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는 전화를 끊은 뒤 웃으며 말했다.“전 이만 가볼게요. 이따가 다른 약으로 갈 때 다시 오겠습니다.”“그래요. 가봐요.”간호사는 약 카트를 밀고 한지혜의 병실로 오다가 허연후가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 가볍게 인사를 건넸다.“제가 한지혜 환자분 링거를 갈아드리겠습니다.”허연후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약이 담긴 카트를 꼼꼼히 살펴보더니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걸 발견한 뒤에야 간호사에게 말했다.“이제부터 한지혜 씨 약은 제가 책임질게요.”그의 말에 간호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만 제가 해도
“고작 말다툼 때문에 사람을 죽인다는 게 도무지 납득이 안 되네요. 가서 이 두 사람이 최근에 누구와 접촉했는지, 그리고 신분 조사까지 마치면 저희가 원했던 답을 꼭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그녀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아 허연후는 다시 핸드폰을 들고 아랫사람에게 당부했다.조수아는 저녁때쯤 윤다혜를 병원 근처의 호텔에 묶게 하고 다시 혼자 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왔다.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천우가 소파에 앉아 장난감을 갖고 놀고 있었다.그러다가 그녀가 돌아온 모습을 발견하고는 냉큼 소파에서 일어나더니 짧은 다리로 총총 그
조수아는 가만히 서서 놀란 얼굴로 주지훈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똑같은 말을 예전에 그녀에게도 했기 때문이다.분명 모든 게 끝나면 그녀를 집에 데려오겠다고 했었는데 왜 지금 같은 말을 천우한테도 하는 걸까?마치 천우도 가족의 일원인 것처럼 말이다.그녀가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걸 눈치챈 주지훈이 재빨리 그녀를 테이블 쪽으로 데려가 앉혔다.“모든 일이 끝나고 만약 그때 가서 네가 아이 낳기 싫으면 우리가 천우를 데려와서 매일 놀아주면 되잖아. 어차피 그 집안에 이미 아이가 충분히 많은데 상관 안 할걸?”그의 말에
손도 같이 떨렸다.너무 익숙한 호칭과 그 당사자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기 때문이다.그러다가 자기도 모르게 예전의 추억들이 머릿 속에 또다시 펼쳐졌다.비록 조수아는 이건 게임이란 사실을 알고 있지만 주지훈도 이것을 빌미로 지금 그녀와 가까워지려는 심산이었다.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조수아는 아무런 눈치도 채지 못하고 한껏 기대를 안고 열심히 배웠다.그러다가 문득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지하게 답했다.“이제 알겠어.”천우도 옆에서 웃으며 그녀를 응원했다.“엄마, 저랑 아빠가 보호해 줄 테니까 엄마는 걱정하지 말아요.”말을
천우의 말에 주지훈은 그만 온몸이 얼어붙고 말았다.놀란 얼굴로 그저 천우의 얼굴을 바라볼 뿐, 뭐라고 답해야 할지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천우는 까맣고 맑은 두 눈을 깜빡이더니 한껏 기대에 찬 얼굴로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그러다가 포동포동한 손으로 주지훈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삼촌은 아까 게임에서처럼 지금 괴물을 물리치기 위해서 잠깐 변신한 거죠? 그리고 괴물한테 당하지 않도록 세리 엄마한테 저를 맡겨둔 거고요?”쏟아지는 물음에도 주지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천우의 통찰력은 엄마와 똑 닮
천우는 말랑말랑한 자기 손으로 육문주의 얼굴을 어루만졌다.그리고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아빠.”“그래. 아빠는 우리 아들을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두 사람은 그렇게 말없이 서로를 꼭 안아줬다.얼마간 그러고 있다가 육문주가 다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아빠가 씻겨줄게.”천우가 고개를 들고 그에게 말했다.“전 아빠의 이 얼굴이 좋아요. 이 얼굴이 진짜 제 아빠거든요.”육문주는 다시 고개를 숙이고 그의 머리에 입을 맞췄다.“앞으로 아무도 없을 때면 아빠가 가면을 벗고 있을게. 근데 이 일은 누구한테도 말하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 끌어안고 이 순간을 조용히 만끽했다.그러다가 육문주는 욕실에서 드라이기를 가져와서 천우의 머리를 말려줬다.따뜻한 바람이 그의 머리와 온몸을 쓸어내리자 천우는 간지러운지 연신 깔깔거리며 웃었다.“기분이 너무 좋은데 이따가 엄마 머리도 말려줘요.”육문주가 웃으며 답했다.“그래. 그럼 엄마는 샤워하러 가고 천우는 아빠랑 같이 방에 들어가자.”그는 천우를 데리고 방에 들어가서 잠옷으로 갈아입혀 준 뒤 자기 전에 동화책 한 권을 읽어줬다.하지만 이야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천우는 그만 그의 품에서 잠이 들고
천우의 말에 조수아는 냉큼 그를 품에 안고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소리야. 어쩌면 넌 엄마랑 아빠의 선물일지도.”천우는 조수아의 아기처럼 갑작스럽게 그녀의 일상 생활에 나타났다.비록 처음에는 조금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지만 그래도 천우와의 시간은 행복했다.그녀가 또다시 예전의 슬픈 생각에 잠긴 모습을 천우가 단번에 눈치채고는 그녀의 볼에 입을 맞추며 물었다.“이미 전 엄마의 선물인걸요. 아직도 모르겠어요?”조수아는 일부러 자신의 기분을 풀어주려 하는 모습에 그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그래. 맞아. 엄마
이미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던 송학진한테 차서윤의 말은 마치 휘발유처럼 그를 더욱 불타오르게 했다.송학진은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무슨 선물?”차서윤은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하고 말했다.“먼저 씻어요. 조금 후면 알게 될 거예요.”송학진은 차서윤의 코를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여보, 내가 뭘 원하는지 잘 알잖아. 저쪽 칸에서 씻을 테니까 자기가 여기서 씻어. 씻고 나왔을 때 선물이 날 실망하게 하지 않길 바랄게.”“그럴 일 없어요.”차서윤은 송학진을 방에서 밀어내고 물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갔다.송학진
“외삼촌이 그럴 리가 없어요. 외숙모와 아림이도 나 때문에 만난 거잖아요. 만약 유치원에서 내가 아림의 치마를 적시지 않았다면 외삼촌이 외숙모를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천우의 말을 잠깐 생각해보던 육문주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만약 천우가 아니었다면 송학진은 어쩌면 아직도 솔로였을 수도 있었다.갑자기 뿌듯해진 육문주는 잔을 들고 자리에 있는 형제들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너희들 우리 아들한테 감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천우가 아니었으면 우리 이 축하주를 언제 마셨을지도 모를 일이야.”곽명원은 웃으며 말했다.“천우가 아니었
박서준은 웃으며 말했다.“배은망덕한 건 아닌 것 같네. 보살펴준 보람이 있어. 왔던 김에 가족들이랑 며칠 시간 좀 보내다 갈 거야.”박서준의 말에 곽서연은 즉시 활짝 웃으며 말했다.“정말요? 그럼 우리 그동안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예요?”박서준은 곽서연을 흘려보며 말했다.“삼촌이랑 헤어지는 게 그렇게 싫어?”“네. 매일 매일 삼촌이랑 같이 있고 싶어요.”“왜 이렇게 달라붙는 거야? 천우보다 더하네?”곽서연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삼촌은 내가 달라붙는 게 싫어요?”박서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싫다고 그러면 또 울
곽서연과 박서준이 동시에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곽명원이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박서준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형네 집 공주님께서 발을 삐끗해서 울고 계시잖아.”곽명원은 별생각 없이 곽서연 곁으로 다가가 몸을 웅크리고 그녀의 발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마구잡이로 잡고 돌리는 턱에 아파 난 곽서연은 바로 소리를 질렀다.“아! 삼촌 살살 좀 해요.”곽서연은 참을 수 없는 아픔에 고여있던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곽명원은 그녀를 한번 쳐다보고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아프다고? 어릴 때처럼 아픈 척하
송학진의 차가운 태도에 화가 난 강한나는 눈시울을 붉히고 입술을 깨물며 경호원을 바라보고 말했다.“내 발로 나갈 테니까 비켜요.”말을 마친 강한나는 도도한 걸음으로 이곳을 떠났다. 많은 사람이 뒤에서 그녀에게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다.모든 것이 끝나고 송학진은 차서윤을 데리고 방으로 돌아와 예복을 갈아입었다.송학진은 차서윤의 붉어진 눈을 보더니 그녀의 뺨을 쓰다듬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서윤아, 이제 내가 있으니까 누구도 감히 널 괴롭히지 못할 거야.”송학진은 차서윤이 이십여 년간 저런 아버지 밑에서 보내다 겨우 그
차경훈은 한순간 얼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차서윤이 모든 증거를 모으고 있었을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차경훈은 울며 빌었다.“서윤아, 아빠가 그때는 정신이 없었어. 앞으로 안 그럴 테니까 고소만 하지 말아줘. 제발 부탁이야.”차서윤은 차갑게 웃으며 말했다.“고소뿐만 아니라 부녀지간의 관계까지 끊을 거니까 앞으로 다시는 내 인생에 끼어들지 마세요. 더는 꿈에서조차 보기 싫으니까. 우리 이젠 죽을 때까지 연락하지 말죠.”차서윤의 말에 경호원은 차경훈을 강제로 현장에서 끌고 나갔다.차서윤의 완강한 태도에 겁을
그 말을 들은 차서윤의 눈에서 눈물이 줄 끊어진 구슬처럼 양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송학진의 볼에 입맞춤하고 눈물을 머금은 채 결심을 내렸다.“감사해요. 근데 저는 학진 씨가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사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제 마음속의 흉터를 모든 사람에게 공개해야 한다 해도 학진 씨를 위해서 뭐든 할 거예요.”말을 마친 차서윤은 신부 들러리로부터 핸드폰을 가지고 송학진에게 건네줬다.“제 핸드폰과 스크린을 연결해 주세요.”그 말은 들은 송학진은 차서윤이 무슨 일을 하려는지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이렇게 행복한 순간에 그녀에게 무수한 악몽을 남겨준 악마 같은 남자를 보자 차서윤은 지금 자신의 심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분노와 슬픔이 있었고 지금 이 상황이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감옥에 있어야 할 차경훈이 왜 멀쩡하게 결혼식장에 나타난 것일까.송학진이 재빨리 다가와서 그녀를 품에 안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위로해 줬다.“괜찮아. 내가 사람을 불러서 저 사람을 감옥으로 돌려보낼게.”그가 매니저에게 눈치를 보내자 매니저는 사람을 불러와서 송학진을 제압했다. 경호원들에게 잡힌 차경훈은 그들의 손에서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네가 안고 자고 싶다면 될 일이야? 네가 그러다가 이모부한테 쫓겨 나오면 내 잘못 아니다.”둘째와 셋째는 아빠와 천우가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고 신바람이 나서 쉴 새 없이 옹알이했다.육문주는 셋째를 끌어안고 볼 뽀뽀를 하며 행복한 얼굴로 말했다.“그래도 딸이 좋아. 역시 우리 보배 딸이 제일이야. 너희 오빠 한번 봐봐. 고작 3살밖에 안 됐는데 아빠 엄마는 안중에도 없고 와이프를 입에 붙이고 살잖아.”셋째는 아빠의 따뜻한 품에서 웃음꽃을 피우고 입을 비죽이며 뭐라 말했다. 아기의 귀여운 모습에 심장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