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이 틀렸나 보지 뭐.”강현수가 힐긋 시선을 돌리자, 연회장 안을 두리번거리는 한 여인을 발견했다.“이 자리에도 있어. 소개해 줄까?”강지혁이 현수의 시선을 따라갔다가 입꼬리를 슬며시 올렸다.“임유라?”“설마 아는 사이야?”지혁의 반응에 현수가 오히려 의아한 반응이었다. 지혁과 유라의 연결고리를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기에.“그런 셈이지.”지혁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네 새 여자친구분 말이야. 네가 그 사람한테 정말 진심이라면 앞으로 말썽을 일으키지 않는 게 좋을 거라고 말해줘. 사고가 벌어진다면 너라도 감당하지 못할 거야.”“널 건드린 적 있어?”현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지혁을 바라보았다.“날 건드렸다면 지금 이 자리에 멀쩡하게 나타날 수 있을 것 같아?”지혁이 말을 이었다.“하지만 앞으로의 처신은 똑바로 하는 게 좋을 거야.”이 말을 끝으로 지혁이 그 자리에서 벗어났고 마침 유라가 현수를 발견하고 쪼르르 달려왔다.“현수야!”유라는 현수의 이름을 크게 불렀다.연회장에 처음 들어올 때부터 유라는 텔레비전에서만 보던 공인들이며, 연예계의 유명 인사들을 눈에 담았다. c급 연예인으로서 유라는 자신이 이 자리에 있는 게 꿈만 같았다.그리고 유라는 이 모든 게 현수 덕분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도착해서 연락하지 그랬어. 그러면 문 앞으로 데리러 갔을 텐데.”현수가 손을 들어 유라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유라는 지금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유명 인사와 연회장을 함께 누비고 있다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다들 강현수가 연예계의 큰손이라고 했어. 그의 눈에 든 사람이면 무조건 대박이 나고!’그리고 그 소문은 사실이었다. 촬영장에서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던 무명 배우 신세이던 유라는 현수를 만나고 촬영장 스태프들의 명백한 태도 변화를 느꼈다.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들어오자마자 네가 보였는 걸.”유라가 달콤한 미소를 지으며 현수의 팔에 손을 걸었다.“아, 오늘 유명한 연예인들 많이 만났어. 전에
‘내 입술이 예쁜 편인가?’임유라는 조금 의아스러웠다. 자신의 이목구비에서 입술은 눈에 띄는 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너무 못생긴 입술만 아니면 보통 입술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지 않은가.그래서 유라는 강현수가 자기 입술을 마음에 들어 한다는 걸 예상하지도 못했었다.어찌 되었든 현수의 마음에 든 건 유라의 행운이었다!‘어떻게든 강현수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가장 핫한 여배우가 되겠어! 그리고 어쩌면…… 재벌가에 시집을 가서 팔자를 고칠 수 있을지도 몰라!’유라는 벌써 자신의 호화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을 바라보는 남자의 눈빛이 점점 흐려지고 있다는 걸 알아채지 못했다.“아, 혹시 강지혁이라는 사람을 알아?”강현수가 갑작스레 물었다.유라가 고개를 저었다.‘강지혁 같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아?’강현수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말했다.“앞으론 말썽을 피우지 않는 게 좋을 거야. 정말 강지혁의 눈 밖에 난다면 나도 감당할 수 없어.”솔직히 말한다면 감당하고 싶지 않다는 게 더 맞는 표현이었다.강현수에게 있어 유라는 그냥 대역에 불과했다. 그리고 겨우 대역 때문에 강현수와 맞설 필요는 없었다.강현수의 눈은 마치 안개가 씌운 것처럼 흐려졌다.‘지금껏 얼마나 오랫동안 그녀를 찾아왔던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대역으로 그녀의 빈자리를 채워야 하는 걸까.’‘그 사람…… 그 사람을 찾아서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말해주고 싶어!’-약혼식이 시작되기 전 소민준이 직접 지혁을 만나러 찾아왔다.“강 대표님, 저와 세령 씨의 약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정말 영광입니다.”“소민준씨 약혼식에 응당 참석해야 지요.”지혁이 의미심장하게 말을 이었다.“아 그때 임유진 씨하고 확실하게 헤어진 건 참 잘하셨어요. 만약 당신이 매몰차게 떠나지 않았다면 임유진 씨는 아직도 단념하지 않았을 거예요.”그 말에 민준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뭐라고 대꾸하기가 참 난처했다.“아, 그쪽 여동생은 아직도 얼마나 더 입원해야 합니까?”지혁이 대수롭지 않게 물었다.
소민준은 몰래 발걸음 소리도 내지 않고 자리에서 벗어났다.약혼식이 시작되고 강지혁은 민준과 진세령이 약혼반지를 교환하고 소감을 전하는 모습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아마 내일 소민준과 진세령의 약혼식 사진이 공개되고 나면 임유진과 소민준은 정말 아무 가능성도 없는 사이가 되겠지.’약혼식이 끝나고 두 사람을 향한 축하 인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지혁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뚜벅뚜벅 연회장을 벗어났다.회색 벤틀리가 문 앞에 주차되어 있었다. 이어 고이준이 공손히 차 문을 열었고 지혁이 차에 올랐다.“대표님, 지금 전셋집으로 돌아갈까요?”이준이 물었다.“그래.”지혁은 편하게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고 천천히 두 눈을 감았다.오늘, 강현수의 새 여자친구가 가장 놀라운 발견이었다. ‘강현수가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이 임유진의 배다른 동생 임유라일 줄이야.’‘내가 보기엔 잘난 게 하나 없는 여자인데 현수는 대체 어디가 마음에 들었는지 몰라.’하지만 다른 사람의 연애사에 자신이 뭐라고 할 자격은 없었기에 지혁은 잠자코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유라가 유진을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다시 만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유라가 유진의 손끝 하나라도 건드린다면 유라는 그날로 천만 배의 수모를 받게 될 것이다.“대표님, 진회장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먼저 자리를 비우신 게 어딘가 불쾌한 부분이 있어 그런 건 아닌지 걱정이 된 것 같습니다.”이준이 운전하다가 입을 열었다.“다시 전화를 걸어 오늘 저녁 약혼식에서 불쾌한 부분은 없었다고, 그냥 몸이 불편해서 먼저 돌아간다고 전해줘.”지혁이 대답했다.‘임유진의 전 남자친구가 다른 여자와 정식으로 약혼한다는데 참석은 해야 할 것 아닌가?’차는 어느새 전셋집이 있는 동네에 도착했고 지혁이 차에서 내려 좁은 문 앞에 서서 열쇠를 꺼내 들었다.방안에는 어두운 불빛 하나만이 비춰 들고 있었다.유진은 그 어두운 빛을 빌려 뜨개질을 하고있었다. 지혁이 돌아오자 유진은 환하게 웃으며 지혁을 반겼다.“돌아왔어? 밖
“마음에 들어.”강지혁이 미소를 지으며 손에 쥔 상표를 내려놓았다.“누나, 앞으로 내가 수천수만 벌의 스웨터 사 줄게. ““수천수만 벌의 스웨터를 내가 다 어떻게 입어.”임유진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아, 이리 와봐. 손 크기를 재야겠어.”그리고 유진은 지혁의 손을 잡아당겨 줄자로 지혁의 손 크기를 재기 시작했다.맞닿은 두 손에 지혁은 유진의 손이 아주 차갑다는 게 느껴져 인상을 썼다.“뜨개질 그만 해요. 손이 너무 차잖아요.”“난 괜찮아. 아, 손 좀 그만 움직여. 지금 크기 재고 있잖아.”유진은 중얼거리며 다시 지혁의 손을 잡아당겨 유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고정시켰다.“이 정도면 너무 차가운 편도 아니야. 지금은 그래도 방 안에 있잖아. 전에 새벽이랑 밤에 길거리 청소하는 일을 했을 땐 장갑을 껴도 손에 감각이 없을 정도로 차가웠어.”유진의 말에 지혁은 눈앞이 조금 흐려졌다. 핑 도는 눈물이 지혁의 양심을 콕콕 찔렀다. 사실 지혁은 얼마든지 유진의 고달픈 생활을 반전시켜 줄 수 있었다.처음에는 그저 호기심 뿐이었다. 그래서 유진을 자신의 옆에 두고 누나라고 부르며 따랐지만 이젠 그런 호기심을 넘어선 감정이 찾아왔다. 지혁은 유진을 자신의 옆자리에 두고 싶어졌고 힘든 일 궂은일은 다시 하지 않게 하고 싶어 졌다.“자, 이제 됐어.”유진은 손 크기를 재고 나서 다시 뜨개질로 주의를 돌렸다. 하지만 전에 다쳤던 손가락 때문인지 유진의 손은 조금 굼떴고 뜨개질 속도도 아주 느렸다.“누나, 오늘 소민준과 진세령이 약혼하는 날이래.”지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돌아오는 길에 길이 막혀서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다들 약혼식 때문에 그쪽 길로 몰려든 거래.”“나도 알아. 아까 검색하다가 기사 읽었어. 약혼식 시작 전에도 사람들로 꽉 찼더라고.”유진은 대수롭지 않은 듯 말을 이어갔다.“누나는 서운하지 않아?”지혁은 고개를 살짝 올려 유진의 반응을 살폈다.“서운하냐고?”유진의 손이 뚝 멈춰 섰다.“만약 누나가 소민준이랑 헤
임유진은 이 말을 꺼냈을 때 강지혁의 몸이 조금 뻣뻣해진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누나는 강지혁을 만나보고 싶어요?”지혁이 물었다.“만나보고 싶긴. 애초에 나와 다른 세상 속 사람인 걸 뭐.”유진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슈트 입은 강지혁의 뒷모습이 왠지 네 뒷모습이랑 비슷해 보였어. 그러니까 우리 혁이가 슈트를 입으면 얼마나 예쁠지 상상이 가더라고.”지혁은 몰래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돈 좀 모아서 봄이 되면 정장 한 벌 사자. 면접에서 정장 입으면 얼마나 좋아.”“누나, 언젠가 강지혁을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지혁이 뜬금없는 물음을 했다.유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유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픽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날 이만 놓아 달라고 할 거야.”그 말에 지혁이 조금 멍하니 유진을 바라보았다.“그것 뿐이야?”“그래.”유진이 대답했다.“누나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강지혁에게 사실을 알려야지.”“소용없어. 한지영이 나를 돕겠다고 회사까지 찾아가 하루 종일 애원해도 만나주지 않았고 내가 수감 중일 때 매일 같이 편지를 써서 약혼녀의 죽음은 나와 상관이 없으니 제발 나를 놓아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 깊은 바다에 조약돌을 던져봤자 가라앉을 뿐이야.”유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지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혁의 눈빛도 한층 차가워졌는데 표정으로는 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아니다. 이미 지난 일은 그만 말하자. 적어도 출소 후에는 강지혁이 나한테 그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는걸. 그게 아니라면 난 지금 미화원 일도 하지 못하겠지.”유진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지혁은 갑자기 굳은 살 가득 배긴 유진의 손을 자기 손 위로 올려 체온을 나눴다.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유진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이 감옥에서 유진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언젠가 지혁의 정체를 밝히는 날이 온다고 해도
임유진은 벌써 몇 번째 혁이가 남자친구가 아니라 동생이라고 해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아예 남자친구라고 단정을 지으셨다.“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그렇게 될 사이이지. 누나 동생은 다 잠깐일 뿐이야.”어르신이 웃으면서 말했다.이에 유진은 대꾸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다만 강지혁은 어르신들이 남자친구라고 말할 때 슬쩍 미소를 지었었다.지혁은 유진을 공원 벤치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쌀쌀한 것 같아. 내가 외투 가지고 올게, 누나.”“그래.”유진이 대답했다.그러나 외투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지혁은 유진이 동네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걸 발견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유진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지혁은 발개진 유진의 볼을 보며 발걸음을 늦추었다. 마치 순수한 고양이 같은 유진의 모습에 지혁은 마음이 설레 왔다.동네 아줌마들은 지혁이 돌아오자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떠나기 전까지도 그들은 유진을 향해 눈짓했고 유진은 볼을 더 붉혔다.“왜 그래?”지혁이 다가가 외투를 유진의 어깨에 걸쳐주며 물었다.유진의 까만 눈동자는 쑥스러워 하며 지혁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두 볼은 발그레한게 마치 잘 익은 사과 같아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지혁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내가 점점 더 임유진을 좋아하는 것 같아. 발그레한 볼만 보아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아주머니들은…… 네가 내 남자친구인 줄 알고.”유진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 네가 너무 잘생겼다고.”유진은 쑥스러운 탓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그래서?”지혁이 물었다.“네가 너무 잘생겨서 나한테 남자를 사로잡는 노하우 같은 걸 말씀해 주셨어.”노하우를 일일이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그래? 나한테 한번 해 봐봐. 그 노하우가 통하는지.”지혁이 말했다.
“돌아가 보려고?”강지혁이 묻자 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넌…….”유진이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나랑 같이 갈래?”그 말에 지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누나 설 연휴 기간에는 월급이 3배라고 했어. 아니면 누나가 외가 주소를 남겨줄래? 내가 설 전날에 누나 보러 갈게.”“그래.”유진이 대답하며 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그런데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친척들이 눈치를 줄 텐데 그건 하나도 신경 쓰지 마!”지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신경 쓰지 않을게.”‘지금 신경 쓰이는 건 누나뿐이니까.’설 연휴가 가까워질수록 거리에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이 동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갔다.유진의 외가는 S 시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고 차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 버스 예매에는 큰 애를 먹지 않았다.유진은 버스표를 예매하며 지혁에게 말했다.“혁아, 내가 차표 예매해 줄게. 신분증 줘봐.”그러고 보니 유진은 아직 지혁의 신분증을 본 적이 없었다.“이미 예매해 뒀어.”지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그 말에 유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며칠 동안 뜨개질한 목도리를 지혁의 목에 걸쳐주었다.“좀 짧지 않아?”유진이 목도리를 살피며 물었다.“아니, 딱 좋아.”지혁은 목도리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목도리에서 유진의 향이 났다. 목도리를 하고 있으면 온통 유진의 향에 잠긴 것 같았다.“그래, 그럼 목도리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고 다시 줄게. 목도리는 설 기간동안 하면 되겠다. 장갑은 아직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내가 설 연휴 동안 열심히 해볼게.”한지영은 설 연휴 동안 유진이 사는 전셋집에 놀러 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진이 외가로 간다는 말에 오히려 걱정하기 시작했다.“혼자 가는 거야?”“혁이 설 전날 내려온다고 했어.”유진이 말했다.“그래도 외가 친척들이…….”지영은 외가 친척들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들인지를 알고 있었다.이득을 취할 때는 좋은 얼굴이었다가
강지혁은 임유진이 떠난 좁은 전세방을 보며 허전한 마음을 느꼈다.지혁은 유진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목도리를 다시 목에 두르며 입꼬리를 올렸다.지혁이 전세방을 나서자 보이는 건 이미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이준이었다. 이준은 자기 대표가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지혁은 평소 목도리를 자주 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대표님이 지금…… 베이지색 목도리를 하는 거지?’지혁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준은 목도리를 찬찬히 살폈다. 털실과 무늬를 보았을 때 이 목도리는 누군가 직접 뜨개질한 목도리임을 알 수 있었다.‘뜨개질한 목도리라……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아마 임유진 씨가 만든 목도리일 테지!’“대표님, 지금 어디로 갈까요?”“병원으로 가. 오늘 할아버지와 식사라도 함께 해야지.”지혁이 말했다.“네.”이준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병원으로 운전했다.-유진이 탄 버스는 작은 마을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 큰길에 정차했고 유진은 차에서 내렸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은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진흙 길이던 이 길도 어느새 넓은 도로가 되어있었다.외가로 돌아가는 길에 이웃 사는 사람들은 유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지만, 유진은 이런 것에 이미 무뎌졌다.출소한 유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외가에 도착하자 집안에 친척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둘째 삼촌이 유진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이구나. 자자, 빨리 들어와 앉거라. 온종일 너만 기다렸지 뭐니.”유진은 조금 의아해졌다. 유진이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둘째 삼촌은 유진에게 자신까지 연루시키지 말라고 선을 그었었다.“그래, 빨리 들어와 앉거라.”셋째 숙모도 반갑게 유진을 맞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이어 큰삼촌, 작은삼촌, 셋째 이모부까지…… 모두 유진을 반갑게 맞았다.유진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외할머니부터 찾았다.“외할머니는요?”“지금 낮잠 주무시고 계셔. 조금 있다가 일어나시면 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