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자가 조병윤과 성수현 사이에서 난 아이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장현숙은 눈이 휘둥그레졌다.장현숙은 절대 그럴 리가 없다며 마음속으로 자신을 위로했다.그러자 성지원은 장현숙에게 다가가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비아냥거렸다.“저의 엄마가 그쪽 아들과 만날 때부터 유능한 의사로 소문난 건 모르셨나 봐요? 엄마한테 치료를 받으려면 최소 억 단위를 내놓아야 해요. 그런데 조씨 가문 따위가 엄마의 눈에 찰 거라고 생각하세요?”믿을 수 없는 얘기에 장현숙은 넋을 반쯤 놓고 성수현을 빤히 쳐다봤다.20여 년 전, 조씨 가문은 명문가
몇 분 후, 주지훈은 조병윤의 뜻을 전했다.“선생님, 아저씨가 말하시길, 그해 술을 마시고 누구와 실수로 잔 건지 모르겠다네요. 그때 아저씨가 깨난 뒤 너무 무서웠대요. 그리고 선생님께 미안한 마음이 무엇보다 컸다고 해요. 그래서 차마 하룻밤을 보낸 여자의 얼굴을 확인도 못 하고 몸에 지니고 있던 목걸이를 보상으로 남기고 바로 떠났다네요. 그 뒤로도 아저씨는 계속 할머니한테 선생님과 결혼하고 싶다는 뜻을 전했어요. 심지어 조한 그룹을 물려받고 무조건 형들을 부양하는 조건으로 할머니와 계약서도 썼대요. 이 조건이 불공평한 걸 알지만
조병윤의 목소리는 작고 발음도 어눌했다.하지만 성수현은 20년 만에 듣게 된 사과를 단번에 알아들을 수 있었다.성수현은 고통스럽게 눈을 질끈 감았다.지난 시간 동안 조병윤이 왜 그렇게 매몰차게 그녀를 밀어낸 건지 이해가 가지 않았었다.덜컥 그녀와 하룻밤을 보내놓고 다음 날에 없었던 일처럼 그녀에게 헤어짐을 고했다.사실, 조병윤도 성수현과 같은 피해자였다.사실, 조병윤은 줄곧 성수현과 결혼하기 위해 애를 썼다.심지어 성수현과 단둘이서 멀리 떠날 각오까지 했었다.20년 동안 마음속에 묻어둔 조병윤에 대한 모든 원한도 미안
마음의 문이 열릴 때마다 성지원의 마음은 무너지듯 아팠다.백시율은 티슈를 꺼내 성지원에게 건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미안해. 그런 뜻이 아니었어. 울지마. 나 한 번도 여자를 달래 본 적이 없단 말이야. 네가 이렇게 울면 나 어떻게 해야 할지 혼란스러워. 같이 울어야 맞는 건지 아니면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어.”어쩔 줄 몰라 하는 백시율을 보며 성시원은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위로고 뭐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잖아.”“진짜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몰라서 고장 나 버렸어. 만약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떻게 선생님
주지훈의 말을 들은 조수아는 심기가 불편해졌다.조수아는 주지훈을 냉정하게 밀어내며 눈물을 닦아냈다.“그럼 무슨 신분으로 나와 함께 살 건데? 주지훈이야? 아니면 육문주? 가짜 연인 아니면 전 남편인데 내가 그럴 것 같아?”조수아가 반감을 드러낼 줄 주지훈은 진작에 예상하였다.주지훈은 안쓰러운 눈빛으로 조수아를 바라보며 그녀의 귀를 조심스럽게 어루만졌다.“수아야, 우리가 M 국에서 정신과 진료를 받으러 갔었잖아. 그때 의사 선생님이 네 상태가 무척 좋지 않다고 했어. 심각한 우울증이라고 하셨지. 너를 이렇게 만든 것도 나야.
방금 통화를 마친 주지훈은 다급하게 달려와 조수아를 와락 품에 안았다.“수아야, 이미 모든 과의 전문가들을 불러 모았어. 그러니 걱정하지 말고 잠시 앉아서 쉬고 있어.”“싫어. 나 여기서 지혜가 나올 때까지 기다릴 거야.”“그래. 그럼 나도 함께 기다려 줄게.”몇 분 후, 엘리베이터에서 의사 몇 명이 우르르 내렸다.그중 허연후도 있었다.허연후는 제일 앞에 서서 눈물로 적신 조수아의 얼굴을 보며 가슴이 쿵 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허연후는 두 손으로 주먹을 꽉 부여잡았다.그는 재빨리 조수아에게 달려가 물었다.“지혜 씨
소식을 들은 윤다혜는 하던 일을 내려놓고 다급하게 물었다.“왜 또 다친 거래? 심각해? 얘도 참 촬영만 하면 몸도 사리지 않고 자꾸 다치네.”조수아는 최대한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고 말했다.“별일은 아니에요. 지혜가 오랫동안 집에 가지를 못해서 아주머니가 보고 싶었나 봐요. 근데 직접 연락하기는 부끄러워하네요. 그래서 제가 대신 여쭤보는 거예요.”“당연히 시간 되지. 내일 가면 될까?”조수아는 갑자기 표정이 어두워졌다.“오늘은 안 돼요? 지혜가 뭐 하려고 마음먹으면 꼭 해야 하는 성격 잘 아시잖아요. 마찬가지로 엄마가 보고
조수아는 한지혜를 허연후에게 맡겨놓고는 서둘러 병실을 떠났다.병실 문이 닫힌 후에야 허연후는 천천히 한지혜에게 다가갔다.허연후는 차갑고 한없이 작은 한지혜의 손을 붙잡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그는 애틋한 눈빛으로 한지혜를 바라보며 짓궂은 농담을 건넸다.“저 지혜 씨가 너무 그리워요. 지혜 씨와 키스도 하고 잠자리도 가지고 싶어요.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요. 지혜 씨가 깨어나면 기꺼이 무료로 제 몸을 내어줄게요. 어때요? 솔깃하죠?”허연후는 머리를 숙이고 한지혜의 손등에 뜨거운 입술을 포갰다.뒤이어 뜨거운 눈물이 하얀 손등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