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훈은 우물쭈물 대며 답했다. "아.. 다름이 아니라.. 내가 오늘 서울 모빌리티쇼에 왔는데…"라고 말했다.시후는 그가 자동차 마니아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대학에 다닐 때부터 늘 모터쇼 같은 자동차 관련 전시회를 보러 부산과 서울을 왔다 갔다 하던 걸 봐왔기 때문이다.그러자 시후는 웃으며 "야아~ 또 차 보러 달려간 거야?"라고 물었다."응응.. 맞아!! 요즘에는 잘 안 오는데 올해 세계 탑급 한정판 스포츠카 몇 대가 전시를 하고 있어서 말이야.. 진짜 이건 쉽게 오는 기회가 아니니까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거든!”도훈은 대답을 하다가 말고 급하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아이코!! 내가 너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전화 한 게 아니라.. 네 집 사람을 여기서 봤거든..?”"응? 유나를??" 시후는 "모빌리티쇼에 뭐 하러 간 거지?"라며 의아해했다."자세한 건 나도 잘 몰라.." 그리고 도훈은 "근데, 어떤 남자랑 같이 있어서 지금 아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싶어서 전화한 거야!"라고 말했다.시후는 순간 미간을 찌푸렸다.지금 아내가 모르는 남자와 모빌리티쇼를 보러 갔다고?그런데 왜 자신에게 한 마디 언급도 없었지?두 사람은 평소 교류가 많지는 않지만, 어떤 부분은 서로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왜 다른 남자와 모빌리티쇼를 보러 가는데, 자신에게 알리지도 않은 것일까? 사정이 있는 건가?시후는 LCS 그룹의 자제이고 서울에 있는 재벌가 중 탑이었지만, 여전히 유나에 대한 감정에는 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는 늘 유나가 밖에 나갔을 때 누군가 그녀를 꼬시기라도 할까 봐 늘 전전긍긍했다.“도훈아, 알려줘서 고맙다!”도훈은 "시후야, 우리 어머니께서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빨리 돌아오라고 전화를 하셨거든.. 아무래도 네가 직접 와서 봐야 할 것 같은데..?..""좋아. 이따가 가 볼 테니까, 넌 바쁜 일부터 처리해~ 고마워!"전화를 끊고 시후는 차를 길가에 세운
사회자의 말에 모두들 아연실색하며 놀랐다.이 두 대는 모두 세계 정상급 슈퍼카로 평소에는 극히 보기 힘든 고급 차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내에는 몇 대 없는 귀한 차인데, 이걸 한 번에 한 사람이 다 사갔다고?이 정도 급의 고급차는 돈만 있다고 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부가티의 경우 차량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회원의 자격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7가지의 관문을 거쳐야 한다. 먼저 소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파악을 한다. 두 번째는 부가티의 역사 수업을 들어야 한다. 원칙은 프랑스 몰샤임에 있는 부가티 소유 성에서 브랜드 관련 역사 수업을 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공장으로 이동하여 엔지니어들의 설명을 직접 들어야 한다. 네 번째는 직접 테스트 드라이브를 진행해야 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는 계약금을 세 차례 나눠서 지불하는 것이다. 부가티는 계약금만해도 3억 원이 넘는데 첫 계약금을 지불하면 부가티와 계약이 체결되게 된다. 여섯 번째는 수많은 옵션들을 하나하나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마지막 관문은 바로 주문한 부가티를 인도받는 것이다. 이렇게 구매 관문이 까다롭다 보니 이 브랜드의 자동차는 전 세계 200여 개국 중에 손에 꼽을 만큼 적은 수량이 판매되며, 더더욱 국내에서는 1-2대 정도 밖에 볼 수 없는 귀한 슈퍼카이다.게다가 부가티 에르메스 스페셜 에디션 스포츠카는 세계 최고 갑부들을 위한 서비스인데다, 에르메스와의 공동 합작으로 인해 그 금액은 더욱 비싸다.게다가 람보르기니 베네노의 경우 금액이 50억 정도였다. 그런데 이 두 대의 차를 구매한 것이 같은 사람이라니? 이는 돈이 수 백억은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금액이었다. 그러니 사회자의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아마 이 차들의 주인이 신분과 지위가 모두 사람을 깜짝 놀라게 할 정도로 높은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차주인 시후의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해 있었다.그의 두 눈은 그저 수많은 관중들 속에서 아내 유나의 그림자만을 쫓고 있었다.시후는 한참 동안 유나를 찾았지만
진환은 늘 유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이라는 시후의 존재를 알고 있었는데, 한 번도 직접 본 적은 없었다.그런데 눈앞의 남자가 바로 유나의 무쓸모한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진환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시후를 바라보며 말했다. "음.. 그럼 선생님께서는 지금 무슨 일을 하십니까?"시후는 "저는 지금 일은 안 하고 있고, 백수입니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했다.그러자 여진은 옆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그럼 유나가 버는 돈으로 먹고 사는 거 아니에요?"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그러자 진환의 눈에도 순간 경멸스럽다는 듯한 눈빛이 스쳤다. 그는 유나가 WS 그룹에 있을 때부터 유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기에, 유나가 창업했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러 그녀를 찾아가 리모델링 견적서를 주고 이 자리에 유나를 초대했던 것이다.하지만 그는 유나 앞이었기 때문에 시후를 바라보며 빙긋 웃었다. "아하.. 그런데 시후 씨.. 사실 오늘 안 오는 게 더 좋았을 것 같은데.. 오늘 이 자리에 온 사람들은 모두 서울시에서 내로라하는 유명한 인물이라서요.. 이렇게 집사람의 밥이나 얻어 먹는 남편이 이곳에 오면 유나 씨가 부끄럽지 않겠어요..?”유나는 진환의 말을 듣자, 안색이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했는데, 그녀는 장 부장의 입에서 시후를 비꼬는 듯한 말이 나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분이 나쁜 정도를 넘어서서 화가 나기까지 했다.그러나 유나가 채 입을 열기도 전에, 시후의 눈빛이 먼저 싸늘해졌다. 그는 “이런 전시회가 멋있나 봅니다? 저는 제 차가 여기에 있지 않았으면 발도 안 들였을 것 같은데 말이죠..?”라고 따져 물었다."당신 차가 여기 있다고요? 지금 자기 분수도 모르는 것 같은데..?" 여진은 옆에서 경멸스러운 듯 소리를 쳤다. 그리고는 뒤이어 계속해서 시후에게 쏘아붙였다."아니.. 여기 전시된 차들은 전부 밀리언셀러나 고급 외제차 브랜드라는 거 몰라요? 당신은 여기에 있는 차 타이어 하나라도 못
진환은 시후를 신랄하게 헐뜯은 후 유나를 향해 돌아섰다. "유나 씨, 저는 이번 합작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가 성의를 좀 표현하고 싶네요.. 이 모빌리티쇼에서 여기 우리 옆에 있는 두 대의 차량을 제외하고, 아무 차량이나 골라 보세요. 지금 유나 씨가 타고 다니는 그 쓰레기 BMW는 이제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요. 아우디 RS8 어때요? 이런 차가 모터도 빵빵하고 유나 씨와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진환은 유나를 탐하고 있는 지 오래였고, 이번에는 전시장을 인테리어 한다는 명목으로 유나를 부른 다음 금전 공세로 유나의 마음을 사로잡을 생각이었다.그의 비서 여진은 유나에 대한 진환의 생각을 진작에 알고 있었기 때문에, "유나야, 이건 우리 부장님의 성의라고 하잖아! 그러니까 넌 절대 사양하면 안 돼!? 알겠지?"라며 빠르게 응원의 말을 하기 시작했다.하지만 유나는 "장 부장님의 호의는 정말 감사하지만, 저에게는 너무 크고 귀한 선물이라 받을 수는 없을 것 같아요!"라며 황급히 거절했다.진환은 "겨우 아우디 RS8 정도 일 뿐인데요, 이 정도는 저에게 정말 별거 아니에요. 마음에 든다고 하면 그냥 지금 계약금을 쏘고 자동차를 주문해드릴 수 있어요!”하지만 그 때, 시후가 차가운 눈빛으로 진환을 바라보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우리 집에도 차가 있으니 당신이 차를 보낼 필요도 없고, 게다가 보낼 차례도 당신이 보낼 필요도 더더욱 없습니다!”"그걸 왜 당신이 결정하는 거죠?" 진환은 그를 무시하며 말했다. "그리고 당신을 무시한 건 아니에요. 현실적으로 말한 것일 뿐이죠. 이 중에서 어떤 차를 구매할 수 있냐는 말입니다!?"시후는 그를 바라보다가 단상에 놓인 부가티와 람보르기니를 가리키며 웃었다. “그럼 이 차 두 대를 당신에게 선물하면 어떨까요?”진환은 시후가 자신이 이렇게 비싼 차를 못 산다고 일부러 비꼬는 줄 알고 차가운 표정으로 받아쳤다."저기요?! 선 넘지 마시죠?! 완전 나대는 것 같은데?
진환은 말을 마치자 마자 앞을 에워싸고 있던 인파를 헤집고 보안관 앞으로 나갔다. "저는 이곳 센터의 장진환 부장이라고 합니다. 사실 전시장은 저희 집안에서 관리하고 있는 곳이라서요.. 혹시 지금 전시하고 있는 차량을 제가 좀 가까이에서 구경하고 싶은데..”“안 됩니다!?” 경비원 중 한 명이 말했다. "저희를 고용한 고용주님께서는 차주 외에는 아무도 접근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진환은 얼굴 표정이 좀 나빠졌다.‘아니.. 진짜 만지지 말라고? 감히 나를 못 알아봐? 아니, 그리고 이거 너무 쪽팔리는 일 아니냐고? 지금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 줄 알면 큰일 날 텐데? 어이가 없네?’그리고 만약 자신이 이 두 대의 차를 만져볼 수 없다면, 유나의 남편 은시후와 다를 것이 뭐가 있겠는가? 자신도 저 거렁뱅이와 똑 같은 수준인 인간이 될 뿐이다!‘안 돼, 난 이렇게 쪽팔리는 일을 당할 수 없어!’진환은 마음속의 분노를 억누르고, 그 경비원에게 호기롭게 말했다. "저기요, 그냥 한 번만 편의 봐주셔도 되는 거 아닙니까? 앞으로 제가 당신을 기억하겠습니다! 어쩌면 여기 보안팀으로 발령받을 수 있게 도와줄지도 몰라요?!”하지만 그 경비원은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융통성이 없는 성격이기에 고용주의 말을 곧이곧대로 따르며 단칼에 그의 제안을 거절하였다."아니 이 양반아! 내가 한 번 더 말하는데, 차주가 아니라면 절대로 이 차에 가까이 다가서는 안 된다고요!"하지만 진환은 상대방이 자신의 체면을 살려줄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자 똥줄이 타기 시작했다."아니.. 지금 이 컨벤션센터 전체가 우리 집안에서 관리하는 곳이라고요! 그런데 지금 보디가드 하나가 감히 내 말을 안 들어?!”하지만 상대방은 전혀 미동도 없이 맞받아쳤다. "실례지만 저는 진원보안 소속 보디가드지, 이쪽 컨벤션센터 경비원이 아닙니다. 그러니 저에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십쇼.?”"야!! 너!? 진짜 뻔뻔하네?" 진환은 "이거 이거 진짜 말이 안 통하는
그때 양복 차림의 관리 팀장이 소란을 듣고 급히 달려왔다.그의 뒤에는 컨벤션센터 소속의 경호원들 무리들이 따라다니고 있었고, 그들 모두는 굳은 얼굴로 무표정했다."무슨 일이 있었나? 왜 이렇게 소란스럽죠?”장 부장은 그를 보자 거만한 표정으로 말했다. “현장 담당자이시죠?”"네 맞습니다만..?"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누구십니까?”라고 물었다."저는 킨덱스 컨벤션센터 장 부장입니다."그러자 현장 담당자 이정목 팀장은 진환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말했다. "아~ 장 부장님! 그런데 왜 여기서 이렇게..?”장 부장은 "당신네 부하 직원들.. 일을 못해도 너무 못하는 것 아닙니까? 지금 제가 이 차에 가까이 가서 좀 보려고 하는데, 현장 담당자랑 계약했다는 보안 업체에서 끝끝내 나를 한사코 무대로 오르지 못하게 하잖아요!! 아니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고요? 지금 날 무시해요??"이정목 팀장은 빙긋 웃으며, "장 부장님..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이 두 대의 차는 이미 소유주가 있기 때문에, 그 분이 이 차를 가지러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서요.. 그래서 저희 측에서도 손을 댈 수가 없는 사항입니다.. 그리고 이 두 대의 차.. 엄청 비싼 거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건 차주 말고 그 누구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장 부장은 얼굴을 찡그리며 "그럼 저는요? 제 체면은 생각 안 하시고요?"“죄송합니다.." 이정목 팀장은 끄떡없이 진지하게 말했다. “장 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아마 킨덱스본부장님, 또는 대표이사님들께서 총 출동하셔도 차주가 아니면 만지거나 손 대실 수 없습니다.”장 부장은 지금 구라를 친 놈으로 전락할 신세가 되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특히 유나가 자신을 보고 있는 마당에.. 어찌되었든 지금 모두가 자신의 체면을 살려주지 않는 상황이다.그래, 다들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좋아!자.. 그럼.. 이제 본때를 보여 줄 테니.. 내가 미친놈이라고 탓하지 말라고!
"진 대표님, 컨벤션센터의 장 부장이라는 사람이 지금 전시된 부가티와 람보르기니를 굳~이 한 번 만져보겠다고 하다가 전시장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진원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소리쳤다. “아니 지금 나에게는 장 부장이고 장 회장이고 나발이고! 그 차 건드리면?! 손 모가지 부러뜨려 버린다고 하세요!"이정목 팀장은 "아.. 그래도 진 대표님.. 킨덱스가 장 부장 집안에서 관리하는 곳인데, 너무 강하게 나오시는 것 같아 보입니다?!"라고 다급히 말했다."장 부장이 뭔데요? 뭐 좀 됩니까?" 진원호는 소리를 질러 대며 "장 부장인가 뭔가! 내 눈에는 아무것도 아니니까, 내가 산 차에 손 끝이라도 대면 서울에서 발 못 붙일 줄 알라고 전해요! 그리고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말라고도 알려주고!"라고 명령했다.진원호는 어제 겨우겨우 시후로부터 환약을 받아 감격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런데 갑자기 어떤 놈이 감히 자신이 은 선생님께 선물로 사드린 슈퍼카를 만지려 든다는 사실을 듣게 된 것이다. 아마 간댕이가 배 밖으로 나온 놈 같다.장 부장의 집안이 관리한다는 그 킨덱스는 사실 천진 그룹이 가진 권력과 영향력에 비하면 영 힘을 못 쓰는 축에 속했다. 더구나 진원호의 뒤에는 은 선생 같은 대단한 인물이 있었으니, 장 부장이라는 놈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었다.이정목 팀장은 그 말을 듣고 놀라 다시 고개를 들어 차량이 전시되어 있는 무대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진환이 부른 경호원 몇 명이 외부 회사의 경비원들을 붙잡고 있었다."당신들이 더 이상 물러가지 않으면, 내가 손찌검을 할 거야!"진환은 여전히 그렇게 길이길이 날뛰고 있었다.이정목 팀장이기의 손이 떨려왔다. ‘젠장.. 저기 서 있는 외부 경호원들은 현금 수송을 할 때 고용되는 그런 경호원들인데..’자신은 조금 전 진원호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에, 혹시라도 두 대의 슈퍼카를 앞에 두고 무슨 실수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 그래서 진환을 가리키며, 자신의
장 부장은 이때 속으로 엄청나게 두려웠지만 한 편으로는 사람을 죽일 수 있을 정도로 화가 들끓어 올랐다.왜냐하면 지금 자신의 집안이 관리하고 있는 컨벤션센터에서 제압을 당하고, 게다가 자신을 제압한 인물 앞에서 사과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이 관심 있던 유나의 앞에서 쪽팔리게 맞았다는 것이다! 이건 그야말로 생전 처음 있는 크나 큰 굴욕이었다.그러나, 천진 그룹은 자신이 도저히 건드릴 수 없는 집안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마음 속에 생긴 노여움은 모두 시후에게로 향했다.오늘의 일은 모두 은시후라는 원흉이 자신을 기어코 해치게 된 것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괜히 저 슈퍼카인지 뭔지를 한 번 만져 보려다가 유나 앞에서 이렇게 망신을 당하다니.. 이 원수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이때 이정목 팀장은 그가 그래도 눈치는 빠른 것을 보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다. "됐습니다. 이제 그만 철수합시다!"그러자 경호원들은 그제야 서로에게서 손을 뗐지만, 모두들 난투극으로 이미 만신창이가 되었다.시후는 옆에 서서, 경멸에 찬 얼굴로 땅바닥에 있는 장 부장을 바라보며 웃음 짓다가 물었다. "부장님, 정말 저 슈퍼카는 부장급이면 만질 수 없는 정도인가 봐요!?"장 부장은 처음부터 시후가 마음에 들지 않아 이가 부득부득 갈렸다. 그런데 지금 자신을 도발하자 참지 못하고 소리 쳤다."저기 은시후 씨! 지금 날 망신당하게 만든다면, 내가 평생 널 절대! 용서하지 않을 거다!""왜요? 제 말이 틀리기라도 해서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건가요? 유나 씨, 내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 않아요?”유나는 이때 좀 당황했지만, 조금 전 장 부장이 끊임없이 시후를 비꼬아 댔기에 그녀는 확실히 화가 난 것은 맞았다. 하지만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조금 전 장 부장에게 화를 내지 않은 이유는 그저 컨벤션센터와의 협력을 계속 이어 나가기를 바라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장 부장의 정체가 겉으로 드러
유가휘는 그동안 홍콩에서 여러 연애 관련 스캔들로 이름을 날렸고, 그와 사귀었던 모든 여성들은 마지막에 헤어지더라도 여전히 그를 보기 드문 신사라고 칭찬하곤 했다. 로맨틱한 재벌들은 많지만, 유가휘처럼 행동하는 이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이때, 홍콩은 이미 깊은 밤이었다. 유가휘는 비단으로 만든 잠옷을 입고 서재에 앉아 집사가 건넨 자료를 읽고 있었다. 자료를 몇 번이나 훑어본 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더니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이 자식을 이렇게 오래 찾아다녔지만 못 찾았는데, 뉴욕의 한인 타운에서 식당을 운영하며 숨어 있었다니! 보아하니 꼴이 완전히 초라해졌겠군! 만약 그를 본다고 해도 아마 못 알아볼 정도일 거야!”집사는 급히 말했다. “대표님, 이중열이라는 자는 정말로 완벽하게 숨어 있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20년 넘게 거의 면도를 하지 않고, 머리도 길게 기르며 분위기를 상당히 바꿨다고 하더군요. 이번에 미국 경찰이 그의 자료를 조사하지 않았다면, 그의 행방을 찾기도 어려웠을 겁니다.”유가휘가 얼굴을 찌푸리며 물었다. “그런데 미국 경찰이 왜 그를 조사했지? 미국에서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나?”집사가 대답했다. “제 정보통에 따르면, 며칠 전 뉴욕에서 일어난 사건과 관련해 경찰이 그를 의심한 것 같더군요. 게다가 미국에서 불법 체류자 신분이라 경찰이 그의 신원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홍콩에서의 과거 자료를 찾아낸 것 같습니다.”유가휘는 이를 악물며 말했다. “이 멍청한 자식! 난 늘 그 놈의 뛰어난 두뇌로 분명 새로운 신분을 얻어 금융이나 주식 같은 본업으로 돌아가 재기를 할 줄 알았는데.. 그런데 이렇게 초라한 식당이나 운영하며 살고 있다니, 정말 한심한 놈이군!” 사실, 유가휘는 사람들에게 보이는 신사적인 모습과 달리 소심하고 앙심을 품는 성격이었다. 따라서 이중열에 대한 원한을 그는 지금까지 잊지 않은 것이었다. 하지만 이중열이 너무 철저히 숨어 있는 바람에 오랜 세월 동안 그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유가휘가 사랑했던 여인은
이중열의 신분은 확인되었지만, 이는 오히려 제이크 한에게 약간의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그는 좀 더 특이하고, 뭔가 음모가 숨겨져 있을 법한 정보를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고 받은 내용은 그의 이중열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불식시키는 내용이었다. 베테랑 경찰관으로서 그는 잘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현재를 위장할 수 있을 지는 몰라도, 과거를 완벽히 숨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많은 범죄자들은 과거를 지우고 모두가 존경하는 성공한 인물이 되었음에도, 결국 과거의 죄로 인해 감옥에 가게 되는 것이다.20~30년 전의 이중열에게 일어난 일들까지 밝혀졌으니 그와 혜리의 관계를 충분히 증명할 수 있었다. 따라서 혜리가 그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는 것도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또한 혜리가 식당에서 식사 중 우연히 안충주가 아버지의 건강이 위독한 상황을 언급하는 것을 듣고, 먼 길을 달려 약을 전달하러 온 것이라면, 이 역시도 납득할 수 있을만한 일이었다.이중열이 왜 CCTV의 하드웨어를 고의로 파손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제이크 한은 합리적인 설명을 할 수 있었다. 혜리는 유명한 스타이고, 이중열 역시 평범하지 않은 과거를 가진 인물인 만큼, 그는 뭔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혜리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CCTV를 파손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이 모든 일들이 합리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되었으므로, 이 노선은 더 이상 추적할 필요가 없어졌다.결국 제이크 한은 경찰이 블랙 드래곤의 단서를 통해 사건을 더 깊이 파헤쳐 주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현재로선 블랙 드래곤이 가장 분명한 수사 방향이었다.그러나 부하의 목소리는 약간 무기력했다. “형님, 오늘 후임자인 브루노가 우리와 회의를 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사 방향을 피해자들의 신원 확인과 피해자 납치 사건의 구체적인 경위 조사로 완전히 전환하기로 했습니다. 페이셔스 그룹 쪽도 윗선과 이미 이야기를 끝났습니다. 그래서 블랙 드래곤에 대한 조사는 사실상 중단될 겁니다.”제이크
안충주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우리 그룹이 이 카펫 하나를 교체하는 데 드는 비용이 우리 총 자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네가 집에서 쓰레기통에 새 비닐봉지를 끼우는 정도와 비슷한 거야. 쓰레기 봉투 갈 때 아깝다고 생각하냐?”“젠장....” 제이크 한은 혀를 차며 욕설을 내뱉었다. “또 폼 잡고 있네..”안충주는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난 사실대로 말한 것뿐이야.”이야기를 나누며 일행은 차례로 한식당에 도착했다. 안산은 제이크 한을 불러 자기 옆에 앉도록 했다.안태풍이 미리 지시한 덕분에, 일행들이 자리에 앉자마자 직원들은 준비된 음식을 곧바로 가져왔다. 안태풍은 직접 청주 한 병을 가져오게 하여, 형과 함께 제이크 한에게 술을 권하며 기분을 풀어주려 했다.안산은 제이크 한이 처한 현재 상황에 대해 계속해서 신경을 쓰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하지만 제이크 한은 상황에 대해 자세히 말하기 곤란했기에 그냥 최근 몇 가지 큰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고 막연하게만 대답했다. 안산은 그가 더 이상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더는 묻지 않았다.제이크 한은 그의 성격 때문에 평소에 친구가 많지 않은 편이었다. 게다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고, 아버지 홀로 그를 키웠으며 재혼도 하지 않았기에 형제자매도 없었다. 최근 몇 년간 그의 아내가 아이를 데리고 휴스턴으로 떠난 후, 혼자 뉴욕에 남아 있었기에, 제이크 한은 더욱 외롭게 생활했다.비록 아버지 세대부터 그와 Samson 그룹은 친분이 두터웠지만, 신분 차이가 커서 제이크 한은 그들을 자주 방문하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만약 최근 안충주가 한국에서 회춘단을 구입하다가 충격을 받지 않았고, 제이크 한이 배호영의 납치 사건으로 고민을 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자주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그래서 지금 Samson 그룹 사람들 속에 앉아 있는 제이크 한은 고독했던 마음에 작은 위로를 받았으며, 억눌려 있던 마음도 조금씩 풀렸다.안충주, 안태풍, 안재남과
제이크 한의 말에서 뭔가 사연이 많음을 느낀 안산은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이야기가 길어도 괜찮아. 밥 먹으면서 천천히 얘기하자고.” 안산은 얼마 전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데다 기억력이 심각하게 저하되어 최근에 미국에서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사건들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제이크 한을 잘 알고 있었고, 그가 원래 성격이 매우 고집스러우며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에 그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더 궁금해졌다.제이크 한도 몇 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알았기에 대충 얼버무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 별 것 없는 이야기로 괜히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에 이따 술 한 잔 드시면서 이야기해 드리겠습니다!”이 말을 듣고 시후의 외할머니가 급히 두 사람을 말렸다. “제이크, 회장님한테 술을 권하면 안 돼. 지금 정신이 이 모양인데 술이라도 마시면 나까지 못 알아볼지도 몰라.”“맞습니다, 맞습니다....” 제이크 한은 급히 깨닫고 사과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생각이 짧았네요.”안산은 웃으며 말했다. “네 놈이 이렇게 풀이 죽은 꼴을 보니, 술을 마시고 싶은 건 사실 너로구나!” 그러고는 안산은 안충주와 안태풍을 향해 말했다. “충주야, 태풍아, 이따 너희 둘이 제이크와 한 잔 하도록 해라. 나는 안 마실 테니.”두 형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안산은 제이크 한의 숨기지 못하는 우울한 기색을 보며 일부러 진지하게 말했다. “제이크 한! 정신 차려! 지금 이 꼴이 뭐냐? 네 아버지의 예전 모습을 조금이라도 닮아야지 말이야!”그러자 제이크 한은 재빨리 자세를 바로잡고 정중하게 말했다. “예, 회장님 말씀이 옳습니다....”안충주가 이때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 “아버지, 그럼 식사부터 하실까요? 천천히 이야기 나누시죠.”“그래 좋다.” 안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밥부터 먹자.”AB 빌딩 꼭대기 층은 건물 면적만 4천 평방미터에 달해 수백 명이 근무할 수 있을 정
시후의 외할머니는 무기력하게 한숨을 쉬며 단호하게 말했다. “여보, 분명히 말할 게요. 당신이 은 서방을 미워하는 건 내가 어찌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은 서방에 대한 당신의 태도는 앞으로 반드시 바뀌어야 해요!”안산은 완고한 성격이 발동하며 단호히 말했다. “나는 바꾸지 않아! 나중에 내가 죽더라도, 염라대왕이 옥황상제를 불러 나를 심문해도, 은 서방에 대한 태도는 절대 바꾸지 않을 거야!”시후의 외할머니는 화가 나서 말했다. “좋아요! 당신 참 대단하네! 안 바꾼다고요? 그럼 나중에 시후가 돌아오고 가족들이 예선이와 은 서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시후 앞에서 또 그런 말을 하면 시후는 틀림없이 당신과 연을 끊고, 평생 다시 만나지 않을 거예요! 내가 어렵게 찾아낸 외손자를 당신이 쫓아낸다면, 나도 당신과의 관계를 당장 끊어 버릴 거예요! 믿지 못하겠으면 기다려 보던가요!”그러자 조금 전 까지만 해도 분노로 가득했던 안산은 이 말을 듣자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힘이 빠져 버렸다. 그는 아내가 자신과 관계를 끊을 가능성은 없다고 알지만, 외손자인 시후가 돌아왔을 때, 자신이 여전히 이런 태도를 보인다면 외손자가 자신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결국, 누구도 자신의 부모를 모욕하는 걸 용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에 이르자 안산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침울하게 말했다. “당신 말이 맞아.... 내가 바꿀게.... 꼭 바꿔야지....” 그리고는 안산은 다시 우울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죽기 전에 시후를 다시 볼 수 있을지 모르겠군....”시후의 외할머니는 남편의 태도 변화에 안도하며 부드럽게 위로했다. “걱정 말아요. 내 생각엔 오래 걸리지 않아 시후가 돌아올 것 같아요.”안산은 급히 물었다. “왜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시후의 외할머니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은서가 이미 왔잖아요. 그러니 시후도 멀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은서가 이렇게 한결같은 마음을 보여줬으니, 하늘도 감동하여 반드시 시후를 돌아오게 할 거예
안산이 갑자기 화를 내자, 가족들 모두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찌할 줄을 몰랐다. 모두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안산이 평생 동안 마음에서 떨쳐내지 못한 문제였다는 것을... 그는 Samson 그룹의 당시 능력과 그들의 진심을 생각하면, 은서준이 왜 굳이 한국으로 돌아가려 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안산의 생각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은서준을 대할 때 항상 자신이 더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유능한 사장이 100만 달러의 월급을 받고 다른 회사를 다니는 인재에게 100만 달러를 받는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이 1천만 달러, 아니 그 이상을 제공할 수 있으니 회사를 옮기라고 하는 것과 같았다. 안산은 이렇게 하면 은서준이 자신을 거절할 이유가 전혀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그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은, 은서준이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했다는 사실이었다. 이로 인해 안산은 마음속 깊은 곳에서 큰 좌절감을 느꼈고, 심지어 그 좌절감은 분노로 이어졌다. 원래 그는 은서준을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물론 은서준의 가문이 Samson 그룹보다 훨씬 부족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는 은서준이 뛰어난 인재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세 아들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러한 인정 때문에 그는 은서준이 Samson 그룹으로 들어오는 것을 간절히 바랐다. 그는 자신의 장녀 안예선만이 가장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은서준은 자신의 딸과 비교해보면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를 잘 보완할 수 있는 관계였다. 그러니 만약 그들이 함께 Samson 그룹에 머문다면, Samson 그룹은 분명히 날개를 달게 될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사우디 왕실이나 로스차일드 가문과 같은 세계에서 유명한 집안들을 뛰어 넘어 세계 정상에 우뚝 서는 것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다.그러나 은서준은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은서준은 이미 야망과 포부가 있었고, Samso
이 세상에는 수많은 보험회사와 금융회사가 있지만, 땅값 비싸기로 유명한 맨해튼에 초고층 빌딩을 세운 보험회사와 금융회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하지만 AB 그룹은 그중 하나였다.Samson 그룹은 비록 로스앤젤레스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제대로 세력을 키우고 성장할 수 있었던 곳은 두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나는 실리콘밸리이고, 다른 하나는 뉴욕인데, 과거 안예선은 실리콘밸리에서 매우 값싼 가격에 엄청난 잠재력을 가졌다고 판단한 회사들에 투자했다. 그리고 이 투자를 더욱 깊이 있는 자본 운용에 연결하기 위해, Samson 그룹은 미국 금융의 중심인 뉴욕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Samson 그룹 전체 핵심이 되는 곳을 이곳에 세웠다. Samson 그룹에는 여러 그룹사들을 가지고 있는데, 투자한 기업들은 셀 수 없을 정도지만 Samson 그룹의 진정한 핵심 그룹은 바로 AB 그룹이었다. AB 그룹이 설립된 이후, 안예선은 실리콘밸리에 투자했던 자금을 AB 그룹과 합병하여, AB 그룹을 미국 최대의 인터넷 벤처 캐피털 기업으로 만들었다. 그와 동시에 AB 그룹은 Samson 그룹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 기업이 되었다.시후의 외조부 안산은 은퇴하기 전까지 계속 AB 빌딩에서 근무했다. 이후 그는 경영권을 시후의 둘째 외삼촌인 안태풍에게 넘겼기 때문에, 이곳은 안태풍의 사무실이 되었다. 평소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노부부와 함께 지내는 사람은 바로 시후의 큰외삼촌 안충주 뿐이었다. 그 외에 시후의 둘째 외삼촌 안태풍, 셋째 외삼촌 안재남, 그리고 막내 이모 안유진은 모두 뉴욕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아버지의 건강이 점점 악화되자, 다른 가족들도 당분간 자신의 일을 내려놓고 로스앤젤레스로 돌아와 아버지의 곁에 머무르고 있었던 것이다. 안산은 은퇴 이후 노인성 치매로 고생했기에 몇 년 동안 이곳을 거의 찾지 못했다. 오랜만에 다시 이곳에 오니, 그는 잠시 회상에 잠긴 듯 창가로 걸어가 맨해튼의 풍경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말했다. “건물은 여전
유나는 시후가 말하는 풍수 이론을 이해하는 듯하면서도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것은 늘 겉으로 보기에 뭔가 이치가 있는 것 같지만, 동시에 약간 신비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이 잘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기에, 어떠한 질문도 하지 않았다. 한편, 아내의 곁에 있는 시후는 속으로 약간의 긴장감과 불안함을 느꼈다. 그는 저녁에 외가 식구들에게 자신의 정체가 노출될 것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뭔가 자제가 안 되고 고향 근처로 돌아온 듯한 미묘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다. 시후는 비록 외가 식구들이 과거에 했던 행동들에 대해 약간의 원망을 품고 있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혈연의 정을 여전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오늘 밤은 시후가 지금까지의 시간 중에서 외가 식구들과 가장 가까이 마주하는 순간이 될 것이었다. 따라서 그가 느끼는 긴장감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그 시각, 시후의 외조부모는 자녀들과 함께 맨해튼에 위치한 AB 빌딩에 도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으로 올라가는 동안, 안산은 감회에 젖어 아내와 자녀들에게 말했다. “예선이가 살아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이 빌딩에 엄청난 정성과 노력을 쏟았지만, 이 빌딩을 실제로 사용하기 시작한 이후에는 단 한 번도 와보지 못 했어....”그러자 시후의 외할머니는 급히 말했다. “큰 병에서 회복한 지 얼마 안 됐으니, 너무 슬픈 생각은 하지 마세요. 오늘 우리가 뉴욕에 온 이유를 잊지 마시고요.”안산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우리가 왜 왔더라?”시후의 외할머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차 안에서 조금 전에 다 설명했잖아요! 오늘 우리는 시후 약혼녀의 콘서트를 보러 왔다고요!”“아....” 안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생각났네.... 시후 약혼녀의 콘서트를 보러....” 그는 말을 마치고 시후의 외할머니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럼 시후도 오나?”시후의 외할머니는 그를 흘겨보며 말했다. “시후는 아직 못 찾았잖아요!”안산은 민망한
시후는 이 이야기를 듣고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는 외가 식구들이 고은서의 콘서트를 보러 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에 대해 어렴풋이 예상하고 있었지만, 정말 그가 예상한 대로 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외가 식구들과 직접적으로 접촉하는 일을 피하고 싶어서 시후는 이번 콘서트를 보러 가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내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VIP 박스석도 있었기에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외할머니가 외할아버지까지 모시고 왔다는 말을 들은 그는 말했다. “손님이 오신 것이니, 혜리 씨께서 잘 대접해 드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그러자 고은서가 대답했다. “은 선생님,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하지만 지금 다른 문제가 하나 더 생겨서요.. 두 노인들께서는 연세도 많으시고, 지위도 좀 특수하니, 관객석에서 제 공연을 보시는 건 적합하지 않을 것 같아요. 제 생각에는 연세 많은 두 분도 역시 VIP 박스석에 모셔야 할 것 같아요. 그래야 편안하게 관람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잠시 말을 멈춘 뒤 고은서는 다시 말했다. “그때 제가 지우 언니에게 먼저 은 선생님과 사모님께서 VIP 박스석으로 입장하도록 안내하고, 그 후에 두 분 노인을 들어오시게 하라고 할 생각이에요. 어차피 박스석 내부는 필요한 것들이 모두 다 갖춰져 있어서 공연 중간에 나오실 필요가 없으실 거예요. 공연이 끝나면 지우 언니가 두 분을 먼저 모시고 나가게 할 테니, 양쪽이 만날 일은 없을 겁니다. 이 계획은 어떠신가요?”시후는 잠시 고민한 후, 시원하게 동의하며 말했다. “그 계획 괜찮네요. 양쪽이 동시에 들어오거나 나가는 것만 피하면, 풍수적으로도 문제 없을 겁니다.”고은서는 시후의 말을 이해하고는 말했다. “그렇다면 제가 할머님께 명확히 말씀드릴게요. 그리고 제가 지우 언니에게 선생님과 사모님이 계신 박스석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할머님을 배치하도록 할 게요. 이러면 더 안전할 겁니다.”“그럴 필요 없습니다.” 시후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