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호영은 고현에게 끝까지 매달릴 생각이었다.고현이 언젠가 받아줄지도 모르니까.그는 큰형과 둘째 형의 성공 경험에서 진심을 보여주기만 하면, 낯가죽이 두껍기만 하면 언젠가는 사랑하는 여인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거라고 굳게 믿었다.전태윤이 소리 내 웃었다.“20년 넘게 남자의 신분으로 살았었는데 네가 갑자기 고백하니 어떻게 생각하겠어? 마음의 준비가 전혀 안 됐을 거야. 네가 싫은 것도 당연하지. 널 바로 쫓아내지 않은 것만 하여도 예의를 갖춘 거야.”“나도 형수님과 둘째 형이 조언해 줘서 그렇게 행동한 거잖아.”“잘 먹혀?”“응, 앞으로 아주 확 나간 느낌이야. 그리고 형, 나 이제 고현이 여자라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 것 같아.”“할머니가 우리를 언제 속인 적이 있어? 당연히 여자지, 설마 너에게 남자라도 소개해 주실 것 같아?”할머니한테 수없이 당한 전태윤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 지금 할머니를 대신해서 좋은 말을 하고 있다.전호영은 씩 웃으며 말했다.“우리 친할머니신데 그럴 리가 없지. 형 바쁘다며? 빨리 볼일마저 봐. 난 씻고 자려고, 오늘 저녁에 술을 많이 마셨더니 피곤해.”“그래, 일찍 자라. 그래야 내일 또 미래의 와이프 뒤를 졸졸 따라다니지. 힘내라!”전태윤은 기분 좋게 셋째와의 통화를 끝냈다.시간을 보니 저녁 9시가 넘었다.자주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직 이른 시간이었다.결혼한 후부터 전태윤은 밤 9시 30분쯤이면 꼭 집으로 돌아갔다.최근에 아내가 집에 없자 그는 소정남과 전이진의 일까지 모두 떠맡았다. 아내가 옆에 없어 힘든 시간을 바쁜 일로 꽉 채울 생각이었다.‘계집애가 양심도 없어, 어쩜 연락 하나 없는 거야? 전화나 메시지 같은 것을 보낼 줄 모른단 말이야.’남편의 생각을 알았다면 하예정이 억울하다고 하소연했을지도 모른다.하예정은 20여 분 전 방금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여보, 보고 싶어용!!!]전태윤은 아내와 연락하지 않은 지도 오래되었다는 생각에 참지 못하고 또 영상통화를
“어떤 이야기요?”하예정이 물었다.“당신의 신상과 관련된 일이야.”이에 하예정은 웃었다.“제 신상에 뭔 비밀이 있다고 그래요? 나랑 언니는 우리 부모님의 친딸이고, 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친자식인데. 그리고 우리 친자확인도 다 했잖아요. 엄마랑 이모도 친자매가 맞고요.”이렇게 간단한 신상에 무슨 비밀이 있을 수 있을까?“당신이 돌아오면 자세히 얘기해줄게. 어쨌든 당신의 신상과 관련된 일이야.”전태윤은 일부러 와이프의 호기심을 끌어냈다. 와이프가 호기심을 못 이기고 당장 집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좋아요, 제가 돌아가면 다시 얘기해줘요, 내 신상에 무슨 비밀이 담겨 있다는지 궁금하네요.”하예정은 전혀 궁금하지 않았다.부모님의 친자식인 게 분명하니까.“아주 큰 비밀이 숨겨져 있을지도 모르잖아.”“그냥 지어내지 그래요. 뭐라고 하든 모레 돌아갈 거니 그렇게 알고 있어요.”“우리 와이프 너무 똑똑한데?”하예정은 어이가 없었다.“아직 일하고 있죠? 당신의 소중한 시간을 뺏지 않을 거니 일이 끝나면 일찍 집에 돌아가요. 다른 유혹에 넘어가지 말고요.”“마누라가 옆에서 안 지켜주는데, 다른 유혹에 넘어가면 어떡해?”“그럼 버리면 되겠네요.”“...양심도 없어, 난 정말 당신을 끔찍하게 사랑하는데 말이야. 내가 뭘 잘못하면 바로 버리겠다는 거야? 당신 아직 날 너무 사랑하지 않는가 봐, 이제 돌아오거든 꼭 날 많이 사랑하게 해줄게.”하예정은 바로 전화를 끊었다,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듣고 싶지 않았다.영상통화가 끝나자마자 그녀는 절친 심효진으로부터 온 메시지를 받았다.메시지를 확인해 보니 심효진이 십여 장의 사진을 보내왔다.사진을 클릭해 본 하예정은 참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사진에는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그 남자는 뒷모습이든 옆모습이든 방금 그녀와 영상통화를 마친 남편과 똑 닮았다.사진 속 여자는 옆모습만 보여 하예정은 처음에 그녀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했다.심효진이 보낸 십여 장의 사
심효진이 말했다.“내가 찍은 게 아니고 다른 사람이 그 여자 모멘트에서 보고 캡처해서 정남 씨에게 준 거야. 정남 씨도 그걸 보고 깜짝 놀랐어. 원래 나한테도 알려줄 생각이 없었대. 내가 어쩌다가 그 사진들을 발견하고 바로 너한테 보냈어. 그 남자가 네 남편이 아닌지 잘 살펴봐 봐. 뒷모습은 정말 네 남편이랑 닮았어.”하예정은 도차연의 친구 중에 전태윤을 아는 사람이 있겠느냐고 생각했다.도씨 일가라면 그럴 만도 했다.“몸매나 뒷모습, 옆모습을 보면 우리 남편이랑 닮았어. 하지만 사진 속 남자가 우리 남편인지 아닌지는 나도 확신하기 어려워. 태윤 씨, 나 몰래 다른 여자랑 만나고 있지는 않겠지? 사진 속 여자는 누군지 알 것 같아. 도씨 그룹 대표의 외동딸인 도차연이야.”그러자 심효진이 말했다.“사진 속 남자 정말 네 남편일 가능성이 높아. 나 정남 씨한테서 들었는데 전씨 그룹과 도씨 그룹이 요즘 협업하고 있는데, 그 프로젝트가 두 그룹에 적지 않은 이익을 가져다줄 거래. 네 남편 이번 협업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여 직접 나서서 도 대표랑 이야기를 나눴다고 해. 그리고 전에 너 라이벌이 두 명 생겼다고 하지 않았어? 그중 하나가 도씨 그룹의 외동딸인 도차연이라고.”심효진은 전태윤이 바람을 피웠다고 믿고 싶지 않았다.“예정아, 네 남편 사업상의 일로 도차연과 만난 걸 수도 있으니 먼저 잘 알아봐봐.”하예정은 전화 저편에서 침묵했다.심효진은 문득 후회를 느꼈다. 사진을 먼저 친구에게 보내지 말았어야 했다.소정남이 그녀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았던 이유도 그녀가 쓸데없는 생각을 하게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만약 전태윤이 정말 하예정을 배신한 거라면, 친구로서 그 소식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친구에게 알려줘야 마땅했다.하예정은 영원한 친구일 뿐만 아니라 마음속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니까.한참 동안 침묵이 흐른 뒤 하예정이 입을 열었다.“이제 집에 돌아가거든 태윤 씨에게 직접 물어볼 거야. 난 아무래도 그 남자는 우리 남편이
“도차연은 내 라이벌이니 내가 상대하면 돼. 그리고 그 일이 있고 난 뒤 프로젝트는 다른 사람에게 팔로우하라고 태윤 씨가 시켰어. 태윤 씨는 더 이상 그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고 도 대표에게도 그날 일을 알렸어.”“...”“그 후 오랫동안 도차연을 보지 못했고, 태윤 씨도 나에게 도 대표가 딸 단속을 잘할 거라고 약속했다고 말했어. 도 대표도 도차연이 여전히 날 연락할 줄은 전혀 예상 못 했을 거야. 얼마 안 돼 도차연은 관성을 떠났고 약속대로 날 찾아오지도 않았어.”친구의 말을 들은 심효진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네 말 들으니 안심이 돼. 사진 속 그 남자는 분명 태윤 씨가 아닐 거야. 너랑 태윤 씨가 얼마나 어렵게 걸어왔는데. 태윤 씨가 널 그토록 사랑하고 총애하는데... 그 사랑과 총애가 모두 거짓이라면 난 더 이상 사랑이란 걸 믿을 수가 없을 거야.”전태윤의 성격으로는 절대 나가서 다른 여자를 만날 리가 없다.그런 사람이 아니니까.“이게 도차연이 꾸민 음모거나 그냥 의외일 수도 있어. 태윤 씨랑 비슷한 몸매를 가진 사람을 찾은 걸 수도 있잖아.”하예정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효진아, 난 태윤 씨가 너무 매력적이어서 걱정이야. 매일 다른 여자들이 넘보잖아. 태윤 씨는 맨날 작은 일로 질투하는데, 내가 태윤 씨 같은 성격이었으면 아주 오래전에 질투로 우울증에 걸렸을걸.”심효진은 전태윤을 대신하여 좋은 말을 했다.“네 남편이라면야 여자들이 달라붙는 게 이상하지도 않아. 태윤 씨 먼저 다른 여자를 건드리는 성격은 아니잖아. 여자들을 막기 위해 그 많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다녔는데... 다시 생각해 보면 라이벌이 많을수록 네가 더 행복하다는 것을 설명하지 않아? 그 많은 여자가 좋아하는 남자랑 결혼하여 사랑 듬뿍 받고 있잖아. 네가 가장 운이 좋고 행복한 여자라고 생각하면 그만이야. 사람들은 훌륭한 사람에게 끌리는 법이니까.”“나랑 진우도 그저 이런 경우가 아니야, 태윤 씨 괜히 질투해서는. 지난번 연회
“우유 이젠 마셔도 돼.”소정남은 아내 곁에 다가앉아 먼저 우유를 마시라고 했다.심효진이 우유가 든 잔을 들고 말했다.“예정이는 태윤 씨를 믿어. 사진 속의 여자가 도씨 그룹의 딸 도차연이래. 그 여자 너무 뻔뻔한 거 아니야? 태윤 씨와 예정이 이제 한 달 뒤면 결혼식을 올리게 되는데... 혼인신고를 한 지도 1년이나 됐겠다, 관성의 사람은 물론이고, 당신 회사와 거래하는 사람 중에 태윤 씨가 이미 결혼을 한 데다가 와이프를 엄청나게 아끼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어떻게 감히 예정이를 찾아가 이야기 나눌 생각을 할 수 있어? 예정이에게 태윤 씨와 어울리지 않으니 곁에서 떠나라고 할 게 분명해. 무슨 용기로 예정이에게 감히 이런 말을 하려는 지 모르겠어.”“당신 말 맞아.”“예정이가 어디를 봐서 태윤 씨와 어울리지 않아? 집안 조건은 전씨 일가보다 못하다지만 전씨 일가에서 예정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 완전히 받아들였는걸. 남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하는 건 다 질투가 나서 막말하는 거란 말이야.”소정남은 부드럽게 타일렀다.“당신이 알면 되는 거야. 화내지 마. 예정 씨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니까 태윤이를 믿을 거야. 사진 속 그 남자, 나도 태윤이가 아니라고 생각해. 태윤이는 요즘 연회에 참석하지 않으면 동명이를 위로하러 가느라 관성을 떠난 적이 없는걸. 아참, 며칠 전에 떠났긴 했지만 그것도 지 와이프를 찾으러 A시에 간 거야. 자, 여보. 우유 마셔. 우유 다 마시고 쉬어.”소정남은 참지 못하고 다시 심효진의 배에 손을 대며 기대감에 가득 찬 얼굴로 말했다.“아가야, 아빠랑 인사할래?”심효진은 우유를 몇 모금 마시고 웃으며 말했다.“아직 이르니 좀 더 기다려봐, 만지기만 하면 발로 찰걸.”“너무 기대돼. 태동은 어떤 거야? 우리 아기 언제 아빠랑 인사할 수 있어?”심효진이 되물었다,“임신에 관한 책을 그렇게 많이 사놓고 한 눈도 안 본 거야?”“...보긴 봤는데, 보기만 하면 눈이 감겨서 말이야. 잠 요정은 너무한다니
심효진은 하마터면 우유를 뿜을 뻔했다.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그만해, 우유를 다 마신 후에 계속하든 해. 당신 몸에 뿜을라. 난 뚱보가 되고 싶지 않아. 임신해도 가장 아름다운 임산부가 될 거야.”아이를 낳은 후 그녀는 날씬한 몸매를 회복하기 위해 서둘러 운동을 할 생각이었다.남편이 뚱뚱해져도 싫어하지 않을 거라는 말은 믿지 않는 것이 좋다.사람이라면 아름다운 것을 좋아한다.그녀가 정말 뚱뚱해지면 처음에는 싫어하지 않을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싫증 날 것이다. 그다음에는 다른 여자가 그녀보다 훨씬 낫다고 느껴져 마음이 변할지도 모른다. 결국 다른 사람의 남자가 될 것이다.예전에 주형인도 하예진에게 같은 말을 했었다.결과는 뻔했다.뚱뚱하고 못생겨진 하예진을 싫어하게 되었다.심효진은 자신을 두 번째 하예진으로 되게 놔둘 리가 없다.“그럼 내가 뚱보로 되면 되지. 뚱뚱해지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을 거고 라이벌도 없을 거야.”심효진은 일부러 놀림 조로 말했다.“라이벌도 없이 당신을 쉽게 손에 넣어서 전혀 성취감이 없는걸.”“나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 나에겐 여보밖에 없어. 여보, 나를 원해줘서 고마워. 평생 당신에게 잘해 줄 것을 약속해. 당신만을 사랑할 거야.”똑똑한 소정남은 와이프가 판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함정에 빠졌다간 오늘 밤 한 침대에서 잘 생각도 하지 말아야 했다. 서재로 쫓겨날지도 모른다.소정남은 아내 곁에서 함께 자는 것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아내를 안고 잘 수 이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서재에서 자게 되면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것이다.심효진은 이런 남편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그녀는 우유를 다 마신 후 빈 잔을 건네주었다.소정남은 빈 잔을 받아 들고 일어나 세면실로 들어가 잔을 씻었다.심효진은 일어나 방안을 걸어 다녔다.컵을 씻고 나온 소정남은 와이프가 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보고 물었다,“배불러? 저녁도 많이 안 먹은 것 같고, 우유 양도 평소와 같으니까 배부른 건 아닐 텐데...”“배부른 건
“몰래 마당에서 몇 입만 먹으면 안 될까? 나 몸이 좋아서 두 입만 먹어선 괜찮을 거야. 그냥 맛만 본다니까. 작년 이맘때 난 매일 아이스크림을 두 개 먹었는걸.”먹보로서 어떤 음식을 먹고 싶게 되면 정말 당장이라도 입에 넣고 싶은 마음이었다.1분도 기다리지 못할 정도였다.소정남은 말문이 막혔다.아내를 사랑하는 그는 정말이지 아내의 부탁을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주치의가 임신 중에는 될수록 차가운 음식을 먹지 말라고 했다.“여보, 우리 아기 이름 아직 생각 안 했는데. 예쁜 이름 생각해 봤어?”소정남은 화제를 돌려 먹보 아내의 주의를 분산시키려고 했다. 그러면 아이스크림를 잊을 수도 있으니까.아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면 얼마든지 먹일 것이다.하지만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이라면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이름을 짓는 일은 아직 이르니까 거의 낳을 때가 돼서 다시 생각해도 늦지 않아. 게다가 아직 아들인지 딸인지도 모르잖아.”“남자애 이름이랑 여자애 이름 다 하나씩 지으면 돼. 그러면 아들이든 딸이든 모두 이름을 갖게 되잖아.”“내 주의 돌릴 생각 마. 여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남편분, 아이스크림 몇 입만 먹게 해줘.”심효진은 바보가 아니다.소정남이 화제를 돌린 것을 그녀는 알고 있다.그녀는 다시 아이스크림에 대한 화제로 돌렸다.소정남은 할 수 없이 말했다.“...엄마가 나를 욕할 때 날 지켜줘야 해.”“당연하지.”“정말 몇 입만 먹는 거지?”심효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정말 몇 입만.”‘한입부터 아홉 입까지 다 몇 입에 속하니까.’소정남은 작은 소리로 말했다.“이따가 마당에 가서 10분 정도 걷다가 다시 아이스크림을 가지러 집에 돌아갈게. 걸으니 너무 더워서 먹고 싶어졌다고 할게.”심효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만 있으면 상관없었다.임신한 후 먹고 싶은 것이 떠오르기만 하면 한시도 참을 수 없었다.임신하면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된다고 한다.평소에 안 좋아하던 음식도 좋아하
“그럼 됐어요.”소정남은 동작을 멈추고 돌아서서 밖으로 나갔다.잘된 일이었다. 집에 아이스크림이 없으니 그가 고의로 주지 않은 것이 아니라 집에 없어서 할 수 없는 일이었다.심효진은 시어머니가 아이스크림과 사이다를 모두 치웠다는 말을 듣고 그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친정에 돌아가서도 먹을 수 없었다.그녀의 부모님은 시어머니보다 훨씬 더 엄격했다.부모님은 시댁 식구들이 좋은 사람들이라 만족하라고, 배 속의 아이를 잘 돌보아 시댁에 튼실한 손자를 낳아주라고 했다. 그래야 그녀에 대한 시댁의 따뜻한 배려에 떳떳할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은 누구보다 배 속의 아기를 소중히 여겼다.‘내일 가게 지키러 갈 때 몰래 사 먹어야지.’“내일 점심에 내가 사줄게. 점심때엔 날씨가 제일 더우니까 조금 먹어도 괜찮을 거야. 당신 직접 사 먹는 건 안 돼.”소정남의 말에 심효진이 훔쳐먹을 생각을 접었다.남편이 경호원을 배치하여 매일 따라다니게 하였으니까.그게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알지만 동시에 자유를 박탈당한 느낌도 있었다. 무엇을 하든지 감시하였고 아주 작은 일까지도 소정남에게 알리곤 했다.그녀는 애초에 친구들이 왜 경호원이 따라다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는지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예정에게 알려줘야겠어. 임신하기 전에 아이스크림 많이 먹어두라고. 임신한 후면 남이 먹는 걸 그냥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이야.”소정남이 그 말을 듣고 말했다.“태윤이는 언제 아빠가 될지 몰라.”심효진이 대답했다.“나 어젯밤 예정이가 임신한 꿈을 꿨어. 예정이는 딸을 낳고 난 아들을 낳은 거야. 그래서 내가 이제 사돈을 맺자고 말하니까 흔쾌히 승낙했어. 내 생각에는 곧 임신할 수 있을 것 같아.”소정남이 풋 하고 웃었다.“여보, 꿈은 모두 반대라고 하잖아? 꿈에서 예정 씨가 딸을 낳고 당신이 아들을 낳은 거라면 실제로는 예정 씨가 아들을 낳고 당신이 딸을 낳게 되겠네. 그래도 우리 두 집안이 사돈을 맺는 데에는 방해가 되지 않아. 나 내일 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