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 대표님도 정중하게 인사했다. 그는 전호영을 쳐다보고는 또다시 눈앞의 고현을 보더니 눈가에 고현을 동정하는 눈빛을 머금고 있었다.고현은 임 대표가 만나본 최고의 청년 인재였다. 만약 그에게도 딸이 있다면 그 딸을 고현과 이어주려고 했을 정도였다.하지만 고현이 불행하게도 전호영에게 매달릴 줄은 몰랐다.전호영은 뻔뻔스럽게도 고현이 자신이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말했는데도 전호영은 여전히 고현에게 끈질기게 달라붙었다.고현을 사모하는 여자들도 모두 전호영을 이길 수 없다고 전해 들었다. 모두 하나같이 실패하고 말았다. 주로 그녀들이 전호영의 뻔뻔함이 없었기도 했고 고현이 그녀들에게 어떠한 기회도 주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하여 고현을 사모하는 여자들은 전호영이 이가 갈리도록 미웠지만 그렇다고 또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네, 고 대표님이 퇴근하고 나서 저녁에 같이 밥 먹으려고 기다리고 있어요.”전호영은 임 대표가 그를 어떤 눈빛으로 보든지 전혀 개의치 않았다.사람들은 전호영이 동성애자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들이 모두 고현에게 속았다는 사실을 누구도 몰랐다.“고현 씨, 저는 방해하지 않고 이만 VIP룸에 가서 기다릴게요.”전호영은 자상하게 고현에게 말하고는 옆에 있는 VIP룸으로 걸어갔다.전호영이 자리를 떠난 뒤 고현은 임 대표를 소파에 앉으라고 표시했다.임 대표가 앉은 자리가 마침 전호영이 앉았던 자리였다.전호영이 입고 온 긴 치마와 하이힐이 모두 한 가방 안에 들어있었고, 물론 그 가방도 전호영이 앉았던 자리 옆에 놓여있었다.임 대표님은 그 자리에 앉자마자 바로 그 가방 안에 들어있는 치마와 하이힐을 발견했다.고현은 황급히 그 가방을 들어 탁자 밑에 쑤셔 넣었다.“고 대표님, 이 일은 고 대표님의 개인적인 일이라는 것을 저도 잘 알지만 제가 이 말은 꼭 해드려야겠어요. 저는 고 대표님께서 전 대표님에 대해 너무 관대하다고 생각해요.”“고 대표님은 정상적인 남자이고 동성애자가 아니잖아요. 저는 고 대표님께서 끝까지 거절하여 전 대표님께 어떠
고현과 임 대표가 사업상의 일을 다 이야기했을 때는 이미 저녁 무렵이었다.“임 대표님, 수고하셨어요.”고현은 일어나서 임 대표와 악수했다.임 대표는 웃으면서 악수했다.“수고하셨어요.”“임 대표님, 함께 식사해요. 제가 한턱 낼게요.”고현은 시간을 보더니 임 대표님을 초대해서 같이 식사하려고 했으나 임 대표는 완곡하게 거절했다.임 대표는 미안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고마워요, 전 대표. 다음에 약속 잡죠. 오늘은 저와 저의 아내의 15주년 기념일이라 집으로 돌아가 밥을 먹어야 하거든요.”“암요. 당연히 집으로 돌아가셔서 아내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셔야죠. 다음 기회에 제가 식사 한 번 대접해 드리죠.”고현은 더는 고집하지 않고 직접 임 대표를 대표 사무실 문 앞부터 1층까지 배웅해 드렸다.“전 대표님, 더 이상 배웅하지 않으셔도 돼요. 이만 먼저 가볼게요.”임 대표는 사무실 건물 입구에서 멈춰서서 고현에게 말을 건넸다.고현은 제자리에 서서 임 대표가 회사를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임 대표의 차가 고씨 그룹을 빠져나가는 것을 본 고현은 그제야 비로소 몸을 돌려 들아갔다.“전 대표님.”“전 대표님.”퇴근 시간 때라 다들 밖으로 나갔지만 유독 고현만 안으로 들어갔다.고현을 만난 사람마다 모두 그녀에게 공손한 태도로 안부를 물었다.착각인건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그녀에게 인사할 때 항상 이상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는 것만 같았다.아직도 VIP룸에서 기다리고 있는 전호영을 떠올린 고현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직원들이 그녀를 그런 눈빛으로 바라보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전호영 때문이다.여자로 변장하여 회사로 들어와 고현을 찾으러 왔으니 분명 많은 직원이 알아보았을 테고 따라서 회사 구석구석에 이미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형.”마침 고빈이 내려왔다.회사 안으로 들어가는 누나를 본 고빈은 발걸음을 멈추어 누나를 불렀다.“임 대표님께서 가셨어?”고빈이 물어보았다.고현은 양복 외투를 벗은 동생을 보며 물었
비서는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고현이 돌아온 모습을 보자 비서가 일어서며 그녀를 일깨워주었다.“고 대표님, 전 대표님께서 아직도 VIP룸에 계십니다.”“알겠어요. 오늘 저녁 일정은 취소하고 먼저 퇴근하세요.”“알겠습니다.”고현의 저녁 일정이 취소하라는 말에 비서는 기쁨을 억누를 수 없었다. 고현이 저녁에 약속이 없다는 뜻은 비서가 저녁 내내 쉬면서 여자 친구와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의미였다.전 대표의 비서로서 남 비서는 매일 바쁘게 돌아쳤다. 평소 아침 일찍 나가고 늦게 들어왔기 때문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해 본 지도 꽤 오래되었다.여자친구도 이에 대해 불만이 매우 많았다.비서에게 저녁 일정을 취소하라고 지시한 고현은 VIP룸 입구로 가서 문을 살짝 열어보았다. 전호영은 소파에 앉아 한 손에 차 한 잔을 들고 마시면서 다른 손으로 탁자 위에 놓인 신문을 뒤적거렸다.그의 안색이 매우 평온해 보였고 오래 기다렸다고 귀찮아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누군가 들어오는 것을 눈치챈 전호영은 고개를 들어 보았는데 고현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는 찻잔을 내려놓고 일어나 고현에게 관심하며 물었다.“사업 얘기는 다 끝났어요? 어때요?“고현이 바로 대답했다.“우리 그룹과 임씨 그룹의 협력은 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어요. 오늘 임 대표님께서 오셔서 저와 오후 내내 얘기를 한 결과 그 사업을 끝내 성사시켰어요.”전호영이 기뻐하며 말했다.“축하드려요.”고현도 즐거운 표정으로 인사했다.“고마워요.”고현은 아까 전호영이 보던 신문과 찻잔을 보면서 물었다.“신문 읽었어요?”“네. 신문도 보고도 차도 마시며 사랑하는 여인이 퇴근할 때까지 기다리는 일이 너무 행복한 것 같아요.”고현은 그를 노려보았다.“누가 당신 여자예요!”“고현 씨는 제가 사랑하는 여인이 맞잖아요. 제 말이 틀린 말 했어요?”고현은 할 말을 잃었다.잘못 알아듣고 재빨리 대답했던 모양이다.“퇴근했죠? ”고현의 말문이 막힌 모습을 보니 전호영은 또 자신이 이겼다는
전호영은 야근해야 한다는 고현의 말에 또 마음이 아파 났다. 그는 고현이 힘들어할까 봐 다급하게 다시 말을 건넸다.“그럼 됐어요. 결혼식 당일에 가서 축하해 주면 되죠. 고현 씨가 관성에 며칠 머무를 수 있으면 고현 씨를 모시고 여기저기 놀러 다니려고 했더니만.”“고현 씨가 가는 곳을 저도 따라가면 되죠. 굳이 관성이 아니더라도 강성에서 고현 씨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 돼요.”고현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호영 씨는 종일 아무 일도 안 하세요? 태윤 씨가 당신에게 전씨 그룹의 요식업을 넘겨주었는데, 전씨 그룹의 요식업이 업계에서 밀려나면 어떡해요? 모두 당신 책임이잖아요. 종일 하는 일 없이 빈둥빈둥 놀고 있으면 어떡해요.”전호영이 고현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정신으로 사업을 하면 아마도 업계에서 가장 큰 거물이 될 수도 있었다.전호영은 이미 요식업계의 거물로 되었다.“저의 전씨 그룹과 관련된 모든 분야는 모두 기본적으로 안정되었어요. 게다가 제가 완전히 관여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호텔에 중요한 일이 있으면 저도 처리하러 가거든요.”전호영은 자꾸 웃는 얼굴로 고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고현은 전호영이 웃지 못하게 그의 얼굴을 힘껏 꼬집고 깨물어주고 싶었다.“지금 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아내의 마음을 빼앗는 거예요. 제가 만약 고현 씨 마음을 훔치지 못한다면 아마도 올해 설에 서원 리조트로 돌아갈 수 없을 거예요. 우리 할머니께서는 분명 저를 쫓아내실 거에요.”“고현 씨, 제가 집에서 쫓겨나게 되면 저를 꼭 받아주셔야 해요. 제가 고현 씨 집에서 새해를 보낼 거예요.”전호영은 문득 이 방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지금은 10월이라 새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전호영은 고현이 새해 전에 자신에게 시집오지 않을 것 같다고 추측했고 심지어 약혼조차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만약 할머니가 그를 쫓아낸다면, 집에서 설을 쇠지 못하게 한다면 짐을 싸 들고 고현의 집에서 얹혀사는 것도 괜찮은 생각이라고 여겼다.전호영이 고씨 가문에서 살고 심지어 새해
차 안의 고현이 이윤미를 보더니 운전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윤미 씨, 무슨 일이세요? 무슨 문제라도 생긴 거에요?”고현은 차 창문을 내리누르면서 이윤미에게 물었다.이윤미는 들려오는 소리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더니 고현인 것을 확인하고 걸어가며 대답했다.“차가 갑자기 고장이 났는데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어요.”“제 운전 기사님께 살펴달라고 부탁해볼게요.”고현은 운전 기사에게 차에서 내려 이윤미 차의 고장 원인을 검사하라고 부탁했다.고현이 고용한 운전기사는 성숙하고 침착할 뿐만 아니라 운전 기술도 좋고 차를 수리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다.고현이 차에서 내리자 그녀의 경호원들도 자연스레 차에서 내렸다.운전기사가 이윤미의 차를 점검하더니 이윤미에게 말을 건넸다.“윤미 씨, 차 수리부에 연락해서 견인차를 불러 달라고 부탁하세요. 제가 차를 수리해 드릴 수 있지만 제가 가지고 있는 도구가 부족해서 수리해 드릴 수 없어요.”“괜찮아요. 제가 이미 수리부 사장님께 연락했어요.”이윤미가 고현을 만났을 때 이윤미는 이미 수리부 사람들에게 연락했다.운전기사는 이윤미를 보며 할 말이 있는듯했지만 여전히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고현과 이윤미도 운전기사의 표정을 보아냈다. 고현은 진지하게 말했다.“할 말 있으면 하세요.”“도련님, 윤미 씨 차에 누군가가 손을 댄 것 같아요.”고현의 눈빛은 이내 어두워졌지만 이윤미의 표정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아마도 어느 정도 짐작한 모양이다.운전기사가 신중하게 말했다.“상대방이 윤미 씨의 차가 가던 길을 못 가게 하려고 한 것 같은데 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다른 사람의 차에 손을 대는 이유는 바로 상대방이 교통사고를 당하여 의외사고로 위장해 죽은 것으로 보이기 위해서였다.이윤미의 이런 경우는 보기 극히 드물었다.진범이 이윤미의 목숨을 원하지 않고 단지 혼내주고 싶었을 뿐일까?고현은 이윤미를 바라보았고 이윤미는 먼저 운전기사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그리고 고현을 향해 말했다.“저
이윤미가 호텔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고현은 기사에게 말했다.“우리 집으로 가죠.”“알겠습니다.”고현은 뒷좌석에 기대어 이윤미가 방금 겪은 일을 생각했다.이윤미를 음해할 수 있는 사람은 묻지 않아도 그녀를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이씨 가문에서 진정으로 이윤미를 가주 자리에 앉히는 것을 동의하는 사람은 아마 이 가주와 그녀의 방계 사람들뿐일 것이다.옛날 이씨 가문의 후계자는 이윤정이었다. 하지만 이윤정은 이씨 가문의 진정한 딸이 아니라는 것을 발견한 이상 이윤정을 가주 자리에 앉히지 못할 것이다.이윤미가 만약 이 무거운 짐을 짊어지지 못한다면 방계 출신의 딸들도 욕심을 부리기 시작할 게 뻔했다.고현은 진범이 이윤미의 가족이라고 추측했다. 친척들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컸지만 그 일을 막지도 않았을 것이다.이윤미가 진정한 이씨 가문의 딸이지만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기에 어려서부터 집안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못했다.하여 이씨 가문의 친척들은 이윤미가 가주 자리에 오르면 이 가주보다 훨씬 더 독하게 일을 처리할까 봐 걱정했다.이윤미가 그들과 그리 깊은 친분이 없었으니 어쩔 수는 일이었다.이윤정이 가주 자리에 오를 수 없고 이윤미가 무능력해야만 그들에게도 기회가 생길 것이 아닌가!부잣집의 내부 경쟁은 항상 잔인했다.이 가주가 주인 자리에 오르기 위해 친자매도 죽일 수 있었던 걸 생각해 보아도 알 수 있을 것이다.명리를 위해서라면 그들은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싸움과 피바람으로 몰아치는 이씨 가문과는 달리 전씨 가문은 그와 정반대였다.전씨 가문 늘 화목한 환경을 꾸리고 있었기 때문에 형제, 조카들은 명예와 이익을 위해 싸우지 않았다. 그 집안은 교육을 매우 중시했다.모든 아이가 인재로 자랐기 때문에 각자의 취향도 달랐다. 그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좋아하는 업계에서 발전하고 있었다.그들은 사업에서 성공했기 때문에 가문의 회사를 이어받지 않아도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었다.고현도 문득 자신의 부모님이 왜
이 가주가 이윤미에게 사고 상황을 만들어 주어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쌓게 하고 싶어 한다 해도 이윤미의 목숨을 가지고 장난을 치지 않을 것이다.혹여라도 차가 고장이 났을 때 다른 차량에 의해 추돌당해 차 사고라고 나게 된다면 이윤미가 다치지 않을 것이라는 장담을 하기 어려웠다.겉으로는 이 가주가 여전히 이윤정을 편애하고 친딸을 개의치 않아 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사실 이 가주는 핏줄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다.이 가주는 친딸을 어렵게 되찾았기에 아무리 모질어도 이윤미의 목숨으로 장난을 치지 않을 것이다.“그건 윤미 씨 일이에요. 우리는 구경이나 하면 되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만약 전호영이 지나가다가 이윤미를 만나게 된다면 나서서 도와주지 않을 것이다.전호영은 늘 자신의 형수 편에 서 있었다.이윤미의 친엄마가 하예정의 외할머니를 죽인 범인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고현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그녀도 전호영의 입장을 잘 알고 있었다.“고빈은 돌아왔어요?”전호영이 대답했다.“아니요. 고 아저씨와 아주머니께서도 집에 안 계세요. 오늘 저녁은 우리 둘만 먹어야 할 것 같아요.”고 아저씨와 고 아주머니가 피할 줄 알았으면 일찍 와서 낭만적인 저녁을 준비하는 건데.고현이 미간을 찌푸렸다.고현은 분명 집에 미리 전화해서 부모님께 돌아와 밥을 먹겠다고 알려주었고 부모님도 알았다고 대답하셨는데도 저녁에 밖으로 나가신 것이다.그녀와 전호영이 단둘이 있을 기회를 주려는 것이 틀림없었다.집 안에는 하인들만 있었다.두 사람이 집안에 들어서자 곧 하인들도 물러갔다.식탁에는 고현이 좋아하는 요리가 많이 차려져 있었다.전호영이 웃었다.“우리 먼저 밥 먹어요. 다 먹고 저랑 영화 보러 갈래요?”“영화를 본 적이 없어요. 시간이 없어서.”“그럼 오늘 밤에 저랑 나가서 데이트 제대로 합시다.”전호영은 말하면서 또 고현의 손을 잡으려 했다.전호영은 고현이 휴게실에서 그에게 여성 옷을 갈아입어 보인 것으로 보면 고현도 분명 그에게 마음의 문을 조금
“좋아요. 오늘 밤 제가 고현 씨가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고현이 전호영과 데이트하는 것을 동의하기만 하면 되었다.고현은 전호영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당신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전호영은 더 크게 웃었다.전호영의 결혼 상대는 고현이고 또한 고현은 차분한 성격이라 그녀가 전호영과 달콤한 말을 하는 사치는 바라지도 않았다.고현은 달콤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전호영에게는 그 말이 사랑의 말로 들렸다.달콤했다.밥을 먹을 때 전호영은 고현에게 세심하게 배려하다 못해 먹여줄 기세였다.전호영이 짚어준, 눈앞의 산처럼 쌓아 올린 요리를 바라보며 고현이 말했다.“저에게도 손이 있어요. 저 스스로 음식을 짚어 먹을 수 있거든요. 보세요. 제 그릇에 호영 씨가 짚어준 요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밑에 있는 밥을 먹을 수 없잖아요.”고현이 말하자 전호영은 바로 가서 밥 한 그릇을 따로 떠다 주었다.그리고 국 한 그릇도 떠주었다.고현도 공용 젓가락을 들고 전호영 그릇에 요리들을 가득 짚어주었다.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릇에 수북이 쌓인 요리를 먹는 고현을 바라보았다.“밥이나 좀 드세요. 저만 보지 말고.”“저는 고현 씨를 보는 게 더 좋아요. 고현 씨가 저의 그릇 안의 요리인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에요.”고현이 이내 말을 이었다.“저 말고도 또 좋아하는 요리들이 많은가 봐요??”“없어요. 절대로 없어요. 저는 당신이 가장 좋아요. 다른 요리들은 다 안 좋아해요. 우리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혼자 먹는 것을 좋아하거든요.”“혼자 먹는 것과 한가지 요리만 먹는 것은 달라요.”“봐봐요. 제가 그렇게 많은 반찬을 짚어주었는데 호영 씨는 다 좋아하잖아요.”전호영은 멈칫했다.그는 음식을 집어 먹던 동작을 잠깐 멈추어 먹어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전호영의 고민하는 모습을 본 고현은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제가 가장 맛있는 요리라고 말하면 되잖아요. 얼른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