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민영은 계속 일러바쳤다.소민준의 부모님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10억, 소 씨네 집에 있어서 이 돈은 비록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큰돈이다.“민준아, 너 이게…….”소민준의 어머니는 의아해하며 아들을 바라보았다.“민영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봐요.”소민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민영이가 임유진에게 마음대로 가게에서 옷 한 벌을 고르라고 하며 그녀에게 선물한다고 했어요. 결국 임유진은 10억짜리를 골랐고 저는 단지 민영이가 저질러놓은 난장판을 수습한 것 뿐이에요.”“그녀가 고르면 다 사줘?”소민영은 씩씩거리며 말했다.“오빠, 왜 말을 안 해, 오빠는 근본적으로 임유진에 대해 감정이 남아 있어!”“나는 너의 목숨을 구하고 있어!”소민준은 정말 여동생의 뺨을 한 대 더 때리고 싶었다.소민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임유진 따위가 날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웃겨.”“그래, 민준아, 너도 너무 심했어. 임유진 때문에 네 동생을 때리다니. 그 여자는 원래 재수 없는 여자야.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집이 지금 강 씨 가문의 미움을 살까 봐 이렇게 노심초사할 필요가 있겠어?”소민영의 어머니가 딸을 도와 말을 했다.“엄마, 이 일은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그럼 어떻게 해!”소민준의 어머니가 반박했다.“임유진은 정신 차리지 못한 것 같아. 네가 결혼하려고 하는데, 또 너를 건드리는거야, 정말 뻔뻔스러워. 10억도 뻔뻔하게 가져간 거야?”그런 여자에게 10억을 줬다고 생각하니 소민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소민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엄마, 왜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아요? 민영이가 나중에 또 임유진에게 무엇을 했는지 알아요? 일부로 임유진의 발을 걸어 유진이가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떨어지게 했어요!”“그럼 뭐 어때?”소민준의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상처를 좀 입었을 테지. 병원비는 얼마든지 우리 소 씨 가문이 내줄 수 있어. 이런 일 때문에 동생을 때릴 필요가
소민준은 강지혁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강지혁을 전혀 만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임유진이 사는 임대주택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벤틀리 차 한대가 임대주택의 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있고, 누군가 임대주택에서 내려왔을 때 급히 차에서 내려 맞이했다.“강 대표님, 그 전의 일은 여동생이 철이 없는 것이니 부디 용서해주세요.”소민준은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소 씨 가문을 봐달라고요?”강지혁은 담담하게 콧방귀를 뀌었다.“제시하고 싶은 조건을, 얼마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요.”잘생긴 눈으로 차갑게 쳐다보는 순간, 소민준은 피가 멎는 느낌이 들었다. 강지혁의 눈빛은 마치 맹수처럼 느껴져 숨조차 감히 크게 쉬지 못했다.“그러고 보니 내가 신세를 진 것 같네요?”강지혁이 갑자기 말했다. “신세요?”소민준은 언제 강 대표님에게 신세를 지게 했는지 몰랐다.“이렇게 해요, 이번에 소 씨 가문을 봐줄 수 있어요. 소민영이 그쪽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돼요.”강지혁은 담담하게 말했다.소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여동생을 약혼식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비록 체면에 영향이 가지만 핑계를 대 얼버무릴 수 있으니 이 대가는 정말 아주 작다고 할 수 있다.“강 대표님 감사합니다.”소민준은 얼른 말했다.“나한테 고마워하지 마요, 내가 고마워해야죠.”강지혁은 한 손으로 소민준의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몸을 기울여 소민준의 귓가에 다가가,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리고 고마운 일이 또 있어. 그때 유진이와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헤어져서 고마워. 네가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좀 더 골치 아팠을 거야.”강지혁은 이 말을 평화롭게 했는데 마치 친구 사이의 잡담처럼 감사를 표시했다.그러나 소민준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만약 애초에 그가 임유진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강지혁이 대적하려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설마 이것이 강지혁이 방금 말한 그 신세를 졌다는 것인가?강지혁이 주택단지를 떠
소민영의 협박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소민영 씨라고 하니 됐어요.”말이 끝나자 그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그럼 오른발을 부러뜨려. 동영상에서 뻗은 발이 오른발이야.”‘뭐…… 무슨 뜻이지?!’소민영은 매우 놀랐다. 설마 이 사람들은 협박하러 온 것이 아닌가?잠시 후,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룸에서 울렸다…….————임유진은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열이 마침내 내렸다.강지혁이 입을 열었다.“열이 내려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누나를 업고 다시 병원에 갔을 거야”.“나…… 어젯밤에 열이 났어?”임유진은 중얼거렸다.“응, 열이 나고, 열 때문에 헛소리도 많이 했어.”그가 말했다.그녀는 깜짝 놀랐다.“내…… 내가 무슨 말을 했어?”그녀가 설마 하면 안 될 말을 하지 않았겠지?“누나가 얌전히 착한 아이가 될 거랬어. 그분이 누나 옆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그가 말했다. 눈빛에는 오히려 보기 드문 장난기가 담겼다.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누나 걱정하지 마. 누나가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아도 내가 누나와 함께 있을 거야.”강지혁은 유유히 말을 뱉었다.임유진의 얼굴은 여전히 빨갛지만 의외라는 듯 강지혁을 보고 있었다.“왜?”그가 말했다.“왠지 네가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아. 농담도 할 줄 알고.”그녀가 생각했다.그는 마치 자신도 그 변화를 의식한 것처럼 멍해졌다.그리고 그의 변화는 그녀 때문인가?그는 눈앞의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붙을 뻔했다.“아!”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지금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을 잊어버렸다.그의 한 손은 제때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지만, 오히려 그녀를 더욱 품속으로 끌어당겼다.그녀는 가까운 곳에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극도로 아름다운 눈썹, 긴 속눈썹, 그리고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맙소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한 거지.’“너무 가까워서 이상하게 느껴져.”임유진이 말했다.“그래.”그가 손을 놓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책상 위의 물건을 정리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볼을 만졌는데, 매우 뜨거웠다.“참, 누나, 아까 가까웠을 때 키스하고 싶었어?”그가 갑자기 질문하자 그녀는 순간 멍해졌다.새까만 눈동자가 깜박거리자 그녀는 손바닥 아래로 볼이 더 뜨거워진 것 같았다.“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그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나…… 나는 당연히…….”“누나라면 난 좋아.”그가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나는 다른 여자가 나에게 키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나 만약 누나라면 나는 괜찮아.”햇빛이 그 좁은 유리창을 통해 방안으로 쏟아져 그의 몸에 떨어졌다.그의 표정은 마치 그녀에게 그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진지했다.한순간, 그 뒷부분의 ‘너를 동생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마치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오후에 임유진은 아주 한가했다. 휴대전화를 닦을 때 소민영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 소민영이 어젯밤에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어떤 사람에게 미움을 사서 한쪽 발이 골절이 되었다고 하는데 치료 후에 또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이 때문에 며칠 뒤 소 씨 가문과 진 씨 가문 두 집안의 약혼식에 소민영은 참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기사를 내보낸 파파라치 기자는 소민영이 도대체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소 씨 가문의 태도는 지금 모호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일을 추궁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래서 이 기자는 소민영이 미움을 산 사람은 아마도 배경이 소 씨 가문 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소 씨 가문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임유진은 이 뉴스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들어 강지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쳤을 때, 그는 소민영이 대가를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못해. 오직 자신에게 의지해야만 아무런 실망도 없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진다.“그런데, 나는 누나의 배후가 되고 싶은데, 어떡하지?”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고 한가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만약 혁이라면…….”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좋아, 나는 앞으로 혁이가 내 배후가 돼주기를 기다릴게.”“왜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어?”그가 물었다.“혁이는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니까, 왜냐하면…….”그녀는 잠시 주춤했다.“너는 어쨌든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렇지?”그는 그 말을 듣고 낮게 웃었다.“맞아, 나는 누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밤, 강지혁은 임유진이 깊이 잠든 것을 본 후에야 임대주택을 나와 임유진이 사는 임대주택에서 멀지 않은 한 집으로 왔다.다만 임유진의 그 좁은 임대주택과 달리 이 스위트룸은 넓고 밝으며 훨씬 크고 인테리어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그리고 이때 고이준은 방에서 강지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리자마자 문을 열고 BOSS를 맞이했다.고이준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 BOSS 는 평소에 아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신분을 낮춰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임유진을 돌보기 위해 뜻밖에도 직접 이 동네의 집 한 채를 샀다. 그리고…… 그것은 임유진이 잠든 틈을 타서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고이준은 낮에 회사의 일을 보고하고 있다. 보스는 낮에 임유진을 돌보느라 바쁘니 말이다.강지혁은 한들으면서 신속하게 지시를 내린 뒤 고이준에게 직접 해외지사의 임원들과 연락해 영상회의를 진행하라고 분부했다.그러자 잠시 후 해외 지사 임원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며 회의를 시작했다.그러나 어떤 임원들은 강지혁이 지금 처한 배경에 대해 비교적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이 방의 인테리어는 비교적 정교한 편이지만, 그것은 단지 평범한 소시민에 비할 뿐
바로 그때 강지혁이 통화를 끝내고 고이준에게 말했다.“오늘 못다 한 회의는 고비서가 마무리하고 정리해서 나한테 전해줘.”“강 대표님은요?”“임유진이 잠에서 깨고 지금 나를 찾고 있어,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지혁이 말을 이었다.“회의의 대체적인 흐름은 이미 파악을 끝냈고 자잘한 문제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줘.”말을 마치고 지혁은 곧장 방을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해외 고위층들은 대표가 떠나는 모습에 다시 술렁였다.그리고 이준의 등장에 사람은 저마다 입을 열었다.“고 비서,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강지혁 대표는 어딜 가시는 겁니까?”“아까 누구의 전화였습니까?”“방금 통화하신 모습을 보아하니 연애 중인 게 분명해요.”해외 로맨티스트가 입을 열었다.이준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자, 회의를 이어가도록 하죠.”‘연애? 대표님이 지금 연애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나?’착잡해진 이준이었다.정말 지혁이 유진이랑 연애라도 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전 도시가 술렁일 게 분명했다!-전셋집에서.유진은 이제야 돌아온 지혁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왜 이렇게 늦었어? 일어났는데 없어서 깜짝 놀랐잖아.”‘사고라도 생긴 줄 알았네.’“잠이 오지 않아서 밖에 나갔다 왔어.”지혁이 대답하며 방금 침대에서 내려온 유진을 다시 공주님 안기로 침대 위로 조심스레 올려놓았다.“이젠 어디도 가지 않을 테니까 다시 자. 옆에 꼭 붙어있을게.”“다음에 내가 잠이 들었는데 나갈 일이 생기면 쪽지라도 남겨줘.”“알겠어.”지혁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누나, 나 내일 저녁 약속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올게.”“회사 일인 거야?”유진이 물었다.“그런 셈이지.”“그런데 크게 중요한 약속 자리는 아니야. 참석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긴 한데.”“아니야, 일 보러 가. 나 혼자 있어도 돼. 이틀 동안 발이 크게 아프지도 않았어. 이젠 가볍게 움직일 수도 있는걸.”오히려 지혁이 계속 품에 껴안고 옮겨주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강지혁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지혁에겐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러나 고이준은 이런 지혁도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알고있다. 예를 들어 임유진에게 전화를 걸 때와 같은 상황에서 였다.이준은 강 대표의 눈은 늘 차가운 게 아니라 예외인 경우도 있다는 그때 알아차렸었다.“대표님, 차는 이미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어요.”이준이 말했다.“그럼 이만 나가지.”지혁이 덤덤하게 말했다.오늘 밤엔 소씨 가문과 진씨 가문, 양가의 약혼식이 있었다. 전에는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소민준, 유진과 만났었던 남자. 유진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러나 지혁은……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유진과 민준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단 1%도 없었으면 했고, 오늘 밤 이야말로 그 남은 1%의 가능성마저 말살되는 날이었다.그러니 이 약혼식을 지혁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유진은 전셋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따분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무료하게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오늘 모든 소셜 미디어에서 소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약혼식에 대한 기사를 떠들썩하게 말하고 있었다. 비록 약혼식에 불과했지만 재벌에게 있어 이러한 약혼식은 거의 결혼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약혼식은 결혼 전의 작은 절차일 뿐이었다.유진은 기사에 실린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민준이 꿈에 그리던 약혼식 사진이었다.하얀색 예복을 입은 진세령과 하얀색 턱시도 차림의 민준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한 쌍의 어울리는 커플 같아 보였다.기사 아래로 수많은 사람이 부러운 마음을 담은 댓글을 썼다.“잘생기고 예쁘고 돈 많은 사람들의 약혼이라, 정말 재벌의 스케일은 다르네!”“너무 어울린다.”“진세령이 고른 남자인데 당연히 대단한 사람이겠지!”세령의 팬들은 오늘의 약혼식이 얼마나 호화로웠는
어릴 때부터 임유진은 아버지의 칭찬을 갈구하고 새어머니의 미움을 받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모든 사람의 비위를 맞추며 살아갔다. 많은 것을 얻었지만 너무 피곤한 삶이었다.소민준과의 연애가 유진에게 남긴 건, 세상에 마음 편히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이었다.하지만…… 혁은 유진을 또다시 의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고, 혁을 떠올리기만 해도 유진은 슬그머니 미소를 짓게 되었다. 출소 이후 가장 행운이었던 건 아마도 혁을 만난 것일 것이다.유진은 이러한 생각을 하며 웹페이지를 아무렇게나 둘러보고 있는데 호텔 입구에서 강지혁을 목격했다는 글을 확인했다. 지혁의 주변에는 경호원으로 둘러싸여 사진 촬영이 거의 불가능했으며 기자들도 사진 한 장 건지지 못했다고 했다.만에 하나 찍힌 사진은 현장에서 모조리 삭제되었고 이는 너무 횡포다운 행동이었지만 지혁의 이러한 횡포는 모두 자본에서 나온 것인 만큼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었다.이 목격 글을 올린 사람은 자신이 목숨을 걸고 지혁의 뒷모습을 촬영했다고 했다.지혁은 예전부터 기자들의 인터뷰를 거절하고 인터뷰를 자주 하지 않기로 소문난 신비주의자였다.심지어 유진이 지혁의 약혼녀 진애령을 죽일 뻔한 죄목으로 감옥에 들어가던 해에도 유진은 지혁을 만나지 못했었다.법정 내내 지혁은 단 한 번도 참석하지 않았었다.한지영의 말에 따르면, 일전에 지혁을 만나 진애령의 죽음에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리려고 지혁을 찾아갔으나 얼굴 한번 만나보지 못하고 쫓겨났었다고 했다.유진은 가끔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뒤집어 보며 정말 헛웃음이 나왔다. 지혁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지만, 유진의 인생은 무슨 이유인지 지혁과 계속해서 연결된 것 같았다. 유진이 사고에 휩쓸리고 아무도 유진을 변호하지 않아 감옥에 수감되고 감옥에서 온갖 수모를 당한 것도 어쩌면 지혁과 연관이 있을지도 모른다.유진은 그 게시물을 가장 아래로 당겨 찍힌 사진을 확인했다. 경호원들에게 겹겹이 둘러싸인 그 뒷모습이 어쩐지 눈에 익숙했다.넓은 직각 어
“네.”한지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연우진을 보냈다.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자니 갑자기 속이 울렁거려 그녀는 근처 쓰레기통 앞으로 가 음식물을 게워냈다.그렇게 한참을 토하던 그녀는 오늘 먹었던 것을 다 비우고서야 주섬주섬 가방을 더듬으며 티슈를 찾았다.하지만 아무리 찾아도 티슈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그때 웬 손수건 하나가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고마워요.”한지영은 눈을 게슴츠레 뜬 채 그것이 손수건인지 티슈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입가를 쓱 닦았다.야무지게 다 닦고서야 그녀는 손에 든 것이 티슈가 아닌 손수건이었다는 것을 알아챘다.“어... 이거는 내가 내일 세탁해서 다시 줄게요.”한지영은 말을 하면서 서서히 고개를 들었다.당연히 연우진이 건넨 손수건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너무나도 익숙한, 5년간 틈틈이 그녀의 꿈에 나타나던 남자의 얼굴이었다.슈트 차림의 남자는 머리를 완전히 빗어 올린 채 훤한 이마를 드러내고 있었다. 환한 달빛 때문인지 원래부터 예뻤던 얼굴이 오늘따라 더더욱 예뻐 보였다.세월의 흔적 같은 게 존재하지 않는 남자의 얼굴을 한지영은 말없이 가만히 바라보았다.“끅...”술 냄새를 가득 담은 딸꾹질과 함께 조용했던 침묵이 깨졌다.“오랜... 만이에요.”한지영의 입에서 먼저 말이 흘러나왔다. 술을 마셨던 터라 말이 느려지고 또 버벅거렸다.“너 취했어.”백연신이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술을 좀 마셨어요.”한지영은 눈앞의 남자를 두 눈에 똑바로 담으려는 듯 눈을 크게 뜨기 위해 노력했다.“아까 그 남자는... 남자친구야?”백연신이 물었다.“남자친구?”한지영은 눈을 깜빡이다 갑자기 피식 웃었다. 술에 취해있어 그런지 그 웃음이 어쩐지 바보 같아 보였다.“아... 우진 씨는 오늘 소개팅한 남자예요. 괜찮은 사람이었어요. 첫 만남인데도 대화도 잘 통하고...”한지영은 말을 하며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술기운 때문인지 두 눈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그간 백연신을 향한 마음을 접으려고
“그건 아니고 이제껏 설렌다는 느낌이 들었던 여성분이 없었어요.”설레는 느낌이라는 걸 누군가는 부질없는 감정이라고 할지 몰라도 적어도 한지영은 그 말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이제껏 많은 아이돌과 배우들을 좋아해 왔지만 진정으로 마음이 설레었던 사람은 백연신 한 사람뿐이었으니까.아무리 소개팅을 해봐도 같이 있으면 가슴이 뛴다고 느껴지는 남자는 없었다.“설렌다는 느낌... 중요하죠. 쉽게 느끼기 어려운 감정이잖아요. 그리고 그런 느낌이 들었던 상대를 놓치고 다시 찾으려고 하면 더 힘들고요.”한지영의 말에 연우진이 조금 흠칫했다.“지영 씨는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있나 봐요?”“네, 딱 한 번 있었어요.”한지영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연우진은 분명히 소개팅 상대였지만 그녀는 얘기를 나누면서 그가 남자로 보이는 것이 아닌 묘하게 친구 같이 느껴졌다.“어떤 사람이었어요?”연우진이 호기심 어린 눈으로 물었다.“그 사람은 일단 너무 예쁜 사람이었어요. 그리고 내 말이라면 뭐든 다 들어주는 그런 착한 사람이었죠.”백연신 얘기에 한지영의 입꼬리가 저도 모르게 위로 말려 올라갔다.이미 헤어졌음에도 백연신과 함께 했던 나날은 여전히 그녀의 마음속에 제일 소중했던 기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연우진이 생각보다 편한 말 상대였기 때문인지 아니면 오늘 우연히 백연신의 소식을 들어서인지 한지영은 평소보다 훨씬 더 감정적이고 말이 많았다.그녀는 술을 연거푸 마시며 얘기를 이어갔고 연우진은 그런 그녀의 얘기를 그저 가만히 들어주고만 있었다.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지영이 앉아있는데도 휘청거리자 연우진은 그제야 술잔을 들어 올리려는 그녀의 손을 제지했다.“이제 그만 마셔요. 이러다 취하겠어요.”“취하는 게 뭐가 나빠요?”한지영이 웅얼거렸다.“지영 씨랑 나 오늘 첫 만남 아닌가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이렇게 무방비한 모습을 막 보여줘도 돼요? 내가 나쁜 마음이라도 먹으면 어쩌려고?”연우진의 말에 한지영이 피식 웃었다.“정말 그럴 생각
한지영은 손가락을 억지로 움직이며 소개팅 상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그녀가 지금 신경 써야 할 사람은 백연신이 아니라 소개팅 상대였다. 어쩌면 이번에야말로 진정으로 그녀를 좋아하고 그녀도 좋아하는 남자가 나올지도 모른다.저녁.한지영은 약속 시간에 맞춰 번화가의 한 카페로 들어섰다.창가 쪽으로 향하니 소개팅 상대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의 이름은 연우진이었고 현재 대기업에서 팀장직을 맡고 있는 유능한 사람이었다.한지영은 남자의 겉모습을 확인하고는 저도 모르게 속으로 감탄했다. 스펙이 좋은 사람이라는 건 프로필을 통해 충분히 알고 있었지만 외모까지 훌륭할 줄은 몰랐다.연우진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안경을 쓰고 있었다. 지적인 분위기에 앉아있는 자세까지 바른 것이 상당히 인기가 많을 것 같았다. 게다가 35살이라고 들었는데 막상 보니 이제 막 30대가 된 듯한 얼굴이었다.“안녕하세요. 한지영 씨 맞으시죠? 만나서 반가워요.”한지영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남자가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네, 안녕하세요.”한지영은 서둘러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 앉았다.두 사람은 첫 만남에 할법한 얘기를 서로 두어 마디 주고받은 후 곧바로 근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사실 한지영은 그저 아무런 고깃집이나 들어가 대충 식사를 하고 만남을 끝내려고 했는데 연우진은 원래 성격이 그런 건지 아니면 소개팅하는 여자들과는 항상 레스토랑을 가는 건지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데리고 비싼 레스토랑으로 왔다.메뉴판을 들어 가격을 보니 헙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드시고 싶은 거 마음껏 주문하세요.”연우진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한지영은 잠깐 고민하더니 결국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음식들을 주문했다.이에 연우진은 그녀를 잠시 바라보더니 별다른 말 없이 다른 음식도 주문한 다음 웨이터에게 메뉴판을 건넸다.“실례가 안 된다면 지영 씨가 소개팅에 나온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혹시 나이 압박 때문에 결혼을 서두르고 싶은 건가요?”음식을 먹던 중에 연우진이 먼저 질문을 건네왔다.“그렇지
설마 재벌과 사귀었던 신데렐라가 주변에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한지영은 천천히 정신을 차리고 조나연을 바라보았다. 조나연이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었다. 이 번기 회에 자신을 깎아내리며 조롱하려는 게 분명했으니까.조나연은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묘하게 그녀를 깎아내렸다. 게다가 한지영이 없을 때면 다른 동료에게 두 사람은 얼마 안 가 반드시 헤어지게 될 거라며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기도 했다.그러다 정말 헤어졌을 때는 한껏 기분 좋은 얼굴로 한지영에게 이런 말을 건넸다.“나는 두 사람 오래 못 갈 줄 알았어요. 솔직히 백연신 씨가 아무것도 없는 지영 씨와 진심으로 사귈 리가 없잖아요. 요즘은 남자들도 여자 배경을 본다고요.”진심이 아니었다고? 그럴 리는 없다.한지영과 사귀었을 당시 백연신은 늘 그녀에게 진심을 다해 행동했고 자신의 사랑을 가감 없이 보여주었다. 그러니 진심이 아니었다는 말은 틀렸다.하지만 조나연의 말에 맞는 말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한지영은 백연신이 원하는 것을 주지 못했으니까.“지금 돌이켜봐도 참 안타까워요. 만약 헤어지지 않았으면 지금쯤 사모님 소리 들으며 편히 살고 있을 텐데.”조나연이 안타까운 척 그녀를 비꼬았다.한지영은 그런 그녀를 차가운 눈길로 빤히 바라보더니 갑자기 피식 웃었다.“그렇게 안타까우면 백연신 씨와 나 사이에 다리 좀 놔주지 그래요? 말로만 계속 안타깝다고 하니까 괜히 놀림 받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요. 물론 제 착각이겠죠, 안 그래요?”한지영의 뼈 있는 말에 조나연의 얼굴이 한순간에 일그러졌다.그리고 가만히 구경하던 동료들 역시 그제야 분위기를 파악한 듯 이상한 눈길로 조나연을 바라보았다.조나연은 조금 머쓱한 얼굴로 웃더니 별다른 대답 없이 자리를 벗어났다.한지영은 자리로 돌아간 후 소개팅 상대와 약속 시간을 잡으려고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가 잠깐 멈칫하더니 저도 모르게 백연신의 기사를 검색했다.지난 5년간 그녀는 백연신을 완전히 내려놓을 작정으로 그와 관련
한지영은 한숨을 한번 내뱉더니 이내 사무실 밖으로 나갔다.“엄마, 소개팅 같은 거 하기 싫다고 내가 분명히 말했잖아요. 남자는 내가 알아서 찾을 테니까 나 좀 가만히 내버려 둬요. 이게 대체 몇 번째야.”“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면 내가 이러지 않겠지. 너 이제 20대 아니고 30대야. 34살이나 돼서 남자친구 한 명 없다는 게 말이 돼? 내일모레면 당장 노산에 진입하는데 그때 되면 점점 더 좋은 남자 찾는 게 어려워져!”이해영이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한지영도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소개팅을 주선하는지 잘 알고 있다. 34살이나 된 딸이 이대로 계속 남자와의 교제를 피하다 결국에는 남자도 자식도 없이 홀로 인생을 마감할까 봐 걱정되고 또 불안한 거겠지.사실 한지영은 혼자서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주의였다. 게다가 요즘은 실버타운도 잘 되어있어 정말 혼자가 된다고 해도 크게 문제 될 건 없었다.하지만 부모님들은 그런 걸 바라지도 않거나와 그래도 결혼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분들이었다.그래서 한지영은 결국 오늘도 소개팅을 수락하고 말았다.더 이상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리고 싶지 않았기도 했고 말이다.“아, 알겠어요. 만나면 되잖아요. 톡으로 연락처 보내세요. 이따 연락할게요.”이해영은 딸의 말에 그제야 만족하며 전화를 끊었다.몇 초 후 한지영의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보낸 사람은 이해영이었고 내용은 소개팅할 남자의 프로필과 연락처였다.한지영은 메시지를 보고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뱉었다. 이해영의 말대로 그녀도 이제는 34살로 절대 마냥 어리기만 한 나이는 아니었다.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는 백연신을 천천히 마음속에서 내려놓았다....정말?문득 마음속 깊은 속에서 이러한 의문이 떠올랐다.정말 백연신을 향한 마음을 완전히 접어버린 게 맞나?한지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더니 이내 잡생각을 털어버리듯 머리를 흔들며 다시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자리로 돌아가려는데 웬 동료 한 명이 그녀를 불렀다.“지영 씨,
얘기가 일단락되자 강지혁은 아들의 손을 잡고, 임유진은 딸의 손을 잡고, 그리고 두 아이는 서로의 손을 꼭 잡은 채 유치원 안으로 들어갔다.소민아는 그런 네 사람의 뒤를 따라 딸과 함께 조용히 앞으로 걸어갔다.만약 전이였다면 어떻게 해서든지 강지혁의 옆에 서며 사람들의 뇌리에 그 모습을 각인하려고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럴 수가 없어 그저 고개를 푹 숙인 채 얼굴을 가릴 수밖에 없었다.소민아의 손을 잡고 안으로 들어가던 소안나는 강선현과 강선율이 맞잡고 있는 손을 빤히 바라보며 미간을 찡그렸다.강선율이 그녀의 손을 잡아준 건 첫 만남뿐으로 그 뒤로는 한번도 손을 잡아주려고 하지 않았다. 분명히 전보다 훨씬 예뻐지고 공주 옷도 입고 머리도 예쁘게 했는데 강선율은 다른 이들처럼 그녀에게 예쁘다고 칭찬해주기는커녕 점점 더 거리를 두며 이제는 말도 잘 섞으려고 하지 않았다.소안나는 그런 강선율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왜 자신의 손은 잡아주려 하지 않는 거지?결국에는 양녀라 정을 주지 않는 건가?경찰서 앞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 소민아는 강지혁의 사진을 들고 있던 여자아이가 바로 강씨 가문의 진정한 딸이고 강선율의 친여동생이라는 것을 소안나에게 얘기해주었다.소안나는 그 말을 듣고는 더욱더 기분이 나빠졌다. 갑자기 나타난 강선현에게 아빠와 오빠를 빼앗기는 것 같았으니까.유치원 입구에 다다른 임유진은 먼저 아이들을 안으로 들여보내고 선생님들과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강지혁은 그런 그녀의 옆에 선 채 가만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강선율은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강선현의 손을 꼭 잡은 채 자리까지 이동했다. 그러고는 듬직한 오빠의 얼굴로 동생의 가방을 직접 옆에 내려놓아 주기도 했다.그 장면을 바라보던 소안나는 질투심에 씩씩거렸다.‘나한테는 한번도 그렇게 해주지 않았으면서! 오빠랑 먼저 알게 된 건 쟤가 아니라 안나잖아!’“엄마, 나도 율이 오빠 친동생 하면 안 돼요?”소안나가 고개를 홱 들며 소민아에게 물었다.소민아는 딸의 말에 서둘러 주위
소씨 모녀의 등장에 사람들의 두 눈은 금세 흥미로움으로 가득 찼다. 그도 그럴 것이 강지혁이 또다시 결혼하게 된다면 그 상대는 분명히 양녀의 어머니인 소민아라고 생각했으니까.임유진은 포르쉐에서 내린 소민아를 발견하고는 저도 모르게 미간을 찌푸렸다. 그간 집사와 고이준으로부터 전해 들은 말에 의하면 소민아는 소소하게 인기를 얻고 있던 인플루언서였다가 재벌 2세의 아이를 배고 그 집의 며느리로 들어가려다가 철저하게 버림을 받고 홀로 아이를 키우며 그간 힘든 나날을 보냈다고 한다.소안나가 강씨 가문에 입양된 건 2년 전의 일로 강지혁은 소안나와 소민아를 위해 집도 주고 생활비도 다달이 보내주며 그 외의 큰 지출도 부담해주었다고 한다. 즉 소씨 모녀는 하루아침에 강지혁이라는 든든한 백을 둔 신데렐라 모녀가 됐다는 뜻이었다.지금 소민아가 입고 있는 옷이나 타고 있는 차량만 봐도 그간 얼마나 호의호식하며 지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다.임유진이 소민아를 훑어보고 있을 때 소민아도 마찬가지로 임유진을 훑어보고 있었다. 설마 레스토랑에서 언쟁을 벌였던 별 볼 일 없는 여자가 강지혁의 사망한 아내라고 그 누가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소민아는 강지혁과 함께 나란히 서 있는 임유진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질투의 감정이 몸 곳곳에 퍼지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하지만 그 감정을 겉으로 내비칠 수는 없었기에 소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유진 씨 맞으시죠? 그날은 죄송했어요. 딸 일이라 괜히 흥분해서 언성을 좀 높였어요. 용서해주세요...”그 말에 임유진이 뭐라 대꾸하려는데 강지혁이 먼저 입을 열었다.“호칭 똑바로 해. 임유진 씨가 아니라 사모님.”차가운 그의 말에 주변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임유진이 강지혁의 아내였다는 것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임유진의 위치를 똑똑히 전하고자 하는 강지혁의 의도를 바로 알아챘다.5년 만에 돌아왔어도 임유진은 여전히 강지혁의 아내였고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었다.하지만 임유진이 누군지 모르고 있는 사람들은 강지혁의 말에
게다가 5년 만에 돌아온 거라 그간 많이 변한 저택의 상황도 알아야 했고 새로운 사람들과도 익숙해져야만 했다.그래서 아이들 일에는 조금 소홀해졌다. 딸이 아버지를 원했던 만큼 아들도 마찬가지로 엄마를 원했을 텐데 말이다.저택 고용인들에게 듣기로 강지혁은 매일 아침 율이와 함께 저택을 나서기는 하지만 나가서는 서로 다른 차를 타고 각자의 목적지로 향한다고 한다.즉, 강선율은 그간 아버지가 아닌 도우미나 기사의 보호 아래 유치원에 갔다는 소리였다.임유진은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또다시 죄책감이 피어올랐다. 또한 바쁘다는 이유로 율이에게 소홀했던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강선율은 임유진의 팔이 더 세게 자신을 끌어안자 조금 움찔했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안기는 일은 익숙지 않았지만 상대가 엄마라서 그런지 이런 식의 포옹도 이제는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기분이 좋았다.게다가 앞으로는 하루도 빠짐없이 함께 유치원으로 가주겠다는 말 또한 기분 좋게 귓가에서 맴돌았다....다음날.강선현이 유치원으로 가는 날, 임유진은 율이와 현이에게 똑같은 옷을 입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강선율은 바지고 강선현은 치마라는 것이다. 엇비슷한 키의 두 아이가 똑같은 옷에 똑같은 신발을 신은 채 가방을 메고 있는 모습을 보니 절로 마음이 녹는 기분이었다.임유진은 결국 참지 못하고 두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뽀뽀 세례를 퍼부었다.강선현은 그녀의 이런 행동에 이미 습관이 되었던 터라 꺄르르 웃으며 뽀뽀로 회답했지만 강선율은 별다른 반응 없이 그저 그녀의 행동을 받고만 있었다. 분명히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귀가 살짝 빨개진 것을 보니 기분이 나쁜 건 아닌 듯했다.강지혁은 세 사람이 다정하게 스킨십하는 걸 보면서 저도 모르게 슬쩍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유치원에 도착한 후, 강지혁과 임유진은 각자 아이의 손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아이를 등원시키러 온 학부모들은 네 사람의 등장에 입을 떡 벌리며 그대로 굳어버렸다.강지혁은 좀처럼 유치원에 얼굴을 내비치
하지만 남매 사이가 하루가 다르게 좋은 것 같아 보이니 임유진은 괜히 뿌듯해 나며 기분이 좋았다.“내일 유치원 갈 때 아빠도 엄마랑 함께 현이 데려다주면 안 돼?”현이가 눈을 반짝이며 강지혁을 바라보았다. 어지간히도 같이 가고 싶은 듯했다.강지혁은 아이가 이런 요구를 해올 줄은 몰랐는지 미간을 살짝 꿈틀거렸다.“유치원에 같이 가달라고?”“응! 원래 유치원 가는 첫날은 엄마랑 아빠가 함께 가줘야 하는 거야!”현이는 이번이 첫 유치원은 아니었지만 이제는 아빠도 찾았으니 강지혁과 함께 등원하고 싶었다. 아빠가 있다는 기분을 마음껏 누리고 싶었다.사실 지금껏 아빠의 부재에도 잘 자라왔던 아이였지만 아무래도 아빠의 빈자리가 꽤 컸던 모양이다.“그래, 그럼 내일 유치원에 같이 가줄게.”강지혁의 말에 현이는 활짝 웃더니 곧바로 팔을 쭉 내밀었다. 품에 안기고 싶다는 뜻이었다.강지혁은 스킨십 많은 딸이 아직도 잘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인 율이는 이제껏 이런 식의 요구를 해오지 않았으니까.하지만 임유진과 쏙 빼닮은 두 눈을 보고 있자니 저도 모르게 아이에게로 팔이 뻗어졌다.현이는 강지혁에게 안긴 후 그의 목을 꼭 끌어안으며 지난번 서재에서처럼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했다.“아빠가 최고야!”진심으로 기뻐 보이는 딸의 모습에 임유진은 괜스레 코끝이 찡해 났다.딸이 아빠의 존재를 그리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이렇게 좋아하는 걸 보니 조금 더 빨리 기억을 회복하지 못했던 것에 죄책감이 일었다.임유진은 눈물을 감추기 위해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 바로 옆에 서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혹시 율이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엄마가 있어야 하는 상황에 항상 없었던 것에 쓸쓸해 하지는 않았을까?“율아.”임유진은 그 생각에 강선율을 향해 팔을 활짝 열었다.“엄마가 안아줄까?”아이는 그 말에 어색해하며 답했다.“전 어린애가 아니에요. 동생이나 안아주세요.”말은 이렇게 하지만 은근히 원하고 있다는 눈빛을 보냈다.임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