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추억을 회상하면 하예정 자매만 마음이 괴로운 게 아니라 듣고 있던 이경혜 모녀도 속상할 따름이다. 이경혜는 진작 눈시울이 붉어졌다.조금만 더 일찍 동생을 찾았다면 모든 게 변했을 텐데.동생의 죽음을 바꾸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두 조카는 지켜줄 수 있잖아.부모를 여읜 두 아이가 친척들의 매정함을 감당해야 했고 그 어린 나이에 삭막한 인심과 추악한 인간의 내면까지 다 겪어야 했으니.“예정아.”전태윤이 안쓰러운 얼굴로 그녀를 품에 꼭 끌어안았다.“다 지나간 일이야. 이젠 다 지나갔어.”작년에 인스타를 뜨겁게 달군 그 사건이 터졌을 때 전태윤은 그녀와 함께 고비를 넘겼다.하예정은 언니의 일기를 인스타에 올리며 반박에 나섰고 드디어 여론이 그녀들에게 돌아섰다. 그때 전태윤은 처형이 쓴 일기를 보았는데 두 번은 더 볼 용기가 안 났다.한 번만 읽어도 아내가 불쌍해서 죽을 지경이니 말이다.전태윤은 감성이 풍부한 사람이 아니지만 처형의 일기를 읽은 후 눈가가 촉촉해졌다.때로는 가장 무자비하고 자신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이 바로 가족이다.이 말은 틀린 것 하나 없다.하예정 자매가 바로 가족들에게 가장 극심한 상처를 받았다.성소현은 자신의 가방에서 휴지 두 팩을 꺼내 한 팩을 전태윤에게 건넸다.전태윤은 휴지를 받고 감사의 뜻을 표했다.하예정은 남편이 옆에서 챙겨주고 있으니 그가 분명 휴지로 아내의 눈물을 닦아줄 것이다. 이경혜와 하예진은 성소현한테서 휴지를 건네받았다. 이경혜는 작은 조카가 제일 힘들 때 의지할 사람이 있다는 걸 보아냈다.다만 큰 조카는 이혼하여 홀로 외롭게 있었다. 이경혜는 시내로 돌아가거든 다시 큰 조카를 위해 좋은 남자를 찾아주고 평생 의지할 동반자를 만들어 줄 생각이었다.첫 결혼에 실패했으니 두 번째 결혼은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예정아, 그만 얘기해. 이모도 우신다.”하예진은 눈물을 닦은 후 동생에게 지난 일을 그만 얘기하라고 했다. 물론 그녀도 이곳에 돌아오면 저도 몰래 과거가 회상되지만 말이다.이
하예정의 둘째 숙모가 하씨 노친에게 물었다.“토지소유권 증명서가 어머님, 아버님 손에 있나요? 애초에 이 집을 어머님, 아버님 명의로 돌리셨어야죠.”만약 두 노인네의 명의로 되어있다면 하유 부부가 지은 집이라 해도 부모님께 효도하느라 지은 집이라고 우기면 된다.그렇게 되면 하예진 자매는 집을 되찾을 수 없다.하씨 노친이 말했다.“애초에 하유네 가족관계증명서랑 토지소유권 증명서를 찾지 못했어. 나랑 네 아비도 이런 걸 잘 모르니 증명서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어. 우리가 이미 이 집에 사는데 누가 감히 우릴 내쫓을까? 저 두 계집애가 가족관계증명서랑 이 집에 관련된 증명서류들을 챙겨간 게 틀림없어.”“할머니, 예정 누나 또 나왔어요.”하지철이 전태윤과 하예정이 걸어 나오는 걸 보더니 저도 몰래 머리털이 곤두섰다.그는 이 사촌 누나가 진심으로 무서웠다.“하지철, 이리 와.”하예정이 거침없이 그를 불렀다.‘응? 나를?’하지철은 흠칫 놀라더니 앞잡이처럼 쪼르르 달려가 아양을 떨며 배시시 웃었다.“누나, 무슨 일이야?”“우리 엄마, 아빠 무덤을 어디로 옮겼는지 넌 알고 있지?”하지철은 머뭇거리다가 부인하려 했지만 하예정 부부의 싸늘한 눈빛에 바로 주눅 들어 이실직고했다.“알아. 망우령 기슭의 숲으로 옮겼어. 비석이 없는 그 묘가 셋째 큰어머니 거고 셋째 큰아버지는 비석이 있어. 가보면 쉽게 찾을 거야. 누나, 이거 내가 몰래 알려준 거니까 절대 내가 말했다고 하면 안 돼. 할아버지가 말하지 말라고 하셨단 말이야. 매년 청명절 때마다 지문 형 홀로 셋째 큰아버지네 산소로 갔는데 내가 제일 어리다 보니 따라가겠다고 응석 부려서 겨우 몇 번 따라간 거야. 나도 그래서 알게 됐어.”하예정도 그 생각은 했었다. 만약 부모님 산소가 어디 있는지 알게 됐다는 걸 저들에게 들킨다면 이따가 마을을 떠났을 때 인간쓰레기 같은 친척들이 또다시 부모님 무덤을 옮길 수 있다.“너도 비밀로 해줘. 내가 너한테 뭘 물었는지 절대 저 인간들에게 알리지 마.”그녀는 공
하예진도 동생의 건의에 찬성했다.“그래, 네 말대로 해.”전태윤은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온화하게 말했다.“처형, 예정아, 읍내 가서 일단 밥부터 먹어요 우리. 어른들은 버틸 수 있어도 우빈이는 아직 애라 배고플 거예요.”하예정도 그제야 점심때가 다 됐다는 걸 알아챘다.“그래요, 밥부터 먹어요 우리. 나도 고향 음식을 오랫동안 못 먹었네요. 돌아가자마자 기소하고 소송 준비할 거야.”이 말은 언니에게 해준 말이다.하예진도 바로 동의했다.언니 가게가 모레면 개업이라 엄청 바쁠 테니 하예정이 사려 깊게 말했다.“언니, 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게. 모레면 가게 오픈이라 언니 엄청 바쁠 거야. 난 파트너 효진이가 있어서 걔한테 서점 맡기고 소송 알아보면 돼.”“수고해 줘, 예정아.”하예진은 언니로서 동생에게 많은 일을 맡기는 자신이 참 무능해 보였다.“엄마, 아빠 집을 되찾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야. 수고는 무슨. 새삼스럽게 그런 말 하지 마 언니.”전태윤은 하예정의 손을 꼭 잡고 다정하게 말했다.“예정아, 내 도움 필요하면 꼭 얘기해. 혼자 다 감당하려 하지 말고.”하예정은 늘 그 말뿐이었다.“나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반드시 혼자 해요. 다만 도움이 필요할 땐 인정사정없어요. 당신 엄청 귀찮게 굴 테니까.”그녀는 말하면서 주우빈의 두 눈을 가리고 재빨리 전태윤의 볼에 뽀뽀했다.우빈이는 이모가 갑자기 눈을 가리자 본능적으로 이모 손을 걷어내려 했다.하예정은 해맑게 웃으며 아이의 눈에서 손을 뗐다.그녀는 처음 언니 앞에서 과감하게 전태윤에게 애정 표현을 했다.전태윤도 키스로 화답하고 싶었으나 그녀가 우빈의 눈에서 손을 떼는 바람에 아이가 검은 눈동자로 두 사람을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어 차마 그러지 못했다.“이모, 내 눈 왜 가려요?”우빈의 물음에 하예진이 웃었다.하예정은 아이에게 대답했다.“우빈이랑 술래잡기하려고 그랬지.”우빈은 반신반의하며 고개를 갸웃거리고 말했다.“하지만 우린 지금 이모부 차 안인데 어떻게 술
그도 이제 막 도착해 가게 문을 열지 않아 문 앞에 서서 잠시 기다리다가 떠날 채비를 했는데 몸을 돌리자마자 하예진과 주우빈이 스쿠터를 타고 멀리서 오는 걸 발견했다.“예진아.”주형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전남편의 목소리에 하예진은 순간 방향을 틀어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생겼다.전남편 가족은 참 지긋지긋하게도 달라붙는 인간들이다.이혼하기 전에는 그녀와 주우빈을 거들떠보지도 않더니!스쿠터 앞에 탄 우빈이가 아빠를 보자 활짝 웃으며 큰소리로 아빠를 불렀다.하예진도 결국 피하지 않고 직진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찔릴 게 뭐가 있겠는가.주형인은 계단을 내려와 모자 앞으로 다가갔다.“우빈아.”하예진이 스쿠터를 세우자 주형인이 곧장 달려와 우빈이를 어린이용 의자에서 번쩍 들어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우빈이 아빠 보고 싶었어?”“네.”주형인은 고개 숙여 아들의 볼에 뽀뽀했고 아이도 아빠에게 뽀뽀했다.부자가 다정한 인사를 마친 후 주형인이 하예진에게 물었다.“오늘 무슨 일 있었어? 몇 번 왔는데 줄곧 가게 문이 닫혀있길래.”그는 하예진에게 감히 전화하지 못한다.그녀가 전화하는 걸 몹시 싫어하니까.하예진은 차분하게 계단을 올라가며 말했다.“무슨 일로 찾아왔어? 아직도 내가 가게 당신한테 넘기길 바라는 거야? 아니면 당신 누나 대신 돈 빌리러 왔어?”주형인은 아들을 안고 그녀 따라 계단을 오르더니 하예진이 문을 열자 안으로 따라 들어갔다.“가게 모레면 오픈이지?”주형인은 가게 안을 쭉 둘러보다가 아이를 안고 편한 자리에 앉아 하예진에게 물었다.“속 시원히 용건이나 말해. 하지만 내 가게 욕심내거나 당신 누나한테 돈 빌려달란 얘기를 꺼낼 거면 문 활짝 열렸으니 그대로 꺼져. 우빈이 보러 온 거면 애 데리고 쇼핑이나 좀 해. 우빈이가 이젠 거의 만 세 살인데 아빠가 돼서 어쩜 아들 데리고 쇼핑도 안 하냐?”주형인이 재빨리 말했다.“예진아, 나 돈 빌리러 온 게 아니야. 누나가 돈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잘 알아. 전에는 내가 연봉이 높아
하예진이 차분하게 말했다.“당신 꽃 주문한 거 당신 와이프가 알면 또 날 찾아와서 난리 칠 거야. 내가 제 남편한테 꼬리 쳤다고 뭐라 하겠지. 웃겨 정말. 진짜 남자를 유혹할 생각이었다면 당신보다 더 잘난 사람을 택했겠지 뭣 하러 쓰다 버린 쓰레기를 줍겠어? 이 세상 남자들이 다 멸종됐대?”주형인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하예진에게 인간쓰레기로 낙인되었다. 그녀 성격상 다 끝난 인연은 절대 되돌아보지 않는다.주형인의 엄마와 누나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건지, 애초에 하예진을 그렇게 대해놓고 인제 와서 재결합을 원하다니, 하예진을 바보로 안 걸까?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사람인 줄 아나!“예진아, 다 내 잘못이야. 이젠 다 지나간 일이고... 우리 앞으로 부부는 못 돼도 친구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우빈이 봐서라도 내 체면 좀 살려줘.”하예진은 아들을 바라봤는데 아이는 순진무구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빈은 아직도 엄마, 아빠가 왜 함께 지내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했다.아빠 옆에 왜 항상 다른 아줌마가 있는지, 왜 엄마가 아닌지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하예진은 아이가 아직 어리다 보니 이혼에 관한 일을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 나중에 아들이 철들면 그때 다시 말해주기로 했다. 두 사람이 이혼해서 남남이 되어도 아이에겐 영원히 엄마, 아빠이니까.하예진은 우빈이를 향한 사랑이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이다. 주형인은 나중에 변할지 말지 짐작할 수 없다.지금은 서현주가 임신하지 않아 전남편 가족이 주우빈을 엄청 중히 여기지만 일단 서현주가 임신하여 아이를 낳기만 하면 전남편 가족도 우빈이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이다!“예진아, 모레 내가 와서 도와줄까? 현주가 오해할까 봐 걱정되면 엄마, 아빠더러 오시라고 할게. 다른 건 못 도와줘도 설거지나 우빈이 돌보는 건 할 수 있어.”주형인은 말하면서 또다시 배시시 웃었다.“네가 수당 챙겨주고 싶으면 줘도 되고 싫으면 주지 마. 우빈의 할머니, 할아버지라 한 가족이니 서로 돕고 사는 거지 뭐.”하예진이 바로
서현주도 원하지 않았고 주형인도 내려가기 싫었으니 하예진과의 관계를 완화하여 전태윤의 용서를 비는 것만이 답이다.하예정이 전씨 가문 사모님이란 걸 진작 알았다면 질질 끌어서라도 이혼하지 않았을 텐데, 그러면 하예정도 언니를 봐서 전태윤에게 적당히 괴롭히라고 말했을 테니까.다만 모든 게 늦어버렸다.애초에 주형인도 전태윤이 전씨 그룹 도련님이라고 의심했지만 하예정이 절대 그런 부귀영화를 누릴 팔자가 못 된다고 생각해 재벌가에 시집가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전태윤이 정말 전씨 도련님일 줄이야.주형인은 말문이 턱 막혔다.“더 할 얘기 없으면 그만 나가시지.”주형인은 아들을 안고 멍하니 앉아서 그녀에게 대답했다.“나 우빈이랑 좀 더 있고 싶어. 전에는 일이 너무 바빠서 아이랑 함께할 시간이 없었는데 지금은 잠시 백수 상태라 남아도는 게 시간이야. 마침 우빈이랑 함께 있어 주고 좋지 뭐.”“당신 서현주랑 결혼식 올리는 거 아니야? 집도 새로 장식한다며?”하예진이 되물었다.“내 돈은 거의 서현주가 관리하고 있어. 그러면 현주도 우리 둘의 재정 상태를 알게 될 거고 친정 식구들을 도울 생각도 접을 테니까. 현주네 친정 식구들은 흡혈귀처럼 내 피를 빨아먹지 못해서 안달이야. 다행히 현주가 사리 분별이 밝아.”주형인은 이젠 처가에 대해 일말의 호감도 없다.예물을 적게 준 건 맞지만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그더러 두 처남에게 차 한 대씩 사주라고 하다니, 너무 비싼 건 됐고 몇천만 원 정도면 된다고 하신다.두 처남에게 차 한 대씩 사주면 벌써 오륙천만이 빠진다.주형인은 장인어른과 장모님께 따지기 싫어 서현주에게 콕 집어 얘기했다. 둘은 지금 고작 이 정도 적금일 뿐이니 그녀더러 알아서 하라고 했다.서현주는 주형인과 살림을 가꿀 생각에 두 오빠에게 차 사주는 건 아예 접어두었다. 그녀조차 주형인의 낡은 차를 타고 다니니 말이다.서현주는 하루가 멀다 하게 친정에 돌아가 가족들과 대판 싸우는 중이다.그녀의 가족들은 딸이 너무 못났다고
“하지만 현주네 가족들이 못됐잖아. 예정이 봐봐, 그땐 집안일도 도와주고 아침밥도 차리고 우빈이도 돌봐줬어. 전에 내가 몇 시에 일어나든 예정이는 항상 우리 세 식구를 위해 아침밥을 차려줬어. 난 그냥 먹고 출근하기만 하면 다였지. 현주는 아침 일찍 일어나 아침밥을 차려주지 않을지언정 내가 일어나서 밥을 차려야 한다니까. 처가 식구들은 이익만 챙기려 할 뿐 아무런 도움도 안 돼.”하예진은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울화가 치밀었다.“그건 당신이 내 동생을 공짜 도우미로 생각해서 그런 거잖아. 작년에 우리가 왜 싸웠는지 기억나? 내 동생이 당신 집에 들러붙어 먹고 자고 하는데 한 달에 고작 식비 몇십만 원 준다고 무슨 소용이냐고 당신이 투덜거렸어! 인제 와서 아무도 공짜 도우미 안 해주니까 내 동생이 좋아 보여? 주형인, 내 동생 나만 아니었으면 진작 이사했어. 예정이라고 좋아서 공짜 도우미 해준 줄 알아? 걔 오직 날 위해서 그런 거야. 내가 못난 언니라서 예정이 지켜주지 못했어. 당신이 예정이를 미워하고 비난해서 어쩔 수 없이 시집간 거잖아.”“우리 결혼할 때 예정이 시집가기 전까지 분명 함께 살기로 했어. 그런데 당신이... 물론 다시 생각해 보면 나 당신한테 고마워. 당신이 예정이를 그토록 미워하고 비난하지 않았으면 걔도 태윤 씨랑 결혼하지 않았을 거야. 예정이가 전씨 그룹 사모님이 될 수 있었던 건 당신 공로도 있어.”주형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가슴이 꽉 막히는 것 같았다.“예진아, 지난 얘기는 그만해.”주형인이 배시시 웃었다.“이미 다 지나간 일이잖아.”“당신이 먼저 꺼냈어. 주형인, 우빈이랑 함께 있고 싶으면 애 데리고 근처 놀이터라도 나가 있어. 내 앞에서 알짱대지 말고. 나 일해야 해. 당신 신경 쓸 겨를 없어. 여기 있으면 나 엄청 기분 잡치니까 그만 나가줄래.”주우빈이 아빠를 반기고 그의 품에 안겨있지만 않았어도 하예진은 진작 전남편을 밖에 내쫓았을 것이다.이혼하면 남남이 되어 더 이상 아무런 연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노동명은 퇴근길에 마침 주형인이 주우빈을 안고 가게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그가 아이를 뺏으러 온 줄로 알고 급히 차를 토스트 가게 앞에 멈춰 세웠다.“우빈아!”노동명은 재빨리 차에서 내려 성큼성큼 다가가 주형인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의 품에서 주우빈을 빼앗아 안았다.주우빈을 안은 노동명은 발을 뻗더니 주형인을 세게 걷어찼다. 주형인은 힘에 밀려 뒤로 몇 걸음 물러나더니 결국 계단에 주저앉고 말았다.주형인은 매우 놀란 얼굴로 노동명을 쳐다보며 생각했다.‘이 사람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그에게서 아들을 빼앗았을 뿐만 아니라 발로 걷어차기까지 한다.“당장 꺼져! 또다시 와서 예진 씨를 괴롭히고 우빈이를 빼앗아 가려 하면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아빠.”주우빈은 아빠를 부르더니 노동명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다.주형인은 얼른 일어서서 해석했다.“노 대표님, 오해하셨습니다. 저는 우빈이를 뺏으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진이를 괴롭히지도 않았고요. 단지 우빈이를 보러 왔다가 애가 놀이터에 가고 싶다 하여 데리고 놀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노동명은 여전히 그를 믿지 못하겠다는 눈빛이었다.그는 주우빈을 안고 바로 가게로 들어갔다.“예진 씨.”그는 들어가자마자 큰 소리로 외쳤다. 그의 목소리는 항상 굵었다.“괜찮아? 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 당신을 괴롭히지는 않았어? 우빈이를 빼앗아 가려는 거 맞지?”주형인은 주우빈을 빼앗아 가려 한 전과가 있다.부엌에서 나온 하예진은 아들이 노동명의 품에 안겨있는 걸 보고 어리둥절해하며 답했다.“노 대표님, 오셨어요? 제가 형인 씨에게 우빈이를 데리고 놀러 가라고 한 거예요.”“...내가 오해했네.”그는 주우빈을 바닥에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 주형인에게 말했다.“그럼 자네는 우빈이를 데리고 가서 놀도록 해. 방금 너무 세게 차지는 않았으니 괜찮겠지? ”주형인은 굳은 얼굴이었다.방금까지만 하여도 그는 노동명의 거센 발길질에 몇 걸음 뒤로 물러섰을 뿐만 아니라, 계단에
하예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부부 사이에 한쪽이 바람을 피우면 금방 금이 생기게 되는 법이죠. 이혼을 안 했어도 서로 고된 삶을 살 테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저의 전남편도 바람을 피우고 저를 폭행하여 이혼했잖아요. 한번이 있으면 두 번, 세 번이 있을 수 있으니 그들이 고치기를 기대하지 마세요.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아요. 이혼하면 죽는 것도 아닌데.”이윤미가 말을 이었다.“우리 아버지는 절대 떠나지 않을 거예요. 절대로. 아버지는 자신이 이혼하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점을 잘 아시거든요. 정씨 집안의 친척들도 우리 가문에서 아무런 이익도 보지 못할걸요. 어쩌면 전에 받은 혜택들도 전부 토해내야 할지도 몰라요. 어쨌든 요즘 우리 가문은 편안할 날이 없어요. 저는 왠지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아요.”이은화의 모진 마음으로는 정말 해낼 수 있을 것이다.하예진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이경혜가 하예진을 강성으로 빨리 오게 한 것은 아마도 이씨 가문이 요즘 혼란스러워 이은화가 하예진을 신경 쓸 겨를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하예진이 그 틈을 타 사업을 일으킬 수 있고 옛날 사고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수 있었다.이 기회를 잡아 이씨 가문의 사람들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민심을 얻는 자는 천하를 얻는 것과 다름없다.하예진은 비록 이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았고 강성에서도 사업이 없지만, 그녀의 뒤에는 든든한 후원자들이 서 있다. 그리고 하예진의 외할머니는 이씨 가문의 전임 가주였다. 이씨 가문의 친척들을 끌어들여 그들의 지지를 얻을 수만 있다면 일이 쉽게 풀릴 것이다.“예진 씨, 비행기를 몇 시간 타고 방금 도착하셔서 힘드실 텐데 얼른 가서 쉬세요. 일이 있으면 그 번호로 저에게 연락해 주세요.”하예진이 관심하며 물었다.“저랑 같이 안 갈실래요?”이윤미는 입을 오므리다가 대답했다.“여기 좀 더 있고 싶어요. 마음도 추스를 겸 조용히 있고 싶거든요. 집으로 돌아가도 엉망진창이에요.”“그
수십 년이 지난 탓으로 법률조차도 이은화의 사형을 선고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이윤미는 적어도 그녀가 큰이모의 후손에게 주인 자리를 돌려줄 수 있었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떠나 자신의 회사로 돌아가 생활해도 좋다고 생각했다.이윤미는 이런 원한과 복수에 관한 일을 멀리하고 싶었고 그녀의 소소한 삶을 더 좋아했다.이은화가 옛날 일을 이야기하는 것을 들은 이윤미는 이은화가 그 해에 정말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했다고 믿었다.단지 가주 자리의 권력을 탐내는 것뿐만이 아닌 사랑 때문에 벌인 짓일 수도 있다.이은화는 지금 70세이고 정군호와 결혼한 지 수십 년이 지났으며 아들딸도 네 명이나 낳았다.하지만 이은화의 마음속 깊은 곳에는 여전히 그 능력이 뛰어난 남자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도 이은숙의 특별 비서일 것이다.“제가 아무리 말해도 소용없다는 걸 알아요. 저는 제 행동으로 제가 우리 엄마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할게요.”하예진은 한참 동안 이윤미를 바라보며 웃었다.“윤미 씨의 진지한 얼굴은 정말 멋있고 아름다워요. 당신 엄마가 보신다면 눈에 거슬릴지도 모르지만요. 이씨 가문의 상황은 어때요? 윤미 씨 아버지가 바람을 피우다가 이 대표님께 붙잡혔다고 들었는데. 요 며칠 동안 윤미 씨 아버지는 모습조차 내놓지 않는다면서요.”하예진은 이은화와 정군호의 일을 알고 있었다.강성에서 이 불륜 사건은 빅뉴스였다.평소에 정군호랑 같이 다니던 늙은 남자들은 대부분 정군호에게 동정심을 품었다. 이은화가 정군호를 너무 엄하게 관리하여 그에게 자유로울 틈도 주지 않고 용돈도 적게 준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사이좋은 부부 사이라도 오랜 시간 동안 작은 일에 얽매이게 되면 감정이 깨지기도 한다.여자들은 대부분 이은화의 편을 들었다. 이은화가 남편을 관리하는 것이 좀 엄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정군호가 만약 이은화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람을 피우는 것이 아닌 이은화에게 이혼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는 없다.정군호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 우리 엄마가 예진 씨가 오신 것을 알게 되면 아무것도 안 할 리가 없는데. 조심하세요. 아시고 싶은 것이 있으면 제가 다 알려드릴게요. 제가 모르는 일은 할 수 없지만요.”하예진은 웃음을 거두며 한참 동안 이윤미를 찬찬히 바라보았다.“윤미 씨, 우리 만난 적 있잖아요. 저도 윤미 씨가 정의롭고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도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이 대표님 결국 윤미 씨와 피가 섞인 모녀지간인데, 저는 윤미 씨가 이 대표님과 맞서지 못한다고 생각해요.”이윤미의 웃음도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글쎄요. 우리 두 사람은 모녀 맞아요. 저를 저의 어머니와 같은 편에 서지 말라고 하면 제가 분명 스트레스도 받고 또 엄청나게 큰 용기도 필요하겠죠. 예진 씨가 저를 경계하는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정말 예진 씨가 걱정돼서 이러는 거예요. 우리 엄마가 마음이 너무 독하세요. 해본 말이 아니에요. 예진 씨가 여전히 저를 경계하면 저도 더는 묻지 않을게요. 그런데 여기에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에 맞서게 되면 저를 찾아오셔도 돼요. 제가 최대한 도와드릴 테니까.”“사실 저와 엄마는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어요. 저는 엄마의 곁에서 자라지 않았고 또 이씨 가문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스무 살이 넘었거든요. 윤정이가 아직 이씨 가문에 남겨졌고 여전히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어요. 제가 저의 엄마와 모녀간의 정이 별로 없다고 해도 우리 두 사람이 친 모녀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을 저도 잘 알아요.”“만약 당신들이 없다면 제 생각에는 제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짊어지고 리더가 되어 우리 가문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갔을 거예요.”이윤미는 이씨 가문의 규정을 수정하고 싶었다.그렇게 딱딱하게 굴고 싶지 않았다.비록 대가가 좀 클 수도 있지만, 이씨 가문을 더 멀리, 더 잘 발전시키기 위해서라도 수정하고 싶었다.이윤미는 명함 한 장을 꺼내 하예진에게 건네며 말했다.“이것은 제 다른 전화번호에요. 아는 사람이 적으니 무슨
“그럼 안전에 유의하시고 무슨 일이 있으면 가장 먼저 저에게 전화하세요.”방윤림이 이윤미에게 당부했다.이윤미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제가 항상 방 비서에게 의지할 수는 없잖아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도 없을 거예요.”암살을 당하더라도 이윤미는 자신을 스스로 보호할 능력을 갖추었다.자신을 보호할 능력이 없다면 이렇게 자라지 못하고 일찍이 양어머니의 학대를 받아 죽었을 것이다.방윤림과의 통화를 마친 이윤미는 곧바로 약속 장소로 차를 몰았다.그녀가 도착했을 때 하예진은 이미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하지만 하예진은 차에서 내리지 않고 누군가의 차가 오는 것을 보더니 창문을 조금 눌렀고 이윤미가 하예진의 차 옆에 주차하는 것을 보고 있었다.선글라스를 먼저 벗은 이윤미는 얼굴의 가죽을 벗어 던져 본모습을 드러냈고 차에서 내려 하예진과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하예진은 그 모습을 보고 웃으며 차에서 내렸다.“어떻게 저인 것을 알았어요? 두렵지 않아요?”“지금 이 시각에, 또 이렇게 외진 곳에 주변에 주택도 없는데 겁이 많은 사람들은 아마 이 밤에 이런 곳으로 오지 못할걸요. 그리고 저기에 묘지도 있는데 이런 곳에 예진 씨 말고는 아무도 오지 않을 겁니다.”하예진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윤미가 온 후에야 약속 장소가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라는 것을 발견했다.하예진도 한참 후에야 차를 세울 곳을 찾아 이윤미가 오기를 기다렸다.지금 그녀들이 주차한 곳은 방윤림이 그녀들에게 준 주소에서 수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묘지에서 이렇게 가까운 줄은 몰랐어요. 만약 제가 알았더라면 아마 혼자 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귀신이 무서워서요.”이윤미도 웃었다.“귀신이 뭐가 무서워요? 사람이 더 무섭죠. 귀신보다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 못 들어보셨어요? 예진 씨 분장 기술도 꽤 좋네요. 제가 제 부하들을 하루 호텔 입구에 보내 예진 씨를 기다리게 했거든요. 여기로 오시는 길에 예진 씨를 몰래 보호하라고 지시했는데 예진 씨가 나오는 것을 못 봤다고 하더라고요.”
곧 하예진은 차를 몰고 지하 주차장에서 나왔다.하예진은 방윤림이 그녀에게 준 그 주소대로 내비게이션을 켜고 차를 몰았다.노동명이 전화했다.하예진은 차의 속도를 늦춘 다음 노동명의 전화를 받았다.“동명 씨, 저 지금 나가서 필요한 물건들을 사려고 해요. 지금 운전 중이니 좀 이따가 다시 전화할게요.”“알았어. 운전 조심하고.”“네.”하예진은 하예정과 달리 천천히 차를 몰았다.다행히 하예정이 시내에 살고 있어서 차를 빨리 몰지 못했다. 만약 차가 적은 외진 곳으로 가게 되면 하예정은 비행기를 운전하는 것처럼 매우 빨리 몰 것이다. 전태윤이 그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지, 그가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면 아마 하예정이 운전대조차 잡지 못하게 할 것이다.차를 몰고 있는 하예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노동명은 이내 전화를 끊었다.하예진이 변장하고 남몰래 혼자 차를 몰고 이윤미를 만나러 간 것을 알면 노동명은 아마도 걱정되는 마음에 바로 비행기를 타고 올지도 모른다.하예진은 노동명이 자신을 얼마나 신경 쓰는지 알고 있어서 그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방윤림이 준 그 주소는 가까운 곳이 아닌 꽤 외진 곳에 있었기에 내비게이션에는 차로 한 시간 이상 가야 도착할 수 있다고 나와 있었다.하예진이 차를 몰고 호텔을 나서자 이윤미가 방윤림에게 물었다.“예진 씨 나오는 거 봤어요?”방윤림이 대답했다.“제가 종업원에게 부탁해서 쪽지를 보냈으니 바로 떠날 겁니다. 하예진 씨가 방금 관성에서 왔기 때문에 낯선 곳이고 차량도 없으니 택시를 탈 것 같습니다. 아가씨도 출발하시면 됩니다. 하예진 씨가 곧 약속 장소로 갈 겁니다.”방윤림은 하예진을 만난 적 있었는데 하예진이 대담하고 세심하다고 추측했다. 하예진이 강성으로 온 목적이 이씨 가문과 연관이 없다고는 하지만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방윤림은 하예진이 이씨 가문 때문에 강성으로 왔으니, 이윤미가 만나자고 하면 반드시 만나러 갈 것으로 생각했다.“사람을 시켜 예진 씨를 은밀히 보호하라고 하세요.
고현은 전호영을 흘겨보았다.전호영은 코를 만지며 웃었다.“현이 씨가 만든 요리가 당연히 맛있죠.”“그럼 저는 뻔뻔스럽게 얻어먹으러 갈게요. 그럼 저는 이만 내려가서 쉴게요.”하예진은 눈치껏 두 사람이 편안하게 대화할 수 있도록 자리를 비켜주었다.하예진은 그녀가 묵고 있는 방으로 돌아와 소파에 앉자마자 노동명의 메시지에 답장하려고 했다.그러나 답장하기도 전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하예진은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호텔 종업원입니다.”종업원은 그녀가 문을 열자 웃으며 말했다.“실례지만 하예진 씨 맞습니까? 누군가가 당신에게 편지 한 통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하셨어요.”종업원은 하예진에게 봉투 하나를 건네주며 말했다.하예진은 봉투를 받아들고 종업원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방에 돌아온 그녀는 호기심에 봉투를 뜯었고 그 안에는 작은 편지 한 장만 들어있었다.편지의 내용은 매우 간단했다. 강성의 어느 주소가 들어있었다.주소 밑에는 말 한마디만 남겨져 있었다.[예정 씨,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혼자 오세요. 제가 예정 씨 안전을 보장해 드릴게요.]오른쪽 아래 끝에 “방”이라는 글자가 쓰였다.‘방? 방씨? 이름은 뭐지?’하예진은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 중에 “방”자가 들어간 이름을 가진 사람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그녀는 “방”이라는 글자가 이름은 아닐 것으로 추측했고 아마도 성씨가 “방”씨 일 것으로 짐작했다.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라...이윤미 주변에 “방”씨 성을 가진 사람이 있는 것 같긴 한데...하예진이 하루 레스토랑을 개업하는 날 이윤미가 방윤림을 보내 그녀에게 선물을 전해주도록 했다.하예진은 아마도 이윤미가 그녀를 만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생각했다.하지만 사람들에게 알려서는 안 되었다.시간을 보던 하예진은 망설임 없이 캐리어에서 단독으로 포장된 검은색 마스크와 선글라스, 눈에 띄지 않는 낡은 옷 그리고 가발을 꺼냈다.그녀는 변장하고 나서 휴대전화와 편지를 들고 조용히 룸을 나섰다.다행히 그녀가
하루 호텔.맨 위층에 있는 로얄 스위트룸.하예진과 고현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었고 전호영은 두 여자에게 물과 과일을 가져다주러 갔다.“언니, 우리 집에 묵는 건 어때요? 저 혼자 살아요. 집도 크고 방도 많아서 저랑 같이 살면 편하실 거예요”고현은 하예진을 그녀의 개인 별장에 초대했다.하예진은 그녀를 보며 웃었다.“제가 고 대표님 집에 가면 강성의 연예 기자들은 고 대표님이 호영 씨와의 감정이 깨졌다고 보도할걸요. 호영 씨가 헛수고했다면서, 고 대표님은 여전히 여자를 좋아하는 거라면서 기사를 낼 거에요.”고현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녀는 여전히 남자 차림으로 다녔기에 하예진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는 것이 보도되면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불필요한 문제를 일으킬 수 있었다.하예진은 강성에 막 왔기 때문에 사업도 일으키지 못한 채 사람들의 원한을 사게 되면 그녀에게도 좋은 점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현을 사모하는 여자가 너무 많기에 그녀들이 전호영을 이길 수는 없지만, 하예진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다. 적어도 그녀들은 자신이 이길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고 대표님과 호영 씨 감정도 이제 점점 안정되고 있는데 저는 적절한 시기에 고 대표님이 여자라는 사실을 외부에 솔직하게 말하셔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이 항상 두 사람이 동성애자라고 오해하잖아요. 사실도 아닌데.”고현은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외부 사람들에게 해명할 필요 없어요. 언젠가 호영 씨와 결혼하게 된다면 제가 결혼식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입장하면 사람들도 진실을 알게 될 거에요.”하예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사람들이 고 대표님이 여자 분장을 하고 나온 줄로 알 거예요. 고 대표님이 여자 행세를 한다고 여전히 오해하실 거예요. 저는 보통 다른 사람에게 결혼이나 이혼을 권유하지는 않거든요. 저도 과거에 결혼생활 때문에 소란을 피우다가 이혼을 당했거든요.”“형인 씨가 저를 폭행했을 때 저는 부엌에 있는 칼을 들고 거리에서 쫓아다녔기도 했고 그 사람을 때려 얼굴이 시퍼렇게 멍들고
이은화가 말을 이었다.“난 정말 먹고 싶지 않아. 너라도 얼른 밥 먹으러 가. 엄마는 좀 더 앉았다가 돌아갈 거야. 내가 약속할게. 이 정도 일 때문에 쓰러지지 않을 거야. 엄마도 이틀 지나면 기분이 금세 좋아질 거야. 내일 나도 네가 알고 있는 엄마로 돌아올게. 약속할게. 늙은 영감탱이 때문에 죽느니 마느니 하면서 난리 피우지 않을 거야. 말이 나온 이상 너한테 좀 물어보자. 예정이가 오면 어떻게 임할 생각이야?”“제 원칙을 깨뜨리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대처할 거에요.”이은화는 멈칫하더니 칭찬했다.“역시 내 친딸이야! 엄마가 관성에 있을 때 경혜를 만났는데 나한테 원한을 품고 있더라고. 내가 어떤 말을 해도 경혜는 마음속으로 날 진범으로 생각하고 있어. 그래서 나에게 민감하게 말을 하더라고. 경혜가 나보고 예진이한테도 기회를 주어 배양하라고 제안하더군. 예진이와 너를 평등하게 경쟁시켜 예진이가 지면 네가 이씨 가문을 이어받아도 아무런 의견이 없다고 했어. 그런데 예진이가 이기면 우리 모든 사람은 권세 중심에서 손을 떼라고 말하는 거야.”이경혜가 이렇게 명확하게 말은 하지 않았지만, 뜻은 비슷했다.이은화는 딸 이윤미에게 말했다.“윤미야, 우리 집을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잖니? 그래서 엄마가 승낙하지 않았어. 예진이가 이번에 강성에 온 목적도 너무 단순하지 않을 거야. 잘 감시해. 예진이가 우리 가문의 친척들과 너무 많이 접촉하게 해서는 안 돼. 강성에서 사업을 펼쳐나가려면 돈이 있어야 할 거야. 예진의 사업의 앞길을 막아 돈을 벌지 못하게 하면 강성에서 버티지 못할 거야.”“강성은 우리 구역이야. 예진의 배후에 큰 세력이 있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거야. 여기는 우리 이씨 가문의 구역이니까. 만약 감쪽같이... 그러면 더 좋고.”이은화는 자신의 목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이윤미에게 하예진을 처리하라는 의미였다.“하지만 흔적을 남기면 안 돼. 만약 정말 그렇게 한다면 증거는 반드시 깨끗이 지워야 하거든. 예진의 뒤에 있는 몇몇 세력은 우리가 건
“엄마, 우리 이모의 특별 비서는 아직도 살아 계세요?”이윤미는 화제를 돌렸다.이은화가 가문의 규정을 바꾸는 것을 동의하지 않을 것을 뻔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네 이모가 사고를 당한 뒤로 이은숙의 비서도 어디론가 사라졌는데 생사는 누구도 몰라.”이은화가 이씨 가문의 주인 자리에 오른 후, 사람들을 보내 그 특별 비서를 찾도록 했지만 아무 소식도 없었다. 마치 갑자기 세상에서 사라진 것 같았다.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이은화는 여전히 그 특별 비서를 찾아다녔다.그 당시 사고에 관한 일을 그 비서도 많이 알고 있을 것이고 그의 손에도 증거가 있을 것 같았다.그를 찾지 않고 증거를 인멸하지 않으면 폭탄을 남겨둔 거나 다름없는 일이다. 그가 언제, 어디에서 갑자기 나타나 이은화의 살인 증거를 내놓을지 누가 알겠는가!비록 어렸을 때 이은화의 짝사랑 상대일지라도, 이은화는 그녀의 후손을 위해서라도 그 비서를 찾으면 반드시 그를 죽이고 입을 닫게 하려고 했다.수십 년 동안 그 비서의 소식도, 두 조카의 소식도 없었다. 이은화는 자신의 외조카가 죽거나 영원히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면 그녀는 평안하고 순조롭게 이씨 가문을 그녀의 딸에게 넘겨줄 수 있었으니까.하느님은 여전히 이은화에게 잠재적인 위험을 남겨 주셨다.두 조카 중 비록 한 명이 죽었지만, 죽은 조카가 두 딸을 이 세상에 남겨두었다.살아 있는 조카딸 이경혜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아들과 딸을 낳고 권세도 있어 건드리기가 쉽지 않았다.작은 조카 이경희의 두 딸 하예진과 하예정도 건드리기 어려운 존재였다.그녀들의 배후에는 여러 가문의 큰 세력이 서 있었고 그녀들을 건드리는 것은 그 가문들을 적수로 삼는 거나 다름없었다.요즘 이씨 가문의 실력은 예전만 못하기에 이은화는 그 세력들과 감히 맞서지 못했다.“나는 네 이모 가족의 죽음은 그 비서가 꾸민 음모라고 의심하고 있어. 그 비서는 네 이모를 좋아하지만 네 이모가 이모부와 결혼해서 마음속으로 원한이 맺혔을 거로 생각해. 사람들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