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닭을 잡기에 그녀는 다리와 날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먹지 않았다.“요즘 젊은이들은 산후조리를 할 때, 영양 결핍은 걱정 안 해도 되고 얼마나 좋아. 엄마가 산후조리를 했을 때는 한 달에 닭도 몇 마리밖에 먹지 못했어. 그리고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니까 뭘 이렇게 많이 사 왔어, 엄마, 아빠가 다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야.”나은서는 양손 가득 선물을 들고 온 심효진을 꾸짖으면서도 그녀가 무거워할까 봐 얼른 받아서 들었다.집 안으로 들어가자, 심범수는 부엌으로 급히 들어가 그릇과 젓가락을 꺼내왔다.심범수와 나은서는 규칙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라서 경호원들과 한 식탁에 앉아 밥을 먹는 것이 익숙했다.심효진은 자리에 앉으려다가 나은서가 직접 담근 장아찌를 보고 말했다.“엄마, 흰죽 있어요? 나 오늘따라 흰죽에다가 장아찌를 올려서 먹고 싶어요.”시댁의 영양사는 장아찌에 염분이 많다면서 못 먹게 했기에 심효진은 오랜만에 본 장아찌에 군침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마침, 아침에 끓여 놓은 게 있는데, 먹고 싶으면 엄마가 데워줄게.”나은서는 심효진이 시집을 간 후로 끼니마다 영양사가 차려주는 산해진미를 먹는다는 것과 서점에 출근할 때도 소정남이 음식을 배달시켜 주거나 사돈댁에서 사람을 시켜서 보내준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소정남의 눈치를 살폈다.소정남도 나은서의 생각을 읽었는지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어머님, 저도 날씨가 더워서 그런지 밥 대신 죽이 더 먹고 싶네요.”“알겠어, 내가 가서 데워줄게. 미리 집에 온다고 연락했으면 신선한 죽을 끓여줬을 텐데.”나은서는 곧장 부엌으로 들어가 아침에 끓인 죽을 데우기 시작했고, 평소 선풍기만 켜던 심범수도 얼른 모든 창문을 닫고 거실에 있는 에어컨을 켰다.얼마 후, 나은서는 큰 냄비에 죽을 담아서 식탁 위에 올려놓았고, 두 사람한테 먹고 싶은 만큼 퍼서 먹으라고 했다.심효진은 임신한 후, 식욕이 폭발했는지 눈 깜짝할 사이에 두 그릇을 먹어 치웠다.그녀가 한 그릇을 더 뜨려고 하자
밥을 다 먹은 후, 소정남와 심범수는 이야기를 나누러 서재로 들어갔고, 심효진은 나은서를 도와 설거지를 하면서 담소를 나눴다.“엄마, 예정이가 드디어 임신했대요.”하예정은 심효진의 오랜 친구였고, 나은서도 그녀를 친딸처럼 생각하면서 결혼하고 나서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정말?”나은서는 갑작스러운 좋은 소식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고 이내 기도하는 자세를 취하면서 말했다.“하느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예정이도 임신했다니 이제 정말 한시름 놓았어. 너는 의지할 친정이라도 있지만, 예정이는 언니밖에 없잖아. 비록 기현의 엄마가 옆에서 돌봐 준다고 해도 어쨌든 큰이모라서 크게 신경 쓰지 못할 거야. 그래도 이제 임신했다니 전씨 가문에서 쫓겨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너무 다행이야!”“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태윤 씨는 예정이를 절대 버리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전씨 할머니께서 직접 고른 손자며느리를 누가 감히 내쫓을 수 있겠어요! 주위 사람들이 예정이가 잘되는 게 배가 아파서 그렇게 떠들고 다닐 뿐이에요.”심효진은 전태윤한테서 딩크족이라도 상관없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에 하예정이 아이를 낳지 못해도 이혼하지 않을 거라는 걸 굳게 믿고 있었다.“그래도 예정이가 임신해서 너무 다행이야.”나은서는 기쁨에 겨워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이제 엄마는 주위 사람들이 뭐라고 떠들든 상관하지 않을 거야. 난 우리 딸과 예정이가 모두 시댁에서 자리를 잡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 거라고 믿어! 그나저나 언제 임신했다는 걸 알았어?”“어제 알았대요. 요즘 따라 졸음이 쏟아져서 과로 때문이라고만 생각하다가 병원에 가서 검사해 보니 임신이라고 했대요.”나은서는 나지막하게 웃으면서 물었다.“너도 다 겪어봤으면서 예정이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안 들었어?”“아들이 있는 예진 언니도, 예전 언니 아들의 육아를 도맡아왔던 예정이도 아예 생각하지 못했잖아요.”심효진을 설거지하면서 말을 이어 나갔다.“그래도 가슴에 맺혀
김진우는 지금 김씨 그룹의 계열사에서 본사로 다시 돌아왔고, 심미란의 주선으로 거물급 명문가의 아가씨를 만나 연애하고 있었다.그도 자기에 대한 전태윤의 적대감을 떨쳐버리기 위해서는 결혼밖에 답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지난번 예정이가 태윤 씨랑 연회에 참석했다가 우연히 진우를 만났대요. 엄마, 태윤 씨가 두 사람이 그저 예의상 인사를 나눈 걸로 안색이 어두워졌다던데 다음에 진우가 우리 집에 놀러 오면 예정이의 임신 소식을 조용히 전해주는 게 어때요? 진우가 마음을 다잡고 지금 만나는 아가씨랑 잘 지내다가 결혼까지 하면 좋잖아요.”심효진은 진태윤과 초고속으로 결혼한 하예정이 김진우를 동생으로만 생각한다는 걸 알았기에, 김진우가 하예정을 좋아한다는 소리에 애초부터 극구 반대하면서 마음을 접을 것을 강력하게 권고했다.그러나 김진우는 하예정에 대한 마음이 날이 갈수록 깊어져 갔고 결국 김진우까지 그 사실을 알고 김종헌한테 직접 찾아가 아들이 자기 여자를 탐내지 못하도록 잘 관리하라고 경고했다.그 일이 있고 난 뒤로, 김진우는 관성에서 쫓겨나 그룹 계열사의 평범한 회사원으로 파견 당하고 말았다.그 후로 심효진과 소정남이 결혼하면서 소씨 가문과 심씨 가문이 사돈 사이가 되었고, 진태윤은 심효진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 더 이상 김씨 가문에 대한 압박을 가하지 않아서 큰 치명타는 면할 수 있게 되었다.“알았어, 내가 네 고모한테 잘 얘기할게.”나은서도 처제한테서 진태윤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기에 김진우가 하예정을 포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기는 마찬가지였다.“그래도 진우가 아직 스물세 살밖에 안 됐으니까 지금 당장 결혼하지는 너무 빨라. 아마 몇 년 더 연애하다가 스물일곱 살 정도에 결혼하지 않을까?”나은서는 심효진에게 가까이 다가가면서 나지막하게 물었다.“너 이제 안정기에 들어섰잖아. 시댁 식구들이 아직도 많이 간섭해?”“이제 괜찮아요. 정남 씨가 많이 나서줘서 서점 일은 내가 도맡아 하고 있어요.”심효진은 시댁에서 국보급 대우를 받았지만, 불편한
심효진과 소정남의 만남은 운명적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소정남은 그 파티 이후로 심효진에 대한 인상이 깊어졌었고, 진태윤이 그녀를 소개해 주겠다는 말에 선뜻 소개팅 자리에 나갔었다.“엄마, 솔직히 말해서 예정이의 상황은 나보다 훨씬 나아요. 그녀의 시댁 식구들은 개방적이고, 집안에서 태윤 씨의 말이 절대적인 데다가 할머니까지 나서서 보호해 주니까 아무리 임신했다고 해도 크게 간섭하지 못할 거예요.”심효진은 풀이 죽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예정이는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을지 몰라도 난 그럴 수가 없어요.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으면서 서점 운영을 해야 하고, 예정이와 소현이랑 채소 농장에 가려고 해도 멀다면서 못 가게 해요.”사실 채소 농장은 차로 한 시간 남짓한 거리에 있었다.“효진아, 너무 불평하지 마. 시댁에서 첫 며느리인 네가 아이를 가졌다고 하니까 다들 걱정하는 것뿐이야. 잘 생각해 봐, 무관심보다는 지금이 훨씬 낫지 않아?”나은서는 잠시 숨을 고르다가 심효진을 타이르기 시작했다.“너도 이제 시집갔으니까 더 이상 예전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철없는 생각을 하면 안 돼. 엄마, 아빠는 너의 모든 걸 포용할 수 있어도 시댁은 완전히 달라. 여자는 결혼하면 남편과 시댁 식구들부터 먼저 생각해야 하는 거야.”“이제 생각해 보니 결혼을 안 했을 때가 편하고 좋았어요. 그런데 그때 엄마는 내가 집에서 놀고먹는 게 꼴 보기 싫다고 시집가라고 자꾸 재촉하셨잖아요.”설거지를 마친 심효진이 나은서의 눈치를 살피면서 나지막하게 말했다.“그냥 엄마 앞이라 푸념한 거예요. 나도 내가 지금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어요.”“알면 됐어, 정남이와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그날부터 이런 걸 각오하는 게 맞아. 사실 네 시댁의 규칙은 고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네 고모는 신혼 때 매일 일찍 일어나 시부모님께 아침밥을 차려드려야 했고, 시부모님이 젓가락을 들기 전까지는 먹지도 못했으며, 식사하는 동안 계속 시중을 들어야 했어. 그야말로 월급도 못 받는 하인
나은서는 계속 침착하게 심효진을 타일렀다.“효진아, 예정이와 자꾸 비교하지 마, 예정이는 예전에 무술을 배운 적이 있어서 몸이 튼튼하지만, 넌 상황이 다르잖아. 모든 일에 만족할 줄 알아야 즐거운 법이고 항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점점 더 작아지고 불행해져.”심효진은 나은서의 충고에 마음속의 응어리가 풀리는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알겠어요. 이제부터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을게요. 정남 씨도 내가 다른 임산부들처럼 배가 불러오고 나서도 악착같이 일할 필요 없이 그저 편안한 생활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요.”“정남이가 너한테 잘해준다는 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고, 네 시댁 식구들도 널 친딸이라고 생각하고 이런저런 간섭을 하는 거야. 10달 동안 네가 긍정적인 태도를 가져야 산모와 아이가 모두 건강해.”심효진은 또다시 고개를 끄덕였다.“효진아. 엄마가 예정이한테 줄 영양제들을 챙길 테니까 넌 과일을 좀 씻어서 아빠랑 정남이한테 가져다줘. 물론 예정이가 이런 게 부족한 건 아니겠지만, 엄마의 작은 성의라고 생각해.”하예정이 열한 살이 되던 해, 그녀는 아이들과 싸우는 바람에 가방끈이 끊어졌고 옷도 구질구질해졌다.그때 심효진은 하예진이 알까 봐 두려워 감히 셋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하예정을 자기의 집으로 데려왔다.두 사람이 집으로 돌아오자, 나은서는 하예정을 반갑게 맞이하면서 하예정의 책가방을 기워줬고, 따뜻한 물로 목욕을 시킨 후 효진의 옷으로 갈아입혔다.나은서는 아직도 그날 하예정의 머리를 헤어드라이어로 말려주면서 왜 싸웠냐고 물었던 기억이 생생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눈에는 하예정이 너무나 온순해 보여서 반 친구들과 갈등이 생겨도 기껏해서 말다툼만 할 뿐, 주먹다짐은 안 할 거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그러나 나은서의 걱정스러운 물음에도 하예정은 눈물만 뚝뚝 흘릴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예정아, 왜 그래? 누구한테 맞은 거야? 어디 다쳤는지 아줌마한테 보여줄래?”하예정은 나은서가 곁으로 와서
하예정의 옷이 모두 더러워졌고 책가방의 끈도 그들에게 잡아당겨서 끊어졌다.그래서 그녀는 언니가 알면 속상할까 봐 월세방으로 돌아가지 못했다.언니는 고등학교에 다녀서 공부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었다. 게다가 집에 돈도 별로 없었다.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받은 보상금은 할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 등이 나눠 가졌고 두 자매에게 조금만 남겨주었다.언니는 돈을 절약해서 사용해야 두 자매가 대학까지 다닐 수 있다고 하였다.그래서 하예정은 언니가 망가진 책가방을 보면 꼭 돈을 써서 새 가방을 사줄 것이라고 생각해서 감히 집에 갈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다행히 평소에 친하게 지냈던 친구 심효진이 그녀를 자기 집으로 데려갔다.심효진의 어머니인 나은서는 그때 많이 놀랐고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하예정을 안아주고 위로해 주었다. 언니가 발견하지 못하게 책가방의 끈을 꼭 수선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리고 하예정의 더러워진 옷도 깨끗이 빨아주었고 마르면 자신의 옷으로 갈아입을 수 있게 하였다.나은서는 하예정의 교복 사이즈가 크다는 것을 발견했다.이에 하예정은 예전의 교복이 작아서 언니의 교복을 주워 입은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언니는 다섯 살 위여서 옷이 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나은서는 옷을 만들 줄 알고 전기 재봉틀도 사용할 줄 알아서 하예정의 사이즈가 맞지 않는 교복을 몸에 맞게 수선해 주었다.며칠 지난 일요일에 하예진이 여동생을 데리고 사과 한 봉지를 사서 방문하여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나은서에게 있어서 하예정은 자기 딸의 동창이고 옷을 조금 수선해 주는 것은 그냥 사소한 일에 불과했다. 그러나 하예정 자매에게 있어서 나은서는 그들에게 따뜻함을 주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두 자매는 서로 의지하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다. 따뜻하고 차가운 인정과 친척의 무정함을 뼈저리게 느낀 후 나은서가 한 사소한 일은 겨울날의 따뜻한 햇살처럼 두 자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엄마가 키운 닭도 계란을
“엄마, 지금 바로 예정이에게 갖다주실 거예요?”심효진은 사과를 먹으면서 물었다.“당연히 지금 보내야지. 넌 저녁 먹고 갈 거야? 내가 예정이에게 물건을 보내고 돌아온 후 바로 저녁 준비할게.”나은서는 차 문을 열고 차에 올라타면서 딸에게 물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을 불렀다.“여보, 같이 가요. 이따가 물건을 위층으로 옮기는 것을 도와줘야죠.“심범수는 웃으면서 말하였다.“당신 안 불러도 따라가려고 했어.”그는 조수석의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그러고 나서 딸과 사위에게 몇 마디 당부하고 나서 떠났다.소정남은 집 앞의 계단에 서서 장인과 장모가 하예정에게 많은 물건을 준비했고 또 다급히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고 마당의 문을 닫고 걸어 나오는 아내에게 말했다.“하예정에게 준 물건은 당시 우리 집에 보내준 것과 비슷한 것 같네.”“난 예정이와 십여 년 동안 친하게 지냈어. 엄마, 아빠도 예정이를 보고 자라서 벌써 딸로 여겼지. 지금 예정이가 임신했으니 엄마도 기뻐서 당연히 뭐 좀 챙겨줘야지.”심효진은 부모님의 행동은 정상적인 반응이라고 생각했다.“좀 휴식하자.”소정남은 아내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갔다.“출근하려면 가. 난 좀 자고 나서 가게로 갈게.”“너랑 같이 자고 싶어. 네가 잠들면 회사로 갈게. 전씨 그룹은 전태윤의 것인데 쟤가 출근하지 않고 내가 가서 소처럼 일해줘야 하다니. 하, 전생에 내가 쟤한테 빚을 졌나 봐.”소정남은 불만이 있어도 결국은 다시 회사에 돌아가서 출근했다....관성 공항.성소현은 가방을 팔에 걸고 예준하와 깍지를 끼면서 걸어가고 있었다예준하는 그녀의 캐리어를 끌어주었다.사실 그는 성소현과 급히 관성에 올 필요가 없었다. 친조카가 막 백일 잔치를 치렀으니까. 하지만 성소현은 하예정이 임신한 사실을 듣고 마음이 조급해서 돌아오고 싶었다. 그래서 예준하도 자연스럽게 그녀와 함께 돌아오게 되었다.두 사람은 걸으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성소현의 기분이 현저하게 좋아 보였다. 예준하는 그녀가 기분이 좋은 것
“소현 씨.”앞에서 귀에 익은 소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원래 기분이 좋은 성소현과 예준하는 소지훈의 건방지게 웃는 얼굴을 마주 보기 싫어서 손오공처럼 변신해서 당장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소지훈은 너무 건방졌다. 성소현 옆에 예준하가 있고 두 사람이 깍지를 끼고 친밀하게 있는 모습을 봤으면서 여전히 눈꼴 사나운 사랑의 훼방꾼으로 되려고 하였다.예준하의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졌다.그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미리 성소현과 같이 관성에 오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성소현을 홀로 보냈다면 소지훈을 따라서 갔을지도 모른다. 소지훈은 분명히 성소현에게 진심이 아니면서 이렇게 매달리다 못해 매일 선물을 사다 줄 뿐만 아니라 성소현이 관성을 떠나면 공항까지 배웅해 주고 마중도 나와서 어찌 보면 자기보다 더 부지런했다.“소현 씨, 저 여기서 30분 기다렸는데 드디어 왔네요. 벌써 가신 줄 알았어요.”소지훈은 검은 선글라스와 검은 마스크를 썼고 올블랙을 입어서 자신의 모습을 빈틈없이 가려주었다. 그리고 평소에 잘 나타나지 않아서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다.예전 같았으면 성소현과 예준하도 소지훈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소지훈에게 한동안 ‘구애’를 당한 후 성소현은 쉽게 소지훈을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예준하는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는 소지훈을 연적으로 간주했기에 소지훈의 목소리를 잘 기억하고 있었다. 소지훈이 입만 열면 예준하는 온몸의 신경이 곤두섰고 잘생긴 얼굴도 숯처럼 검게 변한다.도대체 어느 놈이 자기에게 소지훈 같은 ‘연적’을 심어둔 거야?!다른 사람이라면 예준하는 벌써 연적을 때려눕혔다. 하지만 상대가 소지훈이어서 그는 속수무책이었다. 소지훈의 미움을 사면 도리어 그에게 감당할 수 없는 억압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예준하는 형에게 불평을 토로한 적이 있었다. 본인은 하늘에 어긋나는 일을 한 적이 없고 감정도 진지하게 대했는데 하늘이 왜 그에게 이런 사랑의 시련을 줬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이전에 예준하는 전태윤이 초고속 결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