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준하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아직 풀을 받은 적이 없는데 네가 내 소원을 이뤄줄 때까지 기다릴게.”“이건 쉽지. 다음에 시장에 갈 때 한 자루 가득 풀을 사와서 전부 너한테 줄게.”“그럼 나 소를 사서 기를까?”성소현은 간드러지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너에게 준 풀을 네가 감히 소에게 먹여보려고 하면 두고 보자.”“안 할게, 안 할게.”성소현은 가방을 열어 새로 산 두 벌의 옷을 꺼내 예준하에게 건네며 말했다.“한 번 봐, 마음에 들어? 너의 모든 옷이 이 브랜드라서 같은 브랜드로 골라봤어. 셔츠랑 자켓까지 다 있지.”심지어 그는 속옷까지 여러 벌 사주었지만 부끄러워서 꺼내지 못하고 옷 가방 안에 슬며시 넣어 두었다. 집에 돌아가 옷을 꺼내면 바로 볼 수 있을 것이다.예준하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옷을 받아 펼쳐 보며 미소 지었다.“네가 사준 옷이라면 당연히 마음에 들어. 사이즈도 딱 맞아.”“바보야, 네게 선물하는 옷이니까 당연히 딱 맞게 사야지.”“그리고 넥타이 두 개도 있어.”성소현이 다시 가방에서 넥타이 두 개를 꺼냈다.마지막으로 롤렉스 시계를 꺼냈다.성소현은 선물 상자를 열고 예준하에게 손을 내밀라며 시계를 직접 채워주려 했다.예준하가 말했다.“내가 매일 차고 다니는 시계도 네가 준 거잖아.”예준하는 성소현에게 많은 선물을 줬고 성소현도 그에 대해 보답했다.그녀는 남자친구가 무시당하는 걸 절대 두지 않을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가진 것은 예준하도 가질 것이다. 그러나 그가 가진 것은 다른 사람들이 반드시 갖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돌려가며 차야겠어. 이 시계가 더 예쁜 것 같아.”예준하는 성소현이 시계를 채워주는 걸 가만히 바라보며 시계가 채워진 후 칭찬했다.“소현아 네 안목은 정말 뛰어나. 네가 사주는 물건은 다 멋지고 실용적이야. 정말 마음에 들어.”“그야 당연하지. 내 마음에 둔 것이든 사람이든 모두 최고로 뒤어나.”성소현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성소현의 출신 배경은 그녀에게 이런 자신감을 줬다.
예준하의 형들 중에서 아직 결혼하지 않은 사람은 셋째 형이뿐이었다지. 하지만만 그도 이미 마음에 둔 상대가 있다. 예준하와 성소현도 연애 중이지만 여섯째 형과 일곱쩨 형이 같은 나이대의 형제들은 대체로 모연정형수님의 눈치를길을 받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그 둘은이 요즘 모연정을형수님을 보면 항상 긴장된다고 말하면서도 그들은 여전히 자주 만나야 했형수님을 만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유는 바로 모연정의 매력 때문이었다.성소현은 모연정이 예전에 소설을 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그 소설을 특별히 찾아서 읽었었다.성소현이 물었다. “형수님은 앞으로 소설을 안 쓰실까? 내가 소설을 잘 안 읽는데 형수님 소설은 재미있더라. 형수님은 상상력이 정말 풍부해.”예준하가 대답했다. “형수님은 지금 너무 바빠서 글을 쓸 시간이 없을 거야겠지. 그래도 가끔씩 쓰긴 하셔. 다만, 발표하지 않을 뿐이지. 우리 형제들을 소재로 글을 쓰고 계신 거 같아.”성소현이 웃으며 말했다. “너도 형수님한테 너를 주인공으로 해서 소설을 써달라고 하면 되겠네. 인기남 컨셉으로다가너한테 미녀들을 많이 줄게.”예준하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그 소설의 남주인공이 된다면, 여주인공은 무조건 너일 거야.”성소현은 더욱 기쁘게 웃었다. 갑자기 그녀는 예준하의 목을 끌어안고 먼저 입을 맞췄다.춤을 선사했다.사랑하는 여인이 먼저 입맞춤을 해오니, 예준하는 자연스럽게 그녀를 껴안고 그 키스를 더욱 깊게 이어갔다.입맞춤이 끝난 후 성소현의 손은 예준하의 얼굴 위로 내려와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눈에는 깊은 애정과 함께 약간의 미안함이 담겨 있었다.“점심때 많이 놀랐지? 선물은 너를 안심시키기 위해 준비한 거야.”“그렇구나.”예준하가 웃으며 다시 그녀의 입술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나 정말 놀랐어. 넌 모를 거야. 그 소식을 듣고 난 창백한 얼굴에 손발까지 차가워졌다니까?네가 모를 거야. 그 소식을 들었을 때 내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손발이 차가워졌어. 그 순간 내 머릿
키스 후 성소현은 부드럽게 예준하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조용히 물었다.“아직도 화났어?”예준하는 다시 그녀의 얼굴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남기며 말했다.“소지훈이 운명의 여자를 찾았다고 해서 이제 마음이 놓였어. 하지만 정말로 놀랐어. 네가조금 더 따뜻하게 해줘야겠어. 내게 위로가 필요해.”성소현은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선물도 주고 키스도 해줬는데 아직도 부족해?”그녀의 머리를 그의 가슴에 기대게 하며 예준하는 살짝 웃으며 말했다.“이제 충분해.”“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없을 거야. 몆 번 더 일어난다면 내가 심장마비가 올지도 몰라.”“우리가 빨리 약혼식을 하고 관성을 떠들썩하게 만든 약혼식을 열자. 전이진과 여운초의 약혼식보다 더 성대하게 말이야.”성소현은 조용히 대답했다.“그래, 관성을 떠들썩하게 만들 약혼식을 준비해줘. 난 기다릴게.”곧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며 물었다.“일이 많지? 계속 일 봐. 나도 회사로 돌아갈게.”하지만 예준하는 다시 그녀를 안으며 말했다.“이미 온 김에 조금 더 있어줘. 난 도저히 일을 할 수가 없어.”“아내를 잃을 뻔했는데 어떻게 일을 처리할 마음이 있겠어?”“오늘 밤에 저녁 먹고 영화 좀 보러 갈까?”성소현도 그가 놀란 걸 알고 있어서 단순히 선물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저녁에 영화를 같이 보자고 제안했다.“좋아, 네가 알아서 해.”성소현이 가져온 선물을 바라보며 예준하는 낮게 말했다.“너가 내 외투, 셔츠, 넥타이까지 사줬는데 바지는 왜 안 샀어?”“넌 아직 가방 안에 있는 옷을 다 보지 않았잖아.”그녀의 말을 들은 예준하는 성소현을 놓아주고 가방을 뒤적여 보았다. 그리고 그녀가 자신을 위해 산 새 옷을 발견했다.모두 빨간색이었다.예준하: “... 전부 빨간색이네?”그는 한 번도 빨간색 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어릴 적에는 그의 어머니가 그에게 옷을 사주었고 그의 띠해가 될 때마다 어머니는 빨간색 옷을 주로 사줬다. 외투든 속옷이든 전부 빨간색이었다.그는
예준하는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 자신이 붉은색을 싫어한다는 사실을 전혀 숨기지 않았다. 붉은색이 너무 눈부시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빨간색에 대한 두 사람의 생각은 완전히 달랐다. 성소현은 빨간색이 눈부시다고 생각하여 좋아했고 예준하는 그 눈부심이 너무 싫었다.“그럼 이따가 다른 색으로 바꾸자.”예준하는 성소현을 바라보더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몇 마디 속삭였다. 성소현은 얼굴이 붉어졌지만 기대에 가득한 눈빛으로 웃으며 말했다.“그럼 먼저 보관하고 있어. 앞으로 내가 빨간색을 사지 않도록 주의할게.”“여성 옷을 한번 입고 나에게 보여주면 더 좋을 텐데. 준하 씨 이렇게 멋진데 여성 옷을 입는다면 더 이쁠걸.”예준하는 바로 진지한 표정으로 일깨워주었다.“난 진정한 남자거든. 어떻게 여성 옷을 입힐 생각을 해?”“난 당신과 부부하고 싶을 뿐이지 자매 사이로 지내고 싶은 생각은 없어.”성소현이 깔깔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럼 여장을 하고 싶은 사람은 한 명도 없군.”“혹시 예정 씨와 효진 씨도 남편에게 여장을 입으라고 요구해 본 거야?”“태윤 씨와 정남 씨는 여장을 할 리가 없어.”성소현은 그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하예정과 심효진은 그녀들의 남편에게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성소현은 단지 농담해 보고 싶어서 예준하에게 물어본 것뿐이다.예준하는 자신이 비교된 줄로 알고 고민하며 말했다.“사실 나도 여성 옷을 입어봤어.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가 딸을 낳기를 바랐는데 내가 남자로 태어난 것을 보시더니 날 딸로 키우겠다고 하셨거든.”“처음 걸음마를 뗐을 때 우리 엄마가 날 괴롭혀도 내가 저항하지 못했거든. 여름이 되면 맨날 나에게 치마를 입혀주고 머리도 길러주고 그러셨어. 정말로 날 딸로 키우셨지.”성소현은 흥미를 느끼며 웃으며 말했다.“준하 씨 예전에는 왜 이런 얘기 안 해줬어?”“흑역사를 내가 어떻게 너한테 얘기를 해.”“치마를 얼마나 오랫동안 입었어? 가족들은 반대하지 않았고?”예준하가 대답했다.“난 그때 나이가
“앞으로는 스스로를 쓸모없다고 말하면 안 돼.”“알았어. 알았어. 다시는 안 그럴게. 나 예준하는 정말 훌륭하고 좋은 남자야.”성소현이 으쓱하며 대답했다.“당연하지. 나 성소현이 사랑하는 남자인데 모든 방면에서 우수해야지.”두 사람은 그렇게 사무실에서 한참 동안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성소현이 사무실을 떠났다.그녀는 고객과 사업에 관해 이야기하기로 약속했다.예준하는 연연해 하며 여자 친구를 사무실 밖으로 배웅했다.예준하가 자못 아쉬워하며 배웅하는 모습에 성소현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휙 돌아서 재빨리 그의 얼굴에 뽀뽀했다.“정말로 고객과 약속이 있어서 그래. 어기면 안 되거든. 끝나면 데리러 올게. 기다려.”“웃어봐. 난 준하 씨가 웃는 모습이 좋아. 준하 씨 웃는 웃음이야말로 내가 옛날에 받은 상처들을 치유할 수 있단 말이야.”예준하는 피식 웃었다.“데리러 올 필요 없어. 내가 데리러 갈게.”“알겠어. 이만 갈게. 가서 일 봐.”예준하는 엘리베이터 입구에 서서 성소현이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배웅했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문이 닫힌 후에야 사무실로 돌아갔다.그와 동시에 강성의 고씨 그룹.전호영은 차를 고씨 그룹 입구에 멈추고는 경적을 울려 경호원에게 문을 열어달라고 표시했다.경호원은 전호영의 차를 보더니 경비실에서 나와 전호영에게 문을 열어주려고 했다. 하지만 차에 탄 사람은 긴 머리에 치마를 입은 여성분이었다.경호원은 문득 멍해졌다. 눈앞의 차는 그가 너무나도 익숙한 차였다.이 차가 바로 뻔뻔스럽게 그들의 전 대표에게 끈질기게 달라붙는, 매일 몇 번씩 그들의 회사를 드나드는 전호영이 자주 사용하는 차였다.그 경호원과 그의 동료들은 모두 이 차에 대해 매우 익숙했다.절대 차량을 잘못 알아볼 리가 없었다.하지만 지금 그 차에 타고 있는 사람은 여자였다.전호영이 아니었다.순간 경호원은 고민에 빠졌다. 차에 타고 있는 여자가 전호영과 어떤 관계인지, 왜 전호영의 차를 몰고 왔는지 의문이 들었다.문을 열어 상대방
엘리베이터에 들어서자마자 전호영은 재빨리 하이힐을 벗었다.하이힐이 이렇게 신기 힘든 존재였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다.어쩐지 고현이 신기 싫어하더라니.고현은 심지어 여성 옷으로 갈아입는 것조차 거부했고 남자처럼 꾸미며 다니는 것을 좋아했다.고현은 전호영이 그녀에게 준 치마와 하이힐을 모두 거절하며 오히려 전호영이 여장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하여 오늘 전호영은 그녀에게 한 번 여성 옷을 입어 보이려고 결심했다.긴 가발에 긴 드레스를 입고 메이크업을 했더니 이목구비가 부드럽게 보였다. 이 모두는 소화해 내기 쉬웠지만 유독 하이힐이 신고 걷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전호영은 비틀거리며 걸어갔다.다행히도 여기는 강성이었다.그는 모두에게 자신이 전호영이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언론 기자들이 알게 된다면 연예 기사의 큰 뉴스가 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전호영은 일부러 가방 하나를 더 가지고 다녔다.가방 안에는 그의 복장 한 벌이 들어 있었고 조금 있다가 고현 사무실 안의 휴게실에서 갈아입을 계획이었다.하지만 신발은 가져오지 못했다.차 안에 있었다.고현에게도 신발이 있을 거로 생각하면서 그녀의 신을 빌려 신을 생각을 했다.엘리베이터는 전호영을 꼭대기 층으로 안내했다.그는 또다시 하이힐을 신고 엘리베이터에서 나와 고현의 사무실로 향했다.고현의 비서가 사무실을 나서자마자 전호영을 보더니 본능적으로 인사를 하려고 했지만 눈앞의 사람이 여자인 것을 보고 “전 대표”라고 내뱉으려는 말을 다시 꿀꺽 삼켜버렸다.다행히 비서는 남들처럼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지 않았고 재빨리 전호영을 막아 나서면서 사무실에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비서는 마음속으로 어떻게 낯선 여자를 위층으로 올려보낼 수 있냐며 아래층의 사람들을 욕하고 있었다.그나저나 눈앞의 여자는 전호영 도련님의 이목구비와 똑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저에요.”전호영은 남 비서 앞에서는 그의 신분을 숨기지 않았다.나지막이 말한 세 글자에 비서는 아연실색한 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는 전
“하지만 고현 씨는 이목구비가 부드러워 남자 행세를 하기에는 늘 남성스러움이 부족해요. 여성 옷으로 갈아입으면 정말 경국지색일 텐데.”“고현 씨는 원래 여자잖아요. 자, 우리 옷 바꿔입어 봐요. 제가 고현 씨를 위해 이 옷을 입고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르실 거예요.”“여장하고 다니지 말고 휴게실에서 여성 옷으로 갈아입고 저한테 보여주기만 하면 되는데...”고현은 어이가 없었다.전호영이 여성 옷을 입고 왔다니!게다가 그 차림으로 고현의 회사까지 달려왔다.고현은 전호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결국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을 건넸다.“전 대표,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이 예쁘긴 예쁜데 너무 남성적이네요.”“저는 남자이기 때문에 여자 행세를 한다 해도 남자 같죠 . 하지만 고현 씨는 여자잖아요. 20년 넘게 남자로 분장한다 해도 여전히 여자인걸요.”“저는 고현 씨가 저처럼 여성 옷을 입고 밖에서 돌아다니라고 강요하지 않아요. 우리 휴게실에서 옷 좀 교환해 입어 봐요. 저한테 고현 씨가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될까요?”“고현 씨가 여성 옷을 입은 모습이 얼마나 예쁜지 알고 싶어서 그래요.”전호영은 그윽한 눈빛으로 고현을 바라보며 기대를 품었다.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저는 여성 옷을 입지 않을 거예요. 너무 습관이 안 되거든요. 호영 씨는 지금 여성 옷을 입고 있는데 편하세요? 안 불편해요? 불편하잖아요. 하이힐을 신고 걸을 때 신을 던지고 달려오고 싶지 않았어요?”전호영은 고현의 물음에 말문이 막혔다.전호영은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아 심지어 그 하이힐을 버리고 싶은 생각까지 했다.하지만 전호영은 남자가 아닌가!“저는 제가 여자라는 것을 인정해요. 제가 몇 년을 남자로 살았어도 여자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죠. 하지만 저는 어렸을 때부터 20년 넘게 남자로 분장했고 이런 생활과 이런 옷차림에 익숙해졌어요.”“여성 옷으로 갈아입거나 하이힐을 신고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기르라고 하면 제가 너무 불편할 것 같아요.”“호영 씨가 정말 저를
하지만 전호영이 웃길 때면 고현은 정말 즐겁다고 느꼈다.한 가지만은 확신했다.전호영은 처음에는 할머니의 주선으로 고현에게 접근했지만 지금은 고현을 진심으로 좋아하게 되었다. 그 감정 변화가 매우 뚜렷했다.잠시 앉아 있던 고현은 몸을 일으켜 책상을 에돌아 휴게실로 향했다.전호영은 그의 평상시 복장으로 갈아입었지만 신발이 없었다. 그의 구두는 차에 있었기 때문이다.전호영은 하이힐을 보더니 허리를 굽혀 들어 올려 쓰레기통에 버리려 했다.“왜 버려요? 남겨 두지 그래요. 그래도 호영 씨가 신었던 하이힐인데.”고현은 비꼬는 말투로 말했다.전호영이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으로 바라보니 문에 기대어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고현을 발견했다.“그 치마도 버리지 말고 보관하세요. 너무 아쉽네요. 제가 호영 씨 여성 옷을 입고 가발을 쓴 모습을 사진 찍어 놨어야 했는데.”고현은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그녀는 휴게실 안으로 들어와서 전호영에게 다가가더니 바지 주머니에 넣었던 두 손을 꺼내 전호영의 옷을 정리해 주었다.“호영 씨는 역시 남자 옷을 입어야 멋지네요.”“멋있어요?”“맞아요, 멋져요. 몸매가 좋아서 남자 모델처럼 어떤 옷을 입어도 멋지네요.”전호영은 자신의 옷깃을 정리해 주는 고현의 두 손을 잡고 검은 눈동자로 그녀의 이목구비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사진 찍어 주려고요? 제가 다시 치마로 갈아입고 가발과 하이힐을 다시 신을게요. 고현 씨가 원하는 만큼 찍게 해드릴게요.”“됐어요. 호영 씨 얼굴은 멋있지만 여성 옷을 입으면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거든요.”고현은 손을 빼내고 전호영의 넓고 평평한 가슴을 건방지게 두드리며 농담했다.“여기가 여자처럼 느껴지지 않거든요.”전호영은 잠시 할 말을 이었다.그는 좀 더 비슷하게 꾸미고 싶었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흠... 전호영은 뻔뻔하지만 그 정도로 꾸미기에는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고현은 허리를 굽혀 휴게실의 침대 위에서 전호영이 내려놓은
“제가 만약 아저씨와 결혼하게 되면 나가서 살 거예요. 시부모님과 거리를 두는 것도 좋아요.”윤미연은 잠자코 있다가 말을 꺼냈다.“만약 지훈 씨의 어머님이 널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시댁과 함께 살지 않는다고 해도 너의 결점을 들추어내고 너희 부부의 감정을 깨뜨리려고 할 거야. 시어머니는 지훈 씨의 친어머니기 때문에 지훈 씨가 친어머니와 인연을 끊을 수는 없잖아?”정윤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 후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엄마, 아저씨의 마음을 아직 받아들이지 말라는 말씀이세요? 원래는 잘 정리해 놓았는데 지금은 어떻게 해야 할지 또 혼라스러워져요. 혼자 있는 것도 좋긴 해요. 그렇게 복잡한 관계를 처리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제 성격도 심술궂은 사람과는 어울리지 못해요. 다들 재벌 가문의 시어머니들과 어울리기 힘들다고 하던데. 예정 씨와 효진 씨네 시어머니처럼 사리에 밝은 사람은 많지 않더라고 하던데. 제가 듣기로는 전태윤 씨와 예정 씨가 금방 함께 있었을 때 시어머니는 사실 그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고 하셨어요. 하지만 예정 씨 시어머니는 상처를 주거나 부부의 관계를 틀어놓는 일을 한 적이 없대요. 오히려 아들 부부의 일이 남의 입에 오르내릴 때마다 공개적으로 감싸주며 쓸데없는 말을 하는 사람들에게 욕설까지 퍼부으셨대요. 예정 씨 시어머니는 우아하고 고상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며느리를 위해 상대방을 욕하기까지 하셨대요. 예정 씨와 그녀의 시어머니가 함께 지내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시부모님을 특히 존경하고 있거든요. 저는 현실 속에서 그런 시어머니는 드물다고 생각해요.”윤미연은 딸을 나무랐다.“넌 아직 지훈 씨의 부모님을 만나본 적도 없는데 널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을 어떻게 알아? 꼭 한번 만나 뵙고 그때 가서 다시 논의하자.”“그런데 아저씨랑 연애하고 정이 이미 깊어졌을 때 그분들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으려고 하면 저는 엄청 고통스러울 것 같아요. 이럴 바에야 처음부터 관계를 이루지 않고 현재 생활을 유지하면서 지금처럼 친구로
윤미연은 정윤하와 마음을 나누고 싶어 했다.“샤브샤브를 먹기 때문에 별로 준비할 것도 없어. 밥은 진작 했지. 너와 지훈 씨가 잘 지내는 것 같던데. 그분도 너에게 진심인 것 같으니 며칠 동안 잘 생각해 보고 답을 주렴.”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아저씨가 일시적인 호기심 때문에 갑자기 저에게 고백한 건 아닐까요? 아저씨 집에 돈도 많고 부잣집 도련님인데 만나본 미녀들도 수두룩할 거 아니에요. 저의 미모로 아저씨를 반하게 만들지는 못할 것 같은데. 그냥 놀고 싶은 건 아닐까요? 어쩌면 지금은 저에게도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결혼 후에는 마음이 변해서 바람을 피울 수도 있는데 바람피우거나 밖에서 내연녀랑 가정을 이룬다면 저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아요. 그때 가서 제가 아저씨를 이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멀리 있는 관성에서 엄마의 도움도 받지 못하면 어떡하죠?”윤미연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대답해 주었다.“글쎄... 하지만 결혼 생활은 두 사람이 서로 잘 가꾸어야 하는 법이야. 너희 두 사람이 심혈을 기울여 잘 가꾸어 나가면 그런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다만 그 집안 부모님이 널 마음에 들어 하실지 모르겠어.”정씨 가문은 연성에서도 이름이 있는 가문이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정합 도장이 유명하기 때문이다. 수조 원의 재벌가는 아니지만 겨우 수백억 원을 넘는 자산 정도는 갖고 있다.소씨 가문과 비하면 너무 많이 차이가 나지만 말이다.만약 소지훈의 부모님이 정씨 가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관성에 갔을 때 지훈 씨 부모님을 본 적이 있어? 너에 대한 태도는 어땠어? 태도가 좋고 잘 웃으신다면 그래도 희망은 있을 텐데. 차갑거나 공손한 태도로 임한다면 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미이고. 만약 그의 부모님이 싫어하신다면 우리는 단념하자. 아빠 엄마가 널 평생 책임질 수 있으니까. 네가 그 가문으로 가서 괴롭힘당하는 꼴을 우린 못 봐.”윤미연은 평소에 딸을 욕할 때 몇 번이고 그녀의 친딸이 아니라고 하지만 누군가가 정윤하를 괴
정윤하의 얼굴은 노을처럼 빨개졌다.그녀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방금 아저씨가 도장으로 바비큐를 가져왔거든요. 엄마, 제가 먹자고 한 것이 아니라 저희 학생들이 먹고 싶다고 했어요. 아저씨도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에 바비큐를 사다 준 거예요. 제가 바비큐를 먹고 있는데 아저씨가 갑자기 저를 좋아한다고 고백한 거예요. 친구 사이가 아닌 남녀 간의 사랑이라면서 저를 사랑한다고 저와 결혼하고 싶다고 말한 거 있죠. 참, 그리고 저에게 꽃다발도 선물해줬어요. 그 꽃을 받으니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묻길래 꽃 떡이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대답했어요.”윤미연은 그 말을 듣고 두 눈을 부릅뜨고 딸을 노려보았다.그 모습을 본 정윤하는 점점 작은 소리로 무고한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었다.“아저씨가 저에게 장미꽃을 선물했길래 그렇게 많은 장미꽃 앞에서는 장미꽃 떡만 생각났다니까요. 무슨 심정이냐며 묻길래 사실대로 대답한 것뿐이에요.”윤미연은 정윤하의 이마를 쿡쿡 찌르면서 퉁명스럽게 말했다.“왜 이렇게 멍청해? 종일 먹을 생각만 하다니. 네가 바비큐를 좋아하니까 지훈 씨가 그렇게 많은 바비큐를 포장해 간 거 아니야? 날씨가 춥다고 바비큐를 먹으면 소화가 잘될 줄 알았어? 내가 이따가 차 한 잔 끓여 줄게.”“엄마, 괜찮아요. 아저씨가 모두에게 보이차도 사줬어요. 보이차도 소화가 잘되는걸요. 학생들도 바비큐를 먹는 데 익숙해져서 소화도 잘될걸요.”윤미연은 그제야 시름 놓으며 말을 건넸다.“지훈 씨는 보이차를 사줄 줄도 알고 역시 자상하구나.”윤미연은 말을 마친 후 정윤하를 노려보더니 한참 뒤에야 정윤하에게 물었다.“지훈 씨가 갑자기 고백하는 바람에 이렇게 일찍 집으로 달려온 거야?”정윤하는 덤벙대며 줄곧 소지훈을 형제로 대했는데 갑자기 고백을 받고 놀란 것도 당연한 일이다..“거절한 건 아니지?”윤미연은 긴장하며 물었다.“당분간은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런데 바로 거절하지는 마. 여지를 남겨두어야 해. 너도 이제 스물네다섯 살이나 되었는데, 너를
“지훈 씨가 회사 대표는 맞지만 신분이 단순하지 않을 거야. 분명 우리에게 숨기고 있는 일이 있을 거야. 우리에게 말하지 않을 뿐이지.”“누구나 자신만의 비밀을 가지고 있기 마련인걸요. 다른 사람에게 말할 수 없는 비밀 같은 거요.”정윤하가 소지훈의 편을 들어주었다.윤미연은 또 말을 꺼냈다.“잘 생각해 봐. 네가 지훈 씨를 처음 만났을 때 싸울 줄 모르는 것처럼 하지 않았어? 네가 도와준 뒤로 은인이라고 떠들면서 너에게 은혜를 갚겠다고 무척 잘해줬잖아. 엄마가 드라마를 너무 많이 봐서 그럴 수도 있는데 나는 지훈 씨가 처음부터 너를 겨냥하고 너에게 접근한 것 같아. 작전을 세워서 너를 지훈 씨의 은인으로 만들면 당당하게 너에게 접근하면서 잘해줘도 네가 의심하지 않잖아. 어쩌면 네가 지훈 씨를 구해주던 날의 일도 지훈 씨가 꾸민 일일지도 몰라. 지금 관성의 환경이 얼마나 안전한데 건달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몰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거든. 관성의 경찰들이 그들을 나와서 행패 부리게 내버려둘 리가 있겠어?”정윤하는 설마 하는 생각에 다시 말을 이었다.“엄마,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보셔서 생각이 많으신 거 아니에요? 아저씨가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할 게 있다고. 우리 집은 엄청난 부자도 아니고 저도 우리 도장에서 일하는 일개 직원일 뿐인데. 저의 전 재산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저씨가 하루에 버는 돈보다도 적을 텐데. 저를 겨냥한 건 아닐 거예요. 게다가 아저씨를 도와준 그날 밤은 확실히 제가 아저씨를 처음 만난 날 맞아요. 서로 초면인데 이유 없이 저에게 접근해서 뭐 하게요? 아저씨는 아주 큰 사업을 하는 사람인데 어쩌다가 남의 미움을 사서 복수 당할 수도 있죠. 누군가가 건달들을 시켜 아저씨를 해치려고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정윤하는 소지훈이 그녀를 위해 이런 일들을 꾸밀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다.만약 정윤하의 집이 수백억의 재산을 가지고 있으면 소지훈이 무언가 꾸며도 믿을 법도 하다.그러나 그녀는 겨우 200만 정도의 월급쟁이에 집에 재산이 많다고 해
결국, 정윤하는 설탕 생강차가 담긴 잔을 들고 방안의 소파로 돌아와 앉았다.“윤하야, 무슨 걱정이라도 있는 거야?”윤미연은 정윤하의 뒤를 따라가 그녀의 옆에 앉으며 관심 있게 물었다.“아니요.”정윤하는 윤미연에게 들킬까 봐 감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그녀는 생강차를 가볍게 한 모금 마시더니 너무 매워서 혀를 내둘렀다.“엄마, 집에 있는 생강을 다 넣었어요? 너무 매워요. 아! 너무 맵네요. 맛도 없고 마시고 싶지 않아요.”“네 생리통 주기가 이상해서 그래. 생강차 좀 마시고 추위를 좀 쫓아내.”정윤하는 그제야 사실대로 말했다.“엄마, 사실 제가 거짓말한 거에요. 저는 지금 생리 기간이 아녜요.”“거짓말이라고? 이 계집애! 건강 문제로 어떻게 엄마를 속일 수 있어? 엄마는 너에게 몸조리 좀 시키려고 한약까지 지어줘야 하나 하고 걱정했는데. 어린 나이에 아직 시집도 안 갔는데 생리 주기가 이상하면 반드시 병원에 가서 몸조리를 잘해야 앞으로 배 속에 아기가 잘 들어서지. 여자들은 생리 주기를 잘 유의해야 해. 부끄러워하지 말고 바로바로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야 한다니까.”정윤하가 말을 이었다.“엄마, 내가 부끄럼을 잘 타는 사람으로 보여요?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제가 일찍 돌아오면 엄마가 제가 게으르다고 혼낼까 봐, 아빠한테 제 월급을 깎으라고 할까 봐 걱정하는 마음에 거짓말로 엄마를 속인 거예요.”다행히 윤미연의 행동이 빠르지 않았다.만약 정말로 정윤하에게 이것저것 사주면서 몸조리를 시키고 심지어 병원으로 데려간 뒤에야 아까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하면 윤미연은 아마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을 수도 있었다.윤미연은 고개를 끄덕였다.“하긴 네가 뻔뻔한 사람이 아니지. 부끄러움 탈 애가 아니야. 그럼 뭔데? 걱정거리라도 있으면 엄마한테 말해봐. 괜찮아. 참, 오늘 지훈 씨는 아직 안 왔지? 평소 이 시간이면 집에 도착했을 텐데.”정윤하는 입을 오므리다가 말을 꺼냈다.“엄마, 아저씨는 회사 대표라서 바빠. 저녁에 약속 잡혔을지도 몰라. 자꾸 걱
소지훈을 처음 만났을 때, 정윤하는 소지훈을 보더니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자기도 모르게 헛된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알고 지낸지 오래되면 도장의 코치 선배들과 다를 바 없다고 느꼈고 이내 두근거림도 사라졌고 헛된 생각도 하지 않았다.정윤하는 그녀와 소지훈이 사이도 친구와 같은 사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소지훈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말할 줄은 전혀 몰랐다.정윤하는 얼굴이 뜨거워졌다.그녀는 자신의 얼굴을 만져보더니 스스로 가볍게 얼굴을 치며 혼잣말을 했다.“정윤하, 부끄러워하는 거야? 어떤 남자가 널 좋아한다고 해서 이렇게 기뻐한 거야? 좀 진정해. 진정하자고.”소지훈은 정윤하의 소개팅 상대들처럼 그녀가 나중에 가정폭력을 행사할까 봐 걱정하지 않을 것이다. 소지훈은 정혁주까지 이길 수 있을 정도로 무술 실력이 엄청나게 뛰어난 남자였다.정윤하조차도 정혁주를 이기지 못하는데.소지훈이 정혁주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은, 소지훈의 무술 실력이 정윤하보다 더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소지훈이 걱정할 게 뭐가 있을까!오히려 앞으로 소지훈과 싸울 때 그에게 터져 맞아 땅에 짓눌리지 않게 정윤하가 걱정해야 할 것이다.정윤하는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대 앞에 앉아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았다.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던 정윤하는 자신 있게 웃으며 중얼거렸다.“못생기지는 않았는데! 아저씨가 역시 보는 눈이 있네.”단 정윤하는 자신과 소지훈이 어울리는지 잘 몰랐다.소지훈은 대기업의 대표이고 집안도 재벌가이고 만나는 사람마다 재력이 강하거나 신분이 높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정씨 가문은 가난하지 않고 연성에서도 부자에 속했지만 소씨 가문과 비교하면 그래도 차이가 컸다.정윤하는 소지훈이 보통 여자들과 다른 자신을 가지고 놀다가 질려버리면 자신을 버리고 딴 여자를 좋아할까 봐 무척 걱정했다.남자는 돈이 있으면 나빠지고 여자가 나빠지면 돈이 많아지게 되는 법!소지훈은 부자인 데다 잘생겼기에 여자에게 심장까지 꺼내어 잘해주면 그 여자는 분명 그에게 퐁
“형, 그럼 제가 뭘 하면 될까요?”정혁주가 자신을 인정해 주는 것을 본 소지훈은 그를 자신의 편으로 생각하며 물었다.정혁주가 대답했다.“여기 남아서 지켜보든지, 아니면 돌아가서 우리 어머니를 도와 요리를 하든지 하세요. 어쨌든 정윤하가 뭘 하든 상관하지 마세요. 저녁에 돌아올 테니까요. 돌아오면 두 사람 다시 얘기해 봐요. 소 대표님이 하신 얘기가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라는 것만 믿게 하면 돼요.”“네. 정말 감사해요. 그럼 저는 돌아가서 이모님을 도와 요리할게요.”윤미연에게 잘 보이면 정윤하의 마음을 훔치는 이 길은 훨씬 쉬워질 테니까.정윤하는 소지훈의 고백에 놀란 것이 아니라 별로 믿기지 않아서였다. 어떤 남자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도장에서 나와 찬 바람을 쐬고 추워지니 머리가 맑아지는 것만 같았다.정윤하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곧 집으로 돌아갔다.다행히 도장은 집에서 매우 가까웠다.윤미연은 오늘 밤 샤브샤브를 먹을 요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추운 날에는 역시 샤브샤브를 먹어야 속이 편안할 것이다.집이 난방이 안 되면 그녀도 이렇게 편하게 있지는 못한다.겨울이 되면 윤미연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다. 장 보는 것도 자식들에게 맡기곤 한다.그녀는 따뜻한 도시에서 정씨 가문으로 시집온 사람이다. 그녀는 너무 추위를 타서 연성에 시집온 지 수십 년이 되었지만, 겨울만 되면 여전히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을 좋아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문 앞으로 향하던 윤미연은 정윤하인 것을 확인하더니 바로 물었다.“이 시간이면 수업해야 할 시간 아니야? 왜 돌아왔어? 밖에 여전히 눈이 오지? 부엌에 뜨거운 생강차를 끓여놨는데 한 잔 마셔.”윤미연은 다시 주방으로 돌아갔다.“왜 혼자 왔어? 너희 오빠들은?”윤미연은 바쁘게 일하면서도 정윤하에게 물어보았다.정윤하가 대답했다.“저는 일이 있어서 먼저 돌아왔어요. 엄마, 아빠는요?”“네 아빠가 약속 있어서 나가셨어. 저녁에 밥 먹으러 돌아오지 않을 거라면서
소지훈이 일어나 정윤하를 쫓아가려 하였으나 정혁주가 가로막았다.그는 고개를 돌려 정혁주인 것을 확인하더니 성깔 좋게 말했다.“형, 제가 나가 볼게요.”“지금 가지 말고 윤하에게 혼자 생각하게 시간 좀 줘요. 윤하가 지금 소 대표님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지금 이 소식을 소화해야 할 거예요. 윤하는 지금 친구 감정이 아닌 이 남녀 간의 감정을 소화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에요.”“밖이 추운데... 눈이 내리면 추워질까 걱정돼요.”그러나 정혁주는 친여동생의 모든 것을 너무 잘 알고 있다.“소 대표님은 추울지 몰라도 윤하는 연성 토박이라 어렸을 때부터 이런 추위에 익숙해요. 그러나 소 대표님은 아니죠. 당신은 관성에서 왔으니 관성 쪽에는 겨울이 없다고 볼 수 있죠. 윤하가 추워하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나가서 바람 좀 쐬게 내버려 둬요. 마음을 다잡고 잘 생각해 보게 내버려 둬요. 갑자기 고백하니, 윤하는 심리 준비도 하지 않아 혼란스러워졌을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소 대표님도 그래요. 때가 되면 고백하셔야지... 꽃다발 하나로 윤하가 소 대표님 마음을 알 거로 생각하세요?”소지훈은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도 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 뻔하기에 그래서 직접 알려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말하지 않으면 영원히 모를 것 같아서요. 제가 한 트럭의 꽃을 선물한다고 해도 윤하 씨 성격으로는 이 꽃들로 얼마나 많은 꽃 떡을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할 테니까요.”정혁주도 공감하며 입을 열었다.“그... 그럴 수도 있겠네요.”정윤하도 분명 감히 그런 생각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다.그녀를 사랑한다면 확실히 말해야 했다. 그녀가 알도록 명확하게 알려줘야 할 것이다.“형, 윤하 씨가 이렇게 황급하게 나갔는데 정말 저를 피하는 거 아니에요? 윤하 씨는 제가 너무 늙었다고 싫어하지 않을까요? 저는 윤하 씨보다 10세 4개월이나 많은데.”그의 나이는 그녀보다 11살 많다고 말은 했지만 진지하게 계산하면 10년 4개월 연상이다.정
정윤하는 그렇게 하면 소지훈에게 폐를 끼친다고 생각하여 말을 내뱉으려다가 다시 생각을 바꾸어 말을 건넸다.“그럼 그때 가서 신세 좀 질게요.”소지훈이 연성에 있을 때 정윤하가 그에게 잘 접대했으니 그녀가 관성으로 가게 되면 소지훈이 잘 접대해 주면 서로에게 빚지지 않을 것으로 여겼다.“윤하 씨, 꽃 떡 말고도 또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소지훈은 다시 본론으로 돌아갔다.정윤하가 소지훈을 쳐다보니 그도 그녀를 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잠시 눈을 마주치더니 정윤하가 입을 열었다.“제가 또 무슨 생각 해야 하죠? 아저씨가 저에게 꽃을 선물했으니 저를 좋아한다는 생각 해야 돼요?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고 저도 아저씨가 좋아요. 우리가 서로 좋아하지 않으면 친구로 될 수도 없는걸요.”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소지훈이 그 정적을 깨뜨렸다.“윤하 씨는 제가 윤하 씨에 대해 좋아함이 우정이 아닌 남녀 간의 정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어요?”“아저씨가 남자고, 저는 여자인데 아저씨가 저를 좋아하는 것은 남자가 여자를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요? 뭐가 달라요?”“제 말은 윤하 씨, 저는 윤하 씨를 사랑하고 있어요.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싶단 의미에요. 형제 사이가 아닌 윤하 씨 남편이 되고 싶다는 뜻이에요.”소지훈은 단숨에 속마음을 털어놓았다.정윤하의 되묻는 물음에 화가 난 것이다.소지훈도 충동적으로 그 뜻을 똑똑히 해석해 준 것뿐인데...그녀가 이해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다.소지훈이 그녀에게 고백해야 정윤하가 그의 감정을 알 수 있다고 소정남이 알려주었다.그가 말하지 않는데 털털한 정윤하가 어찌 알 도리가 있겠는가?목소리가 좀 커진 소지훈은 그제야 분위기가 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웅성거리던 도장은 순간 조용해졌고 다들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소지훈은 그들을 쳐다보고는 다시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기만 하는 정윤하를 바라보았다.그의 잘생긴 얼굴은 점점 붉은 구름이 떠 올랐다.그는 도장이 아닌 단둘이 있는 곳을 찾아 로맨틱하게 현장을 꾸민 다음 정윤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