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영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현은 시선을 거두고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대표님, 먼저 하루 호텔로 갈까요?”기사가 운전하면서 고현에게 공손하게 물었다.“네.”고현이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고진호가 한 말을 기사와 경호원도 들었다.기사는 더는 말이 없었다.조수석에 앉아 있던 경호원이 고개를 돌려 고현과 전호영을 바라보았다.고현은 눈을 감고 휴식하고 있었고 전호영은 잠이 들어 두 사람은 아무 말이 없었다. 전호영이 취해서 잠이 들었기에 말을 못 하는 것이 당연하다.경호원은 이내 고개를 돌리면서 속으로 고현의 처지를 안타깝게 생각했다.그렇게 우수하고 한결같이 순결을 지켜오며 절대로 스캔들에 휘말리지 않던 고 대표님이 관성에서 온 전씨 가문 셋째 도련님 때문에 동성애 스캔들에 휘말리게 되었다.그들이 더욱 의아하고 이해되지 않는 것은 진미리와 고진호의 반응이었다.도리대로라면 진미리와 고진호가 전호영이 고현에게 대시하는 것을 알면 어떤 방법을 대서라도 두 사람을 못 만나게 해야 하는데 진미리와 고진호는 도리어 전호영을 좋아하는 것 같았으며 가끔 전호영을 집으로 초대해 식사도 같이했다.그러고는 항상 고현에게 전호영을 호텔로 바래다주라고 했다.진미리와 고진호는 혹시 고현이 애인이 없는 원인이 여자를 싫어하고 동성을 좋아한다고 생각해서일까? 고현은 그저 눈을 감고 잠깐 휴식을 취하려 했을 뿐인데 저도 모르게 깊이 잠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고현이 전호영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고 심지어 전호영은 한쪽 팔로 고현을 감싸안고 있었다.눈치챈 고현은 갑자기 전호영을 밀치며 자세를 바로잡았다가 아직 차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깼어요?”전호영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으며 고현을 바라보았다.“아까 안 취했죠?”고현이 전호영에게 되물었다.맑은 눈빛에 생글생글 웃는 모습이 아까 전의 술에 취해 쓰러져 있던 전호영이 아니었다.고현은 전호영이 술에 취한 척 연기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고현의 부모님만 이 자식한테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전호영 씨 이젠 술 깼으니 차에서 내려요.”고현은 전호영의 야식 요청을 거절했다.비록 꽤 오랫동안 잤지만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았고 조금 전에 저녁 먹은 것 같았다.저녁 식사는 전호영이 직접 준비했다. 바비큐든 다른 요리든 전부 전호영이 혼자 했고 고현도 전호영의 요리 솜씨를 인정했으며 아주 맛있게 먹었다.“아니면 야시장 갈까요?”“흥미 없어요. 전 대표님은 이제 차에서 내려주세요. 제가 저희 아빠 요구대로 하루 호텔까지 바래다 드렸어요.”전호영이 차에 앉아 꿈쩍도 하지 않았다.“전호영 씨, 차에서 내려요.”그래도 전호영은 꼼짝 않고 무뢰한처럼 버티고 있었다.“난 배가 고파요. 같이 가요. 저녁에는 내가 고현 씨 아버님이랑 술을 마시느라 많이 못 먹어서 배가 고파요.”고현이 본능적으로 반박했다.“수프 두 그릇 마시고 밥도 반 그릇 먹었어요. 술 네 잔 마시고 생선구이와 닭고기, 양고기도 적지 않게 먹었어요. 그리고 다른 요리도 먹었고요. 그런데도 많이 못 먹었다고요? 전호영 씨 혹시 먹보예요?”“오호, 나를 유심히 관찰했네요. 내가 뭘 먹었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나는 내가 뭘 먹었던지 기억이 안 나요. 현이 씨가 나를 몰래 훔쳐봤죠?”전호영이 취해 자는 척할 때 고현이 자기를 한참이나 지켜봤다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전호영은 고현이 기습적으로 키스라도 하길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고현은 절대 그런 일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고현이 말했다.“안 내리겠으면 날이 밝을 때까지 앉아 있어요.”‘네가 안 내리면 내가 가면 될 거 아니야?’고현이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리자마자 하루 호텔 문 앞에 걸린 사랑의 메시지가 적힌 플랜카드가 눈에 들어왔다.전호영은 플랜카드를 철거하지 않고 그대로 호텔 입구에 걸어놓고 있었다.호텔 정문에 버젓이 걸어 놓으니 호텔에 출입하는 사람들도 행인들도 다 볼 수 있었다.연예 기자가 보도한 뒤로 이곳은 인플루언서들의 성지로 되어버려 저마다 이곳에 와
전호영은 고현을 쫓아가더니 고현의 손을 잡았다.“이젠 고객 만나러 안 가도 되고 자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인데 우리 쇼핑하러 갈까요? 고현 씨 경호원들은 따라오지 말라고 해요. 아니면 너무 튀어서 사람들 눈에 띄기 쉬워요.”남성 두 명이 쇼핑하는 건 이상하지 않지만 고현이 경호원을 대동하면 신분이 폭로되기 쉬웠다.고현은 전호영의 손을 힘껏 뿌리치며 싸늘하게 말했다.“전호영 씨, 난 바빠서 쇼핑할 시간이 없으니 쫓아오지 마요.”“쇼핑 안 하겠으면 나와 야식 먹으러 가요. 혼자 먹으면 맛없어요. 같이 먹어요.”고현이 전호영을 째려보다가 몸을 돌려 발자국을 떼려는 걸 전호영이 다시 붙잡았다. 전호영은 고현에게 낮은 소리로 뭐라고 말했는지 고현의 얼굴이 어두워지면서 전호영을 한참 동안 노려보다 마지못해 말했다.“고성 호텔로 가요.”“고현 씨가 같이 가주기만 한다면 어디서 먹든 상관없어요.”두 호텔이 가깝게 자리 잡고 있기에 한밤중이라도 걸어서 호텔로 돌아오면 그만이다.전호영은 또 한 번 고현과의 데이트에 성공했지만, 한 끼 야식에 거금을 쏟아부었다. 고현이 전호영에게 단단히 바가지를 씌웠다.전호영은 지갑을 꺼내 계산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매일 이렇게 먹는다 해도 망하진 않겠죠? 현이 씨가 돈을 벌어 기분이 좋다면 매일 바가지요금을 내며 야식을 먹어도 좋아요.”고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현이 씨, 배가 너무 불러 산책하면서 소화해야겠어요. 이젠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으니 손잡고 다녀도 아무도 안 봐요.”시계를 보니 확실히 늦은 시간이었다. 잠복해 있던 연예 기자들이 하품하며 기다려도 전호영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여태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까워 끝까지 버텨보기로 했다.“전호영 씨, 대체 어디까지 기어오를 셈인가요?”전호영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여기서 멈추면 재미없잖아요. 발전이 없으면 그건 제자리걸음이에요.”전호영이 다시 손을 잡으려 하자 고현이 뿌리치며 냉랭하게 말했다.“다치지 마요.”“그럼 그냥 가요.”전호영
“귀신이 있어요. 모든 사람이 다 볼 수 없을 뿐이지. 사실 그건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건데 그 시간이 아주 짧아요. 1초 정도? 눈 깜짝할 사이면 사라져 버려요.”고현은 입을 삐죽거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헛소리나 하고 있어.’두 사람이 고현의 비밀 통로로 호텔을 빠져나와 보니 길에 확실히 사람도 적고 차도 적어졌다. 두 시간 전만 해도 시끌벅적하던 거리가 차츰 고요해지기 시작했다.“너무 늦어서 쇼핑할 수도 없고 이미 문 닫았을 거잖아요.”전호영이 웅얼거리며 말하자 고현은 낮은 소리로 경고했다.“다시는 치마, 하이힐, 보석, 진주 이런 걸 사무실로 보내지 마요.”“고현 씨 여장한 모습 보고 싶어요. 엄청 예쁠 것 같아요.”고현이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난 남장만 입어요.”고현의 옷장에는 죄다 남장뿐이다. 어릴 때부터 치마를 입어본 적이 없고 하이힐을 신어본 적은 더욱 없었다. 성큼성큼 걸음을 걷는 고현이 하이힐을 신는다면 아마 한 발짝도 걷지 못할 것이다.여자들이 좋아하는 진주 보석도 고현은 좋아하지 않았고 피부관리 제품은 사용하지만 색조 화장품은 사용하지 않았다.“고현 씨는 진짜 남자가 아니에요.”전호영은 아주 낮은 소리로 말했다.고현이 아직 전호영을 위해 여자 신분으로 회복하려 하지 않기에 그도 사람들 앞에서는 고현의 신분을 까발리지 않았다. 어쨌든 지금 전호영이 고현에게 작업 중이니 사람들이 그들을 동성연애라고 해도 전호영은 개의치 않았다. 만일 고현이 신경 쓰인다면 여자 신분으로 회복하면 그만이다. 고현의 외모로 만일 치마를 입는다면 경국지색이 따로 없을 것이다.한참 침묵하던 고현이 냉랭하게 말했다.“남자로 사는 게 편해요.”전호영은 고개를 돌려 고현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난 고현 씨가 남장하든 여장하든 다 좋아요. 고현 씨가 좋은 거지 성별이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제 우리가 결혼식 할 때 두 사람 다 양복 입는 건 어때요? 아주 멋있을 것 같아요.”“전호영 씨와 결혼 안 해요.”고현은 낮은 소리로
“하지만 아무리 찾아봐도 허점을 찾을 수 없었어요. 그 후에 둘째 형과 큰형수가 나에게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무작정 대시하라고 말해주더라고요. 시간도 별로 남지 않고 해서 조언을 받아들이고 내가 고현 씨에게 꽃길을 만들어 준 그날부터 정식으로 대시했죠. 그날 고현 씨의 반응이 재밌었어요. 그로부터 대시하는 일이 좋아지더라고요. 아직은 사랑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진심으로 대시하고 결혼을 전제로 하는 건 맞아요.”고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자식한테 무작정 대시하라고 시킨 사람이 하예정과 전이진이였어?’이 두 사람 때문에 고현은 지금 난처한 처지가 됐고 평온하던 생활이 깨져버렸다.만일 전호영의 계획대로라면 먼저 고현이 여자인 증거를 찾는 것인데 아마 몇 년을 찾아도 못 찾을 것이다.20여 년간 남자로 살아온 고현은 지금 아주 완벽한 남자라고 말할 수 있다.“고현 씨, 내가 처음으로 한 여자에 대해 흥미를 느꼈어요. 그 때문에 난 절대 포기하지 않아요. 내가 다른 여자를 사랑해서 고현 씨 포기하면 몰라도 이생에는 반드시 고현 씨와 결혼할 거예요.”처음에는 할머니가 고현을 전호영의 신붓감으로 점찍었고 지금은 전호영이 고현을 점찍은 셈이다.고현은 조용히 전호영을 바라보다 아무 말 없이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전호영은 고현이 걸어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미소를 짓더니 고현을 쫓아갔다.전호영은 고현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지만 고현은 대꾸하지 않았다.고현은 지금 자구책을 생각하는 중이다.전호영이 자기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게 되면 고현을 포기하겠다고 했다. 그렇다면 고현이 전호영에게 맞선을 주선하면 어떨까?전호영이 각양각색의 미인들과 접촉해 그녀들에게서 진정한 여성미를 느낀다면 전혀 여자답지 않은 고현을 포기하지 않을까?전호영은 아직 고현에 대한 감정이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고 했는데 아마 고현의 특별한 매력과 할머니가 자기한테 점찍어준 신붓감이 고현이기에 고현과 결혼하겠다고 결심한 모양이다.감정을 기반으로 하지 않은 결혼은 영원하지 못
“그런데 휴대폰은 안 받아?”“무음으로 해놨어. 전호영 이 자식 때문에.”고현이 전호영을 욕하더니 동생에게 물었다.“집에서 어떻게 호텔 내선 전화를 해?”“지금 호텔에 있어. 카운터 쪽에. 껌딱지도 함께 있어. 형 데리고 집에 가서 점심 먹으려고 왔어. 그리고 형과 껌딱지 또 강성 실시간 검색에 떴어. 기분이 좋으면 한번 봐봐. 실시간 검색 1위 할지도 몰라.”고현은 바로 전화를 끊더니 침대에서 일어나 휴대폰을 벨 소리 모드로 전환하고 나서 강성 실시간 검색을 살펴봤다.아닌 게 아닐까 또 실시간 검색에 올라와 있었다.사진은 어제 고현과 전호영이 산책하는 모습을 몰래 찍은 것이다.파파라치는 참 대단한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비밀통로로 호텔을 빠져나왔고 그때는 이미 밤이 깊어 행인도 별로 없었는데 두 사람이 같이 있는 모습을 찍었다.보도된 내용은 고현과 전호영이 밤이 깊은 틈을 타 몰래 데이트를 즐겼고 경호원도 대동하지 않았다고 했다.그리고 고현이 아무래도 전호영에게 공략된 모양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또 두 사람이 모순이 생겼는지 고현은 굳은 얼굴로 전호영에게 차갑게 대했고 두 사람이 싸우는 것 같았다고 했다.그리고 또 고현이 아직 전호영에게 함락되지 않았다며 전호영이 하도 끈질기게 대시하여 방법 없이 야밤에 전호영과 담화를 한 것이기에 고현의 태도가 안 좋고 표정도 안 좋다고 했다.뉴스 내용을 보고 나서 고현이 안도의 숨을 쉬었다.파파라치는 고현과 전호영의 모습을 찍긴 했지만 감히 너무 가깝게 접근하지 못했기에 그들의 대화 내용을 엿듣지 못해 추측으로 스캔들 뉴스를 써냈다.고현은 연예기자들이 왜 하필 자신과 전호영을 물고 늘어지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남자 두 명이 연애하는 게 그렇게 큰 뉴스인가?모든 게 전호영 이 자식 탓이다. 전호영만 아니면 고현이 이런 스캔들에 휘말릴 리가 없었다.전에도 가끔 연예면 뉴스에 나오긴 했지만 내용은 대개 고현의 흠모자의 수가 얼마이고 그 흠모자들이 얼마나 광적인가에 대한 내용이었다.이런
“우리 형 왔어요.”고빈은 전호영에게 귀띔해 주려 했으나 고개를 들어보니 전호영이 이미 배달 가방을 들고 고현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고빈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눈썰미도 좋고 행동도 빨라.”어쩐지 감히 누나한테 대시한다 했고 누나도 잘 참고 견딘다고 생각했다.사람들은 고현이 전호영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고 두 사람이 좋은 결과가 없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녀의 쌍둥이 남동생은 누나 고현이 전호영의 대시를 부추기고 있다고 생각했다.누나가 어떤 존재인데 전호영을 해결 못 한다는 게 말이 안 된다.누나도 분명히 전호영에게 호감이 있으니 전호영이 끊임없이 귀찮게 해도 귀찮은 척하면서 전호영의 대시를 부추기고 있는 게 틀림없다.이런 생각은 속으로만 해야지 입 밖에 꺼내면 누나한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고현은 전호영이 걸어오는 모습을 보더니 표정이 바로 굳어졌다.전호영은 고현에게 다가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얼굴에 대리석을 붙이고 다니느라 힘들지 않아요?”고현이 바로 전호영을 째려보았다.“다른 사람들은 얼굴에 웃음을 장착하고 다니는데 고현 씨는 대리석을 장착했어요? 굳어서 딱딱해졌어요.”그러더니 이내 다정한 말투로 말했다.“배고프죠? 방금 하루 호텔에서 가져온 조식이에요. 차에서 간단하게 먹어요. 아버님과 어머님이 함께 점심 먹으려고 기다리고 계세요.”전호영은 두 손으로 들었던 배달 가방을 한 손에 몰아들면서 한 손으로는 고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지만 고현이 피해버렸다.고현은 아무 말 없이 전호영을 무시한 채 경호원들의 보호를 받으며 큰 걸음으로 호텔 밖을 향해 걸어갔다.“형.”고빈이 형을 부르며 고현의 발걸음을 쫓아갔다.“형, 난 형이 배고플 거란 생각을 아예 못 했는데 전 대표님이 하루 호텔에서 조식을 가져왔어. 내가 증명하는데 조식은 하루 호텔에서 방금 가져온 거야.”고현은 그래도 아무 말 없이 성큼성큼 호텔 밖으로 걸어 나갔고 경호원들이 그 뒤를 바짝 쫓았다.연예기자들이 부근에 잠복해 있다가 두 오누이가 나오
그도 미래 처남을 꽤 좋아한다....관성.어젯밤, 하예진은 아들에게 오늘 아빠의 병문안을 하러 병원에 갈 것이라고 말했다.우빈은 해가 중천에 떠서야 겨우 일어났고, 아침을 먹고 밖에 나갔을 때는 이미 찌는 듯이 더웠다.우빈은 작은 가방을 메고 엄마를 따라 계단을 내려갔다.우빈의 가방에는 간식들이 들어 있었고, 아빠에게 드릴 것이라고 말했다.“엄마, 우리 꽃을 사야 하나요?”우빈은 걸으면서 엄마에게 물었다.하예진은 멈추어 우빈이를 기다려 손을 잡고 걸으며 물었다. "우빈이는 아빠에게 꽃을 사 주고 싶니?"“네, 저도 돈을 가지고 왔어요. TV에서 병문안 갈 때 항상 꽃을 가져가는 걸 봤어요.”우빈은 이제 유치원에 처음보다는 덜 적극적이지만, 유치원에 다니면서 예전보다 더 철이 들고 어른스러워졌다.병문안 갈 때 꽃을 사 가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얼마나 가지고 왔니?”하예진은 웃으며 물었다. “200원으로는 꽃을 살 수 없단다.”우빈은 대답했다. “꽃다발은 노란색 돈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요. 저 노란색 돈도 몇 장 가지고 왔으니까, 아빠에게 꽃다발을 사 드릴 수 있을 거예요.”이모의 껌딱지로서 늘 이모와 함께 꽃가게에서 꽃다발을 샀기 때문에, 우빈은 꽃다발이 얼마나 드는지 알고 있다.하예진은 웃으며 말했다. “그래, 아빠에게 꽃을 사 주고 싶으면 네 돈으로 사렴. 엄마는 과일을 살게.”“네.”우빈은 선뜻 대답했다.임대 아파트를 나서자 노동명이 보였다.노동명은 휠체어에 앉아 있었고, 뒤에는 두 명의 경호원이 따라왔다.“노 아저씨.”노동명을 보자마자 우빈은 엄마의 손을 놓고 노동명에게 달려갔다.노동명은 웃으며 두 팔을 벌려 그를 기다렸다가, 우빈이 휠체어 앞에 도착하자 허리를 굽혀 그를 안아 올렸다. 먼저 우빈이의 얼굴에 몇 번 입을 맞추고 나서야 다리에 앉혔다.“노 아저씨, 왜 오셨어요? 저와 엄마랑 같이 아빠를 방문하러 가실 건가요?”노동명은 하예진이 오늘 우빈을 데리고 주형인을 보러 병원에 갈 것을 알았기 때문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