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성소현은 창문을 누르고 차를 세운 뒤 부모님께 말했다.“새언니가 출산할 것 같아요. 배가 좀 아프다고 하세요. 우리 빨리 새언니 모시고 병원으로 가야 해요.”이경혜가 물었다.“누구를 병원에 데려다준다고?”“새언니요. 곧 낳을 것 같아요.”성문철이 되물었다.“청하는?”성소현은 고개를 돌렸고 뒷좌석에 출산 물품이 있을 뿐 새언니가 없다는 것을 그제야 발견했다.그녀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성소현은 그제야 무릎을 '탁' 치며 예준하에게 말했다.“빨리 돌아가야 해. 새언니가 아직도 집에 계셔.”이경혜는 결국 참지 못하고 또 웃기 시작했다.이런 일이 아들이 아닌 딸에게 일어날 줄은 몰랐다.성소현의 얼굴이 이내 빨개졌고 부끄러워하며 말을 건넸다.“새언니가 물건을 가지러 오라고 하시기에 제가 물건만 가지고 뛰어왔죠. 새언니가 이미 차에 탄 줄 알았어요.”예준하는 웃으면서 차를 돌렸다.“너무 웃긴 거 아니야? 너무 웃겨. 나도 네가 소리치는 바람에 얼른 너 따라서 차에 탔어. 주인공이 차에 못 탈 줄이야!”차 머리를 돌린 예준하는 차를 세우고 이경혜 부부가 차에 오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집으로 함께 돌아갔다.다행히 그들은 멀리 가지 않았다. 병원에 도착한 뒤로 유청하가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아마도 놀라서 주저앉아버릴 것이다.10분 후.“새언니! 새언니!”성소현은 방으로 들어가며 소리쳤다.아침을 느릿느릿 먹던 유청하는 성소현의 외침 소리에 웃으며 대답했다.“저 여기 있어요.”곧 성소현이 뛰어왔다.유청하는 그녀를 보고 웃기만 했다.“왜 저를 부르시지 않으셨어요.”성소현은 얼굴을 붉히면서 불평했다.유청하는 가볍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소현 씨가 너무 빨리 움직여서 부를 겨를도 없었어요. 휙 하고 방을 뛰쳐나가서 아래층으로 내려가셨잖아요. 기현 씨를 부르려고 했지만, 더 긴장해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거든요. 그런데 소현 씨가 실수할 줄은 몰랐어요.”성소현의 얼굴은 더 빨개졌다.“아직도 배가 아프세요?”유청하가
성소현도 웃었고 유청하도 따라서 함께 웃었다.“자꾸 웃지 마세요. 너무 긴장해서 그랬어요. 제 오빠는 저보다 더 긴장했을걸요.”“알았어요. 안 웃을게요. 웃으니까 배가 덜 아픈 것 같아요.”성소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그럼 웃으세요. 웃어서 통증이 덜 하신다면 많이 웃으세요. 저는 뻔뻔해서 괜찮아요.”유청하는 배를 끌어안고 웃더니 이내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아파요. 아까보다 더 아픈 것 같아요. 아픈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요.”그 말을 들은 이경혜는 바로 지휘했다.“병원에 가자. 빨리 병원에 가야 해.”첫아이는 적어도 하루 반나절 정도는 아파야 낳을 수 있다.길게는 이삼일 정도 아파야 낳는 사람도 수두룩했다.그러나 배가 아파서부터 낳기까지 몇 시간만 걸리는 사람도 있었다.유청하는 그렇게 오래 고생할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하여 한 가족 모두가 위풍당당하게 유청하를 병원으로 데려갔다.병원으로 가는 길에 유청하는 성기현에게 전화를 걸었고 성기현이 전화를 받자 바로 소식을 전했다.“저 배가 아파서 출산할 것 같아요. 부모님이랑 소현 씨가 저를 병원에 데려다주는 길이에요. 시간 되면 병원에 가서 기다려줘요.”“벌써요? 출산 예정일까지 보름 남았잖아요. 근데 왜 벌써 배가 아프지? 시간이 왜 없겠어요. 어느 병원으로 가요? 지금 바로 갈게요. 걱정하지 말고요.”성기현은 아내가 아이를 낳을 거라는 말에 하던 일을 팽개치고 일어났다. 그는 책상을 에돌아서 나가려다가 방향을 잘못 잡고 나가는 것이 아닌 휴게실로 들어섰다.업무보고를 하러 온 한 고위층 인사가 성 대표님이 대기실로 들어가는 것을 보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나가려고 한 게 아니었나...대표님 부인분이 곧 출산한다면서 곧 병원으로 갈 거라고 전화를 하더니 대표님은 어찌 된 일인지 대기실로 들어간 것이다.성기현이 물건을 가지러 휴게실에 들어가는 줄 알았다.곧 성기현이 다시 나왔지만, 아직 통화 중이라는 것 외에는 손에 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그 고위층 인사는 그제
“내가 사돈에게 전화해서 말씀드릴게.”유청하는 친정어머니에게 전화하지 않았다. 이경혜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때 친정 식구들도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유청하의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가서 기다리라고 했다.얼마 후, 성씨 가문과 유씨 가문 두 집안 사람들이 분만실 밖에 모여서 유청하가 나오길 애타게 기다렸다.이경혜의 짐작대로 유청하는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은 뒤 바로 분만실로 보내졌다.성소현은 모멘트를 올려 하예정 자매에게 유청하가 오늘 아이를 낳을 것 같다고 알려주었다.전태윤은 즉시 하예정과 함께 할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갔다.하예진은 여동생보다 먼저 병원에 도착했다.많은 사람이 분만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본 하예진은 이경혜 곁으로 다가가 작은 소리로 인사했다.“여긴 어쩐 일이야?”“제가 소현의 카톡 모멘트를 보고 나서야 사촌 형수님이 곧 출산할 것을 알았어요. 어떻게 되었어요? 들어간 지 얼마나 됐어요?”이경혜가 대답했다.“오래간 들어간 것 같은데 시간을 보니 한 시간도 안 된 거 있지.”그들은 마음이 초조했다. 일분일초가 너무 느리게 지나가는 듯했다.성기현은 제 자리에서 얼마나 서성거렸는지 몰랐다. 그는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계속 왔다 갔다 하면서 긴장을 풀려고 노력했다.그는 아내를 대신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을 받아주고 싶었다.아기를 낳을 때의 고통은 아기를 낳아본 엄마만이 느껴보는 통증으로 임산부들은 온몸이 찢어지는 듯한 통증을 견뎌내야 한다고 했다.“태아의 위치가 올바르게 잡혀 괜찮을 거예요.”하예진은 이모를 위로한 것 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이경혜는 그런대로 침착했다. 그녀는 왔다 갔다 하는 장남을 바라보며 말했다.“네 사촌 오빠 좀 봐. 바닥이 닳도록 걸어 다니고 있어. 저렇게 얼마나 걸어 다녔는지 몰라.”“두 사람 사이가 너무 좋아서 그런 것 같아요.”하예진은 그녀가 우빈이를 낳을 때 생각이 났다. 하예진의 말에 의하면 주형인이 초조해하긴 했지만, 성기현처럼 왔다 갔다 하면서 긴장
분만실 문이 열렸다.문 앞에서 기다리던 사람들 모두 몰려들었다.한 간호사가 아기를 안고 웃으며 성기현에게 물었다.“유청하 보호자세요?”“네, 맞아요. 제 아내가 아기를 낳았어요? 제 아내는 어때요? 들어가서 아내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제 아내는 언제 나올 수 있어요?”성기현은 연이어 물음을 내던지며 그의 아내에 관한 물음을 계속해서 물었다.하예진은 두 집안 어르신들에게 밀려 뒤로 물러났다. 성기현이 유청하를 관심하는 모습을 본 하예진은 유청하가 그의 사촌 오빠에게 시집가는 것이 행운스럽다고 마음속으로 연신 감탄했다.간호사가 웃으며 대답했다.“산모는 상태가 매우 좋아요. 아들을 낳으셨어요. 모자가 모두 안전해요. 아기가 3.3kg에요. 좀 이따가 상모가 곧 나올 거예요. 아기가 먼저 나왔어요.”모자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이경혜는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유청하 모자가 무사하다는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기가 맴돌았고 그제야 이제 막 이 세상에 온 새 생명을 보러 가려고 했다.성기현은 간호사의 품에서 아들을 넘겨받아 한 번 보고는 장모님에게 건네며 말했다.“어머님, 아기 먼저 안고 방으로 가세요. 제가 여기서 청하 씨를 기다릴게요.”외손자를 받아 안은 유청하의 어머니 최연수는 어린 외손자가 딸을 닮았다고 기뻐하며 말했다.“나도 여기서 기다릴게.”성씨 가문의 손자는 나왔지만, 그녀의 딸은 아직 수술실에서 나오지 않았다.최연수는 외손자를 이경혜 부부에게 맡기며 이경혜 가족들이 아기를 안고 방으로 돌아가서 유청하를 기다리라고 부탁했다.아기가 나오자 분만실 앞을 지키는 사람이 절반으로 줄었다.그러나 이경혜와 하예진은 곧 산후 회복실에서 나와 분만실 문 앞으로 돌아와 유청하가 나오기를 기다렸다.성소현 부녀와 예준하는 산후 회복실에서 아기를 지키고 있었다.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급히 도착했고 이내 이경혜와 하예정에게 인사했다.하예정이 물었다.“사촌 형수님께서 아기를 낳으셨어요?”“왜 왔어? 임신 중이고 신혼여행이라고 들었는데
다행히 유청하는 남편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았고 곧 의사와 간호사에게 밀려 분만실에서 나왔다.“여보.”성기현은 가장 먼저 아내에게 달려갔다.유청하는 머리가 헝클어지고 입술이 터진 채로 밀려 나왔다.다행히 유청하의 정신상태가 아주 좋았다. 모두가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녀는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기현 씨, 제가 아들을 낳았는데 저를 많이 닮았다고 하네요.”최연수가 말을 이었다.“아들이 어머니를 많이 닮으면 좋다고 했어.”성기현은 허리를 굽혀 사랑하는 아내의 이마에 뽀뽀했다.“여보, 고생 많았어요. 앞으로 우리 다신 낳지 맙시다. 아기 한 명이면 충분해요.”유청하의 친정 식구들은 그녀가 아들을 낳기를 바라고 있었다.성씨 가문의 사업이 엄청나게 크고 성기현이 또 아이 한 명만 낳는다고 했다. 다행히 유청하는 맏며느리로서 손자를 낳았으니 그녀의 새댁 가족들에게 후계자를 낳아 준 셈이다. 그렇게 되면 유청하가 성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오늘 출산을 경험하게 된 유청하도 자신이 아들을 낳은 것을 다행으로 여겼다. 아들이 앞으로 그녀가 겪었던 출산의 고통을 겪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그러자 유청하도 이내 대답했다.“그래요. 낳지 말아요.”그녀도 낳고 싶지 않았다. 너무 아팠다!경험해보지 못한, 상상 그 이상의 아픔이었다.산후 회복실로 돌아온 유청하는 침대에 누워 쉬면서 아기를 둘러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우리 아기를 안고 저한테 와줘요. 저도 좀 볼래요.”이 아기는 그녀가 임신 10월 만에 엄청난 통증을 겪고 낳은 아이였기에 봐도 봐도 질리지 않았다.분만실에서 아기가 태어나자 간호사가 아기를 깨끗하게 씻겨주었고 분만실 밖으로 보내기 전에 유청하가 아기를 뽀뽀하게 해주었다.성기현은 허리를 굽혀 아기 침대에서 아기를 안아 들었다.단지 갓 태어난 아기였기에 작고 말랑말랑해서 안아 보면 무게감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다.성기현은 특별히 조심스럽게 안았다.아들을 안은 성기현은 동작이 너무 커
유청하는 아들을 안고 몇 번이고 뽀뽀하며 웃었다.“제가 낳았으니 당연히 저를 닮아야죠. 입은 기현 씨를 닮았네요.”그녀는 남편을 한 번 쳐다보았다.“아기는 우리 두 사람 아기이기 때문에 우리 두 사람을 골고루 닮아야 해요. 근데 저를 더 닮았네요.”성기현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아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당신이 더 예뻐. 난 당신만큼 예쁘지 않아.”다들 웃음보가 터졌다.유청하와 성기현은 외모가 나무랄 데 없이 잘 생겼다. 지금 아기가 너무 작아서 티가 나지는 않지만 좀 더 자라면 분명 멋진 아이로 자라날 것이다.유청하는 금방 출산했기에 휴식이 필요했다. 사람들은 병원에서 잠시 앉아 있다가 모두 병원을 떠났다.성기현과 최연수가 병원에 남아 유청하와 아이를 돌보고 있었다.병원에서 나오자 하예정 부부는 성씨 가문으로 따라갔다.성씨 가문에 손자가 태어났으니 모두 매우 기뻐했다.하예정 자매는 많은 영양제를 사서 성씨 가문으로 보냈다.이경혜는 두 조카에게 말을 건넸다.“이렇게 많은 영양제를 사 오다니. 우리 집에 부족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청하가 방금 임신했을 때 사 온 보양식들도 아직 다 못 먹었어. 고급 보양식들이 너무 많아 둘 곳도 없어.”유청하는 임신 중에도 비싼 보양식들을 많이 먹었지만, 너무 많아서 다 먹을 수 없었다.하예정이 임신한 것을 알았을 때 유청하는 시어머니를 보며 집에 있는 그 보양식을 하예정에게 가져다주라고 했다.하예정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건 저와 예정의 작은 성의에요. 사촌 형수님께서도 이제 아기를 낳으셨으니 더는 토하지 않으시겠네요. 이 영양제들로 몸보신하셔야 해요. 임신 기간에 사촌 형수님은 배만 컸지 형수님 몸에 살이 찌는 걸 못 봤어요.”유청하는 토를 심하게 해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그 뒤로도 밥 먹을 때마다 토하지는 않았지만 배만 커지고 살이 찌지 않았다.지금 뱃속의 짐을 내려놓았으니 산후조리 기간에 보양식으로 잘 보양해야 하기에 가장 좋은 보양식을 선물했다.“청하 대신 내가 감사 인사할게.”
그는 요즘 임신 관련 서적을 공부하였다. 그리하여 임산부도 종일 누워있거나 앉아 있기보단 적당히 움직이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안다. “큰이모는 네가 아주 믿음직스럽단다.” 이경혜는 이 조카사위가 무척 맘에 들었다. 하예진을 바라 보고 그녀는 속으로 한숨을 푹 쉬었다. 작은 조카는 운 좋게도 아내 바라기 전태윤을 만나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하지만 큰 조카는 이경혜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다. 그녀의 생활이 이혼 후 좀 나아지나 싶었다. 게다가 노동명도 그녀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신은 마치 하예진과 장난이라도 치듯이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해 다리를 다쳤다. 비록 재활 치료를 하고 있으나 언제 완전히 회복될지는 그 아무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 노동명이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다면 이경혜는 하예진과 노동명의 교제를 반대할 심산이다. 큰 조카딸은 지난 몇 년 동안 잘 지내지 못했다. 그녀는 하예진의 남은 인생이 하예정처럼 자신을 사랑하는 애인과 행복하고 즐겁기를 바란다. 그녀를 속물이라 욕하지 말기를.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기적이기 마련이다. 윤미라도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하기 전까진 이혜진과의 교제를 한사코 동의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노동명이 교통사고로 불구가 되자 이혜진을 길길이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하예진의 친이모인 이경혜가 하예진부터 고려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경혜는 마음속 솔직한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지 않았다. 의사는 노동명이 재활 치료를 열심히 받고 있으니 완전히 회복될 기회가 있다고 하였다. 게다가 하예진도 노동명한테 조금 감정이 생긴 것 같다. 그리하여 이경혜는 우선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자고 생각했다. “노 대표는 요즘 어때?” 이경혜가 넌지시 물었다. 하예진은 웃으며 대답했다. “잘 지내고 있어요. 오전마다 재활 치료를 하고 오후엔 회사로 가서 일해요. 가끔 저녁에 취소할 수 없는 미팅이 생길 때가 있어요. 그때마다 저한테 시간 나면 같이 미팅에 참석해달라고 부탁해요.” 가끔 노동명과
이혜진은 이경혜의 말의 뜻을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언젠가 세계 각지에서 저의 브랜드를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언니, 그날이 언젠간 꼭 올 거야.” 하예정은 언니한테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그녀는 하예진이 해낼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이경혜도 웃으며 말했다. “이씨 가문의 딸은 하나같이 다 대단하단다.” 그중 장녀의 능력이 제일 출중했다. 몇십 년 전 거의 멸문할 뻔한 그 사건만 없었더라면 하예진은 이경혜 동생의 장녀였을 거다. 이씨 주 가문의 맏딸은 이제껏 다들 능력이 출중하였다. 혹여 외동딸이라 할지라도 어느 누구한테 뒤처지지 않았다. 예를 들면 이윤미 그녀도 만만치 않다. 그녀는 양의 탈을 뒤집어쓴 늑대다. 현재도 이씨 가문의 대부분 이들이 그녀의 나약한 겉모습에 속고 있다. 그런 그녀의 진짜 모습을 꿰뚫고 있는 사람은 아마도 그녀의 친엄마인 이씨 가주뿐일 거다. 하예정은 입을 뻥긋거리다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니는 해낼 만한 능력이 있다. 하지만 권력을 추구하는 길이 치열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두 세대 간의 원한이 얽혀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이씨 가주 역시 잔혹하기 그지없다. 친언니가 그녀를 업어 키우다시피 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친언니의 일가를 몰살하려 하였고 두 조카딸마저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다행히 그녀의 엄마와 큰이모의 운이 좋아 살해당하지 않았다. 보육원에서의 생활은 힘들었지만, 살아있는 것이 어딘가. 그녀의 엄마는 나중에 입양된 후에도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다가 아빠한테 시집간 후에야 안정적이고 행복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하예정 기억 속 부모님은 서로 극진히 은애하였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엄마가 연이어 두 딸만 낳았다고 탐탁지 않아 했다. 하지만 부모님은 두 딸한테 단 한 번도 싫은 티 낸 적 없고 남들처럼 몰래 아들을 낳으려 하지도 않았다. 부모님은 그들의 모든 사랑을 두 자매에게 쏟아부었다. 그 교통사고만 없었다면 부모님은 금실 좋은 부부로 백년해로하였을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