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혜는 서로 편히 대화하려고 집안에 들어간 후 하예진 옆에 나란히 앉았다.그녀는 어르신의 손에서 종잇장을 건네받고 하예진과 함께 쭉 훑어보더니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날짜로 골랐다.“사돈 어르신, 이날로 하시죠.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니 우리 모두 준비를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이경혜는 하예진과 함께 고른 날짜를 가리키며 어르신께 말했다.동생이 없으니 이경혜가 가장 역할을 담당해 조카의 결혼식을 책임졌다.아무도 하예정을 얕잡아보지 않게, 무조건 으리으리하게 시집보내야 한다.어르신과 장소민 일행은 이경혜가 선택한 날짜에 아무 의견이 없었다. 사돈이 어느 날을 선택하든 전부 할머니가 고심 끝에 고르신 좋은 날들이니까.마침내 전태윤과 하예정의 의견도 물었다.하예정은 아무 의견이 없었고 전태윤은 양가 어르신이 선택한 날짜를 보더니 속으로 묵묵히 계산해 보았는데 결혼식 당일은 하예정의 마법의 날이라 첫날밤을 보낼 수 없어 그에게 불리했다.그는 불쑥 반대표를 내던졌다.“이날은 안 돼요. 다른 날로 바꿔요.”어르신이 의아한 듯 물었다.“왜 안 돼? 가장 가까운 날은 고작 열흘 뒤라 시간이 빠듯할 거야. 이날이 딱 좋아. 우리 양쪽 모두 충분히 준비할 수 있다고. 이날 뒤에 날짜는 또 너무 멀어서 가을이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 네가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있다면 우리도 아무 의견 없어.”전태윤은 가을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이제 막 설이 지났는데 가을이 되려면 한참 멀었다.“그럼 첫 번째 날로 해요. 열흘 뒤에 3월 중순이라 너무 춥지도 덥지도 않아서 결혼하기 딱 좋아요.”할머니는 열흘 사이에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는 건 실로 조급한 일이라고 생각되어 그다지 변경하고 싶지 않았다.“태윤아, 너희 처형이랑 이모님이 골라주신 날짜가 왜 안되는지 한번 말해봐 봐! 이 날짜들은 할미가 작년에 스님을 모시고 정성껏 고른 좋은 날들이야.”스님은 당연히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의 인연이 있다고 할머니께 자주 말씀드렸던 그분일 것이다.할머니는
소정남의 옆에 앉아있던 심효진이 머리를 갸웃거리고 막연한 표정을 지은 노동명을 보더니 입을 막고 웃었다.노동명과 전태윤이야말로 한 부류의 사람이다.소정남은 IQ와 EQ 모두 높아서 그들과 함께 있으면 고문 역할을 담당한다.한편 성소현과 예준하도 즐겁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성소현이 함께 얘기를 나눠줬으니 망정이지 예준하는 진작 의자에서 일어나 터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안고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그는 이런 자리를 제일 두려워한다. 어르신을 보면 그의 할머니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니까. 그의 할머니도 종일 그들 형제의 혼사만 신경 쓰고 계신다.다행히 예준하의 할머니는 전씨 할머니처럼 고생을 감수하는 게 아니라 그들의 맏형수에게 전적으로 이 일을 맡겼다.모연정은 중매인이 될 잠재력이 있으니까.소정남은 노동명을 노려보다가 말했다.“이렇게 꽉 막혀서 대체 뭘 할래.”“난 꽉 막히지도 않았고 딱히 할 일도 없어.”소정남은 고개를 홱 돌려 심효진과 알콩달콩 얘기를 나눌 뿐 더는 노동명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노동명은 어안이 벙벙했다.소정남은 대체 무슨 뜻인 걸까?잠시 몸을 숨겼던 양 집사가 다시 나타났다.그는 전태윤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말했다.“도련님, 오븐과 식자재 전부 준비해 놓았어요.”전태윤은 알겠다고 대답한 후 하예정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어르신들께 말했다.“할머니, 저희 그럼 바비큐 하러 갈게요.”“그래.”전태윤은 이경혜 부부에게도 여쭤보았고 그들 부부가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지 않다는 걸 확인한 후에야 하예정과 친구들을 데리고 집 안에서 나왔다.그림 같은 풍경의 정원을 거닐면서 성소현이 하예정 옆으로 다가왔고 전태윤도 마침 하예정의 손을 놓아주었다. 두 자매가 함께 얘기 나눌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해주었고 그는 이참에 예준하에게 다가갔다.예준하를 초대한 건 전태윤인데 여태껏 제대로 맞이하지도 못했다.“예정아, 너랑 태윤 씨 결혼식이 뒤로 미루어졌으니 나도 선뜻 투자에 관해 얘기할 수 있게 됐어. 안 그러
“준하 씨, 쟤네 둘 웃는 게 조금 이상해 보이지 않아요?”친구가 뒤따라오지 않자 성소현은 예준하와 나란히 걸으며 가끔 고개 돌려 두 친구를 힐긋거렸다.그녀들이 이미 사랑하는 사람과 속닥거리는 모습에 성소현은 실로 부러울 따름이었다.가장 부러운 건 그래도 하예정이었다.하예정의 남편이 그녀가 수년간 짝사랑해 온 전태윤이니까. 전태윤은 성소현에게 얼음장처럼 차갑고 눈길 한번 안 줬다. 하여 그가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평생 자상함이라곤 모르는 남자라고 여겼었다.다만 하예정을 대하는 그의 모습을 본 후에야 성소현은 깨달았다. 전태윤은 자상함을 모르는 게 아니라 오직 하예정에게만 자상하다는 것을.물론 부러운 건 부러운 거고, 성소현은 인제 전태윤에 대한 마음을 철저하게 접었다.그가 하예정을 위해 성소현을 선뜻 누나라고 부를 때, 이 남자는 더이상 본인 소유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좋은 남자가 많고 많으니 성소현도 굳이 전태윤에게 목을 매달 이유가 없다.전태윤이 하예정에게 잘해만 준다면 그녀는 부부가 백년해로하기를 진심으로 기원할 것이다.예준하는 봄날처럼 따뜻한 미소를 지었다.“난 이상한 줄 모르겠는데요.”“내가 괜한 생각했나 봐요.”성소현은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물었다.“태윤 씨가 준하 씨 초대했죠?”“네. 저랑 태윤 씨 꽤 친하거든요. 제가 홀로 관성에서 외로울까 봐 태윤 씨가 이리로 불렀어요. 함께 모여서 재미있게 놀자고 하데요.”예준하는 사실 소정남과 더 친하다.두 회사의 비즈니스 왕래는 기본적으로 소정남이 책임지고 있으니까.“저는 또 준하 씨가 주말마다 A시로 돌아가는 줄 알았어요. 비행기 타고 두 시간 남짓하면 금방 도착하잖아요.”“그건 그렇죠. 하지만 관성 쪽 사업을 장기적으로 책임지고 있다 보니 집에 별일 없으면 거의 안 돌아가요. 오가는 것도 피곤하잖아요. 주말에 휴식할 때면 종일 집에 누워 자거나 친구들 몇 명 불러 등산 혹은 축구를 즐기는 편이고, 오늘처럼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도 나름 괜찮은 것 같아요. 여름이면
“좋아요.”“준하 씨네 집도 리조트겠죠?”예준하가 머리를 끄덕였다.“우리 편하게 말 놓을까요? 앞으로 이웃으로 지낼 텐데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그래, 그럼 말 놓을게.”예준하는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우리 집도 태윤 씨네 집처럼 리조트 형식이야. 이름은 예진 리조트야.”그는 주변 풍경을 쭉 둘러보면서 성소현에게 말했다.“태윤 씨네 할머니랑 우리 할머니의 안목과 취향이 다 비슷한 것 같아. 모두 같은 세대 사람들이라 미적 관념이 동일한가 봐. 우리 예진 리조트와 서원 리조트가 엄청 비슷하거든.”굳이 차이점을 따지자면 예진 리조트가 좀 더 크다.성소현도 주변 풍경을 쭉 둘러보았다.“난 예전에 꿈에서라도 이런 곳에 살고 싶었어. 번화가에서 멀리 떨어져 조용하고 아늑하잖아. 경치도 일품이고 면적도 엄청 커서 한 달 동안 지내도 갑갑하지 않을 것 같아.”가장 중요한 것은 이곳이 바로 전태윤의 집이기 때문이다.그녀는 한때 전태윤을 깊이 사랑해 서원 리조트의 여주인으로 되고 싶었다.예준하가 다정하게 말했다.“나중에 기회 되면 우리 예진 리조트로 가서 구경도 하고 며칠 지내도록 해.”성소현은 사색에서 빠져나와 웃으며 답했다.“A시에 관광지가 많아 나 자주 놀러 가. 너희 집안에서도 펜션을 꾸렸잖아. 나 매번 놀러 갈 때마다 너희 집 펜션에서 숙박하는 걸 좋아하거든.”다만 그땐 예준하를 몰랐다.“나중에 또 A시로 놀러 오면 언제든지 연락해. A시에서의 모든 비용은 내가 쏠게. 공짜로 가이드도 해주고, 모든 관광지를 구경시켜 주고 맛있는 음식도 실컷 먹게 해줄게.”성소현은 별생각 없이 바로 대답했다.“그래, 그럼 그때 가서 예정이랑 효진 씨도 불러야겠어. 두 사람 식탐 왕이니까 함께 맛집 돌아다니면 우리도 덩달아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야.”“좋아.”예준하는 성소현이 뭐라 말하든 전부 오케이였다.성소현은 그가 대가족 출신이다 보니 교양 있고 온화하며 의젓하다고 생각했다.큰오빠는 그녀에게 예준하가
“나중에 보다 못한 신선 어르신이 속세에 내려와 제자의 뒷수습을 도왔어요. 원래 부부의 인연이 있던 남녀에게 다시 빨간 실을 묶어주었죠. 그땐 왜 그렇게 신기하던지. 나이가 어려서 사랑을 모르지만 빨간 실로 딴사람 발목을 묶는 게 너무 재미있어 보였어요.”전태윤이 물었다.“그런 드라마도 있었어? 난 전혀 기억 안 나는데. 드라마를 볼 시간이 거의 없거든.”그는 상속자라 어릴 때부터 동년배들보다 더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각종 프로그램과 훈련을 받아야 했기에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다.“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드라마를 자주 봤어요. 엄마, 아빠랑 함께 봤거든요. 예전에는 다 흑백 텔레비전이었어요. 가장 재미있게 본 건 ‘피구왕 통키’였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서 언니랑 단둘이 생계를 유지해야 하고 공부도 해야 해서 몇 년간은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었어요. 사회에 발을 들인 후에야 종종 봐왔어요.”전태윤은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나중에 보고 싶은 드라마 생기면 나랑 같이 봐.”하예정은 그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더니 금세 반듯한 자세로 돌아왔다. 사람이 많으니 알콩달콩하기엔 부적절해 보였으니까.다들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다 보니 리조트의 바비큐장에 금방 도착했다.양 집사가 미리 준비를 마쳐서 다들 바비큐장에 도착했을 때 더 차릴 것도 없었다.남자들은 서로 잘 보이려고 오븐 앞에 섰고 여자들은 먹기만 하면 됐다.전씨 일가의 다른 도련님들은 큰 형네 테이블 사람들이 모두 짝을 이룬 걸 보더니 묵묵히 오븐을 바꿔서 거리를 벌렸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쉽게 타격받을뿐더러 내심 부러우니까.전호영은 다 구운 양꼬치 한 접시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전이진에게 물었다.“형, 안 부러워?”“날 엮을 생각 하지도 마. 부러우면 할머니 지시를 따르던가. 우리 집 강성 쪽에도 호텔이 있잖아. 너 출장 가서 미래의 예비 신부나 보고 와.”전호영은 전이진의 손에 쥔 닭 날개를 덥석 뺏으며 말했다.“먹고 싶으면 혼자 구워 먹어.”그는 고현이 싫다.보이쉬한 그녀
하예정은 실랑이를 벌이는 도련님들이 내심 부러웠다. 전씨 집안 사람들은 그야말로 화목하게 지낸다. 그녀의 집안처럼 남을 헐뜯지 못해 안달인 사람이 없다.“소현 언니, 아까 투자하고 싶다던 아이템이 뭐였죠?”하예정은 남편이 친히 구워준 해산물 모듬을 먹으며 투자 건이 생각나 성소현에게 물었다.심효진도 귀를 쫑긋 세웠다.그녀도 요즘 소정남 때문에 압력이 살짝 쌓였다. 하예정이 남편과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저 자신을 끊임없이 승화하는 걸 보더니 심효진도 더는 무념무상으로만 있고 싶지 않았다.“지금은 각 분야가 포화상태라 다른 사람 입에서 먹잇감을 뺏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야. 어제 너희 고향으로 돌아갈 때 마을의 논밭이 거의 황폐해졌더라.”하예정네 집안 텃밭도 멀리서 보았지만 황폐해진 상태였다.하긴, 인간쓰레기 같은 그녀의 친척들은 마을에서 부자에 속하다 보니 굳이 텃밭을 가꾸지 않아도 남들보다 우월한 삶을 보내고 있다.“그래서 생각해 봤는데 우리가 사람 한 명 보내서 너희 고향에 있는 황무지를 전부 임대하고 화초나 야채를 심으면 어떨 것 같아? 물론 우리가 직접 나서서 관리하는 건 아니고 사람을 시켜서 관리하게 할 생각이야. 우리가 나서면 너희 집안 인간쓰레기 같은 친척들이 또 마구 파괴할 게 뻔하잖아. 일단 심을 수만 있다면 판로는 문제 되지 않아. 별장 구역들, 도시 환경 미화 등 모두 화초가 필요하니까. 우리가 심는 화초는 전문적으로 그린 환경을 위한 것이고, 또한 야채랑 과일도 심을 수 있어. 성씨 그룹도 그렇고 너희 전씨 그룹도 마찬가지로 산하에 호텔이 꽤 많아서 매일 야채와 과일 수요량이 어마어마할 거야. 물론 우리의 목표는 다른 호텔에 판매하는 것이지 제 집안 돈을 버는 건 아니야.”“학교 구내식당, 공장 구내식당에서도 매일 야채와 과일 수요가 엄청 클 거야. 비록 이 분야의 경쟁력이 매우 크지만 난 우리가 남들보다 우세가 있다고 생각해. 남들 입에서 이 분야의 이윤을 나눠 먹는 게 좀 더 쉽잖아. 너희 고향으로 가는 길에 한길 내내
하예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맞아, 소현이 넌 역시 우리보다 생각이 앞선다니까. 예정아, 앞으로 소현이만 믿고 따라다녀.”하예진 자매는 진취적이고 야심이 있지만 투자 방면에서는 아직 성소현보다 못하다. 성소현은 사업가 집안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가볍게 웃었다.“언니, 저도 언니네 고향으로 내려가 봤으니 황무지가 많은 걸 알게 됐고 그 황무지를 임대해서 화초도 심고 야채랑 과일을 심을 생각도 하게 됐어요. 큰오빠한테 여쭤봤는데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아이템에 투자하든 돈만 벌 수 있으면 다 좋은 아이템이라면서 한번 시도해 보라고 추천하데요.”성소현이 호탕하게 말했다.“그럼 한번 시도해 봐요. 돈 벌면 좋고 못 벌어도 경험 쌓는 거잖아요. 어차피 내겐 큰 액수도 아니에요. 예정아, 너 저녁에 태윤 씨한테 말해봐 봐. 태윤 씨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면 우리 과감하게 시도해 보자. 태윤 씨는 투자에 대한 안목이 있는 분이잖아.”전태윤이 전씨 그룹을 전수한 이후로 투자한 프로젝트마다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한다.성기현은 집에 올 때마다 전태윤의 성과를 얘기했지만 성소현이 그를 짝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좋아.”하예정도 통쾌하게 대답했다.사실 몇몇 남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들이 하씨네 마을의 논밭을 임대하여 화초와 야채 및 과일을 심으려 한다는 걸 줄곧 듣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전태윤이든 소정남이든 모두 성소현의 안목을 인정했다.그녀 말대로 지금은 각 분야가 포화상태라 입문자는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그녀들이라 해도 투자 경쟁력이 매우 클 테지만 성소현과 하예정의 신분이 동종업자들보다 우세를 차지하여 협상하고 판로를 찾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쉬울 것이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제 집안 호텔에 공급하면 그만이다.하여 몇몇 대표님들도 성소현의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도와주지 않기로 했다. 하예정
“난 안 먹은 음식만 동명 삼촌한테 드렸어요.”어린 녀석이 한마디 더 보탰다.뭇사람들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휴식도 할 겸 자유 활동 어때?”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단둘이 리조트를 둘러보고 싶었다.다들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잠시 휴식한 후 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바비큐장을 떠났다.“나랑 함께 화원으로 꽃구경하러 가. 지금 한창 꽃필 때야.”하예정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이 낯설다 보니 어디가 경치 좋은지 몰라 전태윤만 따라다녔다.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두 눈을 스르륵 감고 봄 내음을 만끽했다.“도시보다 공기가 더 좋아요.”전태윤이 가볍게 웃었다.“당연하지. 여긴 아주 한적해. 내일 처형 가게만 오픈하지 않았어도 우리 여기서 며칠 더 지낼 수 있을 텐데. 너도 이젠 제집 환경에 익숙해져야지.”“평생 지낼 내 집이니까 익숙해질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요. 조급할 필요 없으니 우선 언니 가게부터 안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요 우리.”전태윤은 그녀의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여긴 그녀의 집이고 둘만의 집이라 앞으로 평생 지낼 곳이다.“그런데 리조트가 너무 커서 태윤 씨 없이 홀로 둘러보라고 하면 나 진짜 길 잃을 것 같아요.”“환경이 익숙지 않으면 길 잃어버리기에 십상이야. 리조트를 명인의 구상대로 배치해서 살짝 미로 같긴 해. 처음 온 사람은 아무도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이 안에서 사흘 동안이나 헤맬 수 있어.”하예정은 입이 쩍 벌어졌다.“대단하네요. 다행히 난 태윤 씨가 있어서 사흘 동안 헤맬 필요는 없겠네요. 진짜 벗어나지 못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혼자 내버려 두겠어. 내가 무조건 함께 다니면서 환경을 익숙하게 해줘야지. 여자 데리고 우리 집 리조트를 돌아다니는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야.”“영광이네요.”“이런 기회를 줘서 내가 더 영광이야.”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전태윤은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더니 사랑하는 아내를 끌어안고 목소리를 내리깔
하예정은 웃으면서 해명했다.“동서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봐 물어본 거 아니에요. 단지 할머니께서 어떤 며느릿감을 고르실지 궁금해서 물어본 것뿐이에요.”그녀는 이런 가십거리를 매우 좋아했다.동서끼리 사이가 안 좋을까 봐 걱정하는 것이 아니었다. 전씨 할머니의 안목은 무척 좋기 때문에 전씨 할머니께서 고르신 아내감은 분명 인성 좋은 사람일 것이다.설령 인성이 나쁘더라도 하예정과 마음이 맞지 않아도 괜찮았다.그들은 모두 서원 리조트에 살고 있지만, 모두가 서로 다른 별장에 살고 있었다. 함께 살지 않으니 마음이 맞으면 서로 좀 더 잘 만나고 마음이 맞지 않으면 관계만 잘 유지하면 그뿐이었다.전태윤이 말을 이었다.“나도 어떤 사람인지는 잘 몰라. 아마 비주얼은 좋을 것 같아. 어쨌든 우리 사촌 동생들은 전부 다 뛰어난 외모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할머니께서도 못생긴 여자는 고르시지 않을 거야. 이혁이도 오랫동안 날 찾아오지 않았는데 어떻게 됐는지 몰라.”전태윤은 심지어 전이혁의 미래 아내의 성씨도 몰랐다. 그의 여자도 아니었기에 너무 많은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언젠가 동생들도 그들의 여자들을 데리고 부모님을 뵈러 올 것이다.“그런데 할머니께서 저를 마음에 들어 하시는 이유를 잘 모르겠어요. 저는 못생기지 않게 생겼지만, 우리 집안은 부유하지도 않고 전씨 가문의 재력과는 너무 차이 나는 데다 태윤 씨는 전씨 가문의 장남이잖아요, 왜 태윤 씨와 저를 맞세우려고 하셨는지, 또 왜 우리 두 사람을 결혼시키려고 하셨는지... 태윤 씨도 무척 난처했겠네요.”전태윤은 잠자코 있다가 대답했다.“우리는 아마도 그 점쟁이가 점을 쳐 주신 덕분일 거야.”전씨 할머니는 그 점쟁이를 가장 신임하셨다. 점쟁이는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 인연이 있다면서 만약 그가 하예정을 놓치게 되면 평생 홀아비로 살 것이라고 귀띔해주셨다.전씨 할머니는 장남 전태윤을 가장 아끼시는데 어떻게 그가 홀아비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하여 전씨 할머니는 몰래 하예정의 인성을 관찰하다가 인품이
사람들에게 하예정의 친정집의 실력도 강하다는 것을 알게 해야 했다.하예진은 이경혜의 지시에 따라 강성에 와서 이은숙 가족 교통사고의 진실을 추적하는 것 외에도,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되찾아 하예정의 친정집에도 재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강성 이씨 가문은 점점 몰락하고 있지만, 어쨌든 재벌 가문이기 때문에 지금의 하씨 집안보다는 훨씬 나았다.하씨 집안에도 가족들이 많지만, 고향의 그 “일품” 친척들은 하예정의 발목만 잡는 사람들이라 연계를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좋은 선택이다.통화를 끝내자 하예정은 휴대전화를 들고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었다.전태윤은 부드럽게 물었다.“무슨 생각해?”하예정은 빙그레 웃으며 전태윤의 어깨에 기대며 말을 이었다.“당신 그래요? 운명이란 게 참 이상해요. 저는 지금 같은 날은 꿈도 꾸지 못했거든요. 우리 엄마가 원래 부잣집 딸일 줄은 생각도 못 했어요. 게다가 제가 태윤 씨와 결혼하게 되다니, 사람 사이 인연이란 게 참 신기해요. 내일 일어나게 될 일을 누구도 모르잖아요.”전태윤은 하예정의 얼굴에 뽀뽀하고 난 뒤 말을 건넸다.“처형이랑 일상적인 통화를 하는 것 같더니 왜 이렇게 감회가 새로워졌어? 먼저 회사로 갈 거야? 아니면 서점으로 가려고? 내가 너 데려다주고 다시 회사로 갈게.”“일단 회사로 돌아가야죠. 지금 이 시간이면 학생들도 다 수업하고 있을텐데 가게도 별일 없을 거예요. 서점으로 간다 해도 한가해서 파리만 잡을 텐데. 지금은 날씨가 추워서 파리도 없겠네요.”“그래.”“참, 저의 언니가 말씀하시는데 어제 고 대표님이 연회에 드레스를 입고 참석하셨다면서요? 호영 도련님께서 드디어 소원을 이루셨네요.”전태윤이 웃으면서 말했다.“호영이가 어젯밤에 기뻐하며 나에게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더라고. 이진이와 호영이가 결실을 보았으니 이제 이혁이와 전우만 남았네.”지난번에 어떤 여자가 전씨 그룹에 가서 전이혁을 찾으러 갔었다. 전이진은 그에게 전화를 걸어 물건을 훔친 거 아니냐면서 캐물었
하예정이 웃으면서 대답했다.“우빈은 말할 것도 없고 나조차도 아침에 이불 속에서 겨우 일어났어. 언니, 강성은 더 춥지? 인스타에서 보니 사람들이 눈 내리는 영상을 찍어 올렸던데. 우리 관성은 눈은 오지 않지만, 강성 쪽에 눈이 오면 우리 여기도 따라서 추워져.”관성 기온은 낮에는 10도가 넘지만, 밤에는 가장 낮아서 8~9도까지 떨어지곤 한다.이런 기온은 강성 사람들에게는 춥지 않지만, 더위에 길들여진 관성 사람들에게는 매우 추운 날씨다.“옷 좀 더 입혀줘. 유치원에서 나누어준 겨울옷은 너무 두껍지 않으니까.”우빈은 겨우 세 살 남짓 된 어린이였기에 하예진이 걱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건 분명 거짓말일 것이다.“입혔어. 그런 걱정하지 마. 언니도 강성에서 감기 조심하고. 많이 입고 다녀.”“내가 어린애도 아니고. 걱정하지 마. 넌 오늘 회사로 출근했어? 요즘 관성도 추울 텐데, 먼저 집에서 쉬는 건 어때? 제부가 돈 잘 벌잖아. 네가 회사로 뛰어다니면서 돈 벌 필요 없어.”하예진은 너무 바빠서 땅에 발을 내디딜 틈이 없으면서도 여동생에게는 집에서 배 속의 아기를 잘 돌보라고 설득했다.“괜찮아. 우리 회사에도 일이 별로 없어서 그냥 와 본 거야. 좀 이따가 서점에 들러야 해. 정남 씨가 이틀을 휴가 내서 나도 효진에게 쉬라고 했어. 두 사람이 함께 편히 쉬라고 가게에 나오지 말라고 했어. 나 혼자서도 충분히 볼 수 있으니까.”소정남은 늘 전태윤에게 그의 아내가 샤브샤브를 먹고 싶어 하지만 시간이 없어서 먹지 못한다고 투덜댔다.하예진도 그냥 잔소리 한 번 해봤을 뿐 하예정이 말을 듣지 않을 것을 뻔히 알기 때문에 더는 말을 설득하지 않았다.하예진은 과거 임신하여 집에서 쉬면서 사회와 단절되었고 출산한 뒤로도 모든 정력을 우빈에게만 쏟아부어 자기 관리에 소홀해 몸매가 많이 무너졌었다.그러나 전태윤은 주형인처럼 어리석게 행동하지는 않을 것이다.하예진의 실패한 결혼은 하예정에게 경적을 울릴 것이고 하예정도 최대한 친언니의 과거 생활을 피해 가려
전호영은 싱글벙글 웃으며 말을 내뱉었다.“당연히 습관 되지 않을 거예요. 현이 씨는 평소 너무 엄숙해요. 너무 부끄러우면 방에 혼자 있을 때 연습해도 되는데. 누구도 듣지 못하면 누가 현이 씨를 비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잖아요.”고현은 전호영이 계속 말하는 모습을 보더니 스테이크를 한 조각 잘라 포크로 그의 입에 쑤셔 넣었다.따르릉...전호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하예정이 걸어온 전화였다.전호영은 바로 전화를 받았다.“예진 누나, 무슨 일 있어요?”“없어요. 그냥 호텔 문 앞에 기자들이 많다고 알려주려고요. 혹시 고현 씨가 혹시 외부에 자신이 여자라는 것을 인정하셨어요? 기자들이 소문을 듣고 찾아왔는데 아마도 사실인지 아닌지를 확인하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아요. 하루 호텔에 와서 모여있는 거로 보면 아마 맞은편의 고성 호텔에서도 지키고 있을 거예요. 아까 일구 씨가 가봤는데 확실히 기자들이 몰려들어 있대요. 오늘 호텔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많을 텐데... 호영 씨, 어제 호영 씨와 고현 씨가 무슨 일을 벌인 거 맞죠? 소문이 어찌나 빠른지 아침에 식사하러 내려왔는데 저도 벌써 그 소문을 듣게 됐다니까요.”전호영은 쑥스러워하며 대답했다.“마치 저와 현이 씨가 어젯밤에 바람을 피우다가 잡힌 것처럼 말씀하시네요. 하하! 어젯밤에 저와 현이 씨가 송씨 가문 연회에 참석하러 갔거든요. 현이 씨가 드레스를 입고 참석했을 뿐이에요. 다른 건 아무 일도 없었어요.”하예진은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웃으며 말을 건넸다.“그렇군요. 축하드려요. 고현 씨가 호영 씨를 위해 치마를 입다니, 그녀가 드디어 호영 씨를 사랑하게 됐네요. 저는 두 사람의 결혼 축하주를 마시기만을 기다리면 되겠네요.”고현은 전호영에 대한 감정이 매우 더딘 편이었다.전호영이 고현을 쫓아다닌 지 거의 1년이 다 되어가는데, 그녀는 이제야 사람들이 전호영을 오해하는 것이 가슴 아팠고 진정으로 그를 사랑하게 되었다.하여 고현은 자발적으로 치마를 입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녀가 원래 여자이고 전호영
고현과 전호영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큰 도련님, 아침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집사는 계단 입구에 서서 고현에게 공손히 말했다.고현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호영과 함께 식사하러 갔다.집사는 따라가지 않았다.고현이 식사할 때, 누군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을 싫어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있으면 종종 스스로 가지러 가곤 했다.집사는 고현과 같은 도련님을 모시는 것이 너무 수월하다고 생각했다.“집사님은 아직 현이 씨가 여자인 줄 모르세요?”고현은 전호영을 힐끗 쳐다보더니 되물었다.“제가 여자라는 사실을 전세계 사람들에게 선언할 필요는 없잖아요?”전호영은 히죽히죽 웃으며 대답했다.“필요 없죠.”“얼른 아침 식사나 해요. 이따 출근해야 하니까.”“네.”전호영은 그녀를 도와 식탁 의자를 당겨주며 말했다.“제가 오늘 더 일찍 오지 못해서 아쉽네요. 좀 더 일찍 왔더라면 현이 씨에게 직접 요리해 줄 수 있었을 텐데. 저의 별장 실내 장식이 끝나고 나서 들어가 살게 되면 매일 현이 씨에게 요리해 줄 수 있어요.”별장 한 채를 장식하려면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들었다.그 별장은 전호영이 강성에 생활할 때 거주하는 별장이기에 그의 높은 요구 사항 때문에 장식하는 진도가 좀 느렸다.설전에 실내 장식을 마치기만 해도 빠른 편일이다.고현은 잠자코 있다가 말을 이었다.“호영 씨 때문에 제 입맛이 까다로워지면 어떡하죠?”전호영의 요리 솜씨가 좋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그녀도 그의 요리 솜씨를 인정한다.전호영이 만든 음식을 먹고 나서 고현은 호텔이나 자기 집에서 밥을 먹을 때 항상 맛이 부족하다고 느꼈다.전호영은 빙그레 웃으면서 대답했다.“앞으로 부부 될 사이인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한 가족으로 되면 매일 같이 살 텐데 현이 씨의 하루 세끼를 제가 모두 책임지면 되잖아요.”이때 고현이 갑자기 엄숙하게 그에게 물었다.“만약, 만약 제가 우리가 결혼 후에도 강성에 남아 여전히 고씨의 그룹을 운영하고 싶어 한다면 호영 씨 동의할
“기자들이 모여있든 말든 저는 상관없어요. 저의 경호원들과 회사 경비실 직원들이 제가 회사에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도록 보장할 거예요. 하지만 저한테서 답을 얻지 못하면 호영 씨에게 매달릴지도 모르니 호영 씨도 조심하세요.”고현이 연예기자를 처음 상대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그녀는 긴장하지 않았다.전호영은 그녀의 남자 친구이다.연예 기자들도 전호영의 곁을 맴돌며 혹시 그도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개적으로 그녀에게 구애하지 않았냐며 그에게 매달릴 것이다.전호영은 웃으며 대답했다.“저는 무서울 것 하나도 없어요. 저에게 그런 물음을 물어본다면 제가 바지를 벗겨보지도 못했는데 내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느냐고 되물으면 기자들이 더는 물어보지 못할 거에요. 어차피 사람들은 우리를 동성애자라고 생각할 텐데 제가 그런 말을 하면 기자들도 어쩔 수 없을 거예요. 이미 저를 게이로 보고 있기도 하고 고현 씨가 여자인 걸 알았다고 해도 뭐 어쩔건데요? 저도 어제 금방 알았다고 말하면 기자들도 믿을 수밖에 없을 거예요.”고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하긴, 전호영은 말재주가 좋아 연예 기자들은 몇 번이나 그의 손에 놀아났는지 모른다.전호영이 말하고 싶지 않으면 기자들이 제아무리 애써봤자 그의 입에서 실오라기 하나도 건질 수 없을 것이다.그리고 전호영은 화제를 돌려 연예 기자들의 주의력을 딴 곳으로 끌어가면서 기자들을 되돌려 보낼 것이다. 그러다가 기자들은 떠난 뒤에야 또 그에게 속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예전에 고현과 전호영의 일에 관해 연예 기자들에게 쫓겨 다녔을 때 연예 기자들은 모두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녀의 주위를 맴돌지언정 친근해 보이고 그들을 배척하지 않는 전호영의 주위를 맴돌지 않았다.연예 기자들은 왠지 전호영이 그들을 원숭이 놀리듯 조롱당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다시는 전호영을 찾고 싶어 하지 않았다.고현은 옷을 갈아입고 욕실에서 늠름하고 멋진 예전의 모습으로 나왔다.전호영은 사랑하는 여인을 보며 휘파람을 불며 농담했다.“
전호영은 정돈을 마친 후 노크했다.“현이야, 나야, 호영이”방금 잠에서 깨나 침대에 아직 누워 있던 고현은 노크 소리를 들고 마지못해 일어나 문을 열었다.“좋은 아침!”전호영은 꽃다발을 내밀면서 그윽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이 꽃처럼 매일 환하게 웃을 일이 가득하길 바랄게.”고현은 호영과 꽃다발을 번갈아 보다가 꽃을 건네받으면서 물었다.“고작 이 꽃 선물 때문에 아침 댓바람부터 찾아온 거야?”“아침 같이 먹으려고 왔지, 꽃은 덤으로 선물하는 거고. 내가 선물 한 꽃이 향도 좋고 예쁘다고 했잖아. 매일 선물 해줄게. 매일 싱싱하고 이쁜 꽃다발을 받는 게 좋지 않아?”고현은 꽃다발을 든 채 뒤돌아서서 말했다.“내가 싫다고 해도 매일 보낼 거잖아.”전호영은 구애하는 데 있어서 고현의 말을 들은 적이 없이 줄곧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해왔고 고현은 그런 전호영이 귀찮다 못해 한 대 패주고 싶을 정도였다.맨 처음 호영은 고현의 부모님을 공략해 자신의 편을 들어주게끔 만들더니 나중에는 고씨 그룹도 자유롭게 출입하곤 했다.“네가 없이도 난 아침밥 잘만 먹었어.”고현은 입으로는 전호영이 너무 강압적이다, 원하든 원하지 않든 꽃 선물을 한다고 나무랐지만 어느새 꽃을 꽃병에 꽂아 넣고 한 발짝 멀리서 구경했다.방으로 들어온 전호영은 아직 잠옷 차림인 고현을 보더니 옷방에서 옷을 꺼내 건네 주며 말했다.“요즘 날씨가 점점 추워지고 있어, 아침에는 특히 더 추워, 얼른 옷 갈아입어,그러다 감기 걸리겠다.”고현은 별다른 얘기 없이 옷을 건네받고는 말했다.“소파에서 기다리고 있어, 옷 갈아 입고 올게.”“그래.”어젯밤 일이 생각 난 호영은 큰 목소리로 말했다.“어제 네가 여자 옷을 입은 일이 강성에 다 퍼졌어, 오늘 아마 인기 검색어가 돼 있을 거야, 너희 회사랑 고성 호텔에 기자들이 잔뜩 모여 있을걸. 오늘 회사 나가지 말고 하루 쉬는 건 어때?”회사랑 고성 호텔은 고현이 매일 가는 두 곳이었다.연예기자들은 고현이 여자가 맞는지를
병실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밤은 깊어져 가고 북적이던 도시도 점점 고요해져갔다.다음 날, 마이바흐 한 대가 고현의 별장 앞에 세워져 있었다.손에 꽃다발과 예쁜 쇼핑백을 든 전호영이 차에서 내려 벨을 눌렀다.한참이 지나서야 문을 연 집사는 문 앞에 서 있는 전호영을 보고 웃으면서 말했다.“좋은 아침이에요, 전 대표님, 저희 대표님께서 아직 주무시고 계셔요.”고현은 어젯밤 늦게 집에 돌아왔다. 사실 일도 바쁘고 접대도 많아서 매일 집에 늦게 돌아오곤 했다.고현은 어젯밤 파티에서 모두의 주목을 받았었다.그녀는 친분이 있는 몇몇분의 대표님들과 인사를 건넨 뒤 비즈니스를 나누고는 전호영과 같이 파티장을 떠났다.고씨 가문 저택으로 돌아온 그녀는 곧바로 남장으로 바꿔 입었다. 대신 가짜 복근을 사용하지는 않았다. 워낙 살쪄 보이지 않는 데다가 날씨도 추워서 옷 한 벌 더 입고 겉에 양복을 걸치면 남들 눈에는 여전히 멋진 고씨 집안 도련님이었다.그 후 고현은 여의 팰리스로 돌아와 잠을 잤다.전호영은 웃으며 집사와 얘기했다.“괜찮아요, 안 깨울 거예요. 제가 일찍 도착한 거예요. 늦게 오면 아침을 같이 못 먹을까 봐서요.”집사는 전호영의 차를 보고는 물었다.“대표님, 안쪽에 주차해 드릴까요?”“괜찮아요, 밖에 세워둬도 아무 일 없어요.”그곳에 주차하면 기자들이거나 고씨네 친척들이 별장 문 앞에 모여 자리를 차지하는 것을 오히려 방지할 수 있었다.집사는 별장 문을 닫았다.“이모님, 무슨 얘기 못 들으셨어요?”전호영은 집 안으로 들어가며 물었다.집사는 전호영이 자신과 고현의 연애에 관해서 물어보는 줄 알고 대답했다.“얘기 많이 들었어요. 전 대표님과 저희 도련님 두 분께서 좋으시면 되죠, 남들 신경 쓸 필요가 뭐가 있어요.”전호영과 만나기 시작한 후로 고현의 성격도 많이 부드러워졌다.전호영은 웃으며 답했다.“하긴 그렇죠. 내 갈 길 가는데 남들이 뭐라 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집사는 아직 고현이 여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고
“윤미의 결혼을 생각하면 나도 걱정이 태산이야. 걔는 보통 사람들이랑은 달라.”윤미는 혼자 아이를 낳아 후계자로 둘 생각이었다. 남편 없이 아이만 원하는 윤미의 생각에 이 가주도 머리가 아주 복잡했다.비록 이 가주와 정화의 오랜 결혼생활에도 결국 금이 생겼지만 수십 년간 부부생활을 해온 만큼 사랑까지는 아니라도 정은 남아있었다.노년이 됐을 때 동반자가 있으면 적어도 외롭지는 않을 것이다.자식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나이가 들면 다들 가정을 차리게 되고 또 일과 육아 때문에 부모는 뒷전일 게 분명했다.결국 곁에 남는 것은 동반자일 뿐.정화와 윤정의 해프닝이 있고 난 뒤에도 결국에는 윤정이만 내쳐지고 정화는 수술하는 것에 그치고 집에서 쫓겨나지는 않았다.이 가주는 정화가 나중에 해코지할 걱정도 없었다. 그녀는 이씨 집안의 실세이고 윤미가 후계자가 된다고 할지라도 윤미는 이 가주랑 더 친하고 정화랑은 아무 감정도 없었기 때문이다.정화가 이 가주보다 나이가 몇 살 더 많은 것을 고려하면 이 가주가 나이가 들어 걷지 못할 때가 온다고 해도 어쩌면 그땐 정화는 이미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이 가주는 윤미가 그냥 아무 남자나 만나 후계자가 될 아이를 낳는 것이 아니라 결혼해서 남편이랑 정상적인 부부 생활을 보내기를 바랐다.정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친딸이랑 친하지도 않았고 또 그녀의 결혼에 대해 왈가왈부할 입장도 아니었다.얼마 전에도 남자 친구를 소개해 주려고 하자 좋아하기는커녕 상대가 돈만 많고 능력 없는 부잣집 도련님이라고 나무랐다.이씨 집안은 데릴사위를 찾는 상황인데 데릴사위가 되기를 원하는 남자가 몇이나 되겠는가?이씨 가문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가 아니라면 정화도 애당초 데릴사위가 될 일은 없었다.정화는 자신과 이 가주의 친딸이 나중에 이씨 가문의 주인이 되면 젊었을 때 체면이 구겨졌더라도 그 보상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아이가 뒤바뀌었고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졌을 때에는 이미 부녀지간의 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