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가은은 돈을 권성은의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했다.“봐요, 우리 오빠가 받으라고 하잖아요. 사양하지 말고 받아요. 하지연을 잘 돌봐줘요. 그럼 전 이만 갈게요.”막 떠나려는 찰나 허가은은 몸을 일으키며 부주의로 하지연의 책가방을 땅에 떨어뜨렸다.책가방 안의 물건들이 너저분하게 떨어졌다.허가은은 연속으로 사과했다.“죄송해요. 제가 부주의로 떨어뜨렸네요. 제가 주울게요.”말을 마친 허가은은 허리를 굽혀 물건을 줍기 시작했다.문득 허가은은 곰돌이 그림이 그려져 있는 분홍색 지갑을 발견했다.허가은은 지갑을 급하게 줍더니 궁
이 말을 들은 한지혜는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을 움츠렸다.한지혜는 이 모든 게 우연의 일치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이상했다.하지만 허재용처럼 세심하고 똑똑한 사람이 이런 일에 실수했을 리가 없었다.필경 이건 허씨 가문 핏줄에 관한 문제니까.한지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에요, 소설을 너무 많이 읽었나 봐요. 괜히 잘못 생각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요.”허연후는 웃으며 한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역시 여우주연상답게 영화 같은 생각만 하네요. 우리 아빠와 할아버지가 허씨 가문의 핏줄을 잘못 데려올 정도로 바보는 아니
“같이 가요.”허연후는 웃음을 머금고 한지혜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나랑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우세요?”“닥쳐요. 난 그저 빨리 심장을 찾아서 하지연한테 이식해 주고 싶을 뿐이에요.”“한지혜 씨가 이렇게 도와주고 있는데 지연이가 만약 수술 성공하면 한지혜 씨를 친언니처럼 생각해야 하겠네요.”“허연후 씨도 마찬가지 아니에요?”“나는 이미 오빠라고 불러줬거든요. 그러고 보니 지혜 씨를 새언니라고 부르면 되겠네요.”이 말을 하는 허연후의 입꼬리는 심하게 올라가 있었다.스스로가 매우 자랑스럽게 느껴진 것 같았다.허연후는
방금까지 미소를 띠고 있던 허연후는 순간 얼굴이 어두워졌다.“누구한테서 들으셨어요?”“네가 심장병에 대해 알아보러 N 시에 갔다고 네 비서가 알려주더라. 그래서 아무리 남매간에 모순이 있다고 해도 결정적일 때는 여동생을 걱정하는구나 싶었어.”“그건 지연이 때문에 알아보러 간 거예요.”허재용이 빠르게 되물었다.“지연이는 또 누구야? 그 애가 네 여동생보다 중요해? 왜 이렇게 사리 분별이 안 돼?”허연후는 이를 악물고 답했다.“이 심장 주인은 지혜 씨의 도움으로 찾은 사람이에요. 지연이는 지금 당장 심장 수술해야 하는 상황
넥타이를 깔고 누운 바람에 목은 이미 빨개져 있었고 이대로 놔뒀다가는 저 인간이 금방에라도 질식할 것 같았다.한참 고민하던 한지혜는 손을 뻗어 그의 넥타이를 풀어주려 했는데 갑자기 허연후가 그녀의 팔목을 덥석 잡았다.그리고 단번에 몸을 돌리는 바람에 한지혜가 허연후의 몸 아래에 깔리게 되었다.순간 욱한 한지혜는 허연후의 가슴팍을 때리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허연후 씨, 비켜요. 안 그러면 확 물어버릴 거예요.”허연후는 그녀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 눈을 감았다.“위쪽? 아니면 아래쪽? 지혜 씨가 어디든 편하게 물 수 있도록
허연후는 난감한 듯 웃으며 말했다.“자기가 좋아하는 여자가 품에 안겨 있는데 어떤 남자가 결딜 수 있겠어요? 전 부처처럼 가만히 있을 수 없어요.”“그렇다고 바로 반응해버리면 안 되죠. 지금 중요한 일에 대해 말하는데 그딴 생각이나 하고. 대체 사람이 왜 그래요?”“이게 정상적인 남자죠. 그리고 전 그것도 잘하는 완벽한 남자이고.”그의 말에 한지혜는 깜짝 놀라 냉큼 그의 무릎에서 내려와 소파 위에 앉았다.허연후는 그런 그녀가 귀엽다는 듯이 한지혜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며 말했다.“걱정하지 말아요. 아까도 말했다시피 오늘은 건
“아직. 누군가가 숨겨준 것 같아. 아니면 어떤 호텔이든 식당이든 이렇게까지 종적을 감출 수 없거든. 그래서 내 생각에는 아마 세력이 꽤 센 사람이 그놈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 같아.”한지혜의 눈살이 순간 찌푸려졌다.‘하정국은 출소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대체 어떤 사람이 지금 그를 도와주고 있는 걸까?’‘그리고 왜 하정국 같은 사람을 도와줄까?’‘설마 도와준 뒤 다른 일이라도 시키려는 걸까?’여기까지 생각이 들던 한지혜는 머릿속에 갑자기 허가은의 얼굴이 떠오르면서 순간 정신이 아찔해지는 것 같았다.그리고 불길한 예감
허연후는 순간 온몸이 굳어지더니 금세 손을 부들부들 떨면서 다시 사진을 빤히 들여다보았다.예전에 권성은한테도 두 사람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지만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하지만 오늘 보니 닮은 수준이 아니라 거의 한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그는 멍한 얼굴로 한지혜에게 물었다.“아까 급하게 할 말이 있다던 게 이 일이었어요?”한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두 사람이 너무 닮았다고 생각되지 않아요? 쌍둥이가 아닌 이상 너무 이상해서요.”“닮긴 했네요. 근데 저희 어머니는 분명 딸 한 명만 낳았어요.”“
그 메시지를 받은 송학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 간단히 답장을 보냈다. [언제든지 괜찮아. 차 비서가 정해.] [오늘 저녁 괜찮을까요? 제가 아림이랑 천우 데리고 대표님이 좋아하는 그 레스토랑에 갈게요.] [그래. 좀 이따 보자.] 간단한 문자를 보며 ‘차 비서'라는 익숙한 말에 차서윤은 마음속에 물결이 일렁였다. 몇 년 전의 몇 장면이 떠올랐다. “차 비서, 커피에 왜 설탕을 넣은 거야?” “인생이 이미 너무 쓰니까요. 그걸 더 쓰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송학진은 커피를 한입에 다 마
차서윤은 싸늘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한마디만 더 욕해봐. 출발하기 전에 이미 예약 전송 설정을 해뒀어. 지금이라도 바로 메일 보낼 수 있어. 누가 이 업계에서 사라지게 될지 한 번 볼까.” 그 말을 들은 이장우는 조금 겁이 났다. 그는 줄곧 차서윤이 그저 만만한 상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자신도 모르게 증거를 남겨뒀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를 악물며 거부하려던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다.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송 대표님, 죄송합니다. 이 여자가 좀 말을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아, 그러면 아림이 아버지시군요. 어쩐지 가족분들 모두가 그렇게 잘생기셨더라고요.” 천우는 고개를 들어 송학진을 향해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외삼촌, 이건 제가 한 말이 아니에요. 선생님이 말씀하신 거예요!” 송학진은 웃으며 천우의 머리를 가볍게 톡 치고는 별다른 설명 없이 말했다. “자, 이제 동생 손잡고 얼른 들어가. 선생님 말씀 잘 듣고 말썽부리지 말고. 알았지?” 천우는 바로 아림의 손을 꼭 잡고 의젓하게 오빠다운 말투로 말했다. “동생아, 이제부터 오빠가 널 지켜줄게
차서윤은 이 제안을 거절하고 싶었다. 송학진에게 아무런 부담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송학진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송 대표님, 좋은 제안 감사하지만 저는 가지 않겠어요. 이장우 쪽에서 일하는 건 그만두고 제 능력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일을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단지 송 대표님께 부담드리고 싶지 않아요.”송학진은 그녀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차서윤, 정상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너의 전 직장 상사였고 지금 더 좋은 기회를 제시하는 건데 왜 거절하는 거야?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는 일이
그 말을 들은 송학진은 눈이 촉촉해졌다. 그는 이 작은 아이가 그런 장면을 목격하고 그로 인해 마음에 얼마나 큰 상처를 입었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차서윤과 그녀의 딸이 어떤 삶을 살아왔을지 전혀 짐작할 수 없었다. 그는 아림을 꼭 끌어안고 큰 손으로 아림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오늘 밤은 아저씨가 같이 있어 줄게.” 그는 아림을 다른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며 그녀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 “눈 감고 자. 아저씨는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정말 짐승 같은 놈이네!그는 바로 아이를 안심시키려고 말했다. “너희 엄마는 괜찮아. 술을 많이 마셔서 탈수된 거야. 링거 맞으면 금방 나을 거니까. 조금 있으면 엄마를 볼 수 있을 거야. 알겠지?”아림은 이해심이 깊은 아이였다.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아저씨, 제가 암호를 하나 알려줄게요. 제가 문을 열어줄 때 그 암호를 말해야 문을 열어줄 거예요. 아니면 절대 문을 열지 않아요.”그 말을 듣고 송학진은 이 아이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이 아이가 자주 혼자 집에 있을 거라는 걸 알 수
얇은 검은 천 아래로 드러난 여자의 새하얀 피부가 눈길을 끌었다. 그녀는 침대 위에서 몸을 자꾸 비틀며 저항하는 듯했지만 어쩐지 보는 이를 자극하는 모습이었다. 그 광경을 본 송학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그는 곧장 그녀에게 다가가 그녀의 눈을 가리고 있던 검은 천을 거칠게 벗겨냈다. 막 꾸짖으려던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눈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멈칫했다. 그녀의 입술은 떨리고 있었으며 이를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는 간신히 힘을 내어 부드럽고 연약한 목소리로 애원했다. “제발... 저를 건드
송학진은 즉시 아버지를 위로하며 말했다. “아버지, 인제 그만 우세요. 우리 작은 공주님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자랄 수 있게 우리가 수아에게 못 줬던 사랑을 아이들에게 두 배로 주면 되잖아요.” “그래! 내 돈은 전부 세 아이한테 쓰겠다. 어차피 너는 결혼도 못 할 테니 네 몫으로 남겨둘 필요도 없겠지.” “아버지,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제가 결혼을 못 한다니요? 언젠가 아내랑 아이들까지 데리고 올지 누가 알아요?” 이 말을 듣고 육문주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그것도 나쁘지 않지. 천우가 너랑 아림 엄마랑 잘되
송학진은 바로 일어나 송군휘를 부축하며 말했다.“아빠, 급해 마시고 제가 부축할 테니 함께 마중 나가요.”“그래. 빨리 가자.”두 사람이 별장에서 나오자 조수아와 육문주는 이미 아이를 안고 차에서 내린 뒤였다.송군휘와 송학진이 다가오는 것을 본 조수아는 순간 눈빛이 어두워지며 송학진을 불렀다.“오빠.”그리고 이내 시선을 다시 송군휘 쪽으로 돌렸다.초점 없는 눈으로 조수아와 육문주의 방향을 보고 있는 송군휘는 많이 늙은 것 같았다.송군휘는 어색하면서도 조심스럽게 웃고 있었다.조수아는 겨우 입을 떼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