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씨 할머니가 입을 열었다.“너희 자매 성격이 똑같구나. 그래. 네 생각을 알겠어. 할머니도 좀 있다가 노씨 가문으로 동명이 보러 갈 거야. 동명이도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행복하겠어.”하예진은 말문이 막혔다.전씨 할머니는 중매 서는 것에 익숙해진 모양이다.결혼 적령기의 손자들에게 아내를 골라줬으니 이젠 하예진에게 주의력이 집중된 것이 틀림없다.똑똑!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하예진은 할머니를 껴안았던 팔을 떼어내면서 말했다.“제가 가볼게요. 누구일지 궁금하네요.”전태윤은 하예정을 병원에 데리고 갔을 테니 이렇게 빨리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하예정 모멘트를 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전태윤 부부가 아빠트로 돌아온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몇 안 될 것이다.“너의 이모가 아닐까?”하예진은 문을 열려고 자리를 떠났고 애완견 봄이도 꼬리를 흔들며 하예진의 뒤를 따랐다.문이 열렸고 입구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심효진이였다.“예진 언니.”심효진은 웃으며 하예진을 불렀다. 하예진을 몸을 비켜 심효진을 들어오게 했고 심효진의 뒤로 그녀의 경호원 두 분이 양손에 크고 작은 가방들을 가득 쥐고 있었다. 하예진이 그 모습을 보더니 한마디 했다.“효진아, 뭘 이렇게 많이 들고 왔어?”심효진이 대답했다.“예정이도 너무 해요. 저도 예정이가 돌아온 사실을 이제야 알았거든요. 서점은 사람을 시켜 잠깐 돌봐달라고 하고 여기로 잠깐 들렀어요.”“제가 임신한 걸 알았을 때도 예정이가 끊임없이 우리 집으로 보양식을 가져다주었거든요. 이젠 예정이가 임신했으니 이번엔 제가 예정이한테 보양식을 가져올 때가 됐네요.”“할머니, 언제 돌아오신 거에요?”집에 들어서자 전씨 할머니가 소파에 앉아있는 것을 본 심효진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다가가 가방을 소파에 올려놓으며 다정하게 전씨 할머니의 팔을 껴안았다.“할머니, 너무 보고 싶었어요.”전씨 할머니도 웃으며 대답했다.“어쩐지 내가 매일 재채기를 한다 했더니, 네가 내 생각을 한 거였구나!”
하예진은 입을 열었다.“예정이가 아침밥을 먹다가 토했거든. 태윤이도 너무 가슴 아파하는 눈치였고. 그래서 태윤이가 예정이를 데리고 병원으로 검사받으러 간 김에 입덧을 멈출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보려고 한 거야.”하예진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아까 제부가 엄청나게 긴장했어. 대신 토할 수 만 있다면 진작 대신 토해주었을걸.”제부가 동생을 아끼는 모습을 본 하예정도 매우 뿌듯했다.여동생은 그녀보다 훨씬 운이 좋았다.하예진과 주형인은 오랜 동창으로 지내다가 몇 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결혼 후 그녀가 임신했지만 주형인은 사업이 상승기에 처해있었기에 항상 일찍 나가고 늦게 돌아와 하예진의 곁에 자주 있어 주지 못했다.주형인은 하예진을 가슴 아파하기는커녕 출산 검사할 때조차도 그녀의 곁을 지키지 못해 여동생이 항상 함께하곤 했다.하예진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형인과 함께 했던 실패한 혼인 생활을 다시 떠올리는 것을 싫어했다.심효진이 웃었다.“상상이 가네요. 그렇게 안 하면 태윤 씨가 아니죠. 예정이를 얼마나 사랑하는데요. 딸처럼 키울 기세라니까요.”“효진도 안색이 좋아서 다행이구나.”전씨 할머니는 심효진의 안색을 살펴보았다.“정남 씨는 저를 돼지 키우듯 대하는데 안색이 나쁠 리가 없죠.”전씨 할머니가 부드럽게 웃었다.“정남이가 너에게 잘해주는 모양이구나. 그게 다 너를 위한 거잖아.”“저도 저를 최대한 자제하려고 노력해요. 너무 많이 먹으면 안 되니까요. 그렇지 않으면 정말 돼지가 될지도 몰라요.”심효진은 하예진이 임신하고 나서 계속 살이 찐 모습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소정남이 심효진에게 잘해주기도 했고 그녀도 남편 마음이 변할까 봐 걱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자신이 돼지처럼 살이 찌는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아기를 낳고 나면 필사적으로 다이어트 할 계획이었다.다행히 지금 하예정도 임신했으니 절친과 함께 살찌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고 자신의 살이 모두 절친에게로 전해지는 지면 좋겠다고 몰래 생각하고 있었다.“할
심효진은 자신이 임신한 것이 감옥에 갇힌 것과 다름없이 자유가 별로 없다고 생각했다.심효진은 전씨 가문이 임신한 하예정에게 어떻게 대할지 매우 궁금했다. 그녀는 절친이 자신처럼 아무 데도 못가고 기껏해야 서점에 갈 수밖에 없는지 매우 궁금했다.“너도 이제 임신한 지 3개월이 지났지? 태아가 어느 정도 안정되면 밖으로 나가서 살살 산책해도 돼. 어디 위험한 데 가지 말고 몸이 힘들지만 않으면 돼. 물론 임신 말기에는 멀리 나가면 안 되지만.”전씨 할머니의 말에 심효진은 부럽기만 했다.이번에 전씨 할머니가 부러운 것이 아닌 절친이 매우 부러웠다.전씨 할머니의 말에 의하면 절친은 그녀처럼 활동 범위가 관성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그녀들은 그렇게 한참을 수다를 떨었고 심효진은 그제야 작별인사를 한 뒤 집으로 돌아갔다.아니, 심효진은 집에 가는 것이 아닌 경호원에게 전씨 그룹으로 가자고 말했다.심효진은 전씨 그룹에 도착했고 현재 퇴근 시간까지 30분 정도 남았다. 심효진은 회사 입구에 차를 세우라고 했을 뿐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회사 안으로 들어가서 소정남의 업무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하지만 소정남은 이내 아내가 회사로 왔다는 사실을 알아버렸다.보안팀도 월급 받은 값을 치러야 했다.보안팀 사람들은 심효진이 늘 타고 다니는 차와 차 번호를 이미 익숙히 알고 있었다.하예정과 심효진 두 사람은 보안팀 모두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얼굴들이었다.요즘 관성에서 유행하는 말 한마디가 있었다.‘전 대표와 소 이사님을 건드릴지언정 전씨 가문의 사모님과 소씨 가문의 사모님을 건드리면 절대로 안 된다.’전태윤과 소정남은 모두 아내를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사람들은 이 두 남자의 능력과 수단을 잘 알고 있었다.특히 전태윤은 결혼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뒤로 성격도 아주 부드러워졌다.하지만 누군가가 하예정 혹은 심효진을 건드리면 그것은 죽음을 부르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양복 차림의 소정남은 종종걸음으로 회사에서 뛰
소정남이 말을 이었다.“보안팀 직원들이 당신과 예정 씨가 자주 사용하는 차를 익숙히 기억하고 있거든. 당신이 도착한 뒤로 들어오지 않는 모습을 보고 나에게 알려준 거야.”“내가 뭘 잘못해서 당신이 들어오지 않은 줄 알았잖아. 놀라서 하던 일도 팽개치고 허둥지둥 뛰쳐나왔어.”심효진은 결국 피식 웃었고 경호원마저도 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경호원은 심효진처럼 호탕하게 웃지 못했지만 고개를 돌려 웃음을 참아야 했다.“내가 매우 악독한 아내로 보이나 봐. 허둥지둥 뛰쳐나오다니. 그럼 다시 허둥지둥 뛰쳐 나와보시던가. 내가 한 번 보게.”소정남은 바로 말을 이었다.“사랑하는 아내가 정 보고 싶어 한다면 내가 한번 차에서 내려 다시 표현해줘야지.”소정남은 말을 마치면서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심효진은 남편을 잡아당기며 화냈다.“농담이야. 정말로 하려고?”소정남은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네가 행복한 게 나한테는 가장 중요하다고 내가 말했잖아. 당신을 위해서라면 난 뭐든지 다 할 수 있어.”소정남은 그렇게 말하면서 다시 차 안으로 올라앉으며 감탄했다.“역시 에어컨이 있으니 시원하네. 거리가 얼마 안 되는데도 더워서 죽을뻔했다니까.”“건축 현장에서 일하시는 사람들은 이 무더운 날에도 출근해야 하는걸.”“하긴 건축하시는 분들도 여름에는 특히 고생을 많이 하시지. 태윤이 집으로 가서 예정 씨는 만나지 못한 거야?”심효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못 만났어. 예정이도 너무해. 어제 돌아왔으면서 나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말이야. 예정이가 모멘트에 발렌시아 아파트 아래층 사진을 올렸거든. 근데 위치가 발렌시아 아파트로 떠있는 거야. 나도 그제야 알았어.”어제 여기저기에 기쁜 소식을 전한 사람은 전태윤뿐이었다. 감히 하예정에게 연락한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친한 지인과 가족들뿐이었다. 모두가 하예정이 돌아온 것도 모르고 카톡으로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심효진은 절친이 임신한 사실을 알고는 자신이 임신했을 때보다 더 기뻐했다.심효진은 어제 오후부터 준비한
심효진은 관성에서 쭉 자라왔고 그녀의 집안은 건물 철거로 인해 이주하면서 부자로 되였다.“호텔에 가서 먹기 싫어. 집에 가서 먹는 건 어때? 좀 멀긴 하지만...지금 벌써 배고파.”소정남이 바로 걱정스레 물었다.“왜 차 안에 당신이 좋아하는 간식을 준비해 두지 않았어? 내가 말했잖아. 차에도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준비하라고. 외출할 때 간식을 먹으면서 시간도 보낼 수 있고 배고플까 봐 걱정 안 해도 되고.”“요즘 밖에 잘 나가지도 않아서 그랬어. 집 아니면 서점으로 갔다 왔다 했기에 간식도 준비하지 않았지.”“조금 있다가 디저트 가게에 들러서 먹을 것 좀 사 올게. 우리 당신 집으로 가서 밥 먹자. 멀지도 않은걸.”전씨 그룹에서 소씨 가문으로 돌아오기에는 거리가 좀 멀었다.하지만 심씨 집안과는 그리 멀지 않았다.“그래.”심효진은 기뻐하며 대답했다.소씨 가문의 요리들도 진수성찬이었지만 심효진은 친정집의 엄마가 해주신 요리가 더 맛있다고 느꼈다.친정집에 가서 쌀밥에 김치를 먹는다고 해도 심효진은 매우 맛있다고 느꼈다. 물론 더 편하게 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경호원은 심효진과 소정남의 대화를 듣더니 묵묵히 차를 돌려 심씨 집안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심효진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그래도 예정이가 나보다 행복해. 예정이에게는 예정이를 진정으로 이해해주는 남편이 있고 사상이 진보적인 시댁이 있잖아.”그 말에 소정남은 벌떡 일어나 아내를 힐끗 쳐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여보, 내가 뭘 잘못했어? 잘못했다면 바로바로 지적해줘. 바로바로 고칠게.”“나도 당신을 잘 이해해 주잖아.”관성의 젊은 세대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가 바로 하예정과 심효진일 것이다.문득 심효진이 한숨을 내쉬는 소리를 들은 소정남은 긴장된 모습으로 자신이 어느 부분이 전태윤만 못했는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심효진은 자신의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그녀의 배는 아직 너무 큰 편은 아니지만 그녀가 임산부라는 것쯤은 보아낼 수 있었다.“예정이 남편은 예정이가 임신한 후에
심효진이 임신한 뒤로 소정남의 부모님, 심지어 사촌들까지도 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를 소중히 여겼고 그녀가 다칠까 봐 이러쿵저러쿵 아무런 일도 못 하게 간섭했다.그리고 매일 영양사의 요구에 따라 하루 세끼를 먹였고 그녀가 다칠까 봐 자주 외출하지 못하게 요구까지 했다.집안 어르신들은 심효진이 집에만 앉아 배 속의 아기를 돌보기를 바랐다.심효진이 나가서 쇼핑하고 싶으면 집안 어르신들은 그녀를 설득해서 못 나가게 했고 사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집사에게 주어 집사가 외출하여 구매해 오도록 했다.이런 귀빈 생활을 하예정마저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녀는 임신하자마자 전태윤을 찾아 담판을 지었다.비교가 있으면 상처도 더 큰 법.하예정이 임신이 안 됐을 때 소정남이 심효진한테 잘해주는 것에게 대해, 소씨 가문 어르신들이 심효진에게 대한 행동들에 관해 심효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하예정이 임신한 뒤로 전씨 가문과 전태윤이 하예정을 이해해주는 것을 보면서 심효진은 무척 부러웠고 결국 참다못해 남편에 불평을 늘어놓게 되었다.가끔 심효진도 자신이 행복에 겨운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얼마나 많은 임산부가 임신해서 집에서 푹 쉬기를 바라겠는가!하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직장을 다녀야 했고 임신 말기가 되어서야 집에서 쉬었다.하지만 심효진은 출근하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고마워.”심효진은 남편의 큰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얼굴에 올려놓았다.소정남은 심효진에게 말 할 것 없이 잘 해주었다.기성세대의 사상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소정남은 최선을 다해 아내를 보호하고 있다.“방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저 순간적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소정남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심효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방금 한 말들이 소정남에게로 말하면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내가 마음에 둘리가 없잖아.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바로
소정남은 심효진이 행복에 겨워도 행복에 겨운 줄 모른다는 말을 매우 듣기 싫어했다.전혀 그러한 생각을 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소정남은 심효진이 절친들과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려 할 때 그녀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일이든지 모두 지지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심효진은 남편의 품에서 고개를 쳐들었다.소정남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몇 번 해버렸다.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고 결국 아내에게 꼬집혀 밀려났고 심효진은 붉어진 얼굴로 이내 일어났다.소정남도 낮은 소리로 웃었다.경호원이 운전 중이라 소정남은 더는 아내에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앞쪽 약국에 주차해 주세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영양제 좀 사다 줘야 해요.”소정남은 경호원에게 당부했다.두 사람은 문득 갑자기 친정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심효진이 말했다.“우리 엄마 집으로 갈 때마다 이렇게 많이 사 들고 갈 필요 없어. 매번 손에 가득 쥐고 들어가면 엄마가 또 뭐라고 하실 텐데.”소정남은 빙그레 웃었다.“보양식만 조금 살 거야. 돈도 얼마 안 드는걸. 게다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어머님은 매번 채소들을 큰 봉지에 담아서 우리 차에 가득 실어주시잖아.”“우리 엄마가 직접 심은 채소가 시장에서 산 것보다 맛있거든.”“그럼. 우리 장모님이 주신 건 다 최고야.”소정남은 뻔뻔스럽게 장모님을 치켜세워주었다.나은서도 소정남의 이런 수단에 잘 속아 넘어갔고 사위가 아들보다 더 낫다고 늘 말하곤 했다.심지어 심효진은 어머니가 사위가 생겼다고 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질투까지 했다.딸이 없었더라면 소정남 같은 사위도 없을 텐데...경호원은 소정남의 요구대로 약국 앞에 차를 세웠다.“여보, 차에서 기다려 기고 있어. 내가 가서 영양제 좀 사 올게. 밖에 너무 더워.”소정남은 차에서 내리며 아내를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고 그는 혼자 약국으로 들어가 처가집
심효진 부모님은 소정남 부부가 점심에 집으로 와서 밥을 먹으려는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차의 경적을 들은 나은서가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제가 잘못 들은 거죠? 경적음이 왠지 우리 집 문 앞에서 울리는 것 같아요.”나은서 부부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소정남 부부는 모두 직업이 있기 때문에 점심에 집으로 와서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심씨 집안의 할머니도 요 며칠 친척 집을 방문하러 나섰기에 집에 계시지 않았다.신범수가 말을 이었다.“개 짖는 소리가 없는 거로 보면 아마도 우리 집 손님이 아닌 것 같아. 옆집 아들이 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나 보네.”“우리 아들은 언제쯤 여자 친구를 데려올 수 있을까요?”나은서는 한숨 쉬면서 말했다.딸이 시집까지 갔건만 아들은 아직도 여자 친구조차 없었다.“우리 아들은 아직도 젊어. 뭐가 그리 급해?”곧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은서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나은서는 바로 수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고 집에서 기르던 큰 개가 마당 정문 앞으로 돌진하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여보, 효진이가 돌아왔어.”나은서는 딸의 차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기뻐하며 남편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계단으로 내려와 한참을 걸은 후에야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고 경호원이 차를 멈추자 뒷좌석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차 문이 열리자 사위가 먼저 보였고 나은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온 얼굴에 이빨밖에 보이지 않았다.“어머님.”소정남은 차에서 내리며 부드러운 말투로 어머님이라고 불렀다.그리고 뒤이어 아내를 부축해 내리려고 몸을 돌렸지만 심효진은 이미 반대편 문에서 내리고 있었다.심효진이 차에서 내릴 때 남편을 도와 물건도 들어 주었다.“우리 사위, 왔어? 밥은? 미리 전화라도 하지.”나은서는 웃으며 물었고 사위 뒤를 힐끗 쳐다보더니 딸이 반대편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녀는 다정하게 사위를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금방 퇴근했는데 효진이가 집밥 먹고 싶다고 해서 바로 여기
여운별은 잠자코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하긴, 여운초가 이미 제 목소리를 들었으니 다음에 제가 변성하면 더 의심할 거예요. 이제 다들 저를 의심하는 거예요? 하지만 하예정은 어떻게 저를 의심했죠? 몇 번 만나보지 못했는데.”용태호는 여운별을 힐끗 쳐다보다가 대답했다.“기억력이 좋거든.”여운별은 말을 잇지 않았다.여운초의 기억력도 아주 좋다.여운초는 10년 가까이 눈이 멀어서 기억력에 의존해야 했다.“그리고 네 눈먼 장님 언니도...”“태호 씨, 여운초는 이제 장님 아니에요. 진작에 시력을 회복했거든요. 전이진 도련님이 신의의 제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을 찾아와서 눈을 치료해 주었다고 들었어요.”여운별은 말하다가 억울한 표정으로 소리쳤다.“그 장님은 왜 이렇게 운이 좋을까!”전이진이 여운초에 접근했을 때 그녀 아직도 장님이었으나 전이진은 싫어하는 기색이 없었다.여운초의 두 고모는 그때 명해은을 만나러 서원 리조트에 찾아가 여운초의 눈이 멀어서 전이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들쑤시기까지 했다.그러나 명해은은 전씨 가문의 사모님은 아무 일도 할 필요 없이 돈 쓸 줄만 알면 된다고 당당하게 쏘아붙였다.그녀의 두 고모를 울분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지만 그렇다고 감히 전씨 가문에서 미치광이처럼 떠들지는 못했다.이제 여운초는 시력을 회복했고 또 전이진과 혼인 신고까지 했다. 그녀가 전씨 가문에서의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기만 할 것이다.내일 저녁에 여운초는 명해은을 따라 연회에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예전에는 상류층에 연회가 있을 때마다 추미자는 여운별을 데리고 참석했지만, 여운초는 절대 데려가지 않았었는데...여운별이 여운초를 심하게 괴롭혔을 때 여운초가 평생 관성의 상류 사회에 들어가지 못할 거라고 비꼬기까지 했다.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다.지금은 여운별은 상류 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었고 여운초는 전이진의 어머니가 데리고 다니며 접대하고 교제하고 있다!여운초는 지금도 여씨 가문의 모든 사업을 관리하고 있다.여운별은 생각하면 할수록 울화가
용태호는 로비의 소파에 앉아 손에 술 한 잔을 들고 여유로운 표정으로 술을 맛보았다.발소리를 듣고도 그는 여운별을 쳐다보지 않았다.여운별은 다가와 가방을 내려놓고 용태호의 옆에 앉으며 애교스럽게 소리쳤다.“태호 씨.”용태호는 그녀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러나 그의 칼처럼 날카로운 눈빛에 여운별은 깜짝 놀랐다.또 무언가 잘못을 저질렀나?“식사하셨어요?”여운별은 더는 애교를 부리지 못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식사하셨어요?”용태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는 몸을 뒤로 젖혔다.“테이블 위에 있는 그 초대장은 네가 내일 저녁 연회에 참석할 때 사용될 거야. 그리고 저기, 너에게 드레스 몇 벌과 보석 몇 세트를 사 놓았어. 마음에 드는 치마를 골라 입어.”용태호는 1인용 소파 위를 쳐다보았다.그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니 그 소파 위에 여러 개의 정교한 가방과 몇 개의 크고 빨간 선물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여운별은 먼저 그 초청장을 들어 펼쳐 보았다.그리고 다시 일어나 드레스와 보석들을 살펴보았다.드레스는 화려하고 정말 예뻤다. 보석은 말할 것도 없이 아주 빛났다.여운별은 좋은 물건들을 본 적도 있고 사용한 적도 있지만, 용태호의 큰 씀씀이 앞에서는 여전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태호 씨, 고마워요.”씀씀이가 이토록 대범한 것으로 보면 용태호의 자산은 아마도 전태윤과 전이진을 능가할 것이다.여운별은 만약 용태호를 도와 일을 성사시켜 그의 마음에 들어서 아이까지 낳는다면 앞으로 자신이 정말 용씨 사모님으로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여운별은 하예정과 여운초보다 더 잘 살아야 했다.그녀는 용태호가 준 선물을 마주하더니 용태호에게서 받은 공포를 단번에 잊은듯했다.용태호 또한 항상 그녀의 목을 조르고 살벌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그땐 단지 그녀에게 경고만 해주고 싶었을 뿐이다.용태호는 웃으며 물었다.“좋아해?”“좋아해요. 태호 씨, 걱정하지 마세요. 내일 밤 반드시 잘할게요. 절대 허점을 드러내지 않고 잘해 볼게요.”용태호는 그녀
그와 동시, 용씨 별장.여운별은 이미 용씨 사모님의 신분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용태호가 그녀에게 사준 별장에도 용씨 성을 붙여주었다.그녀는 어두워질 때까지 밖에서 어슬렁거리다가 별장으로 돌아갔다.차는 여운별을 태워 별장 안으로 들어갔고 별장 내부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여운별은 곧 용태호가 왔을 것으로 추측했다..여운별은 자기도 모르게 좀 긴장되기도 하고 무섭기도 했다.이제 그녀는 용태호에 대한 환상이 깨졌다.처음에 그녀는 앞으로 진짜 용씨 사모님을 대신해 용태호를 정복하면 그가 자신에게 고분고분해 질 것으로 생각했다.그러나 지난번, 용태호는 여운별의 목을 졸라 죽일 뻔했다. 용태호의 살벌하고 음흉한 눈빛을 보고 있자니 그녀는 놀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용태호가 여운별에게 맡긴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면 그가 정말로 여운별을 죽여버릴지도 모른다.감히 다른 생각을 가져 용태호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면 아무런 이익도 얻지 못할 테니까.용태호는 금전적인 방면에서는 매우 대범했다. 아름다운 옷과 보석 세트들은 물론, 돈도 약속했던 것보다 더 많이 주었다.그가 별장으로 오지 않아도 수시로 그녀에게 용돈을 자주 주었다.만약 용태호에게 목이 졸리지 않았다면 여운별은 아마 용태호가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는 거라고 착각했을 것이다.“사모님, 집에 도착했습니다.”차를 멈춘 뒤에도 뒷좌석에 앉아 있던 여운별이 움직이지 않자 경호원은 조용히 몇 분을 더 기다렸다. 그러나 여운별이 여전히 차에서 내리지 않고 앉아있자 경호원은 고개를 돌려 일깨워줄 수밖에 없었다.“집에 도착하셨습니다.”.그러나 이곳은 여운별이 사는 곳이 아니었다!여운별이 속으로 발악했다.그녀의 집은 여씨 가문의 대별장으로 그곳은 그녀가 태어날 때부터 자라왔던 곳이다.그러나 지금 여운초에게 점령당했다. 그리고 더 화가 나는 것은 그 집이 정말로 여운초의 명의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와 남동생을 데리고 그곳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한때 모든 노동자
“이모, 엄마 여기 너무 추워요. 바람도 너무 세요. 비행기에서 내렸는데 바람에 날아갈 뻔했어요.”녀석은 과장되게 말했다.“그럼 옷을 좀 다 입어. 바람에 날아가면 안 되니까. 우빈이가 날아가면 이모가 어디로 찾으러 가야 할지 모르잖아.”우빈은 멋쩍게 웃으며 대답했다.“이모, 거짓말이에요. 바람이 너무 센 건 맞지만 저를 날려 보낼 수 없는걸요. 저는 다 커서 바람이 저를 날려 보낼 수 없어요. 하지만 정말 추워요. 엄마는 여기에 눈이 올 거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눈이 오지 않아요.”강성은 관성보다 확실히 많이 추웠다.다행히 하예정이 우빈의 여행 가방에 두꺼운 옷 몇 벌을 쑤셔 넣었다.“저와 아저씨는 이미 엄마의 새 차에 올랐어요. 차에는 히터가 켜져 있어서 지금은 그렇게 춥지 않아요. 게다가 아저씨가 저를 안아 주시니 저는 더 따뜻해졌어요.”“다행이네. 그럼 이따가 차에서 내릴 때 외투를 더 입는 것을 잊지 마. 이모가 너의 여행 가방에 두꺼운 옷을 넣어놓았거든. 그리고 날씨가 추운데 엄마한테 천천히 운전하라고 하고.”“엄마가 운전하는 게 아니라 일구 삼촌이 운전하고 계세요.”우빈은 강일구와 가장 친했다.그리고 강일구는 하예진을 따라 강성으로 와서 그녀를 보호하도록 했다.우빈은 공항에서 강일구를 만났을 때 뛸 듯이 기뻐했다. 우빈은 강일구가 그를 여러 번 껴안고 돌게 하는 바람에 노동명이 하마터면 질투할 뻔했다.“강일구 아저씨 운전 실력이 매우 안정적이기 때문에 이모께서 안심하라고 전해달래요.”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일구 아저씨가 운전하시니, 그럼 이모가 안심해도 되겠네. 그럼 우빈이 엄마는?”“제 옆에 계세요.”우빈은 하예진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그리고 노동명의 품으로 파고들면서 앳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너무 추워요. 저를 다시 꼭 안아 주세요. 아저씨 품이 너무 따뜻해요.”노동명은 코트를 펼쳐 녀석을 코트 안에 감쌌다.“공항에서 엄마 집까지 거리가 좀 있어. 먼저 좀 자. 도착하면 깨워줄게.”노동명과 하예
그러나 하예정은 어르신들에게 찬물을 끼얹었다.“태윤 씨가 호영 도련님과 고 대표님께서 휴가를 떠나 보름 만에 돌아온다고 했어요. 할머니께서 지금 가시면 놀러 갈 수 있지만, 혼담을 꺼내려면 주인이 집에 없을 때 가면 좀 그렇지 않을까요?”현장의 어르신들은 순간 멍하니 할 말을 잃었다.“그럼 애들이 돌아오면 그때 혼담을 꺼내러 가자. 우리도 가서 고 이사님 부부와 친해져야지.”하예정은 웃으며 말했다.“할머니, 아직도 매우 친하지 않다고 생각하세요?”“전화로는 통화를 많이 했을 뿐 만나본 횟수가 적거든.”하예정은 할 말이 없었다.쌍방의 부모님들은 전화상으로만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만나본 횟수는 많지 않았다.주로 거리가 좀 멀었기 때문이다.“식사하세요.”전태윤이 부엌에서 나와 소리쳤다.전씨 할머니께서 집에 계시니 남자들은 요리하고 여자들은 함께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하기를 기다렸다.평생 딸을 낳아보지 못한 전씨 할머니는 며느리를 딸처럼 아꼈다.손녀가 또 태어나지 못한다면 손자며느리를 손녀로 여기면서 사랑해줄 것이다.전태윤은 꿈에서도 아내의 배 속의 아기가 딸이 되고 싶었다.그렇게 되면 그의 딸은 전씨 가문의 가장 사랑스러운 보물로 될 것이다. 조상처럼 모셔야 하느니라!그러다가도 두 사람이 오랫동안 이 아이를 품었다는 생각에 딸이든 아들이든 전태윤은 태연하게 생각하기로 했다.하예정이 낳은 아이가 꼬리가 달린 아이라 할지라도 전씨 가문의 첫 손자이기 때문에 여전히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랄 테니까.여자들은 몸을 일으켜 식사하러 갔다.“할머니.”전창빈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그는 웃으며 전씨 할머니와 인사했다.전씨 할머니는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그래도 먹을 복이 있나 보다.”“할머니께서는 늘 먹을 복이 많았거든요.”하예정은 할머니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히며 말했다.“할머니, 천천히... 조심하세요.”할머니는 웃으며 말을 이었다.“너야말로 조심해.”전씨 할머니의 시선은 하예정의 배 위에 떨
전현림이 황급히 말했다.“엄마, 이따가 소민이랑 쇼핑하러 갈게요. 우리 여보가 좋아하는 무엇이든 살 거예요. 소민이가 행복하기만 되니까요.”전씨 할머니는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할아버지가 될 사람인데 먼저 자손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해.”“엄마, 저는 항상 태윤이와 창빈의 본보기거든요.”“두 사람 다 부엌에 가서 막내를 도와 얼른 밥해.”“엄마, 밥 드세요! 창빈이가 진작에 다 준비했어요!”전현림은 자랑스러운 듯 소리쳤다.전씨 할머니는 전태윤을 곁눈질했다.전현림은 멋쩍게 웃더니 전태윤에게 눈빛을 보냈다. 전현림 부자는 그제야 모두 주방으로 향했다.두 남자를 떼어낸 할머니는 표정을 바꾸어 웃으며 장소민과 하예정에게 말했다.“좀 이따가 우리 셋이 함께 쇼핑하러 나가자. 나도 오랜만에 쇼핑하지 못했는데 우리 증손녀에게 옷 몇 벌 사줘야겠다.”장소민도 맞장구쳤다.“맞아요. 우리 치마 몇 벌 더 사 와요.”하예정도 바로 말을 이었다.“할머니, 어머님. 아기는 아직 태어나지 않았는데 꼭 딸이라고 장담 못 해요.”전씨 할머니와 장소민은 동시에 하예정을 쳐다보았다.하예정은 바로 수그러들었다.“네. 가요. 가요.”어르신들께 환상을 드리는 것도 나을듯싶다.아기가 태어나 환상이 깨지는 순간 하예정을 탓할 수는 없으니까.하예정은 늘 아들을 낳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전씨 가문에서 몇 대째 딸이 태어나지 못했는데, 과연 하예정이 정말 운 좋게 첫 아이로 딸을 낳을 수 있을까!우빈도 그녀의 배 속에 있는 동생이 남동생이라고 했다.“참, 우빈은?”전씨 할머니는 그제야 우빈이 녀석이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왠지 집으로 돌아온 뒤로 뭐가 빠졌다고 생각되었는데. 우빈이가 없네.”“동명이가 데려갔어?”하예정이 대답했다.“우빈이가 할머니께서 이제야 자신이 생각난다는 사실을 알면 울어버릴걸요? 할머니께서 늘 우빈을 가장 사랑한다고 하셨는데 돌아오신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나셨잖아요.”“주말이라 우빈은 동명 오빠를 따라 강성으로
“우리 형제들은 전부 할머니께서 가르쳐주셨는데 할머니께서 저를 부정하는 것은 자신의 교육 성과를 부정하는 거나 다름없겠네요.”전씨 할머니는 아무 말도 잇지 못하셨다. 그녀의 보배로운 장손은 말주변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었다. 이는 확실히 전부 할머니의 업적이었다. 전씨 할머니가 전태윤에게 하예정이라는 손자며느리와 결혼시켜주었기 때문이다.하예정의 웃음은 멈춘 적 없었다.전씨 할머니가 전태윤과 말다툼할 때마다 하예정은 배꼽이 빠질 정도로 웃고 있었다.“예정아, 우리 태윤이와 말하지 말자. 종일 굳은 표정으로 사람을 대하다니, 너니까 태윤이와 함께 할 수 있지, 다른 여자들은 아마 멀리 쩍 피했을 거야. 애들도 밤에 태윤이를 보면 무서워서 울어버릴걸.”전태윤의 얼굴은 온통 잿빛으로 변해버렸다.“아니에요. 저는 태윤 씨가 아주 좋다고 생각해요. 전혀 무섭지 않거든요. 저에게 엄청 부드럽고 다정하게 자상하게 대해줘요. 저는 마음에 무척 드는걸요.”전태윤은 또 이내 행복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역시 아내밖에 없네.”할머니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쯧쯧... 싱글들이 너희들을 보면 얼마나 괴롭겠어.”“우리가 이렇게 서로 사랑하는 모습이 싫으세요?”전태윤이 되물었다.전씨 할머니는 너무 행복한 웃음 지으며 말을 이었다.“좋지. 너무 좋지. 네가 예정이와 결혼하니 내가 너무 기뻐. 아이고, 누가 처음에 절대로 예정이를 사랑할 리가 없다고, 절대로 아내로 삼지 않겠다고 맹세했는지 몰라...”전태윤은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할머니를 나무랐다.“할머니, 옛날 일은 좀 끄집어내지 마세요.”하예정은 으쓱하며 말을 꺼냈다.“제 남자는 절대로 제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해요.”“난 너의 그 패기가 너무 좋아!”그렇게 두 여자는 서로 마주 보며 웃으며 전태윤을 뒤로한 채 먼저 집 안으로 들어갔다.전태윤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전태윤은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전씨 할머니는 정말 개구쟁이다.또한,
“눈이 보고 싶으면, 아기가 태어난 후에 가서 눈을 구경시켜 줄게.”“네.”부부는 장거리 여행을 거의 하지 않았다.다들 너무 바빴다.전태윤 부부의 차가 막 별장에 들어가 주차되었을 때 전씨 할머니도 돌아왔다.전태윤은 차에서 내려 전씨 할머니의 차로 향했다. 그리고 할머니가 차에서 내리자 할머니께 말을 건넸다.“할머니, 우리를 잊으신 건 아니네요. 예정이가 임신해서 돌봐주러 오시겠다고 하셨으면서 집에 자주 안 오시고. 자꾸 어디로 도망가시는 거예요? 어느 집 어르신이 할머니처럼 말을 안 들어요? 나이가 드셔서도 여기저기 뛰어다니시고. 전화를 걸어도 몇 마디 못 하고 짜증스럽게 끊어버리시잖아요.”전씨 할머니는 손자의 불만에도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내가 뛰어다니는 게 좋다고 생각되지 않아? 내 건강이 좋다는 의미잖아. 내가 만약 침대에서 꿈쩍도 못 하고 누워만 있다면 너희들이 더 골치 아플걸.”“퉤!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우리 할머니는 그러실 리가 없거든요.”하예정이 말했다.전태윤도 엄숙한 표정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는 할머니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손자며느리가 다가오자 전씨 할머니는 즉시 표정을 바꾸어 억울하고 두려운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재빨리 하예정의 뒤로 숨어서 전태윤 힐끗 쳐다보더니 다시 뒤로 숨어 주눅이 드는척했다.“예정아, 태윤이가 조금 전에 잘 욕했어. 자꾸 옛 친구들과 놀기만 하고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내가 말을 안 듣는다고 자꾸 잔소리해.”전태윤은 할 말을 잃었다.전씨 할머니는 또 연기의 달인으로 변신했다.하예정은 할머니의 연기에 맞춰주며 한편으로는 전씨 할머니를 보호하면서 전태윤을 나무랐다.“옛 친구들과 모여서 놀았을 뿐인데 왜 그래요? 나쁜 짓 한 것도 아닌데. 뭐라고 자꾸 하지 마세요.”그리고 돌아서면서 다시 전씨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할머니, 밖에서 너무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나이도 점점 많아지시고 하니 안전에 유의하셔야죠. 그래야 우리도 시름 놓죠
전태윤은 마음이 아팠다.“관리하기 싫으면 상관하지 마. 내가 도와서 지켜보면 되니까. 예정아, 난 네가 평생 아무 걱정 없이 살았으면 좋겠어.”하예정의 손이 그의 아름다운 얼굴을 만지고 있었다.“여보, 당신을 볼 때마다 저는 할머니께 항상 감사드려요. 이렇게 훌륭한 당신과 결혼하게 해주셔서. 그리고 당신 가족들에게도 감사드려요. 저를 미워한 적도 없을뿐더러 제가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말을 한 적도 없어서. 태윤 씨가 나 힘들어하는 걸 가슴 아파 하는 것도 알아요. 저는 이미 당신과 결혼한 이상 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서 제가 짊어질 짐은 전부 질 거예요. 피하지도 거절하지도 않을 거예요. 태윤 씨도 충분히 바쁠 텐데 제가 어찌 또 도와달라고 하겠어요.”하예정은 자신 있게 또 말했다.“모든 것을 잘 해낼 거예요. 제가 불평을 털어놓는 것도 아닌걸요. 알잖아요. 제가 사업에 관심이 엄청 많다는걸.”전태윤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녀를 품에 안고 부비부비한 뒤에야 그녀를 풀어주었다.“익숙해지면 나아질 거야. 우리 엄마도 봐봐. 수십 년 동안 관리해왔기 때문에 이미 익숙해져서 엘리트 직원들도 많이 배양하셨잖아. 지금은 장부만 잘 확인하면 그뿐이거든. 너도 이제 우리 가문에 들어왔으니 아기가 태어나면 장차 적응해서 너만의 심복을 키워 우리 엄마처럼 믿을만한 부하 직원에게 맡겨.”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어머님께 배울게요. 빨리 일 보세요. 일 끝나면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어요. 어머님께서 방금 메시지로 오늘 저녁에 밥 먹으러 오라고 하셨어요. 창빈 도련님께서 직접 요리한다고 하셨는데.”전창빈은 곧 멀리 떠나야 했기에 그로 인해 싸운 부모님께 보상해드릴 겸 함께 식사하러 왔다.이번 주말에도 부모님을 잘 모시다가 월요일에 비행기를 타고 원림성의 A시로 날아가 선우씨 가문에 가정 요리사에 지원할 계획이다.멀리까지 가서 요리사로 되는데 전창빈은 선우민아가 그를 채용하지 않을까 봐 그녀에게 자신이 전씨 가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