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도 시댁 식구들이 자신이 임신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시댁 식구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언니와 이모도 그녀가 빨리 임신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모든 약에는 어느 정도의 독이 있어요. 함부로 약을 먹으면 몸을 낫게 하기보다는 해칠 수 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의사의 진단 없이 약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돼요.”전현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태윤아, 너희 어머니와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나도 너희 어머니에게 약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어. 너희 어머니도 예정이에게 약 처방전을 주고 약을 먹으라고 하려던 건 아니야. 단지 너희 외할머니께서 너희 어머니에게 주신 거라, 외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가지고 온 거야.”장소민은 아들이 외할머니에게 화를 낼까 봐 걱정되어 서둘러 말했다.“태윤아, 우리도 너희가 그런 상황인지 몰랐어. 외할머니를 탓하지 말아라. 외할머니께서는 항상 여러 가지 걱정을 하시는 분이야.”“너는 외할머니께서 가장 아끼는 외손자잖아. 그래서 증손자를 원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장소민은 또 며느리에게 말했다.“예정아, 어머니는 정말로 너희에게 아이를 재촉하려는 뜻은 없어. 어머니는 너희가 언제 아이를 갖든 상관없다고 했잖아. 너희는 아직 젊고 결혼한 지 이제 겨우 1년이야. 지금은 너희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자.”“어머니, 저도 알아요.”하예정이 대답했다.장소민은 전태윤이 부모님을 혼내는 모습을 보고 있는 하예정에게 눈짓하며 전태윤을 달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예정은 시어머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전태윤의 팔을 살짝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부모님이 약을 정말로 나에게 주려던 게 아니니까 당신 화 풀어요. 외할머니와 다른 어른들도 다들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하시잖아요.”“이제 화 풀어요. 이진과 운초도 여기 있잖아요. 당신이 이렇게 화를 내면 운초가 놀랄 거예요.”여운초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화를 푸세요. 식사 시간이 다 됐네요. 우리 식사하러 가요.”장소
“다행히 예정이가 이런 일로 화를 내지 않아서 태윤도 진정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태윤이가 얼마나 오래 훈계했을지 모르겠어. 아버지로서 아들한테 손자처럼 훈계를 듣는 게 정말 창피한 일이야.”장소민은 남편의 팔을 끼며 웃었다.“잠시 후에 식사할 때 좋아하는 반찬을 많이 드시고 몸보신하세요. 당신은 저 대신 태윤의 화를 받아줬잖아요.”처방전은 장소민이 친정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녀가 탁자 밑에 숨긴 것이었다.그녀의 실수로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함께 훈계를 듣게 된 것이었다.“가세요, 식사하러 가세요.”이때 소정남이 심효진을 데리고 들어왔다.“아저씨, 아주머니.”부부는 다정하게 인사했다.장소민 부부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함께 식사하러 갔다.소정남과 심효진은 주말을 서원 리조트에서 보내기 위해 왔으며 리조트의 단골 손님으로서 거리낌 없이 장소민 부부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전태윤은 불쾌했지만 친구 부부가 있었고 아내가 계속해서 음식을 챙겨주자 조용히 식사하고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식사 후 3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전태윤은 아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소정남과 심효진은 전태윤의 불쾌감을 눈치챘다. 그래서 바로 따라 나가지 않고 집안에 남아 전현림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전이진의 부모와 동생들이 집에 없었고 집사는 전이진이 여운초와 함께 온 것을 보고 서둘러 그의 부모에게 알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이진의 부모가 급히 돌아왔다.부모가 돌아오자마자 전이진은 어머니에게 밀려 구석으로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여운초에게 너무나 잘해 주었다. 마치 여운초가 친딸인 듯하고 전이진이 사은품처럼 느껴졌다.“운초야, 이번에 집에 며칠 더 있어.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내자.”명해은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부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명해은은 아들을 꾸짖으며 말했다.“오면서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내가 부엌에 운초가 좋아
분위기든 사람이든 정말 좋았다.시부모님은 여운초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전혀 꺼리지 않고 친딸처럼 대해주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약혼한 후, 여운초는 전현민 부부에게 점차 시부모님이라 부르게 되었다.시어머니는 예비 둘째 며느리가 돈만 쓸 줄 알면 되고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했다.친엄마 곁에서는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지만 예비 시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엄마가 사랑하고 아껴줘서 정말 행복했다!“맞아,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해. 딸이 더 마음이 쓰이니까.”명해은은 운초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챙겨주었다.영운초가 위험에 처했던 일은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엄마, 저 운초랑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소화도 시킬 겸, 많이 걸으면 빨리 배고파져서 엄마가 아끼는 며느리에게 맛있는 걸 해주실 기회가 생길 거예요.”전이진이 일어나서 운초의 손을 잡았다.명해은은 며느리와 산책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이미 운초의 손을 잡고 있어 결국 그녀의 손을 놓으며 당부했다.“운초를 잘 돌봐야 해. 운초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빠지면 돌아와서 너 혼날 줄 알아.”전이진은 즉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그럼 틀림없이 혼나겠네요. 여자애들은 누구나 머리카락이 좀 빠지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빗기만 해도 몇 가닥은 빠지는데요.”명해은은 아들을 째려보며 말했다.“혼나기 싫으면 집에서 아빠랑 TV나 봐. 내가 운초랑 산책하러 나갈 테니. 우리 둘이 얘기 좀 하자. 평소에 바빠서 운초를 자주 데려오지 않잖아. 이번에 온 김에 운초는 이틀 동안 내 거야.”전이진은 즉시 허리를 숙여 운초를 허리께로 안아 들고는 재빨리 집 밖으로 나섰다.운초는 줄곧 말했다.“이진아, 내려줘. 나 혼자 걸을 수 있어.”“널 안고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어. 빨리 가자.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널 빼앗아 갈 거야. 난 아빠랑 TV 보고 싶지 않거든. 아빠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물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달콤한 말을 하게 되어 있어요.”명해은은 남편의 말에 동의하며 미소를 지었다.“셋째는 강성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셋째가 결혼하고 넷째와 다섯째도 시작해야죠. 형제들이 한꺼번에 결혼하면 우리 가문은 정말 축하할 일이 많겠어요.”전현민은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생각하는 건 좋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요. 막내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잖아요.”막내가 집에 있을 때는 몇몇 형수들에게 애교를 부렸다.형수들에게 애교를 부리면 시험지 문제를 덜 푸게 된다. 형들이 주는 선물은 모두 시험지라, 문제를 풀다 보면 머리가 어지럽기 때문이다.“맞아요, 막내는 아무리 빨라도 최소한 10년은 더 기다려야 해요. 큰형처럼 되려면 10년 이상 걸릴 거예요.”전씨 할머니의 연세를 생각하며 명해은은 조용히 말했다.“어머니께서 막내에게 좋은 아내를 골라주실 거예요.”“어머니께서 아홉 손자에게 두루 공평하게 대해주시니까요. 당연히 손자며느리도 친히 선택하실 거예요.”막내는 이제 겨우 십 대이기 때문에 형들 나이에 결혼할 나이에 이르려면 아직 십 년은 더 걸릴 것이다. 전씨 할머니의 연세가 많으시지만 부부는 할머니가 십 년, 이십 년 더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라며 손자가 성인이 되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고 있다.집안의 노부부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집 밖의 젊은 연인들은 알지 못했다.여운초는 전이진에게 이끌려 리조트 안을 거닐면서 저녁 식사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조용히 물었다.“우리가 결혼 후 바로 임신하지 않으면 시부모님도 큰아버지 부부처럼 하실까?”“아니야,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 네 눈이 나으면 내가 너를 여행에 데리고 다니면서 실컷 놀게 해 줄 거야. 네가 놓친 1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즐기자.”“우리가 함께 일출과 일몰을 보고 등산하며 바다를 즐기면서 몇 년을 놀다가 아이를 가지자.”“걱정하지 마. 우리 부모님은 개방적이셔. 사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개방적이지만 친
여운초는 자존심이 매우 강했다.전이진은 그녀와의 관계에서 모든 일을 다 처리해선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이진아.”“왜?”“나와 함께 있는 게 힘들지 않니?”전이진은 걸음을 멈추고 그녀의 얼굴에 손가락을 댔다. 여운초의 피부는 매끄러웠고 두 번 톡톡 두드리다가 참지 못하고 꼬집다가 문지르고 싶어졌다. 결국 여운초는 참지 못하고 전이진의 손을 쳤다.“너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거야. 뭐 만지고 그래.”여운초는 참지 못하고 전이진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다.전이진은 고개를 숙여 여운초가 그의 얼굴을 쉽게 만질 수 있도록 했다. 여운초는 두 손으로 그의 얼굴을 살짝 꼬집었지만 힘을 많이 주지 않아 전이진은 아프지 않았다.여운초는 전이진을 너무 사랑해서 그를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전이진도 마찬가지였다.처음에 전이진은 여운초의 얼굴이 부드러워서 놀리고 싶어서 얼굴을 꼬집었다. 그 당시 여운초는 전이진의 장난을 거부하며 반응이 격렬했다.지금은 그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었기에 다치게 할까 봐 힘을 주지 않았다.여운초의 피부는 매우 좋았고 조금만 힘을 주면 빨갛게 변했다.그녀의 빨간 얼굴이 아름다웠지만 얼굴을 붉히게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키스를 통해 얼굴을 붉히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내가 힘들다고 느꼈다면 너를 가까이하지 않았을 거야. 너를 꼬시지도 않았을 것이고 결혼할 생각도 하지 않았을 거야. 할머니께서 너를 내 아내로 정해주셨고, 나를 협박해 1년 안에 너에게 구애해서 성공하지 않는다면 나를 집에서 쫓아낼 거라고 하셨어.”“하지만 그건 말뿐이었어. 할머니께서는 첫해에 집에서 설을 쇠지 못하게 나를 쫓아 내실지 모르지만 두 번째 해에는 괜찮을 거야.”“할머니께서는 우리 형제들에게 좋은 사람을 골라주셨지만, 결국 우리의 선택이 우선이야. 우리가 원하면 모두가 행복하지만,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할머니께서도 어쩔 수 없지. 사실 할머니의 강경한 태도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큰형뿐이야.”큰형과 큰형수가 혼인신고를 할 때는 전혀 감정이 없었고 완
“우리 엄마께서 그러셨어. 우리 집 둘째 며느리는 아무 능력이 필요 없고 그저 돈만 쓸 줄 알면 된다고 하셨어. 일이 바쁘지만 돈은 많이 벌어서 돈 쓸 시간이 없으니 장가들면 아내가 열심히 돈을 써줘야 해.”여운초가 웃었다.“지금이라면 나도 돈 많아.”현재 그녀는 여씨의 사업을 단단히 장악하고 있어 지갑은 이미 두둑해졌다. 이제 그녀는 예전의 여운초가 아니었다고 더 이상 능력을 숨길 필요가 없었다.“네가 돈이 부족하지 않은 건 알지만, 나는 네가 내 돈을 쓰길 바래. 내가 돈을 버는 이유는 아내에게 쓰기 위해서야.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내 일이지. 너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그저 미모만 챙기고 돈을 쓰면 돼.”여운초가 그를 타박했다.“누가 네 아내라는 거야, 우리 아직 혼인 신고도 안 했잖아. 아이까지 이야기하다니. 꿈이 참 크네.”“꿈이라도 커야지! 우리 약혼까지 했으니 결국 결혼할 거야. 넌 내 아내야.”여운초는 웃고 나서 말했다.“먼저 혼인 신고 해도 되는데, 결혼식은 내 눈이 나은 후에 해도 늦지 않아.”전태윤과 하예정도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았다. 그들의 혼인 신고는 더 오래전 일이었다.“아니, 지금까지 기다렸으니 좀 더 기다려도 괜찮아. 네 눈이 나아져서 내 모습을 볼 수 있을 때, 그리고 평생 나와 함께하겠다고 확신할 때 혼인 신고를 하고 결혼식을 올리자.”전이진은 자신이 있었지만 여운초가 그를 본 적이 없어서 그녀가 그의 모습을 보고 나서 그와 결혼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나는 네 외모가 아니라 너라는 사람을 사랑하는 거야. 네가 어떻게 생겼든지 상관없어.”전씨 가문의 남자들은 모두 잘생겼다.그녀는 여러 번 다른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었다.여운초는 직원들에게 전이진이 어떻게 생겼는지 물었고 직원들은 그녀와 전이진이 함께 있으면 정말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전이진은 그녀의 눈이 나을 때까지 기다리기다가 혼인 신고를 하겠다고 고집했다.전이진이 서두르지 않았기 때문에 여운초도 서두르지 않았다
게다가 전호영이 술을 많이 마셔 취하면 엄마, 아빠는 고현보고 전호영을 호텔까지 바래다주라고 할 게 뻔하다.“아빠도 많이 안 마셨어. 호영이가 모처럼 왔고 고기도 이렇게 맛있게 구웠는데 조금 마시면 어때? 많이 안 마실게. 아니면 네가 호영이와 같이 마실래?”고현이 쌀쌀맞게 대답했다.“저녁엔 술 안 마셔요.”전호영은 고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현이 씨 혹시 내가 술 많이 마실까 봐 걱정되는데 부끄러워서 나한테 말 못 하겠어요? 그래서 아버님께 그러는 거예요? 괜찮아요. 많이 안 마실게요.”“현이라고 하지 마요.”“현이야.”진미리가 굳은 표정으로 딸을 부르며 말했다.“네 이름이 현이 맞잖아. 호영이가 그렇게 부르는 게 어때서?”“고현이라고 해도 되고 고 대표라고 해도 되잖아요. 현이는 가족만 부를 수 있어요. 전호영이 현이라고 하는 게 이상해요.”고현이 투덜대며 말했다.“대체 전호영이 어떻게 아빠, 엄마를 포섭했어요? 전호영이 친자식이고 나는 주워 온 자식이죠?”진미리는 고현의 말에 어이가 없어 웃으며 말했다.“그래, 맞아. 넌 우리가 주워 온 자식이고 호영이가 우리 친자식이야. 이제 만족해? 호영이가 친자식이면 아빠, 엄마가 속상해서 머리가 하얗게 셌겠어?”고현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입을 다물었다.부모님이 자기 혼사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계신다는 것을 고현은 알고 있었다.전호영이 부모님 마음에 든 게 확실하다. 비록 전씨 가문 할머니가 전호영의 신붓감으로 점찍은 아가씨가 고현이라는 걸 부모님은 모르시지만 전호영이 자기 선택을 밝힌 뒤 전씨 가문 어른들은 그의 선택을 존중하기로 했다. 더욱이 고진호가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전호영에게 알려주고 나서부터 부모님은 대놓고 전호영을 고씨 가문 예비 사위 대접을 해줬다.밖에 고현과 전호영의 스캔들이 얼마나 무성하든 부모님들은 전혀 개의치 않고 두 사람이 단독으로 있을 수 있는 기회까지 만들어주면서 고현이 전호영의 마음을 받아주기를 바랐다.부모님이 안 보는 틈을 타 고현이 전호영을
고진호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현아,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상관하지 말고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게 중요해.”“호영이가 너한테 적합해. 그리고 두 사람 잘 어울려.”고현은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수프만 마시면서 아빠 말이 안 들리는 척했다.전호영이 끈질기게 대시하는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고현은 아직 전호영에 대해 아무런 감정이 없었고 더욱이 전호영을 위해 여자 신분으로 회복하는 것도 싫었다.고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고진호는 더는 설득하지 않았다. 감정은 천천히 키워야 한다.첫눈에 반한다는 건 고현도 그렇고 전호영도 그렇고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식사가 끝날 즈음에 전호영은 진짜로 술에 취해 걸음도 똑바로 걷지 못했다.“현아, 너 갈 거면 호영이를 호텔에 데려다주고 가. 호영이 집이 아직 인테리어 중이라 언제 될지 몰라.”고진호는 아주 자연스럽게 딸에게 전호영을 하루 호텔로 바래다주라고 말했다.전호영이 산 여의 팰리스의 집이 인테리어 중이라 전호영은 아직 하루 호텔에 묵고 있었다.고현은 테이블에 엎드려 있는 전호영을 보면서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취한 척하는 것 같은데요. 몇 잔 마시지도 않던데 걷지도 못해요?”“현아.”진미리가 딸을 나무라며 말했다.“호영이 진짜 취했어. 네가 바래다 안 주면 우리 집에서 재울 거야. 그때 가서 밖에 소문이 났다고 뭐라고 하지 마.”“엄마, 아빠도 마찬가지예요. 전호영을 우리 집 예비 사위로 생각하시면 안 돼요. 전 이 사람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거니와 이 사람을 위해 여자 신분으로 회복하는 것도 싫어요.”그러자 진미리가 말했다.“그럼 그냥 남자 모습으로 호영이한테 시집가. 어쨌든 넌 여자니까 남자 신분으로 호영이와 결혼해도 괜찮아.”“엄마, 그러다 전호영의 할머니가 아시면...”전미리가 딸의 말을 잘랐다.“전씨 가문 할머님이 얼마 전에 나한테 연락하셔서 전호영에게 골라준 신붓감이 너라고 말씀하셨어.”고현은 입을 벌리고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전씨 가문 할머니가 자기한테는 아무
전태윤은 하예정에게 심효진이 가끔 소정남의 팔을 물어뜯고 싶다고 말하길래 소정남이 몰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고 알려주었다.하예정은 의아했다.그녀는 닭 다리만 뜯어먹고 싶을 뿐 팔을 물어뜯을 생각은 해본 적 없다.소지훈은 소정남 부부의 달콤한 생활을 무척 부러워하며 자신과 정윤하의 미래가 소정남 부부처럼 행복하기를 바랐다.소정남과 통화를 마친 소지훈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단도직입적으로 고백할까? 아니면 이따가 윤하 씨에게 꽃다발을 선물해 줄까?’소지훈은 꽃다발을 선물하면 정윤하가 그 꽃다발을 먹지도 못하는 데 돈 낭비만 한다고 꾸지람할까 봐 걱정했다.한참 고민하던 소지훈은 결국 인터폰으로 전화를 걸어 회사 비서에게 지시했다.“장미꽃을 사고 싶은데 지금 저를 도와 나가서 사 오세요. 제가 퇴근하면 가져갈게요.”이런 임무를 받은 비서의 얼굴은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소지훈이 정윤하를 좋아하는 건 눈 밝은 사람이라면 전부 알 수 있었으니까.단지 정윤하만 여전히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다.그 꽃다발은 정윤하에게 주는 선물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아도 뻔한 일이다.“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꽃 사러 가겠습니다.”“그래요.”소지훈은 얼굴을 붉혔지만, 여전히 담담한 척 대답했다.그는 이런 일을 거의 하지 않았다.어쩐지 쑥스러웠다.소지훈은 여자에게 꽃을 보낸 것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번 성소현에게 구애하는 척할 때 하루건너 그녀에게 꽃을 선물하곤 했다.꽃집 사장님에게 부탁해 꽃을 배달한 적도 많았고 직접 선물한 적도 있었다.아마 소지훈은 성소현에게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성소현에게 꽃을 선물한다고 해서 창피하지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는 단지 연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정윤하는 다르다. 정윤하는 소지훈이 진심으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자로서 결혼하고 싶은 상대였다.그는 엄청나게 긴장했고 또 매우 신중했다.정윤하에게 꽃을 선물하는 의미도 다르고 느낌도 다르기에 너무 부끄러워 얼굴이 그만 빨개지고 말
심효진도 맞장구쳤다.“그럼. 나야 당연히 안목이 뛰어나지. 예정이가 처음에 당신을 나에게 소개해 주었을 때 내가 정남 씨에 인상이 깊었거든. 태윤 씨 곁의 능력자라면서? 내가 정남 씨와 같은 업계에 있지 않지만 그래도 당신의 높은 명성에 대해 들은 바가 있었어.”소정남은 히죽히죽 웃으며 말을 이었다.“난 당신이 날 좋아하지 않는 줄 알았어. 우리 두 사람 소개팅할 때 순조롭지 않은 거로 기억했는데.”“그래? 아무튼, 난 정남 씨가 무척 마음에 들었어.”“나도. 당신 성격도 나랑 너무 잘 어울려. 우리 두 사람 다 구경거리를 좋아하잖아. 여보, 나는 처음에 당신이 가십거리를 듣기 위해 나와 함께 있는 줄 알았어.”심효진은 그를 힐끗 쳐다보면서 해명했다.“비록 내가 가십거리를 좋아하지만, 평생의 큰일을 어찌 그런 일 때문에 당신에게 시집갈 수 있겠어? 당신을 사랑하면 결혼하는 거고 사랑하지 않으면 결코 결혼하지 못하지. 사랑은 역시 서로 사랑해야 행복한 법이야.”소정남 부부의 연애사에는 큰 사고 없이 매우 순조로웠다.약간의 비바람도 연적도 없었다.두 집안의 어르신들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것을 알고 매우 기뻐했다. 특히 소씨 집안의 어르신들은 심효진을 매우 어여뻐 했다. 두 집안이 결혼 얘기를 나눌 때 소씨 가문의 사람들은 심효진을 연신 칭찬했지만, 소정남은 자랑할 곳이 아무 데도 없다고 나무랐다.소씨 가문의 어르신들은 심지어 소정남이 심효진보다 못하다고 여겼다.“얼른 운전해. 나 한강에 가고 싶어. 가서 한 바퀴 돌다가 올래. 곧 날이 어두워질 텐데, 집에 늦게 집에 돌아가면 당신 사촌 누나가 또 뭐라고 잔소리할 거야.”최서우는 소정남의 사촌 누나이자 소씨 가문에서 영양사로 일하고 있다.심효진도 최서우가 그녀를 걱정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예전에 최서우는 심효진이 소정남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싫어했지만 오랫동안 함께 지내면서, 또 소정남 어머니의 설득을 들은 최서우는 그제야 심효진에 대한 태도가 많이 좋아졌다.최서우는 소정남을 많이
“너도 어쩌다 휴가 냈는데 제수씨랑 잘 쉬어. 그럼 나도 가봐야겠어. 저녁에 윤하 씨랑 저녁 약속이 있거든.”소정남은 소지훈이 정씨 가문의 저택에서 산다는 것을 알고 웃으면서 말을 건넸다.“형이 그 집에 살게 되었는데 정씨 가문의 가족들에게 잘해줘. 가족들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윤하 씨가 망설인다고 해도 그 집 식구들이 윤하 씨에게 형을 받아들이라고 설득할 거야.”특히 그의 미래의 장인어른과 장모님에게 잘 보이는 것이 가장 중요했다.소정남은 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특히 인기가 많다.소지훈은 자신 있게 말했다.“심씨 집안 가족들은 전부 날 엄청 좋아하거든.”윤미연은 이미 소지훈을 한 집 식구로 여기고 있다. 만약 소지훈이 정윤하와 함께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윤미연은 한쪽으로 따뜻한 차를 끓여 주면서 한쪽으로 그를 꾸지람하곤 한다.소지훈이 처음 그 집으로 들어갔을 때의 공손함은 온데간데없었다.하긴, 정윤하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소지훈의 속내를 발견한 윤미연은 그를 진작 자신의 사위로 생각하고 있었다.한집안의 사람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윤미연은 당연히 꾸지람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내 생각도 그래. 난 우리 형을 믿거든. 그럼 힘내. 나도 가봐야겠어. 우리 효진이와 함께 드라이브하러 갈 거야.”“운전 조심해. 제수씨 임신했잖아. 내 조카를 다치게 하지 말고.”소지훈은 신신당부했다.“알았어.”소정남은 늘 조심스러웠다.물론 소정남도 몰래 심효진을 데리고 바람을 쐬러 나온 것이기 때문에 만약 그의 부모님께 알려지면 혼나 죽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소정남도 심효진을 잘 돌보지 못할까 봐, 너무 빨리 운전하면 그녀를 넘어뜨릴까 봐 항상 걱정하며 다녔다.심효진의 배 속의 아기는 그의 혈육일 뿐만 아니라 소씨 집안 어른들의 작은 보물이다.외출하기 전에 소정남의 사촌 누나 최서우는 심효진을 데리고 밖에서 식사하지 말라고 했다. 밖에 음식이 아무리 맛있다고 해도 조미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건강에 안 좋다면서 말이다.소정남은 그제야 사랑하는 아내의
“그... 그 당시 제수씨한테 어떻게 고백했어? 네가 고백할 때 제수씨가 받아들였어? 거절한 적이 있어? 거절당하면 창피하지 않았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았어? 날 비웃지 마. 나도 살면서 처음으로 여자를 좋아해 봐서 그래. 경험이 전혀 없거든. 태윤 씨 부부의 재미있는 연극을 본 적은 있지만, 그들은 나와 다르잖아. 그들은 이미 그때 혼인 신고했을걸.”소지훈은 이런 감정적인 일로 사촌 동생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 창피하고 소씨 가문의 장남 이미지에 손상을 입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그는 소정남에게 물어보는 것 외에는 누구에게 물어봐야 할지 몰랐다.일반적으로 소지훈이 다른 사람의 사적인 일에 대해 알아보러 다녔지, 그의 개인적인 일이 남들에게 알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소정남이 바로 대답했다.“형, 정말 내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어. 형이 지금 윤하 씨에게 구애하고 있잖아. 내가 보기에 형이 윤하 씨에게 무척 자상하게 대해주는 것 같던데 윤하 씨가 바보도 아닌데 마음속으로 잘 알고 있을걸. 어쩌면 형이 그녀에게 고백하기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나와 효진이는 무척 자연스럽게 관계를 이어왔어. 태윤이가 주선해 줬는데 우리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친 순간부터 상대방이 마음에 들어서 지금까지 순조롭게 걸어왔어. 난 거절당한 적도 없어. 우리는 연애부터 결혼까지 정말 순조로웠거든.”“형은 둔한 것도 아닌데. 평소 윤하 씨와 지내면서 형한테 어떤 태도도 대했어? 그녀도 형에게 태도가 괜찮았다면 분명 형한테 마음이 있다는 증거일 거야. 여자들은 수줍음을 잘 타서 먼저 말하기 거북해하거든. 그러니 우리는 남자로서 얼굴에 철판을 깔고 먼저 가서 고백해야 해. 먼저 한 걸음 다가서야 형과 윤하 씨가 연인으로 발전하게 될 거야. 난 형처럼 훌륭한 남자가 윤하 씨의 마음을 훔치는 일은 정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봐. 윤하 씨도 아마 우리 형처럼 훌륭한 남자를 본 적 없을걸.”소지훈은 매우 괴로워하며 말했다.“윤하 씨는 나를 친구로 생각해. 나를
“다 좋대. 오늘 오전에 병원으로 검사를 받았는데 아기가 잘 자라고 있대. 초음파를 찍을 때 옆에 서서 봤는데 아기가 움직이더라니까. 그런데 효진이는 느끼지 못한대.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일반적으로 16주 때부터 태아가 움직이는 것을 느낄 수 있다고 해.”소지훈은 마음속으로 움직이지 못하면 하늘나라로 간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 목 안으로 삼켰다. 그러나 그도 처음 아빠로 되는 소정남을 이해해 주었다.만약 소지훈도 정윤하와 결혼해서 아기가 생기게 되면 그도 소정남과 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하지만 그건 아직 머나먼 일이다. 그는 아직 고백도 안 했다.언제쯤이면 결혼하여 애 아빠로 될 수 있을지!마흔이 되기 전에 아빠가 되었으면 좋을 텐데.어떤 사람들은 일찍 결혼하고 일찍 아이를 낳아 40대 초반부터 할아버지가 되었지만, 소지훈의 소원은 단지 40대 전에 아빠로 되는 것뿐이다.소지훈은 자신이 바로 늦게 결혼하고 늦게 아이를 낳는 그런 부류의 사람이라고 생각했다.“형, 무슨 일 있어?”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관계로 사이가 좋지만, 평소 별일 없을 때면 서로 연락이 뜸했다.각자 너무 바쁜 생활을 보내기 때문이다.소지훈이 먼저 전화한 것을 보니 분명 무언가 일이 있을 것이다. 그는 우물쭈물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관성에서 멀리 떨어진 소정남은 곧바로 차의 속도를 줄여 길가에 차를 멈추어 세웠다.조수석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물었다.“무슨 일이 생겼대?”소정남은 아직 무슨 일인지도 몰랐기에 그녀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형, 우물쭈물하지 말고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말해. 이렇게 뜸 들이니 내가 너무 무섭잖아.”소지훈은 소씨 가문의 장남으로서 관성에서 신과 같은 존재였다.그가 해결할 수 없는 일이 극히 드물기에 갑자기 우물쭈물하는 소지훈을 본 소정남은 무척 놀랐다.“정남야. 나... 좀 부끄러운데 어떻게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어.”“뭐가 부끄러울 게 있다고. 형제끼리 못할 말이 뭐가 있어. 설마 윤하 씨에게 아무런 반응이 없
소지훈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제가 무슨 일이든 다 하면 저의 밑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뭐해요? 그들에게도 기회를 줘야죠. 제가 낮에 회사로 가서 일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한데.”관성에 있을 때면 그는 열흘이나 보름에 한 번 회사에 들아갔다. 그리 회사의 크고 작은 일들은 기본적으로 회사 운영팀에게 맡겼다.소지훈은 특별히 중요한 일이 일어나야만 회사에 한 번 돌아가곤 했다.그처럼 바쁜 사람이 어찌 매일 회사에 돌아올 수 있겠는가!소지훈은 사업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일에도 관여해야 했다.소균성은 일찌감치 은퇴하는 바람에 사실상 소지훈이 여기저기 뛰어다니면서 소씨 가문의 대표가 처리해야 할 업무들을 해결하러 다녔다.“마치 아저씨가 출근하면 남의 체면을 세워주는 것처럼 말하네요. 그 회사는 아저씨 회사이고 벌어들인 돈도 아저씨 지갑으로 들어갈 뿐 회사 직원들의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만약 저녁에 대접할 일이 있다면 집에 못 들어올 걱정은 안 하셔도 돼요. 저한테 전화하시면 제가 문을 열어드리면 되는데.”윤미연은 일반적으로 밤 11시쯤에 대문을 잠갔다.밤 11시 이후에 귀가하면 정씨 가족에게 전화해서 문을 열라고 부탁해야 했다.소지훈은 재빨리 대답했다.“정말 접대할 필요 없이 중요한 일은 다 처리했어요. 이렇게 오랫동안 출장을 다녀왔는데 아직 처리하지 못했다면 제 능력 문제라고 봐야죠. 바쁘시죠? 먼저 일 보세요. 퇴근하고 바로 갈게요.”“네. 저도 수업이 있어요. 그럼 저녁에 봐요.”“저녁에 뵙겠습니다.”소지훈은 결국 그가 정윤하를 좋아한다는 말을 내뱉지 못했다.전화상으로도 말하기 어렵지만 그렇다고 그녀 앞에서는 더 감히 말하지 못했다.고백하는 게 왜 이렇게 어려울까!소지훈이 정윤하에게 구애하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알아챌까 봐 장미 한 송이조차 선물하지 못했다.사실, 소지훈은 매일 몇 시간씩 정윤하와 함께 시간을 보냈고 그녀를 존중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했다.이 또한 그가 정윤하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
정윤하가 웃으며 소지훈에게 물었다.“맞아요. 방금 큰 건을 성사시켜 회사에 수십억 이윤을 얻었어요. 제가 저녁에 윤하 씨 가족분들에게 축하의 의미로 음식을 대접할게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괜찮아요. 우리 오늘 식자재를 많이 사서 집에 가져가서 요리해 먹으면 마찬가지예요. 호텔에 가서 한 끼를 먹으려면 돈이 많이 들어요. 그리고 우리 엄마께서 또 마음 아파하실 거에요. 호텔에 가서 한 끼 먹을 돈으로 장을 보고 집에 가서 요리해 먹으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 먹을 수 있다고 늘 말씀하시거든요.”소지훈은 윤미연이 입으로만 잔소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정말 큰 호텔에서 그들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면 윤미연은 분명 누구보다도 아름답게 꾸미고 호텔로 달려갈 것이다.윤미연이 만약 잘 꾸미고 정윤하와 함께 있으면 어쩌면 자매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소지훈이 말을 건넸다.“괜찮아요. 저는 이미 이모님 잔소리에 적응했어요. 돈을 벌면 마땅히 써야죠. 많이 벌어서 화끈하게 써야 자신에게 떳떳하죠.”소지훈이 연성에 방금 왔을 때부터 정씨 가문의 저택으로 들어가 살았다. 처음에는 정씨 가족들은 소지훈이 단지 3일에서 5일일 정도 머물 것으로 생각했지만, 아직도 떠나지 않았다.이미 소지훈을 한집안 식구로 생각한 윤미연은 그가 잘못할 때면 여전히 잔소리를 퍼붓곤 했다.“무슨 일이세요?”정윤하가 소지훈에게 전화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오히려 소지훈이 그녀에게 전화를 먼저 걸었다.소지훈은 정윤하가 자신에게 도움 청할 일이 있을 것으로 짐작하고 그녀에게 걱정스레 물었다.정윤하는 웃으며 대답했다.“별일은 없고요. 우리 학생들이 아저씨가 언제 시간 나면 놀러 오냐고 물으며 아저씨가 보고 싶대요.”관성에 있을 때, 소지훈은 정윤하와 십여 명의 학생들을 초대하여 놀면서 맛있는 음식을 사주기도 하고, 선물을 사주기도 했다.그리고 연성에 와서도 소지훈은 학생들이 무술을 연마하는 것을 지켜보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들을 대접하기도 했다.학생들은 그를 무척 좋아했기에
소균성은 김연수에게 휴대전화를 건네었지만, 그녀는 휴대전화를 받아보더니 말을 꺼냈다.“이 자식 이미 전화를 끊었어요. 나쁜 놈, 내 전화를 끊다니.”막상 통화를 끊은 광경을 보자 소균성은 또 화가 나 참다못해 욕 몇 마디를 내뱉었다.“이놈 때문에 속이 썩여. 정말! 예전에 맞선 상대를 그렇게 많이 주선해 주었는데도 싫어하더니, 결국 문제가 있다는 걸 그제야 알게 되었잖아. 겨우 누군가 구해줄 희망이 생겼는데도 왜 이렇게 질질 끌고 있나 몰라. 늘 깔끔하게 일 처리하던 애가. 어휴! 고백, 프러포즈, 결혼, 출산, 그렇게 힘들대?”곁에서 지켜만 볼 수 없는 소균성의 마음이 더 조급해 났다.김연수가 말을 이었다.“지훈이가 연애도 경험도 없어서 지금 탐색 중일 거예요. 애가 지금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잖아요. 어쨌든 연성에서 정윤하 씨 곁을 지키고 있으니 다른 남자가 감히 가까이하지는 못할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결혼은 한평생의 큰일인데, 급해한다고 해도 소용없는걸요.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해야만 결혼 생활도 행복한 법이니까요. 우리도 상대방을 강제적으로 우리 집으로 시집오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럼 사돈이 아니라 원수로 되는 거잖아요.”정씨 가문은 소씨 가문과 비교할 수 없지만, 정합 도장은 연성에서 오랫동안 운영했기에 그들이 가르친 제자 중 업계에서 성공한 인물도 있게 되기 마련이다. 만약 쌍방이 서로 원한을 품게 되면 누구도 이익을 얻을 수 없을 것이다.게다가 소씨 가문은 미래의 사돈을 어찌 감히 건드릴 수 있단 말인가!.정윤하는 소지훈이 없으면 재혼할 수 있지만, 소지훈은 정윤하가 없으면 재혼할 수도 없다.“여보, 우리 한 번 연성에 가볼까요?”소균성은 김연수를 쳐다보며 대답했다.“그 자식이 아직 고백도 안 했는데, 우리가 간다고 해도 여행으로 가장할 수밖에 없는데 가도 소용없어. 가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데.”“우리가 연성으로 여행을 가는 척하고 사돈 앞에 얼굴을 내밀어 우리 가족이 화목하다는 것을 알게 하면 나중에 우리
운명적인 여신과 함께 지내다 보니 소지훈은 그녀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고 또한 너무 사랑하기 때문에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너무 두려웠다.하늘도 땅도 두렵지 않던 소지훈은 정윤하 앞에서는 그야말로 겁쟁이처럼 모든 것이 두려웠다.“지훈아, 한 가지만 물을게. 나랑 네 엄마가 언제쯤이면 사돈을 뵈러 갈 수 있어? 결혼 예물도 몇 번이나 준비했는지 몰라. 우리가 뭔가 부족한 것이 생각나면 바로바로 보충했거든. 하나라도 빠뜨릴까 봐 걱정하고 있는데.”소균성은 마음이 급하기만 할 따름이다.그의 장남도 나이를 반올림하면 마흔이라 노동명처럼 관성의 노총각으로 되는데 조급해하지 않을 리가 있겠는가!“아버지, 아직 윤하 씨에게 고백하지 않았는데, 무슨 혼사에 관한 얘기를 벌써 꺼내려고 하세요?”“시간이 이렇게 오래도록 지났는데 아직도 고백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된 거야? 윤하 씨가 좋아하는 남자가 있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네가 감히 고백조차 하지 못했던 거야?”“아버지만 시간이 길다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사실 계산해 보면 그리 시간이 길지도 않아요. 제가 연성에 온 지 한 달도 안 됐거든요. 윤하 씨는 아직 저를 친구로밖에 생각 않아요. 지금은 아직 고백할 수 없어요. 시간이 좀 더 필요해요.”소균성은 전화기 너머로 답답한 듯 말을 내뱉었다.“네 담력은 어디로 튄 거야? 너도 무서울 때가 있었어? 남들은 첫눈에 반하면 바로 고백하던데 넌 우리 미래의 며느리랑 알고 지낸 지도 벌써 두세 달 넘어가는데 아직도 고백하지도 못하고 있어? 소지훈! 넌 장가가고 싶지 않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빨리 손주를 안고 싶거든.”소지훈은 난처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버지, 저도 가고 싶죠. 그런데 윤하 씨가 제 감정을 알고 받아들이지 못할까 봐 두려워요. 게다가 윤하 씨 성격이 너무 활발해서 남자들을 친구로 여기거든요. 그리고 저도 그녀보다 나이 차이가 너무 나서...”“나이는 문제가 아니야. 네가 윤하 씨와 고백하지도 않는데 윤하 씨가 어떻게 네 맘을 알겠어? 그러니까 널 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