안 도련님인데 훔친다는 게 웬 말인가? 일단 제 손에 넣은 후 곧바로 계약서를 없애버릴 작정이었다.전태윤은 끝내 손도 잡지 못한 채 아내와 함께 밤거리를 거닐었다. 게다가 공짜 짐꾼이 되어 크고 작은 쇼핑백을 들고 차에 올라탔다.하예정은 처음에 아무것도 안 사겠다더니 이것저것 고르기 시작했고 물론 전부 제 돈으로 결제했다.전태윤이 대신 결제하려 했으나 그녀가 단호하게 거절한 탓에 무마됐다.밤 열 시가 다 돼서야 부부는 자신들의 집으로 돌아갔다.“하이힐 안 신었는데도 오래 쇼핑하니 발이 시큰거리네요.”하예정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소파에 축 늘어졌다.이에 전태윤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여자라면 다들 쇼핑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누군가와 함께 쇼핑하길 꺼리는 전태윤은 오히려 아무런 불만이 없었다.“그건 그래요. 효진이가 더 잘 돌아다녀요. 걔랑 함께 쇼핑하는 게 두려울 정도라니까요. 동쪽부터 서쪽까지 샅샅이 누빌 정도예요.”심효진의 얘기에 전태윤은 뭔가 떠오른 듯 그녀 옆에 다가가 앉았다.“예정아, 뭐 하나 물어봐도 돼? 네 의견을 듣고 싶어.”하예정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뭔데 그래요?”여긴 전태윤의 집이라 그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는데 그녀의 의견을 묻는 걸 보니 아마 중요한 일인 듯싶었다.전태윤은 잠시 침묵한 후 말을 이었다.“효진 씨 댁에서 결혼을 다그친다고 했었지?”“네, 맞아요. 왜요? 남자친구 소개시켜주려고요?”하예정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혹시 태윤 씨 회사 동료예요? 효진이 엄마랑 고모는 걔가 부잣집에 시집가길 바라는데 정작 본인이 싫어해요. 재벌가의 삶이 우리가 상상한 것처럼 원만하지 않다고 여기고 있거든요. 효진이 고모가 그해 김씨 집안에 시집가서 엄청 고생한 끝에 겨우 여유
잠시 후 하예정이 말했다.“들어보니까 괜찮은 것 같네요. 효진이가 전에 소개팅했던 남자들보단 괜찮아 보여요. 내일 효진이한테 제대로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태윤 씨, 너무 늦었어요. 난 이만 돌아가서 씻고 잘래요.”하예정은 쇼핑하느라 몸이 노곤했다.전태윤도 함께 일어나며 담담하게 말했다.“그래, 잘 자!”하예정은 그와 인사를 마친 후 방으로 돌아갔다. 쇼핑하면서 사 온 물건들도 정리하기 귀찮았다.‘내일 아침 일어나서 다시 정리하면 돼.’하예정은 미련 없이 곧바로 제 방으로 돌아갔고 전태윤은 선 자리에서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한참 뒤, 그는 발코니로 걸어가 그네에 앉아서 밤하늘을 쳐다보며 생각했다.‘이젠 예정이랑 어떻게 지내야 하지?’전태윤은 늦게 자는 것에 익숙해져 11시가 다 돼서야 방으로 돌아갔다.그들 부부는 한집에서 살지만 각방을 쓰고 있었다.그는 하예정의 방에 들어가지 않고 하예정도 그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는다.두 개의 문이 굳게 닫히면 둘은 마치 아무런 연관이 없는 듯했다.한편 이는 전태윤이 스스로 초래한 결과였다.그렇게 고요한 밤이 흘러갔다.다음날 하예정은 늘 같은 시간에 잠에서 깼다.그녀는 습관대로 발코니에 걸어가 꽃을 다루었다.발코니에 작은 개미들이 몇 마리 있었는데 허리 숙여 보자 개미들이 나란히 기어간 방향에 화분이 몇 개 더 놓여 있었다.지난번 거실에 왜 개미가 그렇게 많았던지 그녀는 이제야 알 것 같았다.화분의 흙 속에 개미 알이 있어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개미가 된다. 하예정은 발코니의 화분들을 사 온 뒤로 살충제를 한 번도 뿌리지 않았다.평소 꽃에 물을 줄 때 허리를 굽히지 않아 화분 속에 개미가 있다는 걸 발견하지 못했다.물을 다 준 후 하예정은 지갑을 챙겨 장 보러 갔다. 식자재도 살 겸 살충제도 사서 화분 속에 뿌릴 생각이었다.‘앞으론 주기적으로 화분에 살충제를 뿌려야겠어. 개미가 판을 치잖아.’하예정은 장 보러 간 지 30분 후에 고기와 야채가 담긴 봉투를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
숙희가 눈웃음 지으며 인사를 올렸다.전태윤은 사전에 하예정 앞에서 절대 본인을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태윤 씨라고 호칭을 바꾸라고 명령했었다.“오셨어요, 아주머니. 예정아, 이분이 바로 전에 말했던 숙희 아주머니야.”전태윤이 서둘러 소개를 마친 후 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오는 길에 이미 아주머니를 만나서 자기소개 다 마쳤어요. 아주머니, 얼른 앉으세요. 저는 장 봐온 거 정리해야겠어요.”“사모님, 제가 할게요.”“아주머니.”숙희 아주머니가 난처한 듯 웃으며 전태윤을 힐긋 바라보더니 더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정 씨라고 호칭을 바꿨다.“태윤 씨, 예정 씨, 두 분 아직 아침 안 드셨죠? 제가 얼른 아침 식사를 준비할게요.”하예정이 말리고 싶었지만 숙희가 웃으며 말했다.“예정 씨, 저는 가정부예요. 제가 해야 할 일들은 태윤 씨께서 이미 다 말씀해주셨어요. 오늘부터 정식 출근으로 월급을 정산해주는데 근무 시간에 놀기만 하고 예정 씨에게 일을 떠밀 순 없잖아요.”하예정은 어쩔 수 없이 장 봐온 식자재들을 숙희에게 건넸다. 숙희는 식자재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주머니, 소꼬리 뼈랑 옥수수, 당근, 원두, 그리고 소시지 두 개와 야채는 제가 이따가 가게로 갖고 가서 점심으로 먹어야 할 것들이에요.”숙희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전해졌다.“알겠어요, 예정 씨.”그녀는 곧바로 하예정이 가게로 가져가려는 식자재를 따로 빼놓고 나머지 재료들로 세 사람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하예정은 주방 문 앞에 한참 서서 숙희를 바라봤다. 숙희는 능수능란하고 손놀림도 빠르며 매우 깔끔하여 항상 행주로 싱크대를 닦았다.하예정은 시름 놓고 발코니로 향했다.전태윤도 그녀 따라 발코니로 걸어갔다.“아주머니 매우 꼼꼼하셔.”전태윤은 아내의 손에 든 작은 봉투를 힐긋 바라봤다. 봉투 안에 작은 포장으로 된 물건이 몇 개 들어 있었다.“그건 뭐야?”“개미 약이에요. 이 화분들을 사 온 뒤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서 개미가 생겨났어요. 흙 속에 개미 알이 있
전태윤은 그녀가 와서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한참을 방 안에 있었다.“태윤 씨, 아주머니께서 아침을 다 하셨대요.”하예정은 그의 문 앞에서 노크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한편 그녀는 속으로 구시렁댔다.‘옷 갈아입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려?’전태윤은 평소 무슨 일이든 신속하고 깔끔하게 하는 편이지 종래로 꾸물거리는 성격이 아니었다.아, 참, 꽃다발을 건넬 땐 매우 꾸물거렸다.전태윤이 문을 열고 나왔다.그는 셔츠를 입었지만 단추를 채우지 않았다.문을 열자마자 하예정은 은은하게 비친 그의 탄탄한 근육을 봐버렸다.그녀는 당황해하며 말했다.“태윤 씨, 식사해요.”전태윤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예정은 횡설수설 말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전태윤은 다시 문을 닫고 단추가 풀린 옷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더 많이 풀었어야 했나? 와이프가 침도 흘리지 않네? 흐음...’그는 왠지 일부러 끼 부리며 아내를 유혹하는 듯싶었다.다만 중요한 건 아직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전태윤은 요 이틀 자신이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이상행동을 보이겠는가. 이따가 회사로 돌아가서 소정남에게 용한 점집을 알고 있으면 몇 집 소개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다. 이상한 잡귀를 쫓아버려야 하니까.와이프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꾸물거리던 전태윤은 아내가 노크한 뒤 2분도 채 안 돼 발 빠르게 방에서 나왔다.하예정은 그가 셔츠와 정장 바지만 입고 외투와 넥타이를 걸치지 않은 걸 보더니 또다시 속으로 구시렁댔다.‘태윤 씨 진짜 왜 이러지? 옷 갈아입는 데 한참 걸렸는데 넥타이도 안 한 거야?’“태윤 씨, 예정 씨, 제가 한 음식 어서 맛보세요.”숙희가 다 만든 음식을 들고나와 식탁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부부의 집은 식구가 적어 늘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안 그래도 집안일 거리가 얼마 없었는데 숙희 아주머니까지 오니 하예정은 아예 할 일이 없어졌다. 아주머니의 부름에 그녀는 곧바로 달려왔다.“아주머니, 왜
하예정이 맛있게 먹어주자 숙희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녀도 배가 고파 전태윤을 쳐다보지 않고 마음껏 아침을 먹었다.배불리 먹은 후 숙희 아주머니는 설거지하러 주방으로 들어갔고 하예정은 의자를 당겨 전태윤의 곁으로 다가갔다.전태윤은 순간 고슴도치처럼 온몸의 가시를 뾰족하게 세웠다.그는 이번에 경계한 게 아니라 바짝 긴장해 하고 있었다. 아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당황했다.“태윤 씨, 우리 집에 손님방은 있는데 침대가 없네요. 이따가 우빈이 데려오고 아주머니랑 우빈이를 가게에 보내요. 그리고 우린 아주머니께 침대랑 침대 용품 사드리러 가요. 바닥에 주무시게 할 순 없잖아요.”고슴도치는 그제야 가시를 걷었다.“당신이 이 집 주인이니까 알아서 하면 돼.”전태윤은 오늘 오전 중요한 회의가 있어 그녀와 함께 침대 용품을 사러 갈 시간이 없었다.“저번에 준 2천만 원 거의 다 썼지? 이따가 회사 가서 인터넷 뱅킹으로 지난번 그 카드에 계좌 이체해줄게. 아주머니는 비록 우빈이 돌보는 가정부이긴 하지만 소홀히 할 순 없지. 침대 좋은 거로 사. 돈 아끼지 말고.”“아직 돈 남았어요. 이체 안 해도 충분히 살 돈 돼요. 걱정 말아요. 나 그렇게 가정부 학대하는 사람 아니니까.”생활용 카드에 돈을 입금해준다는 말에 하예정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부부가 냉전할 때 그녀는 기분이 우울하여 쇼핑으로 미친 듯이 카드를 긁었는데 그 카드가 바로 생활용 카드였다. 그때 하예정은 전태윤의 돈을 엄청 많이 썼었다.하여 아주머니의 침대는 본인 돈을 쓰기로 했다.‘저번에 미친 듯이 카드를 긁은 보답이라고 해두지.’그들 부부는 서로 묵묵히 배려했다.하예정은 그에게 공짜로 받으려 하지 않고 그 또한 하예정을 저울질하지 않았다.서로 존중해주며 평화롭게 지냈다.전태윤은 온화한 표정으로 변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짙어 속내를 알아챌 수 없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하예정은 오히려 그가 이렇게 묵묵히 바라보는 모습에 적응됐다.일
생각을 마친 하예정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넥타이를 매는 법을 검색했다.그녀는 재빨리 두 번 본 후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이어서 앞으로 다가가 전태윤의 손에 쥔 넥타이를 들고 한 번 잡아당기더니 그의 목에 걸었다.‘방에 가서 옷 좀 갈아입지. 여자들이 외출 전 메이크업하는 것보다 더 느려. 넥타이도 안 매고 말이야.’숙희 아주머니는 가벼운 걸음으로 밖에 나가 부부를 기다렸다.“내가 아는 남자 중에 쓰레기 같은 형부와 진우 말곤 아무도 정장에 넥타이를 두르지 않아요. 나 한 번도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어서 급하게 인터넷으로 배웠는데 제대로 되겠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꽉 조여도 너그럽게 이해해줘요.”전태윤은 구시렁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경험이 없다는 건 단 한 번도 남자에게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다는 뜻일 텐데.지금 그에게 넥타이를 매주기 위해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해서 배웠다니,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비록 영상을 두 번이나 봤지만 여전히 제대로 매지 못했다. 보기엔 쉬워도 직접 하려니까 너무 어려웠다.애초에 공예품을 만들 때도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았다.“내가 할게.”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직접 넥타이를 맸다. 더 기다리다가 그녀에게 목이 졸려 죽을 수도 있으니까.하예정은 한숨을 돌리더니 얼굴이 또다시 빨개졌다.‘왜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하는 걸까?’이건 마치 어릴 때 다른 애들이 넥타이를 두르는 모습이 예뻐 보여 본인도 직접 해보았지만 매면 맬수록 매듭이 꽉 조여지는 그런 기분이었다.‘진작 혼자 맬 것이지.’하예정이 속으로 투덜거렸다.전에는 그녀가 얼굴 한번 만져도 기겁하며 몸을 피하더니 이젠 넥타이를 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결국 전태윤은 홀로 넥타이를 매고 외투를 입었다. 하예정이 돈 봉투를 챙기고 먼저 나가자 그는 말문이 턱 막혔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먼저 광명 아파트로 향했다. 하예진은 우빈과 함께 집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언니, 나 오늘 좀 늦었지. 출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