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하의 형들 중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셋째 형이뿐이었다지. 하지만만 그도 이미 마음에 둔 상대가 있다. 예준하와 성소현도 연애 중이지만 여섯째 형과 일곱쩨 형이 같은 나이대의 형제들은 대체로 모연정형수님의 눈치를길을 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 둘은이 요즘 모연정을형수님을 보면 항상 긴장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주 만나야 했형수님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모연정의 매력 때문이었다.성소현은 모연정이 예전에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소설을 특별히 찾아서 읽었었다.성소현이 물었다. “형수님은 앞으로 소설을 안 쓰실까? 내가 소설을 잘 안 읽는데 형수님 소설은 재미있더라. 형수님은 상상력이 정말 풍부해.”예준하가 대답했다. “형수님은 지금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거야겠지. 그래도 가끔씩 쓰긴 하셔. 다만, 발표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 형제들을 소재로 글을 쓰고 계신 거 같아.”성소현이 웃으며 말했다. “너도 형수님한테 너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써달라고 하면 되겠네. 인기남 컨셉으로다가너한테 미녀들을 많이 줄게.”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소설의 남주인공이 된다면, 여주인공은 무조건 너일 거야.”성소현은 더욱 기쁘게 웃었다. 갑자기 그녀는 예준하의 목을 끌어안고 먼저 입을 맞췄다.춤을 선사했다.사랑하는 여인이 먼저 입맞춤을 해오니, 예준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껴안고 그 키스를 더욱 깊게 이어갔다.입맞춤이 끝난 후 성소현의 손은 예준하의 얼굴 위로 내려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애정과 함께 약간의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점심때 많이 놀랐지? 선물은 너를 안심시키기 위해 준비한 거야.”“그렇구나.”예준하가 웃으며 다시 그녀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나 정말 놀랐어. 넌 모를 거야. 그 소식을 듣고 난 창백한 얼굴에 손발까지 차가워졌다니까?네가 모를 거야.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손발이 차가워졌어. 그 순간 내 머릿
키스 후 성소현은 부드럽게 예준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물었다.“아직도 화났어?”예준하는 다시 그녀의 얼굴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기며 말했다.“소지훈이 운명의 여자를 찾았다고 해서 이제 마음이 놓였어. 하지만 정말로 놀랐어. 네가조금 더 따뜻하게 해줘야겠어. 내게 위로가 필요해.”성소현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선물도 주고 키스도 해줬는데 아직도 부족해?”그녀의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게 하며 예준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이제 충분해.”“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거야. 몆 번 더 일어난다면 내가 심장마비가 올지도 몰라.”“우리가 빨리 약혼식을 하고 관성을 떠들썩하게 만든 약혼식을 열자. 전이진과 여운초의 약혼식보다 더 성대하게 말이야.”성소현은 조용히 대답했다.“그래, 관성을 떠들썩하게 만들 약혼식을 준비해줘. 난 기다릴게.”곧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물었다.“일이 많지? 계속 일 봐. 나도 회사로 돌아갈게.”하지만 예준하는 다시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이미 온 김에 조금 더 있어줘. 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아내를 잃을 뻔했는데 어떻게 일을 처리할 마음이 있겠어?”“오늘 밤에 저녁 먹고 영화 좀 보러 갈까?”성소현도 그가 놀란 걸 알고 있어서 단순히 선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저녁에 영화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좋아, 네가 알아서 해.”성소현이 가져온 선물을 바라보며 예준하는 낮게 말했다.“너가 내 외투, 셔츠, 넥타이까지 사줬는데 바지는 왜 안 샀어?”“넌 아직 가방 안에 있는 옷을 다 보지 않았잖아.”그녀의 말을 들은 예준하는 성소현을 놓아주고 가방을 뒤적여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산 새 옷을 발견했다.모두 빨간색이었다.예준하: “... 전부 빨간색이네?”그는 한 번도 빨간색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어릴 적에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옷을 사주었고 그의 띠해가 될 때마다 어머니는 빨간색 옷을 주로 사줬다. 외투든 속옷이든 전부 빨간색이었다.그는
예준하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신이 붉은색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붉은색이 너무 눈부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빨간색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성소현은 빨간색이 눈부시다고 생각하여 좋아했고 예준하는 그 눈부심이 너무 싫었다.“그럼 이따가 다른 색으로 바꾸자.”예준하는 성소현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성소현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보관하고 있어. 앞으로 내가 빨간색을 사지 않도록 주의할게.”“여성 옷을 한번 입고 나에게 보여주면 더 좋을 텐데. 준하 씨 이렇게 멋진데 여성 옷을 입는다면 더 이쁠걸.”예준하는 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일깨워주었다.“난 진정한 남자거든. 어떻게 여성 옷을 입힐 생각을 해?”“난 당신과 부부하고 싶을 뿐이지 자매 사이로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성소현이 깔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여장을 하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군.”“혹시 예정 씨와 효진 씨도 남편에게 여장을 입으라고 요구해 본 거야?”“태윤 씨와 정남 씨는 여장을 할 리가 없어.”성소현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하예정과 심효진은 그녀들의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성소현은 단지 농담해 보고 싶어서 예준하에게 물어본 것뿐이다.예준하는 자신이 비교된 줄로 알고 고민하며 말했다.“사실 나도 여성 옷을 입어봤어.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딸을 낳기를 바랐는데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을 보시더니 날 딸로 키우겠다고 하셨거든.”“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 우리 엄마가 날 괴롭혀도 내가 저항하지 못했거든. 여름이 되면 맨날 나에게 치마를 입혀주고 머리도 길러주고 그러셨어. 정말로 날 딸로 키우셨지.”성소현은 흥미를 느끼며 웃으며 말했다.“준하 씨 예전에는 왜 이런 얘기 안 해줬어?”“흑역사를 내가 어떻게 너한테 얘기를 해.”“치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입었어?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고?”예준하가 대답했다.“난 그때 나이가
“앞으로는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말하면 안 돼.”“알았어. 알았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나 예준하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남자야.”성소현이 으쓱하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나 성소현이 사랑하는 남자인데 모든 방면에서 우수해야지.”두 사람은 그렇게 사무실에서 한참 동안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소현이 사무실을 떠났다.그녀는 고객과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예준하는 연연해 하며 여자 친구를 사무실 밖으로 배웅했다.예준하가 자못 아쉬워하며 배웅하는 모습에 성소현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서 재빨리 그의 얼굴에 뽀뽀했다.“정말로 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그래. 어기면 안 되거든. 끝나면 데리러 올게. 기다려.”“웃어봐. 난 준하 씨가 웃는 모습이 좋아. 준하 씨 웃는 웃음이야말로 내가 옛날에 받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단 말이야.”예준하는 피식 웃었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 내가 데리러 갈게.”“알겠어. 이만 갈게. 가서 일 봐.”예준하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서 성소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배웅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에야 사무실로 돌아갔다.그와 동시에 강성의 고씨 그룹.전호영은 차를 고씨 그룹 입구에 멈추고는 경적을 울려 경호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표시했다.경호원은 전호영의 차를 보더니 경비실에서 나와 전호영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차에 탄 사람은 긴 머리에 치마를 입은 여성분이었다.경호원은 문득 멍해졌다. 눈앞의 차는 그가 너무나도 익숙한 차였다.이 차가 바로 뻔뻔스럽게 그들의 전 대표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매일 몇 번씩 그들의 회사를 드나드는 전호영이 자주 사용하는 차였다.그 경호원과 그의 동료들은 모두 이 차에 대해 매우 익숙했다.절대 차량을 잘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전호영이 아니었다.순간 경호원은 고민에 빠졌다. 차에 타고 있는 여자가 전호영과 어떤 관계인지, 왜 전호영의 차를 몰고 왔는지 의문이 들었다.문을 열어 상대방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전호영은 재빨리 하이힐을 벗었다.하이힐이 이렇게 신기 힘든 존재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어쩐지 고현이 신기 싫어하더라니.고현은 심지어 여성 옷으로 갈아입는 것조차 거부했고 남자처럼 꾸미며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현은 전호영이 그녀에게 준 치마와 하이힐을 모두 거절하며 오히려 전호영이 여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하여 오늘 전호영은 그녀에게 한 번 여성 옷을 입어 보이려고 결심했다.긴 가발에 긴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했더니 이목구비가 부드럽게 보였다. 이 모두는 소화해 내기 쉬웠지만 유독 하이힐이 신고 걷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전호영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다행히도 여기는 강성이었다.그는 모두에게 자신이 전호영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언론 기자들이 알게 된다면 연예 기사의 큰 뉴스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전호영은 일부러 가방 하나를 더 가지고 다녔다.가방 안에는 그의 복장 한 벌이 들어 있었고 조금 있다가 고현 사무실 안의 휴게실에서 갈아입을 계획이었다.하지만 신발은 가져오지 못했다.차 안에 있었다.고현에게도 신발이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그녀의 신을 빌려 신을 생각을 했다.엘리베이터는 전호영을 꼭대기 층으로 안내했다.그는 또다시 하이힐을 신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고현의 사무실로 향했다.고현의 비서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전호영을 보더니 본능적으로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눈앞의 사람이 여자인 것을 보고 “전 대표”라고 내뱉으려는 말을 다시 꿀꺽 삼켜버렸다.다행히 비서는 남들처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고 재빨리 전호영을 막아 나서면서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비서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낯선 여자를 위층으로 올려보낼 수 있냐며 아래층의 사람들을 욕하고 있었다.그나저나 눈앞의 여자는 전호영 도련님의 이목구비와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저에요.”전호영은 남 비서 앞에서는 그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나지막이 말한 세 글자에 비서는 아연실색한 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전
“하지만 고현 씨는 이목구비가 부드러워 남자 행세를 하기에는 늘 남성스러움이 부족해요. 여성 옷으로 갈아입으면 정말 경국지색일 텐데.”“고현 씨는 원래 여자잖아요. 자, 우리 옷 바꿔입어 봐요. 제가 고현 씨를 위해 이 옷을 입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르실 거예요.”“여장하고 다니지 말고 휴게실에서 여성 옷으로 갈아입고 저한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고현은 어이가 없었다.전호영이 여성 옷을 입고 왔다니!게다가 그 차림으로 고현의 회사까지 달려왔다.고현은 전호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전 대표,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이 예쁘긴 예쁜데 너무 남성적이네요.”“저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 행세를 한다 해도 남자 같죠 . 하지만 고현 씨는 여자잖아요. 20년 넘게 남자로 분장한다 해도 여전히 여자인걸요.”“저는 고현 씨가 저처럼 여성 옷을 입고 밖에서 돌아다니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우리 휴게실에서 옷 좀 교환해 입어 봐요. 저한테 고현 씨가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까요?”“고현 씨가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알고 싶어서 그래요.”전호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고현을 바라보며 기대를 품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는 여성 옷을 입지 않을 거예요. 너무 습관이 안 되거든요. 호영 씨는 지금 여성 옷을 입고 있는데 편하세요? 안 불편해요? 불편하잖아요.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 신을 던지고 달려오고 싶지 않았어요?”전호영은 고현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전호영은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 심지어 그 하이힐을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했다.하지만 전호영은 남자가 아닌가!“저는 제가 여자라는 것을 인정해요. 제가 몇 년을 남자로 살았어도 여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죠.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20년 넘게 남자로 분장했고 이런 생활과 이런 옷차림에 익숙해졌어요.”“여성 옷으로 갈아입거나 하이힐을 신고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기르라고 하면 제가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호영 씨가 정말 저를
하지만 전호영이 웃길 때면 고현은 정말 즐겁다고 느꼈다.한 가지만은 확신했다.전호영은 처음에는 할머니의 주선으로 고현에게 접근했지만 지금은 고현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 감정 변화가 매우 뚜렷했다.잠시 앉아 있던 고현은 몸을 일으켜 책상을 에돌아 휴게실로 향했다.전호영은 그의 평상시 복장으로 갈아입었지만 신발이 없었다. 그의 구두는 차에 있었기 때문이다.전호영은 하이힐을 보더니 허리를 굽혀 들어 올려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다.“왜 버려요? 남겨 두지 그래요. 그래도 호영 씨가 신었던 하이힐인데.”고현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전호영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바라보니 문에 기대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현을 발견했다.“그 치마도 버리지 말고 보관하세요. 너무 아쉽네요. 제가 호영 씨 여성 옷을 입고 가발을 쓴 모습을 사진 찍어 놨어야 했는데.”고현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녀는 휴게실 안으로 들어와서 전호영에게 다가가더니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두 손을 꺼내 전호영의 옷을 정리해 주었다.“호영 씨는 역시 남자 옷을 입어야 멋지네요.”“멋있어요?”“맞아요, 멋져요. 몸매가 좋아서 남자 모델처럼 어떤 옷을 입어도 멋지네요.”전호영은 자신의 옷깃을 정리해 주는 고현의 두 손을 잡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의 이목구비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사진 찍어 주려고요? 제가 다시 치마로 갈아입고 가발과 하이힐을 다시 신을게요. 고현 씨가 원하는 만큼 찍게 해드릴게요.”“됐어요. 호영 씨 얼굴은 멋있지만 여성 옷을 입으면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거든요.”고현은 손을 빼내고 전호영의 넓고 평평한 가슴을 건방지게 두드리며 농담했다.“여기가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거든요.”전호영은 잠시 할 말을 이었다.그는 좀 더 비슷하게 꾸미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흠... 전호영은 뻔뻔하지만 그 정도로 꾸미기에는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고현은 허리를 굽혀 휴게실의 침대 위에서 전호영이 내려놓은
“호영 씨.”고현은 무뚝뚝한 얼굴로 소리쳤다.전호영은 그제야 정신이 들었다.그는 앞으로 걸어가려고 했다.“움직이지 마세요. 호영 씨 휴대전화를 들어요. 사진 두 장만 찍도록 허락할게요. 그리고 제가 바로 제 옷으로 갈아입을 것이고 아마 앞으로 제가 다시 여성 옷을 입을 일은 없을 거예요.”전호영는 휴대전화를 꺼내며 대답했다.“알겠어요. 알겠어요. 바로 사진 찍을 테니 옷 갈아입지 마세요.”그는 서둘러 휴대전화로 그녀를 향해 사진을 찍었다.고현은 화장하지 않았지만 타고난 미모로 만약 여성 옷으로 갈아입고 가발까지 쓴다면 정말로 전호영의 상상대로 엄청나게 아름다울 것이다.전호영은 사진을 몇 장 찍었다.뒤이어 고현은 몸을 돌려 화장실로 들어갔다.전호영은 또 서둘러 그녀가 치마 입고 걸어가는 뒷모습을 찍었다.너무 아름답다!사진을 찍고 난 전호영은 얼굴에 걸려있는 함박웃음을 거두어들이지 못했다.그는 몇 번이고 고현의 치마 입은 사진을 들여다보았다.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사진을 골라서 그의 휴대전화의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매번 휴대전화로 그녀의 사진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좀 큰 사이즈 사진으로 씻어내서 자신의 방의 곳곳에 모두 걸어놓으려고 했고 크기가 아주 작은 사진도 씻어내서 액자에 넣어 열쇠고리에 끼워 넣으려고 했다.어쨌든 전호영은 고현의 아름다운 모습을 언제든지 감상하려고 했다.고현의 여성 옷을 입은 사진을 찍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전호영은 그녀가 왜 갑자기 여성 옷을 갈아입으려 했는지 이해하려 들지 않았다. 단지 고현이 여성 옷을 입을 기회가 이번 단 한 번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 뿐이다.앞으로 그녀가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을 보려면 아마 무척 어려울 것이다.오늘의 일을 통해 전호영은 고현에게 다시 여성 옷을 입으라고 강요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고현의 말에 의하면 그녀는 이제 남자 행세를 하는 것에, 이런 옷차림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치마와 하이힐을 신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전호영 스스로 입는 것마저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
도아영이 홀로 관성까지 찾아온 것도 전이혁을 위해서였다.관성에서 그녀의 안전은 그의 책임이다.앞으로 도아영과 결혼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그녀는 할머니께서 정해주신 아내 후보였다. 혹여 도아영이 관성에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도씨 가문에서 문제를 일으킬 것은 물론 전씨 할머니께서도 그를 혼쭐 내실 것이 분명했다.전이혁은 전태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태윤이 전화를 받자 전이혁이 조심스럽게 부탁했다.“형, 오늘은 형의 스위트 룸에서 하룻밤 자도 돼?”“안방만 빼고 다른 방은 마음대로 써.”전태윤은 거절하지 않았지만 안방 사용만은 허락하지 않았다. 평소 이곳에 머무를 때면 항상 안방을 사용했기 때문이다.“알았어. 고마워. 형.”“도아영 씨는 괜찮아?”“심하게 취해서 토하다가 물 달라고 하길래... 떠날 수 없어서 호텔에서 하룻밤 지내려고. 새벽에 아영 씨를 룸으로 데려다준 후 떠날 계획이야. 같이 묵었다는 사실을 알면 나에게 달라붙을까 봐 겁이 나.”전태윤이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진심으로 도아영 씨와의 관계를 정리할 생각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도 좋아. 그분 명성을 망가뜨리면 안 되지.”전이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형, 사실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아영 씨는 정말 좋은 사람이이고 할머니의 눈썰미는 틀린 적이 없으셨지. 도아영 씨와 함께 지내보니 나랑 잘 맞는 것 같긴 한데... 왠지 그 ‘여우’랑 함께 있을 때가 더 편안하단 말이야.”“‘여우’라고?”“내 꿈에 자꾸 등장하는 그 여자 말이야. 별명이 ‘여우 같은 여자’거든. 화장을 잘하는 건지... 본명도, 고향도, 행적도 전혀 알 수가 없어. 신비로운 느낌을 주어서 나도 자꾸 정복하고 싶어져.”전태윤이 말을 이었다.“이름도 모르는 그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다니. 그분이 혹시 만성의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과 연관 있는 거 아니야?”만성 남씨 가문의 큰 사모님은 모연정의 사촌 형수이자 A시 허씨 가문의 둘째 아가씨인데 그녀도 이중생활로 유명한 인물이다.허씨 가문
“네.”우빈이는 전태윤의 말을 믿으며 다시 물었다.“이모부, 그 모기는 어디 갔어요?”전태윤은 자신의 손바닥을 펼쳐 우빈에게 보여주었지만 우빈은 모기를 찾을 수 없었다.“날아갔어. 이모부가 조금 늦는 바람에 잡지 못했어.”“그래요?”우빈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대답했다.하예정은 속으로 웃음을 터뜨렸다.우빈이가 아무리 영리해도 결국은 어린아이일 뿐, 어른을 이길 수는 없었다.“우빈아, 이모부는 일하러 가야 해. 우리도 집에 가자. 이모부한테 잘 가라고 인사해야지.”우빈은 바로 그의 작은 손을 흔들며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이모부, 잘 가요!”“집에 가서 빨리 쉬고 이모의 말도 잘 듣고. 이모를 귀찮게 하면 안 돼. 말 잘 들으면 겨울방학에 예진 리조트로 가서 용정이랑 놀게 해줄게.”우빈은 급히 약속했다.“절대로 이모 귀찮게 안 하고 말 잘 들을게요.”“여보, 빨리 일하러 가요. 우리도 갈게요.”하예정은 전태윤에게 일하러 가라고 재촉한 뒤 운전 기사에게 출발하라고 말했다.전태윤은 그 자리에 서서 차가 사랑하는 아내를 태우고 멀어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차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자 비로소 자신의 차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전이혁과 도아영의 일에 대해서 전태윤은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도아영이 취하면 전이혁이 그녀를 방으로 데려다줄 것이니까.전이혁은 도아영을 그녀의 방까지 데려다주고 외투와 양말을 벗겨 준 뒤 편안한 자세로 눕혔다. 그리고 그가 떠나려던 참에 도아영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옆으로 토해버렸다.전이혁이 쓰레기통을 가져오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그녀는 이미 바닥과 침대를 모두 더럽혔다. 그는 이 광경을 보자 정말로 토할 것 같았다.흠... 전이혁도 토했다. 그는 입을 막은 채 급히 화장실로 달려가 정신없이 토했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코와 입을 가린 채로 나왔다.도아영은 시원하게 토한 뒤 다시 침대에 철썩 누워버렸다.전이혁은 침대 반대쪽으로 돌아가 구토물을 보지 않으려 애썼고 최대한 빨리 도아영을 일으켜 안고
도아영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꿈나라에 들어가서 돌아올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술 마시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말을 안 듣더니 결국 취했네. 내일 아침이면 정말 고생할 텐데.”전이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도아영의 이마를 쿡쿡 찌르더니 체념했는지 그녀를 안아 들어 로얄 스위트룸 나섰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참! 난 도아영 씨가 어느 룸에 묵고 있는지 모르는데.'그는 걸음을 멈추고 도아영을 내려놓고는 한 손으로 그녀를 부축하면서 다른 손으로 핸드폰을 꺼내 하예정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예정은 금방 전화를 받았다.“형수님, 도아영 씨가 묵고 계신 룸 번호를 아세요?”하예정이 대답했다.“저도 잘 몰라요. 그냥 관성 호텔에 묵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어요. 아영이가 취했어요? 잠깐만요. 제가 알아볼게요.”하예정은 고개를 돌려 남편에게 말했다.“여보, 아영의 룸 번호를 알아봐 줘요. 취했대요. 이혁 도련님이 아영이를 모셔다드리려고 하는데 룸 번호를 몰라서.”전태윤은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하예정의 재촉에 어쩔 수 없이 우빈의 손을 잡고 걸어 나갔다가 이내 돌아왔다. 그는 이미 전이혁과의 통화를 끝낸 상태였다.“알아봤어요?”“내가 이혁한테 이미 알려줬어.”전태윤은 여전히 표정이 굳은 표정으로 하예정에게 말을 건넸다.“아까 내가 물어볼 때 프런트 직원들이 나를 보는 눈빛이 마치 내가 바람피우는 거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고. 내 동생이 도아영 씨를 데려다주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내가 대신 물어보는 거라고 설명까지 했어.”하예정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남편의 팔을 다정하게 끌며 달콤하게 웃었다.“설명했으면 그만이죠. 사람들이 뭐라 생각하든 우리 감정엔 아무런 영향이 없는걸요. 제가 의심하지 않으면 되잖아요.”“다음부턴 이런 일 나에게 시키지 마. 이혁의 일은 이혁이가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 내가 왜 도와줘야 해? 나도 예전엔 아무 도움 없이 오직 내 진심과 깊은 정으로 너의 마음을 얻었는데.”“알았어요.
전이혁은 침묵했다.도아영은 눈썹을 치켜들며 물었다.“왜요? 전이혁 씨는 그분을 보호하려고 이름조차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안심하세요. 저는 공정하게 경쟁하고 싶을 뿐이에요. 수작 부릴 생각은 없어요. 저는 그런 건 못해요. 남자 하나 때문에 그럴 필요도 없고. 제가 이렇게 남자를 좋아한 건 처음이라서 한번 도전해 보는 거예요. 다른 남자였다면 그냥 양보했을 거예요.”도아영이 눈여겨본 건 전이혁이란 사람뿐만이 아니었다. 그녀는 전이혁의 뒤에 있는 전씨 가문이 마음에 들었다. 전씨 가문의 훌륭한 가풍은 소문이 자자했으니까.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사상이 모두 개방적이어서 후손들이 무슨 일을 하든 언제나 지지해 주었다.심지어 반대한다고 해도 다른 집안 어르신들처럼 억지로 가로막지는 않았다.게다가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특히 아내를 아끼기로 유명했고 한번 정한 인연과 결혼은 끝까지 지키고 있었다.이런 남자들이 흔치 않았다. 여자라면 누구든 한결같은 남자와 결혼하고 싶을 것이다.하여 도아영은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었다. 정말 안 된다면 그건 그녀와 전씨 가문의 인연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애초에 노력도 안 해보고 포기한다면 나중에 분명 후회할 것 같았다.도아영은 평생 후회할 일은 하지 않으려고 하는 여자였다.전이혁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그는 ‘여우’의 이름을 몰랐으니까. 마음의 절반을 뺏긴 주제에 정작 상대방 이름조차 모르고 있다니...도아영은 그가 연적을 보호하는 것으로 생각하며 약간의 질투를 느꼈지만 더는 따져 묻지 않았다.“전이혁 씨가 그녀를 보호할수록 저는 더 궁금해지네요. 도대체 누가 저 도아영을 이길 수 있는지. 근데 괜찮아요. 언젠가는 제 연적이 누군지 알게 될 거니까.”그녀는 전이혁에게 잔을 들며 말했다.“전이혁 씨, 자! 우리 한잔하죠.”전이혁은 잔을 들고일어나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잔과 부딪혔다. 그리고 도아영이 단숨에 그 술을 들이마시는 걸 지켜보았다.도아영은 더 이상 전이혁과 사랑에 관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도아영은 요즘도 이런 식으로 자식들의 혼사를 정하는 어르신이 있다는 말을 처음 들었다.‘요즘은 연애와 결혼이 자유로운 시대인데 아직도 자식들의 혼사를 결정해 주는 집안이 있다고?’도아영은 곧바로 자기 집 안 어르신들을 떠올리더니 다시 묵묵히 조금 전의 의문을 거두어들였다.재벌 가문에서는 많은 혼사가 부모님들에 의해 결정되었고 대부분 어른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곤 한다.그들에게는 결혼의 자유가 많지 않았고 가장 중요한 건 이익뿐이었다. 두 가문 사이에서 이루어진 혼인으로 인해 두 회사에 얼마나 큰 이득을 가져다주느냐가 가장 관건이었다.“그럼 전이혁 씨 할머니께서 왜 저를 선택하셨어요? 저는 할머니를 본 적도 없는데.”도아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그녀는 전씨 할머니를 본 적이 없었다.아마 봤을지도 모르지만 그녀가 전혀 기억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도아영을 유심히 관찰하고 알아본 뒤에야 전이혁의 미래 아내로 선택한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전이혁에게 건네주며 도아영에게 구애하도록 하게 한 것이다.“저도 모르겠어요. 할머니께서는 나이가 많으시지만 아직도 자주 돌아다니시니까. 우리가 감당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죠. 다행히 할머니의 건강은 좋으시고 관리도 잘 되어서 겉으로 보기엔 예순 정도로 보이세요.“전이혁도 할머니가 어떻게 도아영을 선택하셨는지 모른다.도아영만 궁금한 게 아니라 고현과 여운초도 전씨 할머니께서 언제 그녀들을 눈여겨보셨는지 궁금해했었다.“그래서 저를 알게 되었고 저를 쫓아다녔던 거예요? 전이혁 씨가 저에게 한 행동이 애정 공세가 아니라고 하면 당신 스스로도 믿지 못하겠죠?”전이혁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인정해요. 제가 당신에게 구애했다는 것을.”전이혁은 도아영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모든 면에서 그와 잘 어울렸으니까.하지만...“그런데 왜 한동안 사라지고 저를 무시했어요? 일부러 관심을 끌려는 작전이었던 거예요?”전이혁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전이혁에게는 아무런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도망가려고 해도 너무 늦었다.그는 애써 침착한 척하며 자리에 앉아서 몸만 돌려 옆에 앉은 도아영을 돌아보았다. 전이혁의 깊고 검은 눈빛은 도아영이 그의 마음을 읽을 수 없게 했다.이때 도아영은 몸을 굽혀 천천히 전이혁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두 사람의 거리는 점점 가까워졌고 전이혁은 그녀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은은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도아영이 어떤 향수를 뿌리는지는 몰랐지만 강하지 않은 은은한 향기가 너무 좋았다.“전이혁 씨.”도아영은 그의 이름을 부드럽게 불렀다.“말해봐요, 듣고 있어요.”그도 마찬가지로 부드럽게 대답했다.“제가 한 가지만 물을게요. 지금 어떤 마음으로 저를 대하는 거예요? 저에게 잘해주는 게 저를 좋아해서 그러는 거예요? 저에게 애정 공세를 하면서 왜 또 저를 무시하는 거죠?”전이혁은 깊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더니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한 가지 물음보다 더 많이 물어본 것 같은데.”잠시 침묵이 흐른 뒤로 전이혁이 말을 이었다.“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고 하면 도아영 씨는 저를 나쁜 놈이라고 욕할 거죠?”그는 그녀에게 구애하고 싶었다.전이혁은 도아영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할머니의 눈썰미가 결코 나쁘지 않다고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없었다면 전이혁은 도아영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도아영과 함께 살아갈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겼다.하지만 그 ‘여자'가 있었다. 그녀의 당당함, 대담무쌍함, 의협심, 기발한 성격, 고요할 때의 차분함과 활발할 때의 성격은 전이혁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았던 것이다.그는 자신이 진정으로 그 ‘여자'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다.바로 그 ‘여우 같은 여자' 말이다. 도아영 같은 재벌가 따님이 아니라.도아영의 아름다운 눈이 반짝이며 전이혁이 명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할 것임을 어렴풋이 느꼈다. 그녀는 몸을 일으켜 손을 주머니에 넣고 전이혁을 내려다보았다.전이혁은 잠시 당황했다. 그러나 순간 도아영의 동작과 표정이 마
“예정 언니, 벌써 다 드셨어요?”하예정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우리가 좀 빨리 먹는 편이긴 하지. 평일엔 일이 바빠서 먹는 시간도 쪼개 써야 하다 보니 빨리 먹는 버릇이 생긴 것 같아.”도아영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남편에게 사인을 보냈다. 그렇게 세 사람은 로얄 스위트룸을 빠져나왔고 거기에 문을 닫아주는 센스까지 보였다.전태윤은 경호원들에게도 식사하고 휴식을 취하라고 지시했다.전이혁과 도아영은 이 모든 것이 하예정이 그들에게 특별히 남겨준 기회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이제 로얄 스위트룸 안에는 전이혁과 도아영만 남았다.도아영은 와인잔을 들어 우아하게 음미하고 있었지만 시선은 전이혁에게 고정되어 있었다.‘역시 피할 수 없었군.'전이혁은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도아영 씨, 혹시 제게 하실 말씀이라도?”도아영은 대답 대신 잔을 기울이며 그를 바라만 보았다.‘정말 잘생겼어...'그녀는 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는 소문을 들었다. 실제로 본 전태윤도 키가 훤칠한 미남이었지만 지나치게 차가운 인상에, 인사할 때 잠깐 마주친 뒤로는 도아영을 전혀 쳐다보지 않았다.오직 하예정만 바라보는 모습에서 ‘아내 바보'라는 소문이 사실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전태윤의 차가운 카리스마와 달리 전이혁은 훨씬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전태윤 앞에서 전이혁은 성숙하지 못한 어린아이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지금처럼 단둘이 있을 때면 전이혁의 우수함이 빛을 발했다. 그는 도아영이 만난 남자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재였다.전이혁이 잘해줄 때면 도아영은 그에게 정말 빠져들 것만 같았지만 그녀를 소홀히 대할 때면 화가 치밀어 주먹으로 그를 한 대 패주고 싶을 지경이다.‘내가 무슨 애완동물도 아니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야 하는 애완견이야?'마음 내키면 그녀와 잠시 놀아주다가도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져버리는 그의 태도에 도아영은 서서히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전이혁은 슬그머니 자리를 옮겼다.“전이혁 씨, 왜 자리
하예정은 두 사람 사이의 암투를 모른 척하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좋은 술 두 병 시킵니다. 저는 임신 중이라 못 마셔요. 우리 배 속의 아기 건강 생각해서라도 저는 술을 마시지 못하거든요. 태윤 씨도 술을 잘 마시지 않기 때문에 이혁 도련님이 도아영 씨랑 같이 마실 수밖에 없네요. 도련님, 아영 씨를 잘 모셔야 해요. 저와 태윤 씨가 있으니 도련님이 취해도 괜찮아요. 저희가 책임질게요.”하예정은 도아영에게 윙크했다. 도아영은 슬쩍 OK라는 사인을 보내며 자신 있다는 듯 웃었다.하예정은 그제야 도아영의 주량이 꽤 괜찮음을 눈치채고 안심했다. 하예정은 도아영이 전이혁에게 꼬치꼬치 캐묻다가 술에 취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참인데 도아영이 괜찮다는 사인을 보내니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술과 여러ㅓ 요리가 나오자 도아영은 직접 전이혁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자! 전이혁 씨, 건배하죠.”전이혁은 잔을 받지 않고 오히려 도아영의 잔을 가져다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을 이었다.“도아영 씨, 공복에는 술에 취하기 쉬워요. 이 술은 독해서 마실 땐 괜찮다가도 나중에 훅 가버릴 수 있어요. 먼저 요리들을 좀 드시고 또 국물도 한 그릇 드세요.”그 말과 함께 전이혁은 도아영에게 국물을 떠주었다.“국물부터 드셔보세요.”도아영은 평소 국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전이혁이 떠준 거라 예의상 한 수저 떠먹었다.“하 대표님, 이 국물이 정말 맛있네요. 저 원래 국물을 잘 안 마시는데 이 국물은 진짜 맛있어요.”“그럼 많이 드세요. 우리 집은 항상 식사 때 국물을 준비하는 게 습관이에요.”하예정은 우빈에게도 국물을 떠주며 물었다. 식습관은 바꾸게 하기 어려운 법이다.도아영은 관성의 사람이 아니라서 관성의 식습관과 달랐다.국물을 마시기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이 국물이 맛있다고 평가하는 것을 보니 그 국물이 정말로 맛있었던 모양이다.“몇 살이에요? 동갑인 것 같은데.”“하 대표님이랑 같은 해에 태어났어요. 제 생일은 연말이라 하 대표님보다 몇 개월 어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