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성소현은 꽃다발을 받고 감사를 표하고 나서 말했다.“내가 예정이랑 같이 있는 걸 알면서 꽃다발을 사왔어? 안고 들어가기가 민망하잖아.”“민망하긴. 예정 씨는 우리 사랑의 증인이잖아. 우리가 잘 지내는 걸 보면 비웃기는커녕 대신 기뻐해 줄 거야. “예준하는 성소현의 손을 잡고 어깨 나란히 안으로 들어갔다.“당연하지. 내가 행복하기를 가장 원하는 사람이 예정이니까. 예정이는 늘 자기 때문에 나와 태윤 씨가 헤어졌고 나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거든. 걔가 말하지 않아도 난 알고 있어. 하지만 난 종래로 예정이를 원망한 적이 없고 책임이 걔한테 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어. 나와 태윤 씨는 인연이 없는 거야. 태윤 씨는 날 사랑한 적이 없고 약속 같은 거 한 적도 없거든. 솔직히 말하면, 내가 예정이의 사촌 언니가 아니었으면 태윤 씨는 날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예준하는 성소현의 마음을 이해하였다.“예정 씨는 당연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앞으로 우리가 행복하게 잘 살면 예정 씨도 마음이 놓이고 더 이상 자책하지 않을 거야.”하예정과 전태윤이 초고속 결혼하기 전에 성소현은 전태윤과 만나려고 하였다.그래서 하예정은 자기가 성소현의 행복을 빼앗아 갔다는 생각하게 된 것이다.하예정이 보기엔 전태윤과 성소현은 집안이 비슷하고 두 사람도 잘 어울렸다.성소현도 하예정에게 그녀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여러 번 얘기했었다. 그러나 하예정은 겉으로는 내려놓은 것 같지만 실제로 여전히 자책하고 있었다. 성소현이 행복을 얻어야만 그녀는 진정으로 내려놓을 수 있다.“전 대표가 널 좋아하지 않아서 다행이야. 그렇지 않으면 난 기회가 없을걸. 소현 씨, 남들이 널 어떻게 보든 내 마음속에서 넌 세상에서 가장 좋은 여자야. 네 사랑을 가질 수 있고 너와 평생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예준하는 성소현의 손을 자기의 입술에 대고 뽀뽀를 했다.성소현은 웃으면서 말했다.“됐어. 지난 일은 그만 말하고 앞날을 보자.”“좋아. 앞날을 보자.”
“우리 집의 친척들이 비행기를 타고 가도 얼마 안 걸리니까 별문제는 없어.”그가 결혼하겠다고 하면 다들 기뻐해 주었다. 그래서 약혼식을 남자 측에서 하든 여자 측에서 하든 중요하지가 않았다.행복과 즐거움이 가장 중요하니까!“우리 집에서 날짜를 잡으면 너의 부모님께 보여드릴게. 만약 다른 의견이 없으시면 날짜를 정해서 관성에서 약혼식을 올리자. 장소는 바꿀 필요가 없어.”예준하는 이어서 말했다.“소현 씨, 우리가 잘 살면 돼.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넌 원래 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안 쓰는 타입이잖아.”“난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당신을 사랑해. 그래서 남들이 당신을 어떻게 말하는지 신경이 쓰이는 거야. 난 낯가죽이 두꺼워서 누가 뭐라고 하든 개의치 않거든.”예준하는 웃으면서 그녀를 사랑스럽게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꽃다발을 짓누르지 않도록 조심하였다.“당신의 이 말만 있으면 난 칼산에 오르고 불바다에 뛰어들 수도 있는데 데릴사위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지. 내가 데릴사위로 되어 줄 수 있어. 근데 어머님이 이미 아들 둘이 있어서 더 이상 갖고 싶지 않다고 하셔서 날 받아주지 않으셨잖아.”성소현의 어머니인 이경혜는 예비 사돈을 만난 후 딸이 행복하기만 된다고 생각하였다.예씨 가문은 절대로 실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예비 사돈이 예준하를 성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보내줄 수 있다고 했을 때 이경혜는 오히려 반대했다.성소현은 앞으로 예준하와 결혼해서 예씨 가문의 며느리로 된다.그녀와 예준하는 일 때문에 결혼한 후에도 오랫동안 관성에서 살 것이다.또한, 예준하는 일찍이 성씨 저택의 옆집을 샀다. 1분 정도만 걸으면 바로 친정집에 가서 밥을 먹을 수 있어서 아주 편리했다. 성소현은 그를 가볍게 밀치면서 웃었다.“내 꽃다발을 누르지 마.”“방금 조심스레 피했어. 망가져도 괜찮아. 한 시간 간격으로 꽃다발을 보내줄 수 있어.”“그렇게 많이 해서 뭐해? 먹지도 못하고 며칠만 지나면 시들어지잖아. 매일 한 번만 주고 사랑한
노씨 가문의 사모님인 윤미라는 처음에 노동명과 하예진이 사귀는 것을 극구 반대하였다. 하예진이 아이를 데리고 있는 이혼녀라고 싫어했다.그러나 노동명이 교통사고를 당한 후 윤미라는 오히려 하예진에게 노동명을 받아들이라고 사정했다.두 사람은 아직 명확한 연애 관계를 맺지 않았지만 관성에서 다들 두 사람은 사귀고 있다고 생각했고 감히 노동명의 여자를 뺏으려는 사람이 없었다.하예진의 전 시댁 식구들도 계속 하예진이 전 남편과 재혼하기를 원한다고 들었다. 물론 하예진은 현명해서 재혼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저는 서 씨이고 서준석이라고 합니다.”사실 서준석은 바로 레아닐 아파트에 사는 실연한 후 맨날 음주하고 취하면 여기저기서 자며 젊은 여자를 보면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사람이었다.그가 하예진을 본 후 그녀를 며칠 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하예진이 레아닐 아파트에서 이사 나간 후 그는 아파트 단지에서 다시 하예진을 만나지 못했다.그 뒤로 그는 술주정을 그만하고 다시 정신을 차리기로 결심했으며 하예진과 사귀고 싶었다.오늘 그는 특별히 새로 산 옷을 갈아입고 이발하였으며 수염까지 깎아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그는 꽃다발을 사고 용기를 내서 하루 레스토랑에 찾아온 것이다.하예진 모자가 레아닐 아파트에 오래 살았기에 서준석은 그녀에 대해 쉽게 알 수 있었다.그리고 하예진의 친 여동생이 재벌 집의 며느리로 시집간 사실도 알고 있다.서준석은 하예진에게서 무슨 이득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단순히 하예진이란 사람이 마음에 들고 좋아하게 돼서 그녀와 사귀고 싶은 것이다.그는 하예진의 이혼녀 신분을 꺼리지 않고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도 꺼리지 않았다.하예진이 그에게 기회를 준다면 그는 하예진의 아들을 친아들처럼 대할 것이다.종업원이 다시 서준석이 들고 있는 꽃을 보고 말했다.“잠시만 기다려주세요. 하 사장님께 여쭤보고 올 게요. 사장님은 아주 바빠서 만나지 못할 수도 있어요.”이에 서준석은 이해한 듯이 말했다.“괜찮아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대신 여쭤
“오늘 예진 씨에게 사과하려고 찾아왔어요. 정말 죄송해요. 저 때문에 놀란 다른 분들도 일일이 찾아봬서 사과할 겁니다.”서준석은 하예진을 추구할 계획은 있으나 만나자마자 사실대로 말할 수 없었다.그래서 사과를 핑계로 다른 사람도 끌어들인 것이다. 하예진이 의구심이 들어서 그의 사과를 거절할 수도 있으니까.하예진은 서준석에게 미지근한 물 한 잔을 따라주면서 말했다.“서준석 씨의 사과를 받아들일게요. 지난 아픔에 계속 빠지지 않고 제때 깨달아서 다행이에요. 한 여자에게만 집착할 필요는 없죠.”이에 서준석이 웃으면서 말했다.“맞아요. 한 여자에게만 집착할 필요는 없죠. 제 것이 아닌 것을 억지로 가질 수 없으니까요.”하예진은 서준석의 꽃다발을 받지 않았다.“사과는 받겠지만 꽃다발은 받을 수 없으니 가져가세요.”서준석은 무리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그는 손을 움츠리고 꽃다발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그리고 잠시 머뭇거리는 척하다가 하예진을 보면서 말했다.“하예진 씨, 오늘 사과하러 온 것도 있고 부탁할 일도 있어서 찾아온 것입니다.”“말씀하세요.”하예진은 도와준다고 대답하지도 않고 거절하지도 않았다. 일단 무슨 부탁인지 듣고 결정할 생각이었다.“제 전 여친이 사장의 아들과 바람을 피워서 저는 여자친구를 잃었고 직장도 잃었어요. 지금 백수 상태이고 통장 잔고도 거의 바닥이 나서 두 달만 지나면 월세도 내기 힘들게 될 거예요. 그래서 급히 일자리가 필요해요. 근데 그 사장의 아들은 제가 앞으로 관성에서 취직하지 못하게 한대요. 거지처럼 살아서 복수하지 못하게 하려고요. 저는 복수할 생각이 없어요. 처음에 그 두 사람의 일을 알게 됐을 때 정말 괴로워서 복수하고 싶었어요. 후에 일반인은 부자를 상대로 복수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복수하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은 정말 제가 취직하지 못하게 했어요. 큰 충격을 받은 저는 매일 술에 취하게 되었고 사람들을 놀라게 했죠. 하예진 씨의 레스토랑이 장사가 잘 된 것 같은데 혹시 일자리를 하나 마련해 주
서준석이 가져온 꽃다발은 아직 하예진의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그녀는 다급히 꽃다발을 들고 서준석에게 돌려주려고 쫓아 나갔다.그러나 서준석의 발걸음이 너무 빨라서 하예진이 나왔을 때 이미 떠나고 없었다.하예진은 꽃다발을 안고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몰랐다.공교롭게도 노동명이 왔다.하예진이 꽃다발을 안고 레스토랑의 입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노동명은 자신을 위해 준비한 것이라고 착각했다. 경호원이 그를 밀고 들어왔을 때 그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 찼다.“예진아.”노동명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동명 씨, 오셨어요?”하예진은 꽃다발을 안고 계단으로 내려갔다.노동명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손을 내밀어 꽃다발을 받으려고 하였다.“오늘은 왜 꽃까지 준비했어? 내 생일은 이미 지났는데.”이에 하예진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이건 동명 씨를 위해 준비한 것이 아니에요. 서준석 씨가 사과의 의미로 주신 거예요. 저는 받기 싫은데 그냥 두고 가셔서 돌려주려고 했는데 이미 사라졌네요.”노동명도 난감해서 내민 손을 멈칫하다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꽃다발을 가져갔다.“방금 표정 보니 어떻게 처리할 줄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대신 처리해 주지.”그는 경호원에게 멀리 떨어진 길가에 있는 쓰레기통으로 밀고 가라고 지시하고 나서 서준석이 준 꽃다발을 쓰레기통에 던졌다.‘사과하는데 빨간 장미꽃다발을 준다고?’하예진은 아무 생각도 없지만 노동명은 많은 생각을 했다. 그는 서준석은 다른 의도가 있다고 의심했다.지금의 하예진은 자석과 같아서 남자의 시선을 쉽게 끌었다.그래서 그는 잘 지켜야 한다.‘이 노동명의 여자를 뺏으려면 아직 멀었어!’그는 오랫동안 지켰고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제 곧 희망이 보이는데 절대로 도중에 튀어나오는 딴 놈에게 기회를 줄 수 없다.이윽고 노동명은 하예진의 앞에 다가왔다.“그 사람의 사과를 받았으면 됐어. 장미꽃은 자리도 차지하니까 남길 필요는 없지. 이제 내가 줄 꽃다발을 둘 곳이 없게 되잖아.”하예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노동명은 자기가 다른 남자들과 달리 믿음직하다는 말을 듣고 제법 흐뭇해했다.“동명 씨가 올 줄 알고, 제가 대신하여 좋아하는 식단을 짜서 셰프한테 부탁해 놓았으니, 잠시 후면 드실 수 있어요. 저는 집에 가봐야 해요.”온 오전 밖에서 일 보느라 집에는 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물론 하예정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생이 임신한 후 심한 입덧으로 고생하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 일에는 손도 못 대게 하였다.노동명은 그녀가 동생의 결혼식을 준비하느라 많이 바쁜 줄 잘 알고 있다.“내가 바래다줄게. 대신 당신 집에 가서 밥 먹어도 되나? 숙희 아주머니의 반찬이 생각나는데.”“그러면 여기에서 좀 기다려 줄래요? 안쪽에 들어가서 챙길 물건이 좀 있어서요.”하예진은 거절하지 않고 물건 가지러 들어갔다.그녀가 자리를 뜨자, 노동명은 등 뒤에 서 있는 경호원한테 분부했다.“사람을 붙여서 서 씨 남자를 좀 알아봐.”자신을 알고 적을 알아야만 백전백승할 수 있다.“알겠습니다.”경호원은 당장 부하에게 전화하여 넷째 도련님의 연적 뒷조사를 해오라고 지시했다.넷째 도련님과 하예진 씨가 아직 연인관계까지는 도달하지 않았지만, 적어도 하예진 씨는 지금 도련님을 배척하지는 않는다. 두 분이 얼마나 어렵게 여기까지 왔는데, 인제 와서 엉뚱한 놈에게 빼앗길 수는 없다. 비록 도련님의 승산이 더 크지만, 아직 휠체어를 타야 하는 점은 좀 진 듯했다.경호원이 전화를 끊자, ‘하루 레스토랑’ 문 앞에 차 한 대가 멈췄다. 두 사람이 궁금해서 그쪽을 향해 보니, 하예진이 제일 마주하기 싫어하는 전남편이 차에서 내려왔다.주형인의 몸은 많이 좋아졌다. 비록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지만, 주치의가 검토한 후 퇴원 요청을 동의했다. 퇴원 후 집에서 천천히 몸을 회복해도 된다고 했다.그는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부모님의 저축을 거의 탕진해버리고 없다. 병원에서 더 버티면 부모님의 지갑이 거덜 날까 봐 기어코 퇴원하겠다고 했다.퇴원 후, 그는 누나가 하루에 몇 번씩 입에
걸을수 있는 주형인은 얼핏 봐도 몹시 허약해 보였지만, 반대로 일어서지 못하는 노동명은 훨씬 활기차 보였다.“오셨어요? 노 대표님.”주형인이 먼저 인사했다.노동명은 머리를 끄덕이며 물었다.“주형인 씨는 언제 퇴원했나?”“어제요.”‘오’라고 대답하는 노동명은 주형인이 퇴원했으니 하예진이 우빈이를 데리고 병문안 갈 일이 다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노 대표님께서 예진 씨 찾으러 왔을 텐데 왜 안 들어가죠?”주서인이 머리를 갸우뚱하면서 물었다.“예진씨가 물건 가지러 잠깐 들어갔는데, 나오면 같이 집에 갈 거야.”노동명은 일부러 염치없는 오누이를 자극했다.이혼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예진이가 점점 잘 나가는 걸 본 주 씨네 집안사람들은 또다시 예진을 넘겨보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노동명과 하예진이 같이 집으로 돌아간다는 말을 들은 주형인의 낯빛은 점차 흐려졌다.하지만 그는 이제는 질투할 자격이 없다.주서인은 말문이 막힌 동생이 노동명한테 당하고만 있는 것 같아서 안달이 나서 야단치고 싶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부모님께 야단맞을 것이 두려워서 어쩌지 못했다.요즘 동생과 부모님은 하예진이 노동명한테 시집가면 그들이 번 돈은 몽땅 우빈이가 물려받을 것이며, 따라서 그 돈은 모두 주씨 가문의 재산으로 된다면서 우빈이랑 친하게 지내라고 말했다.워낙 노동명은 이 오누이를 쳐다보기도 싫어하는 참이라 세 사람은 모두 입을 꾹 다물고 있었기에 분위기가 어색했다.드디어 하예진이 안에서 나왔다.“어머, 예진아.”주서인은 마침 구세자를 본 것처럼 웃으면서 반겼다.“언니가 어떻게 여길 왔어요?”박예진이 상을 찡그리면서 쌀쌀하게 묻고 나서 고개 돌려 전 남편에게 말을 걸었다.“우빈 아빠 퇴원했어?”전 아내한테서 ‘우빈 아빠’라는 호칭을 들은 주형인은 내심으로 그녀의 깊은 도량에 탄복했다.비록 이혼할 때 두 사람은 많은 모순이 있었지만 하예진은 종래로 애 앞에서 아빠에 대한 나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하예진은 좋은 여자일 뿐만 아니라 복이 많
복 있는 사람은 복 없는 집에 안 들어간다더니, 주씨 집안은 결국 하예진처럼 좋은 며느리를 잃고 말았다.“의사 선생이 나더러 퇴원해서 집에서 회복해도 된다고 해서… 그리고 입원해 있으면 돈이 너무 많이 들어서 퇴원했어.”“이번에 입원하면서 집에 있는 돈을 거의 다 썼거든.”주형인이 대답했다.주형인은 퇴원 후 부모님 모시고 지방에 내려가서 신체를 회복시킬 예산이었다.시내에 있는 아파트는 부동산에 걸어서 팔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온 집 식구가 먹고살기도 힘들 것이다.근데, 주택 소유권 증서에 서현주 이름으로 되었기에 아파트를 팔려면 그녀의 동의를 거쳐야만 했다.서현주는 두 죄행을 합쳐 무려 10여 년이란 긴 징역을 받아 후회막급이었다.그의 말을 들은 하예진은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러면 이참에 집에서 푹 쉬고 한동안은 나가서 돈 벌 생각하지마. 위자료는 몸이 잘 회복된 후 천천히 내면 되니깐.”하예진의 말을 들은 주서인은 동생이 이 지경이 되었는데 위자료를 받으려 하는 하혜진이 너무나 지독한 여자라고 욕설을 퍼부으려 하는 참 주형인은 누나의 말을 가로채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우빈이는 내 아들이야. 이혼 협의서에 애는 공동으로 키우겠다고 적혀있으니 절대로 발뺌 질 안 할 거야.”주서인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지금 친정집에는 뜯어낼 것이 하나도 없다. 도리어 자기한테 매달릴까 걱정되는 주서인은 앞으로 친정에 발걸음을 적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누나의 속셈을 동생이 안다면 얼마나 서운해할까?잠깐 망설이던 주형인은 호주머니에서 봉투 하나와 금팔찌가 들어있는 작은 선물함을 꺼내었다. 부모님과 의논 후 하예정한테 주는 결혼선물이었다.주형인은 손을 내밀어 물건을 하예진에게 넘겨주면서 말했다.“예진아, 예정 씨의 결혼식이 다가오는데 우리는 안 갈 테니 이 결혼선물만이라도 예정 씨한테 좀 전해주면 안 되겠어?”실은 주 씨네 집사람들도 참석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다. 하예정이 그들을 초청할 리 없다.박예진은 받지 않은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