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의 말을 들은 방윤림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그는 지금 이윤미의 신임을 두텁게 받고 있었지만 이윤미의 사적인 일에 너무 간섭하면 안 되었다.어쨌든 이윤미가 고현을 사모하지만 않으면 되였다.방윤림은 이윤미를 태우고 이씨 가문의 큰 저택으로 돌아갔다. 이씨 가문의 집사가 집 안에서 나오더니 이윤미가 돌아온 것을 보고 웃음을 지으며 맞이했다.“돌아오셨어요.”“네.”이윤미는 차 문을 열어 내려가면서 대답했다.그녀는 발걸음을 옮겨 집 안으로 들어가면서 물었다.“어머니께서는 집으로 돌아오셨어요?”“사모님께서는 저녁 약속이 없으셔서 퇴근하고 바로 돌아오셨어요.”집사는 이윤미를 따라가면서 이윤미의 질문에 무척 공손한 태도로 대답했다.하지만 이윤미는 집사가 연기를 가장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이 가주가 집에 있을 때 집사의 표현은 매우 좋았다.하지만 뒤에서는 이윤정의 편에 서 있었다.이윤미는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집 안으로 들어갔다.막 집안에 이르자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들어온 사람이 이윤미인 것을 보자 웃음소리가 갑자기 뚝 그쳤고 그들의 웃고 있었던 표정도 이내 굳어졌다.하지만 이윤미의 안색은 여전히 태연자약했다.집안에는 이윤미의 가족 말고도 그녀가 전에 본 적이 없는 낯선 남자가 앉아 있었다.그 남자는 방자한 눈빛으로 그녀의 몸을 훑어보더니 마침내 꽤 만족한 모습을 보였다.이윤미는 속으로 무슨 일이 생겼는지를 이내 눈치챘다.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다가가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다.“윤미가 돌아왔구나. 네 엄마가 네가 오늘 밤에 사업 얘기하러 간다고 하길래 한밤중이 되어서야 돌아오는 줄 알았어.”말을 꺼낸 사람은 정군호였다.정군호는 친딸 이윤미를 줄곧 예뻐하지 않았다. 평소 이윤미를 보면 별로 반가워하지 않는 태도를 보였지만 오늘 밤은 웬일인지 상냥한 얼굴로 맞이했다.이윤미는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나서 자리를 찾아 앉았다.“사업을 성사시키고 나서 바로 돌아왔어요. 아빠는 제가 한밤중까지 일
강명훈은 어색하지도 않은 듯 이내 손을 거두어들였다.그리고는 태연자약하게 제자리에 앉았지만 시선은 계속 이윤미만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이윤정이 웃으며 말했다.“언니, 명훈 씨는 아버지께서 언니에게 골라주신 분이니 명훈 씨와 잘 지내야 해. 강씨 가문이 재력이 막강한 재벌가는 아니지만 집안 형편도 꽤 좋은 집안이라 적어도 재산이 수억은 될걸.”“하지만 명훈 씨 부모님은 아들이 데릴사위가 되는 것에 동의하셔. 데릴사위를 찾기가 쉽지 않은데 아버지께서 가장 먼저 생각하시는 사람이 바로 언니인걸. 아버지가 언니한테 얼마나 잘해주시는지 이제 알겠지?”이윤정은 고소해 하는 표정으로 말을 내뱉었다.부모님과 가족들 모두 이윤정이 고현에게 구애하는 것을 지지했다. 비록 그녀는 여전히 고현의 마음을 빼앗지 못했지만 가족들은 그녀가 재벌가로 시집가는 것을 반대하지 않았다.하지만 아버지가 이윤미에게 찾아준 남자는 재력이 그다지 좋지 않은 가문의 도련님이었다.수억 원을 가진 가문은 보통 사람치고는 돈이 많은 셈이었다.하지만 이씨 가문의 부자들 눈에는 강씨 가문이 가난한 집안으로 보였다.이렇게 비교를 해보니 이윤정의 기분은 훨씬 좋아졌다.얼마 전 양어머니의 비난을 받고 불쾌했던 것이 모조리 사라져버렸다.역시 양부모만이 이윤정에게 가장 친절했다.하긴, 이윤정은 이씨 가문에서 자랐고 부모와 형제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으며 어려서부터 받은 것도 후계자의 교육이었다.이윤미가 이씨 가문에 돌아온 지 겨우 1년이 넘었는데 이윤정과 비교할 수는 없었다.조윤도 이윤정의 말에 맞장구치며 강명훈을 칭찬했다.“윤미야, 명훈 씨는 좋은 남자야. 비록 강씨 가문이 우리 이씨 가문보다 못하지만 너는 미래의 이씨 가문의 가주로서 데릴사위를 맞을 수밖에 없어.”“명훈 씨는 너와 참 잘 어울리는걸. 나도 네가 고현 씨와 친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고현 씨는 네가 탐낼만한 사람이 아니야. 그분은 너무 훌륭하셔서 데릴사위로 너와 결혼하지 않으실걸.”“명훈 씨가 말씀하셨어. 네가
정군호가 짜낸 웃음은 더 이상 굳을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지고 말았다.강명훈은 과거의 정군호 아니었던가.정군호가 능력이 좀만 있어도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시집오지도 않았고 이씨 가문의 노예로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다행히도 이 가주는 정군호의 가족에게 나름 좋게 대해 주었다. 적어도 그의 희생으로 인해 그의 부모 형제들이 모두 어느 정도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하지만 정군호는 자유가 없었다. 특히 돈에 관해서.아내는 정군호가 밖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을 경계하며 매일 그에게 주는 용돈은 10만 원을 넘지 않았다.바람을 피우려고 해도 마음만 있을 뿐 담력이 없었다.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미녀가 정군호의 품에 안겼지만 정군호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심지어 미녀들과 몇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그는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악랄하고 악독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마누라를 화나게 하면 정군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고통을 받게 될 것이 뻔했다.특히 딸 이윤정을 낳은 뒤에야 이 가주는 마음을 다잡았고 심지어 부부생활까지 많이 뜸해졌다.정군호는 자신이 쓸모가 없어지고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감히 바람을 피우지도 못했다.말하자면 정군호는 이씨 가문에 들어온 이후로 수십 년 동안 매우 억울하게 지냈다고 할 수 있다.능력이 없는 게 죄일지도 모른다.강명훈을 보면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이렇게 큰일을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명훈 씨한테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자꾸 밀어붙이시면 저도 너무 난처해져요.”“어머니, 제가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제가 직접 선택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적어도 제 근심을 덜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은걸요. 아버지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남자는 싫어요.”정군호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졌다.“윤미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어쨌든 난 너의 친아버지야! 여보, 윤미 좀 보세요. 저의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제가 어디가 어때서? 애초에 제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네 엄마가 날 고르지도 않으셨을걸.”“네네.
고현은 이윤정을 똑바로 보지도 않으면서 시골뜨기 이윤미에게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다.“엄마, 내일 제가 언니랑 함께 갈게요.”이윤정은 이윤미가 고현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말을 듣고 양어머니에게 부탁드렸다.이 가주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넌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고 대표님이 너에게 어떤 태도인지 알면서. 네가 어떻게 고 대표님에게 구애했는지 난 상관하지 않아. 난 결과만 보니까.”“하지만 윤미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하는 것은 우리 두 그룹의 비즈니스 거래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절대로 망쳐놓으면 안 돼.”“윤미야, 네가 고 대표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내가 반대하지 않겠어. 오늘 네가 큰 건을 해결했으니 엄마도 무척 기뻐. 내일 너에게 새 차를 한 대 뽑아줄게. 네가 직접 가서 새 차를 골라봐. 예산은 10억 원이야.”그 말을 들은 이윤정은 부럽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말했다.“엄마, 제 차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이때 이윤미가 톡 쏘아붙였다.“넌 어머니의 수양딸이고 난 어머니의 친딸이야. 너는 어떻게 너를 나와 비교해? 아무리 뻔뻔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런 말을 해?”이윤정은 말문이 막혔다.이윤정은 가여운 눈빛으로 양어머니를 보고 있었다.이 가주는 못 본 척하며 그녀의 편을 들지 않았다.이윤정은 양어머니가 이윤미를 아무리 엄격하게 다스리고, 심하게 욕을 해도 두 사람이 여전히 친 모녀라는 것을 깨달았다.이윤정은 정말 갈수록 이윤미와 비교가 안 되었다.양어머니가 입으로만 그녀를 응석받이로 키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여보.”이 가주가 남편에게 말했다.“윤미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하잖아. 이 일은 일단 제쳐두고 지켜보자. 딸이 컸으니 자기 생각과 주관이 생기는 것도 정상이야. 결혼은 평생의 큰일이니 윤미가 좋아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 좋겠어.”“윤미의 결혼에 관한 일은 우리가 부모로서 제안만 해주면 돼. 윤미 대신 결정지어줄 필요 없으니 윤미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 아직 서른도 안 되었고 사업
아내가 그의 가족에게 혜택을 준건 사실이지만 그의 가족은 아내의 위엄 때문에 밖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조용하게 지냈다. 아내 앞에서는 더욱 비굴하게 행동하며 하인보다 더 하인처럼 보였다.이런 것들이 정군호의 마음속에서 불만을 키웠다. 그는 오로지 모든 희망을 딸에게 걸었다.“윤정아, 네 엄마가 한 말을 아빠가 바꿀 수 없다. 네가 엄마에게 말해봐라. 아빠는 정말 방법이 없어. 이윤미가 말한 걸 못 들었니? 나는 네 엄마가 데려온 남자일 뿐이야. 데려온 남자가 집안에서 무슨 지위가 있겠니.”“아빠.”정군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윤정아, 아빠는 정말 방법이 없다. 아빠가 집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너도 알잖아.”이윤정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버지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이씨 가문에서 그녀의 양아버지는 발언권이 없었다.한편 2층 서재, 이가주는 이미 책상 앞에 앉아 이윤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문 닫고 잠가.”이윤미는 그녀의 말대로 했다.“차가 고장 난 건 무슨 일이지?”이가주가 물었다.“누군가 손을 썼어요.”이가주는 의자에 기댄 채 딸에게 물었다.“의심되는 사람이라도 있어?”“아빠랑 오빠들, 그리고 엄마가 가장 아끼시는 윤정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은 생각나지 않아요.”이가주는 딸의 대답에 의외로 화 내지 않고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엄마는 윤정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이씨 가문의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이 말은 이윤미에게 안심하라는 의미였다. 그녀가 은퇴하면 이가주 자리는 반드시 이윤미의 것이 될 것이다.“엄마는 윤정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세요.”이가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미아, 친딸이 아닌 사람은 결국 친딸이 아니야. 그래도 조금은 쓸모가 있으니, 적어도 네가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도구로는 쓸 만해. 당분간은 남겨둬.”가끔은 화가 나서 윤정에게 심한 말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윤정을 남겨두었다.친딸이라도 순조롭게 성장하게 할 수 없다. 그래야만 가업을 지키는 주인이 될 수 있다.그
고현이 만약 그녀의 사위가 될 수 있다면 그녀는 꿈에서도 웃으며 깨어날 것이다.“엄마, 저랑 고현은 그냥 친구예요. 고현이 직접 저한테 말했어요. 자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만약 제가 이윤정처럼 좋아한다면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저일 거라 했어요.”“친구로 지내는 게 더 오래 갈 수 있겠지.”이윤미는 한때 고현에 대한 감정을 품었었지만 그것은 뛰어난 사람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생기는 호감이었다.고현이 속말음을 털어놓은 후 이윤미는 그에 대해 순수한 감상만 남았다.이가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말했다.“고현은 우리 집과 맞지 않는다. 친구로 지내는 것이 좋겠어.”고현과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이윤미에게는 이득이 될 것이다.“그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니? 집에 돌아오기 전에 누군가를 좋아한 적 있어? ”이가주 역시 딸의 혼인을 걱정하며 말했다.“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마에게 말해봐. 데리고 와서 엄마한테 보여줘. 사람 됨됨이가 괜찮으면 엄마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집안이 너무 좋은 사람은 데릴 사위가 될 리 없고 반면 너무 못한 사람이면 결혼할 때 많은 혼수를 주고 관계를 끊으면 된다. 그럼 뱀파이어처럼 달라붙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집안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동안 엄마도 그들을 많이 도와줬다.”“우리 이씨 가문은 돈이 많지만 그들이 착취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네가 남편을 고를 때 너무 뛰어난 사람도 안 되고 너무 못한 사람도 안 돼. 중간쯤 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좋겠어.”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전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유일하게 감탄한 사람은 고현 도려님인데 그분하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니.”“천천히 찾아봐. 우리 집안은 확실히 선택하기 어려워.”이가주는 말하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그러나 곧바로 책상에서 서류케이스를 꺼내 이윤미 앞에 던졌다.“엄마, 이게 뭐예요? ”“네가 직접 열어봐.”이가주의 표정은 이내 엄숙해졌다. 이윤미의
이가주의 얼굴이 많이 누그러졌다.그녀가 말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그들은 네가 출세하는 걸 원하지 않고 더군다나 이윤정이 출세하는 건 절대 바라지 않을 거야.”“우리 이씨 가문은 백 년 넘게 이어져 왔다. 가난할 때도 부유할 때도 있었고 온갖 일들이다 일어났지 않느냐?”“우리 직계가 방계를 그렇게 오랫동안 눌러왔으니 그들이 당연히 마음에 한이 맺혔겠지. 기회를 잡기만 하면 출세하려 한다. 그 소문들도 아마 그들이 퍼뜨린 것일 거다.”이가주는 딸에게 자신의 손으로 자매들을 모두 죽였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모두 죽었고 증거도 말끔히 없앴다. 아마도 빠져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일이 일어난 지 몇 십 년이나 지났으니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녀도 절대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두 조카딸이 당시 나이가 어리다 보니 약간의 기억이 남아있다고 해도 희미할 수 있어 되찾기 어려웠다.어쨌든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두 조카딸의 소식을 계속 주의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관성은 그렇게 큰 도시인데 두 조카딸이 정말 그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설령 찾는다 해도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이씨 가문의 뒷받침 없이 그 두 조카딸이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 테니 운이 좋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겠지. 상업 전쟁에 대해 접할 기회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녀의 딸과 맞설 수 있겠는가?게다가 조카딸들도 나이가 적지 않다. 반면 그녀의 딸은 한창 젊으니 나이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윤미아, 우리 가문은 다른 가문과는 다르지만 내부 싸움이 적을 수는 없다. 네 생활비서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라”이윤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엄마, 저도 알아요.”“알면 됐다. 이제 돌아가 쉬어라. 내일은 새 차를 한 대 선물해줄게.”“감사합니다. 엄마.”“엄마도 일찍 쉬세요.”이윤미는 말을 마치고 서류케이스를 들고 돌아섰다.그녀가 나간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정군호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이아,
이은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가 우리랑 닮지 않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여러 번 DNA 검사를 해본 결과, 윤미가 우리 딸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어. 외모는 닮았는데 하는 행동은 너무 틀려. 지나치게 물렁물렁해. 이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고 왜 저렇게 나약한지 모르겠어. 나는 해가 갈수록 늙어가는데 도대체 언제쯤 대를 이어줄지 모르겠구나. 나도 빨리 물러나서 손주 보며 여유롭게 살고 싶어. 근데 며느리들이 협조하지 않는 걸 어째. 첫 손주는 이왕이면 손녀였으면 좋겠는데, 손녀가 생기면 마음이 놓일 거야. 만약 윤미가 가문을 이어받지 못한다면 10~20년 더 살면서 손녀 후계자로 키울 수 있을 테니까.”이은화의 말을 듣고 정군호는 속으로 여러 가지를 계산했다.딸이 가문의 주인이 되는 것이 손녀가 주인이 되는 것보다 낫긴 하지만 딸은 곁에서 키우지 않아 정이 없었다.이윤미가 가문의 주인이 된다면 그는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반면 손녀가 가문을 이끌면 그는 할아버지로서 존경받을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이씨 가문은 딸이 대를 잇고 아들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딸을 낳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 부부도 아들 몇을 낳고 나서야 겨우 딸 하나를 얻었으니 말이다.전 세대 가주는 운이 좋아서 딸을 연달아 둘이나 낳았다. 그 전 세대도 딸을 쉽게 낳았는데 유독 그들 부부만 아들 몇을 낳고 나서야 딸을 얻었다.과연 아들들이 한 번에 딸을 낳을 수 있을까?노부부는 계단을 내려와 본채를 나서며 마당을 거닐었다.정군호는 다시 아까 그 주제로 돌아갔다.“아직 윤미가 뭘 했는지 말하지 않았잖아요. 왜 윤미랑 얘기하고 나서 그 좋던 기분이 나빠졌어요? 혹시 윤미가 제가 결혼을 강요한 걸 원망이라도 했어요?”“그건 아니야. 나 모르게 무슨 짓을 벌인 것 같아서 그래. 근데 그걸 증명할 증거를 찾지 못했어. 그래서 좀 답답했을 뿐이야.”이은화는 친딸이 진실을 알아낼까 봐 걱정했다. 모녀의 관계가 깨질까 두려운 것이다.이윤미는 겉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