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진은 이 말을 꺼냈을 때 강지혁의 몸이 조금 뻣뻣해진 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다.“누나는 강지혁을 만나보고 싶어요?”지혁이 물었다.“만나보고 싶긴. 애초에 나와 다른 세상 속 사람인 걸 뭐.”유진이 말을 이었다.“그런데 슈트 입은 강지혁의 뒷모습이 왠지 네 뒷모습이랑 비슷해 보였어. 그러니까 우리 혁이가 슈트를 입으면 얼마나 예쁠지 상상이 가더라고.”지혁은 몰래 입술을 오므렸다.그러자 유진이 다시 입을 열었다.“우리 돈 좀 모아서 봄이 되면 정장 한 벌 사자. 면접에서 정장 입으면 얼마나 좋아.”“누나, 언젠가 강지혁을 만나게 되면 하고 싶은 말이 있어?”지혁이 뜬금없는 물음을 했다.유진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유진은 한참이 지나서야 픽 웃음을 짓더니 입을 열었다.“날 이만 놓아 달라고 할 거야.”그 말에 지혁이 조금 멍하니 유진을 바라보았다.“그것 뿐이야?”“그래.”유진이 대답했다.“누나는 자신이 억울하다고 말하고 싶지 않아? 강지혁에게 사실을 알려야지.”“소용없어. 한지영이 나를 돕겠다고 회사까지 찾아가 하루 종일 애원해도 만나주지 않았고 내가 수감 중일 때 매일 같이 편지를 써서 약혼녀의 죽음은 나와 상관이 없으니 제발 나를 놓아 달라고 해도 소용이 없었어. 깊은 바다에 조약돌을 던져봤자 가라앉을 뿐이야.”유진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지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혁의 눈빛도 한층 차가워졌는데 표정으로는 지혁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을 수가 없었다.“아니다. 이미 지난 일은 그만 말하자. 적어도 출소 후에는 강지혁이 나한테 그 어떤 보복도 하지 않았는걸. 그게 아니라면 난 지금 미화원 일도 하지 못하겠지.”유진의 말을 잠자코 듣고 있던 지혁은 갑자기 굳은 살 가득 배긴 유진의 손을 자기 손 위로 올려 체온을 나눴다.이 사실을 진작 알았더라면 유진이 억울하게 감옥에 가고 자신의 비위를 맞추는 사람들이 감옥에서 유진을 공격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언젠가 지혁의 정체를 밝히는 날이 온다고 해도
임유진은 벌써 몇 번째 혁이가 남자친구가 아니라 동생이라고 해명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어르신들은 혈연관계가 없는 사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는 아예 남자친구라고 단정을 지으셨다.“지금은 아니더라도 앞으로는 그렇게 될 사이이지. 누나 동생은 다 잠깐일 뿐이야.”어르신이 웃으면서 말했다.이에 유진은 대꾸하고 싶은 마음도 사라졌다.다만 강지혁은 어르신들이 남자친구라고 말할 때 슬쩍 미소를 지었었다.지혁은 유진을 공원 벤치에 내려놓으며 말했다.“오늘은 어제보다 날씨가 쌀쌀한 것 같아. 내가 외투 가지고 올게, 누나.”“그래.”유진이 대답했다.그러나 외투를 가지고 돌아왔을 때 지혁은 유진이 동네 아줌마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걸 발견했다. 무슨 말을 들었는지 유진의 얼굴이 새빨개져 있었다.지혁은 발개진 유진의 볼을 보며 발걸음을 늦추었다. 마치 순수한 고양이 같은 유진의 모습에 지혁은 마음이 설레 왔다.동네 아줌마들은 지혁이 돌아오자 미소를 지으며 자리를 벗어났다. 떠나기 전까지도 그들은 유진을 향해 눈짓했고 유진은 볼을 더 붉혔다.“왜 그래?”지혁이 다가가 외투를 유진의 어깨에 걸쳐주며 물었다.유진의 까만 눈동자는 쑥스러워 하며 지혁과 눈을 마주하지 못했다. 눈동자는 반짝반짝 빛이 나고 두 볼은 발그레한게 마치 잘 익은 사과 같아 한 입 베어 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지혁은 겉으로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내가 점점 더 임유진을 좋아하는 것 같아. 발그레한 볼만 보아도 이렇게 가슴이 뛰는데…….’“아주머니들은…… 네가 내 남자친구인 줄 알고.”유진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그래서 내가 아니라고 했는데…… 네가 너무 잘생겼다고.”유진은 쑥스러운 탓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그래서?”지혁이 물었다.“네가 너무 잘생겨서 나한테 남자를 사로잡는 노하우 같은 걸 말씀해 주셨어.”노하우를 일일이 말하기에는 너무 부끄러웠다.“그래? 나한테 한번 해 봐봐. 그 노하우가 통하는지.”지혁이 말했다.
“돌아가 보려고?”강지혁이 묻자 임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런데…… 넌…….”유진이 조금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나랑 같이 갈래?”그 말에 지혁은 머리가 지끈거렸다.“누나 설 연휴 기간에는 월급이 3배라고 했어. 아니면 누나가 외가 주소를 남겨줄래? 내가 설 전날에 누나 보러 갈게.”“그래.”유진이 대답하며 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그런데 네가 내 옆에 있으면 친척들이 눈치를 줄 텐데 그건 하나도 신경 쓰지 마!”지혁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걱정하지 마, 신경 쓰지 않을게.”‘지금 신경 쓰이는 건 누나뿐이니까.’설 연휴가 가까워질수록 거리에는 사람들이 적어졌다. 이 동네에서 일하던 사람들은 모두 고향으로 내려갔다.유진의 외가는 S 시의 변두리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고 차로 한 시간 반 정도의 거리라 버스 예매에는 큰 애를 먹지 않았다.유진은 버스표를 예매하며 지혁에게 말했다.“혁아, 내가 차표 예매해 줄게. 신분증 줘봐.”그러고 보니 유진은 아직 지혁의 신분증을 본 적이 없었다.“이미 예매해 뒀어.”지혁이 심드렁하게 말했다.그 말에 유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자신이 며칠 동안 뜨개질한 목도리를 지혁의 목에 걸쳐주었다.“좀 짧지 않아?”유진이 목도리를 살피며 물었다.“아니, 딱 좋아.”지혁은 목도리에 얼굴을 묻으며 말했다. 목도리에서 유진의 향이 났다. 목도리를 하고 있으면 온통 유진의 향에 잠긴 것 같았다.“그래, 그럼 목도리 마지막 부분을 마무리하고 다시 줄게. 목도리는 설 기간동안 하면 되겠다. 장갑은 아직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아. 내가 설 연휴 동안 열심히 해볼게.”한지영은 설 연휴 동안 유진이 사는 전셋집에 놀러 올 계획이었다. 그러나 유진이 외가로 간다는 말에 오히려 걱정하기 시작했다.“혼자 가는 거야?”“혁이 설 전날 내려온다고 했어.”유진이 말했다.“그래도 외가 친척들이…….”지영은 외가 친척들이 얼마나 매정한 사람들인지를 알고 있었다.이득을 취할 때는 좋은 얼굴이었다가
강지혁은 임유진이 떠난 좁은 전세방을 보며 허전한 마음을 느꼈다.지혁은 유진이 탁자 위에 올려놓은 목도리를 다시 목에 두르며 입꼬리를 올렸다.지혁이 전세방을 나서자 보이는 건 이미 한참을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고이준이었다. 이준은 자기 대표가 목도리를 두르고 있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지혁은 평소 목도리를 자주 두르는 사람이 아니었다.‘대표님이 지금…… 베이지색 목도리를 하는 거지?’지혁이 가까이 다가오자, 이준은 목도리를 찬찬히 살폈다. 털실과 무늬를 보았을 때 이 목도리는 누군가 직접 뜨개질한 목도리임을 알 수 있었다.‘뜨개질한 목도리라…… 그렇다면 답은 하나였다. 아마 임유진 씨가 만든 목도리일 테지!’“대표님, 지금 어디로 갈까요?”“병원으로 가. 오늘 할아버지와 식사라도 함께 해야지.”지혁이 말했다.“네.”이준은 씩씩하게 대답하고 병원으로 운전했다.-유진이 탄 버스는 작은 마을과 멀리 떨어지지 않는 큰길에 정차했고 유진은 차에서 내렸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작은 마을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진흙 길이던 이 길도 어느새 넓은 도로가 되어있었다.외가로 돌아가는 길에 이웃 사는 사람들은 유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수군거렸지만, 유진은 이런 것에 이미 무뎌졌다.출소한 유진을 향해 손가락질하고 수군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외가에 도착하자 집안에 친척들이 가득 들어서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둘째 삼촌이 유진을 보자마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유진이구나. 자자, 빨리 들어와 앉거라. 온종일 너만 기다렸지 뭐니.”유진은 조금 의아해졌다. 유진이 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둘째 삼촌은 유진에게 자신까지 연루시키지 말라고 선을 그었었다.“그래, 빨리 들어와 앉거라.”셋째 숙모도 반갑게 유진을 맞으며 자신의 옆자리에 앉혔다. 이어 큰삼촌, 작은삼촌, 셋째 이모부까지…… 모두 유진을 반갑게 맞았다.유진은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일단 외할머니부터 찾았다.“외할머니는요?”“지금 낮잠 주무시고 계셔. 조금 있다가 일어나시면 인
셋째 숙모는 일전에 제 아버지와 형제를 설득해 5천만 원에서 5백만 원을 가지기로 했었다.5백만 원은 셋째 숙모의 일 년 치 월급이었다!그러나 셋째 숙모와 임유진의 외할아버지가 김애순을 아무리 설득해도 애순은 절대로 이 일을 승낙하지 않았다. 그러자 셋째 숙모는 끝끝내 심한 말을 뱉고 말았다.“엄마, 큰오빠랑 작은오빠가 그랬는데 이 일을 망쳐서 자식들이 집을 사지 못해 장가를 못 가게 된다면 평생 엄마를 원망할 거라고 했어요.”애순은 그 말에 화가 나 펄쩍 뛰었다.“너희들…… 양심이 있는 인간들인 게냐! 유진이가 우리한테 얼마나 잘해줬는지 벌써 다 잊었어?”셋째 숙모가 웃으며 말했다.“예전은 예전이고 지금은 지금이에요, 엄마. 그 애 좋자고 우리 가족 미래를 망칠 수는 없잖아요. 그리고 지금 큰손주와 작은 손주가 돈이 없어 장가를 못 가는 건 고사하고,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아이가 감옥을 다녀왔다고 하면 누가 유진이와 만나주겠어요? 거기에 모아둔 돈도 없으면 앞으로 결혼은 다 갔다고 해야죠!”애순은 화를 참지 못하고 눈물을 뚝뚝 흘렸다.“너…… 너 앞으로 네 동생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러는 게냐.”셋째 숙모는 그 말에도 대수롭지 않은 듯해 보였다. 자기 동생은 이미 죽은 지 한참이나 지났고 얼마 없던 정도 시간이 흘러 기억에서 사라져갔지만 돈은 눈에 보이는 존재가 아닌가!유진은 거실에서 여러 조카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사촌 언니인 배여진이 눈꼬리가 휘어지게 웃으며 말을 꺼냈다.“할아버지한테서 말 들었어. 지금 미화원 일 하고 있다며?”여진은 유진보다 한 살 많다 보니 어릴 때부터 둘은 늘 비교당하며 자랐다. 유진은 공부를 잘해 그야말로 엄친아 신세였고 여진은 대학도 못 나왔으며 대장간에서 일하는 남자에게 시집을 갔었다.여진이 시집을 가던 해에 유진은 소민준을 만나고 있었고 민준은 재벌가의 도련님이었으니 여진은 자기 남편과 유진의 남자친구를 비교해 가며 체면이 깎였다고 생각했었다.오늘날 유진이 이 모양 이 꼴이 나자 가장 고소해하는
임유진은 여전히 생긋 웃으며 말했다.“셋째 숙모, 저 술 끊은 걸 아시잖아요. 제가 음주 운전으로 감옥도 갔다 왔는데 어떻게 또 술을 마실 수 있겠어요.”유진의 말에 셋째 숙모는 헛헛해서 마른기침했다.그러자 큰삼촌이 이어 말했다.“유진아, 오늘은 설날이잖니. 운전도 하지 않을 것이고 한 잔만 마셔.”“그래, 삼촌들 얼굴 보아서라도 마셔!”둘째 삼촌도 말을 보탰다.“그만하거라!”김애순이 호통을 쳤다.“너희들 양심을 어디에 팔아먹은 게냐! 정말 지옥 불에 떨어질 것들!”그 말에 식사 자리는 물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유진만이 깜짝 놀라 외할머니를 바라보았다.애순이 유진을 바라보며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유진아, 네 삼촌들 지금 이러는 거 절대 좋은 마음으로 하는 거 아니란다. 박씨 가문의 바보 아들에게 널 팔아 5천만을 가지려고 저러는 게다…….”애순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노준태가 소리쳤다.“박씨 가문이 어디가 어때서? 유진이는 또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감옥 갔다 온 흠도 괜찮다고 받아준 가문이야. 유진이 어딜 가면 이렇게 좋은 가문에 시집을 가겠냐고!”“그래 그 5천만 원으로 큰오빠와 작은오빠가 집도 사고 얼마나 좋아. 이건 네가 우리 집에 빚진 거잖아. 네가 감옥만 가지 않았어도 오빠들은 진작 장가를 갔을 텐데.”배여진이 불난 집에 부채질했다.“전 절대 결혼하지 않을 거예요!”유진이 몸을 벌떡 일어 세우고 차갑게 주위의 친척들을 바라보았다.“내가 빚진 게 있다고 해도 댁들한테 빚진 건 하나도 없어요!”그리고 유진은 애순을 바라보며 말했다.“외할머니, 제가 다음에 또 보러올게요.”말을 마치고 유진은 자리에서 벗어나려고 했으나 큰삼촌과 작은삼촌이 막아섰다.“가긴 어딜 가. 네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이건 이미 결정된 일이야!”큰삼촌이 호통쳤다.유진은 멀리 떨어져 않은 큰 사촌 오빠와 작은 사촌 오빠를 바라보았다. 어렸을 땐 함께 놀기도 하고 좋은 추억이 많았었다.“오빠들도 제가 바보한테 시집가길 바라는 거예요?”큰
휴게실에서는 밥 먹는 소리 외 다른 소리는 거의 나지 않았고, 두 사람은 말없이 음식만 삼켰다.어르신의 간병인은 둘의 관계에 이상함을 느꼈지만, 감히 묻지는 못했다. 어쨌든 S 시에서 그들의 권력은 하늘을 찔렀으니.어르신이 식사를 거의 마치고 드디어 입을 열었다.“요즘 별장에서 지내지 않는다고 들었다.”“네.”강지혁은 짧게 대답했다. 할아버지가 이 일을 아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주변에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으니.“어디에서 지내는 거니?”“밖에서요.”지혁이 대답했다.“왜 갑자기 밖에서 지내는 게냐?”강문철이 물었다.“별장이 너무 커서요.”지혁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새우 하나를 집고 천천히 껍질을 까기 시작했다.“네 나이면 여자친구도 사귈 때가 되었지. 비서한테 S 시에서 걸맞은 여자를 찾아 두라고 시킬 테니 그중에서 한 명 고르거라.”문철은 옷을 고르듯 간단하게 말했다. 그 말에 지혁은 새우를 까던 손을 잠시 멈추고 말했다.“괜찮습니다.”문철이 되물었다.“왜 그러는 게냐?”“여자를 만나 가정을 꾸리는 걸 바라시는 거면 제가 알아서 할게요.”예전의 지혁은 어쨌든 가업을 이어받기 위해 가정을 꾸려야 하는 거면 아무 여자라도 상관이 없었다.하지만 지금의 지혁은 반드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한다면 아이의 엄마는 임유진이 되길 바랐다.유진이 낳은 아이가 자신을 똑 닮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퍽 좋아졌다.“알아서 한다라…….”문철이 조금 놀란 듯 말했다.“너 설마…….”바로 그때 지혁의 전화가 진동했다. 지혁은 조금 표정을 굳히더니 주머니에서 액정이 다 깨진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수신자를 확인한 지혁은 바로 몸을 일으켜 세워 전화를 받았고 들려오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 지혁의 얼굴빛이 차갑게 변했다.“혁아…… 살…… 살려줘…….”갈라진 목소리였지만 지혁은 유진의 목소리라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지혁이 되묻기도 전에 통화는 끊겼고 다시 걸었을 때는 받는 이가 없었다.‘설마 임유진에게
지금 임유진은 박씨 가문 사람들에 의해 어느 방안에 갇혔고 방안에는 낯선 남자와 함께 있었다. 이 사람이 바로 그들이 말한 박씨 가문 바보겠지…….유진은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했다.‘도망가야 해, 무슨 일이 있어도 도망가야 해!’그러나 지금 몸 상태로는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들었다. 더구나 몰래 혁이한테 전화를 걸다가 들켜 삼촌들에게 전화도 뺏겼다.‘신고를 할 수 있는 기회도 놓쳐버렸어!’왜 하필 혁이한테 먼저 전화를 걸었는지 유진도 알지 못했다. 혁은 지금 S 시에 있는데.그리고 혁이 이 상황에서 뭘 해줄 수 있겠는가. 전화해도 한지영에게 걸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차라리 경찰에 신고했어야 했다.유진은 자신도 모르게 점점 혁에게 의지하고 있었다.유진은 시선이 점점 흐려지는 게 느껴졌고 낯선 남자는 바보처럼 웃으며 유진을 덮쳤다. 유진은 아등바등했지만 피할 수 없었다.문밖에서 박씨 가문과 노씨 가문은 화기애애하게 돈 계산이나 하고 있었다.유진의 큰 삼촌이 입을 열었다.“박 씨, 사람을 데리고 왔으니 5천만은 확실히 줘야 할걸세.”“그래그래, 알겠네. 조금 있다가 거사가 끝나면 바로 사람 시켜 송금시키겠네.”박씨 가문 사람들도 바보 아들을 결혼시키고 손자를 보기 위해 이판사판 직진이었다.박 씨의 아내는 조금 불안한 듯 말했다.“저 여자애가 도망이라도 가면 어떻게 해요?”“일단 사진이라도 여러 장 찍어서 도망 못 가게 발 좀 잡아 두고 1년은 가두어 두게나. 아이가 태어나면 도망갈 생각은 다시 못할 테니.”큰삼촌이 말했다. 그들은 유진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하나도 없이 오직 돈 생각뿐이었다.“맞아요. 아이만 낳으면 도망갈 생각을 절대 못 할 걸요. 당신도 여자이니 잘 알 것 아닙니까.”둘째 삼촌도 말을 보탰다.박현규의 아내는 조금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걱정이 되는 건 사실이었다.“과연…… 될지 모르겠네요. 반항이라도 하면 우리 아들이…….”“반항할 힘이 어디 있겠어요!”둘째 삼촌이 빠르게 말했다.현규도 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