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효진이 임신한 뒤로 소정남의 부모님, 심지어 사촌들까지도 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를 소중히 여겼고 그녀가 다칠까 봐 이러쿵저러쿵 아무런 일도 못 하게 간섭했다.그리고 매일 영양사의 요구에 따라 하루 세끼를 먹였고 그녀가 다칠까 봐 자주 외출하지 못하게 요구까지 했다.집안 어르신들은 심효진이 집에만 앉아 배 속의 아기를 돌보기를 바랐다.심효진이 나가서 쇼핑하고 싶으면 집안 어르신들은 그녀를 설득해서 못 나가게 했고 사고 싶은 것들을 리스트로 만들어 집사에게 주어 집사가 외출하여 구매해 오도록 했다.이런 귀빈 생활을 하예정마저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녀는 임신하자마자 전태윤을 찾아 담판을 지었다.비교가 있으면 상처도 더 큰 법.하예정이 임신이 안 됐을 때 소정남이 심효진한테 잘해주는 것에게 대해, 소씨 가문 어르신들이 심효진에게 대한 행동들에 관해 심효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하지만 하예정이 임신한 뒤로 전씨 가문과 전태윤이 하예정을 이해해주는 것을 보면서 심효진은 무척 부러웠고 결국 참다못해 남편에 불평을 늘어놓게 되었다.가끔 심효진도 자신이 행복에 겨운 줄 모른다고 생각했다.얼마나 많은 임산부가 임신해서 집에서 푹 쉬기를 바라겠는가!하지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여전히 직장을 다녀야 했고 임신 말기가 되어서야 집에서 쉬었다.하지만 심효진은 출근하지 않으면 너무 지루하다고 생각했다.“고마워.”심효진은 남편의 큰 손을 잡아당겨 자신의 얼굴에 올려놓았다.소정남은 심효진에게 말 할 것 없이 잘 해주었다.기성세대의 사상을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하지만 소정남은 최선을 다해 아내를 보호하고 있다.“방금 내가 한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마. 그저 순간적으로 감정 기복이 심해져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야.”소정남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심효진도 너무 잘 알고 있었다.방금 한 말들이 소정남에게로 말하면 그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었다.“내가 마음에 둘리가 없잖아. 나한테 불만이 있으면 마음속에 담아두지 말고 바로
소정남은 심효진이 행복에 겨워도 행복에 겨운 줄 모른다는 말을 매우 듣기 싫어했다.전혀 그러한 생각을 할 필요 없기 때문이다.소정남은 심효진이 절친들과 날개를 펴고 날아다니려 할 때 그녀를 구속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슨 일이든지 모두 지지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다.심효진은 남편의 품에서 고개를 쳐들었다.소정남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에 뽀뽀를 몇 번 해버렸다. 그는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그녀의 귓가에 몇 마디 속삭였고 결국 아내에게 꼬집혀 밀려났고 심효진은 붉어진 얼굴로 이내 일어났다.소정남도 낮은 소리로 웃었다.경호원이 운전 중이라 소정남은 더는 아내에게 다른 행동을 하지 못했다.“앞쪽 약국에 주차해 주세요.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영양제 좀 사다 줘야 해요.”소정남은 경호원에게 당부했다.두 사람은 문득 갑자기 친정집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했기 때문에 선물을 미리 준비하지 못했다.심효진이 말했다.“우리 엄마 집으로 갈 때마다 이렇게 많이 사 들고 갈 필요 없어. 매번 손에 가득 쥐고 들어가면 엄마가 또 뭐라고 하실 텐데.”소정남은 빙그레 웃었다.“보양식만 조금 살 거야. 돈도 얼마 안 드는걸. 게다가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어머님은 매번 채소들을 큰 봉지에 담아서 우리 차에 가득 실어주시잖아.”“우리 엄마가 직접 심은 채소가 시장에서 산 것보다 맛있거든.”“그럼. 우리 장모님이 주신 건 다 최고야.”소정남은 뻔뻔스럽게 장모님을 치켜세워주었다.나은서도 소정남의 이런 수단에 잘 속아 넘어갔고 사위가 아들보다 더 낫다고 늘 말하곤 했다.심지어 심효진은 어머니가 사위가 생겼다고 딸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모습을 보며 질투까지 했다.딸이 없었더라면 소정남 같은 사위도 없을 텐데...경호원은 소정남의 요구대로 약국 앞에 차를 세웠다.“여보, 차에서 기다려 기고 있어. 내가 가서 영양제 좀 사 올게. 밖에 너무 더워.”소정남은 차에서 내리며 아내를 차에서 내리지 못하게 했고 그는 혼자 약국으로 들어가 처가집
심효진 부모님은 소정남 부부가 점심에 집으로 와서 밥을 먹으려는 계획을 모르고 있었다.차의 경적을 들은 나은서가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제가 잘못 들은 거죠? 경적음이 왠지 우리 집 문 앞에서 울리는 것 같아요.”나은서 부부는 점심을 먹고 있었다.소정남 부부는 모두 직업이 있기 때문에 점심에 집으로 와서 밥 먹을 시간이 없었다.심씨 집안의 할머니도 요 며칠 친척 집을 방문하러 나섰기에 집에 계시지 않았다.신범수가 말을 이었다.“개 짖는 소리가 없는 거로 보면 아마도 우리 집 손님이 아닌 것 같아. 옆집 아들이 또 여자 친구를 데리고 왔나 보네.”“우리 아들은 언제쯤 여자 친구를 데려올 수 있을까요?”나은서는 한숨 쉬면서 말했다.딸이 시집까지 갔건만 아들은 아직도 여자 친구조차 없었다.“우리 아들은 아직도 젊어. 뭐가 그리 급해?”곧 밖에서 문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나은서 부부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나은서는 바로 수저를 내려놓고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갔고 집에서 기르던 큰 개가 마당 정문 앞으로 돌진하며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보았다.“여보, 효진이가 돌아왔어.”나은서는 딸의 차를 보더니 고개를 돌려 기뻐하며 남편을 향해 외쳤다. 그리고 계단으로 내려와 한참을 걸은 후에야 비로소 발걸음을 멈추었고 경호원이 차를 멈추자 뒷좌석의 문 앞으로 다가갔다.차 문이 열리자 사위가 먼저 보였고 나은서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온 얼굴에 이빨밖에 보이지 않았다.“어머님.”소정남은 차에서 내리며 부드러운 말투로 어머님이라고 불렀다.그리고 뒤이어 아내를 부축해 내리려고 몸을 돌렸지만 심효진은 이미 반대편 문에서 내리고 있었다.심효진이 차에서 내릴 때 남편을 도와 물건도 들어 주었다.“우리 사위, 왔어? 밥은? 미리 전화라도 하지.”나은서는 웃으며 물었고 사위 뒤를 힐끗 쳐다보더니 딸이 반대편에서 내리는 모습을 발견했다.그녀는 다정하게 사위를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금방 퇴근했는데 효진이가 집밥 먹고 싶다고 해서 바로 여기
집에서 닭을 잡기에 그녀는 다리와 날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먹지 않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산후조리를 할 때, 영양 결핍은 걱정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 엄마가 산후조리를 했을 때는 한 달에 닭도 몇 마리밖에 먹지 못했어. 그리고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엄마, 아빠가 다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야.”나은서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온 심효진을 꾸짖으면서도 그녀가 무거워할까 봐 얼른 받아서 들었다.집 안으로 들어가자, 심범수는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 그릇과 젓가락을 꺼내왔다.심범수와 나은서는 규칙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서 경호원들과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익숙했다.심효진은 자리에 앉으려다가 나은서가 직접 담근 장아찌를 보고 말했다.“엄마, 흰죽 있어요? 나 오늘따라 흰죽에다가 장아찌를 올려서 먹고 싶어요.”시댁의 영양사는 장아찌에 염분이 많다면서 못 먹게 했기에 심효진은 오랜만에 본 장아찌에 군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마침, 아침에 끓여 놓은 게 있는데, 먹고 싶으면 엄마가 데워줄게.”나은서는 심효진이 시집을 간 후로 끼니마다 영양사가 차려주는 산해진미를 먹는다는 것과 서점에 출근할 때도 소정남이 음식을 배달시켜 주거나 사돈댁에서 사람을 시켜서 보내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소정남의 눈치를 살폈다.소정남도 나은서의 생각을 읽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어머님, 저도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밥 대신 죽이 더 먹고 싶네요.”“알겠어, 내가 가서 데워줄게. 미리 집에 온다고 연락했으면 신선한 죽을 끓여줬을 텐데.”나은서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에 끓인 죽을 데우기 시작했고, 평소 선풍기만 켜던 심범수도 얼른 모든 창문을 닫고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켰다.얼마 후, 나은서는 큰 냄비에 죽을 담아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두 사람한테 먹고 싶은 만큼 퍼서 먹으라고 했다.심효진은 임신한 후, 식욕이 폭발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그릇을 먹어 치웠다.그녀가 한 그릇을 더 뜨려고 하자
밥을 다 먹은 후, 소정남와 심범수는 이야기를 나누러 서재로 들어갔고, 심효진은 나은서를 도와 설거지를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엄마, 예정이가 드디어 임신했대요.”하예정은 심효진의 오랜 친구였고, 나은서도 그녀를 친딸처럼 생각하면서 결혼하고 나서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정말?”나은서는 갑작스러운 좋은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하느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예정이도 임신했다니 이제 정말 한시름 놓았어. 너는 의지할 친정이라도 있지만, 예정이는 언니밖에 없잖아. 비록 기현의 엄마가 옆에서 돌봐 준다고 해도 어쨌든 큰이모라서 크게 신경 쓰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제 임신했다니 전씨 가문에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너무 다행이야!”“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윤 씨는 예정이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전씨 할머니께서 직접 고른 손자며느리를 누가 감히 내쫓을 수 있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예정이가 잘되는 게 배가 아파서 그렇게 떠들고 다닐 뿐이에요.”심효진은 전태윤한테서 딩크족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하예정이 아이를 낳지 못해도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그래도 예정이가 임신해서 너무 다행이야.”나은서는 기쁨에 겨워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이제 엄마는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난 우리 딸과 예정이가 모두 시댁에서 자리를 잡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나저나 언제 임신했다는 걸 알았어?”“어제 알았대요. 요즘 따라 졸음이 쏟아져서 과로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다가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임신이라고 했대요.”나은서는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너도 다 겪어봤으면서 예정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아들이 있는 예진 언니도, 예전 언니 아들의 육아를 도맡아왔던 예정이도 아예 생각하지 못했잖아요.”심효진을 설거지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그래도 가슴에 맺혀
김진우는 지금 김씨 그룹의 계열사에서 본사로 다시 돌아왔고, 심미란의 주선으로 거물급 명문가의 아가씨를 만나 연애하고 있었다.그도 자기에 대한 전태윤의 적대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결혼밖에 답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 예정이가 태윤 씨랑 연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진우를 만났대요. 엄마, 태윤 씨가 두 사람이 그저 예의상 인사를 나눈 걸로 안색이 어두워졌다던데 다음에 진우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예정이의 임신 소식을 조용히 전해주는 게 어때요? 진우가 마음을 다잡고 지금 만나는 아가씨랑 잘 지내다가 결혼까지 하면 좋잖아요.”심효진은 진태윤과 초고속으로 결혼한 하예정이 김진우를 동생으로만 생각한다는 걸 알았기에, 김진우가 하예정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애초부터 극구 반대하면서 마음을 접을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그러나 김진우는 하예정에 대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져 갔고 결국 김진우까지 그 사실을 알고 김종헌한테 직접 찾아가 아들이 자기 여자를 탐내지 못하도록 잘 관리하라고 경고했다.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김진우는 관성에서 쫓겨나 그룹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파견 당하고 말았다.그 후로 심효진과 소정남이 결혼하면서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사돈 사이가 되었고, 진태윤은 심효진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더 이상 김씨 가문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아서 큰 치명타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알았어, 내가 네 고모한테 잘 얘기할게.”나은서도 처제한테서 진태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김진우가 하예정을 포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래도 진우가 아직 스물세 살밖에 안 됐으니까 지금 당장 결혼하지는 너무 빨라. 아마 몇 년 더 연애하다가 스물일곱 살 정도에 결혼하지 않을까?”나은서는 심효진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너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잖아. 시댁 식구들이 아직도 많이 간섭해?”“이제 괜찮아요. 정남 씨가 많이 나서줘서 서점 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어요.”심효진은 시댁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았지만, 불편한
심효진과 소정남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소정남은 그 파티 이후로 심효진에 대한 인상이 깊어졌었고, 진태윤이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에 선뜻 소개팅 자리에 나갔었다.“엄마, 솔직히 말해서 예정이의 상황은 나보다 훨씬 나아요. 그녀의 시댁 식구들은 개방적이고, 집안에서 태윤 씨의 말이 절대적인 데다가 할머니까지 나서서 보호해 주니까 아무리 임신했다고 해도 크게 간섭하지 못할 거예요.”심효진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예정이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그럴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서점 운영을 해야 하고, 예정이와 소현이랑 채소 농장에 가려고 해도 멀다면서 못 가게 해요.”사실 채소 농장은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효진아, 너무 불평하지 마. 시댁에서 첫 며느리인 네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까 다들 걱정하는 것뿐이야. 잘 생각해 봐, 무관심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 않아?”나은서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심효진을 타이르기 시작했다.“너도 이제 시집갔으니까 더 이상 예전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 안 돼. 엄마, 아빠는 너의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어도 시댁은 완전히 달라.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과 시댁 식구들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야.”“이제 생각해 보니 결혼을 안 했을 때가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그때 엄마는 내가 집에서 놀고먹는 게 꼴 보기 싫다고 시집가라고 자꾸 재촉하셨잖아요.”설거지를 마친 심효진이 나은서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냥 엄마 앞이라 푸념한 거예요. 나도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어요.”“알면 됐어, 정남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이런 걸 각오하는 게 맞아. 사실 네 시댁의 규칙은 고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네 고모는 신혼 때 매일 일찍 일어나 시부모님께 아침밥을 차려드려야 했고, 시부모님이 젓가락을 들기 전까지는 먹지도 못했으며, 식사하는 동안 계속 시중을 들어야 했어. 그야말로 월급도 못 받는 하인
나은서는 계속 침착하게 심효진을 타일렀다.“효진아, 예정이와 자꾸 비교하지 마, 예정이는 예전에 무술을 배운 적이 있어서 몸이 튼튼하지만, 넌 상황이 다르잖아.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즐거운 법이고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점점 더 작아지고 불행해져.”심효진은 나은서의 충고에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알겠어요. 이제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게요. 정남 씨도 내가 다른 임산부들처럼 배가 불러오고 나서도 악착같이 일할 필요 없이 그저 편안한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정남이가 너한테 잘해준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네 시댁 식구들도 널 친딸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거야. 10달 동안 네가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해.”심효진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효진아. 엄마가 예정이한테 줄 영양제들을 챙길 테니까 넌 과일을 좀 씻어서 아빠랑 정남이한테 가져다줘. 물론 예정이가 이런 게 부족한 건 아니겠지만, 엄마의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하예정이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아이들과 싸우는 바람에 가방끈이 끊어졌고 옷도 구질구질해졌다.그때 심효진은 하예진이 알까 봐 두려워 감히 셋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하예정을 자기의 집으로 데려왔다.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자, 나은서는 하예정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하예정의 책가방을 기워줬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킨 후 효진의 옷으로 갈아입혔다.나은서는 아직도 그날 하예정의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려주면서 왜 싸웠냐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눈에는 하예정이 너무나 온순해 보여서 반 친구들과 갈등이 생겨도 기껏해서 말다툼만 할 뿐, 주먹다짐은 안 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나은서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하예정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예정아, 왜 그래? 누구한테 맞은 거야? 어디 다쳤는지 아줌마한테 보여줄래?”하예정은 나은서가 곁으로 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