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인연이라는 건가.신하준과 한지혜 사이에는 이런 인연이 없었다.신하준은 자조적인 웃음을 띠더니 차를 한 모금 마시고 말했다.“네가 괜찮은 걸 봤으니까 시름 놓았어. 이따가 또 볼일이 있어서 난 이만 일어날게.”말을 마친 신하준은 몸을 일으켜 거실을 나갔다.신하준을 배웅하려고 몸을 일으키는 한지혜를 허연후는 눌어서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다리에 상처도 있는데 배웅은 내가 대신할게요.”허연후는 늘씬한 다리로 신하준의 뒤를 따라 나갔다.마당에 나가 차에 오르는 신하준을 본 허연후는 차 문에 기댄
아무리 게임 속 캐릭터라고 하지만, 이 모습을 본 한지혜는 당황스러운 마음에 순간적으로 게임을 하던 손을 멈췄다.한지혜는 허연후가 본능적으로 한 행동인지 고의로 한 행동인지 알 수 없었다.한지혜가 멍하니 멈춰있는데 귓가에 허연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놀란 거야? 이리와 오빠가 안아줄게.”게임 속에 있는 오빠는 여자아이를 꼭 껴안더니 큰 손으로 머리를 연속 쓰다듬으며 말했다.“착하지, 무서워하지 마. 오빠가 너희들 지켜줄 거야.”한지혜는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한지혜는 이 짐승 같은 남자가 이 기회를 틈타 자기의 사심을
이 혼약이 아니었다면 아마 한지혜는 집을 나가지 않았을 것이고, 지금과 같은 상황도 일어나지 않았겠지.어쩌면 한평생을 부모님 밑에서 공주처럼 살았을 수도 있었다.그랬다면 조수아라는 좋은 친구를 사귈 수도, 그렇게 많은 대단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도 없었을 것이다.지난 시간을 떠올리던 한지혜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돌았다.자기 인생은 자기가 사는 거지.스스로 노력해서 얻은 삶이야말로 멋도 있고 보람도 있지 않을까.한창 추억에 잠겼을 즈음 하지연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지혜 언니, 연이 옆집에 떨어졌어요. 같이 가서 찾아줘요.
격렬한 정사가 끝나고, 조수아는 옅게 배어나온 땀을 한 채 힘겹게 숨을 몰아쉬었다.육문주는 그런 조수아를 품에 안은 채 마디가 분명한 손가락으로 그녀의 오관을 덧그렸다. 본인은 모르겠지만 깊고 매혹적인 눈매에 전에 없는 다정함을 담고 있었다.조수아는 몸이 혹사될대로 되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순간 사랑을 받고 있다는 기분 때문에 마음만은 충만했다.그러나 그녀의 정욕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육문주의 휴대폰이 울렸다.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본 조수아는 가슴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육문주의 팔을 끌어안고 있는 손에 힘이
육문주의 낯빛이 삽시간에 싸늘해졌다.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검은색 눈동자가 조수아에게 단단히 박혔다.“내가 결혼은 안 된다고 했잖아. 그 정도도 받아들이지 못하면 애초에 내 제안을 거절했어야지.”조수아의 눈가에 옅은 붉은 빛이 떠오르기 시작했다.“그때는 우리 둘만의 감정이었는데 지금은 세 사람이 엮였잖아.”“걔는 너한테 위협이 안 돼.”자조 섞인 웃음이 지어졌다.“그녀의 전화 한 통에 당신이 내 생사는 상관도 안 하고 나를 내팽개치는데. 말해 봐, 문주 씨. 대체 어떻게 해야 그걸 위협이라고 쳐주는지.”육문주의 눈밑에
술잔을 쥔 육문주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심장이 그 순간 쿡하고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날 송미진이 자살시도를 했을 때 조수아가 생리통 때문에 여러번이나 전화한 걸 처음에는 받았다가 나중에는 짜증이 나서 그냥 끊어버렸던 게 생각이 났다. 설마 그것 때문에 조수아가 헤어지자고 한 건 아니겠지? 눈매를 드리운 육문주는 송학진과 허연후가 그 쓰레기 남편 흉을 보는 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끝까지 타들어간 담배가 손가락을 뜨겁게 하는데도 그는 요지부동이었다. 온밤을 육문주는 마음이 뒤숭숭했다.보통 이맘때쯤 되면 조수아가 걱정스
육문주의 키스는 언제나 뿌리침을 불허할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조수아를 테이블로 밀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은 그는 다른 한 손으로 허리를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향긋한 몸이 육문주의 모든 신경줄을 예민하게 자극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갇힌 맹수가 나오고 싶다면서 울타리에 쉴 새없이 몸을 부딪쳤다.조수아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육문주는 잠자리 쪽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었다. 그가 얼마나 원하든 조수아는 힘들어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수요에 다 맞춰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수아는 뻣뻣하다 못해
조수아는 민첩하게 옆으로 몸을 비켜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커피 조금이 그녀의 발등을 덮치고 말았다. 발등이 얼얼해지는 통증에 저도 모르게 헛숨이 들이켜졌다. 고개를 들어 송미진에게 따지려던 조수아는 등 뒤에 있는 유리 선반을 향해 몸이 기우뚱거리고 있는 송미진을 발견하고 본능적으로 그녀를 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러나 송미진은 그것을 뿌리치며 그대로 뒤로 넘어갔다.와장창!깨진 유리에 팔뚝이 그인 송미진이 피를 주르륵 흘렸다. 바닥으로 뚝뚝 떨어지는 선혈을 뒤로하고 육문주의 싸늘한 음성이 날아왔다. “조수아, 이게 뭐하는 짓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