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요. 오늘 밤 제가 고현 씨가 즐겁게 보낼 수 있도록 준비할게요.”고현이 전호영과 데이트하는 것을 동의하기만 하면 되었다.고현은 전호영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건넸다.“호영 씨와 함께 있으면 즐거워요. 당신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전호영은 더 크게 웃었다.전호영의 결혼 상대는 고현이고 또한 고현은 차분한 성격이라 그녀가 전호영과 달콤한 말을 하는 사치는 바라지도 않았다.고현은 달콤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전호영에게는 그 말이 사랑의 말로 들렸다.달콤했다.밥을 먹을 때 전호영은 고현에게 세심하게 배려하다 못해 먹여줄 기세였다.전호영이 짚어준, 눈앞의 산처럼 쌓아 올린 요리를 바라보며 고현이 말했다.“저에게도 손이 있어요. 저 스스로 음식을 짚어 먹을 수 있거든요. 보세요. 제 그릇에 호영 씨가 짚어준 요리들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밑에 있는 밥을 먹을 수 없잖아요.”고현이 말하자 전호영은 바로 가서 밥 한 그릇을 따로 떠다 주었다.그리고 국 한 그릇도 떠주었다.고현도 공용 젓가락을 들고 전호영 그릇에 요리들을 가득 짚어주었다.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릇에 수북이 쌓인 요리를 먹는 고현을 바라보았다.“밥이나 좀 드세요. 저만 보지 말고.”“저는 고현 씨를 보는 게 더 좋아요. 고현 씨가 저의 그릇 안의 요리인걸요. 제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에요.”고현이 이내 말을 이었다.“저 말고도 또 좋아하는 요리들이 많은가 봐요??”“없어요. 절대로 없어요. 저는 당신이 가장 좋아요. 다른 요리들은 다 안 좋아해요. 우리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혼자 먹는 것을 좋아하거든요.”“혼자 먹는 것과 한가지 요리만 먹는 것은 달라요.”“봐봐요. 제가 그렇게 많은 반찬을 짚어주었는데 호영 씨는 다 좋아하잖아요.”전호영은 멈칫했다.그는 음식을 집어 먹던 동작을 잠깐 멈추어 먹어야 할지 말지 망설였다.전호영의 고민하는 모습을 본 고현은 결국 웃음이 터져버렸다.“제가 가장 맛있는 요리라고 말하면 되잖아요. 얼른 드세요.”
“아파요. 하지만 제가 이겼으니 고현 씨도 저와 내기를 해야 해요.”고현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전호영을 바라보았다.“그러죠. 저도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는 편이에요. 약속하죠. 저도 인생을 내걸게요.”고현의 약속을 받아낸 전호영은 바로 일어나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화장실 좀 다녀올게요.”그는 배를 움켜쥐고 서둘러 화장실로 뛰어갔다.고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음이 터져 나왔다.하지만 전호영이 그녀에게 진심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한참 후에야 전호영이 화장실에서 나왔다.“병원으로 가볼까요?”고현은 걱정스레 물었다.전호영은 허리를 쭉 펴면서 말했다.“아니요. 괜찮아요. 우리 나가서 소화도 좀 시킬 겸 산책하러 가요.”전호영은 여태껏 자라면서 이렇게 많이 먹어본 적 없었다.배가 터지도록 너무 많이 먹었다.다행히 이겼다.고현의 한평생을 이겼다.고현이 평생을 걸고 전호영과 내기를 한다는 의미는 그도 평생을 내걸어 고현과 내기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고현은 소파에서 일어나 부드럽게 말했다.“가요. 산책하러 나가요.”두 사람은 밖으로 나왔다.고현은 전호영을 데리고 자기 집 정원에서 산책했다. 다행히 그녀의 정원이 충분히 컸기에 두 바퀴를 걸어 다닌 전호영은 그제야 속이 훨씬 편안해졌다.“아무리 이기고 싶어도 배부르게 먹으면 안 되죠. 아까 화장실 가기 전에 식은땀까지 흘렸잖아요.”“우리 평생의 행복을 위한 일인데 제가 목숨 정도는 내걸어야죠.”전호영은 고현의 손을 잡았다.고현은 전호영의 손을 뿌리치지 않고 그가 자신의 손을 잡도록 내버려 두었다.두 사람이 손을 잡고 정원을 산책하는 장면을 본 집사는 가슴이 몹시 아파 났다. 슬기롭고 총명하신 큰 도련님이 결국 이대로 전호영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하지만 고진호 부부는 전호영을 매우 마음에 들어 했고 심지어 전호영을 사위처럼 생각했다.며느리로 대했을 수도 있었다. 남자 며느리로.집사는 큰 도련님이 전호영에 의해 성향이 바뀐 사실에 대해 매우 비통했다. 하지만 겉으로는 아무 표현
고현이 바로 대답했다.“호영 씨도 할머니 덕분에 알았잖아요. 할머니께서 조사하시지 못하셨더라만 호영 씨도 아마 못 알아낼걸요.”전호영은 여전히 웃음만 지었다.“맞는 말씀입니다. 저도 우리 할머니 덕을 본 셈이죠. 할머니가 아니었다면 저도 고현 씨가 여자일 줄 몰랐을 것이고 더더욱 고현 씨에게 구애하지 않았을 거예요.”“처음에 할머니께서 고현 씨 사진을 저에게 주시고 고현 씨에게 구애하시라고 하셨을 때 저는 할머니가 저에게 불만이 있는 줄 알았어요. 남자를 선택해주셔서 남자를 아내로 맞이하라는 줄로 알았다니까요.”“저를 동성애자로 만들려고 하는 줄 알았어요. 할머니께서 고현 씨가 여자라고 하셨는데 저는 전혀 믿기지 않았어요. 사진에는 분명 멋진 남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니까요.”“그래서 처음에는 거부했어요. 고현 씨에게 구애하기고 싶지 않았고 사람들이 제가 동성애자라고 말하는 것도 두려웠거든요. ”“저는 처음에 고현 씨 여성 신분을 폭로하고 싶었지만 고현 씨가 너무 완벽하게 분장한 바람에 아무런 허점도 찾지 못했어요. 우리 할머니께서도 고현 씨의 여성 신분을 알아내시는 데 엄청 긴 시간이 걸렸을 거예요.”고현은 그제야 이해된다는 듯 말을 건넸다.“어쩐지, 호영 씨가 한동안 저에게 시비 걸면서 제가 여자라는 것을 의심하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다가도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교제한 횟수도 적었으니까. 그 뒤로는요?“고현은 궁금해하며 물었다.전호영에게 흔들리기 시작했고 인생을 걸고 전호영과 함께 하겠다고 결심한 고현은 그제야 전호영이 어떻게 천천히 자신을 좋아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고현을 만나 본 사람마다 어김없이 그녀가 남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남자라면 고현을 좋아할 수 없었다.진정으로 동성애자인 남자라 해도, 고현이 마음에 들었다 해도 감히 그녀에게 애정 공세를 펼치지 못했다.전호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제 연애 상담사들이 직접 고현 씨에게 구애하라고 조언해주셨거든요.”“연애 상담사요?”“저의 둘째 형과
고현은 이해하며 말했다.“어르신들은 다 그러세요. 우리 어머니와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에요. 특히 저를 가장 근심하시거든요.”“우리 부모님께서는 호영 씨를 보면 황금을 보는 것보다 더 기뻐하세요. 제 인생의 가장 큰 일이 드디어 싹이 트는 것 같으시니까요.”전호영은 의기양양하게 대답했다.“그건 제가 훌륭해서 그런 거에요.”고현은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네네네. 엄청나게 훌륭하시죠. 그럼요.”두 사람은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내 고성 호텔에 도착했다.전호영은 지난번처럼 고현과 함께 사람들 몰래 비밀 통로로 맨 위층에 있는 수영장으로 올라갔다.고현은 전호영이 자신의 마음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마음의 문을 열어주었고 한편 이윤미는 마침내 그 사업을 성사시켰다.이윤미는 고객을 호텔 밖으로 배웅했고 고객이 차를 타고 떠나는 것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윤미는 호텔 입구에 잠시 서 있다가 방윤림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데리러 오라고 말했다.그녀의 차는 차 수리부에서 수리 중이었다.“밖에 서 있지 마시고 호텔 안에서 기다리세요. 10월인데도 여전히 덥네요.”방윤림은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알았어요. 호텔 1층 휴게실에서 기다릴게요.”방윤림은 대답하고는 곧 전화를 끊었다.방윤림은 이윤미가 이씨 가문으로 돌아온 뒤 이 가주가 그녀에게 안배해 준 생활 비서였다.방윤림은 성숙하고 침착했으며 일 처리가 깔끔했다. 이윤미는 그를 곁에 두고 싶지 않았으나 방윤림이 자신의 능력을 그녀에게 증명한 후에야 이윤미는 비로소 그를 계속 곁에 두고 일을 시켰다.그렇게 일을 하다 보니 지금은 너무 익숙해졌다.그리고 방윤림은 이윤미의 밑에서 일 한 뒤로 그녀에게 자신의 태도를 명확히 밝혔다. 더는 이 가주에 복종하지 않고 그가 살아 있는 한 오직 이윤미에게만 충성할 것이라고 말했다.방윤림이 했던 일도 이윤미는 잘 알고 있었다. 1년 넘게 밤낮으로 함께 일 하면서 그녀는 방윤림이 그 약속을 반드시 지켜내리라고 믿었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처음
방윤림은 성큼성큼 호텔로 걸어 들어갔다.방윤림은 들어서자마자 호텔 일 층을 한 번 둘러보더니 이내 이윤미를 찾았다.그는 발걸음을 돌려 성큼성큼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방 비서.”이윤미는 방윤림을 보더니 휴대전화를 접고 소파에서 일어섰다.“차에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전화로 알려주시면 얼마나 좋아요. 제가 새 차로 안배해 드릴 텐데.”방윤림은 이윤미의 차가 고장 났는데도 자신에게 연락하지 않았다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윤미도 조용히 말을 이었다.“차에 오르고 얘기해요.”방윤림은 경계하며 주위를 둘러본 뒤 이윤미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호텔을 떠났다.몇 분 뒤 방윤림은 이윤미를 싣고 고성 호텔을 빠져나왔다.“누군가가 이윤미 씨 차에 손을 댄 거 아니에요?”차에서 말하면 누구도 듣지 못해서 시름 놓을 수 있다. 이 차는 방윤림이 이윤미를 태우기 위해 특별히 가져온 차였다.매번 차를 사용하기 전에 방윤림은 차를 여러 번 검사하곤 했다. 누군가가 차에 손대지 않았는지, 녹음 펜 같은 것이 없는지 확인한 후에야 사용했다.그리고 이 차는 방탄 기능도 있어서 매우 안전했다.이윤미가 대답했다.“맞아요. 차가 고장 났을 때 마침 제가 고 대표님을 만났어요. 고 대표님의 운전기사가 차를 수리할 줄 아셔서 봐주셨거든요. 제 차를 누군가가 고의로 고장 나게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방 비서, 누가 꾸민 일인지 한 번 알아봐 주세요.”“그리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는지도 잘 알아봐 주세요. 제 차가 고장 난 걸 알면서도 말하지 않은 사람도 제 차에 직접 손을 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저에게 의견이 많은 사람이니까.”방윤림은 차를 몰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잘 알아볼게요. 참, 고 대표님을 만났다고요?”방윤림은 고현에 대해 경계심이 있었다.“네, 마침 퇴근하는 길에 고 대표님을 만났거든요. 저를 도와 직접 호텔까지 데려다주셨어요. 아니면 제가 늦을 수도 있어요.”“고객님이 제가 시간관념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저에 대한 인상도
이 일은 처리하기 매우 어려웠다.방윤림은 이윤미의 주변에서 가장 유능한 사람이었기에 이윤미는 그에게 맡길 수밖에 없었다.방윤림이 길러낸 심복들은 하나같이 다 능력이 강했다.방윤림이 미안해하며 대답했다.“제가 쓸모없어서 지금까지 이윤미 씨께서 만족할 만한 진실을 찾지 못했어요.”“방 비서가 쓸모없는 것이 아니에요. 이 일은 수십 년이 지났기에 증거가 있어도 우리 어머니께서 깨끗하게 지우셨을 거예요. 그 당시 이 일을 아는 사람도 아마 다 죽었을걸요. 제대로 조사해서 증거를 얻기에는 정말 쉽지 않을 거예요.”“관성 쪽에도 증거가 없었어요. 그쪽 세력이 더 강하고 인맥이 더 많았거든요.”그녀의 사촌 언니도 관성에서 살고 있었다.“관성 쪽에서는 오랫동안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어요?”방윤림은 관성 쪽이 너무 조용해서 이상하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태윤 씨와 예정 씨의 결혼식을 앞두기도 했고 하예진의 새 가게가 막 오픈하고 있었던 터라 이 시점에서 사촌 언니가 모두의 기분을 깨뜨리고 싶지 않으셔서 말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이윤미와 이경혜의 혈연 감정 결과는 이미 오래전에 나왔다.하지만 이경혜는 이윤미를 알려주지 않았다.이윤미는 그들이 이종사촌 동생이라고 추측했다.방윤림이 말을 이었다.“그럴 수도 있어요. 이윤미 씨는 전 대표님의 결혼식에 갈 겁니까?”“전씨 가문이 우리 이씨 가문에 청첩장을 보내지 않았어요.”두 집안은 아무런 친분도 없었다.전씨 가문이 초대장을 보내지 않았는데 이윤미가 가면, 친어머니가 그녀를 데리고 가지 않는 한 갈등이 생기기 쉬웠다.“예정 씨와 예진 씨가 잘 지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저도 마음이 좀 편하네요.”전임 이 가주가 정말로 이윤미의 친어머니에게 살해되었다면 하예정 자매의 어머니는 이 가주의 잔인함과 악랄함 때문에 비참한 최후를 맞았기에 하예정 자매에게 잘못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이경혜도 잘 지내고 하예정 자매도 잘 지내야 이윤미도 죄책감이 덜할 것이다
이윤미의 말을 들은 방윤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는 지금 이윤미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지만 이윤미의 사적인 일에 너무 간섭하면 안 되었다.어쨌든 이윤미가 고현을 사모하지만 않으면 되였다.방윤림은 이윤미를 태우고 이씨 가문의 큰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씨 가문의 집사가 집 안에서 나오더니 이윤미가 돌아온 것을 보고 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돌아오셨어요.”“네.”이윤미는 차 문을 열어 내려가면서 대답했다.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어머니께서는 집으로 돌아오셨어요?”“사모님께서는 저녁 약속이 없으셔서 퇴근하고 바로 돌아오셨어요.”집사는 이윤미를 따라가면서 이윤미의 질문에 무척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하지만 이윤미는 집사가 연기를 가장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가주가 집에 있을 때 집사의 표현은 매우 좋았다.하지만 뒤에서는 이윤정의 편에 서 있었다.이윤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막 집안에 이르자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온 사람이 이윤미인 것을 보자 웃음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고 그들의 웃고 있었던 표정도 이내 굳어졌다.하지만 이윤미의 안색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집안에는 이윤미의 가족 말고도 그녀가 전에 본 적이 없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 남자는 방자한 눈빛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보더니 마침내 꽤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이윤미는 속으로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이내 눈치챘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가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윤미가 돌아왔구나. 네 엄마가 네가 오늘 밤에 사업 얘기하러 간다고 하길래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줄 알았어.”말을 꺼낸 사람은 정군호였다.정군호는 친딸 이윤미를 줄곧 예뻐하지 않았다. 평소 이윤미를 보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지만 오늘 밤은 웬일인지 상냥한 얼굴로 맞이했다.이윤미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사업을 성사시키고 나서 바로 돌아왔어요. 아빠는 제가 한밤중까지 일
강명훈은 어색하지도 않은 듯 이내 손을 거두어들였다.그리고는 태연자약하게 제자리에 앉았지만 시선은 계속 이윤미만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이윤정이 웃으며 말했다.“언니, 명훈 씨는 아버지께서 언니에게 골라주신 분이니 명훈 씨와 잘 지내야 해. 강씨 가문이 재력이 막강한 재벌가는 아니지만 집안 형편도 꽤 좋은 집안이라 적어도 재산이 수억은 될걸.”“하지만 명훈 씨 부모님은 아들이 데릴사위가 되는 것에 동의하셔. 데릴사위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아버지께서 가장 먼저 생각하시는 사람이 바로 언니인걸. 아버지가 언니한테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이제 알겠지?”이윤정은 고소해 하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이윤정이 고현에게 구애하는 것을 지지했다. 비록 그녀는 여전히 고현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그녀가 재벌가로 시집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하지만 아버지가 이윤미에게 찾아준 남자는 재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가문의 도련님이었다.수억 원을 가진 가문은 보통 사람치고는 돈이 많은 셈이었다.하지만 이씨 가문의 부자들 눈에는 강씨 가문이 가난한 집안으로 보였다.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이윤정의 기분은 훨씬 좋아졌다.얼마 전 양어머니의 비난을 받고 불쾌했던 것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역시 양부모만이 이윤정에게 가장 친절했다.하긴, 이윤정은 이씨 가문에서 자랐고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받은 것도 후계자의 교육이었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온 지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이윤정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조윤도 이윤정의 말에 맞장구치며 강명훈을 칭찬했다.“윤미야, 명훈 씨는 좋은 남자야. 비록 강씨 가문이 우리 이씨 가문보다 못하지만 너는 미래의 이씨 가문의 가주로서 데릴사위를 맞을 수밖에 없어.”“명훈 씨는 너와 참 잘 어울리는걸. 나도 네가 고현 씨와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고현 씨는 네가 탐낼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분은 너무 훌륭하셔서 데릴사위로 너와 결혼하지 않으실걸.”“명훈 씨가 말씀하셨어. 네가
“제가 만약 아저씨와 결혼하게 되면 나가서 살 거예요. 시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것도 좋아요.”윤미연은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만약 지훈 씨의 어머님이 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시댁과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도 너의 결점을 들추어내고 너희 부부의 감정을 깨뜨리려고 할 거야. 시어머니는 지훈 씨의 친어머니기 때문에 지훈 씨가 친어머니와 인연을 끊을 수는 없잖아?”정윤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엄마, 아저씨의 마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씀이세요? 원래는 잘 정리해 놓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혼라스러워져요. 혼자 있는 것도 좋긴 해요. 그렇게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제 성격도 심술궂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못해요. 다들 재벌 가문의 시어머니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하던데. 예정 씨와 효진 씨네 시어머니처럼 사리에 밝은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 하던데. 제가 듣기로는 전태윤 씨와 예정 씨가 금방 함께 있었을 때 시어머니는 사실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예정 씨 시어머니는 상처를 주거나 부부의 관계를 틀어놓는 일을 한 적이 없대요. 오히려 아들 부부의 일이 남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공개적으로 감싸주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으셨대요. 예정 씨 시어머니는 우아하고 고상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며느리를 위해 상대방을 욕하기까지 하셨대요. 예정 씨와 그녀의 시어머니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시부모님을 특히 존경하고 있거든요. 저는 현실 속에서 그런 시어머니는 드물다고 생각해요.”윤미연은 딸을 나무랐다.“넌 아직 지훈 씨의 부모님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꼭 한번 만나 뵙고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그런데 아저씨랑 연애하고 정이 이미 깊어졌을 때 그분들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면 저는 엄청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친구로
윤미연은 정윤하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 했다.“샤브샤브를 먹기 때문에 별로 준비할 것도 없어. 밥은 진작 했지. 너와 지훈 씨가 잘 지내는 것 같던데. 그분도 너에게 진심인 것 같으니 며칠 동안 잘 생각해 보고 답을 주렴.”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아저씨가 일시적인 호기심 때문에 갑자기 저에게 고백한 건 아닐까요? 아저씨 집에 돈도 많고 부잣집 도련님인데 만나본 미녀들도 수두룩할 거 아니에요. 저의 미모로 아저씨를 반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냥 놀고 싶은 건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은 저에게도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 후에는 마음이 변해서 바람을 피울 수도 있는데 바람피우거나 밖에서 내연녀랑 가정을 이룬다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때 가서 제가 아저씨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관성에서 엄마의 도움도 받지 못하면 어떡하죠?”윤미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해 주었다.“글쎄... 하지만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서로 잘 가꾸어야 하는 법이야. 너희 두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잘 가꾸어 나가면 그런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다만 그 집안 부모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어.”정씨 가문은 연성에서도 이름이 있는 가문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합 도장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수조 원의 재벌가는 아니지만 겨우 수백억 원을 넘는 자산 정도는 갖고 있다.소씨 가문과 비하면 너무 많이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만약 소지훈의 부모님이 정씨 가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관성에 갔을 때 지훈 씨 부모님을 본 적이 있어? 너에 대한 태도는 어땠어? 태도가 좋고 잘 웃으신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을 텐데. 차갑거나 공손한 태도로 임한다면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만약 그의 부모님이 싫어하신다면 우리는 단념하자. 아빠 엄마가 널 평생 책임질 수 있으니까. 네가 그 가문으로 가서 괴롭힘당하는 꼴을 우린 못 봐.”윤미연은 평소에 딸을 욕할 때 몇 번이고 그녀의 친딸이 아니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정윤하를 괴
정윤하의 얼굴은 노을처럼 빨개졌다.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아저씨가 도장으로 바비큐를 가져왔거든요. 엄마, 제가 먹자고 한 것이 아니라 저희 학생들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저씨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바비큐를 사다 준 거예요. 제가 바비큐를 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친구 사이가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서 저를 사랑한다고 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거 있죠. 참, 그리고 저에게 꽃다발도 선물해줬어요. 그 꽃을 받으니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길래 꽃 떡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어요.”윤미연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부릅뜨고 딸을 노려보았다.그 모습을 본 정윤하는 점점 작은 소리로 무고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아저씨가 저에게 장미꽃을 선물했길래 그렇게 많은 장미꽃 앞에서는 장미꽃 떡만 생각났다니까요. 무슨 심정이냐며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한 것뿐이에요.”윤미연은 정윤하의 이마를 쿡쿡 찌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왜 이렇게 멍청해? 종일 먹을 생각만 하다니. 네가 바비큐를 좋아하니까 지훈 씨가 그렇게 많은 바비큐를 포장해 간 거 아니야? 날씨가 춥다고 바비큐를 먹으면 소화가 잘될 줄 알았어? 내가 이따가 차 한 잔 끓여 줄게.”“엄마, 괜찮아요. 아저씨가 모두에게 보이차도 사줬어요. 보이차도 소화가 잘되는걸요. 학생들도 바비큐를 먹는 데 익숙해져서 소화도 잘될걸요.”윤미연은 그제야 시름 놓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보이차를 사줄 줄도 알고 역시 자상하구나.”윤미연은 말을 마친 후 정윤하를 노려보더니 한참 뒤에야 정윤하에게 물었다.“지훈 씨가 갑자기 고백하는 바람에 이렇게 일찍 집으로 달려온 거야?”정윤하는 덤벙대며 줄곧 소지훈을 형제로 대했는데 갑자기 고백을 받고 놀란 것도 당연한 일이다..“거절한 건 아니지?”윤미연은 긴장하며 물었다.“당분간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바로 거절하지는 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해. 너도 이제 스물네다섯 살이나 되었는데, 너를
“지훈 씨가 회사 대표는 맞지만 신분이 단순하지 않을 거야. 분명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우리에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걸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거요.”정윤하가 소지훈의 편을 들어주었다.윤미연은 또 말을 꺼냈다.“잘 생각해 봐. 네가 지훈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싸울 줄 모르는 것처럼 하지 않았어? 네가 도와준 뒤로 은인이라고 떠들면서 너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무척 잘해줬잖아. 엄마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지훈 씨가 처음부터 너를 겨냥하고 너에게 접근한 것 같아. 작전을 세워서 너를 지훈 씨의 은인으로 만들면 당당하게 너에게 접근하면서 잘해줘도 네가 의심하지 않잖아. 어쩌면 네가 지훈 씨를 구해주던 날의 일도 지훈 씨가 꾸민 일일지도 몰라. 지금 관성의 환경이 얼마나 안전한데 건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거든. 관성의 경찰들이 그들을 나와서 행패 부리게 내버려둘 리가 있겠어?”정윤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엄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셔서 생각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할 게 있다고. 우리 집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저도 우리 도장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일 뿐인데. 저의 전 재산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저씨가 하루에 버는 돈보다도 적을 텐데. 저를 겨냥한 건 아닐 거예요. 게다가 아저씨를 도와준 그날 밤은 확실히 제가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맞아요. 서로 초면인데 이유 없이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하게요? 아저씨는 아주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남의 미움을 사서 복수 당할 수도 있죠. 누군가가 건달들을 시켜 아저씨를 해치려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정윤하는 소지훈이 그녀를 위해 이런 일들을 꾸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만약 정윤하의 집이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소지훈이 무언가 꾸며도 믿을 법도 하다.그러나 그녀는 겨우 200만 정도의 월급쟁이에 집에 재산이 많다고 해
결국, 정윤하는 설탕 생강차가 담긴 잔을 들고 방안의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윤하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윤미연은 정윤하의 뒤를 따라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관심 있게 물었다.“아니요.”정윤하는 윤미연에게 들킬까 봐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생강차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너무 매워서 혀를 내둘렀다.“엄마, 집에 있는 생강을 다 넣었어요? 너무 매워요. 아! 너무 맵네요. 맛도 없고 마시고 싶지 않아요.”“네 생리통 주기가 이상해서 그래. 생강차 좀 마시고 추위를 좀 쫓아내.”정윤하는 그제야 사실대로 말했다.“엄마, 사실 제가 거짓말한 거에요. 저는 지금 생리 기간이 아녜요.”“거짓말이라고? 이 계집애! 건강 문제로 어떻게 엄마를 속일 수 있어? 엄마는 너에게 몸조리 좀 시키려고 한약까지 지어줘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어린 나이에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생리 주기가 이상하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몸조리를 잘해야 앞으로 배 속에 아기가 잘 들어서지. 여자들은 생리 주기를 잘 유의해야 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바로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니까.”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내가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으로 보여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일찍 돌아오면 엄마가 제가 게으르다고 혼낼까 봐, 아빠한테 제 월급을 깎으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거짓말로 엄마를 속인 거예요.”다행히 윤미연의 행동이 빠르지 않았다.만약 정말로 정윤하에게 이것저것 사주면서 몸조리를 시키고 심지어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야 아까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 윤미연은 아마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도 있었다.윤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네가 뻔뻔한 사람이 아니지. 부끄러움 탈 애가 아니야. 그럼 뭔데?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봐. 괜찮아. 참, 오늘 지훈 씨는 아직 안 왔지? 평소 이 시간이면 집에 도착했을 텐데.”정윤하는 입을 오므리다가 말을 꺼냈다.“엄마, 아저씨는 회사 대표라서 바빠. 저녁에 약속 잡혔을지도 몰라. 자꾸 걱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