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곧 고이준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가 추측해서는 안 될 일이다.고이준은 임대주택 문을 살짝 닫았다. 에서 강지혁은 혼수상태에 있는 유진을 보면서 손에 든 약을 입술에 건네주었다.“착하지, 약 먹어.”하지만 그녀의 입술은 오히려 무의식적으로 더 꽉 닫혀 있어 알약도 넣을 수 없으니 약을 먹인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강지혁은 얇은 입술을 거의 일직선으로 오므린 후 알약을 입에 물고 물과 함께 고개를 숙이고 유진의 차가운 입술 옆에 다가갔다.그의 입술이 그녀의 입술을 눌렀고, 혀끝이 그녀의 입술을 밀어 약을 그녀의 입으로 넣었다. 사실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그는 이런 방식으로 그녀에게 약을 먹였다.비록 약이 이미 그녀의 입에 들어갔지만, 그는 그녀의 입술을 그리워하고 있다.일종의 탐욕 같기도 하고, 일종의 중독 같기도 하고, 만질수록 더 많은 것을 원했고 심지어…… 놓을 수 없고, 아쉬웠다…….“유진…….”그가 중얼거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갑자기 그녀는 마치 텔레파시라도 통한 것처럼 천천히 두 눈을 떴다. 희미한 눈동자가 그의 몸에 떨어졌다.그는 멍하니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이 순간에 긴장된 느낌이 들었다.그리고 그녀가 입을 벌리고 그를 향해 멍청하게 웃는 것이 보였다.“엄마, 착하게 있을게요. 엄마랑 함께 자고 싶어요.”“…….”그는 자기도 모르게 웃어버렸다. 아마 그녀는 지금 열이 나서 그를 그녀의 어머니로 착각한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미소는 앳되고 천진난만하지만 또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는 그녀의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녀에게 있어서 그녀의 어머니는 바로 그녀가 그 집에서의 마지막 따뜻함이었을 것이다.강지혁은 자기도 모르게 입술을 젖혔다. 그들 중 한 명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한 명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 말하자면 정말 좀 비슷하다.“엄마, 같이 있어 줄래요? 얌전히 있을게요. 얌전히 있을…….”그녀는 눈을 반쯤 뜨고
소민영은 계속 일러바쳤다.소민준의 부모님은 그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10억, 소 씨네 집에 있어서 이 돈은 비록 많은 편은 아니지만 일반인에게는 큰돈이다.“민준아, 너 이게…….”소민준의 어머니는 의아해하며 아들을 바라보았다.“민영에게 무슨 짓을 했는지 물어봐요.”소민준이 퉁명스럽게 말했다.“민영이가 임유진에게 마음대로 가게에서 옷 한 벌을 고르라고 하며 그녀에게 선물한다고 했어요. 결국 임유진은 10억짜리를 골랐고 저는 단지 민영이가 저질러놓은 난장판을 수습한 것 뿐이에요.”“그녀가 고르면 다 사줘?”소민영은 씩씩거리며 말했다.“오빠, 왜 말을 안 해, 오빠는 근본적으로 임유진에 대해 감정이 남아 있어!”“나는 너의 목숨을 구하고 있어!”소민준은 정말 여동생의 뺨을 한 대 더 때리고 싶었다.소민영은 화가 나서 말했다.“임유진 따위가 날 어떻게 할 수 있겠어? 웃겨.”“그래, 민준아, 너도 너무 심했어. 임유진 때문에 네 동생을 때리다니. 그 여자는 원래 재수 없는 여자야. 그렇지 않으면 그 여자 때문에 우리 집이 지금 강 씨 가문의 미움을 살까 봐 이렇게 노심초사할 필요가 있겠어?”소민영의 어머니가 딸을 도와 말을 했다.“엄마, 이 일은 엄마가 생각하는 그런 게 아니에요…….”“그럼 어떻게 해!”소민준의 어머니가 반박했다.“임유진은 정신 차리지 못한 것 같아. 네가 결혼하려고 하는데, 또 너를 건드리는거야, 정말 뻔뻔스러워. 10억도 뻔뻔하게 가져간 거야?”그런 여자에게 10억을 줬다고 생각하니 소민준의 어머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소민준은 갑자기 일어섰다.“엄마, 왜 더 자세하게 물어보지 않아요? 민영이가 나중에 또 임유진에게 무엇을 했는지 알아요? 일부로 임유진의 발을 걸어 유진이가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러떨어지게 했어요!”“그럼 뭐 어때?”소민준의 어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상처를 좀 입었을 테지. 병원비는 얼마든지 우리 소 씨 가문이 내줄 수 있어. 이런 일 때문에 동생을 때릴 필요가
소민준은 강지혁에게 사과하려 했지만 강지혁을 전혀 만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그는 임유진이 사는 임대주택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벤틀리 차 한대가 임대주택의 문에서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있고, 누군가 임대주택에서 내려왔을 때 급히 차에서 내려 맞이했다.“강 대표님, 그 전의 일은 여동생이 철이 없는 것이니 부디 용서해주세요.”소민준은 자세를 낮추며 말했다.“소 씨 가문을 봐달라고요?”강지혁은 담담하게 콧방귀를 뀌었다.“제시하고 싶은 조건을, 얼마든지 얘기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 할게요.”잘생긴 눈으로 차갑게 쳐다보는 순간, 소민준은 피가 멎는 느낌이 들었다. 강지혁의 눈빛은 마치 맹수처럼 느껴져 숨조차 감히 크게 쉬지 못했다.“그러고 보니 내가 신세를 진 것 같네요?”강지혁이 갑자기 말했다. “신세요?”소민준은 언제 강 대표님에게 신세를 지게 했는지 몰랐다.“이렇게 해요, 이번에 소 씨 가문을 봐줄 수 있어요. 소민영이 그쪽 약혼식에 참석하지 않으면 돼요.”강지혁은 담담하게 말했다.소민준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단지 여동생을 약혼식에 참가하지 못하게 했다. 비록 체면에 영향이 가지만 핑계를 대 얼버무릴 수 있으니 이 대가는 정말 아주 작다고 할 수 있다.“강 대표님 감사합니다.”소민준은 얼른 말했다.“나한테 고마워하지 마요, 내가 고마워해야죠.”강지혁은 한 손으로 소민준의 어깨에 걸치고 천천히 몸을 기울여 소민준의 귓가에 다가가, 두 사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그리고 고마운 일이 또 있어. 그때 유진이와 그렇게 시원시원하게 헤어져서 고마워. 네가 그녀와 헤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좀 더 골치 아팠을 거야.”강지혁은 이 말을 평화롭게 했는데 마치 친구 사이의 잡담처럼 감사를 표시했다.그러나 소민준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만약 애초에 그가 임유진과 헤어지지 않았다면 지금은 강지혁이 대적하려는 대상이 되어야 하는가?설마 이것이 강지혁이 방금 말한 그 신세를 졌다는 것인가?강지혁이 주택단지를 떠
소민영의 협박하는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대방이 그녀의 말을 끊었다.“소민영 씨라고 하니 됐어요.”말이 끝나자 그 사람은 뒤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그럼 오른발을 부러뜨려. 동영상에서 뻗은 발이 오른발이야.”‘뭐…… 무슨 뜻이지?!’소민영은 매우 놀랐다. 설마 이 사람들은 협박하러 온 것이 아닌가?잠시 후,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이 룸에서 울렸다…….————임유진은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열이 마침내 내렸다.강지혁이 입을 열었다.“열이 내려서 다행이다. 그렇지 않으면 오늘 누나를 업고 다시 병원에 갔을 거야”.“나…… 어젯밤에 열이 났어?”임유진은 중얼거렸다.“응, 열이 나고, 열 때문에 헛소리도 많이 했어.”그가 말했다.그녀는 깜짝 놀랐다.“내…… 내가 무슨 말을 했어?”그녀가 설마 하면 안 될 말을 하지 않았겠지?“누나가 얌전히 착한 아이가 될 거랬어. 그분이 누나 옆에 있어 주기만 한다면.”그가 말했다. 눈빛에는 오히려 보기 드문 장난기가 담겼다.그녀의 얼굴이 갑자기 붉어지기 시작했다.“하지만 누나 걱정하지 마. 누나가 착한 아이가 되지 않아도 내가 누나와 함께 있을 거야.”강지혁은 유유히 말을 뱉었다.임유진의 얼굴은 여전히 빨갛지만 의외라는 듯 강지혁을 보고 있었다.“왜?”그가 말했다.“왠지 네가 예전과 좀 다른 것 같아. 농담도 할 줄 알고.”그녀가 생각했다.그는 마치 자신도 그 변화를 의식한 것처럼 멍해졌다.그리고 그의 변화는 그녀 때문인가?그는 눈앞의 사람을 똑바로 바라보다가 갑자기 몸을 기울였다. 입술이 그녀의 입술에 붙을 뻔했다.“아!”그녀는 비명을 지르며 무의식적으로 뒤로 물러나려 했지만 지금 거동이 불편하다는 것을 잊어버렸다.그의 한 손은 제때 그녀의 허리를 껴안았지만, 오히려 그녀를 더욱 품속으로 끌어당겼다.그녀는 가까운 곳에 있는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극도로 아름다운 눈썹, 긴 속눈썹, 그리고 칠흑 같은 눈동자 속에 그녀의 얼굴이 비쳤다.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맙소사,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어떻게 이런 걸 생각한 거지.’“너무 가까워서 이상하게 느껴져.”임유진이 말했다.“그래.”그가 손을 놓더니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책상 위의 물건을 정리했다.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자신의 볼을 만졌는데, 매우 뜨거웠다.“참, 누나, 아까 가까웠을 때 키스하고 싶었어?”그가 갑자기 질문하자 그녀는 순간 멍해졌다.새까만 눈동자가 깜박거리자 그녀는 손바닥 아래로 볼이 더 뜨거워진 것 같았다.“질문에 대답하기 어려워?”그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나…… 나는 당연히…….”“누나라면 난 좋아.”그가 그녀의 말을 끊고 말했다.“나는 다른 여자가 나에게 키스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나 만약 누나라면 나는 괜찮아.”햇빛이 그 좁은 유리창을 통해 방안으로 쏟아져 그의 몸에 떨어졌다.그의 표정은 마치 그녀에게 그의 말이 결코 농담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진지했다.한순간, 그 뒷부분의 ‘너를 동생으로 생각한다’는 말은 마치 목구멍에 걸린 것처럼 나오지 않았다.————오후에 임유진은 아주 한가했다. 휴대전화를 닦을 때 소민영에 관한 뉴스를 보았다. 뉴스에서 소민영이 어젯밤에 병원에 실려 갔다고 했다. 어떤 사람에게 미움을 사서 한쪽 발이 골절이 되었다고 하는데 치료 후에 또 어떤 후유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이 때문에 며칠 뒤 소 씨 가문과 진 씨 가문 두 집안의 약혼식에 소민영은 참석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기사를 내보낸 파파라치 기자는 소민영이 도대체 누구에게 미움을 샀는지 아직 알아내지 못했지만, 소 씨 가문의 태도는 지금 모호하고 경찰에 신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이 일을 추궁할 생각이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그래서 이 기자는 소민영이 미움을 산 사람은 아마도 배경이 소 씨 가문 위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소 씨 가문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임유진은 이 뉴스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다시 고개를 들어 강지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다쳤을 때, 그는 소민영이 대가를
그녀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은 결국 자신에게 의지하는 것보다 못해. 오직 자신에게 의지해야만 아무런 실망도 없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기대가 커질수록 실망도 커진다.“그런데, 나는 누나의 배후가 되고 싶은데, 어떡하지?”그는 눈썹을 살짝 치켜세우고 한가로이 그녀를 바라보았다.“만약 혁이라면…….”그녀는 웃으며 말했다.“좋아, 나는 앞으로 혁이가 내 배후가 돼주기를 기다릴게.”“왜 갑자기 마음을 고쳐먹었어?”그가 물었다.“혁이는 나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니까, 왜냐하면…….”그녀는 잠시 주춤했다.“너는 어쨌든 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 그렇지?”그는 그 말을 듣고 낮게 웃었다.“맞아, 나는 누나를 버리지 않을 거야.”————밤, 강지혁은 임유진이 깊이 잠든 것을 본 후에야 임대주택을 나와 임유진이 사는 임대주택에서 멀지 않은 한 집으로 왔다.다만 임유진의 그 좁은 임대주택과 달리 이 스위트룸은 넓고 밝으며 훨씬 크고 인테리어도 상당히 신경을 썼다.그리고 이때 고이준은 방에서 강지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리자마자 문을 열고 BOSS를 맞이했다.고이준은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이 BOSS 는 평소에 아무도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는데 신분을 낮춰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다. 하지만 임유진을 돌보기 위해 뜻밖에도 직접 이 동네의 집 한 채를 샀다. 그리고…… 그것은 임유진이 잠든 틈을 타서 편리하게 업무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고이준은 낮에 회사의 일을 보고하고 있다. 보스는 낮에 임유진을 돌보느라 바쁘니 말이다.강지혁은 한들으면서 신속하게 지시를 내린 뒤 고이준에게 직접 해외지사의 임원들과 연락해 영상회의를 진행하라고 분부했다.그러자 잠시 후 해외 지사 임원들이 스크린에 등장하며 회의를 시작했다.그러나 어떤 임원들은 강지혁이 지금 처한 배경에 대해 비교적 궁금해하는 것 같았다. 이 방의 인테리어는 비교적 정교한 편이지만, 그것은 단지 평범한 소시민에 비할 뿐
바로 그때 강지혁이 통화를 끝내고 고이준에게 말했다.“오늘 못다 한 회의는 고비서가 마무리하고 정리해서 나한테 전해줘.”“강 대표님은요?”“임유진이 잠에서 깨고 지금 나를 찾고 있어, 이만 돌아가 봐야겠어.”지혁이 말을 이었다.“회의의 대체적인 흐름은 이미 파악을 끝냈고 자잘한 문제는 네가 알아서 처리해 줘.”말을 마치고 지혁은 곧장 방을 나갔다. 기다리고 있던 해외 고위층들은 대표가 떠나는 모습에 다시 술렁였다.그리고 이준의 등장에 사람은 저마다 입을 열었다.“고 비서,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강지혁 대표는 어딜 가시는 겁니까?”“아까 누구의 전화였습니까?”“방금 통화하신 모습을 보아하니 연애 중인 게 분명해요.”해외 로맨티스트가 입을 열었다.이준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자자, 회의를 이어가도록 하죠.”‘연애? 대표님이 지금 연애를 하는 거라고 할 수 있나?’착잡해진 이준이었다.정말 지혁이 유진이랑 연애라도 한다는 소문이 퍼진다면 전 도시가 술렁일 게 분명했다!-전셋집에서.유진은 이제야 돌아온 지혁을 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왜 이렇게 늦었어? 일어났는데 없어서 깜짝 놀랐잖아.”‘사고라도 생긴 줄 알았네.’“잠이 오지 않아서 밖에 나갔다 왔어.”지혁이 대답하며 방금 침대에서 내려온 유진을 다시 공주님 안기로 침대 위로 조심스레 올려놓았다.“이젠 어디도 가지 않을 테니까 다시 자. 옆에 꼭 붙어있을게.”“다음에 내가 잠이 들었는데 나갈 일이 생기면 쪽지라도 남겨줘.”“알겠어.”지혁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아, 누나, 나 내일 저녁 약속이 있어. 잠시 나갔다 올게.”“회사 일인 거야?”유진이 물었다.“그런 셈이지.”“그런데 크게 중요한 약속 자리는 아니야. 참석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긴 한데.”“아니야, 일 보러 가. 나 혼자 있어도 돼. 이틀 동안 발이 크게 아프지도 않았어. 이젠 가볍게 움직일 수도 있는걸.”오히려 지혁이 계속 품에 껴안고 옮겨주는 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강지혁의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지혁에겐 감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그러나 고이준은 이런 지혁도 부드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걸 알고있다. 예를 들어 임유진에게 전화를 걸 때와 같은 상황에서 였다.이준은 강 대표의 눈은 늘 차가운 게 아니라 예외인 경우도 있다는 그때 알아차렸었다.“대표님, 차는 이미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어요.”이준이 말했다.“그럼 이만 나가지.”지혁이 덤덤하게 말했다.오늘 밤엔 소씨 가문과 진씨 가문, 양가의 약혼식이 있었다. 전에는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소민준, 유진과 만났었던 남자. 유진의 마음속에는 이미 그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고 두 사람이 다시 만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그러나 지혁은…… 일말의 가능성도 남기고 싶지 않았다.유진과 민준이 다시 만날 가능성이 단 1%도 없었으면 했고, 오늘 밤 이야말로 그 남은 1%의 가능성마저 말살되는 날이었다.그러니 이 약혼식을 지혁은 두 눈으로 직접 보고 싶었다.-유진은 전셋집에서 저녁밥을 먹고 따분한 마음에 핸드폰을 꺼내 들고 무료하게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었다.오늘 모든 소셜 미디어에서 소씨 가문과 진씨 가문의 약혼식에 대한 기사를 떠들썩하게 말하고 있었다. 비록 약혼식에 불과했지만 재벌에게 있어 이러한 약혼식은 거의 결혼과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건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약혼식은 결혼 전의 작은 절차일 뿐이었다.유진은 기사에 실린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민준이 꿈에 그리던 약혼식 사진이었다.하얀색 예복을 입은 진세령과 하얀색 턱시도 차림의 민준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은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한 쌍의 어울리는 커플 같아 보였다.기사 아래로 수많은 사람이 부러운 마음을 담은 댓글을 썼다.“잘생기고 예쁘고 돈 많은 사람들의 약혼이라, 정말 재벌의 스케일은 다르네!”“너무 어울린다.”“진세령이 고른 남자인데 당연히 대단한 사람이겠지!”세령의 팬들은 오늘의 약혼식이 얼마나 호화로웠는
임유진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새어 나왔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태연하게 남의 행복이나 비는 바보 같은 남자 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아프고 또 숨이 막혔다.강지혁의 엄지손가락이 결국에는 버튼을 눌렀고 그와 동시에 그녀가 있는 차 안 모니터에 타이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임유진은 그게 폭탄 해제까지 걸리는 시간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챘다.그녀와 강지혁 사이에는 이제 고작 2분이라는 시간밖에 남지 않았다.2분이라는 시간 동안 강지혁은 언제든지 손을 떼고 그곳에서 멀리 벗어날 수 있다.“고 비서님, 당장 혁이를 저기서 끌어내 주세요!”임유진이 고이준을 향해 외쳤다.그 말에 고이준의 몸이 움찔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 당장이라도 강지혁을 끌어내고 싶었지만 그렇게 되면 임유진이 탄 차량 주위에 깔린 폭탄들이 터지게 된다.“내 몸에 손대면 그게 누구든 가만 안 둬!”강지혁의 위협적인 목소리가 아주 크게 울려 퍼졌다.이에 경호원들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고 고이준은 더더욱 마음이 복잡해졌다.“고이준, 유진이가 절벽에서 무사히 빠져나오면 바로 병원으로 데리고 가. 그리고 지금 당장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시선을 돌려 임유진을 바라보았다.“유진아, 이건 내가 원해서 하는 거야. 그러니까 괜한 생각하지 마.”원해서 하는 거라고?하지만 그게 원해서든 아니든 임유진은 그가 죽는 걸 원치 않았다.그때 그녀의 머릿속으로 하나의 방법이 떠올랐다. 사실 그녀에게는 강지혁의 죽음을 막을 방법이 하나 남아 있었다.임유진은 뭔가를 결심한 얼굴로 기어봉에 묶인 손을 한번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어느새 많이도 불룩해진 자신의 복부를 바라보았다.“미안해. 엄마가 너무나도 이기적인 사람이라 정말 미안해... 엄마가 한 선택에 너희를 휘말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 하지만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하는 것 이상으로 너희 아빠를 사랑하고 있어. 그래서 혁이가 죽는 걸 이대로 지켜볼 수 없어... 그러니까 너희들이 엄마 한 번만 봐줘.”임유진은 숨을 한번 고
하지만 강문철은 틀렸다. 강지혁은 임유진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내던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강지혁이 기계 장치 가까이에 다다르자 바로 타이머부터 보였다. 타이머에 표시된 숫자는 8이었다.이제 8분이 지나면 폭탄이 터지게 된다.“안 돼! 혁아, 그러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너희 할아버지는 절대 네가 그런 선택을 하게 내버려 둘 분이 아니야. 누구보다 가문을 중요시했던 분이셨잖아! 네가 죽으면 가문을 이을 사람도 없어지고 회사도 망하게 될 텐데 너희 할아버지가 그것도 생각 못 하셨을 것 같아? 그러니까 제발 멈추고 우리 다시 생각해보자! 응?!”“유진아, 괜찮아. 겁먹지 않아도 돼. 내가 반드시 널 구해줄 테니까.”강지혁은 말을 마친 후 곧바로 초록색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이내 강문철의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콜록콜록... 결국에는 임유진 때문에 목숨을 거는 선택을 하고야 말았구나. 그런데 네 선택은 틀렸다. 너도 곧 알게 될 거야. 임유진은 네가 목숨을 걸고서까지 구해줄 만한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콜록콜록... 폭탄을 해제하려면 네 엄지로 빨간색 버튼을 한동안 누르고 있어야만 한다. 폭탄이 해제되기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거든. 그런데 계속해서 누르고 있으면 임유진 쪽 폭탄은 해제되겠지만 이 기계에 설치된 폭탄은 바로 터지게 되겠지.”강문철의 담담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괜히 몸이 오싹해 나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도무지 친할아버지라고는 생각을 못 할 얘기였다.“다만 버튼을 누르고 폭탄이 해제되는 시간 동안 너는 언제든지 손을 떼고 이 기계에서 멀리 떨어질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되면 해제에 실패하고 임유진 쪽의 폭탄이 바로 터지게 되겠지. 어디 한번 보자꾸나. 네가 그 여자를 얼마나 많이 사랑하는지. 콜록콜록... 그리고 임유진이 정말 네가 목숨을 바칠만한 여자인지.”강문철의 목소리가 완전히 끊기고 이내 무거운 적막이 찾아왔다.임유진은 자신의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어
임유진은 자신의 양손이 왜 한쪽은 핸들에 묶여있고 또 한쪽은 기어봉에 묶여있는지 이제야 확실히 깨달았다.애초에 다른 선택지는 없게 둘 중 하나가 살 수 있게만 만들어놓은 것이었다.지금 그녀가 탄 차량의 주위에 얼마만큼의 폭탄이 설치되어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그걸 파악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만약 파악하는 도중에 누군가가 폭탄을 건드리면 최악의 결과로 치닫게 된다.정말 두 사람 다 사는 방법은 없는 걸까?임유진은 머리를 최대한으로 굴리며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에 대해 생각했다.그때 김재호의 말을 전부 듣고 있던 진세령이 표독스럽게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어때? 상황이 엄청 재미있어졌지? 이제 강지혁은 어떻게 할까? 나는 강지혁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널 버릴 거라는 거에 한 표를 던지고 싶은데 너는 어때? 혹시 너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얼굴이 그렇게 죽상이 된 거야? 하하하!”임유진은 진세령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고 강지혁의 얼굴만 바라보았다.그리고 강지혁도 그런 그녀를 똑같이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그의 눈동자에 뭔가의 결심이 섰고 임유진은 그걸 보고는 서둘러 크게 외쳤다.“혁아, 하지 마!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그런데 강지혁은 그녀의 외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러고는 녹음을 켠 후 휴대폰을 입 가까이에 가져갔다.“나 강지혁은 죽은 후 내가 가진 모든 재산을 전부 아내인 임유진에게 넘겨주겠다. 이건 그 어떤 외부의 강요도 받지 않은 온전한 내 의지임을 밝힌다.”그는 말을 마친 후 곧바로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렸다.그리고 고이준은 그의 휴대폰을 받고 그대로 몸이 얼어붙어 버렸다.‘지금 자기 목숨을 희생해 유진 씨를 구하려는 건가? 그래서 유언을 남긴 건가...? 하지만 이대로 대표님이 죽어버리면...’고이준은 그 뒤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다.강지혁의 유언에 굳어버린 건 고이준 뿐만이 아니었다. 옆에 있던 김재호의 얼굴 역시 미묘하게 굳어 있었다.“대표님, 정말 임유진 씨를
김재호가 한 손을 들어 임유진이 타 있는 차량과 약 20m 정도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저쪽으로 가시면 웬 기계 장치가 하나 보일 건데 거기에 폭탄을 해제할 수 있는 버튼이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버튼을 누르기 위해서는 대표님의 지문이 필요합니다.”김재호의 웃음기가 한층 더 깊어졌다.그리고 강지혁은 김재호의 말에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이 상황이 단지 지문을 찍고 버튼을 누르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었다.만약 그렇게 간단한 거였으면 굳이 이런 짓을 벌이지는 않았을 테니까.“인내심 테스트하지 말고 똑바로 끝까지 말해. 너와 여기서 입씨름할 시간 없으니까!”강지혁은 지금 일 초라도 빨리 임유진을 저기서 구해내고 싶었다.“그러죠. 만약 대표님께서 해제 버튼을 누르시게 되면 기계 장치에 설치된 폭탄의 스위치가 자동으로 켜지게 될 겁니다. 즉 임유진 씨를 구하면 대표님의 목숨이 위험해진다는 뜻이죠.”김재호는 강지혁이 바로 앞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꽤 큰 목소리로 말했다.차 안에 있는 임유진에게도 이 얘기가 전달되기를 바라서였다.그리고 그의 의도대로 임유진은 그의 말을 아주 똑똑히 들어버렸다.임유진은 마치 온몸이 한기에 둘러싸인 것처럼 몸이 뻣뻣하게 얼어붙어 버렸다.자신이 사는 대가로 강지혁이 목숨을 잃게 될 줄은 정말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다.‘왜... 대체 저 남자는 뭣 때문에 이런 짓을 계획한 거지? 단순히 내 목숨이 목적인 거면 내가 기절해있을 때 진세령을 통해 나를 죽이면 됐을 텐데...?’그때 임유진의 의문에 대답을 해주듯 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 이 판을 계획한 건 다 대표님이 정신을 차렸으면 해서입니다. 임유진 씨를 위해 목숨을 내던지는 일이 정말 가치 있는 일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요. 대표님, 임유진 씨를 대체할 여자는 차고도 넘칩니다. 만약 외모 때문이라면 똑같이 성형하게 하면 될 일입니다.”요즘은 의술이 워낙 좋아 완전히 똑같게는 만들지 못하더라도 비슷하게는 만들어낼 수 있었다
임유진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차분한 음성으로 진세령에게 말했다.“지금이라도 날 풀어주면 오늘 일은 없던 일로 해줄게. 혁이한테도 널 봐달라고 하고 네 집안이 무너지지 않게 도와주라고도 할게.”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최대한 진세령이 혹할 만한 제안을 제시하는 것밖에 없었다. 진세령에게 조금이라도 틈이 보인다면 그걸 기회로 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그런데 진세령은 마치 임유진의 말 따위는 들리지도 않는 건지 자기 할 말만 이어나갔다.“나는 그냥 확인하고 싶을 뿐이야. 강지혁이 널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우리 언니가 죽었을 때는 눈물은커녕 동정심도 내보이지 않았거든. 솔직히 너도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강지혁이 널 위해서 정말 목숨을 걸 수 있을지 없을지?”진세령의 두 눈은 어느새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그녀는 임유진을 증오했다. 한낱 버러지 같은 여자 때문에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이 너무나도 억울했으니까.진애령의 사고가 있었던 그때 사실 진세령은 임유진의 곁에서 소민준을 빼앗으며 내심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소민준이 임유진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그녀에게는 일말의 감정도 내비치지 않을까 봐.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소민준은 아주 손쉽게 임유진을 버렸다. 마치 다 쓴 건전지를 버리듯 너무나도 쉽게 그녀를 버려버렸다.생각해보면 첫사랑의 이미지로 남자들을 홀린 자신이 임유진 따위를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그래서 진세령은 강지혁도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생각했다. 분명히 소민준처럼 임유진을 가차 없이 버릴 거라고 확신했다.그리고 모든 일이 끝나면 그는 김재호라는 남자에게서 거액의 보수를 건네받은 후 해외로 넘어가 남은 생을 편히 즐기면 된다.그때 검은색 승용차가 연이어 이곳에 도착했다.임유진은 차 소리에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연달아 내리는 검은색 옷을 입은 사람 중에 강지혁의 모습이 보였다.강지혁은 아슬아슬한 상태로 절벽에 걸려있는 차량과 그 차량의 운전석에 앉은 임유진을 확인하더니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며 바
강지혁은 이가 부러질 정도로 꽉 깨물었다.아무리 강지혁이 강문철에 대해 잘 안다고 해도 강문철이 강지혁을 알고 있는 것에 비하면 한참이나 부족했다.강문철은 강지혁이 의심이 많은 인간이라는 것과 임유진과 관련된 일이면 불안감이 극도에 달한다는 것까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일부러 김재호에게 실종 놀이를 하게 한 다음 갑자기 나타나게 했다.감쪽같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야 이미 불안도가 잔뜩 오른 강지혁이 직접 김재호를 심문하려고 저택에서 나올 테니까.강문철은 죽어서도 죽은 게 아니었다.게다가 김재호의 말에 따르면 강문철은 강지혁에게 내기까지 하려고 했다. 임유진과 관련된 내기를 말이다.‘유진아, 제발... 제발 무사해 줘!’...임유진의 눈썹이 움찔 떨리더니 이내 예쁜 두 눈이 떠졌다.임유진은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광경에 깜짝 놀라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녀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있었고 한 손은 핸들에 꽉 묶여있고 나머지 한 손은 기어봉에 묶여있었다.그리고 그녀가 탄 차량은 차 앞머리만 간신히 땅을 밟고 있고 뒤쪽은 공중에 떠 있었다. 즉 차량의 절반만이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매달린 상태라는 뜻이었다.만약 이대로 조금만 큰 움직임을 보인다거나 외부에서 힘이 가해지게 되면 이 차는 말할 것도 없이 절벽 아래의 망망대해로 떨어지게 될 것이다.임유진은 상황을 파악한 후 아주 미세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그녀의 눈앞에 영상 통화가 켜져 있는 휴대폰 하나가 들어왔다. 그리고 화면 속에는 진세령의 얼굴이 보였다.“깼어?”진세령이 음험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솔직히 생각도 못 했어. 내가 짓밟은 한낱 벌레가 오늘날의 강씨 가문의 안주인이 될 거라고는 말이야.”“진세령! 이게 대체 무슨 짓이야!”내면의 불안함과 두려움을 애써 억누르며 임유진이 물었다.임유진은 아까 그렇게 강지혁을 보낸 후 다시 침실로 돌아왔다. 그런데 침실로 돌아온 지 몇 분도 안 돼 갑자기 머리가 어지럽고 졸음이 몰려와 잠시 침대에서 눈을 붙였다.그리고
경호원은 강지혁의 목소리에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게 사모님 방으로 가봤는데 사모님은 그 어디에도 없고 채린이와 이모님만이 바닥에 기절해있었습니다. 방 안에는 CCTV가 없어 밖에 있는 CCTV를 돌려봤지만 사모님께서 침실을 나선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방안에는 지금 미약하게나마 약물 냄새가 나고 있습니다...”“찾아! 지금 당장 저택 전부를 뒤져서 유진이를 찾아!”강지혁은 휴대폰을 고이준에게 던져버린 후 누구 한 명 죽일 것 같은 눈빛으로 김재호를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김재호의 머리를 세게 움켜쥐고 벽에 짓눌렀다.“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어! 만약 유진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네 사지가 다 찢길 줄 알아!”쿵 하는 소리와 함께 김재호의 머리가 옆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벽에 세게 부딪혔다.분명히 아플 텐데도 김재호는 오히려 소리 내 웃었다.“지금 당장 저를 죽이셔도 저는 아무 얘기도 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아까 말했죠?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라고요.”“유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말하라고 했어!”강지혁이 살기를 내뿜으며 김재호의 머리를 수도 없이 벽을 향해 박았다.지금 그의 머릿속은 온통 임유진뿐이었다.한편 고이준은 이미 이성을 잃은 듯한 강지혁의 눈빛과 행동에 저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임유진은 강지혁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기에 절대 건드려서는 안 된다. 만약 임유진을 건드리게 되면 그건 자기 목숨을 끊어달라고 하는 것과 같은 뜻이었다.‘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김재호를 죽이고 말겠어!’고이준은 이 생각에 얼른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갔다.“대표님, 차라리 김재호를 데리고 저택으로 돌아가 보는 게 어떨까요? 분명히 김재호는 사모님께서 어디 있는지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니 일단은 화를 좀 가라앉히시고 손을 멈춰주세요. 이러다 김재호가 죽어버리면 아무것도 묻지 못하잖습니까.”그 말에 강지혁의 눈빛에 이성이 서서히 돌아오기 시작했다.“차에 실어. 그리고 지금 당장 집으로 간다!”강지혁은 말
“진세령이 탈옥한 걸 몰랐다?”강지혁이 눈을 가늘게 뜨며 김재호를 빤히 바라보았다.“네, 몰랐습니다.”김재호가 단호하게 답했다.“그래, 그렇다고 쳐. 그럼 내가 올 때까지 아무 얘기도 하지 않겠다는 건 무슨 의도로 한 말이지?”“회장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저한테 이런 말씀을 하셨어요. 만약 임유진 씨가 모든 진실을 알고도 대표님과 헤어지지 않으면 대표님과 내기를 하나 하시겠다고요.”“내기?”“네. 대표님께서 아버님처럼 정말 여자 하나 때문에 목숨까지 버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강지혁의 얼굴빛이 확 어두워졌다.“그게 무슨 뜻이지?”강문철은 이제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인데 대체 뭘 지켜보고 무슨 내기를 하겠다는지 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김재호는 강지혁의 의혹 가득한 눈빛을 보며 아무 말 없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 잔뜩 얻어터진 얼굴로 그렇게 웃으니 괜히 섬뜩하게 느껴졌다.“말해! 그게 대체 무슨 뜻인지!”강지혁의 목소리가 한층 높아지고 눈빛도 아까보다 더 날카로워졌다.“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김재호가 다시 입을 열었다.“회장님께서는 단지 대표님께 자명한 사실을 하나 일깨워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여자를 위해 사느니 마느니 하는 건 결국 대표님께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요.”“그간 노인네 뒤를 따라다녔더니 스스로가 뭐라도 된 것 같아?”강지혁이 느긋하게 앞으로 걸어가 김재호의 멱살을 잡았다.“네가 지금부터 입을 열고 해야 하는 얘기는 이거 하나야. 노인네가 너한테 무슨 지시를 내렸는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지. 털어놓지 않으면 그때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 거야.”이건 누가 들어도 협박이었다.하지만 김재호는 그의 협박 따위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대답했다.“저는 아무것도 가진 게 없었을 때부터 회장님 뒤를 따랐습니다. 제 목숨을 구해준 사람도 회장님이시고 저를 지금껏 살게 해준 사람도 회장님이십니다. 그러니 회장님께서 저한테 맡기신 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완
...강지혁은 방에서 나온 뒤에야 옆에 늘어진 손을 꽉 말아쥐었다.아까 임유진이 그의 팔을 잡고 먼저 그의 목에 팔을 두르며 얼굴이 가까이했을 때 그는 긴장감에 심장이 터질 듯이 뛰었고 기대감에 마음이 잔뜩 부풀어 올랐다.하지만 그가 마지막에 맛본 건 또 한 번의 실망감뿐이었다.믿음을 주려고 노력은 한 것 같지만 결과적으로 스스로의 몸은 속일 수 없었다. 그녀의 몸은 여전히 그를 밀어내고 있었다. 여전히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그렇다는 건 그녀가 그를 진정으로 용서한 게 아니라는 뜻이다.하지만 뭐가 됐든 임유진은 그에게 거짓말이라도 사랑한다고 해줬고 용서하겠다는 말도 해줬다. 닿는 걸 거부하면서도 그를 안심시켜주기 위해 열심히 닿으려고 했다.그러니 그거로 된 거다.어차피 두 사람에게는 아직 시간은 많으니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다 제거하고 아이까지 무사히 출산한 후 다시 차근차근 관계를 쌓아 나아가면 된다.강지혁은 밖에 있는 이모님과 경호원에게 다가와 임유진의 상황에 관해 몇 마디 당부를 건넸다.그런데 그때 고이준이 다급하게 들어오더니 강지혁의 곁으로 다가와 말했다.“대표님!”강지혁은 그의 다급한 태도에 사람들을 다 물린 후 고이준을 바라보며 물었다.“무슨 일이야?”“드디어 김재호를 찾았습니다.”고이준의 말에 강지혁의 몸이 흠칫했다.“어디서 찾았지?”“회장님 산소에 있더라고요. 저희 애들을 발견하고 바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다행히 무사히 잘 잡아뒀습니다. 현재 묘원 옆의 오두막에 있는데 지금 바로 만나러 가시겠습니까?”“그래. 노인네가 대체 어떤 지시를 내렸는지 한번 들어봐야지.”강지혁이 차가운 목소리로 답했다.사실 김재호를 잡은 건 좋지만 이제껏 꼭꼭 숨어있다가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는 점이 영 석연치 않았다. 게다가 진세령의 탈옥 사건도 신경이 쓰이고 말이다.강지혁은 진세령의 탈옥에 김재호가 크게 엮여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가지.”강지혁이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고이준도 바로 그의 뒤를 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