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그렇게 공수진을 보살피며 심지어 아이의 일마저 공수진을 위해 생각하는데...“내가 공수진한테 목숨을 빚졌다고 했지?”그녀는 갑자기 되물었다.이경빈은 탁유미를 빤히 쳐다보며 뭔지 모를 그녀의 평온한 모습이 그로 하여금 불안해지게 했다.탁유미는 갑자기 몸을 일으키더니 바 옆으로 걸어가 와인 한 병과 와인잔 하나를 꺼냈다. 그리고 자신에게 와인 한 잔을 따랐다.지금의 그녀는 아마 알콜이라도 섭취하여 용기를 북돋으려는 것 같았다.달콤하면서도 쓴맛 나는 붉은 액체는 입으로 흘러 들어갔다... 맛은 괜찮았다.예전에 그녀는 왜 술이 맛있는 줄 몰랐을까?술 한잔을 비우고 나더니 탁유미는 이내 술잔을 바 테두리에 대고 내리쳤다. 술잔은 순식간에 반쪽이 되어버렸다. 그녀의 손에 잡혀 있는 반쪽 깨진 술잔은 날카로웠다.“탁유미, 너 미쳤어?”“이경빈, 네가 말해봐. 그놈의 목숨 어떻게 갚을까?”탁유미는 마치 상대방의 기분을 개의치도 않는 듯 그저 가볍게 웃더니 물었다.그의 불안한 감정은 더욱 강렬해졌다.“뭐 하자는 거야?”차가운 목소리에는 그조차도 모르는 불안함이 묻어있었다.“이러면, 아마 이젠 아이를 낳을 수 없겠지?”그녀는 웃으며 손에 쥐어있던 날카로운 유리 조각으로 자신의 복부를 찔렀다.뜨거운 핏물이 깨진 유리컵을 타고 흘러내려 그녀의 옷에 스며들고 손등에 떨어졌다.이경빈은 동공이 흔들리더니 그녀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지금 뭐 하는 짓이야?”그는 그녀를 향해 소리치기만 할 뿐 감히 그녀의 손에 들린 깨진 유리컵을 건드리지 못했다. 잘못 건드렸다가 그녀의 상처가 더욱 심해질까 두려웠다.그가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한 손으로 그녀의 팔목을 꽉 잡은 채 깨진 유리컵이 더 이상 그녀의 복부를 자극하지 못하게 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고 구급차를 불렀다.한 번도 119 구급대에 전화를 거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다고 느낀 적이 없었지만 지금은 마치 온몸의 힘이 다 소모된 것 같았다.전화가 연결되었을 때, 그는
그는 그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단호할 수 있다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그녀는 마음대로 자신의 몸을 해쳤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피가 흘러나오는 것을 보았을 때 온몸이 차가워졌고 모든 신경이 곤두섰다.마치 그녀가 깨진 유리컵을 그의 몸에 박은 것 같았다.너무나도 아팠다.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그의 고통과 분노는 탁유미를 웃게 만들었다. 그저 가볍게 웃었을 뿐인데 복부의 피는 더 빨리 뿜어나왔다.“웃지 마!”그는 당황스러웠다. 그녀의 피가 너무 많이, 너무 빨리 흐를까 봐 걱정되었다.그녀의 웃음은 마치 당황한 그를 비웃는 것 같았다.“이러면, 목숨 갚은 셈이지?”탁유미는 다소 힘이 든 채 말했다. 그녀는 피가 뿜어나오는 것을 느꼈지만 죽지 않을 것임을 직감했다.그때 감옥에서 그녀는 너무 많은 상처를 입었는지라 이정도 부상은 그녀의 목숨을 앗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이렇게까지 결연한 것은 이경빈이 그녀의 결심을 알기를 바랐을 뿐이다.“난 남은 생 동안 아이를 갖지 않을 수도 있어. 아니면 네가 의사보고 내 자궁을 떼어내라고 해도 돼. 아, 물론, 지금 자궁이 이미 다쳤을 수도 있겠네? 그럼 아이를 아예 낳지 못하겠지.”탁유미는 다소 힘이 들어서는 말했다. 비웃음이 담긴 두 눈으로 안색이 창백해진 그 남자를 바라봤다.그의 얼굴에는 혈색이 일도 없었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긴장하고 고통스럽고 당황스러움이 묻어있었다. 꼭 마치... 그녀를 무척 신경 쓰듯이 말이다. 만약 그때 그녀가 그의 매정스러움을 맛보지 않았더라면 정말 그가 걱정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그는 그저 그녀가 그와 공수진에게 아이를 낳아주지 못할까 봐 걱정되었을 뿐이다.“이경빈, 나... 이거로 갚으면 되겠어?”그녀의 피는 그녀의 몸을 타고, 손가락을 타고, 흘러내렸다. 고급 카펫 위에 끊임없이 뚝뚝 떨어졌다.그의 두 눈은 빤히 그녀를 바라보기만 할 뿐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는 그녀가 이렇게 결연할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다.그가 두려
그녀가 단지 3년 반 동안만 감옥살이를 했었기 때문이다. 3년 반이란 시간은 너무 가벼웠다.그런데 그녀가 자신을 해치는 것을 보고 그는 왜 말렸을까? 왜 구급차까지 불렀을까?그는 분명히 그녀에게 복수하려고 했지만 결국 그는 자신이 당했다고 생각했다.때마침 울린 핸드폰 벨소리는 조용한 공간에서 유난히 선명하게 들려왔다.이경빈의 핸드폰 화면에 표시된 이름은 공수진이었다.“경빈 씨.”그가 전화를 받자 전화 너머로 공수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야?”이경빈은 피곤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경빈 씨, 무슨 일 있어요? 소리가 힘이 없네요.”공수진은 평상시와 다른 그의 목소리를 눈치채고 이내 물었다.“괜찮아, 별일없어.”탁유미의 일은 그에게 별 일도 아니었다.“그럼... 이만 끊을게요. 경빈 씨가 언제 돌아오는지 물어보려고 전화했어요. 만약 경빈 씨가 S시에 더 있어야 한다면 저도 갈래요.”그동안 S시에 있을 때 그는 매번 통화할 때마다 몇 마디만 하고 급하게 끊어버렸다. 그럴수록 그녀의 마음은 더욱 불안해졌다.무슨 변수라도 생길까 봐 늘 두려웠다.비록 몇 년 동안 그는 그녀에게 매우 잘해 주었고 게다가 두 사람은 결혼 준비까지 하고 있었지만... 그녀가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사실이 마치 가시처럼 항상 그녀의 마음속에 꽂혀있었다.게다가... 그녀가 제일 신경 쓰였던 건 일 년 동안 그가 계속 탁유미를 찾고 있었단 사실이었다.그는 도대체 탁유미에 대해... 공수진은 더 생각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이경빈을 단단히 붙잡고 순조롭게 이씨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아니, 괜찮아. 안 와도 돼. 이틀 후면 다시 돌아갈 거야.”이경빈은 말했다.공수진은 그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전화를 마친 이경빈은 굳게 닫힌 수술실 문으로 시선을 돌리며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도대체 탁유미한테 어떻게 해야 할까?계속 복수해야 할까?아니면...그는 심지어 자신조차도
“걘 정말 네 원수야, 걔만 나타나면 넌 또 이렇게 다치잖아.”탁유미 엄마는 분에 가득 차서 말했다.“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진짜 걔 말대로 너 혼자 찌른 거야?”“네.”탁유미는 빠르게 인정했다.“네, 엄마, 제가 그런 거예요.”“하지만 너...”“나보고 아이를 낳아달라는 거예요.”탁유미는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우습죠? 그땐 저한테 그렇게 대해놓고 지금 저한테 복수하려는 방식이 뜻밖에도 아이를 낳으라는 거예요.”“걔 설마 너한테 아직 감정이 남아있는 거 아니냐? 필경 너희들 전에는...”“엄마!”탁유미는 엄마의 부질없는 환상을 깨버렸다.“그가 나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한 건 공수진이 아이를 낳을 수 없었기 때문이죠. 단지 날 도구로 여겼을 뿐이에요. 만약 나에게 아직 감정이 남아있다면 당시 나를 감옥에 보내지도 않았겠죠.”그 말을 들은 탁유미 엄마는 안색이 어두워졌다.“죄야, 네 아버지가 지은 죄를 지금 너 보고 갚으라니! 이경빈이 어떻게 너한테 그래, 네가 걔를 위해...”“엄마, 됐어요.”탁유미는 엄마의 말을 가로챘다. 과거의 모든 것은 그녀한테는 악몽일 뿐이었다. 그저 그녀가 잊으려고 애쓰는 악몽이었다.“지금 이시간에 병원에 오시면 윤이는 어떡해요?”“집주인보고 잠시 봐달라고 했어. 이경빈이 볼까 봐 병원은 데리고 올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 이경빈이 갔으니 내가 윤이를 병원에 데리고 오는 게 낫겠어, 널 돌보는 것도 더 편하고.”“괜찮아요, 저... 저 병원에서 간병인을 찾으면 돼요. 어쨌든 병원에서 밥은 다 챙겨주니까, 윤이를 병원에 데려오지 마세요. 내가 다쳐서 입원한 것도 윤이한텐 말하지 마세요.”그녀는 아들이 이경빈에게 들킬 가능성을 무릅쓸 수는 없었다.“하지만 너 너무 심하게 다쳤...”“엄마, 나 잘 살게. 엄마 노후도 챙겨줘야지, 윤이 크는 것도 봐야지.”탁유미는 애써 얼굴에 웃음을 담은 채 말했다. 그녀는 엄마가 자기 때문에 걱정하는 게 싫었다.엄마가 그녀를 위해 했던 고생은 이미 충분했다.
임유진은 3일 후 로펌으로부터 면접이 통과되었다는 통지를 전화로 받았다. 차 변호사는 그녀를 비서로 받아들였다.비록 로펌 비서일 뿐이라고 해도 그녀가 다시 변호사라는 직업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의미했다.임유진은 한지영에게 전화를 걸어 좋은 소식을 전했다. 한지영은 진심으로 친구를 위해 함께 기뻐해 줬다.“너무 잘 됐다. 유진아, 잘해! 나중에 우리 변호사님께서 사주는 밥도 얻어먹어야지.”한지영은 덩달아 기뻐했다.임유진은 그녀의 말에 참지 못하고 웃음이 터졌다.“변호사 될 때까지 기다릴 필요 있어? 첫 달 월급만 받으면 크게 한턱쏠게.”“약속한 거다!”한지영은 이어 말했다.“기다릴게.”“그래.”임유진은 쿨하게 대답했다. 며칠간 우울했던 기분은 지금 이 순간에 다 풀려버렸다.인생은 결국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고 그녀는 상처로부터 조금씩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강지혁에 대한 감정을 모두 내려놓은 채 그저 터무니없는 꿈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전화를 마친 임유진은 여전히 자신의 핸드폰을 보며 연락처를 펼쳤다. 연락처에는 혁이라는 이름이 적힌 번호가 두 개 저장되어 있었다.하나는 그때 그녀가 그에게 핸드폰을 사주며 만들었던 유심카드였고 다른 하나는 그가 평소에 자주 쓰던 번호였다.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쉬더니 화면을 터치하며 두 개의 번호를 일일이 삭제했다.마치 둘 사이의 마지막 관계를 끊어내는 것 같았다.“강지혁, 잊을게.”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게 그녀를 감싸며 공기 속으로 퍼졌다.퇴근할 때, 백연신은 한지영을 데리러 왔다. 디자인 스튜디오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지영이 운이 좋게 백선 그룹의 회장과 사귄다고 알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백연신이 그녀를 데리러 올 때면 스튜디오의 보기 드문 광경이기도 했다.심지어 일부러 꾸민 채 백연신 앞에서 얼굴을 잠깐 비치며 혹시라도 눈에 띄지 않을까 하는 환상을 품는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필경 한지영은 여신까지는 아니었고 기껏해야 깔끔하고 단정했을 뿐이다.많은 사람이 백연신이 한지
“당신은 내가 아니잖아...”그녀는 무심결에 부인하려고 했지만 갑자기 목에 뭔가 걸린 것처럼 말끝을 흐렸다.그녀를 빤히 바라보고 있는 그의 새까만 눈동자에는 마치 자조와 암울함이 배어 있는 것 같았다.한지영은 가슴이 답답해 났다. 그의 눈빛은 왠지 모르게 숨이 막혔고 마치 그에게 무슨 빚이라도 진 것 같았다.차 안은 갑자기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왜? 계속 말해봐.”그제야 이 적막을 깨는 백연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거든요.”그녀는 혼자 켕겨서 말했다.‘제발, 뭐가 찔리는데!’그녀는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말했다. 그들은 진짜로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는 것을 둘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다만 때로는 그의 몇 마디 말이... 그녀를 약간 착각하게 했다... 그가 그녀를 좋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항상.하지만 그럴 리가 없지.그와 같은 남자는 못 만나본 여자가 없었다. 진심으로 그녀를 좋아하는지도 의문이었다. 아니면 지금 그의 행동이나 말은 단지 그녀가 그를 사랑하게 하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그리고 그녀가 정말로 그를 사랑하게 되면 그는 아마도 그녀를 차버릴 것이다. 마치 그때 그녀가 작별 인사를 하지 않고 떠났을 때와 같이 말이다.“오늘 어디 가서 밥 먹을래?”그는 이내 말을 돌렸다.“근처에 있는 쇼핑몰로 가죠. 이따 먹어요. 먼저 쇼핑하면서 유진에게 옷 몇벌 사주려고요. 유진이가 오늘 새 직장을 구했대요. 하지만 유진의 옷은 모두 몇 년 전에 입던 옷들이라 공식적인 자리에 어울리지 않아요.”한지영은 말을 이어갔다.강지혁이 사준 옷들을 유진은 한 벌도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유진의 옷들은 모두 그해 감옥에 가기 전의 옷이었다. 비록 어떤 옷은 질이 좋았지만 유행도 지났고 색도 죄다 빠졌다.백연신은 한편으로 액셀을 밟으며 말했다.“너 임유진한테는 엄청 잘해주더라, 임유진의 일이라면 맘에 항상 두고. 언제면 내 일을 그렇게 맘에 두고 있을지 모르겠네.”“흠...흠흠...”
“그저 일반인이에요... 옛날엔 친구였는데 지금은 연락 안 해요.”임유진은 씁쓸해서 말했다.차 변호사는 뭔가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열었다.“그럼 그 친구에게 잘해야겠네요. 그 친구가 아니었다면 유진 씨는 지금 변호사 일을 할 수도 없었을 거예요.”임유진은 차 변호사의 사무실에서 나온 후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말해서, 그녀는 방금 새 상사가 그녀를 도와 사건을 뒤집은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지 꼬치꼬치 캐 묻을까 봐 걱정이었다.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임유진은 일을 손에 익히기 시작했다.처음 입사했을 때, 그녀도 반년 동안 비서로 일했던지라 지금 다시 비서 일을 하니 오히려 빠르게 적응할 수 있었다. 일이 좀 사소하고 잡다하긴 하지만 어렵지는 않았다.정한나는 그녀의 앞에서 어슬렁거리더니 강지혁에 관한 일을 슬쩍 물었지만 임유진은 덤덤하게 그 물음들을 비껴갔다.퇴근 시간이 되자, 임유진은 막 퇴근하려는데 마침 장한나의 소리가 들렸다.“오늘 유진 씨가 새로 입사했는데 우리 유진 씨를 위해 환영하는 겸 회식하는 게 어때요?”사람들은 이내 맞장구를 쳤다.“좋아요. 새 동료의 입사를 축하해요.”“그러게요. 어쩌다 여자 동료가 입사했는데 축하해야죠!”“그럼 다 같이 가시죠.”임유진은 상황을 보고 거절하기도 무안했다. 게다가 필경 그녀가 처음 입사했기 때문에 인간관계도 가꾸어야 했다. 만약 출근 첫날부터 어울리지 못한다면 앞으로 계속 함께 어울리기 어려울 것이었다.그리고 변호사 같은 직업은 인맥이 중요하다.비록 장한나가 제기한 제안이었고 분명히 호의는 아니었지만 임유진은 이 상황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리고 그녀는 장한나가 도대체 무슨 꿍꿍인지도 생각했다. 그녀가 진심으로 회식하자는 건 아닐테니 말이다.임유진이 지원한 직책은 비서인지라 회식에 참석하는 것은 사무소에서 경력이 짧은 변호사거나 임유진과 마찬가지로 비서뿐이었다.그런데 이 사람들만 합쳐도 열 명쯤 되었다.다만 목적지에 도착해서야 임유진은 그릴앤바에 간다는 것을 알았다
“자, 우리 새로 입사한 임유진 비서를 위하여!”직장동료는 잔을 들고 술을 권하기 시작했다.회식 자리의 주인공인 임유진은 당연히 사람들이 술을 권하는 대상이었다.임유진의 주량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녀는 몇 잔만 마셨는데도 약간 어질어질했다.그녀는 동료들이 술을 권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핑계를 대며 화장실에 갔다.화장실에서 임유진은 세면대 옆에 기댄 채 술기운 때문에 뜨거워진 얼굴을 물로 헹궜다.그리고 그녀의 눈동자는 거울 속 자신을 빤히 바라봤다. 이마와 볼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에는 물방울이 맺혀있었다. 빨개진 두 볼, 앙증맞은 코, 그리고 평소보다 더 붉은 입술.그녀가 눈을 깜빡일 때마다 속눈썹은 마치 작은 부채 같았다.예전에 그녀는 자신의 속눈썹이 매우 길고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때로는 연하게 화장할 때면 마스카라도 할 필요 없었다. 하지만 강지혁을 만난 후, 그녀는 남자의 속눈썹도 그렇게 예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혁이의 속눈썹은 엄청 예뻤다. 그의 새까만 눈동자를 더욱 돋보이게 했다. 속눈썹이 매번 흔들릴 때마다 사람을 설레게 했다. 그녀로 하여금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했다...세상에, 그녀는 또 그의 생각을 했다.임유진은 머리를 힘껏 저으며 다시 찬물로 얼굴을 씻고 정신을 차리려고 애썼다.이 세상에는 더 이상 혁이는 없다. 다만 강지혁만 있을 뿐이다.그녀는 심호흡하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찬물로 세수했는데도 머리가 어지럽고 조금 있으면 더 취할 것만 같았다.마침 그녀의 핸드폰이 울렸다. 한지영한테서 걸려 온 전화였다.그녀가 통화 버튼을 누르자 전화 너머로 한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유진아, 어딨어? 집에 없던데?”“너... 나 찾으러 갔어?”임유진은 입을 열었다. 한마디만 했을 뿐인데 술에 취해 혀가 꼬였다.“응, 근데 너 목소리 왜 그래?”한지영은 이내 되물었다.“술 좀 마셨어.”“술? 어디서?”한지영은 갑자기 긴장되었다. 필경 유진이는 원래 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으니깐.“그릴앤바.”임유진은 대답했다