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준혁은 여전히 환자복을 입은 상태였고 위에는 외투 하나를 걸친 채 자두를 안고 있었는데 누가 봐도 다정한 부녀사이 같았다. 신유리는 그의 품에 안겨있는 자두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서준혁은 신유리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그는 자두를 천천히 내려놓고는 신유리에게 천천히 물었다. “들어가도 돼?” 신유리는 그에게 물었다. “무슨 일인데?” 서준혁은 그제야 병실 안으로 발을 들이며 천천히 말을 꺼냈다. “애 감기 안 걸리게 조심했어.” 신유리는 방금 전 자신의 한 말이 생각이 나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알아.” 자두는 거의 매일이다시피 서준혁에게 갔지만 늘 환한 미소로 돌아왔기에 신유리는 그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알 수가 있었다. 서준혁은 멈칫거리더니 신유리를 바라보며 생각을 했다. 더 많이 그녀의 모습을 눈에 담고 싶었지만 그렇다면 그녀가 행여 불편해 할까 두려웠고 전에는 몰랐지만 신유리의 이런 말투조차 지금 그는 행복에 겨워했다. 아무 말 하지 않는 서준혁을 보고는 신유리는 미간을 찌푸렸고 그녀의 감정변화를 알아차린 서준혁은 실망하는 듯 했지만 이내 입을 열었다. “신연 씨 별로 좋은 사람이 아니야. 그러니까 적당히 만나. 네가 혹시 다칠까 걱정되니까.” 진지하게 말을 하는 서준혁은 신유리가 자신의 진심을 몰라줄까봐 계속 말을 했다. “태 씨 가문 일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야. 게다가 진송백 씨의 실종도 신연 씨랑 관계가 있는 것 같고, 만약 너한테 태 씨 가문 일을 부탁하려는 거면 그냥 무시해.” 신유리는 원래부터 태씨 가문과 신연의 사이를 의심하기는 했지만 서준혁마저 이렇게 말을 해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준혁은 그녀를 위해 좋은 마음으로 한번 귀띔을 해주는 것이니 신유리는 담담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알았어. 고마워.” 그러나 신유리는 그녀와 신연의 계약이 이미 끝이 났고 월말에 귀국을 한다는 사실은 서준혁에게 알리지 않았다. 서준혁은 신유리의 병실에 더 오래 있고 싶었지만 신유리
병실 안은 금세 조용해졌고 자두의 흐느낌 소리만 들려왔다. 서준혁은 온몸이 굳어버린 채 고개를 숙이고 자두를 바라보았다. 긴장한 나머지 목소리마저 갈라졌다.“너... 방금 뭐라고 불렀어?”자두는 그저 서준혁을 끌어안고 울면서 한편으로 서준혁의 다친 손을 잡으려고 애썼다. 그의 상처를 호호 불어주고 싶어 하는 듯했다.서준혁은 본능적으로 신유리를 돌아보았다. 그녀 역시 약간 당황한 듯 서준혁의 시선을 느끼고서야 서서히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복잡한 눈빛으로 자두를 바라보았다.한참이 지나서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신경 쓰이면 고치게 할게.”“그럴 리가 없잖아.”서준혁은 그제야 기쁨에 맞닥뜨린 듯한 느낌을 확실하게 받았다. 그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새까만 눈동자에는 기쁨이 번졌다.그는 고개를 숙여 자두를 안아 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자두야, 한 번만 더 아빠라고 불러줄래?”자두의 얼굴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었고 그녀는 몸을 돌려 서준혁의 목을 끌어안더니 얼굴을 그의 어깨에 묻은 채 흐느꼈다.서준혁은 그녀를 감싸안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했다. “괜찮아, 우리 자두 걱정하지 마. 아빠는 하나도 안 아파.”그는 손을 들어 올리더니 당장이라도 붕대를 풀어 헤치고 자두가 다시 한번 불어주기를 원하는 기세였다. 이내 신유리는 그를 저지했다.신유리는 자두를 그의 품에서 안아가며 말했다. “나 오늘 퇴원이야, 그러니까 자두는 더 이상 네 병실에 가지 않을 거야.”그는 기뻤던 마음이 이내 가라앉으며 짧게 대답했다. “병원에 오래 머무는 것도 좋지 않으니까, 나중에...”서준혁은 잠시 멈칫하더니 그녀의 눈치를 살피며 어렵게 입을 열었다.“나중에 자두 엄마를 보러와도 될까?”신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순식간에 실망감이 드러났고 이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알겠어.”서준혁이 떠나려고 하자 자두는 마치 그를 따라가려는 듯 신유리의 품에서 몸을 비틀었다.임아중은 신유리의 평온한 얼
“만약 제대로 해결하지 않으면 아마 신유리는 평생 기억할지도 몰라. 물론 해결해도 평생 기억할 거고, 나중에 둘이 관에 들어가도 관 속에서 평생 잔소리할걸.” 우서진은 천천히 말했다. “물론 전제는 둘이 같은 관에 들어갈 기회가 있어야 한다는 거지.” 그는 말을 마치고 병실을 나갔다. 서준혁은 눈을 감은 채 목젖을 위아래로 굴렸다. 그는 머릿속이 매우 혼란스러웠다. 잠시 후, 그는 눈을 뜨고 전화를 걸었다. 곧바로 전화를 받았고 서준혁은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 “부탁한 건 다 준비됐어?” 신유리는 집으로 돌아와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아직 월말까지 열흘 정도 남았지만 그녀는 일을 포함해 여러 가지를 처리하고 인수인계를 잘 마무리해야 했다. 임아중은 소파에 앉아 친구들의 SNS를 훑어보다가 갑자기 눈썹을 치켜올렸다. “오담윤이 본국으로 송환됐네.” 오담윤은 신유리를 납치한 죄로 경찰에 체포되고 어떻게 협상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은 본국으로 이송되어 성남시에서 처리하게 되었다. 신유리는 '오담윤'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본능적으로 불편해졌다. 그녀는 얼굴을 찌푸린 채 말했다.“걔 소식은 별로 듣고 싶지 않아.”임아중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핸드폰을 보며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 불쌍한 사람은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라고. 내 친구가 말하길 오담윤의 할머니께서 한 달 전에 돌아가셨대. 할머니밖에 없었는데 어쩌면 잘된 일일 수도 있지. 자기 손자가 그런 짓을 했다는 걸 알았다면 얼마나 화나겠어.”신유리의 눈에 잠시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전에 오담윤의 곁에 있던 노인을 떠올렸다. 게다가 한 달 전이라면… 그 시기는 오담윤이 이곳에 왔을 때와 딱 맞아떨어졌다. 신유리는 머리를 흔들어 머릿속을 비웠다. 오담윤의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없으니 그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할 필요가 없었다. 임아중은 이틀 뒤면 돌아가야 했다. 그녀는 이번에 진심으로 회사를 차릴 계획이었다.
서준혁은 신유리를 옆눈으로 쳐다봤다. 차 안의 따뜻한 조명 아래 신유리는 한층 더 부드러워 보였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문 채 시선을 돌렸다. 서준혁은 잠시 고개를 숙이고 망설이더니 작은 박스를 꺼내 신유리 앞으로 내밀었다.사실 서준혁은 신유리에게 이 일에 대해 말할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닌 데다 신유리가 자신을 나약하다고 여길까 봐 걱정되었다.하지만…서준혁은 마음속으로 자신을 비웃으며 결국 입을 열었다.“서창범이 통제욕이 강한 사람이라는 걸 너도 알다시피 금방 화인 그룹에 막 들어갔을 때 내 테이블 위에 이 몰래카메라를 설치했어.”서준혁은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어서 말했다. “예전에 네가 왜 저택에 돌아가는 걸 싫어하는지 물어봤었지? 방에 카메라 세 대나 설치되어 있는데 감옥과 다를 게 뭐지?”서준혁은 눈을 감고 좌석에 기댄 채 덤덤하게 말했다. 마치 서 씨 저택에서 나올 당시를 떠올리는 듯했다.전에 오담윤은 서준혁이 서 씨 저택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것을 질투한다고 했다. 하지만 서준혁은 오히려 그 저택에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을 부러워했다.서창범은 의심이 많았고 특히 과거 다른 가문에서 아들이 회사를 차지하려고 아버지를 해친 사건을 들은 후로 서준혁에 대한 통제욕과 경계심이 더욱 강해졌다.아버지가 아들에게 경계심을 품는다는 것은 누가 들어도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서창범은 생각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행동에 옮겼다.서준혁이 열다섯, 열여섯 살이었을 때였다. 서창범은 그의 방에 직접 몰래카메라 세 대를 설치했다. 말로는 서준혁을 위해서 설치했다고 했지만 매일 누군가에게 감시당한다는 사실이 서준혁으로 하여금 사람이 아닌 우리에 갇힌 원숭이처럼 느껴졌다. 그 답답함은 서준혁이 성인이 될 때까지 지속되었고 그는 곧바로 저택에서 나왔다.그러나 화인 그룹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서창범은 똑같은 수법으로 그의 사무실에 카메라를 설치했다.서준혁은 방에 있던 카메라든 사무실에 있던 카메라든
차 안은 정적이 흘렀고 바깥의 반짝이는 네온사인과 비교하면 서늘한 분위기였다. 서준혁은 손에 초소형 감시 카메라를 쥐고 있었다. 서창범이 자신에게 설치한 마지막 카메라를 제거한 후 남겨둔 것이었다. 그는 왜 신유리 앞에 가져왔는지 알 수 없었다. 아마도 무의식중에 진실을 입증하려는 증거라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신유리는 전에 서준혁이 거짓말을 잘한다고 했던 적이 있었다. 서준혁은 수치스러운 이야기들을 신유리에게 전부 드러냈을 때 그녀가 가볍게 연기 잘한다고 말할까 봐 두려웠다.신유리는 잠시 침묵했다. 그녀의 머릿속은 너무 혼란스러운 나머지 서준혁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확실히 서준혁은 거짓말을 너무 잘했다. 그러나 그녀가 고개를 들어 서준혁의 새까만 눈동자와 마주치자 순간 슬픔과 두려움이 묻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는 복잡한 마음이 천천히 가라앉았다. 신유리는 다리에 올렸던 손을 천천히 움켜쥐었다. 그녀는 속눈썹을 내리며 애써 감정을 가렸다. “서준혁.”그녀가 부드럽게 불렀다. 서준혁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동공은 살짝 흔들렸다.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응.” “내가 오담윤에게 납치된 날, 사실 난 네가 구하러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어.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신했었지.”“그런데 나중에야 깨달았어. 전에 네가 했던 부정과 거절 때문에 난 이미 네 마음속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고 그래서 더는 기대하지 않은 것 같아.”신유리는 마음속에 파문이 일기는 했지만 전처럼 생각만 해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괴롭지는 않았다. 서준혁은 그녀의 말에 입술을 움찔하더니 눈빛은 매우 실망스러워 보였다. 그는 해명하고 싶었다. “내가 어떻게 널 구하러 가지 않을 수 있겠어…”신유리는 그의 말에 반응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 “하지만 네가 왔어.” “사실 옥상에서 널 봤을 때 울고 싶었어.” 신유리는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서준혁, 난 진심으로
서준혁의 목소리는 맑았고 깊은 눈동자로 신유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는 아무런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지만 보온병을 쥐고 있는 손가락이 약간 경직된 걸 보면 긴장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신유리는 서서히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는 서준혁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쳐다보았다. 순간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두가 깨어나 그녀를 찾고 있었다. 신유리는 서준혁에게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져가, 굳이 이런 거 가져올 필요 없어. 나 좀 있다 나가야 하거든, 오늘 친구랑 아침 먹기로 했어.” 그녀는 잠시 멈칫하더니 덧붙였다. “그리고, 아까 했던 말은 못 들은 거로 할게. 듣고 싶지 않아.” 서준혁은 그녀의 말에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고집스레 신유리를 바라보며 손에 든 물건도 도로 가져가지 않았다. 신유리는 그의 눈에 비친 쓸쓸함을 모른 척하고 몸을 돌렸다. 그녀가 들어가기도 전에 자두는 이미 뒤뚱뒤뚱 걸어 나왔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자두는 노란 오리 잠옷을 입고 맨발로 걸어 나왔다. 그녀는 신유리의 옷자락을 잡으며 말했다. “엄마.” 어린아이는 배움이 빨라서 전에 서준혁이 언어 감각을 키워준 덕에 말이 점점 또렷해졌다. “엄마”라고 부르고 나서 자두의 시선은 서준혁에게로 향했다. 서준혁은 그녀를 보더니 눈빛이 금세 부드러워졌다. 눈앞의 아이한테서 그의 피가 절반이나 흐르고 있다는 게 참으로 신기한 느낌이었다.그들 사이에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강한 유대가 있었다. “아빠!” 자두의 달콤하고 맑은 목소리에 서준혁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그는 고개를 숙여 자신의 딸을 바라보았다. 자두는 뒤뚱뒤뚱 그에게 달려왔다. 서준혁은 급히 몸을 낮춰 자두를 안아 올렸다. 자두는 그의 품에 안겨 작은 고양이처럼 매달렸다. 서준혁은 자두를 품에 안은 채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신유리를 바라보며 말했다. “자두가 피곤한가 봐.” 방금 일어났는데 피곤할 리 없었다. 다만 신유리는
서준혁은 굳이 지금 그네를 만들겠다고 했고 신유리는 막지 않았다. 그녀는 자두에게 옷을 갈아입히고 주방으로 가서 요리를 시작했다. 신유리는 사실 요리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서준혁이 도우미를 돌려보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오픈형 주방이라 조금만 눈을 돌려도 한눈에 밖을 내다볼 수 있었다. 서준혁은 마당에서 분주하게 움직였다. 아마 더운 모양인지 셔츠 단추 세 개를 풀었더니 가슴 근육과 쇄골이 어렴풋이 보였다. 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신유리는 서준혁의 모습이 낯설었다. 기억 속의 서준혁과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녀가 가장 절망적이던 시절의 고고한 청년이든 나중에 냉혹하고 무정했던 서준혁이든 지금의 그와는 너무 달랐다. 신유리는 약간 멍해지며 자신의 감정을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웠다. 그녀는 늘 서준혁과 함께 가정을 꾸리는 것을 바랐다. 상상 속 장면은 아마 지금과 비슷했다. 집 앞에 넓은 마당이 있었고 둘은 귀여운 아이가 있었으며 강아지 한 마리나 고양이 한 마리도 키웠을 것이다. 마당에 그네를 하나 설치하거나 꽃이 피지 않는 나무를 심고 여름이면 그늘 아래에서 더위를 피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소원이 이루어졌음에도 신유리는 크게 기쁘지 않았다. 그녀가 점심을 차렸지만 서준혁은 아직 작업이 끝나지 않았다. 그녀는 테이블 위의 음식들을 보며 잠시 말없이 서 있더니 자두를 문 앞에 내려놓고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네 보러 가고 싶어?” 자두는 바로 서준혁을 향해 달려갔고 신유리는 문 앞에 서서 바라보았다. 해가 중천이라 엄청 더웠다. 서준혁은 자두가 오자마자 바로 도구를 내려놓았고 옷이 더러워져 자두가 닿을까 봐 겁이 나서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자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자신과 놀아주는 줄 알고 서준혁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서준혁은 자두가 다칠까 봐 급히 쪼그리고 앉아 확인했지만 그 틈을 타 자두는 서준혁의 팔을 껴안으며 놓아주지 않았다. 땅에는 온통 진흙이었고 자두는 순식간에 얼룩
이 레스토랑은 임아중의 친구가 투자한 곳이다. 그녀는 신유리를 데리고 곧장 룸으로 들어갔다. 임아중은 아직 눈앞의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보지 못한 듯했다. 그저 조금 불쾌했는지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게 무슨 태도죠? 매니저 불러오세요.”송지음은 실수로 와인을 테이블 위에 쏟았다. 새하얀 식탁보는 순식간에 와인으로 붉게 물들었다. 임아중이 벨을 누르려고 하자 송지음의 얼굴은 순간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지금 표정이 뭐죠? 당신을 괴롭히기라도 했어요?” 송지음은 몸이 경직된 채 신유리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고개를 숙이고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임아중이 한 번 더 말을 꺼내려는 순간 신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 “매니저보고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달라고 하세요. 지음 씨는 서비스업과 잘 맞지 않는 것 같네요.” 신유리는 지음 씨라는 세 글자에 송지음이 멍해진 것을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무표정하게 송지음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인 그룹에 있을 때부터 멍청하다는 걸 알고 있었는데 여전하네요.” 송지음이 엎었던 와인은 하마터면 자두에게 쏟아질 뻔했다. 그래서 임아중이 크게 화를 냈던 것이다. 신유리는 자두의 손을 닦아주며 송지음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말 의외네. 머리 쓸 필요 없는 일조차도 못하다니.” 둘은 서로 증오하는 사이였고 신유리가 아무리 침착하더라도 송지음을 보면 화를 참을 수 없었다.신유리는 덤덤한 표정으로 마치 아주 평범한 일을 이야기하듯 말을 했지만 오히려 그 덤덤함이 송지음을 더 괴롭게 만들었다. 오래전부터 송지음은 신유리 앞에서 열등감을 느껴왔다. 송지음은 문득 자신이 한때도 웨이터로서 신유리 앞에 섰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때와 다른 점이라면 그때는 신유리의 행복을 엿보며 부러워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이미 인생에 시달려 자신과 신유리 사이의 격차를 똑똑히 깨달았다는 것이다. 지금처럼 몇 년 동안 열심히 위로 올라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