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희가 눈웃음 지으며 인사를 올렸다.전태윤은 사전에 하예정 앞에서 절대 본인을 도련님이라고 부르지 말고 태윤 씨라고 호칭을 바꾸라고 명령했었다.“오셨어요, 아주머니. 예정아, 이분이 바로 전에 말했던 숙희 아주머니야.”전태윤이 서둘러 소개를 마친 후 하예정이 웃으며 답했다.“오는 길에 이미 아주머니를 만나서 자기소개 다 마쳤어요. 아주머니, 얼른 앉으세요. 저는 장 봐온 거 정리해야겠어요.”“사모님, 제가 할게요.”“아주머니.”숙희 아주머니가 난처한 듯 웃으며 전태윤을 힐긋 바라보더니 더는 사모님이라고 부르지 않고 예정 씨라고 호칭을 바꿨다.“태윤 씨, 예정 씨, 두 분 아직 아침 안 드셨죠? 제가 얼른 아침 식사를 준비할게요.”하예정이 말리고 싶었지만 숙희가 웃으며 말했다.“예정 씨, 저는 가정부예요. 제가 해야 할 일들은 태윤 씨께서 이미 다 말씀해주셨어요. 오늘부터 정식 출근으로 월급을 정산해주는데 근무 시간에 놀기만 하고 예정 씨에게 일을 떠밀 순 없잖아요.”하예정은 어쩔 수 없이 장 봐온 식자재들을 숙희에게 건넸다. 숙희는 식자재를 들고 주방으로 들어갔다.“아주머니, 소꼬리 뼈랑 옥수수, 당근, 원두, 그리고 소시지 두 개와 야채는 제가 이따가 가게로 갖고 가서 점심으로 먹어야 할 것들이에요.”숙희의 목소리가 주방에서 전해졌다.“알겠어요, 예정 씨.”그녀는 곧바로 하예정이 가게로 가져가려는 식자재를 따로 빼놓고 나머지 재료들로 세 사람의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하예정은 주방 문 앞에 한참 서서 숙희를 바라봤다. 숙희는 능수능란하고 손놀림도 빠르며 매우 깔끔하여 항상 행주로 싱크대를 닦았다.하예정은 시름 놓고 발코니로 향했다.전태윤도 그녀 따라 발코니로 걸어갔다.“아주머니 매우 꼼꼼하셔.”전태윤은 아내의 손에 든 작은 봉투를 힐긋 바라봤다. 봉투 안에 작은 포장으로 된 물건이 몇 개 들어 있었다.“그건 뭐야?”“개미 약이에요. 이 화분들을 사 온 뒤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아서 개미가 생겨났어요. 흙 속에 개미 알이 있
전태윤은 그녀가 와서 방문을 두드릴 때까지 한참을 방 안에 있었다.“태윤 씨, 아주머니께서 아침을 다 하셨대요.”하예정은 그의 문 앞에서 노크하며 큰 소리로 말했다.한편 그녀는 속으로 구시렁댔다.‘옷 갈아입는 게 왜 이렇게 오래 걸려?’전태윤은 평소 무슨 일이든 신속하고 깔끔하게 하는 편이지 종래로 꾸물거리는 성격이 아니었다.아, 참, 꽃다발을 건넬 땐 매우 꾸물거렸다.전태윤이 문을 열고 나왔다.그는 셔츠를 입었지만 단추를 채우지 않았다.문을 열자마자 하예정은 은은하게 비친 그의 탄탄한 근육을 봐버렸다.그녀는 당황해하며 말했다.“태윤 씨, 식사해요.”전태윤은 그녀의 표정을 유심히 관찰했다. 하예정은 횡설수설 말을 마친 후 자리를 떠났다.전태윤은 다시 문을 닫고 단추가 풀린 옷을 내려다보며 생각했다.‘더 많이 풀었어야 했나? 와이프가 침도 흘리지 않네? 흐음...’그는 왠지 일부러 끼 부리며 아내를 유혹하는 듯싶었다.다만 중요한 건 아직 유혹에 넘어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전태윤은 요 이틀 자신이 무언가에 홀린 것만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왜 이런 이상행동을 보이겠는가. 이따가 회사로 돌아가서 소정남에게 용한 점집을 알고 있으면 몇 집 소개해달라고 부탁할 예정이었다. 이상한 잡귀를 쫓아버려야 하니까.와이프가 문을 두드릴 때까지 꾸물거리던 전태윤은 아내가 노크한 뒤 2분도 채 안 돼 발 빠르게 방에서 나왔다.하예정은 그가 셔츠와 정장 바지만 입고 외투와 넥타이를 걸치지 않은 걸 보더니 또다시 속으로 구시렁댔다.‘태윤 씨 진짜 왜 이러지? 옷 갈아입는 데 한참 걸렸는데 넥타이도 안 한 거야?’“태윤 씨, 예정 씨, 제가 한 음식 어서 맛보세요.”숙희가 다 만든 음식을 들고나와 식탁에 내려놓으며 두 사람에게 말했다.부부의 집은 식구가 적어 늘 깔끔하고 정리정돈이 잘 돼 있었다. 안 그래도 집안일 거리가 얼마 없었는데 숙희 아주머니까지 오니 하예정은 아예 할 일이 없어졌다. 아주머니의 부름에 그녀는 곧바로 달려왔다.“아주머니, 왜
하예정이 맛있게 먹어주자 숙희 아주머니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문득 그녀도 배가 고파 전태윤을 쳐다보지 않고 마음껏 아침을 먹었다.배불리 먹은 후 숙희 아주머니는 설거지하러 주방으로 들어갔고 하예정은 의자를 당겨 전태윤의 곁으로 다가갔다.전태윤은 순간 고슴도치처럼 온몸의 가시를 뾰족하게 세웠다.그는 이번에 경계한 게 아니라 바짝 긴장해 하고 있었다. 아내가 그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몰라 당황했다.“태윤 씨, 우리 집에 손님방은 있는데 침대가 없네요. 이따가 우빈이 데려오고 아주머니랑 우빈이를 가게에 보내요. 그리고 우린 아주머니께 침대랑 침대 용품 사드리러 가요. 바닥에 주무시게 할 순 없잖아요.”고슴도치는 그제야 가시를 걷었다.“당신이 이 집 주인이니까 알아서 하면 돼.”전태윤은 오늘 오전 중요한 회의가 있어 그녀와 함께 침대 용품을 사러 갈 시간이 없었다.“저번에 준 2천만 원 거의 다 썼지? 이따가 회사 가서 인터넷 뱅킹으로 지난번 그 카드에 계좌 이체해줄게. 아주머니는 비록 우빈이 돌보는 가정부이긴 하지만 소홀히 할 순 없지. 침대 좋은 거로 사. 돈 아끼지 말고.”“아직 돈 남았어요. 이체 안 해도 충분히 살 돈 돼요. 걱정 말아요. 나 그렇게 가정부 학대하는 사람 아니니까.”생활용 카드에 돈을 입금해준다는 말에 하예정은 얼굴이 살짝 빨개졌다.부부가 냉전할 때 그녀는 기분이 우울하여 쇼핑으로 미친 듯이 카드를 긁었는데 그 카드가 바로 생활용 카드였다. 그때 하예정은 전태윤의 돈을 엄청 많이 썼었다.하여 아주머니의 침대는 본인 돈을 쓰기로 했다.‘저번에 미친 듯이 카드를 긁은 보답이라고 해두지.’그들 부부는 서로 묵묵히 배려했다.하예정은 그에게 공짜로 받으려 하지 않고 그 또한 하예정을 저울질하지 않았다.서로 존중해주며 평화롭게 지냈다.전태윤은 온화한 표정으로 변했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짙어 속내를 알아챌 수 없었다.다만 그는 아무 말도 없었다.하예정은 오히려 그가 이렇게 묵묵히 바라보는 모습에 적응됐다.일
생각을 마친 하예정은 곧바로 휴대폰을 꺼내 넥타이를 매는 법을 검색했다.그녀는 재빨리 두 번 본 후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이어서 앞으로 다가가 전태윤의 손에 쥔 넥타이를 들고 한 번 잡아당기더니 그의 목에 걸었다.‘방에 가서 옷 좀 갈아입지. 여자들이 외출 전 메이크업하는 것보다 더 느려. 넥타이도 안 매고 말이야.’숙희 아주머니는 가벼운 걸음으로 밖에 나가 부부를 기다렸다.“내가 아는 남자 중에 쓰레기 같은 형부와 진우 말곤 아무도 정장에 넥타이를 두르지 않아요. 나 한 번도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어서 급하게 인터넷으로 배웠는데 제대로 되겠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꽉 조여도 너그럽게 이해해줘요.”전태윤은 구시렁대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경험이 없다는 건 단 한 번도 남자에게 넥타이를 매준 적이 없다는 뜻일 텐데.지금 그에게 넥타이를 매주기 위해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해서 배웠다니, 기분이 안 좋을 수가 없었다.하예정은 비록 영상을 두 번이나 봤지만 여전히 제대로 매지 못했다. 보기엔 쉬워도 직접 하려니까 너무 어려웠다.애초에 공예품을 만들 때도 이렇게까지 어렵진 않았다.“내가 할게.”전태윤은 하는 수 없이 직접 넥타이를 맸다. 더 기다리다가 그녀에게 목이 졸려 죽을 수도 있으니까.하예정은 한숨을 돌리더니 얼굴이 또다시 빨개졌다.‘왜 이렇게 쉬운 것도 못 하는 걸까?’이건 마치 어릴 때 다른 애들이 넥타이를 두르는 모습이 예뻐 보여 본인도 직접 해보았지만 매면 맬수록 매듭이 꽉 조여지는 그런 기분이었다.‘진작 혼자 맬 것이지.’하예정이 속으로 투덜거렸다.전에는 그녀가 얼굴 한번 만져도 기겁하며 몸을 피하더니 이젠 넥타이를 매주길 기다리고 있었다.결국 전태윤은 홀로 넥타이를 매고 외투를 입었다. 하예정이 돈 봉투를 챙기고 먼저 나가자 그는 말문이 턱 막혔다.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먼저 광명 아파트로 향했다. 하예진은 우빈과 함께 집 아래에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언니, 나 오늘 좀 늦었지. 출
돈을 벌려면 아이와 함께 있어 줄 수 없다.하예진은 코를 훌쩍거리며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독하게 앞으로 나아갔다.아들의 울음소리가 안 들리면 괜찮아질 거라고 마음을 다잡았다.하예정은 우빈을 안고 차에 올라탔다. 숙희 아주머니가 한참 달랜 후에야 아이가 울음을 그쳤다.다만 혼자 앉지 않고 하예정의 품에 움츠려 두 손으로 그녀를 꼭 껴안고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우빈이... 버렸어요?”하예정은 아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미처 알아듣지 못했다.그녀는 아이를 어루만지며 온화하게 물었다.“우빈이, 방금 뭐라고 했어?”주우빈이 고개를 들어 하예정을 빤히 쳐다봤다.“엄마가 우빈이 버렸어요?”“누가 그래? 엄마는 우빈이 버린 게 아니라 출근하러 가신 것뿐이야. 매일 밤 돌아와 우빈이랑 함께 있잖아.”주우빈이 가여운 눈빛으로 말했다.“아빠가 그랬어요.”하예정은 순간 욕설을 퍼붓고 싶었다.주형인 이 인간쓰레기는 언니가 출근하는 걸 반대할 뿐만 아니라 아이 앞에서 헛소리까지 지껄였다. 우빈을 이용하여 언니가 다시 직장에 돌아가는 걸 막으려는 속셈이었다.“우빈아, 아빠가 거짓말한 거야. 엄마는 절대 우빈이 버리지 않아. 아까 말씀하셨지, 점심에 꼭 우빈이 보러 온다고 말이야.”주우빈은 이제 2살이라 철들 나이가 아니지만 자신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엄마와 이모라는 걸 알고 있었다. 하여 아이는 이모가 한 말을 굳게 믿고 걱정을 내려놓았다.가게로 가는 길에 숙희 아주머니가 아이를 잘 달래주었고 문 앞에 도착한 후 전태윤이 차를 세우자 우빈과 아주머니가 차에서 내렸다.하예정은 그제야 마음이 놓여 남편에게 말했다.“태윤 씨가 찾은 가정부 아이를 돌본 경험이 있나 봐요. 이렇게 빨리 우빈이랑 친해졌잖아요.”“숙희 아주머니는 참 훌륭한 가정부야. 집안일이며 장 보고 음식 하는 일이며, 아이를 돌보고 숙제까지 잘 가르쳐줘.”“아주머니가 일을 잘하시면 월급 올려줘야겠어요.”하예정의 온라인 스토어 수입이 올라 지갑이 조금 두툼해졌다. 숙희 아주머니가 일만
전태윤은 일반 SUV를 타고 관성중학교를 떠나 늘 가던 곳에 도착한 후 경호원에게 이 차를 맡기고는 그의 전용 롤스로이스에 올라탔다.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그는 박 집사에게 전화해 어린이 안전 의자를 보내오라고 분부했다.성소현은 또다시 그의 회사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가 가는 길을 막진 않았다.그녀는 묵묵히 제자리에 서서 그의 전용차가 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성소현은 전태윤을 향한 마음을 쉽게 내려놓을 수 없었다.‘오늘이 마지막이야. 앞으론 더이상 보러 오지 말자.’전태윤이 낀 반지가 기혼이 아니라 그녀를 마음 접게 하기 위해서라면 모를까, 그땐 아마 또다시 그에게 대시할 것이다.전씨 그룹의 대문은 전태윤의 전용차가 회사로 들어가자 곧바로 굳게 닫혔다.성소현은 롤스로이스가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도 한참 서 있다가 쓸쓸하게 제 차로 돌아갔다.그녀는 또 한참 넋 놓고 있다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천천히 시동을 걸더니 갑자기 속도를 올려 도로를 질주했다.성소현은 기분이 나쁠 때마다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2시간 후, 그녀의 차가 하예정의 가게 앞에 도착했다.인기척을 들은 심효진이 안에서 나오자 성소현도 마침 차에서 내렸다. 심효진은 반갑게 웃으며 그녀를 맞아주었다.“어머, 소현 씨.”성소현은 2시간 쇼핑하니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심효진을 본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효진 씨, 마침 잘 왔네요. 이것 좀 도와줘요. 물건을 너무 많이 사서 뒷좌석이 꽉 찼어요. 물건 좀 옮겨줄래요?”심효진이 그녀의 차를 힐긋 보더니 입이 쩍 벌어졌다.“소현 씨, 뭘 이렇게 많이 샀어요?”“눈에 보이는 대로 다 샀어요. 뭐가 뭔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먹고 놀고 입고, 그냥 다 들어있을 거예요.”성소현은 한바탕 화끈하게 쇼핑했다.심효진이 하예정을 불러오자 그녀도 마찬가지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이어서 성소현의 리드 하에 세 여자는 차 안의 모든 물건을 가게로 옮겼다.“장난감은 우빈이 거예요.”성소현은 다른 물건은 몰라도 장난감은 기
“그러니까 나 구해주는 셈 치고 얼른 받아요.”성소현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들에게 부탁했다.성씨 일가는 돈이 엄청 많지만 그녀의 엄마는 보육원에서 자라 재벌가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어도 절약하는 습관이 몸에 뱄다.성소현의 엄마는 돈 낭비를 하는 걸 가장 싫어한다.하예정이 속으로 구시렁댔다.‘역시 돈이 많으니까 제멋대로야!’심효진도 자신이 평소 돈을 많이 쓰는 편이라 생각했지만 진정한 재벌가의 고명딸 성소현과는 아예 비할 바가 못 됐다.“예정 씨, 이분은?”성소현이 숙희 아주머니를 바라보며 예정에게 물었다.“우빈이 돌봐주시는 가정부예요. 나랑 효진이가 가끔 바쁠 때 우빈이 돌봐주는 사람이 필요해서요. 그래야 우리 둘도 안심하고 일할 수 있거든요.”아이를 돌보는 일은 무엇보다 책임감이 우선 순이었다.하예정은 우빈이만큼은 엄청 신경을 써주었다.“그건 그래요.”성소현은 숙희 아주머니에 대해 더 묻지 않았다.하예정이 관심 조로 그녀에게 물었다.“소현 씨 오늘 왜 기분 나빴어요?”“편하게 말 놔도 돼요. 목표가 사라지니까 기분도 가라앉더라고요.”성소현은 하예정이 따라준 물을 두어 모금 마시며 말을 이었다.“전 대표가 글쎄 결혼반지를 꼈더라고요.”“네?”하예정이 화들짝 놀랐다.숙희 아주머니도 애써 기억을 더듬었다. 오늘 아침 도련님과 사모님은 모두 반지를 끼지 않았다.심효진도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분 결혼하셨어요? 왜 전혀 들은 바가 없죠? 그분 신분에 결혼식을 올리면 관성 전체가 떠들썩해지겠는데요. 언론사 기자들도 서로 앞다투어 기사를 다룰 거라고요.”성소현은 잠시 침묵하다가 속상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결혼했단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결혼반지를 낀 건 확실해요. 너무 눈부셔서 절대 잘못 봤을 리가 없어요.”“아니 그건...”하예정은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성소현이 전 대표님을 정말 사랑한다는 걸 하예정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그녀도 성소현을 항상 응원해주고 아이디어
하예정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리며 다독였다.“소현 씨는 참 괜찮은 여자예요. 소현 씨 남자가 아니면 쿨하게 포기하고 다음 행복을 찾아 나서야죠.”성소현은 입술을 앙다물고 눈시울이 빨개졌다. 그녀는 또다시 눈물을 꾹 참으며 억지 미소를 지었다.“맞아요, 나만 원한다면 남자들은 항상 줄지어 있어요. 굳이 임자 있는 남자를 뺏고 싶진 않아요!”심효진도 한마디 곁들였다.“혼자 지내도 얼마나 자유롭고 편한데요.”그녀는 아직 누군가를 진짜 사랑한 적이 없어 성소현의 아픔을 이해하기 어려웠다.성소현은 그녀를 보더니 뭔가 생각난 듯 빨개진 눈시울로 웃음을 터트렸다.“효진 씨가 도 사모님 연회에서 드러누운 일이 우리 관성의 상류층에서 소문이 쫙 퍼졌어요. 그땐 효진 씨가 만취해서 그런 거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고의 맞죠? 가족들이 그렇게 결혼을 다그친다면서요?”심효진이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서 지금은 한결 조용해졌어요. 엄마랑 고모가 더는 함께 모여 날 어느 재벌 2세에게 시집 보낼지 수군거리지 않는다니까요.”성소현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효진 씨 그 방법 대박이네요. 고모님은 아마 사모님들 앞에서 다시는 효진 씨 얘기를 꺼내지 않으실 거예요. 전에 엄마랑 함께 연회에 참석했을 때 효진 씨 고모님과 얘기를 나눈 적 있는데 아들 따님 얘기 말곤 종일 효진 씨를 칭찬했어요.”“다행히 내가 물을 엎질러버렸죠.”심효진은 그날 밤 일을 떠올리며 자지러지게 웃었다.“아 참, 깜빡할 뻔했어. 효진아, 너 소개팅 나갈래? 우리 남편 회사 동료분인데 나이도 남편이랑 비슷하고 엄청 잘생겼대. 연봉도 높고 집안 조건도 좋아. 업무가 너무 많다 보니 연애할 시간이 없었대.”심효진이 물었다.“너희 부부 지금 나한테 선 자리 마련해주는 거야?”“나한테 얼핏 얘기했는데 남자분 조건이 괜찮은 것 같아. 너 만나볼 의향 있으면 남편더러 약속 잡으라고 할게. 싫으면 내가 대신 거절하면 돼.”심효진은 잠시 고민에 잠겼다. 친구 부부가 처음 마련해준 소개팅이고
전호영은 꽃다발을 안고 사무실로 들어갔다.퇴근 시간이었기 때문에 많은 직원이 밖으로 나가면서 전호영이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보습을 보았지만 모두 이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만약 전호영을 보지 못한다면 아마도 이상한 일로 여길 것이다.“전 대표님.”다들 마음속으로 아무리 전호영을 비웃을지라도 겉으로는 여전히 공손하게 대했다.전호영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곧 그는 고씨네 남매에게 다가갔다.“현이 씨, 퇴근하시죠. 제가 데리러 왔어요. 같이 밥 먹으러 가요. 자, 받아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 앞으로 내밀었다.고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제가 말했어요. 제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요. 매번 올 때마다 꽃다발을 사 오지 마세요. 제 사무실이 곧 꽃집이 될 것 같으니까요.”전호영은 심지어 하루에 꽃다발을 여러 번 선물한 적도 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보낸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전호영은 보복으로 그녀에게 더 많은 꽃을 보냈다.고현은 자신이 이 남자에게 곧 먹혀 죽을 것만 같았다.“꽃병을 더 사서 사무실로 보내드릴게요.”“저를 꽃병이라고 비아냥거리시려는 거에요? 제 사무실에는 꽃병이 가득 놓여 있거든요.”전호영이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제가 잘못했네요. 다음에는 이런 꽃들을 보내지 않고 다루기 쉬운 꽃들로 보낼게요. 현이 씨 사무실에 있는 그 꽃병들을 집으로 몇 개 가져가면 사무실이 꽃병이 줄어들 거 아니에요.”옆에 서 있던 고빈이 말을 이었다.“우리 형은 꽃다발을 좋아하지 않지만 제가 무척 좋아해요. 저에게 주세요. 제가 이 꽃들을 저의 여성 지인들이게 줄 테니까요. 돈도 절약할 수 있으니 너무 좋을 것 같아요.”“고빈 씨는 아직 퇴근 안 하셨군요.”전호영은 꽃다발을 고현의 품에 안겨주며 자연스럽게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빈은 일부러 과장되게 말했다.“설마 이제야 저를 보신 건 아니죠? 혹시 시력에 문제가 있으신 건 아니죠? 잘 고려해 보고 짝을 찾으셔야지 아니면 시각장애인을 고를 수도 있어요.”“그건 제 눈에 현이 씨만
장 대표가 전호영의 차를 얼핏 보더니 말을 이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차였군요. 셋째 도련님은 정말 매일 고씨 그룹에 가서 고 대표님을 귀찮게 하는군요. 저는 그저 헛소문인 줄로만 알았는데.”“사실이에요. 고 대표님은 우리 장성에서 가장 젊고 우수한 대기업 대표님이죠. 그의 잘생긴 외모는 얼마나 많은 여자를 사로잡았는지 몰라요. 고 대표님은 강성의 모든 젊은 여자들의 이상형일걸요. 여자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전호영 도련님이 해내게 될 줄은 몰랐네요.”“하지만 외모로 보면 전호영 도련님과 고현 대표님은 참 잘 어울려요. 두 사람 중 한 명이 여자라면 정말 천생연분이죠.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 모두 남자네요. 너무 아쉬워요.”두 사람의 만남은 수많은 얼마나 많은 여자의 부러움을 자아냈는지 모른다.강성의 명문 아가씨들도 전호영이라는 남자에게 진 것이 자못 못마땅했다.“두 분이 이미 서로 남녀 관계를 확정하셨나요?”장 대표는 계속해서 물었다.“제가 듣기로는 전호영 도련님이 아직도 고현 대표님께 구애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의 일방적인 짝사랑 아닐까요? 사실 고현 대표님이 정상적인 남자인데 전호영 도련님이 게이일 수도 있죠.”“저도 잘 몰라요. 진실한 사실이 어떠할지 누가 알겠어요. 고 대표님은 냉담한 분으로서 수많은 대표님과 접촉하시지만 진정으로 친한 친구는 얼마 없어요. 고 대표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정말 없거든요.”“하지만 고현 대표님께서 전호영 도련님을 점점 더 포용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전호영 도련님이 고 대표님을 위해 여성 옷을 입으며 여자로 분장한 적이 있거든요. 그 두 사람 중에서 아마 전호영 도련님이 더 비정상인 것 같아요. 고 대표님께서 좋아하는 사람이 여성이기 때문에 전호영 도련님이 여성 옷을 입었을 거라고 봐요.”전호영은 여성 옷차림으로 고씨 그룹에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그 현장을 목격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전호영을 위해 비밀을 지킬 수 없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소문을 퍼뜨리고 그렇게 일파
멀리 장성에 있는 전호영도 전이진이 보낸 카카오 스토리를 보았다. 그는 여운초와 전이진이 혼인 신고서를 받은 모습을 보고 무척 부러워했다.그는 결국 다시 자리를 떠나 호텔 사무실을 나오더니 차를 몰고 고씨 그룹으로 향했다.이때 고현이 사업에 관한 얘기를 방금 마쳤을 때였다.그녀는 일어나서 손을 뻗어 고객과 악수하며 부드럽게 말했다.“장 대표님, 수고하셨어요.”장 대표도 이내 대답했다.“즐거운 협력이 되길 바랍니다.”고현은 예의 바르게 말했다.“벌써 식사 시간이 되었네요. 우리 함께 식사하는 건 어때요? 제가 대접해 드릴게요.”“감사합니다, 고 대표님. 제가 이번에도 일정이 너무 빡빡해서 도저히 시간을 낼 수가 없네요. 곧 비행기를 타야 할 시간이거든요. 다음에요. 다음에 제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해 드릴게요.”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장 대표님께서 오신다면 당연히 제가 음식 대접해 드려야죠. 다음에 오시면 꼭 저에게 대접할 기회를 주셔야 해요.”“당연하죠. 약속드릴게요.”장 대표는 웃으며 대답했다.고현이 고빈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쳐다보자 고빈은 눈치껏 일어나사 미리 준비한 특산품을 장 대표에게 가져다주었다.“장 대표님, 이것은 우리가 장 대표님을 위해 준비한 강성의 특산품이에요. 귀한 물건은 아니고 우리 강성의 특색이에요. 한 번 맛보세요.”장 대표는 사양하다가 웃으며 선물을 받았다.“고 대표님, 고마워요.”고현과 사업해 본 사람들은 비록 고씨 그룹의 오더를 따내기가 쉽지 않지만, 고현의 인품은 흠잡을 데가 없다고 했다.고현은 사람이 엄숙하고 차갑지만, 그녀와 사업을 해본 사람들 모두 그녀를 칭찬하곤 했다.하지만 이렇게 좋은 청년 인재가 동성애자라니... 아깝기만 했다.고현을 마음에 두고 있었던 많은 대표가 아마 정말 크게 실망했을 것이다.고현이 게이가 아니라면 그들은 모두 자신의 딸과 고현을 맞세워주고 싶어 했다.고현 남매와 고위층 몇 명 인사들이 함께 장 대표를 고씨 그룹 앞까지 배웅하고 장 대표 일행을 미리 준비
“이제 밥 먹으러 가자. 엄마가 관성 호텔에 예약해 놓았어. 가서 축하할 겸 밥 먹자. 그리고 모두한테도 관성 호텔에 오라고 전화해 놨어. 할머니께서도 너희 두 사람이 혼인 신고한 일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운초야, 내가 방금 네 고모도 초대했어. 너와 이진이 결혼에 관해 상의하려고. 아직 설이 몇 달 남았는데 그 전에 결혼식 좀 올리자.”명해은이 무척 급했던 모양이다.전이진과 여운초가 혼인 신고하자마자 바로 결혼에 관한 일을 상의하려고 했다.여운초의 새아버지와 친어머니는 아직 감옥에 있는데다 여운초가 그들에게 원한을 품고 있어 명해은은 혼례 문제에 관해서 여준희와 상의하려 했다.하지만 추미자는 결국 여운초의 친어머니였기에 명해은은 여운초의 뜻을 물었다.“운초야, 네 어머니께 말씀드려야 되지 않을까?”명해은은 추미자한테 축복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지 않기에 그냥 결혼 사실을 알려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여운초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이내 말을 이었다.“이진 씨와 함께 감옥으로 만나러 가서 말할게요. 저와 이진 씨 결혼에 대한 모든 일은 저의 작은 고모와 상의하면 돼요. 여씨 가문에 사람들이 수많지만, 저를 진심으로 생각해 주는 건 제 작은고모뿐이거든요.”여천우도 여운초와 사이가 가까웠지만, 아직 어리기에 이런 일에 관해 잘 모를 것이다.명해은은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래. 알았어. 네 작은고모도 너희들이 혼인 신고한 사실을 아시고 무척 기뻐하셨어. 오후에 오신다고 하셨어.”여운초 전이진이 약혼한 뒤로 전씨 가문은 여운초의 배후에 서 있게 되었고 눈도 좋아지기 시작했다. 여준희는 이 가엽고 운이 좋은 조카를 전이진에 맡기게 되니 매우 안심했다.여준희도 그녀의 집안에 일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친정집에 가는 횟수가 예전보다 줄었다.여운초 남매는 서로 자주 연락했다.여운초는 작은고모를 어머니로 여기고 있었다.그녀는 친어머니에게서 받지 못한 모성애를 여준희에게서 느꼈다.“언제 면회를 하러 가려고?”“오후에 가려고요. 감옥에 가서 보고
전현민도 벙글벙글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이건 세상에 둘도 없는 경사야. 우리는 기뻐서 덩실덩실 춤이라도 추고 싶다. 이진아, 이미 이르지 않으니 어서 운초랑 들어가 절차부터 밟아. 직원들 퇴근 시간이 다 되어간다.”부모님의 재촉을 받은 전이진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어머니 손으로부터 가족관계등록부와 다이아몬드 반지를 받아서 구청 안으로 걸어갔다.명해은 부부는 돌아가지 않고 밖에 서서 두 사람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전현민은 아내 쪽으로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다.“이러고 있으니 32년 전에 우리 둘이 이곳에 와서 결혼 증명서를 받던 날이 생각나네. 마치 어제 발생한 일과 같은데, 벌써 우리 큰아들이 이곳에 오다니... 세월이 참 빠르긴 빨라. 우리도 늙을 때가 되긴 됐나 보네.”그는 아내의 손을 잡으면서 말을 이었다.“난 당신과 백년해로하겠다고 약속했었지.”명해은도 감격해서 말했다.“그러게요,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이 딱 맞아요. 난 아직도 자신이 18살인가 하는데 우리 큰아들이 벌써 서른이네요. 우린 정말 늙었나 봐요. 부인하려야 부인할 수가 없네요.”“당신은 조금도 안 늙었어. 내 눈에는 당신이 관음보살과 같이 해마다 18살이야.”명해은은 몸 관리를 잘해서 전이진과 함께 나가면 모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남매로 착각할 정도였다.전현민도 몸 관리를 잘하는 편이었지만, 젊은 시절에 전씨 가문의 사업에 몰두했기에 심신이 많이 상해서 귀밑머리가 희끗희끗 해졌다.은퇴한 후,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몇 번 염색은 했었지만, 그래도 아내와 같이 서면 아내보다 10살은 더 많아 보였다. 사실, 두 내외는 불과 한 살 차였다. 명해은은 남편의 칭찬에 웃음보를 터뜨렸다.“나도 해마다 18살이 되고 싶지만 그렇게 안 되네요. 내가 아무리 몸 관리를 잘한다 해도 늙기 마련인걸요.”“내가 당신과 함께 늙어 갈 테니 두려워하지 마. 내가 당신보다 훨씬 늙어 보여.”명해은은 웃으면서 말했다.“전 두려울 것 없어요. 당신만 내 곁에 있어 준다면 하늘이 무너
여운초도 더는 사양하지 않았다.그녀는 다만 전이진을 대신하여 은행카드만 보관할 뿐일 것이었다. 그가 돈 쓰는 것을 제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녀도 그의 돈을 쓸 일이 없을 테였다.전이진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고 나서 다시 그녀를 보면서 벙글벙글 웃었다.보면 볼수록 사랑스럽기만 했다.“왜 계속 날 보면서 웃어요?”“좋으니까. 운초 씨, 나 지금 너무 좋아. 그냥 웃고 싶은 걸 어떻게 참아?”이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또 웃었다.그러는 전이진을 지켜보는 여운초도 참지 못해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둘이서 한참 동안 알콩달콩한 후 전이진이 시계를 보니 어머니가 도착할 시간이 다 되었다. 그는 약혼녀를 보면서 말했다.“운초 씨, 엄마가 곧 도착할 것 같으니 우리 지금 출발해. 우리가 구청에 도착하면 아마 엄마도 도착하실 거야.”그는 꽃집에 가서 장미꽃 한 다발을 사야 했다.여운초가 불시에 결혼 신고하자는 바람에 그가 아직 준비는 못 했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으니 서둘러야 했다.꽃다발, 다이아몬드 반지 둘 중 하나도 빠뜨리지 않을 것이었다.그녀는 자신이 한평생 소중히 여길 여자임으로 절대로 서운하게 할 수 없었다.“그래요.”그가 일어나면서 그녀를 향해 손을 내밀자, 여운초도 편안하게 자신의 손을 그의 커다란 손바닥에 올려놓은 채 그에게 이끌려 일어섰다.두 사람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자고로‘그대의 손만 잡고 이생의 끝까지 살아간다.’라고 했다.그녀는 전이진과 백년해로하고 평생 금실이 좋기를 원했다. 시부모님처럼 애들이 부러울 정도로 몇십 년 동안의 결혼생활을 첫 사람처럼 달콤하게 지내길 원했다.여운초는 저의 집에 있는 차를 안 타고 전이진이 운전하는 차를 타기로 했다.그녀에게는 운전면허증이 없었다. 그녀가 16살 때부터 앞을 보지 못했기에 운전면허를 딸수 없었던 것이었다.집에 있는 운전기사는 전이진이 그녀에게 보낸 경호원인데 그녀를 보호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운전도 해줄 수 있었다.20분 뒤.구청 입구명해
“운초씨, 잠깐만 기다려. 내가 엄마한테 당장 전화할게.”전이진은 약혼녀의 볼에 입을 맞춘 후, 바로 어머니한테 전화를 걸었다.명해은은 전화벨이 한참 울린 뒤에야 전화를 받았다.“엄마, 오늘 시간 돼요?”“이제 방금 일어났어. 오늘은 별일 없어서 시간이 남아돌아. 왜? 아들, 엄마 도움이 필요해?”명해은이 잠기가 채 가셔지지 않은 목소리로 물었다.아들이 다 크니 부모로서 해줄 수 있는 일이 점점 적어졌다.애들한테 더는 필요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명해은은 너무 일찍 맛봤다.“저와 운초 씨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를 마치려 하는데 제가 가족관계등록부를 안 가져왔어요. 엄마 혹은 아버지가 지금 저한테 가져다줄 수 있어요? 혹은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보내줘도 되고요. 제가 돌아가서 가져오면 시간이 지체되어 아마도 오후나 돼야 절차를 밟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오후까지 못 기다리겠어요.”가족관계등록부만 손에 가지고 있다면, 전이진은 지금이라도 여운초를 데리고 혼인 신고하러 갔을 테였다.진정으로 여운초가 좋아진 그 시각부터 그는 그녀와 결혼하기를 원했다.하지만 그때의 여운초는 앞을 보지 못했기에 훌륭한 전이진을 앞두고 자비감에 모대기었다. 전이진의 사랑마저 그녀는 오랫동안 망설이다가 받아들인 것이었다.그녀는 전이진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기 위해 정 선생을 찾으러 여러 번 예진 리조트를 드나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남은 인생을 그와 함께하기로 하고 약혼을 한 것이었다.그래도 그녀는 진정으로 그를 볼 수 있을 때 가서 결혼하기를 원했다.그녀는 자기와 결혼할 남자가 어떻게 생겼는가를 알고 싶다고 했다.전이진이 곧 시어머니로 될 사람에게 하는 말을 들은 여운초의 얼굴은 또다시 붉게 물들었다.‘이 사람 뭐가 그리 급해...’이 반가운 소식을 들은 명해은은 순식간에 잠기가 싹 사라진 듯했다. 그녀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시간이 있고말고, 엄마 시간은 남아돌고 있으니 금방 가져다줄게. 넌 지금 여씨 저택에 있니? 아니면 회사에 있니?” “저는 지금
그는 자신의 사람 보는 안목을 믿을 뿐만 아니라, 할머니도 믿었다. 그는 그녀와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 그녀의 인품, 일하는 스타일 등을 천천히 알게 되었다.“혼인신고를 하고 나면 한평생 같이 살아야 해요. 나는 이혼 따위는 할 마음이 없으니 잘 생각해서 결정해요. 당신처럼 훌륭한 남자는 앞으로도 나보다 더 좋고, 당신한테 더 잘 어울리는 여자를 만날 수도 있어요. 그때 가서 이 결혼은 할머니가 강요하셔서 한 거라고 하면서 그 여자야말로 당신의 진정한 사랑이니 어쩌니 해도 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 거예요.”전이진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그녀의 코끝을 살짝 건드리면서 말했다.“넌 아직도 바깥사람들이 우리 전씨 집안 남자들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몰라? 전씨 집안 남자들은 모두 아내한테 일편단심이야. 전씨 집안의 가훈에는 결혼 후 한평생 가정에 충실해야 하고 혼인에 충실해야 하며 바람을 피워선 안 되고 이혼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어.”“누구든 가훈을 어기는 즉시, 전씨 가문에서 쫓겨나서 더는 전씨 일가와 상관없는 사람으로 돼버려.”“그리고 내가 당신과 결혼하는 것은 할머니가 당신을 선택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다면 할머니가 강요하셔도 소용없어.”전이진은 핸드폰을 꺼내 들고 전화를 걸었다.“누구한테 전화하려고요?”여운초는 그가 할머니에게 전화 드리려나 싶어서 한마디 물었다.“내가 가족관계등록부를 몸에 지니고 다니진 않아. 우리가 혼인신고를 하려면 내 가족관계등록부도 필요할 거 아니야. 내가 엄마한테 전화해서 급히 가져다 달라 하면 우리가 점심 전에 혼인신고 절차를 다 끝낼 수 있을 거 같아.”결혼 증명서를 받고 나면 그들은 합법적인 부부가 될 것이었다.전이진은 여태 자기가 한시 급히 여운초랑 결혼하여 그녀를 아내로 맞아들이고 싶어 한다는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었다.애초에 여운초는 시력이 회복되어 그를 볼 수 있어야만 결혼할 수 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는 이날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왔다. 끝내 그녀의 눈
게다가 그의 아버지는 또 법을 어기는 일까지 했다.비록 모든 불법적인 장사는 이미 압류당했고 관련된 금액도 그다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이로 인해 여씨 그룹의 이미지가 크게 훼손되어 주가가 폭락하고 매출액이 바닥을 쳤으며 여씨 그룹의 재산도 많이 수축했다.큰누나가 여씨 그룹을 이어받은 후, 한동호 형님과 힘을 합쳐 천신만고 끝에 여씨 그룹을 이끌고 이 힘든 고비를 넘긴 셈이었다.이런 얘기를 큰누나는 그한테 한 적 없었지만, 그는 한동호 형님과 매형을 통해서 알게되었다.비로소 그는 큰누나의 홀가분해 보이는 말투 속에 얼마나 많은 쓰라림이 숨겨져 있는가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비록 큰누나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를 감방으로 보내긴 했지만, 그것은 그의 부모님이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비록 큰누나의 대의멸친을 받아들이긴 힘들었지만, 이해만은 할 수 있었다.현재 여씨 그룹은 큰누나가 통제하고 있지만, 큰누나가 그에게 한 말이 있었다. 자기가 가져야 할 재산은 한 푼도 양보하지 않지만, 자기가 가지지 말아야 할 재산은 한 푼도 탐하지 않는다고. 그가 물려받아야 할 재산은 언젠가는 돌려줄 것이었다.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그와 둘째 누나 단둘의 소송일 것이었다.큰누나는 단지 여천우 부모님에게 속하는 재산만 그에게 돌려줄 것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게 자식이라곤 그와 둘째 누나밖에 없으니 설사 둘째 누나가 소송을 일으킨다 해도 상대는 그일 수밖에 없었다.“누나, 나 먼저 수업 들으러 들게. 수업이 끝나는 대로 휴가 내서 돌아갈 테니 그때 천천히 얘기해.”“알았어, 얼른 가서 수업 봐.”동생과의 통화를 마친 여운초는 동생의 말대로 그의 부모님의 물건들을 그의 방으로 옮겨 놓았다.여운별 방의 물건은 여운초가 기분을 봐서 언제든 연락하여 가져가라고 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앞으로 그와 여운별은 남남일 것이었다.“아가씨, 진씨 가문의 둘째 도련님이 오셨습니다.”여운초는 알았다고 하면서 핸드폰을 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